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권하는 사회에서 부자되는 법 - 경제 멘토 KBS 박종훈 기자의 생존 재테크
박종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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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에 저당 잡힌 마이너스 인생에서 탈출하는 법!

경제 불황을 이겨내는 똑똑한 빚 재테크 활용 노하우!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라고 해봐야 수수료 한번 지불하고 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초저금리 시대에 집을 구하려면 대출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고, 청년들은 사회에 나와서 몇 년이 지나도록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 그저 버는 대로 소소하게, 욕심내지 않고 살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갚고, 또 갚아야 하는 상환의 늪에 빠져 아등바등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왜 은행과 빚에 인생을 저당 잡힌 채 살아야 하는가? <빚 권하는 사회에서 부자되는 법>의 저자는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빚이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생활 곳곳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생활을 유지하고, 자산을 늘리기 위해 당연히 빚을 질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이 형성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빚이 빚인 줄도 모르고 이용하고 있거나 나아가 빚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단순히 재테크가 아니라 빚테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내 돈을 불리는 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빚을 통제하는 법에 대해 배워야 할 때가 온 것이다.

 

 

  KBS 경제부의 대표적인 경제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빚을 권하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자신만의 빚테크를 찾아가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준다.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앞서 1부와 2부를 통해 우리가 왜 이렇게 쉽게 빚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를 파악하고 빚 정리 기술 5단계를 통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하고 각종 부채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들을 제시한다. 특히 1부에서는 집을 살 때 빌린 돈은 흔히들 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고, 혜택이라는 유혹 아래 숨겨진 카드사의 함정들, 각종 약정 할부 제도의 폐해, 대출 광고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게 지갑을 열게 되는 기업의 치밀한 마케팅과 맞벌이 부부가 지닌 함정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아이를 낳게 되면서 신랑 혼자 외벌이를 하는 것이 마음에 쓰였는데, 오히려 맞벌이 부부들이 소득이 높은 만큼 소비 비용이 높고 금융 부채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는 통계를 읽고 나니 벌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돈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얼마나 현명하게 쓰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전세 대출 자금이나 학자금대출처럼 정부에서 지원하는 대출이 스스로에게 약인지 독이 될지 현명하게 판단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겠다.

 

 

대출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단지 통증을 잊게 하는 진통제와 같아서, 만일 오늘의 빚만으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다음에는 더 큰 빚을 지게 될 것이다. 정부가 권하는 빚이라고 해서 이런 정책 기조에 휘둘렸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비록 정부의 정책 자금 대출이라도 자신이 그 집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면 순식간에 나쁜 빚으로 돌변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71p

 

 

  빚이 빚을 낳고,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혹 그러한 생각을 하기 전에 이 책을 읽고 빚을 정리하는 법에 대해 배워보는 것이 어떨까 추천해본다. 일단, 빚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채규모와 구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리스트를 작성해보고, 자신에게 불리한 빚이 무엇인지 체크하여 상환 순위를 정한다. 다음으로 가계의 핵심 자산을 정리해 부채를 줄여나가도록 하는데 이를 테면 장기금융상품 즉, 장기보험과 같은 상품들을 정리해나가는 방식이다. 또한 주택 매각 혹은 작은 평수로 옮기는 다운사이징, 주택연금가입과 같이 가계 부동산을 조정하는 방법도 하나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끝에도 도무지 해결이 나지 않는다면 신용회복과 개인회생제도를 이용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저자는 빚 관리의 핵심은 때를 놓치지 않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부채 조정이 늦어지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할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며, 부채를 늘려 일시적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다가 더 키울 수도 있기 때문에 용기를 잃지 말고 당당하게 대처해나간다면 얼마든지 재기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3부에서는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대출 정책과 금융 환경 속에서 똑똑하게 대출을 받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과 금융회사와의 협상 전략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각종 대출 상품 중에서 나에게 맞는 대출 상품을 찾는 법에서부터 은행이 아닌 정부 지원 대출 상품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들도 일러준다. 아는 지인이 집을 구한다고 여러 차례 은행에 가보았지만 번번이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있는데, 주택도시기금이 제공하는 ‘내 집 마련 디딤돌 대출’이나 ‘보금자리론’을 신청해보는 방법도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주택도시기금의 대출 조건이 시중 은행보다 더 좋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우선 이 같은 대출 상품의 신청 자격이 되는지 먼저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하다. 이 외에도 복잡한 대출 상품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금융감독원 사이트 활용법도 제시되어 있어 여러모로 유용한 정보가 가득하다.

 

 

자신에게 적합한 정책성 저금리 대출 상품을 찾아보려면 공기업인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에서 운영하는 ‘서민금융나들목(www.hopenet.co.kr)' 사이트를 활용하자. 정부의 서민금융 지원제도를 쉽게 검색해볼 수 있다.

