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들려준 이야기 - 인류학 박사 진주현의
진주현 지음 / 푸른숲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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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넘어졌다. 나이 들어 넘어지면 금이 가거나 뼈가 부러지기 쉽다는데, 운동도 전혀 안하고 앉은뱅이처럼 살아가는 내가, 테이블과 옆사람 무릎을 풀쩍 넘어 내딛인 곳이 한계단 높이 낮은 카페 콘크리트 바닥이었다. 각자 스맛폰에 열중하거나 떠들던 사람들은 엄청난 소리가 나서, 유리가 깨진줄 알았다는데, 나는 바닥에 누워있었다. 평지인줄 알고 디뎠는데 허공이었으니 한쪽으로 기울면서 쓰러져서 왼쪽 허리 밑 골반뼈  무릎뼈, 발뼈가 모두 부러진 것 처럼 충격이 가해져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는데, 가까스로 도움을 받아 자리에 앉아 한참 쉬었더니 통증이 사라졌는데, 다음날 부웠다. 뼈가 부러진 모양이라 생각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다행히 뼈는 금도 안간 모양이었다. 뭐 인대가 어쩌구 저쩌구했단다. 아플 때는 아픈 것보다 뼈가 부러졌을까봐, 불편한 깁스를 하고 쩔뚝거리며 다닐 생각에 온갖 걱정을 다했었는데, 일단 인대야 어떻든 뼈가 괜찮다니 안심이었다.


 


이렇게 마침 뼈가 부러졌는 줄 알았던 날 펼쳐본 이 책의 첫장은 뼈에 골절이 생겼을 때 신체의 변화에 대해 쓰여있었다. 뼈가 부러지고 회복하는 생리학적 과정은 이렇다. 뼈가 부러지면 골절 부위의 골세포는 다른 골세포와 연결이 끊기면서 저절로 죽는다. 죽은 뼈의 세포는 파골세포라는 특정 세포가 들어와서 먹어 치우기 시작해서 보름 정도에 걸쳐 다 먹는다. 죽은 골세포를 다 먹은 파골세포는 그자리에서 저절로 죽어 사라지고, 죽은 세포가 없어진 빈 공간에는 조골 세포가 채워진다. 조골세포는 줄기세포에서 생겨난 뼈 만드는 세포로,  뼈가 만들어질 자리에 뼈와 비슷한 성분인 유골을 분비하면서 지나가고, 이렇게 쌓인 유골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딱딱해져서 뼈로 변한다. 뼈가 굳으면 조골세포는 그 뼈 속에 갇혀서 뼈의 상태를 모니터링한다. 이것이 뼈의 재형성 과정인데, 이러한 재형성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끊임없는 사용으로 알게 모르게 뼈에 잔금이 갔을 때에도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최근 들어 과학 서적을 나름 열심히 찾아 읽었지만 뼈를 주제로 한 책은 처음이고, 많이 들어보지도 못했다.  뼈에 관련된 책이니 저자는 의학자나 과학저널리스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빈약한 상상력 뒤로 법의인류학자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진주현 박사는 현재 하와이에서 살며 미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기관에서 실종된 미군 유해의 발굴 분석을 한다. 막상 읽어보니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책이었다. 뼈에 대해 이렇게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을 수 있다니 말이다. 인체의 뼈, 동물의 뼈, 죽은 지 얼마 안되는 생명이었던 것들의 뼈,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본 오랜 선조격 동물들의 뼈(특히 공룡) 등 다양한 종류의 뼈를 모두 포괄한다.


 


