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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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끝없이 반복되는, 탈출구 없는 인생 그 이후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독보적인 존재감, 독자적인 경계 어디쯤에 서 있는 작가, 김영하!

 

  한국 문단에 있어 가장 동경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김연수 작가와 김영하 작가라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로 두 작가는 다소 다른 지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는데, 김연수 작가는 전통적인 문법을 가장 소설가답게 단단하게 여밀 줄 안다면 김영하 작가는 문법 속에 자의식을 애써 투영시키지 않고 치밀한 듯 치밀하지 않은 듯 해체와 결합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독특한 문학 세계를 완성시킨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책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어쩐지 맹목적인 믿음 같은 게 있어서 작가의 신작 소설집『오직 두 사람』을 냉큼 구매했다. 역시나, 무려 7년 동안 쓴 7편의 단편 소설을 모아 출간하였을 만큼 출판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독자적인 존재감은 여전했다.

 

 

 

인생의 원점을 잃은 이들에 대하여

 

 

   7편의 단편 소설들을 아우르는 『오직 두 사람』은 끝없는 상실과 돌아갈 자리를 잃어버린, 인생의 원점을 잃어버린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하여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와 같은 명쾌한 해답이 있다면 좋겠는데 인생이란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의 연속인지라 매사 그것을 담담하고 성숙하게 견뎌내는 것만이 능사라는 듯이 말이다. 때문에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 것’으로 소설집을 갈무리한 작가의 말이 마음을 씁쓸히 휩쓸고 간다.

 

 

 

   7편의 단편 소설들은 대체로 가장 일상적인 곳에서 찾아오는 공포와 낯선 판타지의 기묘한 동거로 이루어져있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은 희귀 언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산악 지대의 소수민족 출신자인 언니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을 생각하며 현주는 자신의 상황에 투영시킨다. 현주는 앞선 희귀 언어 사용자처럼 아빠는 자신에게, 자신은 아빠에게 ‘오직 두 사람’이지만 ‘오직 한 사람’ 같은 존재로 서로만이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 유독 현주만을 편애하고 집착하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는 아빠이지만, 자신의 삶에 있어 ‘커다란 결락이자 중독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아빠를 향한 현주의 이중적인 감정은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듯한 기분을 같게 되는 것이다. 아빠를 잃어버린 것은 곧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으로의 진입을 의미함으로 이러한 상실이 그녀의 앞길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언니, 수학에 이런 방정식 있잖아요? 예를 들면 3x+4xy+6xyz=8이라고 해요. 그럼 좌변에서 x를 괄호 밖으로 빼낼 수 있잖아요? x(3+4y+6yz)=8. 여기서 x가 아빠예요. 아빠를 괄호 밖으로 빼내면 수식은 참 단순해져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빠가 어디로 사라진 건 아니에요. 수식을 잘 보세요. 괄호 밖에서 x가 모두를 가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 36p

 

 

 

   7편의 단편 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아이를 찾습니다』였다. 마트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의 상실감을 그린 작품으로, 무려 11년 동안 일상이 뒤틀리고 조각난 삶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아이를 찾아 헤매는 윤석의 처절한 모습이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아이를 잃었다는 자괴감에 조현병에 걸린 아내와 낡은 단칸방 생활 속에서도 잃어버린 아들만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던 그의 맹목적인 믿음 또한 조악한 인생사의 헛된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쓰라렸다. 특히,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 아이를 잃어버린 순간 아내인 미라가 표현한 공포는 너무나 일상적인 곳에서 벌어졌기에 더욱 섬뜩했다.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이 매장 안으로 벌써 세 번째 울려퍼졌다. 반향은 없었다. 방목하는 양떼처럼, 수백 대의 카트들이 매장 안을 평화롭게 소요하고 있었다. 미라는 그들 사이로 헤치고 들어가 소리치고 싶었다. 왜 아무도 방송을 듣지 않아요? 여러분도 아이가 있잖아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 48p

 

 

