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늑대>로 알려진 마크 롤랜즈의 신작이다. SF 영화로 보는 모든 것 이라는 부제 외에는 아무 정보도 없다. 미리보기도 아직 안나왔다.  452쪽인데 1만6천원으로 가격은 착하다. 늑대를 개처럼 기르면서 쓴 <철학자와 늑대>가 전세계 16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고, 저자가 다소 까칠한 매력의 소유자라는 것 정도가 정보의 전부.


개 대신 늑대를 키우는 것처럼, 철학과 SF를 결합한 발상이 재미있다.









<속죄>를 쓴 이언 매큐언이 1995년에 쓴 작품. 그의 초중기 작품에해당된다. "현대 문명사회의 다양한 폭력과 인간 실존의 문제를 놀라운 지성과 세련된 언어 감각으로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매큐언의 이번 작품은 “거대한 사건들이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이 발현되는 상황”에 줄곧 흥미를 가져온 작가가 CIA와 MI6의 실제 합동작전을 소재로 1990년 발표한 네번째 장편소설이며, 2차 세계대전 직후 냉전하의 베를린에서 펼쳐지는 한 청년의 잃어버린 순수와 사랑을 그렸다."









70년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절제의 사회> 등 수많은 책을 썼던 세계적 사상가 이반 일리히가 돌연 사라져 연구에 몰두하다가 돌아왔다. 


P.6 : '현대화된 가난'은 과도한 시장 의존이 어느 한계점을 지나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가난은 산업 생산성이 가져다 준 풍요에 기대어 살면서 삶의 능력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풍요 속의 절망이다. 이 가난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창조적으로 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데 필요한 자유와 능력을 빼앗긴다. 그리고 플러그처럼 시장에 꽂혀 평생을 생존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게 된다.







 발터 벤야민이 어떤 경험과 공부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사유를 글쓰기의 형태로 정착시켰는지를 추적한다고 한다. 












만인이 그리워하는 작가 박완서가 2011년 향년 80세로 삶을 마무리하기까지 마지막 13년을 보냈던 '아치울 노란집'에서의 삶과 지혜를 담은 스테디셀러 산문집이다. 초판이 출간된 지 7년이 지난 2014년의 시점에서 새롭게 개정판으로 나온 <호미>는 그의 맏딸 호원숙이 어머니가 일구던 노란집 마당 정원을 직접 일구며 틈틈이 그려낸 40여 컷의 식물 일러스트를 수록하고 있다. (출판사 소개글)










이런 책 한권쯤 가질 사치를 했음 좋겠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동물 종과 화산, 북극과 남극에 서식하는 펭귄과 바다사자, 가마우지와 고래, 브라질의 악어와 재규어, 아프리카의 사자, 표범과 코끼리, 깊은 아마존 밀림에 사는 고립된 조에 족, 서 파푸아의 스톤 코로와이 족 수단의 유목부족 딩카 소 농부, 북극권의 네넷 유목민과 그들의 순록 떼 등을 담은 세바스티앙 살가도 제네시스의 사진집








비슷한 내용을 영화로도 본 적이 있는데.. 감옥에서 연극을 하는 내용이었는데...어쨌거나 실화라면 감동의 깊이가 다르다. 

출판사 소개글은 이렇다. 
이 책은 독방에 갇힌 한 무기수와 그에게 셰익스피어를 이야기해온 한 교수의 10년간의 실제 기록이다. 이제 겨우 30대에 들어선 래리는 10대에 살인죄로 기소되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고 10년 가까이 독방에 홀로 갇혀 지내왔다.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5학년 중퇴가 전부인 그는, 저자인 로라 베이츠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셰익스피어가 누군지조차 모르는 상태였으며, 깊은 절망에 빠져 죽음의 환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를 만나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인식하고, '진정한 자유'를 깨닫는다. 그는 10여 년 만에 독방에서 풀려나고, 같은 처지의 재소자들을 위한 셰익스피어 프로그램 워크북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AP, NPR, MSNBC, 디스커버리 채널 등 미국 국내외 유수 언론들의 주목을 받는다. 래리는 로라 베이츠 박사에게 고백한다. "셰익스피어는 제 삶을 구원했습니다"라고. 