또 전국 열다섯 개 광역자치단체에 마련된 서민금융 종합지원센터를 직접 찾아가거나 다모아 콜센터(1397)를 통해 전화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 이미 대부업체 등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은 경우라도 상담을 통해 저금리 대출 상품으로 갈아타는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 114p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으로 4장에서는 저절로 돈이 모이는 빚테크 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일단, 모든 지출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인데 이는 예산이 쓸데없는 곳에 지속적으로 낭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제로베이스 예산을 가계에 도입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가계의 재정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돈 관리의 기본은 한 달에 얼마를 벌고 얼마나 남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즉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가계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저자는 가계부를 적다보면 숨어 있는 지출은 휴대전화 요금이나 할부금, 관리비, 각종 회비 등 자신도 모르게 계속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지출을 줄이면 그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사소한 커피 값을 줄이는 것, 보험료 검토하기, 2개의 통장을 활용해 저축과 지출을 용이하게 관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빚테크 시스템을 한마디로 요악하면, 돈을 쓰고 빚을 지는 것은 최대한 불편하게, 그리고 돈을 모으고 관리하는 것은 최대한 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 141p

 

 

  이어 5부와 6부에서는 시시때때로 변화는 경제 상황 속에서 빚테크로 조성한 목돈을 어떻게 굴려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현재 한국과 세계의 침체된 경제 구조 속에서 자신의 자산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부동산에 관한 내용이 유독 눈에 띈다. 상가 주택을 사려고 고민하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여러모로 관심이 가는 부분이 많이 기술되어 있었다. 특히, 집을 사야 하나 좀 거 기다렸다 사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현재 부자들이 부동산을 정리하고 금융 자산을 늘리기 시작한다는 조짐이 보이며 베이비붐 세대의 자영업 확대로 인한 부동산 수요가 앞으로는 점차 인구 감소로 줄어들 것을 예상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부부도 계획을 새로이 짜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금리 시대에 고수익 상가 투자는 분명히 좋은 투자 대안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시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몰린 상황에서 상가나 빌딩 투자를 새로 하려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가 아니라 안정된 임대 소득을 원한다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마무리되고 상가나 빌딩 가격의 새로운 균형점이 등장하는 2020년대 이후에 투자를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236p

 

 

  이렇듯 <빚 권하는 사회에서 부자되는 법>을 읽다보면 빚에 휘둘리지 않고, 새어나가는 지출을 막으며 빚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요소들을 정리하는 법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 아무래도 경제학자의 관점이 아니라 현장에서 뛰는 기자 출신이라는 점 때문인지 보다 실용적이고 도전해봄직한 사례들이 많다. 또한 경제에 관해 일자무식인 나 같은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빚테크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정교함이나 수도사 같은 자기 절제가 아니라, 가족 모두가 ‘제대로’ 즐기는 것에 있다던 저자의 말처럼 가족 모두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빚테크를 통해 노후를 보다 안정적으로 보장받고, 아이 역시 빚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올바른 경제관념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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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김성한 지음 / 새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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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를 꿈꾸는 변호사의 멈출 수 없는 욕망의 질주! 

인생의 막다른 길에 섰을 때야 깨달은,

잃어버리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때때로 운명이란 덫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헤어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끝이 보이는 결말, 더 이상 레일이 없는 운명의 폭주기관차에 몸을 실은 한 남자의 처절한 질주를 그린 <달콤한 인생>은 지독한 욕망의 운명론을 쫓는 스릴러 소설이다. 서른여섯 살, 결혼 오 년 만에 아내가 임신을 하고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집을 소유하였으며 억대 연봉을 받는 잘 나가는 변호사 앞에는 달콤한 청사진만이 오롯이 놓여있을 뿐이다. 하지만 남부럽지 않은 인생에도 권태는 찾아들고, 은밀한 일탈과 스릴감, 더 높은 층수의 인생을 꿈꾸는 집요한 욕망의 질주는 그의 인생에 낯선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다.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다 앞바퀴에 맥주병이 퍽 하고 깨지는 것과 같은, 흔한 일상에 갑자기 침범한 불길한 징조처럼 사사로운 것들이 마음을 심란하게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살인 무기가 된다면? 그것이 인생이 뒤틀리는 전조가 될 줄도 모르고, 욕망으로 점철된 외도와 일탈이 자신을 갉아먹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남자는 실수로 살인을 저지르고야 만다.

