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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나이

세상에서 제일 거칠것 없는 나이

세상에서 제일 막 나가는 나이

그게 바로 중학교 2년이란다.

오죽하면 북한이 못 쳐들어오는게 얘네들때문이라고 할까

사실 큰애도 내년에 중학교를 가는데 들리는 여러가지 흉흉한 소문들을 들으면 어찌 보내나 싶은 생각이 하루에 열두번도 든다.

초등학생을 키워본 엄마들은  그때는 한창 어린애들이라고 하고

중학생을 키워본 더 나이 든 엄마들은 중학생도 한창 아기들이라고 한다.

사실 나이 먹어 돌아보면 20대라고 내가 뭘 다아는 것도 아니었다.

법적인 성인이고 주민등록이 나왔을 뿐이지 우리가 철이들고 세상을 다 안게 아니었으니

아니 솔직히 20대에서 그 비슷하게 더 산 지금의 나이에도 아직도 내가 철이 들었다 세상을 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없는데

하물면 중학교 2학년이면...

문제는 돌아보면 그때 내가 참 어렸구나 하는 걸 알지만 막상 그 나이때는 이미 알거 다 알고 나도 클만큼 컸거든!!하는 마음이 더 컸던건 사실이다.

애들은 유치하고 어른들은 치사하고 세상은 부조리하고 학교는 공정하지 않다.

지들도 잘난거 없으면서 공부에 몰아치는 선생들도 같잖고 잔소리하고 내마음도 몰라주는 부모도웃기지도 않고.. 뭐 그런 나이

그래도 예전엔 그냥 그렇게 혼자 여기저기 좌충우돌하거나 몰려다니며 먹어대고 웃어대고 불만을 내기하듯 풀어내는 게 전부였는데 요즘은 다르다.

아이들이 더 많이 세상을 알아서.. 화장도 하고 남자도 만나고 게다가 왕따와 자살 등등 모든 문제의 집합체가 중학시절이라는 말들이 솔찮이 들려온다. 설마....

자살을 많이 하고 왕따가 심해지는 시기

교사들도 손을 놓게 되고 어른들도 눈치만 살피는 시기

그 무서운 시기가 다가온다.

사실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 저 철없는 것 되바라진것 나쁜 년 놈 해가며 욕하고 피하고 잔소리하고 나아가 때리기도 하면 그만이지만 그 시절을 지나는 이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이고 불안이고 전쟁이 아닐까 싶다

 

책의 주인공 스미레도 사실 평범한 여학생이다

그리 뛰어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지만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해야겠다고 결심도 하고 노력도 하고 그리고 친구도 사귀고 싶다. 당연하다.

그런데 맘대로 안된다.

그 시절로 돌아가 내가 그때 젤 고민한게 부모님이나 성적은 아니었고 친구관계였던거 같다.

어쨌든 고등학교는 진학할 정도 성적은 되고 가족관계도 무난하고 젤 힘든게 ㅇ친구다

더우기 여학생들의 그 복잡미묘한 여러가지등등 

 

 

 

여학생들은 그게 본능인지 모르겠지만 소속감이 없으면 무척 불안하다. 어딘가 그룹에 끼어 함께 먹고 웃고 떠들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또 거기에 끼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빠지지 않기 위해서도 전전긍긍해야한다. 나의 취향 나의 관심과는 상관없이 무리의 취향과 노선에 따라야 하고 거기에 맞춰 호호 웃기도 하고 뭔가 깨름칙한 짓도 서슴없이 할 수 있어야 하고

사실 지나고보면 유치하고 철없는 짓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절실한가

그룹에 끼느냐 마느냐는 내일 해가 뜨느냐 마느냐 늘이 무너지느냐 마느냐의 문제만큼 절실한 일이다. 누군가 함께 도시락을 먹을 사람이 없고 나와 수다를 나누고 하소연을 들어줄 누군가없다는 것 함꼐 화장실에 손잡고 갈 사람이 없다는 것  그건 황량한 사망게 뚝 떨어진것보다 더 불쾌하고 불안하다.