목차를 보면 책의 내용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제1부 치열한 격전지
01 대의를 위한 전쟁은 없다: 이라크 유전과 가야의 철
02 누가 군대를 국가주의의 화신이라 일컫는가: 이라크의 미군 용병과 고구려의 유목민 용병
03 다이아몬드의 핏물은 빠지지 않는다, 수요가 있는 한: 전쟁 기획자들
04 시장, 전쟁을 도발하거나 억지하거나: 미국의 딜레마와 수제국의 참패
05 빈 라덴이 원한 것, 미 경제를 수렁으로 끌어들일 전쟁: 혈우병 환자 미국
제2부 달러의 그늘
06 무기를 팔 때는 분쟁국의 요구에 맞춰라: 무기산업의 악마적인 매력
07 자본은 정치를 움직이고 이권은 반란을 획책한다: 자본가의 국제정치
08 비단의 탐욕에 수는 멸망했고, 흔들리는 ‘달러’에 미국은…: 중국의 비단과 미국 달러
09 방탕한 왕자들, 뇌물을 좇아 세계시장을 누비다: 고려 충혜왕과 사우디 왕자들
10 패권화폐 그 허망한 영광을 경계하라: 화폐폭탄, 달러

11 제국의 번영은 ‘물고 물리는’ 대가를 치른다: 미 제국과 당 제국


 올해엔 필립로스의 책이 쏟아져 나오기로 작정한 해인가부다. 

 <포트노이스의 불평>이 2월에 나온 후 <미국의 목가>가 5월에,  <유령퇴장>과 <굿바이 콜럼버스>가 8월에 나왔고, 이번에 <전락>이 나왔다. 주로 정역목님이 번역했었는데, 이번엔 번역가가 다르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책. 

아버지』『신들의 봉우리』의 작가 다니구치 지로의 신작.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산책을 즐기는 한 초로의 남자의 이야기로, 그의 발걸음을 따라 에도의 풍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은퇴 후 에도의 구로에초(현 도쿄 고토 구 일대)에 거주하는 주인공은 매일 걸음 수를 세며 산책하는 것이 취미이다.하나 둘 걸음을 세어가며 사람들이 가득한 번화가나 골목길, 유서 깊은 신사, 산과 바다 등 에도 곳곳을 누빈다. 그의 산책은 날씨와 계절도 가리지 않는다. 봄에는 꽃을 구경하고, 여름에는 소나기를 맞으며 걷고, 가을에는 잠자리를 따르고, 겨울에는 쌓인 눈을 밟는 감촉을 즐긴다. 그의 발걸음마다 춘하추동 에도의 정취가 물씬 피어오르고, 독자들은 당시의 거리를 실제로 거닐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주인공은 길 위에서 거리의 상인, 떠돌이 하이쿠 작가, 어부, 만담가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생활상이 마치 지금의 일인 것마냥 생생하게 다가온다.(출판사 소개글)


2008년 ‘아라이 나미코(荒井なみ子)’상 수상작.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문화를 수탈, 흡수하여 발전해온 이스라엘의 모순과 기만으로 가득 찬 ‘점령 문화’의 실상을 생생한 실상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비인도적인 정책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해, 이런 일이 왜 계속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결국 이스라엘 사회 내부로 들어간다.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점령 정책, 차별적이고 인권 억압적인 시스템을 비판하는 자세를 명확히 하면서, 이스라엘 사회의 다양성을 그 내부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2003년에서 2005년까지 이스라엘에 체재하면서 관찰하고 관련 자료를 훑으며 고찰한 것에 힘입은 것으로, 출간 후에도 매년 현지를 방문하여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출판사 소개를)


프랑수아 기조는 책에서 ‘문명의 이해’를 역사가의 중심 과제로 삼으면서 전통적인 역사이해 방식을 혁신하고, 유럽 문명의 발전과정을 거대한 서사로 재구성한다. 유럽은 18세기까지 보편사의 한 부분에 머물러 있어야 했지만 19세기 들어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문명사를 갖게 되는데, 이는 분명 기조와 그의 『유럽 문명의 역사』 덕분이라 하겠다. (출판사 소개글)




움베르코 에코의 최근 글모음. 여기 저기 발표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글들이 실려있다. 

