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관 1~3 세트 - 전3권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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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시대는 막이 내리고 있었다. 로마의 일인자에서, 카이사르의 장녀 율리아와 가이우스 마리우스와의 정략 결혼은, 몰락해가는 카이사르 가문에게는 두 명의 아들과 사위를 권력의 사다리로 진입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파트리키 가문과의 동맹으로 그동안 이탈리안 촌놈이라는 치명적인 출생의 약점을 가볍게 털어낸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유래없이 여러 차례 집정관을 지내게 하는 윈윈 전략의 쾌거가 된다. 풀잎관이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위대한 일인자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파워가 식은 시점이다.

로마가 인도처럼 강력한 신분제 사회는 아니었으나, 가문은 강한 개인의 정체성의 일부다. 일단 이름에 가문의 꼬리표가 평생 쫓아다녔고, 이름에 나타나는 출생상의 신분은 그 사람을 평가하는 큰 기준이 된다. 심지어 바람을 펴도 출신이 누구인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사실이 웃긴다. 이것은 로마 시민권자와 비시민권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제도적 차별에서도 여실이 드러난다. 당시 이탈리아의 여러 부족들을 다스린 로마는, 그들이 사는 도시에 로마 시민들을 거주시키고 그들만의 정착지를 만들고 로마 법정의 보호 아래 마음대로 로마를 상대로 상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준 반면, 그 곳의 원주민들은 로마를 위해 군대를 제공하여 충직하게 싸우면서도 로마 시민의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은 채, 채찍질과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이러한 부당한 대우로 인해 이탈리아의 여러 부족들은 동맹을 통해 조직적으로 허위 로마 시민으로 대거 등록하는데, 모든 허위 로마 시민권자들을 가려내기 위한 대처 방안으로, 색출을 위한 보상금과 무거운 태형, 그리고 더 무거운 벌금으로 무장한 리키니우스.무키우스 법이 상정된다. 여기에서 마리우스와 그의 평생의 동료 푸틸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키스, 그리고 이 풀잎관 시리즈의 첫번째 책인 1부에서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역을 맡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가 가여운 이탈리아 부족들의 편에 활약하나, 원로원의 대다수는 그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로마애서 파견된 관리들애 의해 가짜 로마인을 색출하기 위한 이 리키니우스.무키우스 법안의 실행이 강행되고 이 과정에서 로마는 또다시 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한편 마리우스는 아내 율리아와 아들과 함께 동방 여행길에 오르고 한동안 로마가 서방을 정복하느라 손을 놓고 있던 동방의 여러 왕국에서 폰투스의 왕 미트리다테스 6세가 탐욕스럽게 여러 왕국을 정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저지한다. 로마로서는 미개인의 족속들에 불과한 그들 왕국 중 하나가 도를 넘어 세력을 넓히고 로마의 속주들을 위협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이들 왕국 역시 혈육간의 혈투와 동맹을 통한 피비린내 진한 왕위 쟁탄전의 각축장이었는데. 미트리마테스 6세가 왕이 되기까지의 암투는 그 잔인함과 복잡함이 가히 머리속으로는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끝판을 보여준다.

우선 전편에서 아퀼리우스는 프리기아를 미트리다테스 5세에게 넘기고 엄청난 뇌물을 손에 넣었는데 이를 알게 된 로마의 반대파들은 폰토스와 반목하게 된다. 그런데 권력에 굶주린 미트리다테스 5세의 누이이자 카파토키아의 왕비인 라오디케는 남편이자 남매인 왕을 죽이고 아들 크레스토스를 왕 위에 앉히고 섭정을 한다. 그의 동생 미트리타테스 아우파토르는 어머니가 자신을 죽일 거라는 직감을 느끼고 도망갔다가 자신의 숙부 그러니까 죽은 왕의 형제와 함깨 모반을 일으켜 성공을 하고 권좌를 차지한다. 이 사람이 미트리다테스로 매우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폰투스의 왕이다. 주변의 왕국을 흡수하여 영토를 넓혔으나 이 책에서는 매우 비열하고 야비하게만 그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은 뛰어난 군사적 전략을 갖지 못하고 군대를 지휘할 능력도 없으면서 자기 대신 다른 나라를 침공해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장군은 그자리에서 목을 치거나, 연회를 열어 부족장들을 불러 모아 술을 먹이고 처치해 그 부족장들이 다스리던 땅들을 한꺼번에 차지하거나, 왕을 죽이고 자신의 사람을 앉히는 등이 그렇다. 

