쿠르베 서문당 컬러백과 서양의 미술 25
오광수 엮음 / 서문당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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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주의화가 귀스타프 쿠르베, 영국의 화가 조셉 말러드 윌리엄 터너, 오노레 도미에의 회화작품과 설명, 그들의 인생여정이 수록된 책이다. 이중에서 윌리엄 터너는, 존 컨스터블과 함께 예술계의 변방에 머물렀던 영국인들의 체면을 살려준 화가다. 그리고 후대의 인상주의 화파의 원류가 되는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특이하게도 유채보다는 수채화를 더 많이 그렸다. 게다가 수채화로써 유화의 느낌을 곧이곧대로 표현해내었는데, 1982년작인 [쇼어햄]을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러 작품을 통해서 물감을 가지고 빛을 화폭에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뚜렷한 대상을 표현하기 보다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아스라히 그려내어, 인상파와 함께 현대 추상화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인터넷에서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마치 노을이 지는 것처럼 일출과 일몰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초기 인상파의 작품이라고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또 어떻게 보면 환타지 적인 요소도 품고 있는 듯 하다. 한편,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사이렌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폭풍치는 바다를 자세히 보려고 돛대 끝에 자기 몸을 묶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열정을 넘어 일종의 광기가 아닐까? ㅎㅎㅎ 하여간 이런 이유로 터너의 작품에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그린 걸작이 많이 있다. 이런 작업의 일환으로 '눈보라 속의 증기선' 이라는 작품이 가장 유명한, 그리고 터너다운 회화라고 알려져있다. 또한 우연의 효과를 이용할 줄도 알았는데, 아마 이 부분은 나중에 쉬르레알리즘에 조금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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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 예술가의 삶과 진실 1
조반니 파피니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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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이자 조각가인 미켈란제로의 생애를 그리고 있는 서적이다. 본명이 미켈란젤로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 (Michelangelodi Lodovico Buonarroti Simoni)인데 너무 길고 어려워서 통칭 미켈란젤로라고만 한다. 필자로 앞 5글자만 알지 뒤로 이어지는 이름은 모른다. ㅎㅎ 아뭏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이 바로 미켈란젤로다. 필자가 그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예전의 TV프로그램 [주말의 명화]를 통해서였다. 이문세의 동명 타이틀 곡으로도 알려질 만큼, 당시로서는 매우 유명한 프로그램이었다. 아뭏든 이 코너에서 The Agony and the Ecstasy, 1965 라는 영화를 재방영했는데,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도 끝까지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찰톤 헤스톤이 주연으로 나왔는데, 벽화를 제작하는 기법이 아주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여담이지만,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한 때 아주 절친한 친구사이였다. 그런데 두 사람의 성격이 서로 반대되는 기질이라서, 사사건건 충돌을 하다가 나중에는 절교를 하고 만다. 주된 원인은 미켈란젤로의 약간 괴퍅한 성격 때문인데, 이런 특출난 뭔가가 있어서 오늘날의 미켈란젤로로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 예술인들은 보통사람들과는 확실히 뭔가가 다르다. ㅎㅎ


말이 나온김에, 미켈란젤로의 성격을 조금만 파헤쳐보자. 이건 실제 일화다. 당시 그는 시스타나 성당에 [최후의 심판]이라는 그림을 그려넣었다. 그런데 '체세나' 라고 하는 사람이 '홍등가에나 어울리는 싸구려 그림' 이라는 비평을 했다고 한다. 이를 전해들은 그는, 지옥의 수문장 미노스를 그리면서 체세나의 얼굴을 거기에 그려넣게 된다. 원래 미노스라는 인물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제우스와 인간 여성인 에우로페의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신이다. 그리고 그는 지옥의 수문장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이 그림에서 미켈란젤로는 체세나를 괴물처럼 그려놓고 있어서 그만의 복수를 하고 있다. ㅋㅋㅋ 그런데 여기서 더 웃기는건, 그리이스.로마 신화의 여러 등장인물이 기독교 문화에 녹아들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민족의 종교나 관습을 이단이라고 치부하면서 무식한 살인과 전쟁을 벌였던 그 유일신 문명이 이렇게 얼토당토 않은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나 핼로윈 등등이 바로 그들이 그렇게나 없애버리려고 했던 이단민족의 풍습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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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 고귀한 야만인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0
프랑수아즈 카생 지음, 이희재 옮김 / 시공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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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굵은 인상파 화가 중 한명인 폴 고갱, 그가 타히티 여인들을 그린 작품은 뭐라고 할까? 소박하면서도 매우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의 작품세계는 프랑스와 타히티 시절로 구분이 되는데, 전자가 인상파의 분위기를 많이 담고 있다면 후자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특징지운 시기다. 특히나 사랑하는 딸 알린의 죽음은 그가 자살을 시도할 만큼, 그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이 사건 이후에 그의 작품세계에는 --심미안이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고갱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면 한번 들춰보는것도 좋겠다.