이미 읽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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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10-0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 연장되는 줄 알았습니다. 벤야민의 공부법,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등이
관심을 끕니다. 언제나 그렇듯 좋은 책은 쌓이고 어떤 때는 시간이, 어떤 때는 능력이,
어떤 때는 용기가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CREBBP 2014-10-01 18:06   좋아요 0 | URL
ㅎㅎ 희망사항입니다.
신간평가단 덕분에 신간 책구경하는 게 습관이 돼서요.

양손잡이 2014-10-01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크롤렌즈 신작은 이전에 출판된 SF 철학의 증보판이라고 생각되네요. 주제는 물론 표지까지 비슷... 철학자와 늑대보다는 좀 난잡한 책이었습니다.

CREBBP 2014-10-02 11:1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SF도 난잡하고, 철학이라는 주제도 사실 난해한데 서로 섞이니 얼마나 난잡할까요 ㅎㅎㅎ
 
왜 그런지 돈을 끌어당기는 여자의 39가지 습관
와타나베 가오루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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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돈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돈이 많은 사람처럼 행동하라.  부자처럼 행동하고 고급 옷과 고급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자아상을 부자로 만들어 놓는다. 이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요지이다. 따라서 저자가 말하는 39가지 습관이라는 것도 단순화시키면 돈을 붙들고 앉아서 아끼지 말고 필요한 곳에 아낌없이 쓰고 나누고, 주술적인 믿음을 가지고 부자가 될 꿈을 꾸라는 긍정철학에 바탕을 둔다. 


책에 따르면 나는 부자다 라고 생각하면 부자가 된다. 나는 풍족해질 것이다 라고 믿고, 그대로 실천하면 즉, 돈이 없더라도 부자처럼 쓰면 돈이 따르게 돼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보름달을 보며 지갑을 흔드는 일에도 진심을 다해 흔들면 금전운이 붙는다는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들고 나는 것이기 때문에 써야 다시 들어온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주술적인 믿음이 자신이 풍족하다는 개인의 자아상을 형성시켜 부자의 마인드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각기 다른 가치관에 따라 돈을 쓰는 곳이 다르다. 호화로운 인테리어로 치장된 값비싼 집에서 생활하는 것만이 부자들의 욕망이 아니다. 방 세개짜리 월세 집에서 살면서도 왕처럼 돈을 쓰고 작은 차에 몸을 맡기거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면서도 연수입 수십수백억원이 넘는 부자들이 있다. 그들은 맘껏 돈을 쓸 수 있지만,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돈을 쓴다. 값비싼 옷을 사거나, 가방을 사는 데 모든 인생의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어떤 소비보다 그런 곳에 돈을 씀으로써 자신이 부자가 된다. 호화로운 스포츠,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는 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일, 혹은 취미 생활을 위해 많은 돈을 쓰는 사람 모두 자신의 가치를 위해 자신이 가진 돈의 가장 많은 부분을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돈이 얼마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소비하고 싶은 곳에 얼마나 충족된 소비를 하느냐 하는 것이 동일한 액수의 돈을 가지고 자신을 풍요롭고 부자로 느끼게 만들게 되는지를 결정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저자의 생각과는 반대로 돈이란 자신이 좋아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만 주어져도 되지 않겠나, 궂이 그리 열심히 살아 많은 돈을 모은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한다면 풍요로운 자신을 누릴 수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돈을 끌어오는 습관이라고 소개한 것들의 것들은 남에게 넉넉하게 베풀어라. 할인 상품을 찾아 돌아다니는 시간을 절약해서 필요한 물건을 제값을 주고 구매하라. 라고 하는 실직적인 충고에서부터 책상과 주변의 사물을 늘 정리하는 습관을 가짐으로써, 금전 출납의 흐름을 개선하라, 화장실을 깨긋하게 매일 청소하라는 다소 일상적인 습관, 그리고 금전운을 부르는 마인드 컨트롤을 해라, 코칭이나 여러가지 교육 프로그램 등 우선 향후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기술 교육에 돈을 투자해라. 필요하면 일단 써라, 그러면 돈이 생긴다. 부자와 같이 다니면서 부자들의 씀씀이를 배워라 라고 하는 다소 엉뚱하고 의심스러워하는 습관들을 포함한다. 