십 년간 그는 ‘실종된 성민이 아빠’로 살아왔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그것이 끝나버렸다. 행복 그 비슷한 무엇을 잠깐이라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불행이 익숙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하지? 그는 한 번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민이만 찾으면, 성민이만 찾으면. 언제나 그런 식이었지 그 이후를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퇴행성이라는 미라의 조현병까지도 씻은듯이 나으리라 생각했다. / 65p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작품은 탈출구를 없는 기이한 공간 속에 내던져진 이들의 이야기 <신의 장난>이다. 일종의 입사 테스트의 명목으로 연수를 온 네 명의 남녀가 느닷없이 ‘방 탈출 게임’에 휘말려버린 것인데, 어딘가에 힌트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탈출을 시도하려했던 시도가 무색할 정도로 이들은 오랜 기간 감금 상태에 이르고 만다. 이들은 방문에 온몸을 던져 부딪쳐도 보고, 속죄의 기도를 끊임없이 올리거나 자신들을 가둔 이들을 교란시킬 수 있을 만한 일들을 꾸며도 보지만 마치 영화 ‘큐브’처럼 끝없는 미로에 잠식당한다.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탈출구 없는 인생을 상징하는 듯하다. ‘정은은 그녀를 다독이고 태준은 다시 서성이고 강재는 철문으로 돌진하고…… 그렇게 그들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마지막 문장은 긴 여운을 준다.

 

 

 

“정은씨, 난 언제나 현재가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여기만 지나가자. 그럼 나아질 거야. 그런데 늘 더 나빠졌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나이가 어릴수록 더 행복했어요. 그럼 지금 이 순간도 최악이 아닐 수 있다는 거잖아요? 지금이 그래도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에서는 가장 젊고, 제일 괜찮은 순간일 수 있다는 건데…… 우리 모두 여기서 늙어가다가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처음 들어왔던 때가 그래도 좋았어. 그땐 젊었고, 희망도 있었다.” / 257p

이 외에도 <인생의 원점>, 제3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이들 역시 이 주제를 아우르는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역시나, 하고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은 뛰어난 가독성과 문학과 대중의 경계를 아우르며 특별한 지점에 위치해 있는 작가의 존재감이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는 점도 독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다음에도 그의 작품이 나온다면 나는 이번과 같이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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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셀프트래블 - 2017~2018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권예나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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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자연의 신비와 대한민국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대마도(쓰시마 섬)!

이 책 한 권이면 대마도 자유 여행 준비는 끝!

 

 

  한국과 일본 열도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여 거리상으로는 대한민국과 훨씬 가까운 나라, 대마도. ‘쓰시마’라고 불리는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이라고는 낚시 마니아들이 자주 찾는 곳 혹은 당일치기나 1박 2일 정도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다. 그러다 최근 나가사키 현의 ‘군함도’를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가 제작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우리의 슬픈 역사가 화제가 되었고, 대마도 역시 한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한 곳으로써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굳이 역사적인 의미를 주요 여행의 이유로 삼지 않더라도 대마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까운 이국으로 그 어느 곳보다 가볍게,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품은 수수한 매력이 돋보이는 곳, 대마도

 

 

   <대마도 셀프트래블>은 보다 가볍게, 그러나 알차고 실속 있는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가이드북이다. 일본정부관광국 광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계기로 일본에 관한 다양한 저서를 남긴 권예나 저자가 2017년 5월까지 지역별 맞춤 최신 정보를 담아낸 책이다. 대마도에 ‘대즈니랜드’라는 애칭을 짓고, 여행자의 외로움과 배고픔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신 현지 일본인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프롤로그를 읽고 있노라면 그녀가 지닌 대마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함을 느낄 수 있다. 덕분에 소소하지만 그만큼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여행지라는 생각이 앞선다.

 

 

 

   대마도 여행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기에 앞서 책의 ‘일러두기’를 읽어보면 한 눈에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요 정보의 큰 그림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미션과 인사이드 파트에서는 여행 전에 알아두면 좋을 만한 대마도에 대한 기본 정보에서부터 체험해보면 좋을 만한 매력적인 정보들을 소개한다. 오직 대마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요리에서부터 특산물, 쇼핑 목록 등을 비롯하여 대마도로 출발 전에 꼭 기억해두어 할 유의점이나 계절별 차림, 공휴일(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많음으로)과 축제 캘린더, 관광안내소와 영사콜센터와 같은 중요한 정보들도 다루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한국어를 발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섬사람들은 한국어를 잘 모르고 영어도 잘 통하지 않으니 번역 애플리케이션이나 기본적인 일본어 회화 등은 익히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꼼꼼한 조언 역시 아끼지 않는다. 이 외에도 당일치기 쇼핑 여행, 1박 2일 히타카츠-이즈하라 버스 여행, 1박 2일 렌터카 여행 등과 같이 테마별로 자유여행의 가이드라인을 선별하여 최적의 스케줄을 짜는데 도움을 준다.