뼈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말을 할 수 없는 어린 아이의 갈비뼈가 가진 상흔은 일종의 지문처럼 뼈에 그대로 각인되어 그 아이가 부모에게 학대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말해주고, 가야의 무덤에서 발견한 선조들의 뼈를 통해 모유 수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해골만 보고도 아시아인과 백인들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참고로 동아시아인들이 골반이 작고 아기의 머리는 커서 출산시 더 어려움을 겪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과학적으로는 증명되지 않은 사실이며, 동양의 아기가 머리가 크다는 설은 과학적 근거와 반대된다고 한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아마도 얼굴이 옆으로 더 넓으냐 뒤로 더 깊으냐에 따라 크기가 달라보이는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골반 문제만 해도, 서양의 여성들이 골반이 더 크기 때문에 막말로 '애를 몇명이고 쑥쑥 잘 낳아 기른다'고 하는데 그 사실 역시 저자가 많은 연구 결과를 검토해봤으나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임신부가 고꾸라지지 안는 이유도 여성의 척추뼈와 남성의 척추뼈의 구조가 달라서이며 만일 남성이 임신을 해 배가 남산만해진다면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고꾸라지게 될 터이다. 여성의 밑쪽 세 개의 요추는 남성에 비해 심하게 비틀어져 있어서 임신시 배가 나왔을 때, 척추를 에스자 모양으로 유지시켜 뒤쪽으로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게 조절한다. 근육처럼, 뼈 역시 쓰면 쓸수록 강해지는 울프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뼈 입장에서는 쓰지도 않는 뼈를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p124)'이다. '나무 막대기처럼 가벼우면서도 모쇠만큼 단단한'  뼈의 놀라운 강도는 뼈의 70프로를 차지하는 수산화 인회석이라 불리는 인회석 덕분이라고 한다. 실제로 실험에 의하면 얼만 조각만한 다리뼈의 일부는 4천 킬로미터의 하중을 견뎌냈다고 한다. 또한 이 미네랄 무기질 덕분에 공룡처럼 수천만년 전에 지구상에 살았던 동물의 뼈가 그대로 발견된다.



골다공증에 대한 설명도 골다공증에 대한 상식적 이해를 돕는다. 뼈는 조직이 촘촘한 치밀골과 조직이 엉성한 해면골의 두 종류로 되어 있는데, 해면골은 어깨와 팔이 만나는 부분이나 팔꿈치 무릎 같이 뼈와 뼈의 연결부분으로 일상생활에서 걷거나 뛰면서 생기는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치밀골은 종아리와 팔 뼈와 같이 기다린 부분의 뼈의 겉부분으로 매우 딱딱하며, 웬만한 충격에는 끄덕없도록 강하다. 즉 긴 뼈대는 치밀골 그 긴 뼈대의 연결부위의 둥근 부분은 해면골이다. 해면골은 그물 모양으로 얼기설기 되어 있는데, 골다공증이 진행되면 해면골의 그물이 매우 성근 그물처럼 엉성해지는 것으로,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뼈에 실제로 구멍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뼈가 가늘어 지면서 그 원래 있던 구멍이 점점 더 커지는 현상으로, 이렇게 뼈 속 구조가 성글면 당연히 뼈가 약해지고 그래서 엉덩방아나 넘어질 때 팔을 짚는 것 같은 작은 충격에도 부러지게 되는 것이다. 


 


골다공증은 파골세포가 뼈를 먹어 없애버린 자리에 조골세포가 빠른 속도로 뼈를 다시 만들지 못하면서 시작된다. 따라서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이 가장 흔하게 발생되는 부위는 뼈와 뼈가 이어지는 해면골 부위, 손목 부위의 아래팦뼈, 골반과 허벅지뼈가 이어지는 부분, 척추뼈 등이다. 그리고 중년 여성에게 골다공증이 더 많이 생기는 이유는 폐경기를 거치면서 에스트로겐 분비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지배적인데, 에스트로겐이 파골세포의 분비를 억제하는 영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미 생긴 골다공증은 치료가 불가능하고, 파골세포의 생성을 억제한다고 추정되는 에스트로겐을 투여하거나, 부갑상선 호르몬을 투여해 뼈의 재형성을 촉진시키는 것이 방법이다. 


 


몸속의 주요 필요 성분인 칼슘이 모자라면 몸은 뼈 속에 들어 있는 칼슘을 마치 적금을 깨서 생활비로 쓰듯 뼈에서 칼슘을 야곰야곰 가져다가 쓴다. 부갑상선 호르몬이 조골세포에 달라붙으면 파골세포는 부갑상선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뼈를 부수어 칼슘을 내놓는다. 따라서 부갑상선 호르몬이 과다하면 파골세포가 더욱 왕성하게 작용한다. 부갑상선 기능항진승 환자는 뼈의 양이 계속 줄어들 뿐만 아니라, 혈관이나 신장에 칼슘이 과도하게 쌓이면서 요로 결석과 신경계통의 장애를 가져온다고.