저자는 20대 때에는 100여만원의 돈으로 겨우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남편이 벌어오는 100여만원의 돈으로 전업주부로 살다가, 미용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유명해지고, 상품 판매에 대박을 터트린 이후, 부자가 되어 코칭 등을 해서 점점 더 부자가 된 듯하다. 사회적 구조적 변화 없이 개인이 노력하면 모두 부자가 된다면, 그렇게 믿고 산다면 얼마나 해맑은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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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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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빛이 차단되어 캄캄한 암실은 비밀이 봉인된 곳이다. 그 곳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애초부터 규칙이 그랬다. 금단의 열매는 탐스럽게 익어 향기를 뿌리지만 먹을 수 없다는 것, 먹으면 자멸을 초래한다는 것. 모든 금단의 구역, 금단의 열매에 대한 신화는 그렇게 시작되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가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하지 말하야 할 것을 말함으로써 비극적 신화가 완성된다. 그녀들이 암실에 들어서는 순간은 마지막 절제된 욕망의 끝에서 금단의 열매를 향해 손을 뻗치는 행위였다. 누구나 그것을 알지만, 그곳은 어서 들어오라고, 어서 먹어보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러나,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은 구역이었다. 허락되지 않은 것을 알고도 문과 문 사이의 경계를 넘는 순간 그녀들은 돌이킬 수 없는 암실에 갇힌다. 허락되지 않은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비극이 잉태된다. 비밀은 지켜져야 안전하다. 사랑도 거리가 유지된다. 규칙을 어기는 것은 신뢰를 깨는 것이고, 신뢰를 깨는 순간은 사랑이 깨지는 순간이자, 망상적 변태 귀족 돈 엘레미리오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딱 세 사람. 사튀르닌의 친구 코린이 한 번 깜짝 출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튀르닌과 돈 엘레미리오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지문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대화다. 배경은 역시 돈 엘레미르오의 식탁으로 제한된다. 외부 출입을 20년간 하지 않고 은둔해서 살고 있는 스페인 귀족 출신의 부자 독신남이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사는 여성과 식탁에서 대화하는 내용이다. 대화가 스토리를 이끌고 대화가 스토리를 끝낸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요원한 일인 듯하다. 벨기에 출신의 이 여자는 일자리를 찾아 파리까지 와서 비정규직 보조교사 자리를 하나를 따낸 것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보조 교사 월급으로 감당할 수 없는 파리의 높은 방세를 지불하는 대신 담배냄새 쩌는 코린의 소파에서 지내던 사튀르닌은 월 오백 유로의 저렴한 가격에 40제곱미터의 환상적인 방 광고를 발견한다. 파리에선 방을 얻기 위해 인터뷰도 하는 모양. 그러나 인터뷰장에 모인 사람들은 연쇄살인범이자 스페인 귀족인 돈 엘레미리오의 면상을 확인하는 게 목적이다. 인터뷰 대기실에서 그녀는 그 호화로운 주택에 세들어 살았던 8명의 여성이 모두 사라졌으며 아마도 살해되었음을 알게 되지만, 개의치 않고 세들어 살기로 결정한다.

 

여긴 내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문이오. 잠겨 있진 않소. 신뢰의 문제니까. 물론 이 방에 들어가는 건 금지요. 당신이 이 방을 들어놓는다면 내가 알게 될 거고 당신은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

욕실이 딸린 호화로운 방과 매일 저녁 초대되는 만찬, 샴페인으로 가득 채워진 냉장고, 매일  뽀송뽀송한 새 시트로 갈아지는 침실과 암실을 제외하고는 어느 공간이든 마음대로 사용하고 둘러볼 수 있는 자유. 게다가 돈 엘레미리오는 첫눈에 이미 그녀를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당돌한 그녀의 조롱과 멸시에 찬 독설을 더욱 매력으로 수용한다. 그녀를 향해 퍼붓는 뜨겁고 달콤한 애정 공세 속에, 사튀르네는 절대 넘어가지 말리라 다짐했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가는 걸 느낀다. 

 

당신에겐 어느 누구도 발을 들여놓은 해서는 안되는 암실이 있어요. 결혼할 마음이 없는 것. 그건 제 암실이에요.

 

누구나 자신의 비밀을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갔다 놔요 62

자. 여기 평생 보장되는 호화로운 생활과 감미로운 사랑이 있다. 젖과 꿀이 넘쳐나는 천국 같은 곳, 아늑한 경제적 환락과 자신에게 도취된 남자의 헌신이 보장된 곳이다. 암실 문만 열지 않으면 된다. 암실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 만큼의 거리만 지켜준다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 남자가 지어준 마치 금으로 된 것과 같은 황금색 벨벳 치마를 두르고 그의 구석구석 치마 안감을 세심하게 손질한 손길을 느끼며 포옹과도 같은 안락함에 젖어들면서,  그녀는 샴페인 잔을 내려놓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결정의 시간이 다가온다.