 

 

  사건은 느닷없이 한 남자가 나타나 상우의 차 안을 기웃거리는 바람에 시작되었다. 의도된 듯한 출현, 심기를 건드리는 말투,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불길한 기분을 느꼈을 텐데 상우는 후회할 틈도 없이 낯선 남자와 시비가 붙었다. 하지만 상우는 순식간에 상대에게 제압당했고, 이때 준비된 것처럼 그의 손에 잡힌 물건이 바로 깨진 맥주병이었다. 왜 하필이면 맥주병이 그 자리에 있었던 건지, 죽은 자는 누구인지, 우연의 우연이 겹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른 새벽에 정확히 맞물렸던 것인지. 우발적이었지만 이미 운명의 수레바퀴에 휩쓸리듯 살인마가 되고 만 상우는 온갖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대로 도망갈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잃을 것인가, 정당방위라고 주장해볼 것인가, 과연 살인 전과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열거하고, 따져보며 합리적인 방법을 생각해내던 그에게 마치 구세주처럼 누군가가 나타난다. 바로 대권가도를 달리고 있는 5선 의원의 아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병호였다. 자신의 살인을 덧씌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포르투나는 행운을 관장하는 고대 로마의 여신이다. 그녀는 이마에 단 하나의 머리카락만을 가지고 있다. 이 행운의 여신을 만난다면 적절한 때 이마의 머리카락을 손에 쥐어 행운을 붙잡아야 한다. 잠시만 망설여도 포르투나는 지나갈 것이고, 그 후엔 붙잡으려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맨들맨들한 뒤통수에 손이 미끄러져 다가온 행운을 놓치고 말 것이다. / 57p

 

 

  상우는 병호에게 혐의를 씌움으로써 일단 용의자에서 벗어나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살인의 공포와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러는 가운데 병호의 아버지인 함상진이 나타나 상우에게 뜻밖의 제의를 해왔다. 바로 병호의 변호를 맡아줄 것, 즉 자신의 덮어씌운 살인사건의 변호를 상우가 맡게 된 것이었다. 그는 이제 병호에게 형량을 지우고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고독함과 귀신처럼 들러붙는 양심과 맞서 싸우며 어떻게 해서든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자신을 건져내기 위해 종횡무진 한다. 하지만 뜻밖의 목격자가 나타난다. 애초에 다른 이에게 누명을 씌우고 혐의를 벗으려했던 것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었지만, 적어도 상우의 눈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던 일이 목격자가 자신을 협박하려 들면서 뒤틀리고 만 것이다. 그는 이제 협박범마저 더 이상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한다.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나 늦어버렸기에.

 

 

지금은 그때 바라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행복은 깃털의 무게만큼도 늘지 않았다. 부족한 것들이 채워지기 무섭게 또 다른 바람으로 빈자리를 만들어 넣었다. 행복은 바람과 바람 사이의 아주 짧은 순간에만 존재했을 뿐이었고 곧 다시 허기에 시달렸다. / 268p

 

 

  그는 가진 것이 많기에 잃을 것 또한 많은 사람이었다. 살인을 정당화하면서까지 자신의 것을 지켜내려는 그의 이기심은 살인을 저지른 후 밀려드는 두려움과 죄책감보다 앞섰다. 그러나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는 분명 몰랐던 것들이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의 무게와 비례하지 않았다. 이 모두가 예전에는 간절하게 원하는 것들이었을 텐데 어느 순간 교만이, 나태함이, 저열한 욕망이 그를 사로잡아 더더욱 많은 것을 가지려는 데에만 몰두해왔다. 그는 자신이 쌓아놓은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간절함을 잊고 만족감만 채우려 살았던 그의 모습은 결국 소유에 집착하고 주변을 둘러 볼 여유조차 없는 우리의 자화상과 다름이 없다.

 

 

“우리가 교만했기 때문이야. 간절함을 잊고 만족만을 찾아왔던 거야. 겨울에 몸을 움츠리고 봄을 기다리다가도 막상 봄이 오고 나면 여름옷을 꺼내며 어서 다음 계절이 오기를 바랐던 거야. 생각해봐. 사는 게 사막이고 우리가 서로에게 물 한 컵이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됐을까.” / 306p

 

 