 

 

 

 

 

 

  책은 크게 이즈하라, 미쓰시마, 도요타마, 미네, 가미아가타, 가미쓰시마로 나뉘는 대마도의 여섯 지역을 다루고 있다. 특히, 조선통신사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역사적인 명소가 몰려 있는 ‘이즈하라’는 대마도 여행의 1번지로 손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제안한 1시간, 2시간, 3시간에 이르는 코스별 노선에 따라 느긋하게 산책을 하다보면 구석구석 숨어 있는 명소와 수수한 작은 골목길의 매력을 보다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와 만송원, 최익현 순국비가 세워져있는 수선사는 꼭 가보고 싶다. 여행사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어느 분의 인터뷰에서도 소개하듯 톳과 오징어가 들어간 이 지역 대표메뉴인 쓰시마버거는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먹거리인 점도 잊지 말아야겠다. 빵순이들을 이끄는 제과점 ‘루팡’과 ‘와타나베과자점’ 또한 잊지 말 것!

 

 

 

Writer's Pick 쓰시마 명물 가스마키

빵순이, 빵돌이는 물론이고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가스마키는 부드러운 빵 안에 앙금을 듬뿍 넣은 쓰시마 명물이다. 안에 들어가는 앙금은 콩의 종류에 따라 색이 달라지지만 미각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맛의 차이는 크게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검은 앙금파와 흰 앙금파로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니 기왕이면 둘 다 먹어보자. 빵은 카스텔라 느낌으로 부드럽고 촉촉하다.

쓰시마의 과자점마다 가스마키를 파는데 빵과 앙금의 식감, 달콤함 정도에 차이가 있다. 후레아이도코로 쓰시마 옆의 특산품 판매점, 하치만구 신사 앞의 쓰시마물산관, 공항의 기념품 상점 등에 다양한 과자점의 가스마키가 모여 있어 한꺼번에 둘러보며 구매하기 좋다. 특히 하나씩 예쁘게 포장한 가스마키는 선물용으로 그만! / 57p

 

 

 

   이 외에도 수수하고 작은 바다마을의 풍경이 은근한 감동을 주는 ‘가미쓰시마’, 대마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이곳을 대표하는 시설이 많이 몰려있는 ‘미쓰시마’, 일본 건국 신화의 비밀과 대마도의 절경을 누릴 수 있는 ‘도요타마’, 보석 같은 온천 호타루노유와 감동적인 일몰을 볼 수 있는 모고야 등 지나치기 아쉬운 명소가 숨여진 ‘미네’, 대마도의 청정 자연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가미아가타’를 소개하는 각각의 구성들은 대마도만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책에는 각 명소 및 식당, 숙박 업소 등을 소개할 때마다 선명한 사진, 주소와 전화번호, 입장료, 가는 길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니 코스 선택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앞서 가스마키를 소개한 것처럼 ‘Writer's Pick’ 으로 저자의 특별 코멘트까지 수록되어 있으니 이 책 한 권으로 대마도 여행은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Writer's Pick 다크 투어리즘, 도요포대

휴양과 관광이 아닌 역사적 사건, 재난, 비극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장소를 찾아가는 다크 투어리즘 혹은 블랙 투어리즘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 여행자가 들려볼 만한 대표적인 다크 투어 여행지는 군함도라 불리는 나가사키현 하시마 섬이다.

쓰시마는 여유롭고 느긋한 분위기의 섬이지만, 일본의 국경으로 은근한 긴장감이 있기도 하다. 식당 카즈에서 언덕을 조금만 오르면 도요포대를 만날 수 있다. 도요포대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대한해협 봉쇄를 목적으로 만든 곳으로 규모나 크기가 상당하다. 당시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거포였고, 실제로는 한 번도 발사한 적 없지만 일본은 도요포대의 위협 효과가 컸다고 본다. 그러나 강제노역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이 동원되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어 한국인 여행자 입장에서는 그냥 눈으로만 관람하긴 힘들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분위기가 음산하니 혼자서는 가지 말 것. / 89p

 

 

 

 

 

 

 