암실의 비밀을 가진 사람은 돈 엘레미리오인데, 비밀을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사튀르닌이다. 그녀는 진실을 마주치기가 두렵다. 사라진 8명의 여자들은 죽지 않았을꺼야. 그녀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함으로써 돈 엘레미르오에 대한 달콤한 시간을 연장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숨기고 싶지 않아하는 돈 엘레미르오. 그에게서 죽음이란 단어가 나오자, 이제 다시 그녀는 그 남자가 죽인 것은 아닐 거라는 소망을 만들어낸다. 사튀르닌은 자신을 위해 금빛 벨벳 스커트를 지어주고, 최고급 샴페인을 냉장고 가득 채워넣고, 최고급 요리로 매일 저녁 만찬을 준비하는 돈 엘레미리오가 살인자가 아니기를 소망했기에, 그의 비밀, 그의 암실, 자신처럼 그의 방에 세들었다가 사라진 8명의 여자들에 대해 외면하지만, 진실은 한 발 한 발 다가온다.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현대판 성인 동화같은 소설이다. 마지막 순간 사튀르닌은 금으로 변한다. 사랑의 완성을 뜻하는 걸까. 사튀르닌은  돈 엘레미리오가 사랑의 완성을 위해 남겨놓았던 마지막 색깔 황금의 노란색이다. 그는 금을 찬미했고, 사튀르닌을  그녀를 영원히 품고 싶어했다. 그렇게 금으로 변하는 순간 사튀르닌과 돈 엘레미르아는 동화속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푸른 수염 원작의 현대판 동화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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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가우디다 - 스페인의 뜨거운 영혼, 가우디와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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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무엇을 기억할까. 1992년 올림픽. FC 바르셀로나, 세르반테스의 돈키오테와 피카소,  한 때 세계를 손에 쥐었던 화려한 영광 뒤에 패전과 연이은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 스러져가던 스페인에 세르반테스와 피카소와 말고도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 19세기 급격한 산업화가 도시에 몰고온 혁명적 변화를 시민들의 삶의 공간 속에 예술로 새겨넣은  가우디다.


바르셀로나의 관광산업은 가우디로 시작하고 가우디로 끝난다. 도시 곳곳에 가우디의 흔적이 있다. 가우디의 정신, 가우디의 영혼, 가우디의 천재성, 가우디가 서거한지 100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가우디의 공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스페인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다른 안내서와 여행 책자는 필요 없다. 특히나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계획이 라면 굳이 다른 여행서를 읽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다른 많은 볼거리가 있더라도 그 곳에서 시간과 일정이 허락하는 가장 긴 시간 동안 머물고 느끼고 체험하고 싶은 공간은 가우디가 설계한, 아직도 진행중이거나 혹은 미완으로 종지부를 찍은 가우디의 창조 공간이 될 가능성이 많다. 책의 제목 스페인은 가우디다. 참 적절하다. 바르셀로나에 가서, 바글거리는 그룹의 가이드를 따라 다니며 설명을 듣느라 놓쳐버릴 소중한 공간 체험의 기회를 만끽하기 위해, 가우디를 읽고 공부하고 가는 게 좋다. 


이 책은, 가우디에 바치는 찬사와 가우디에 대한 숭배로 가득한 건축가 김희곤님의 작품이다. 전작으로 스페인은 건축이다 라는 책을 썼다. 가우디의 생애와 가우디 건축의 정신, 그리고 가우디 건축에 대한 칭송과 애찬에 가까운 설명을 자세하고 풍부한 사진과 곁들이고 있다. 


