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한한 우주를 건너 서로를 만났고 이 삶을 함께하고 있어 - 펫로스, 반려동물 애도의 기록
최하늘 지음 / 알레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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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온 우주를 건너 내게 온 선물 같은 존재야!

펫로스 심리상담가가 전하는 펫로스, 반려동물 애도의 기록!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반려동물에게 곁을 내어주고 교감을 나누었던 나날의 감각을 기억할 것이다. 손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보드라운 털, 품속을 파고드는 따스한 온기, 때로는 반려인의 기분과 마음까지 헤아리고 있는 게 분명한 듯한 눈망울까지. ‘반려’란 삶의 동반자를 의미한다. 우리가 가까이 두고 기르는 동물에게 ‘반려’라 이름붙이는 이유는 그만큼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긴밀하고도 각별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허물없이 나의 품을 내어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존재. 따라서 반려동물의 죽음은 누군가에겐 ‘매일 함께하던 일상의 상실이자 무조건적인 사랑의 상실’일 수 있다. 반려동물이 내 삶에 이토록 큰 자리를 차지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감당하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무한한 우주를 건너 서로를 만났고 이 삶을 함께하고 있어』에서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고 상실을 경험한 이들은 정상적인 일과를 제대로 해낼 수 없을 만큼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깊은 통증을 호소한다. 이를 펫로스 증후군(반려동물 상실 증후군)이라 하는데, 국내 최초의 펫로스 심리상담사인 저자는 슬픔 속에서 애도의 시간을 보내는 반려인들의 이야기를 엮으며 소중한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고통을 어떻게 견디는지, 슬픔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세밀한 과정을 기록한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거나 반려동물의 죽음과 이별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라면 치유와 회복이 모두 담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네가 내 삶에 남긴 자국을 잊지 않을게



  소중한 존재를 잃는 것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지만 반려동물과의 사별은 사람과의 사별과 유사하면서도 분명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동물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여전히 공감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네가 예민해서 그래.” “자식 앞세운 부모도 있어.” 같은 표현들로 반려동물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는 감정을 과장된 것이라 치부하기도 한다. 때문에 반려인들은 치료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애도 반응에 혼란을 느끼거나 슬픔을 소화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편,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해 강한 책임감도 반려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유다. 이 책에서 대부분의 반려인들이 심한 죄책감과 자책으로 자신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슬픔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반응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듯하다. 우리는 슬픔을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과정’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애도의 과정을 통과함으로써 죽음을 이해하고 삶을 재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사랑하는 이를 잃는 고통 앞에서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난 아직 괜찮지 않아요.”

상담 선생님이 ‘힘들다는 걸 부인하지 말고 느껴보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 순간 나 자신을 받아들이며 편해졌다. 슬픔을 숨기려고 했던 나를 발견했다. 괜찮지 않다는 확인이 역설적으로 힘들 때마다 위안이 됐다. 다시 말해, 괜찮지 않다고 받아들인 것인 나를 괜찮게 만들어주었다. / 69p


자신의 소중한 존재를 끝까지 지켰고 강한 책임감을 발휘했다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평생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해왔기에 이러한 자아상의 변화는 획기적인 성과였습니다. 그 출발이 무엇이었든 간에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리라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 105p


살면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의식하고 인생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되었습니다. 주경진 님은 좋은 일을 계속해나가며 살아가겠다고 삶의 목적을 다졌습니다. 이는 마음속 존재인 사랑이가 알려준 것이며 자신이 적극적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경진 님이 사랑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스스로 발견해낸 성숙의 결과입니다. / 133p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별과 죽음 앞에서 우리가 어떠한 태도와 마음을 지녀야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 무한한 우주를 건너 우리가 만나 서로의 삶에 자국을 낸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내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슬픔과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분들에게 이 책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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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이기주의자는 행복하다
김규범 지음 / 대한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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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이기적 평등을 추구함으로써 나만의 질서를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중심을 나에게 맞추고 세상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법을 일깨우는 고전문학의 힘!






  “아무것도 안 믿어요.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듣겠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 노인의 언어에는 그 어떠한 체면도, 양식도 없다. 덕분에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흔들릴 때마다, ‘나’ 자신을 믿기보다 타인의 말에 의지하게 될 때마다 나는 조르바를 떠올리곤 한다. 자기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믿고,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이 영혼에게서 내 안의 ‘자유 의지’를 일깨우곤 한다.



