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과 2015년 읽은 책을 표로 만들어서 분류하여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2015년에 읽은 책은, 해외문학, 국내문학, 인문, 과학, 실용, 수필, 예술 분야로 나누었습니다.  자기계발 및 요리 등은 실용에 넣었고, 만화를 비롯하여 스토리가 있거나 시 분야는 문학파트에 넣었고, 기타 소설 외의 에세이, 산문 등의 글은 수필로 분류하였습니다. 


리뷰쓴 것만 전체 196개로 나오는데, 중복으로 쓴 것이 몇몇 개 있고, 책만 읽고 리뷰를 안쓴 것을 퉁치면 대략 그정도 선의 책을 읽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태어나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해입니다. 


과학책을 많이 읽기 시작한지가 2015년부터이기 때문에 작년에 읽은 과학책의 갯수 43권 대부분은 모두 제게는 신선했고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출판사별로 다시 재분류를 해보았는데, 김영사의 책을 가장 많이 읽었고(5권) 사이언스북스, 해나무, 에이도스, 시공사가 각각 2~3권 외에는 모두 여러 출판사의 책들을 골고루 읽었습니다. 김영사의 책 5개 (<마음의 미래> - 미치오 카쿠, <생명 그 자체> -프랜시스 크릭, <수학, 생각의 기술> -박종하 저,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최준식,지영해 공저,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 - 샤론 모알렘) 모두 유용한 책이었고, 그 중 두꺼웠던 미치오 카쿠의 마음의 미래는 미래를 움직이게 될 가장 핫한 최근의 과학 기술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매우 쉽고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기술한 점이 매우 좋았는데, 그 방대한 양을 문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선도하는 기술 과학자들과 직접 인터뷰하여 일상언어로 기술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랜시스 크릭의 생명 그 자체, 박종하의 수학 생각의 기술, 그리고 샤론 모알렘의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 모두 인상적이었으나, 외계지성체의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는 과학적 논의를 한다기 보다는 근거없고 허황된 생각들을 풀어놓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 중반에 나온 <과학수다>1,2는 몇명의 전문가가 최신 과학에 대해 수다를 늘어놓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었는데 전문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서로 조금씩 분야가 다른 사람들이 특정 주제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노는 것을 그대로 캡쳐한 듯한 텍스트가 매우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해나무에서 나온 책중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는 샘킨의 사라진 스푼을 읽고 인상깊은 글빨에 반해 산 책이었는데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생명공학과 관련된 지식의 역사를 재미있는 스토리와 함께 소개합니다. 같은 출판사의 <백미러속의 우주>는 제게는 어려운 책이었지만, 그 텍스트를 읽는 내내 뭔가 깊이 있는 진실에 근접해가는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때로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래도 대략 읽을만한 책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책이었습니다.  그 밖에 에밀리 앤더스의 <프랑켄슈타인의 고양이>, 진주현 박사의 <뼈가 들려준 이야기>, 대니얼 J 레비틴의 <정리하는 뇌>, 팀 버케드의 <새의 감각>, 이정모 님의 <공생, 멸종, 진화>, 랜들 먼로의 <위험한 과학책>을 추려봅니다. 반대로, 명성에 비해 실망한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예를 들어 김대식박사의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은 깊이없는 사색이 헛되이 허공에 맴도는 느낌이었고, <사물인터넷 실천과 상상편>은 기획도서의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느낌이 들만큼 저자들 사이의 일관성이 부족했습니다. 




