132년간이나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는 건물이 있다. 설계했던 건축가가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가까이되도록 숱한 역사의 질곡을 겪으며 일시정지와 계속을 반복하며 언제까지고 현재진행형으로 지어지고 있는 건물, 우리에겐 그냥 가우디 성당으로 알려진 건축물, 사그리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다.  누구든 바르셀로나 에 가게 되면 첫번째로 보게 될 건축물이며, 그 복잡하고 경이로운 건물의 형태에 맥이 풀리듯 압도당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공간이다. 가우디는 독실한 신앙심으로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만년을 오로지 성당을 건축하는 데에만 온힘을 기울였다. 건축비로 받은 모든 자신의 재산을 성당의 건축비에 털어넣었고, 직접 사람들을 만나며 건축비 모금을 하러 다녔으며, 나중에는 아예 침실을 거처를 그곳 지하로 옮겼다.


위대한 예술가에게 평생을 신뢰하고 일을 맡겨줄 재정적 후원자를 갖는다는 것은 위대한 예술을 지속할 수 있는 지지기반이 된다. 많은 예술가들과는 달리, 가우디가 대학 때 출품한 작은 유리 전시장을 보고 그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구엘은 가우디에게는 인생의 출발부터 건축비에 옭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재능을 싫컷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마치 커다란 보석 조각처럼 느껴지는 구엘의 궁전은 한마디로 화려함의 극치이다. 구엘을 위한 가우디의 초기작품이다. 대장장이 가족에게서 자란 가우디는 철을 자유자제로 다루어 건축물의 곳곳에 종이띠를 말아 놓은 것처럼 유려한 철제 장식을 수놓았고, 전통적인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아치와는 다른 가우디 고유의 포물선 아치를 개발하여 지지기반을 단단히함과 동시에 새롭고 신비로운 공간을 창조하였다.


성가족성당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가우디의 또다른 작품은 구엘공원이다.책을 보고 동영상을 찾아보니 오래전 바르셀로나 방문 당시, 구엘공원을 다녀오지 못한 게 한이다. 그는 인공적인 건축물을 만들면서 언제나 자연의 형상을 본땄고,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창조해내었다. 구웰이 주거단지를 위해 사들인 구웰공원의 부지는 대형 주택단지를 짓기 위해 밀어버리지 않았다. 등고선 그대로 길을 내고, 심어진 나무 그대로 베어내지 않고 기둥과 어우러지게 하였으며, 터를 닦으며 나오는 그곳의 재료를 그대로 건축물의 재료로 이용하였고, 무엇보다도 자연의 환경에 길과 모양을 맞추어나갔다. 그래서 어떤 것이 자연인지 어떤것이 인공물인지 분간이 무의미할만큼 그대로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었지만, 그 속에는 무한한 상항력으로 창조한 경이로운 세계가 기능적으로 동작했다. 신전의 옥상을 통해 스며든 물은 돌기둥 속에 파여진 구멍을 타고 내려와 저수조에 담겨 그대로 분수가 된다. 


스페인의 근대 건축 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라시아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 역시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다. 재건축 바람이 불던 당시 남들과는 다른 주택을 갖고 싶었던 한 섬유업자의 의뢰를 받아 재건축한 카사바트요는 자신만의 건축기법과 아이디어로, 획일적이고 반듯하게 세워진 거리의 풍광을 카사바트요로 황홀하게 바꾸어 놓는다. 이로써 가우디는 당대 건축가들과는 점차 멀어져가고 자신만의 건축 세계에 빠지게 된다. 


호화로운 화려한 구엘궁전과 카사바트요와는 달리 카사밀라는 육중하고 웅장한 석조 건물이다.카사밀라다. 이 석조건물은 파도처럼 층층히 출령거리는 모양을 하고 있다.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껍데기 처럼 돌을 입힘으로써 건물 전체가 원만한 곡선으로 일관성을 이룬다.


가우디의 건축은 카사밀라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끝까지 완성된 것이 없다고 한다. 100여년 가까이 사람들이 살고 있기도 하고, 또 미완인 채로 그대로 기능하기도 한다. 


일반 교양서적으로서, 혹은 여행을 목전에 둔 참고소러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 한 가지 주제넘은 지적질을 한다면, 작가가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너무 많이 가우디에게 이입시키고 미사여구가 많아 집중이 방해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가우디의 생각에 감정이입을 해서 전달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대자연에 펼친 상항력과 호기심이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 때로는 숲 속에서 발가벗은 채로 우두커니 서서 숲을 기고 달리는 날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모두 제각각 자신의 리듬과 질서와 형식에 맞추어 생명의 진리를 말없이 실천하고 있었다. 