당신의 마음속에도 ‘조르바’ 같은 존재가 있지 않나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데미안과 돈키호테가, 또 누군가에게는 시지프가 조르바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는 것’이라던 김규범 작가의 말처럼,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문학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길잡이가 아닐까 싶다. 『고독한 이기주의자는 행복하다』는 바로 이러한 고전문학 속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책이다. 삶의 중심을 나에게 맞추고,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으며, 진정으로 행복한 자아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이 책에 주목해보시길 바란다.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얻으며 오랜 시간 많은 독자에게 감동과 영감을 전한 책들입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야기인지, 작품을 집필한 작가의 이야기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승전결의 구성에 원인, 과정, 결과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 9p








모든 인간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의 시선과 기준은 항상 타인을 향하고 있다. 좋은 학교, 좋은 집, 유명한 회사와 같이 세상이 말하는 ‘좋은 것’을 좇고, 타인의 생각이나 시선에 비추어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경쟁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 우리는 늘 고통스러운 것이다. 책 『고독한 이기주의자는 행복하다』에서는 이러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기적 평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얼핏 보면 ‘이기적’이라는 표현과 ‘평등’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이 책은 우리가 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에야 진정으로 행복한 삶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책에서는 문학과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22편의 서양 고전문학 속에서 ‘이기적 평등’이라는 주요 메시지를 발견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통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되 시선은 평등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워본다. 또, 《돈키호테》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작품을 통해 세상엔 옳고 그름이란 분명한 기준은 없으며, 모든 인간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에 타인이 아닌 나만의 질서를 확립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싯다르타》라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얻을 사례는 남을 따르는 것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성공한 이에게 조언을 들어도 그와 똑같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것을 타인에게 가르쳐주어도 그가 나와 똑같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기본으로, 진정 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이라 불리는 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그것을 가지거나 그렇게 된다며 내가 진정으로 만족할 것인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 34p


스카웃: 차라리 이럴 거면 저 그냥 학교 그만 다닐래요.

애티커스 핀치: 무엇보다도 간단한 요령 한 가지만 배운다면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어. 누군가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말하자면 그 사람의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 걸어다니는 거지. / 69p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그 과정에 대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건, 다수가 뭐라 하건 내가 원하는 길이 최고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의 내적 갈등은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는 것, 구분으로 인해 발생한 대립, 대립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누가 뭐라 하건 자신의 선택을 믿고, 타인의 선택도 존중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혼란입니다. / 121p


나만의 질서라는 답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을 원한다면, 판단의 기준으로 ‘동심’을 제안합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으려 노력하고, 그것에 관한 판단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판단의 기준은 어릴 적의 내가 지금의 내 행동을 보고 부끄러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나에게만 특별히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렇기에 모두의 의견이나 행동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 136p






  헤르만 헤세부터 카뮈, 밀란 쿤데라, 니체에 이르기까지, 고전 문학 속에서 삶의 지혜를 길어 올리는 김규범 작가의 내공이 미덥다. 인생이라는 난제 앞에서 막막해질 때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고전들을 한 권씩 탐독해보시길 추천드린다. (여담이지만 <사월이네 북리뷰> 구독자로서, 계속해서 좋은 책 소개해주시고 다양한 인사이트와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응원도 함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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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24.5.6 - no.54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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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층위로 문학을 탐독하는 재미를 선사하는 격월간 문학잡지!

어쩌면 문학을 읽는 이유야말로 내 마음을 잘 돌보기 위한 게 아닐까!






  격월간 문학잡지 『Axt』 54호의 주제는 ‘셀프 돌봄’이다. 지친 일상을 살아내는 힘을 기르기 위해 나의 몸과 마음을 살피고 돌보는 일. 이를 테면 덕질과 워라벨, 명상과 필사로 나의 안녕을 구하는 일. 그러나 자기를 돌본다는 것은 내부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과 마음을 살핌으로써 나의 외부를 구성하는 세계와 건강하게 관계를 맺는 일이기도 해서, 결국 ‘셀프 돌봄’이란 상호 돌봄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보면 이번 54호는 셀프 돌봄을 화두로 삼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상호 돌봄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다룬 문학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런 저 역시 생활의 모든 부분을 혼자서 잘 해내지는 않아요. 늘 가까운 사람들과 상호 돌봄을 주고받고 있죠. 나에게 좋은 것을 주는 상대를 알아보고, 그 상대를 저도 잘 모시면서 인생이 흘러가요. 그들이 평안해야 저도 평안하고 그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렇게 연결된 관계를 가꾸는 일도 셀프 돌봄과 아주 무관할 수는 없다고 느껴요. / 이슬아 인터뷰 중에서 20p