미트리타테스는 매우 많은 왕비들응 두었는데 정실왕후는 그의 누이 라오디케였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왕비는 카파토키아의 왕자라고 하는데 실제로 왕자인지아닌즈 알 수 없는 고르디오스의 딸 니케다. 니케의 아버지 고르디오스는 왕의 오른편에 앉아 왕의 야망을 실현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데 그 이유는 카파도니아를 갖기 위해서다. 카파도키아 역시 폰투스 못디 않게 비극적인 역사로 피범벅 왕위 쟁탈전을 겪고 있다. 카파도키아의 왕 아리아테스 6세는 미트리다테스의 또다른 누이인 라오디케의 남편인데 고르디오스는 왕후와 짜고 왕을 죽이고 어린 아리아라테스를 왕위에 올리고 권력은 엄마의 섭정 아래 두었다. 고르디오스가 카파도키아의 왕자라고 하였으니 새엄마와 공모해서 친부를 죽인 게 되는건가. 권력이 뭔지 참으로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들 아리아라태스 7세가 겨우 열세살이 되었을 때 섭정에서 벗어나고자 외숙인 미트리다테스의 도움으로 엄마를 가두어 굶게 해 죽이고 권좌를 되찾지만 자신의 친부를 죽인 고르디오스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쒀서 개 준 고르디오스는 훗날 왕의 누이이자 정실왕후인 라오디케의 불륜을 고해 바치고 자신의 딸 니케를 왕후로 앉히고 권력의 핵심 자리를 약속받는다.

마리우스가 여행중 카파도키아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섭정을 하던 어미를 죽인 어린 왕은 또다시 죽고 미트리다테스와 니케 사이의 아들 즉 고르디오스의 손자가 왕이 되어 고르디오스가 섭정을 했는데 그나마도 나중에 술라가 왔을때는 딸의 호의로 자신이 직접 왕이 되어 통치하고 있었다. 술라가 카파도니아 인이 추대한 아리오바르자네스를 복권시키고 나서야 고르디오스는 평생 공생 관계를 맺어온 미트리다테스에게 죽는다. 이렇게 가이우스와 술라의 두 차례 원정 끝에 널름거리며 잡아먹고 있던 폰토스에게서 벗어나 아마도 카파도니아는 로마의 속주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 동안 로마에서는 로맨스가 벌어진다.

로맨스의 주인공은 앞서 등장했던 드루수스의 누이 리비아다. 서로 오누이끼리 결혼해 더블 사돈이 된 카이피오의 아내 리비아와 그녀의 가족들은 시아버지의 뇌물수수로 집까지 잃고 드루수스의 집애서 더부살이를 하는데 남편 카이피오의 인간 됨됨이에 환멸을 느끼다가 그가 멀리 발령을 받은 틈을 타서 시골의 별장으로 이사를 가는데 거기서 그동안 자신의 로마 집 발코니에서 훔쳐보고 짝사랑하던 동네 오빠 카토를 극적으로 만나 격정의 사랑에 빠지고 임신까지 해서 남자 아이를 낳는다. 돌아온 카이피오는 냉담한 아내에 화가 나서 폭력적인 잠자리를 갖는데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딸 셀레니우스에게서 엄마의 불륜 사실을 전해 듣게 되자 리비아를 거의 죽일만큼 만성적 폭력을 휘두르게 되고 이 일은 늦게나마 드루수스에게 알려져 이혼으로 마무리되고 아내의 지참금으로 살던 카토 역시 무일푼으로 쫒겨나자 리비아와 재혼하여 전처 소생의 아이들을 주렁주렁 달고 드루수수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된다 .

가이우스 마리우수와 정치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술라는 자신의 처세를 위해 그를 조금씩 멀리하고 마리우스와 폰토스는 역시 리키니우스 무키우스 법안의 상정 반대를 위해 드루수스와 함깨 뭉치지만 별 호응을 얻지 못한다. 너무 잘생기고 매력적인 덕분에 로마 최고 권력자 스카우루스의 어린 아내의 유혹에 걸려든 술라는 죄도 없이 스카우루스에게 밉보여 법무관 선거에 실패하고 빌빌거리다가 로마를 떠나 해외 원정을 다니면서 차근 차근 경력을 쌓는다.