 


내용은 이쯤. 이 책의 가장 장단점을 꼽자면 비전공자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매우 쉽게 풀어쓴 점을 꼽는다. 다양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술술 쉽게 이해하면서 읽어내려갈 수 있도록 서술한 점은 일반 독자를 위한 대중 과학서적을 쓰는 전공자들에게 모범을 보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간간히 섞인 저자의 경험은 지나치지 않으며, 주제를 비교적 자세히 다루는 것 같은데도 쉽게 읽히는 장점을 가진 것이다. 리뷰에 연급하지 못한 재미있는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인류학에 있어서 유전자 및 동위원소 관련 내용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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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우 《에릭직톤의 초상》

시간이 검증한 한국 작가의, 시간이 검증한 작품을 첫 번째 소설로 꼽는다. 지난 달, 두 권의 장르 소설을 읽느라 끝날때까지 긴장하느라, 뇌가 한쪽으로 쏠려 피곤했다. 소설 속 하나의 문장으로서만으로도 책읽기의 유희가 될 수 있는 이승우님의 책은 무엇을 들어도 만족스럽지만, 위대한 작가의 청춘의 고뇌가 고스란히 엿보이는 단 하나의 자전적 소설은 언제라도 누구의 작품이라도 실망한 적이 없다.


2. 아모스 오즈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 2

이스라엘의 우파 시온주의자 배경인 작가가  현대 이스라엘 건국과 중동전쟁을 겪었으면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공존을 주장하는 사상을 갖는다면 어떠한 스토리가 나올까.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영화로 나왔다는데, 영화화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서사 자체가 재미있다는 소리인데, 많은 문학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니 기대된다. 사실과 허구가 어우러진 자전적 소설.


3. 앤타일러 《파란 실타래

《종이시계》로 퓰리처상 수상작가의 소설. 파란 원색 실타래가 커다랗게 놓여있는 표지가 강렬해서 봤는데, 마침 퓰리처상 작가였다는, 출판사의 책소개가 부실해서, 읽기 전까지는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하였다니 기대충만이다. 

 

4. 백민석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에이바님과, Breeze님의 동시 추천으로 약간의 검색질을 해보았는데 2003년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다. ‘의도된 괴팍함’을 즐겨 사용하는 특이한 작가, 전반적으로 ‘엽기적’이고 끔찍하며, 근친상간, 집단성교, 동성애, 수간, 납치, 살해, 암장 등 제도화 된 권위를 파괴하는 문학적 장치가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는 서울대 2003년 대학신문 기사의 한 대목이 눈에 띈다. 절필과 복귀에 담긴 사연은 잘 모르겠으나, 이 작가의 세계가 더욱 궁금해졌다.

 

5. 나나 게오르게 《종이약국》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어디가 아픈데,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으로 치유를 할 수 있다는 발상.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책이 소재가 되고, 책이 배경이 되는 책들에 대해서 쉽게 매료된다. 그래서 무조건 고






































한 달 쉬는 바람에 놓친 책들.


 힐러리 맨틀 《혁명극장 1,2》

이상하게 페이퍼가 별로 없어 확인해보니 10월 출간. 아쉽아쉽. 다시 뺀다. 여성 최초의 맨부커상 수상자, 최초의 두 번의 맨부커상 수상자가 쓴 역사소설. "세 명의 젊은 혁명가 로베스피에르, 당통, 데물랭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로베스피에르가 오랫동안 믿고 사랑했던 친구이자 혁명 동지인 데물랭과 당통을 단두대로 보내는 파국의 순간까지를 다룬다"는데,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가. 


**  잭 캐루악 《다르마 행려》

아니 이 책도 10월 출간. 아쉽아쉽. 대표작인 길위에서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신간을 반가와 한다는 게 웃기지만, 비트 세대의 감각을 체험하자는 의미에서. 더욱이, “케루악을 끊임없이 방황하게 했던 문학적.종교적 고민들과, 훗날 전설처럼 남은 그의 문체와 집필 방식, 자신의 세대와 신과 인생에 대해 느낀 경외감을 진솔하고 유쾌하게 써내려간 이 작품은, 삶의 불빛이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하는 작가가 남긴 눈부신 시절의 기록이다.”라는 소개가 작품속으로 손짓한다. 아 나는 왜 방황이라는 말이 자주 설레는가.