  이어 저자는 대마도의 매력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하는데, 버스 투어, 현지인 집에서 묵는 민박과 체험, 캠핑 즐기기, 소바 만들기, 느긋한 온천 여행, 쓰시마 액티비티 중 적어도 하나 정도는 골라서 경험해보면 좋음 직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배편 사용법이나 출입국하는 법, 시내교통이나 렌터카 이용하는 법, 기본적인 여행일본어, 독자들을 위한 다양한 쿠폰까지 함께 수록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알짜배기 가이드북을 읽은 느낌이다. 이 책에 읽다보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곳곳에서 여행자들의 매너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마도는 관광지임과 동시에 현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터전인 곳이므로 여행자들의 들뜬 마음을 앞세워 매너를 잊지 않기를 당부한다. 푸근하고 수수한 매력을 지닌 대마도,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면 이 책을 읽고 대마도 자유여행을 꿈꿔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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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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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아우르는 수작 중의 수작!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진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 이어 마침내 3부작인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가 출간되었다. 한층 두터워진 책의 무게감만큼이나 격동의 이탈리아를 온몸으로 통과해온 파란만장한 두 여인의 삶이 채 읽어보지 않아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사회 전체가 광란의 카니발을 연상케 했던 전편의 이야기에 이어 어느덧 중년기로 돌입한 릴리와 레누의 삶은 보다 더 시대의 흐름 속으로 복잡하게 얽혀 들어갈 것이라 예상되었다. 때문에 통속적인 듯, 그러나 통속적일 수 없는 이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가 3부작에 이르러 더욱 뚜렷하게 전면에 드러나리라는 것 또한 짐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짐작한 대로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우리가 이 거대한 서사를 넘어서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을 저울질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들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격변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아우르다

 

 

   전편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는 작가로서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한 레누와 폭력과 상처가 만연한 삶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릴라가 전혀 다른 길을 가는 데에서 마무리 된다. 이어 다음 편인『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분노가 독으로 가득 찬 고름으로 터져 나오는 것’ 같은 도시의 나폴리를 떠나는 삶을 택한 레누와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삶을 택한 릴라의 상반된 삶을 그려나간다. 즉, 레누는 ‘합리적인 이성의 세계’, ‘위대한 이상과 명문가에 대한 숭배와 원리원칙이 중요시 되는 세계’로 대변되는 약혼자 피에트로의 삶에 귀속됨으로써 빈곤과 병든 고향에서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반면 릴라는 햄 공장에서 단돈 10리라라도 더 받기 위해 영하 20도의 냉동고에서 일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장주의 추파와 고단한 현실을 살아낸다.

 

 

 

   덕분에 릴라와 레누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 이제 레누는 릴라로부터 벗어나야 할 때가 왔음을 느끼게 되고 보다 주체적이고 이상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녀는 정치적인 열정이 넘치는 지적인 사람간의 모임에서 자신의 소설은 보잘 것 없고, 자신은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마는 공허함에 사로잡힌다. 더군다나 결혼과 출산을 통해 부여된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료하게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 숨이 막힌다. 결국, 레누 역시 당시 신여성들이 오랜 학업의 대가로 자신들의 미래가 집안일에만 국한되지 않기를 바랐던 의지를 실행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상실감에 빠지고 만다. 문제는 뜻밖의 방향으로 해소되기에 이른다는 점이었다. 자유부인 놀음이라도 하듯 남편 몰래 다른 남자의 애정을 갈구하거나, 규율을 위반하고픈 충동을 느끼기도 하며 다시금 자신의 앞에 나타난 첫사랑 니노에게 보다 더 열정적으로 몸과 마음이 사로잡힌다.

 

 

 

   한편, 릴라는 조악하기 짝이 없는 햄 공장에서 일하면서 엔초와 매일 저녁에 컴퓨터 공부를 하는 것으로 삶의 위안을 얻으며 살아간다. 그러던 그녀 앞에 파스콸레가 나타나면서 우연히 그를 따라 노동의 현실을 각성시키려는 투쟁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거리는 노조를 세워서 노동 환경 개선에 앞장서려는 청년들과 그들의 행위를 방해하고 폭력을 가하는 파시스트 무리의 충돌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던 때였다. 그녀는 진짜 현실은 모른 채 노동계급이니 뭐니 하며 떠들어대는 나디아가 위선자처럼 보였고, 그곳에서 이들을 각성시킬 만한 냉담한 노동 환경의 현실을 규탄한다. 이후 그녀는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의 뜻을 모으고 지난한 착취의 현장을 고발하려 하지만, 한계에 봉착하면서 공장을 뒤로한 채 엔초와 새로운 삶의 여정으로 나아간다.