가우디가 어떤 역사적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다는 것을 전할 때는 어떤 것이 저자의 생각이고 어떤 것이 가우디의 생각인지를 밝힐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내 견해다.  만일 가우디가 남긴 자료를 통해 남겼다면 출처를 명확히 남겨야하고, 문맥상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는 추축이라면 자신의 생각임을 밝혀야 할 것 같다. 전기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므로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또한 건축 관련 다른 책들과  비교해봤을 때 예외적으로 유려하고 때로 가우디의 장식처럼 호화롭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것은 아마도 저자의 가우디에 대한 진정어린 찬사를 언어적으로 감성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였다고 느껴지는데 간혹 내게는 공허한 메아리 혹은 관광 홍보 책자에 등장할만한 근사한 광고카피처럼 읽혀지기도 했다.  유려한 문장도 좋지만 편집부에서는 출간 전 비문과 오타를 세심하게 골라내었으면 한다. 아주 사소한 거지만 그것 때문에 독자들은 문장을 몇 번씩 다시 읽어야 할 때가 있으므로..


이런 찌질한 지적질을 뒤로 하고 책을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전체적으로는 매우 좋았다. 저자가 그토록 찬사를 아끼지 않은 가우디의 공간에 대해 함께 감동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공간과 예술에 대한 건축적 이해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특히,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 창조한 모든 공간을 친절한 설명과 함께 구석구석 포인트를 잘 짚어가며 설명하고 있어, 가우디에게 쉽게 접근하면서도 또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언어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작게라도 사진을 함께 작은 구석까지도 실어 놓치지 않고 체험할 수 있었으며,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더 가우디에 대해 관심과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 책의 내용이 호기심을 더욱 강하게 부축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바르셀로나에 갈 계획을 세우게 되는 독자들이 많게 될 것 같다. 나는 EBS 다큐프라임으로 감상한다. 더운데 다니려면 다리아픈데 앉아서 자근자근 설명들으며 잘 안보이는 곳까지 볼 수 있다. 유튜브에서 일일히 링크따다 붙였다. ==> 가우디 동영상 감상(ebs 다큐프라임)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물론 압도적인 건물, 세심한 조각상과 그 화려함에 누구라도 그 공간을 시각적으로 접하는 순간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되지만, 이해하게 된다면 조금 더 사랑하게 되고, 더 머물고 싶고, 더 경험하고 싶은 공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 혹은 가우디와 관련된 책자는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기 전에 꼭 읽고 가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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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당신에게 무의미한 것들이 내겐 모든 의미가 된다. 내게 무의미한 것들이 당신에게 때때로 의미있듯이. 그러므로 당신에게 무의미한 것이라고 해서 내게도 무의미하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당신과 나 사이에 무의미의 갭이 그 갭의 두께가 그렇게도 무의미하기에 세상은 무의미한 것이다. 세상이 의미있다고 규정한 것들은 이미 무의미한 것 속에서만 규정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가진 지식과 명성과 권력과 부, 에고와 같은 것들이 당신의 말, 행동에 대한 의미와 무의미의 척도를 규정할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짧다. 짧은 한 권의 책. 정확하게 149쪽만큼의 종이 즉 75장의 종이 위에 씌운 것 치고는 엄청나게 두꺼운 양장표지를 입혀 11,700원이라는 정가를 달고 나온, 거장의 14년만의 작품에는 나에게는 그리고 또다른 누구에겐가는 무의미한 공간들이 1/3 정도는 채워져 있다. '허공을 날아 잡힐 듯 테이블 위를 떠도는 깃털처럼' 그토록 가볍고, 그토록 무의미함을 이 책의 공백과 가격에서 보았다라고 한다고 비뚤어진 독자라고 한다면, 나는 최대한 비뚤어질테다.  그토록 차기작을 기다려온 충성스런 밀란 쿤데라 팬들을 대하는 책의 공백과 그것의 가치. 쿤데라는 이런 약간의 기만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무의미를 전달하고 싶어했는지 혹시 아나.  소비와 공급의 적절한 균형을 찾으려면 잘 팔리는 책들, 잘 팔릴 것 같은 책들이 저렴해야 한다. 챕터와 챕터 사이 장과 장사이의 공백, 제목과 본문 사이의 공백 이런 것들이 때때로 1부, 2부 등등 7부까지 사이의 빈 페이지. 이런 것들에 가격이 매겨져 있으므로 우리는 그런 것들이 의미하는 무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어쨌거나 공백은 무의미하다. 그 무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작품의 가격에 포함된 공백은 <무의미의 축제>가 의도한 무의미의 공간이다. 