마라우스의 시대가 가고 술라의 시대를 예감하는 1편에는 폰투스 왕과 그 주변국과의 국제 정세 그리고 로마와 이탈리아 사이의 신분제애 따른 갈등이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곁들여서 달콤한 로맨스들도 곁들여져 있는데 물론 이것들은 당시 사회 제도들과 여성의 위치를 재현하기 위해 넣은 씬이었지만 카이사르 가문의 아우렐리아와 술라 사이의 팽챙한 우정과 사랑 사이의 관계는 아슬아슬 숨통을 조이고 광대한 지역의 피비릿내나는 왕위 쟁탈전은 충분히 흥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단지 현대와 같은 전기, 전화, 전차와 스마트폰이 없어서 그렇지 콜린 맥컬로가 재현한 로마는 사회 조직 및 기술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너무나 완벽하다. 심지어는 은행의 송금제도까지도 현대를 사는 우리가 고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오래도록 공화정 체제를 유지해온 로마는 그렇게 찬란한 문화를 뒷받침하는 많은 속국과 동맹의 끈 아래 이탈리아 족들의 큰 고통 위에서 굴러가고 있었으니,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결국 강력한 대응을 위해 리키니우스 미키우스 법을 탄생시킨 허위 로마 시민권 신고라는 조직적 형태의 반발이었다. 이를 색출하고 벌주기 위한 그 법의 실행은 그동안 충직한 군사력과 세금을 제공하던 그 넓은 이탈리아 전지역 모든 사람들을 로마인의 적으로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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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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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했으나 행복했던, 성공했으나 실패했던 스토너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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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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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터뷰한 수백명의 여자 군인들은 저마다의 기억을, 저마다의 상처를, 저마다의 침묵으로 끌어안고 죽어야 끝나게 될 전쟁을 지속하고 있었다. 집필당시 이미 전후 40년이 지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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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비 우먼 - 여성 리더 15인의 운명을 바꾼 용기있는 결단의 순간
김선걸.강계만 지음 / 와이즈베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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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육아와 가사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마세요.


여성이 경력을 끝까지 완성하려면 선택의 순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어리숙한 신입직을 지나 경력을 쌓고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맡고 가장 일이 재미있어질 나이, 가장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나이에 육아와 가사 부담으로 생기는 경력 단절은 회복이 어렵다. 기업은행장 권선주는  남편이 중국 지사 근무 7년반이라는 기간 동안의 결별을 선택함으로서 직장과 경력을 지켰다.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정말이지 한 여성의 직장 생활은 온 우주가 나서야 가능한 것"이라고 토로한다. 반면 손병욱 푸르덴셜생명 CEO는 둘째딸이 마음고생했던 걸 알았다면 3년만의 경력 단절을 깨고 들어온 스카웃 제의를 거절했을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이금형 전 부산경찰청장(현재 경찰대 교수)은 경찰의 가장 말단직인 순경으로 출발해, 지방경찰청장까지 오른 최초의 여성이었다. 간부부터 시작하는 경찰대 졸업생보다 뒤늦은 출발이었고, 여성이었다. 바늘구멍인 승진시험이라는 제도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대졸자와 경쟁해야 했지만, 공정했기에 가능했다. 경위부터 남성경찰관의 보조 정도로 생각했던 여성 경찰의 위상을 대학.. 가족과 함께 휴가를 즐겨보지 못해.. 이금형 교수 역시 육아문제로 개인적 갈등을 겪었고 집안 대소사를 챙기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무거웠다.


성폭행을 당하면, 병원에서 진료 거부를 당한다. 치료비는 적고 법정 증언을 하러 다녀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는 게 이유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출소한지 6개월되는 범인들에게 성폭행당한 후 장기 파열로 하혈을 심하게 하는데도 세 군데서 진료거부를 당했는데, 이금형 교수는 범인을 잡고도, 피해자를 외면한 병원과 의사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그 후 이 의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광주지방경찰청장 직무대리로 근무하면서 5.18 집회 관리 사례는 다른 곳에서 본받을만 하다. 다른 지역에서 경찰 인력을 지원받아 35개 중대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보고를 듣고 광주청 자체 내의 7개 중대로 집회 관리를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 때 경찰은 집회 관리가 아닌 집회 안내 요원이 되어 집회자들과 한마음으로 같이 했다. 도가니 사건의 재수사도 이교수에게 맡겨졌다.


