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icnic with Monet (Board Books)
Julie Merberg & Suzanne Bober 지음 / Chronicle Books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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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함께 항상 거론되는 인상파의 거장이 바로, 클로드 모네다. 그는 특히 아내와 아이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원래는 목델과 화가 사이로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결혼 전 아내의 이름이 [까미유 동시외]인데, 필자는 처음에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까미유 끌로델]의 그 여인인줄 착각했었다. 이 까미유는 로댕의 연인이자 그 자신이 조각가였다.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으니 한번 보면 좋을 것이다. 각설하고 모네는 아내의 사망에 큰 충격을 받아서 그 이후로는 인물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다. 한편, 까미유의 임종을 지켜본 모네는 죽음이 아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 색체의 변화를 추적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걸작품이 바로 [임종을 맞느 까미유 모네]다. 그 처연한 슬픔속에서도 화가로서의 본능이 꿈틀대었던 모네는 천상, 환쟁이 일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남편이요. 아버지였다.


부부가 화목하기 위해서는 같은 관점을 가지거나 취미를 같이하는것이 큰 도움이 된다. 모네와 그의 아내 까미유가 그렇다. 그는 가족들간의 정겨운 그림을 많이 남겼는데, 아내 까미유는 모네를 혼자 보내지 않고 가벼운 양산을 들고 그와 함께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파라솔을 들고 잇는 여인' 이며 이 작품에는 그의 아들인 장도 함께 등장한다. 이 둘이 처음 만난것은 화가와 모델로서였는데, 그 만남 이후로 바로 신혼살림을 꾸몄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혼인은 모네의 아버지에게는 인정받지 못하였다고 하니, 완벽하고 흠집하나 없는 행복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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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드 뭉크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4
울리히 비쇼프 지음, 반이정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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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뭉크의 작품을 볼 때마다, 미국의 드라마인 [명탐정 몽크]가 항상 떠오른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지만, 필자는 항상 헷갈린다. 아뭏든 뭉크의 대표작이자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바로 [절규]다. 한 눈에 딱 봐도 음울하기 그지없고 죽음의 냄새가 풀풀 풍긴다. 자기자신을 해골로 그녀놓고 양손으로 뺨을 받치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이 작품은, 그의 불행했던 가족사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모친을 대신하던 누나마저 세상을 등지게 되는데, 이러한 슬픔이 그를 정신분열증으로까지 몰아갔으며 그대로 화폭에 담겨지게 된다.
아~ 조금 우울한 내용이었다. 분위기를 바꿔보자. 이러한 뭉크의 절규를 헐리우드 영화가 해피 엔딩으로 만들어냈는데, 바로 맥컬리 컬킨 주연의 [나홀로 집에] 이다. 주인공이 처음으로 면도를 하고, 스킨로션을 얼굴에 촥 바르는데 남자라면 그 고통을 알 것이다. 너무나 따가워서 왁~ 하고 비명을 지르는 장면, 그것이 바로 뭉크의 절규가 아니던가 말이다. ㅎㅎ

이러한 성장기의 결핍 때문인지 그는 첫사랑도 무척이나 힘들게 겪었다. 어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마는 그의 경우는 유부녀를 사랑했다. 그런데 이 여인네가 요즘말로 하자면 '팜므 파탈' 즉, 남자를 홀려서 파멸로 이끌어가는 악녀였다고 한다. 아뭏든 그는 첫사랑에 실패하고 여자를 증오하는 마음까지 품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이 뭉크만의 고유한 화풍으로 남게 된다. 그 뒤를 이어서도 그는 계속해서 유부녀를 사랑했다고하니, 어린 시절 모친을 잃은 트라우마가 평생을 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사랑스런 여인이나 아내가 아닌, 아련한 기억의 어머니를 떠올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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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부르델 명화로 보는 세계의 미술가 8
조영경 지음 / 지경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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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로댕하면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왼쪽 허벅지위에 왼손을 올리고 그 사이로 오른쪽 팔꿈치를 대고 턱을 받치고 있는 그 조각상 말이다. 그런데 이 자세를 한 번 취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작품보다는 그의 연인 까미유 끌로델을 모델로 한, 다나이드라는 작품이 더욱 좋다. 부드러운 여체의 등과 출렁거리는 머리결이 섬세하게 표현된 이 조각상은 한번 보면 정말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마치 바위속에서 까미유가 모습을 드러내는 듯 하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이 작품의 주제는 단테의 신곡에서 나온 것인데, Danaid는 그리이스.로마 신화에서 결코 채워지지 않는 독에 물을 퍼 나르는 형벌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로댕과 까미유는 스승과 제자 사이였으며, 나중에는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말년은 아주 불행할 삶을 산다. 참고로, 이 두사람의 실화를 다룬 영화가 바로 아자벨 아자니 주연의 [까미유 끌로델]이다. 영화에서 까미유는 남다른 재능을 가진 한 명의 독립적인 예술가였다. 그러나, 여성을 인정하지 않는 당대의 편견 때문에 일생을 고통스럽게 보내게 된다. 로댕과의 불륜, 로댕의 그림자로서 갖는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이 그녀를 광기로 몰고간다. 그리하여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것도 무려 30년동안 말이다. 에휴, 아버지가 너무 뛰어나면 그 자식들이 기를 펴지 못하듯이, 끌로델에게는 로댕의 벽이 너무나 크고 깊었던 모양이다.