 텍스트 속에서의 무의미는 가령 이런 것들인 것 같다(짧으니 망정이지 제길 너무 어렵다. 그래도 찾아보자). 알랭은 배꼽에 대해 생각한다. 남자가 여성의 매력을 배꼽에 둔다면 한 시대 혹은 한 남자의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뤽상부르크 공원을 거니는 라몽은 샤갈전을 보고 싶지만, 저 끝쪽까지 뻗어있는 줄들 속 지루함으로 경직 되고 굳은 얼굴들을 보며 몸을 돌려 공원의 조각상들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암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들은 다르델로는 행복감에 젖어 길거리 여인들에게 손을 흔들지만, 공원에서 라몽을 만나자, 프랑크 부인의 부군의 사망소식을 전하면서 자기 안에 깃든 죽음의 비애, 마법처럼 그 비애를 품고 있는 달콤한 기분, 묘하게 아름다운 그 기분을 즐기기 위해 자신이 암이라고 곧 죽는다는 거짓말을 한다. 카클리크는 말을 하면서도 주의를 끌지 않는, 자신의 말에 의해 거기에 존재하면서도 들리지 않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절묘한 솜씨를 이용해(?) 여자를 낚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그들 네 명의 친구 라몽, 샤를, 알랭, 칼리방은 스탈린의 일화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숱한 피를 뿌린 스탈린을 알랭의 24살난 여자친구는 누구인지 모른다. 샤를이 들려준 스탈린의 하찮은 일화는 칼리닌그라드라고 불리는 도시의 유래다. 스탈린이 그 유명한 도시에 별 실질적 힘도 없던 죄없는 꼭두각시 칼리닌의 이름을 붙인 이유는 오줌을 참는 칼리닌에게서 고통받는 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 자기 눈앞에서 자기를 위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그의 충성에 감사를 표하고 헌신에 대한 보상으로 기쁨을 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팬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괴로움을 견딘다는 것.생기고, 늘어나고, 밀고 나아가고, 위협하고, 공격하고 죽이는 소변과 맞서 투쟁한다는 것......이보다 더 비속하고 더 인간적인 영웅적 행위가 존재하겠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은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 

시간은 흘러가, 시간 덕분에 우리는 우선 살아있지, 비난받고, 심판받고 한다는 말이야. 그 다음 우리는 죽고 우리를 알았던 이들과 더불어 몇 해 더 머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변화가 일어나.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스탈린 그들이 그 숭고한 가치로 뿌리고 간 숱한 피의 대가는 세대가 세대를 기억하는 동안에도 이미 잊혀졌다. 우리는 그 역사 속 아주 작은 티끌과만 의사소통을 할 뿐이다. 여기서 샤를이 발견한 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진실, 오줌 참음에 대한 대가로 결정지어진 한 도시의 이름과 스탈린의 잔인성 혹은 다정함이다. 

 알랭과 네 명의 어울려다니는 친구들의 대화는 이토록 무의미하지만 그무의미한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다. 칼리방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직업은 배우지만 일감이 없다. 칵테일파티에 서빙을 하면서 그의 인생과는 거리가 먼 프랑스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파키스탄인으로 분한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파키스탄 언어를 연기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만들어 내 청각적 신뢰감을 부여한다. 이 작업은 특별한 음성학을 창제해야 하고 음절의 강세가 주어지는 지도 정해야 하고 얼토당토 않은 소리들 배후에 어떤 문법적 구조를 고안해서 단어와 명사등으로 구조화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며, 또한 응급상황에서 친구들끼리 프랑스어 한 마디 없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가 창조한 언어 몇 개를 알고 있어야 했다. 문제는 스스로를 그렇게 신비화하려고 기를 써봤자 칵테일파티의 손님들은 그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관객없는 배우가 되었다. 김영하의 <보다>에서 본 산문이 생각난다. 모든 인간에게는 연극적 자아가 있다는 부분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할 때 가장 자연스러워보인다는 <시저가 죽어야 한다>는 영화에 대한 도발적 발견. 적어도 웃을 수는 있는 부분이었다. 연극적 자아에 대해 더 생각해보아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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