그의 풀 네임은 외젠 앙리 폴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 인데, 편의상 줄여서 뒤의 3글자만 쓴다. 한편, 그는 특이하게도 한동안 본업을 유지하면서 예술을 한 사람이었다. 원래 그의 직업은 주식중개인이었으며, 26세라는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의 작품을 고흐의 동생인 테오가 화랑을 운영하면서 판매했다고 한다. 그러한 인연으로 반 고흐와 폴 고갱은 친한 친구사이였었다. 그런데, 어느날 고갱이 고흐에게 하나의 그림을 선사하는데, 거기에는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고흐가 볼품없이 표현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고 고흐는 고갱에게 화를 내게 되는데, 그 일로 그 두사람의 인연이 끝나버리고만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 모두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매우 유명한 예술작품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물론 폴 고갱의 작품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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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훔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외국편 1
염명순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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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한쪽 귀를 짤라서 사모하는 여인에게 보냈다는 일화는 아주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유명하다. 비운의 삶을 살다간 예술가, 살아서는 그의 예술이 인정받지 못했으며 후대에 와서야 빛을 본 인물. 이런 경우가 어디 한 두명이겠냐마는 고흐의 인생은 더욱 드라마틱한 것 같다. 생전에 그는 고갱과 친구였는데, 한번은 바람과 비가 심하게 부는날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갔다고 한다.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며, 이 에피소드로 인해서 한동안 고갱이 고호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ㅎㅎ 나중에는 서로 결별을 하고 말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둘은 막역한 친구사이였다.


몇년전 고호의 해바라기가 350억 원에 경매낙찰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술품 경매가격이 한국돈으로 무려 950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고도 한다. 아마도 이 부분은 매무 거품이 많이 끼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지금은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을 하고 있지만, 당사자는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그저 그럴 것이다. 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짧은 생을 살다간 고호는 약 10여년에 걸쳐서 집중적으로 많은 회화작품을 창작해놓고, 결국에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그의 작품이 널리 인정을 받게 된다. 살아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죽어서도 이름이 길이 빛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술사 뿐만 아니라 여러 역사에서 그런 예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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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 피카소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외국편 4
염명순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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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파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피카소의 인기는 --가령 배용준의 인기만큼이나--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한 것 같다. [아비뇽의 처녀들] 이라는 작품이 널리 알려지기는 했지만, 필자의 기억에 강한 인상을 남긴것은 [게르니카]라는 작품이다. 보통 사람들이 한 눈에 보기에도 뭔가 지옥스럽고 어둡고, 부정적인 느낌이 확 다가온다. 게르니카는 스페인의 한 마 을이름이다. 그런데 스페인 내란중에 독일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고 만든 대작이 바로 게르니카다. 하여간 피카소에 대해 오롯이 알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시라.


대개의 평범을 벗어난 사람이 그렇듯이 피카소도 남다른 무엇이 있었는데, 바로 여성편력이었다. 그는 여자관계가 상당히 복잡해서 공식적으로만 7명의 여자와 같이 살았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그의 예술 작품을 위한 도구, 혹은 성적인 대상으로만 머물렀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한 여성과 10년을 넘지 못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고하며, 이에 따라 자녀들과의 관계도 무척이나 소원해졌다고 한다. 그의 집념이랄까? 광기가 어느정도였냐하면? 46세에 이른 피카소는 17세의 마리 테레즈라(미성년임)는 아이를 6개월간이나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결국 애인으로 취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남매를 각각 둔 이후, 그녀마저도 무자비하게 내쳤다고 하니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을 저질렀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후에 피카소가 죽고 난후 자살로 그 뒤를 따랐다고 하니, 사랑이랄까? 애증이랄까? 인간의 감정은 뭐라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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