  이렇듯 유명 로펌에서 높은 승률을 거두며 승승장구를 하는 변호사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마치 운명의 장난인지 자신이 덮어씌운 살인사건의 변호를 맡아 완전범죄의 기회를 얻게 된다는 내용은 그간의 많은 스릴러물이 다뤄왔던 것과 닮은 구석이 있다. 형사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영화 <끝까지 간다>, 아내와 이웃집 남자의 정사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뒤 완전범죄를 위해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빅 픽처>가 이와 유사하다. 대권가도를 달리고 있는 5선 국회의원과 다운증후군을 앓는 그의 아들, 이제 막 임신을 한 주인공의 아내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내연녀,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이런 등장인물의 관계에서 스릴러가 완성되는 내러티브 또한 여느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시종일관 섬뜩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꽤 흥미진진하다. 아마도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를 하던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글의 특성상 문단을 맺을 때 다음 회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려는 작가의 의도적인 끝맺음이 특유의 빛을 발휘한 듯하다. 유사한 다른 작품들에 비추어 독자가 소설의 결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추락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싸움을 끝까지 쫓게 하는 힘이 있다. 사건과 자극적인 소재에만 몰두하여 자칫 놓칠 수 있는 주인공의 복잡한 심경도 잘 전달된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것을 지키되 앞으로 나아가려고 발버둥을 쳤던 남자가 인생의 막다른 길을 직면하면서 겪게 되는 절망과 고립, 처절함이 온몸을 옭죄어드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연민과 분개, 뒤틀리는 거북한 심사와 같은 복잡한 감정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다운증후군 환자가 이른 새벽에 사건 현장에 나타나거나 승혜가 전직 형사인 우식과도 연결되어 있는 등의 작위적인 연출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인공이 변호사라는 점에서도 법정물이 주는 긴장감 있는 전개가 재미있게 연출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듯 속도감 있고 가독성 높은 전개로 한 번 손에 쥐면 끝까지 쉼 없이 몰입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킬링타임용 스릴러물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완전범죄를 꿈꾸는 변호사의 멈출 수 없는 욕망의 질주를 통해 잃어버리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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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 김선달
양우석.신윤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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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 상쾌, 통쾌, 기막힌 사회 풍자 소설!

나라를 대신해 백성들을 구하러 대동강을 팔러 나선 위대한 사기극!

 

 

  성실하게 노력을 한 만큼 대가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세상의 마땅한 이치인데 어째서 가문과 돈이 좌우하는 이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소설 <봉이 김선달> 속 19세기 초 무렵의 조선은 일개 백성들은 아무리 성실하게 노력해도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는 세상이었으며, 같은 피를 나눈 가문의 득세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시대였다. 실제 김선달의 이름이 선달이 아니라 대과에 붙고도 관직을 못 받았다 하여 사람들이 그리 부른 것이라 하니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당시 상황을 알만한 일이다. 하늘이 내린 재주가 있어도 쓸 수 있어야 빛나는 법이건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거대한 장벽, 즉 부와 권력, 기득권으로 점철된 21세기의 대한민국도 이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세상이라 더욱 원통할 따름이다.

 

 

  정조가 승하한 뒤의 조선은 열한 살 어린 임금의 즉위로 수렴청정과 외척에 의한 세도 정치, 과거제 문란, 매관매직 등 기득권층의 부패가 들끓었다. 임금의 외척 세력들인 김조순과 박종경 두 가문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으니,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보고 있던 조씨 가문의 조덕영은 자금을 모아 중앙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평안감사직을 돈으로 사 백성들로 하여금 착취를 일삼기 시작했다. 이때 김선달은 피폐해진 한양을 뒤로 하고 고향인 평안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조선의 와룡은 정약용이요, 봉추는 김사원이라. 강진에 유배된 다산과 평양 초야의 봉추, 둘 중에 하나만 제대로 써도 조선은 흥할 것이다’고 입을 모아 말할 정도인 평양 초야의 봉추, 바로 그가 김선달이나 몇 안 되는 제자들만 남아 있는 서당을 근근이 운영하며 입에 풀 칠 정도만 하고 사는 처지였다.

 

 

“무릇 벼슬살이란 백성이 위임한 권력을 백성의 행복을 위해 대리 행사하는 것이니, 벼슬자리는 영원히 소유할 대상도 아니고 구한다고 해서 뜻대로 얻어지는 자리도 아니다. 이는 주인인 백성의 뜻에 따라 임시로 관리하는 자리에 불과하다. 공직자의 마음가짐이 이와 같아야 그 자신은 물론 나라가 평안하다.” / 30p

 

 

  자고로 나라가 번성하려면 후생양성에 힘써야 하는 법인데, 구구절절 옳은 말씀만 담은 다산 적양용 선생의 『목민심서』도 뜬구름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평안도의 민심이 흉흉하게 변해버린 것이 예삿일이 아닌 듯 싶을 때였다. 평안감사 조덕영의 횡포로 매일같이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자 장사치들이 조덕영을 도모하기 위해 김선달을 찾아왔다. 그들은 그간 조덕영에게 수탈당한 목록이 적힌 치부책을 내밀며 이를 한양으로 가 고발해 줄 것을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한양을 떠난 지 십 년이라 천하의 김선달도 뾰족한 수가 있을까 난색을 표했지만, 아끼던 제자가 조덕영으로부터 초주검이 되어서 돌아오는 사건을 겪으며 그는 그 옛날 한양에서 왈패들과 어울려 양반들을 골려먹을 때 함께 했던 천봉석을 대동하고 한양으로 나섰다.