 

***. 필립로스의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의 책이 요 몇년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데, 아니 왜 그동안은 안나왔던 건가 의아하지만, 어쨌든 나올 때마다 신간평가단에 선정되었었다. 포트노이드의 불평을 읽은 사람들은 별점도 짜게 주고 포트노이처럼 불평이 많았지만, 나는 좋았다. 마리다리외세크의 가시내와 포트노이가 둘이 만나면 잘 맞는 한 쌍 일듯한 느낌인데, 둘이 다른 시대를 살았구나. 포트노이드의 불평의 계보를 잇는다기에 빼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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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12-01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작품은 이렇게 읽고 싶은 목록 올리면 수준높아 보이고 느낌 좋은데 역사쪽을 이렇게 올리면 뭔가 우중충하고 오타쿠같아요...^^

CREBBP 2015-12-01 23:14   좋아요 0 | URL
역사라는 게 원래 좀 우중충한 구석을 캐야 뭐가 나오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요. 그래도 역사 쪽은 인문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한 오타쿠들을 결집시킬수 있지 않나요
 

1. 이승우 《에릭직톤의 초상》

시간이 검증한 한국 작가의, 시간이 검증한 작품을 첫 번째 소설로 꼽는다. 지난 달, 두 권의 장르 소설을 읽느라 끝날때까지 긴장하느라, 뇌가 한쪽으로 쏠려 피곤했다. 소설 속 하나의 문장으로서만으로도 책읽기의 유희가 될 수 있는 이승우님의 책은 무엇을 들어도 만족스럽지만, 위대한 작가의 청춘의 고뇌가 고스란히 엿보이는 단 하나의 자전적 소설은 언제라도 누구의 작품이라도 실망한 적이 없다.


2. 아모스 오즈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 2

이스라엘의 우파 시온주의자 배경인 작가가  현대 이스라엘 건국과 중동전쟁을 겪었으면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공존을 주장하는 사상을 갖는다면 어떠한 스토리가 나올까.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영화로 나왔다는데, 영화화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서사 자체가 재미있다는 소리인데, 많은 문학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니 기대된다. 사실과 허구가 어우러진 자전적 소설.


3. 앤타일러 《파란 실타래

《종이시계》로 퓰리처상 수상작가의 소설. 파란 원색 실타래가 커다랗게 놓여있는 표지가 강렬해서 봤는데, 마침 퓰리처상 작가였다는, 출판사의 책소개가 부실해서, 읽기 전까지는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하였다니 기대충만이다. 

 

4. 백민석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에이바님과, Breeze님의 동시 추천으로 약간의 검색질을 해보았는데 2003년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다. ‘의도된 괴팍함’을 즐겨 사용하는 특이한 작가, 전반적으로 ‘엽기적’이고 끔찍하며, 근친상간, 집단성교, 동성애, 수간, 납치, 살해, 암장 등 제도화 된 권위를 파괴하는 문학적 장치가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는 서울대 2003년 대학신문 기사의 한 대목이 눈에 띈다. 절필과 복귀에 담긴 사연은 잘 모르겠으나, 이 작가의 세계가 더욱 궁금해졌다.

 

5. 나나 게오르게 《종이약국》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어디가 아픈데,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으로 치유를 할 수 있다는 발상.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책이 소재가 되고, 책이 배경이 되는 책들에 대해서 쉽게 매료된다. 그래서 무조건 고






































한 달 쉬는 바람에 놓친 책들.


 힐러리 맨틀 《혁명극장 1,2》

이상하게 페이퍼가 별로 없어 확인해보니 10월 출간. 아쉽아쉽. 다시 뺀다. 여성 최초의 맨부커상 수상자, 최초의 두 번의 맨부커상 수상자가 쓴 역사소설. "세 명의 젊은 혁명가 로베스피에르, 당통, 데물랭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로베스피에르가 오랫동안 믿고 사랑했던 친구이자 혁명 동지인 데물랭과 당통을 단두대로 보내는 파국의 순간까지를 다룬다"는데,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가. 


**  잭 캐루악 《다르마 행려》

아니 이 책도 10월 출간. 아쉽아쉽. 대표작인 길위에서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신간을 반가와 한다는 게 웃기지만, 비트 세대의 감각을 체험하자는 의미에서. 더욱이, “케루악을 끊임없이 방황하게 했던 문학적.종교적 고민들과, 훗날 전설처럼 남은 그의 문체와 집필 방식, 자신의 세대와 신과 인생에 대해 느낀 경외감을 진솔하고 유쾌하게 써내려간 이 작품은, 삶의 불빛이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하는 작가가 남긴 눈부신 시절의 기록이다.”라는 소개가 작품속으로 손짓한다. 아 나는 왜 방황이라는 말이 자주 설레는가.