조윤선전장관은 오히려 변호사라는 직업에 있어서 여성의 희소성으로 인해 큰 혜택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때는 그랬으나 지금은 다르다. 여성 변호사의 비율은 2014년 현재 20퍼센트를 넘어선다.  여성의 적은 여성일 때가 많다. 조전장관이 회사의 유일한 여성 변호사일때 대부분의 여성이 비서였다. 여직원 산행이 있었는데 비서가 조전장관에게 과일을 갖다 주라고 선배의 말을 싫다고 거절하는 모습을 목격했던 장면을 회상한다. 


강윤선 준오헤어 대표는, 가난이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니까.. 선택한 직업이었다. 연이율 60퍼센트의 일수를 얻어 돈암동에 헤어점을 차리고, 10년후 이대점으로 확장했지만, 집을 팔아 영국 유학길에 올랐고, 직원 10여명과 함께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다 같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 달 동안 뭘 배우나 싶지만, 어쨌든 비델사순 아카데미에서 한 달 연수 후 돌아와 준오 아카데미를 설립한다. 준오 헤어는 매장을 가맹점 형태가 아닌 2년 6개월 동안 준오 아카데미에서 5단계의 교육을 통해 뽑은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는 직영으로 운영한다. 총직원 2500명,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헤어디자이너 1200명 가운데 200여명이 1억원 넘는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 


이 밖에도 이 책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김행, KB국민은행 부행장 박정림, 엠슨 회장 이민재, 삼성증권상무 이재경, 포스코경영연구원 오인경, 우암코포레이션 회장 송혜자, 삼흥테크 대표 권지혜, 보건복지부 과정 이스란, 서호주관광청 이사 김연경, 자유통일문화원장 이애란 등 전현직 여성 리더들의 삶을 소개한다. 읽다보니 조윤선전장관까지는 그런가부다 했는데 보수적 성향의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인사들이 많아서 조금 언잖았다. 보수여서 언잖은 것이 아니라. 이제 여성의 지휘를 운운할 때 개인의 선택과 개인의 능력과 개인의 운과 같은 것이 좌우하는 현재의 어떤 위치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니 어떤 여성들이 어떻게 이 답답한 사회를 변화시키는지에 더욱 포커스를 맞출 것인가를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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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의심한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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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비소설의 구분은 불분명하다. 바로 전에 읽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노벨 평화상이라면 모를까 노벨 문학상을? 하며 의아해할 수 있는,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에 있다.  최근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만 봐도 많은 인물의 사실적 내용 전달이 대부분의 양을 차지한다. 소설이니까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지만 막상 읽을 때는 소설이라고 봐야할지, 다큐라 봐야할지 모르겠다. 강세형의 <나를 의심한다>는 시/에세이로 분류되어 있지만 소설적 느낌을 주는 이야기를 다수 포함한다. 물론 에세이는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글이므로, 창조된 허구가 개인의 경험으로 변신하거나, 약간의 사실을 모티브로 해서 상상력으로 채운 창작작품이라 해도 여전히 에세이가 될 수 있다. 소설이라 해도, 여전히 새로운 형식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예술의 속성 상 에세이가 전하는 이야기를 하나의 소설로서 읽어도 무리가 없을 작품들이 있다. 


이렇게 에세이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의 이점은 소설이라는 보다 더 예술적 감각으로 재단되는 형식에 제한을 받지 않을 수 있고, 그것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까만색 글씨와 파란색 글씨가 그것을 구분하는 것 같다. 어떤 것이 소설같은 이야기를 전달하는지, 어떤 것이 작가의 이런 저런 생각들과 사소한 경험들을 전달하는지. 파란색 글씨는 단막 소설, 단편 소설로 읽어도 좋다. 다만 그 의미를 낑낑대며 고민할 필요 없이 작가가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미 고민했으므로 그걸 읽기만 한다. 아늑하고 쉬운 독서 방법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의 친구들, 작가가 오래 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 혹은 가족 등이다. 그래서 만일 완전한 트루 스토리를 책에 담았다면 그 친구들은 친분을 이용해 자신의 사생활을 적은 것에 대해, 뭐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영광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들의 이름은 알파벳 대문자 한 자이다. W는 라디오 방송 작가를 꿈꾸며 막내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나, 똥을 눌 시간조차 없어서 사라진다.  Y는 스물 아홉에 죽는 매일매일 똑같은 꿈을 꾼다. D를 사랑했던 E는 사랑이 끝나자 D와 함께 했던 모든 관계들과도 단절되는 것을 경험한다. 작가 지망생 J는 저절로 저절로 손가락이 움직여 그림을 그리는 소녀의 꿈을 꾼다. W는 여자와 사랑을 할 때마다 몇번째 사랑인지 번호를 매기고 더러운 벽에 흔적을 남겼다. 사람 얼굴 인식 불능증에 걸렸지만 목소리는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하는 L은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목소리 기억 때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려진다(정말 (正) 말입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책만 읽고 혼자 지내는 A는 어느날 안경이 깨어져 오래 전 그러한 자신의 닫힌 문 때문에 상처받고 떠난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특히 L 이야기가 담긴 <정말 정 말입니다>와 <저절로 그려지는 그림>은 단편소설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만큼 흥미 진진한 이야기였다. 여자 정혜처럼 고립된 이야기의 근원을 풀어나가는 J의 이야기 전개도 좋았다.