나 그리고 너, 우리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54호에서는 우리 시대의 문학 아이콘인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를 필두로 다양한 층위의 돌봄을 사유하는 issue, 셀프 돌봄의 시점으로 읽어본 소설 『마션』에 대한 비대면 채팅 chat이 눈길을 끈다. 특히 자급자족 화성 생존기에 가까운 소설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를 통해 ‘셀프 돌봄’(혹은 생존)의 주요 요소로 ‘유머’에 주목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화성에 고립된 주인공 마크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신적 괴로움을 유머로 곧잘 승화하곤 하는데, 이에 대해 이유리 소설가는 셀프 돌봄이라는 단어의 이면에 존재하는 쓸쓸함과 고독함을 지적하며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자기만의 유머 감각을 찾고 단련할 필요가 있음을 의식한다. 비록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앓고 있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해결해주지는 못할지라도, 때로는 유머가 힘든 상황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해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나는 유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비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저는 『마션』을 읽으면서 ‘유머’라는 키워드에 집중해보면 좋겠다 싶었는데요. ‘셀프 돌봄’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사실 쓸쓸함과 고독감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에게 챙김받고 싶다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어떤 욕구를 배제했다는 면에서도 그렇고요. 그럴 때 필수불가결한 것이 웃음, 유머이지 않을까요? 마크 와트니도 정신적 괴로움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것처럼 보였어요. ‘셀프 돌봄’의 비중이 더 커지고 있는 현대사회에 누구나 자기만의 유머 감각을 찾고 단련하는 방법을 알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 43p


『마션』뿐만 아니라 예술작품 속 고립된 환경에 놓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자만의 왕국을 꾸리기보단 어떻게든 사회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결국 ‘셀프 돌봄’은 스스로를 잘 가꾸고 살아남아 타인과의 교류 속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일 수 있을 듯해요. / 45p








  이번 호에도 다양한 단편작들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 ‘기생’하는 불완전한 신체를 지닌 ‘기생 쌍둥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인상적인 현호정 작가의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 할머니의 사라진 돈 오천만 원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돌이켜보게 하는 백온유 작가의 <반의반의 반>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연작 소설인 전예진 작가의 <매점 지하 대피자들> part 2는 현실에서 도피해 지하로 들어간 사람들을 통해, 삶은 그 자체로 ‘공포’라는 기묘한 감각을 선사하며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영혼이 몸의 물결에 발을 담그듯 나는 다른 누군가와의 결합을 통해 여기로 왔다. 그 결합은 불균형적이고 비대칭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미확정적이었다. /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 현호정 작품 중에서 136p


오천만 원은 현진의 꿈에서 자꾸만 어떤 가능성이 되었다. 스무살 현진의 대학 등록금이 되기도 했다가, 스물두 살 때 사정이 어려워 포기해버린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유학비가 되기도 했다. 그 돈을 보태 작은 원룸에 전세를 얻어 독립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둑맞은 금액의 반의반만 있어도 지금보다는 행복할 텐데. / <반의반의 반>, 백온유 작품 중에서 189p


두려운 것은 늘 사람이었다. 교실에 앉은 그에게 책상을 집어 던지던 사람, 대뜸 위협적인 말을 내뱉던 사람, 동료를 불러 그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게 하던 사람,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언제든 누군가를 찌를 수 있는, 그게 사람이었다. / <매점 지하 대피자들> part 2, 전예진 작품 중에서 248p








  나는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야말로 내 마음을 잘 돌보기 위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를 읽고, 이해하고 사유한다는 것은 결국 나와 나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들을 보듬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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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무 무지개 택배 3 - 수상한 주문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박현숙 지음, 백대승 그림 / 우리학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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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고 나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알아가는 무지개빛 판타지 성장 동화!