끝으로, 로댕하면 오래된 유머가 항상 떠오른다. 시험을 보는데, 어떤 문제의 해답이 '로댕' 이었다. 뒷줄에 앉은 학생이 이를 훔쳐보다가 잘못해서 '오뎅' 으로 적었다. 이것을 또다시 컨닝한 세번째 줄의 응시자가 '텐뿌라' 라고 적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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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몬드리안.폴록 명화로 보는 세계의 미술가 20
이은재 엮음 / 지경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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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폴락의 작품은 뭐가 뭔지 모르겟다. 그냥 술에 취해서 물감을 캔버스위에 휙휙 던지거나 붓으로 뿌리거나 해서 낙서 비슷하게 그려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번 보게되면 뭔가 시각적인 쾌감 내지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뭔가 광기 비슷한 것도 살포시 감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는 미국 현대회화에서 한 획을 그었는데, 후대의 사람들은 이것을 액션페인팅이라고 칭한다. 아마도 평론가들이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캔버스에 질서정연한 것들만 담는것이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고정관념에 휩싸이지 않는 것은 예술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극히 필요한 발상의 전환이다. 한편, 잭슨 폴락을 다룬 예술영화도 개봉이 되었는....바로 폴락 'Pollock, 2000' 이다.


필자는 이런 예술가를 다룬 영화를 즐겨보는 편인데, 이런류의 영화는 그렇게 많이 만들어지지도 않고 또 국내에서 개봉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대부분이 큰 영화관에는 명함도 내밀어보지 못하고 DVD로 발매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요즘에는 인터넷상에서 다운로드 받아 보는 경우도 많아서 웬만한 매니아가 아니면 정보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또한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작하는 쪽에서는 제작비용을 건지기도 어렵기 때문에 더욱 시장이 좁아지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간혹가다 한 두 편씩 나오기는 하므로 상당한 고정 팬이 있는 모양이다. 필자가 보건데, 이런 류의 영화를 만들때 꼭 사실에 근거해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약간의 상상력과 영화적인 재미도 가미해주면 좀더 많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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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몬드리안.폴록 명화로 보는 세계의 미술가 20
이은재 엮음 / 지경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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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폴락의 작품은 뭐가 뭔지 모르겟다. 그냥 술에 취해서 물감을 캔버스위에 휙휙 던지거나 붓으로 뿌리거나 해서 낙서 비슷하게 그려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번 보게되면 뭔가 시각적인 쾌감 내지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뭔가 광기 비슷한 것도 살포시 감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는 미국 현대회화에서 한 획을 그었는데, 후대의 사람들은 이것을 액션페인팅이라고 칭한다. 아마도 평론가들이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캔버스에 질서정연한 것들만 담는것이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고정관념에 휩싸이지 않는 것은 예술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극히 필요한 발상의 전환이다. 한편, 잭슨 폴락을 다룬 예술영화도 개봉이 되었는....바로 폴락 'Pollock, 2000' 이다.


필자는 이런 예술가를 다룬 영화를 즐겨보는 편인데, 이런류의 영화는 그렇게 많이 만들어지지도 않고 또 국내에서 개봉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대부분이 큰 영화관에는 명함도 내밀어보지 못하고 DVD로 발매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요즘에는 인터넷상에서 다운로드 받아 보는 경우도 많아서 웬만한 매니아가 아니면 정보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또한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작하는 쪽에서는 제작비용을 건지기도 어렵기 때문에 더욱 시장이 좁아지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간혹가다 한 두 편씩 나오기는 하므로 상당한 고정 팬이 있는 모양이다. 필자가 보건데, 이런 류의 영화를 만들때 꼭 사실에 근거해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약간의 상상력과 영화적인 재미도 가미해주면 좀더 많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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