까만색 글씨는 일반적인 쉽게 읽히고 쉽게 잊히는 에세이들이다. 주로 나이에 대한 생각, 직업에 대한 생각, 자잘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진 대화들로 이루어져있다. 친구들과도 늘상 하는 종류의 얘기들. 일상에서 발견되는 자잘한 물음들, 발견들. 왜 착한 남자들은 모두 버스를 타고 떠나나. 스무살이 되어도 서른살이 되어도 마흔살이 되어도 두려움은 떠나지 않는다. 어른이 되는 것, 늙는다는 것은 세상이 탐탁치 않은 것이 많아지는 것이고 그 무엇에도 반하는 것 없이 무덤덤해지고 차가와지는 것이라는 그녀의 탄식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스무살의 여름에 쨍쨍한 공기를 가르던 웃음소리, 비처럼 내려 경련으로 떨었던 아픔, 온몸으로 웃고 온몸으로 울 수 있는 시간을 그리워한다. "당신이 무엇이든 무엇이든 반하고 싶다." 그 절박함을 이해한다. 살아있기에. 더욱 생생하게 살아있고 싶은 욕심. 그러나 나는 다시 그날들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선택의 기로에서 수없이 방황했던 그 불안했던 과거로.. 그러나 기억해 내고 싶은, 돌아가고 싶은가 그 겹겹이 쌓인 과거들은 현재가 만들어낸 미화된 환상일 뿐이다. 현재가 남은 인생을 살아내기에 필요한 망각과 상상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과거. 


우리는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너무 가혹한가? 저자는 저자의 친구가 고전만 읽게 된다는 말에 발끈한다. 현대인들은 모두 작가가 아닐까. 종이에 인쇄되지 않을 뿐이지 작가들이 사유의 흔적을 인쇄하고 자신에 대해 끝없이 다양한 변주로 이야기를 하듯 우리 역시 끝없이 흔적을 남기니 말이다. 이렇게, 혹은 더 짧은 140자의 트위터 속에, 포샵으로 편집된 눈이 붕어알처럼 동그랗게 나온 얼짱 각도의 사진과 이모티콘 이라는 언어를 이용해서 말이다.


작가는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원래 일이란 그것 빼고 다 재밌으면 일이다. 라는 선배의 말은 공감된다. 만일 내게 책읽는 일에 강제성이 있다면, 지금처럼 즐겁게 호시 탐탐 책읽을 시간만을 노리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글을 써서 먹고 살기에, 글을 쓰는 일을 받아들인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일들, 그 과정을 또 글로 쓴다. 독자들은 그것을 읽는다. 하지만 작가라는 직업은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끌어내야 하는 일이므로, 자기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줘야 하는 일이므로 다른 어떤 육체노동 못지 않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가질 것으로 생각된다.  


작가는 40이라는 나이에 의미를 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은 않다. 그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경험한다. 만난다. 헤어진다. 본다. 느낀다. 그 속의 상처, 그 속의 깨달음, 그런 것들과 함께 고스란히 나이테를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들의 현재다. 현재 나의 생각, 현재 나의 직업, 현재 나의 습관. 그 숫자가, 그 숫자만큼 살아온 시간이 그 시간 속의 인연과 만남과 경험이 나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어떤 하나의 잣대나 무슨 상징으로 하나의 그룹으로 무엇으로 만드는 시도는 저속하게 느껴진다. 노인들은... 애들은.. 아저씨들은... 10대들은... 30대들은... 그런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건, 그 숫자들이 품지 못할 개인의 경험, 개인의 생각들이 나이라는 환상을 덮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그게 나이듦에 대한 푸념 대신 하루 하루 더 짧아지는 남은 인생을 적극적 삶으로 이끄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들이여 이제 나이 타령 좀 그만하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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