 

 

 

   이렇듯 소설을 읽다보면 이 두 여인과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삶은 그저 한 개인의 역사에만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든 것은 우리 고향 동네가 아니라, 나폴리가 아니라 지구 전체다”는 표현처럼, 소설 속은 이탈리아 혹은 외부의 세계를 아우르는 격변의 시대 속 상황을 곳곳에서 매우 상세히 묘사한다. 이탈리아 문화의 퇴보와 선거 후 정치판에 대한 분석, 사회민주주의의 패배, 학생 운동과 경찰의 탄압과 같이 이른바 의식 있는 청년들의 화두는 물론, 마리아로사가 주관하는 페미니스트 모임을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젖가슴을 드러내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정치에 목소리를 드러내는 실비아의 모습은 꽤나 강렬하다.

 

 

나는 그 젊은 여성의 모습에 동요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소란스러운 강의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보다 어리고 세련되어 보였는데 벌써 한 아이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었다. 하지만 육아에 힘쓰는 얌전한 젊은 어머니의 이미지를 거부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함을 치기도 하고 격렬하게 손동작도 하고 발언권을 요구하기도 하고 분노한 나머지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향해 멸시하듯 손가락질도 했다. / 86p

 

 

 

불안한 욕망의 그림자

 

 

   소설의 흐름상 아내로, 아이의 엄마로 성숙해진 두 여인이 중년기에 이른 만큼 개인적으로는 앞선 작품들보다 이번 3부작에서 보다 이입을 한 듯하다. 정치적 혹은 페미니즘적 색채를 떠나 이들 내면에 자리 잡은 불안한 욕망들이 수시로 개인사를 넘나들고, 이들을 선택의 기로로 내모는 광경들이 매우 흥미롭다. 특히나 레누처럼 한때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던 나로서는 가정에서의 역할이 사회적 욕망을 짓누르는 데에서 오는 상실감으로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하는 레누의 감정에 이입되고 말았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이 삶을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림자처럼 붙드는 또 다른 욕망에 특별하기를 바랐던 나 자신이 결국은 평범한 사람이 지나지 않음을 느껴야만 했던 그녀의 좌절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시 내가 자주 사용했던 표현처럼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내가 그 일을 경험하고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것도 아니라면 비록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직도 비이성적일 정도로 고집스레 모든 타협을 거부하는 릴라를 내 기준으로 삼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릴라와는 모든 면에서 달라진 지금에 와서도 릴라가 행동반경을 스스로 고향 동네에 국한시키지 않고 나와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면 릴라가 행동했을 법한 일을 하고 릴라가 했을 법한 말을 했던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 346p

 

 

무엇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사로잡았지만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원했다. 그 무엇인가가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동안 무엇인가가 되기는 했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뚜렷한 대상도, 진정한 열정도, 확실한 야망도 없이 말이다. 릴라는 중요한 사람이 되는데 나만 혼자 뒤처질까봐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뭐라도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바랐지만 릴라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 495p

 

 

 

   결국 레누는 그림자처럼 들러붙었던 욕망에 전도되어 니노에게 다시 사로잡히고 만다. 어쩐지 그 결말이 그리 아름답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그간 갈망해왔던 남자에 대한 사랑을 쟁취함으로써 레누는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마지막 4부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앞서 1부작인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릴라를 예고했던 만큼 릴라의 삶에 또 어떤 격변이 일어나게 될지도 궁금하다. 얼른 4부작이 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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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베스트 123 - 유럽에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
정보상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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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만큼 보이는 알짜 여행을 위한 트래블 스토리!

후회 없는 유럽 여행을 위해 엄선된 베스트 여행지 123!

 

 

  해외 여행지를 선택할 때 저마다의 기준이 있겠지만, 가장 이국적인 정취 속에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설렘을 느껴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이를 충족시킬 만한 곳은 단연, 유럽이 아닐까. 배낭 하나 둘러매고 혈혈단신으로 떠나기는커녕 여행사 패키지 일정에 맞춰서 떠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사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고 싶은 꿈의 여행지다. 유럽을 여행지로 삼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가 있다면 수십,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유서 깊은 역사지와 고전의 미학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예술 및 문화 관광지가 그 어느 곳보다 잘 발달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유럽여행 베스트 123>은 여행 가이드북의 성격을 지니기보다 여행지에 얽힌 스토리와 테마에 집중하여 기획된 책이라 더욱 관심을 끈다. 무엇보다 여행지 선별에 대한 눈을 기르고 여행에 대한 목적을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에 보다 특별하다.