 

 

  그러다 우연히 한 패거리와 마주쳐 납치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 상대가 다름 아닌 홍경래였다. 홍경래는 김선달에게 서양의 부르주아 혁명을 예로 들며 우리도 난을 일으켜 왕과 귀족들의 나라가 아닌 백성들의 나라를 만들자고 제의를 했다. 하지만 김선달은 이 난이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일찍이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난을 겪고서도 백성들 살림살이가 나아졌는지 살펴보았느냐고, 진정 백성의 나라가 되었느냐고 반문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피맺힌 울분은 조정에까지 닿을 듯하나, 세상은 이렇다하게 나아지지 못하고 백성들의 피만 부르게 되는 난이 될 것이라 내다보았다. 끝끝내 무리를 해서라도 돌파해내려는 홍경래와 한때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조롱하고 다녔으나 여전히 무엇이 옳은지 해답을 찾지 못한 김선달, 이 둘의 만남은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파하고 말았다.

 

 

물론 ‘난’이 끝나고 나면 백성들이 흘린 무수한 피의 대가로 세상은 아주 조금 진일보하기는 했다. 김선달은 그 아주 더딘 발걸음이 모이고 모여 세상이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무고한 백성들에게 그 피의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 68p

 

 

  한양에 도착한 김선달은 조덕영과 적대 관계에 있는 병조판서 박종경을 통해서 형조참판 정만석을 찾아가게 되고, 치부책을 내보임으로써 마침내 조덕영의 죄상을 밝혔다. 김선달은 평안도의 영웅이 되었고, 이후 젊은 나이에 홍상 독점권을 쥐게 된 유상옥이란 자를 알게 되어 청나라에 함께 동행을 했다. 청나라에 가는 동안 비적떼를 만나 위기에 처하기도 했는데, 뜻밖에도 묘한 계책을 낸 김선달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는 일도 있었다. 조선의 임선옥처럼 청나라에서 홍삼을 독점적으로 수입하고 있던 진대인이 임선옥을 길들이기 위해 홍삼 값을 한없이 낮추어 사려는 수작을 부리자 이에 시름하고 있던 임선옥을 위해 김선달이 꾀를 내어 청나라와의 홍삼 독점거래에서 조선이 완승하게 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흥미진진했다. 어째서 이런 인물이 조선의 중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 통탄할 만한 일이었다. 더욱이 청나라를 둘러보며 고인 물과도 같은 조선의 현실을 떠올리는 김선달의 모습에서도 쓸쓸함이 느껴졌다.

 

 

조선은 고인 물처럼 고요했다. 조선에서는 세상이 이렇게 천지개벽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조선의 사대부란 자들은 아직도 케케묵은 이론에 사로잡혀 있었다. 언제까지고 눈 감고 있을 것인지. 청나라에서 본 세상은 김선달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세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김선달은 조선이란 나라가 이대로 가만히 있다 보면 격변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 침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 123p

 

 

  한편 조덕영은 갖은 술수를 동원해 유배에서 풀려나게 되었고, 복수를 하기 위해 김선달을 죽이라 명령했다. 그 사이 다복동을 근거로 하여 난을 준비하고 있던 홍경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대해보였던 난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아슬아슬했고, 거사는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이들은 정주성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립이 되는 바람에 청나라에서 돌아온 김선달은 아끼던 제자를 잃게 되고, 성에 갇힌 딸과 아내마저도 볼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한때 조덕영을 귀양 보냈던 정만석이 홍경래의 난을 수습하고, 관서 지방의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 잡기 위해 평양감영으로 와 사태를 정리하려하지만 이미 이 일대의 백성들을 포함하여 정주성에 갇혀 있던 백성들까지 청나라의 노예로 팔려가고 말았다. 김선달은 이제 자신이 딸과 아내는 물론 삼천 명에 달하는 백성들을 구해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은자 이십 육만냥.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마침내 조덕영에게 대동강 물을 팔 기막힌 사기극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흥미진진하고 유쾌, 상쾌, 통쾌한 사기극의 결말이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토록 긴장감 넘치고 조바심을 느끼며 읽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양반들을 조롱하기 위해 대동강 물을 판 이라고만 알고 있던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나라에 대한 시름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담긴 사회 소설이라는 점에서 참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더럽고 치사한 세상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이 인물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시사 하는 바가 큰 듯하다. 아무래도 이 책을 지은 저자가 영화 <변호인>를 쓰고 연출한 사람이라 그런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인물의 이야기를 조명하여 시국을 비판하는 저자의 음성이 과감하고 또한 정곡을 찌르니, 굳이 이 시점에 19세기 초 조선의 인물을 끌어와 글을 쓴 뜻이 무엇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매주 전국 곳곳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벌이고 민주주의의 뜻을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실상 달라지는 게 없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김선달이 홍경래에게 ‘난을 일으키면 백성들이 삶이 정말로 나아지겠느냐’ 고 반문했던 것이 생각나 가슴이 따끔거린다. 우리도 삶이 단숨에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이 땅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더럽고 치사한 세상, 하루빨리 국민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해주고 겸허히 뜻을 살펴줄 김선달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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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마크 월린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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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증명을 통해 트라우마의 유전적 증거들을 밝혀내다!