무료 택배! 골목 안으로 100미터

무엇이든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배달해 주는

무무무 무지개 택배

(13세 이상 고객의 택배는 접수하지 않습니다) / 7p



  웬 아이가 골목 안을 기웃거렸다. 골목 끝에 다다르자 ‘무무무 무지개 택배’라는 커다란 입간판과 함께 화려한 고층 건물이 버티고 서 있었다. 출입구에 들어서자 자신을 왕 대장이라고 소개하는 남자가 아이를 반겼다.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왕 대장은 무지개 택배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간 갖가지 물건을 접수해 배달해 왔지만 마음을 택배로 보낸다는 고객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무엇이든,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배달해주는 무무무 무지개 택배지 않은가! 접수 완료! 과연, 무무무 무지개 택배는 아이가 전하고픈 소중한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여러분 뒤엔 그림자가 잘 붙어 있나요?




  『무무무 무지개 택배』 3권에서도 주인에게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고 버려진 그림자들이 무무무 무지개 택배로 접수된 배달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자신의 주인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무지개 택배원들 중 유난히 키가 작고 왜소한 만지는 좋아하는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해달라는 택배 임무를 부여받지만, 택배 상자를 잃는 것도 모자라 오해를 받고 경찰서에 불려가게 된다. 게다가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리면서 주인에게 돌아갈 길은 오히려 멀어지기만 할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만지는 한 순간의 유혹에 빠져 그림자인 자신을 팔아버린 주인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이내 만지는 주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떨쳐내고 주어진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림자와 주인은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어쩌면 주인도 지금은 한순간의 실수로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엄청나게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처럼 『무무무 무지개 택배』는 내가 가진 것 중에 어느 하나 보잘것없는 것은 없다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소중히 여기는 법의 중요성을 그림자 택배원들의 성장과 분투를 통해 일깨워준다. 아울러 내가 가진 부족한 부분이나 상처까지 보듬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내면은 더 단단해지고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아니야, 아니야. 왕 대장이 주인을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말라고 했어. 주인도 한순간의 실수로 나를 잃어버리고 지금 엄청나게 힘든 일을 겪고 있을 거라고 했어. 나와 주인은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고 했잖아.’

만지는 고개를 저어 미움과 원망을 떨쳐 냈다. / 57p


“곧 예전의 네 성격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앞으로는 무엇이든 너의 일부를 사탕 따위랑 바꾸지 마. 아무튼 나는 배달을 완료해야 해. 네 부탁을 못 들어줘서 미안하다.” / 125p








  이번 3권에서는 ‘마음’을 택배로 전한다는 설정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쑥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말들, 누군가를 좋아하지만 전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떠올리게 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덕분에 자신의 마음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 또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또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내면에 어떤 고민과 상처들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어른들은 이해하고, 아이들은 공감할 수 있어 특별하다. 감동과 교훈, 흥미진진한 모험담까지, 어린이 독자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 동화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이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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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2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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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욕망 그리고 억압의 설계도를 피라미드에 정교하게 축조해낸 작품!

이스마엘 카다레라는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어 반갑다!





  이스마엘 카다레의 소설 『피라미드』는 기원전 2600년경, 새 파라오 쿠푸가 자신의 피라미드는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왕궁의 점성가와 최측근 대신들은 마치 재앙의 소식이라도 들은 양 낯빛이 어두워진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그토록 상심할 만한 일이란 말인가? 마치 내 피라미드가 아닌 그대들 자신의 피라미드를 두고 괴로워하는 것 같군!’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굳어 있는 쿠푸에게 대제사장은, 역설적이게도 피라미드가 파라오의 힘이 약했던 위기의 시대에 구상된 것이라 주장한다.



  너무나 풍요로웠기에, 너무도 안락했기에 파라오의 권위에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들을 억압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했던 과거의 파라오들은(어쩌면 그 측근들까지) 가장 눈에 띄면서 상징적인 건축물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잊을 만큼 밤낮으로 몰두할 수 있는 것, 언젠가는 마무리되는 동시에 절대로 끝나지 않는 무엇이자 영원히 되풀이될 수 있는 것. 그렇게 군중을 지배하고 정신을 우매화하고 의지를 꺾어놓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 바로 피라미드였다.



정상에 다다르기 위한 끝없는 욕망과 우울



  “피라미드를 만들겠노라. 가장 높은 피라미드. 더없이 웅대한 피라미드를.”