 

 

 

유럽 10개국 123개 베스트 여행지를 담다

 

 

   <유럽여행 베스트 123>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터키에 이르는 유럽 10개국 속 최고의 명소 123개를 엄선한 여행책이다. 여느 여행 가이드북처럼 교통, 숙박 등과 같은 실용적인 정보를 담기보다 여행지에 얽힌 유래와 역사, 관광 포인트, 반드시 알아두면 좋을 정보 및 생생한 사진들을 수록함으로써 ‘여행은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저자의 의도에 더욱 충실하고 있다.

 

 

 

   유럽 10개국 중에서 가장 서두에 수록된 나라이자, 이 책에서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소개하고 있는 곳은 바로 스페인이다. 문화와 예술, 유흥을 즐기는 정열의 도시답게 책에서는 역사와 건축, 예술의 향기가 느껴지는 스페인만의 명소와 정취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를 테면 최초의 근대소설이자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로 알려져 있는 『돈키호테』의 주인공 동상이 있는 스페인 광장과 가우디의 독특한 건축미를 느낄 수 있는 구엘 저택, 성가족 성당, 그라시아 거리의 카사 밀라 외 피카소를 느낄 수 있는 리베라 거리 내 피카소 미술관 등은 도시가 품고 있는 예술적 가치를 완연히 담아내 여행자들의 마음을 이끈다. 그간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각 도시가 품고 있는 유서 깊은 역사와 웅장한 건축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가장 가보고 싶은 유럽 여행지 1순위에 선정하고 싶을 정도가 되었다.

 

 

 

프라도 미술관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에스파냐 왕가의 컬렉션이 있는 곳이 바로 프라도 미술관이다. 이곳은 루브르,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이라 불린다. 소장하고 있는 회화가 약 9,000점을 넘는데, 이렇게 방대한 컬렉션 대부분은 역대 에스파냐 왕실의 컬렉션이다. 미술관 안에는 프라도의 3대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를 비롯하여 무리요, 리베라, 수르바란 등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또한 16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파의 거장 티치아노, 15세기 네덜란드의 보스 등 에스파냐 왕실과 인연이 깊은 지역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이 있다. / 26p

 

 

 

   사실 그간 가고 싶은 유럽 여행지 1순위는 단연, 프랑스였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 같은 이곳 중에서도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두말할 것 없이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루브르 없는 프랑스는 상상할 수 없다던 저자의 글처럼, 나 역시 루브르는 언제고 꼭 가고 싶은 곳임에 틀림없다. 한 작품 앞에서 10초씩만 감상한다 하더라도 꼬박 35일이 걸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라 하니 그 압도적인 분위기를 꼭 느껴보고 싶다. 이 외에도 도심 안에 시인 보들레르와 같이 유명한 철학가와 문학가가 잠들어 있는 묘지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한편으로는 루브르 광장, 콩코드 광장, 샹젤리제, 개선문 등과 같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풍경 뒤에 이런 사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민과 농민들이 착취를 당해야 했는지,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는 저자의 견해가 이를 숙연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나라인 로마와 바티칸 시티가 있는 곳, 이탈리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인 듯하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여행지는 물론, 메디치 가문의 권세가 느껴지는 우피치 미술관, 베키오 궁전, 시뇨리아 광장 및 미로처럼 발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 거닐어 보고 싶은 매력을 지닌 베네치아 역시 눈길을 끈다. 이 외에도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를 품고 있는 스위스, 고딕 양식 건축물의 웅장미를 한껏 드러내는 걸작 중의 걸작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는 영국, 세계적인 문학가 괴테의 고향 독일, 천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프라하 성이 있는 체코, 합스부르크 왕가가 자리 잡음으로써 유럽 최고의 미술작품들을 소유한 오스트리아,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공존하는 터키 모두 어디 하나 놓칠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

 

 

 

 

 

 

 

 

유용한 알짜 정보를 쏙쏙

 

 