 

***. 필립로스의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의 책이 요 몇년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데, 아니 왜 그동안은 안나왔던 건가 의아하지만, 어쨌든 나올 때마다 신간평가단에 선정되었었다. 포트노이드의 불평을 읽은 사람들은 별점도 짜게 주고 포트노이처럼 불평이 많았지만, 나는 좋았다. 마리다리외세크의 가시내와 포트노이가 둘이 만나면 잘 맞는 한 쌍 일듯한 느낌인데, 둘이 다른 시대를 살았구나. 포트노이드의 불평의 계보를 잇는다기에 빼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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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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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빠르게 지나간다. 책 속의 글씨들은 내 생각의 물꼬를 터 주며 보이지 않는 저자의 영혼과 소통하고 교류하고 때로 대치하기도 타협하게도 만든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들은 참으로 찰라적인 순간에 이루어지고 흔적없이 사라진다 휘발되면 없어질 생각들. 산적한 일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호시탐탐 책읽을 기회만 엿보며 살아가고 있지만 책을 읽을 때의 즐거움은 나의 생각이 오래 전에 읽은 다른 책들과 또 오래전에 보았던 풍경들, 사람들과 만나서 나누던 이야기들, 그리고 수 없이 많은 보고 들은 것과 경험한 것들로 이루어진 기억의 신경망이 책 속의 글씨들과 새롭게 조우하면서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는 그 연결과 만남의 순간이다. 아쉬운 건 스치듯 지나가는 그 짧은 생각과 생각의 만남은 언제나 흔적도 없이 휘발되어 날아간다는 것이다. 잊어버릴 걸 뭐하러 읽나. 생생한 감정과 결합함으로써 쌓이는 경험은 우리에게 오랜 기억을 주지만 책에서 만난 추상적 생각들은 그 아무리 대단한 깨달음과 진리라 하더라도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책을 읽으며 만들어낸 지적 감정적 생산물은 유효기간이 짧다. 유효 기간이 지난 글자들은 안개같은 망각 속을 떠돌며 무언가를 기억하려 하는 순간마다 좌절감을 준다. 유비쿼터스라는 말조차 이미 식상해질만큼 터치 한 번으로 언제 어디서건 원하는 걸 찾을 수 있는 스마트폰 세대에 적응된 자연스러운 기억의 퇴화라고 해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읽음에서 생기는 지식과 생각의 결실을 망각으로부터 구제하고픈 바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 만의 바람이 아니었고, 기억을 잃어버린 스마트폰 세대의 고민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오감하는 짧막한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디지털 도구들을 이용하고 있듯 옛 사람들도 그 시대에 그들이 가진 수단인 붓과 먹으로, 물꼬를 튼 생각의 결을 놓치지 않고 간직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적었다. 펜과 종이가 넘쳐나고, 키보드와 터치화면이 아주 작은 일상까지도 꾸역꾸역 삼키고 쏟아내는 이 시대의 상식으로는 그 옛날에도 메모라는 게 가능할까 의아해지지만 그들은 적었다. 책 속에 숨겨진 고결한 뜻을 이해하는 그 찰라의 순간을 붙잡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물을 떠와 먹을 갈았을 것이다. 먹을 가는 일은 메모앱을 띄우기 위해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는 손안의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켜는 일만큼 간단하지 않다. 벼루에 적당히 물을 넣어주고 정성을 다해 갈아야 한다. 먹의 까만 잉크가 물과 합쳐져 글씨를 쓰기에 적당한 농도가 되기까지의 시간은 분과 초 단위로 세계 곳곳과 통신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선뜻 상상할 수 없는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책과 별지에,그리고 때로는 나뭇잎에 적고, 먹과 오징어 먹물까지 이용했다. 시대를 상상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 남긴 선물이다.