  결국 더없이 웅대한 피라미드를 짓겠다던 쿠푸의 선언은 이집트 전역에 불길한 피의 바람을 몰고 온다. 그 옛날, 피라미드를 처음 만들던 시기부터 누구나 알고 있는 기정사실이 있었으니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절로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거친 노역과 학대, 처형에 대한 공포, 돌 한 단 그리고 또 한 단이 쌓여갈 때마다 솟아오르는 중압감, 여기에 온갖 음모와 모독까지. “결국 우린 물구나무선 채 일하고 있는 거야.” 누구든,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건축물을 짓겠다는 집요한 열망이 오히려 모두의 삶을 거꾸로 매달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우두머리 석수 한쿠의 대사야말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설명한다.



“무엇보다 피라미드는 권력입니다. 폐하. 억압이요, 힘이요, 부이지요. 동시에 군중을 지배하고 그 정신을 우매화하고 의지를 꺾어놓는 무엇이며, 단조로움이요 소모입니다. 그러니까 지존이시여, 그건 폐하의 가장 든든한 보초입니다. 폐하의 비밀경찰이지요. 폐하의 군대고, 함대이고, 하렘입니다. 그 높이가 더해갈수록 그 그늘에 자리한 폐하의 백성은 미미한 존재로 보일 겁니다. 그 백성이 작아질수록 폐하의 위풍당당한 자태가 더욱 돋보일 테이죠.” / 17p

 


“아, 어머니, 무덤 하나를 만들다 제 삶을 마감해야 하다니요!” 같은 한탄(길게 늘어지는 그 어조는 듣는 이로 하여금 뭔지 모를 복잡한 감정에 빠지게 했다)이 새어나오게 되다니,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피라미드가 완성되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누군가 궁금해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상대가 받아쳤다. “이 딱한 친구야, 그다음 일이 자네와 무슨 상관인가? 그때 자넨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을 텐데!” / 53p

 


아침에 그 매끄럽고 완벽한 모서리와 면들이 차디찬 침묵 속에 빛을 발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저토록 숭고한 형체가 정말로 사람들을 주야로 짓이겨대는 그것이란 말인가? 어둠이 내리면 그 몸통이 조각조각 해체되고 말 것이 분명했다. 중심축에서 떨어져나온 단과 버팀돌, 그밖의 모든 돌들이 피와 진흙 범벅이 되어 엄청난 굉음과 혼란을 야기하며 달려들고, 사방에 죽음의 슬픔을 퍼뜨릴 터였다. / 105p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정작 쿠푸 역시 피라미드에 대해 양면적 감정을 느끼는 대목이었다. 그는 그것에 왠지 모를 끌림과 동시에 증오심을 느끼곤 했는데, 스스로 자기 소멸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혼란스러움 탓이었다. 그 배경에, 역사가들과 시인들이 완성했다던 아버지 스네프루의 사후 전기 속의 글귀가 분명 그를 자극했을 것이다. ‘스네프루의 낮. 그 낮이 가고 스네프루의 밤. 다시 스네프루의 낮. 그다음엔 다시 밤. 이어서 낮. 낮이 가고 스네프루의 밤.’ 모두의 삶을 갈아 넣어 쌓은 이 어마어마한 건축물 속에 고작 낮과 밤으로 끊임없이 재현되고 마는 얄팍한 죽음이라니….



  이처럼 『피라미드』는 전체정치의 잔혹함과 힘없는 자들의 무력함, 그 모든 것 앞에서 공허해지는 죽음의 허상과 실체를 ‘피라미드’로 상징화한 아주 특별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플롯이나 독자를 흥분케 할 만한 갈등 요소는 없지만, 권력과 욕망 그리고 억압의 설계도를 이 불가사의한 건축에 정교하게 축조해낸 작가의 남다른 필력이 돋보인다. 전체주의 체제의 악랄한 전략과 광기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우화적이고 위트 있는 표현으로 시종 기묘한 공포를 자아내는 점도 흥미롭다.




마법사는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그를 물끄러미 주시했다. 그런 다음 깊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라미드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폐하. 피라미드는 기다립니다.”

파라오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다.”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니야, 기다리지 않아!” / 123p






  이스마일 카다레는 알바니아 출신으로, 우리에겐 꽤나 낯선 작가다. 그래서 이 작가가 내게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선물해줄지 기대되는 마음으로 작품을 읽었고, 이 특별한 작가의 발견은 또 나를 흥분케 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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