트라우마의 근원과 이해, 극복으로 나아가는 따뜻한 여정!

 

 

  최근 들어 우리 사회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혹은 ‘공황장애’라는 정신적 외상을 겪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갑자기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나서 발생하는 불안 장애, 조울증, 우울증, 때로는 자해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 이 심리적 반응은 그 크기가 크건 작건 간에 ‘트라우마’가 남긴 상처들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및 세월호 사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정농단 사건들이 개인과 국민 전체에 강한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하지만, 가족과 부대끼며 사는 동안에 겪는 트라우마가 개인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더욱 강력하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인간이 경험하는 트라우마의 대부분은 가족에게서 온다고 한다. 특히, 저자는 모든 인간관계 중에서 감정적 유대 관계가 가장 높은 가족일수록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과 애착의 결핍 등은 가족 구성원 전체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뿐더러 세대에 걸쳐 유전이 된다고 밝힌다.

 

 

  트라우마의 유전인자가 세대에 걸쳐 이어진다니. 불행의 그림자가 내 아이와 또 다음 세대의 아이에게까지 착 달라붙어 반복해서 나타난다고 생각하니 꽤나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애석하게도 트라우마가 유전된다는 이 충격적인 명제는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는 중이다. 정신의학과 신경과학 교수 레이철 예후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그 자녀들이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신경생물학적으로 연구해왔는데, 자녀들이 부모와 유사한 정도로 코르티솔(트라우마를 경험한 뒤 우리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고, 이 때문에 전 세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재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선구적인 세포생물학자 브루스 립턴 역시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생각과 믿음, 감정이 DNA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가 산모에게 항상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만 하라고 말하듯, 어머니가 만성적이고 반복적으로 느낀 분노나 두려움 같은 감정은 태아에게 각인되어 아이가 환경에 적응할 방식을 준비하거나 ‘사전 프로그램화’한다는 것이다.

 

 

 

“두려움, 분노, 사랑, 희망 등 어머니의 감정은 자녀의 유전자 발현을 생화학적으로 바꿔놓는다.” / 55p

 

 

 

예전에는 부모에게 받은 염색체의 DNA로만 유전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인간 유전체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지금, 과학자들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피부 색깔 같은 신체적 특징을 전해주는 염색체의 DNA가 놀랍게도 전체 DNA의 2퍼센트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머지 98퍼센트는 ‘비부호화DNA’로 이는 우리가 물려받는 다양한 감정, 행동, 성격 특성을 담당한다. / 58p

 

 

  다시 말해 부모의 트라우마가 그대로 아이의 트라우마가 되고 아이의 행동이나 정서 문제는 부모의 문제를 거울처럼 반영한다. 개인적으로 추운 겨울임에도 목까지 올라오는 셔츠를 싫어하고, 집에서도 창문을 조금이나마 열어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일종의 ‘갑갑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편이다. 즉,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고 산소가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정도이다. 그런데 나의 트라우마는 나의 아들에게도 어느 정도 같은 증상을 보일 때가 있다. 닫힌 거실 문을 열어놓거나 목에 뭔가를 두르려고 하면 싫어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예로 나의 트라우마가 전이되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아이의 몸에 무엇을 물려주었고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자라서 사랑을 주는 법도 안다고 했던가,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얼마나 사랑을 표현하고 주느냐에 따라 아이가 느끼는 애착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니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기는 어머니를 세상의 전부로 인식한다. 따라서 아기에게 어머니와 분리되는 일은 삶에서 분리되는 일로 느껴진다. 그러면 공허함과 단절을 경험하고 절망과 체념의 감정을 느끼며 자기 자신과 삶 자체가 무언가 끔찍하게 잘못되었다고 믿게 된다. 아주 어릴 때 분리를 경험하면 이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 트라우마를 처리하기엔 너무 어릴 때라 내면에서 벌어지는 감정과 신체감각을 느끼기만 할 뿐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한다.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상처와 상실, 실망, 단절에는 그러한 감정과 신체감각이 배어 있다. / 128p

 

 