그런 서로의 불안을 함꼐 공유하면 좀 좋으련만

그걸 악용하기도 한다. 여기 들어오고 싶어 안달하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놀리고 될듯 말듯 애태우는게 그렇게 재미있을까

스미레도 그런 고통을 지나왔다

샤냐는 그 위기를 목숨을 담보로 하며 지나왔다.

 

자신들의 모임이 관계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그 시절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가 소녀들이고 가장 강하고 악랄한 존재도 소녀들이다.

내가 돋보이려고 누군가를 모함하고 위기에 빠뜨리고 상처주는 것 그리고 그건 장난이고 친해서 하는 짓이라고 하고..  그렇게 불안하고 위태로운 시기를 넘겨야 성장하게 되는건지...

 

노력은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중 2때의 나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노력해도 안될때 지나치게 고민하면 안된다. 좋아하는 간식이나 따뜻한 차라도 들면서 폭풍이 지나가기를 얌전히 기다리는 편이 낫다 퐁풍우는 금방 지나갈 테니까 절대로 리스트 컷따위를 해서는 안된다.

 

내년 내 아이가 스미레처럼 샤니처럼 위기에서 내게 손을 내밀면 나 어떻게 해야할까

어쩌면 당장 뭔가 절실한 아이에게 어떤 조언도 훈육도 도움이 안될 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배운대로 육아서나 교육치침서따위가 소용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고 맛있는걸 먹으면서 함께 버티는 것 견디는 것 그게 더 절실하지 않을까

그걸 과연 나는 할 수 있을지

 

어쩌다 중학생 엄마같은 건 되가지고 하이고 하이고 하면서 아이보다 더 동동거리는건 아닌지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모두 힘내자..

중학시절을 3년이면 끝이다. 그  기간이 아름다운 추억이될지 지긋지긋하게 지우고 싶은 기억이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시간을 비켜갈 수는 없으니까 피할 수 없으니 즐길 수 밖에...

내년이 기대되고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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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꽤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집에 계신 티비는 달랑 네개의 공중파만 나오는지라 캐이블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그저 그림의 떡이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때마다 하도 1997 1997 해대는 통에 도데체 뭔가 하고 보기시작해서 딱 4일만에 15화까지 다 마쳤다.

아.. 이런 재미난 드라마가 있었다니..

첨 드라마를 볼때는 알콩달콩한 로맨스보다는 그 깨알같은 시대의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보다보니 시원이와 윤제 사이가 참 오묘하다.

어릴적부터 허물없이 보아온 친구사이

나는 저 아이의 식습관 잠버릇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걸 세세하게 다 알고  상대의 첫 생리가 언제 터졌는지 어떤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어디에 빠져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아는 사이

내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울하면 옆에서 어꺠를 내밀어 주고 기분좋아 미치겠는 순간에 등짝을 팍팍 맞아주며 내 마음을 받아주는 사이..

아 흔한 구도로 친구가 언젠가 연인이 되는거구나..

그렇게 시작하고 봤는데 오묘한걸 발견했다.

윤제에게 시원이는 엄마가 아닐까?

윤제가 싫어하는 오이를 대신 먹어주고 자장면에 올라가 있는 완두콩을 대신 먹어주고

내가 빨던 빨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입으로 빨고 침을 뭍혀서 뭐 묻은거 때어주고

그건 연인이 아니라 엄마가 자식에게 해주는게 아닐까

어릴적 부모를 잃은 윤제에게 아마 엄마는 늘 부제중이었을테고 그 빈 공간을  어느새 시원이가 차지하고 메워주는 것이아닐까 했다.