   <유럽여행 베스트 123>는 마치 한 권의 세계사 책을 방불케 할 정도로 유용한 정보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어떤 유래를 통해서 해당 명소가 탄생되었는지, 그곳이 그들 나라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반드시 유럽 여행을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꽤 유용하게 읽힌다. 특히 흥미로운 사연이나 소소한 꿀팁을 담은 Travel Story와 Travel Tip은 번외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책의 말미에는 프랑스 파리에서만 파는 기념품 Best 6, 영국 런던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Best 5, 체코 프라하에서 꼭 경험해봐야 할 Best 6, 동유럽에서 꼭 가봐야 할 뷰포인트 Best 12와 같은 알짜 정보도 담겨 있으니 참고해볼만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저자의 설명과 잘 어우러진 생생한 사진들인 듯하다. 마치 화보를 보듯, 그곳을 직접 보고 있는 듯 각 지역의 정취를 그대로 담아낸 사진은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유럽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여행지를 계획하기 전에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본다. 여행의 목적과 의도를 구체화하는데 아마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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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의 꽃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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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의 사슬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온 이들의 눈물겨운 생의 의지!

 

   1945년 8월 6일, 미국 폭격기가 최초의 핵무기인 “리틀 보이”를 일본의 히로시마 상공 580m에서 떨어뜨렸다. 원자폭탄을 장착한 에놀라 게이를 필두로 호위와 사진 촬영을 위해 출동한 나머지 2대의 공습기가 히로시마를 상대로 원자 폭탄을 투하한 것이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미국이 벌인 치열한 전투에 대한 결말은 원자 폭탄에 대한 항복으로 이어졌고, 조선은 해방을 맞았다. 만약 원자 폭탄이 아니었다면 일본의 항복을 앞당길 수 있었을까. 유무죄를 떠나 많은 조선인들에게 있어 미국의 이 같은 행위는 조선을 핍박한 일본으로 하여금 ‘응징의 대가’가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해방을 맞은 조선인들의 기쁨 이면에는 당시 히로시마에 살고 있던, 무려 7만 명에 이르는 또 다른 조선인들에게 잿더미가 된 삶이 존재하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유전처럼 대물림되어 그들의 2세와 3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더더욱 알지 못했다. <흉터의 꽃>은 원폭의 사슬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온 이들의 눈물겨운 생의 의지를 담은 소설로, 한국사가 미처 알려주지 않은 뼈아픈 상처들을 담은 가슴 시린 이야기이다. 북한 핵문제, 사드 배치, 미국 전술핵 재배치로 핵에 대한 잠재적 위기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오늘, 원폭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육성은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핵의 참극을 경고하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강렬하다.

 

 

 

흉터에 아로새겨진 그날의 참상 

 

 

   소설은 무명 소설가이자 교사인 정현재가 K를 만나 경상남도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린다는 뜻밖의 말을 듣는 데에서 시작한다. 장바닥에서 술에 취해 술꾼들과 드잡이를 하던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땅, 애증의 기억으로 가득 찬 그의 고향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린다는 말은 생소하기만 하다. 국내에 유일한 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들어섰을 정도로 합천에 유독 원폭 피해자가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 왜 합천 사람들은 일본 히로시마에 간 것인지 모든 것이 의문스럽기만 하다. 정현재는 이를 소재로 삼은 소설을 쓰기 위해, 자신 역시 의식 저편에 묻어두고 있었던 원폭 진료증을 가진 피해자 2세로써 그날의 참상을 마주하기 위해 원폭피해자복지회관을 찾아간다. 그는 얼굴에 심한 화상 흉터를 지닌 강분희 할머니에게서 그녀의 아버지 강순구가 가난에서 벗어나 식구들을 먹고 살리기 위해 히로시마로 이주하는 이야기를 듣는 데서부터 원폭 투하 당시를 복기해나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의 방사능이 악마의 숨결처럼 히로시마 곳곳으로 무섭게 퍼져나갔다.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는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강력한 열선으로 인해 옷과 살갗이 들러붙은 채 타버리며 죽어간 사람들의 몸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깨진 유리파편이 온몸에 박힌 채 울부짖는 사람들, 끔찍한 화상을 입어 피부가 누더기처럼 녹아내린 사람들, 내장과 눈알이 튀어나온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히로시마는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 40p

 

 

 