  중요한 것은 앞서 밝힌 나의 트라우마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를 찾아야만 보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남길 만한 사건에 대해 뚜렷하게 알지 못하고, 명료하게 표현하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이미 철학자 융과 프로이트는 감당하기 어려운 기억은 저절로 흐릿해지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모두 ‘무의식’에 저장된다고 하였다. 과학적으로도 트라우마가 일어나는 동안에는 언어중추가 닫히고 현재 순간의 경험을 담당하는 내측 전전두엽 피질도 차단된다고 한다. 즉,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의 증상을 겪거나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괴로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뚜렷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 역시 갑갑한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그것이 나 혼자만의 문제인 것인지, 이전 세대의 가족이 겪었던 트라우마가 전이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나와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은 가족이 있었는지에 대해 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불편한 가족사 혹은 이전 세대에 트라우마가 존재한다면 침묵 혹은 외면하기보다 꼭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과 가족사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의 실마리, 즉 핵심 언어 지도를 완성해가다보면 거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핵심 불평, 핵심 묘사어, 핵심 문장, 핵심 트라우마를 나열해볼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게 있다면 가족 관계도를 만들어 보는 방법이다. 

 

 

 

 

 

 

부계와 모계를 비교해보라. 어느 쪽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가? 어느 쪽이 더 부담스러운 느낌이 드는가? 트라우마 사건을 살펴보라. 힘겨운 운명으로 가장 고통받은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가장 힘든 삶을 살았는가? 다른 가족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가족 중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일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가? 정보가 완전하지 않아도 걱정 마라.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 신체감각을 안내자로 믿고 따라가라. / 219p

 

 

  이렇듯 가족사가 부모에게 입힌 상처를 아는 것은 곧 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부모의 차가움, 비판적인 태도, 공격성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 사건을 알면 자기 고통뿐 아니라 부모의 고통도 이해하는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나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고, 적어도 나의 탓만은 아니라고 위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끊어졌던 관계를 복구하는 일이다. 저자가 언급한 치료 방법을 활용해봄으로써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긍정적인 성장 경험으로 삼아보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고난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강인함과 회복탄력성의 유산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이들이 극복하는 길에 한 걸음 다가가고, 가족과의 관계 개선에 도움을 얻어 나와 아이에게 건강한 감정적 유산을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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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3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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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목소리와 인성, 삶과 얼굴과 눈빛, 그 민낯의 모든 것!

사랑과 육아, 철학과 예술, 일상이 투쟁이 된 크나우스고르적 문학!

 

 

  끊임없이 삶을 반추하고 가감없이 일상을 드러냄으로써 치열한 자기 고백의 글쓰기를 완성한 노르웨이 문학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이 어느새 3권에 이르렀다. 1권이 아버지와 죽음의 존재론적 가치를 탐구하는 것이었다면 2권은 사랑, 결혼과 같은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3권은 2권에서 맺지 못한 이야기의 연장선과 같았다. 벌써 세 권에 달하는 작가의 글을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이야기는 너무 적나라해서 거침없고 때로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의 이토록 사적인 이야기에 계속해서 열광하게 되는 것은 오롯이 작가 개인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눈앞의 현실과는 다른 장소, 다른 시간,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나는 그 누구도 아니며 그 어떤 사람도 내가 될 수 있는 곳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책’이라고 하였다. 즉, 국경을 초월하고 세대를 초월하여 너와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 그것이 <나의 투쟁>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를 낳고 육아를 경험한 부모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일상의 기록들이 퍽 친숙하게 여겨진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남녀가 하나가 되어 유전이라는 놀라운 자산을 잉태하고 낳는 일은 부부에게 꽤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 부부는 그간의 경험 이상의 많은 생각과 예민한 감정들을 주고받는다. 뱃속에 아이가 들어선 것을 굳이 확인해보지 않았는데도 예민한 직감이 앞섰던 그 미묘한 기분, 조금 무리하거나 배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 혹시나 아기가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 누구를 더 닮았을까, 손가락과 발가락 모두 이상 없이 건강하게 나오기를 바라는 간절함 등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작가 또한 여지없이 마주하곤 했다. 특히, 출산에 임박하여 조마조마한 마음이나 아기가 핏덩이 같은 모습으로 울음소리를 내며 엄마의 가슴팍에 얹어질 때의 그 느낌이란. 마치 세상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다던 작가의 표현은 충분히 공감된다.