시원이가 그렇게 윤제를 구박하고 떄리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굴어도 그건 친구나 연인이 아니라 엄마가 내게 하는 잔소리고 간섭이고 잘되라고 하는 매질(?)이고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윤제의 정서적 빈공간을 채워주는 사람 그 사람이 시원이고 그렇게 둘이 정을 쌓고 그게 사랑으로 변해간다.

 

열달동안 엄마의 뱃속에 있다가 나온 아이는 몹시 두렵다. 탯줄이 잘리고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 그때 첨으로 나를 안아주고 배고플때 먹을 것을 주고 기분나쁜 젖은 귀저기나 불쾌함 두려움을 울음으로 나타내면 귀신같이 알고 와서 챙겨주는 사람 그 사람이 엄마였다.

(그 엄마에게 모성이 자연스러운가 아닌가는 차후로 미루고 일단)

그런 엄마가 채워주는 정서적인 안정감은 아기에게 대단한 것이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고 빽이고 투정이나 화내는 것짜증내는 것 다 받아줄 사람

내가 나보다 더 편하게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엄마가 아이의 정서를 채워주고 나면 아이는 세상에 나설 용기가 생기고 또다른 세상의 문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열어젖힐수 있지 않을까

윤제와 시원이를 보면서 나는 두 사람이 연애를 하고 밀당을 하고 서로 마음을 몰라주고 그게 아니라 어쩌면 20년 가까이 그렇게 자기들도 모르게 서로 빈 정서의 공간을 채워주고 있는 엄마와 아들같은 관게구나 하는 걸 보았다.

시원이의 잔소리 니킥 무모한 고집이 윤제를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함께 주었던게 아닐까

책 썸네일

최근 읽었던 홍당무

그 소년도 불안하고  현실에 불만이 많은 엄마로 인해 정서적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한 소년이었다.

늘 속을 줄 알면서도 엄마말을 믿고 따르고 뭐든 시키는대로 하는 것도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아닐까 싶다. 채워지지 않은 내 정서의 빈공간을 어서 채워달라고 비어있어 지금 내가 몹시 불안하고 두렵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중이 아니었을까

지치고  임계점까지 화가 찬 엄마의 마음을 그스를까봐 자기 감정은 죽이고 담담하게 바라보면서도 자꾸 바라는 것

그도 빈 공간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참 자라는 내 아이들에게는 얼마만큼의 빈공간이 남아있을까

탯줄을 자르면서 부터 함께한 불안과 두려움을 나는 얼마나 달래주고 안아주었을까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주는 사람이 기준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기준이라고 했다

사랑이 아니라 배려가 그랬다는 건지 좀 모르겠다

주는 사람이 이만하면 충분하다가 기준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감사하고 이만하면 충분하ㅏ다고 느끼는 만큼이 진정한 충분한 배려고 사랑이라고

주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는 이만큼 주었는데 왜 반응이 없는가 왜 나에게 돌아오는 댓가가 없는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받는 사람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동정이거나 강요로 느껴질 수도 있단다

내가 이렇게 희생해서 너를 가르치고 기르고 돌보는데 너는 왜 그렇게 삐딱하게 나를 보고 나를 원망하니 내가 도데체 뭘 잘못했니? 나는 하느라 했다.

이런건 어쩌면 자식에게 족쇄가 되고 도망가고 싶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아이의 정서를 매워주면서도 쿨한 엄마

늘 아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조금은 거기를 두고 무심한 엄마

그 적당한 거리가 참 어렵다.

암만 생각해도 홍당무의 엄마 르픽부인은 홍당무를 사랑하는 방법이 홍당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닌걸 모르는 거같다. 그럼에도 자기 방식으로 사랑이라고 믿고 퍼부으면서 혼자 지쳐갈 그녀가 안쓰럽다.

나는 지금 나 혼자 일방적으로 사랑이라고 퍼부으면서 혼자 지쳐가고 있지 않나

사춘기가 된 아이는 그걸 지*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갑자기 불안하다.

딱 윤제에게 시원이만큼 되는 그런 사랑이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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