여행을 할 때, 그들은 그 무거운 돌덩어리 벼루와 붓과 물을 싸서 이고 지고 다녔다. 연암이 쓴 열하일기의 그 생생한 이국 풍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의 감정, 그것은 기억의 한계가 완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작가는 말을 멈추고 '휴대용 벼루를 꺼내 급히 갈아 외무릎을 세우고 앉아' 메모하는 연암을 상상했다. 우리가 멋진 풍광에 감탄하고 찍고 공유하고 올리고 하는 행위들을 하는 것처럼,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휘발되기 전 포착하고 싶었던 선조들이 말에서 내려 먹을 가는 모습은 시대를 떠나 호모 사피엔스로서 공유하는 유전자를 떠올린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책에 대한 책에 매료된다. 책에 관한 이야기여도 좋고, 책을 좋아하던 사람에 관한 이야기여도 좋다. 출판 시장과 중고서점 탐험기도 좋고, 발터 뫼르스의 소설처럼 책으로 가득한 도시를 상상한 판타지까지, 책을 소재로 하는 어떤 책이라 해도 동질감을 느낀다. 이 책은 정민 선생이 고서적에서 발견한 옛 선인들의 책사랑 이야기들이다. 


한중일의 장서인 비교가 흥미로웠는데, 오늘날에도 중고책을 구입했을 때 전주인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하는 것처럼 고서에서도 한국인은 책의 장서인 부분을 오리고 붙이는 등의 훼손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주인의 흔적을 없앤 데 비해, 중국에서는 책을 거친 개인의 흔적을 장서인을 통해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누구의 장서인이 찍혀져있느냐에 따라 고서적의 가치가 변하는 것이다. 가난했던 선비들이 서로 책을 빌려 보고, 열손가락 모두 동상에 걸려 피가 터질 지경에도, 책을 필사하여 생계를 꾸리던 선조들의 눈물겨운 사연, 연중행사로 습기차 굽굽한 책들을 모두 꺼내 뽀송뽀송하게 말리던 어느 바람불고 화창한 날 풍경, 시대를 초월한 모기들의 괴롭힘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이조함의 <속함해> 책 곳곳에서 박제된 모기들 모습, 책벌레가 책에서 신선이라는 글자를 세 번 파먹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맥망이 된다던 전설, 책을 읽으며 여백에 깨알같이 적은 생각이 책장 밖으로 넘쳐 흘러 주렁주렁 메모지를 봉지 메달 듯 달고 있는 고서적들을 보면서 한없이 친근감을 느낀다.


<독기>와 <옹기>를 쓴 명나라 사람 오승백의 메모법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에 허우적 거리는 오늘날의 현대인에게도 참고할만한 방식이다. 항아리나 궤짝을 항상 두고 있다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그 안에 던져두는 것이다. 메모가 쌓이면 분류와 손질을 거쳐 한 권의 책이 된다. 책을 읽으며 스치는 생각들은 책에서 읽은 지적 활동을 기둥삼고 있으므로 탄탄하고, 생각을 확장시키고 붙잡아 맬 수 있는 단단한 근거를 지닌다. 그런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면 재분류와 여분의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엮은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벗삼고 책으로 인생을 풍미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책에서 찾는다. 책에 남긴, 옛 사람들의 사상과 때로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그들의 깨알같은 일상과, 책 속에 깨알같이 적어놓은 파리 머리만한 크기로 적어놓은 메모들은 끝내 우리의 궁금증과 상상력에 한 줄기 빛을 던진다. 죽이고 죽여 권력을 쟁취해서 생긴 부스럼들과 그 권력의 필요에 따라 옷을 갈아입은 사회 제도만이 역사였던가. 나는 희화화된 왕위쟁탈전과 오락화된 암투가 주축이 된 역사에는 흥미가 없다. 혜원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올 것 같이 생생한 그들 삶의 핍진함을 재생한다면 거기에 다소 상상력이 섞여 있어도 좋다.


오래된 것들은 사라져간다. 이미 사라졌고 지금도 꾸준히 사라져간다. 세대가 바뀌고 희미한 자취만 남았을 때에 비로서 우리는 버려졌던 것들을 불러 내어 상품화된 향수로 집단의 기억을 재생산하고 또 소비한다. 많은 사라져갔던 것들 중엔 우리 세대가 다시는 향유하지 못할, 정겨운 일상 속 풍경들이 있다. 이 책은 상세하고 정겨운 곳으로 시간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책벌레 선조들의 읽기와 쓰기 습관을, 상상과 억측이 아니라 직접적인 근거로 제시된 고서들의 해석을 통해 들여다보는 일은 벅찬 행복감과 즐거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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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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