 

 

왜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만 최악의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아니, 꼭 그렇게 생각할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침대 위, 린다 옆에 누워 그녀의 배 위에 손을 얹고, 이젠 더 움직일 공간도 없이 자라버린 배 속의 아이를 떠올리니, 실제로 한 생명이 배 속에서 사라져버리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나긴 하니까. 그렇다면 그 작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옳은 일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매사에 조심하는 일은 절대 부끄럽고 민망해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도움이 될 일이 아니었던가. 오히려 타인에게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고 되는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더 부끄럽고 민망해할 일인 것이다. / 80p

 

아이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두피에 붙어 있었다. 피부는 잿빛에 가까웠고 왁스를 칠해놓은 것처럼 미끌거렸다. 아이가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그것은 바로 내 딸이 우는 소리였다. 나는 세상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은 정적으로 휩싸였고, 어둠 속에 가라앉아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조산원, 인턴, 린다, 나 그리고 우리의 작은 아기. 빛은 거기에 모여 있었다. / 100p

 

 

  하지만 그 충만한 감동과 환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육아라는 피로감을 몰고 오기도 한다. 육체적인 것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이와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맞은편에서 줄을 맞잡고 밀고 당기는 정신적 피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아이를 통제할 수도 그렇다고 마음껏 원하는 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빵긋빵긋 웃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심사가 뒤틀려서 으앙 울어대면 어처구니가 없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공황상태가 되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몸에 새겨진 기억과 감정은 대물림된다고 했던가, 자신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던 작가처럼 때때로 고스란히 유전되는 감정적 유산으로 인해 불쾌해질 때도 있다.

 

 

린다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나는 린다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가 식탁 앞에 앉아 음식을 던지고 흘린다 해도, 이론적으로 본다면 아이가 아무거나 잘 먹고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바닥에 흘릴 때마다 그것을 바로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내 속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접시 밖에 작은 빵조각 하나를 흘려도 참지 못하고 야단을 쳤다. 나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는 아버지를 향한 증오심이 숨어 있다. 그런데도 나는 왜 내 속에 있는 아버지를 끄집어내 아이에게 전해주려 하는가. / 148p

 

 

  아이를 키우다보면 나의 욕망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분명 사회적으로 능력 있던 사람이고, 또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에 매달리다보니 미루거나 접었던 나의 욕망들이 불시에 과잉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업을 마쳐야 하는 아내를 대신해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다 보니 글을 쓰고 싶은 간절함이 감정적으로 솟구쳐 오른다. 인간의 목소리 속에 담겨 있는 슬픔과 불만, 만족감과 기쁨, 우리를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을 건드려보고 싶고, 깨워보고 싶은 열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 던 김춘수의 <꽃>처럼 그는 언어를 통해 나에게로 와 의미가 되었던 것들을, 예술을 끊임없이 가까이 하고 싶은 작가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투쟁>은 나의 삶과 맞닿아 있는 주변의 모든 것들, 내게 있어 의미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담고 싶은 작가의 욕망 그 자체로써 결코 우연히 탄생한 것은 아니다.

 

 

숲의 의미는 내 속에 있던 것이다. 숲에서 의미를 찾는다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눈으로 한 번 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숲과 관련된 우리의 행위를 거쳐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무는 베어야 하고, 집은 지어 올려야 하고, 모닥불은 피워야 하고, 짐승은 사냥을 해야 한다. 이런 행위들은 내가 만족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는 내 삶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눈앞에 보이는 숲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 243p

 

 

  앞서 1권과 2권에 비해 확실히 3권은 보다 편하게 읽히고 책 전반을 아우르는 분위기도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공감대가 형성되는 일상적이고 친근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어서 그럴 것이다. 어쩌면 그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죽음과 상처들로 가득했던 1권에 비해 사랑으로 가족을 끌어안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정서적 안정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이 여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편,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에 하나는 친구 게이르와의 대화 내용이다. 게이르는 작가가 작품에 대한 견해 및 철학적 성찰, 삶의 존재론적 가치 등에 대해 유감없이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대이다. 거름망 없이 속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고, 그것을 받아주고 때로는 질타도 해줄 수 있는 친구가 흔치 않은 세상에서 꽤 의미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왜 우리가 그토록 겉으로 보이는 형식과 형태에 집착하는지 알아? 대화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강의하는 방식, 서빙하는 방식, 먹는 방식, 마시는 방식, 걷는 방식, 앉는 방식, 심지어는 섹스하는 방식 등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질과 방법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어. 사람들이 정상적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왜 고군분투하는지 아니? 상호관계가 맺어질 때 서로에게서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 바로 정상적인 형태와 정상적인 방식이 존재하는 지점이기 때문이야. / 323p

 

 

  이제 <나의 투쟁> 4권이 나아가는 지점은 어디일까. 세 권의 책을 통해 그가 살아낸 모든 시점에 머물러 본 듯한데, 번역되지 않는 책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어쩌면 다시 아버지의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3권 말미에서 어머니가 떠올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1권이 철저히 작가의 시점에서 마주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면 4권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새삼 흥미롭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이 싫은 전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관점이 차이를 작가가 어떻게 담아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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