원폭지옥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들은 공포에 떨었다.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칼로 찔러 죽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또다시 죽음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들 귀국을 서둘렀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만 보면 죽이겠다며 몽둥이를 들고 쫓아왔다. 관동대지진 때도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워 조선인들을 무참히 살육했던 일본인들이었다. 우물에 독을 탔다는 누명을 씌워 조선인들만 눈에 띄면 죽창으로 닥치는 대로 찔러 죽이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미국이 투하한 원자폭탄에 처참하게 당한 분풀이를 애꿎은 조선인들에게 하고 있었다. 일본에 남아 있다가 언제 개죽음을 당할지 몰랐다. / 70p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은 수많은 일본인과 죽지 못해 그곳으로 이주해온 조선인들의 삶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비명과 신음이 빽빽한 밀림 같은 곳에서 부패한 시체들이 들끓고, 산 자와 불타는 시신들의 혼이 유령처럼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듯한 히로시마의 풍경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그날의 참상은 생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생생한 것이어서 차마 마주하기 힘들 정도였다. 동철과 행복한 미래를 꿈꿨던 분희가 원폭으로 인해 흉측한 얼굴을 얻게 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었듯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삶은 어떤 형태로든 짙은 상처를 떠안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결국 히로시마를 뒤로하고 고향인 합천으로 강순구 일가는 돌아오게 되지만, 그들을 맞이하는 건 가난과 원폭이 남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잔해들뿐이다.

 

 

 

그는 원폭 피해자들이 감수해야 했던 사회적 차별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은 일본 원폭 피해자들과 달리 삼중고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식민지 백성으로 받아야 했던 차별과 고통, 피폭으로 인해 병든 몸과 경제적 곤궁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 자식들이 받을 불이익에 대한 걱정으로 그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왔기 때문에 원폭 피해자들의 피해의식이 남달리 컸다는 것을 깨달았다. / 209p

 

 

 

  무너진 생에 의지를 일으키다

 

 

   강분희 할머니의 이야기는 나아가 딸인 박인옥에게로 이어진다. 어릴 적부터 하반신에 힘이 없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퇴부무혈성괴사증을 앓게 되는 그녀의 고통은 원폭의 피해가 2세와 3세에게 대물림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시 원폭의 참상을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남았으나 오래 살지 못했고, 유전이라는 형태로 그들의 자식들에게까지 전이되어 아픔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었다. 훗날 박인옥은 원폭 2세 환우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려 노력한 김형률을 만남으로써 일대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고, 전쟁은 끝났으나 여전히 피해자들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용기 있는 시도들을 해나간다. 그간 정현재에게 있어서도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이란 마치 잊고 싶은, 외면하고 싶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맞닿아있는 불편한 존재였다. 그는 강분희와 박인옥이 겪은 험난한 삶의 여정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생의 의지를 보고서야 드디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딸을 인정하게 된다.

 

 

 

“원폭 2세 환우 문제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사회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 동안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도록 강요당해왔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의 차별적인 피폭자 원호 정책으로…… 인권이 유린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드는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 국가와 사회에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소외와 차별을 받는 것은…… 또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의 폭력을 당하는 것이며…… 인권유린을 당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 428p

 

 

 

   현재 히로시마는 71년 전, 원폭이 터진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명의 힘을 발산해내고 있다. 시체더미와 잿더미가 뒤얽힌 죽음의 땅에서 푸른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광경을 지켜보는 정현재의 모습을 통해서, 흉터가 꽃이 되어 빛나는 아름다운 과정을 목격한 것만 같다. 이 소설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화상 자국으로 얼룩진 분희의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분희 그 자체로만 바라봐주었던 동철의 빛나는 사랑과, 원폭의 피해자 가족이라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옥의 아들 진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현서와 같은 존재들에 있는 듯하다. 인간이 하는 행동 중에 가장 어리석고 끔찍하고 추한 것이 바로 전쟁이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사랑이 아닐까, 오직 사랑만이 원자폭탄마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세계 핵무기가 만 오천 기가 넘는다면서? 그것뿐이겠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원자력 발전소는 어떻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제일 높다면서? 북한 핵문제에다 사드 배치, 미국 전술핵 재배치 주장까지 나오는 판국이잖아.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몰라. 대한민국은 핵의 나라야. 우리 모두는 핵을 머리에 베고 살고 있어.” / 414p

 

 

 

   K의 말처럼 우리는 잠재적인 핵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느닷없이 찾아온 원폭이라는 재앙 앞에서, 그날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겪어야 했던 많은 사람들처럼 우리 모두는 핵을 머리에 베고 있다는 그의 말을 허투루 듣고 넘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위안부 피해지 할머니와 소녀상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원폭의 상처를 위로할 수 있는 사회적인 관심과 인도적인 지원이 더욱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이상 흉터가 흉터로써만 남지 않도록. 흉터도 꽃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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