국내문학(주로 소설)은 총 29편 정도 읽었는데, 어쩌다보니 장강명 작가의 책을 가장 많이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 구병모의 <그것이 나만이 아니기를>,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편혜영의 <선의 법칙>,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광재의 <나라없는 나라> 가 기억에 특히 남습니다. 해외문학을 국내 문학보다 훨씬 많이 읽었군요. 총 56권 읽었습니다. 동시대 작가보다는 고전을 주로 많이 읽다보니 2015년 출판된 책 중 인상 깊었던 책은 찾기 어렵군요. 올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던 <오베라는 남자>, <공허한 십자가>, <걸 온더 트레인>. <비포 아이고>,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재미면에서, 감동면에서, 문학성 면에서 비슷비슷했습니다. 쉽게 잘 읽히고 그럭저럭 재미있으나, 그걸로 끝인 책들이지요.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몹시도 좋아하게 된 책 몇 권을 꼽아보겠습니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리모노프>, 장미쉘 게나시아의 <구제블눙 낙천주의자 클럽>,  무라카미 류의 <55세부터 헬로라이프>.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입니다.  올해의 책으로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꼽습니다. 읽을 때는 지루했으나, 두고두고 생각나는 책이 한권 있는데 가주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입니다. 하퍼 리의 파수꾼이 엄청 화제가 된 해였는데, <앵무새죽이기>를 한 학기 동안 영문으로 독서토론을 하면서 매우 디테일하게 읽어 내려가는 동안 국내 번역판을 빠르게 읽는 것으로는 전혀 눈치도 채지 못했던 많은 의미들을 캐면서 하퍼리의 천재성에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친정집에 갔더니 오래된 판이 있어서 읽어봤더니 번역이 이번에 개역된 열린책들 판 보다 훨씬 감칠맛이 있더군요. 다른 번역자였습니다. 하지만 <파수꾼>에는 실망했고,  오에 겐자브로의 익사는 읽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수필, 실용, 예술 책들을 통틀어 기억에 남는 책은, 시리얼이라는 잡지책과 <힐러리 로댐 클린턴>, 이명옥의 <욕망의 힘>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책이어서 인문 분류에 속한 책도 많지만 어쨌든 인문서들은 총 38권 정도로  해외문학, 과학서적 다음으로 많이 읽었습니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책공장 베네치아>, <세계신화여행>, <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고종석의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 김형수의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이진숙의 <시대를 훔친 미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꼽습니다. 모두 매우 훌륭한 책이지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또다른  2015년의 올해의 책으로 주저 않고 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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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16-01-20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많이 배웁니다^^

CREBBP 2016-01-26 13: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세계사 공부의 기초 - 역사가처럼 생각하기
피터 N. 스턴스 지음, 최재인 옮김 / 삼천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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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역사적 사실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계사의 역사적 인식은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갖추어야 할 총체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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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프 - 술의 과학 사소한 이야기
아담 로저스 지음, 강석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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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호오 애주가들에게 필독서가 되겠네요. 효모의 탄생과 술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 그리고 술과 관련된 과학적인 사실들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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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6-01-06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술꾼으로서 꼭 읽어야 할 책이군요.

CREBBP 2016-01-06 20:3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는 술꾼은 아니지만, 옆에 술꾼이 있어서. 읽으려고요~

붉은돼지 2016-01-06 1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혹시 호모가 아니라 효모 아닌가요? ㅋㅋㅋ

CREBBP 2016-01-06 20:3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아 진짜, 웃겨서.. 제가 눈이 안좋아서 알지도 못했어요~ ㅋㅋ 감사감사
 
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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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서 윤곽이 확실하지 않은 여자 해리엇, 근엄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남자 데이비드. 파티를 싫어하는 두 사람은 파티에서 만난다. 자유와 낭만이 들불처럼 번지던 60년대에 보수적인 두 사람의  만남과 결혼. 커다란 3층짜리 빅토리아풍의 대저택을 장만하고, 아이를 여덟 정도 낳고, 시끌벅적한 집에서 사람들의 떠들석함으로 풍족함을 채우는 행복을 계획한 그들의 삶은 딱 그들이 원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와 각종 명절에는 사돈의 팔촌까지 떼로 몰려와 몇일 몇주고 그들의 떠들석하게 지냈고, 예쁘고 사랑스런 아이들은 많은 사촌들과 이방 저방 오가며 최고로 기억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부와 지(知)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모두 제공하는 데이비드의 이혼한 부모들의 양쪽 세트는 각기 아버지쪽 부모들은 엄청난 주택대출금과 또 엄청난 양육비용, 그리고 어마무시한 명절 식재료비들은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가 부담했고, 데이비드가 추구하는 지적인 대화는 어머니 쪽 세트와 통했다. 그리고 양육은 혼자 된 해리엇의 친정엄마가 아예 붙박이로 눌러 앉아 도와준다. 큰 살림에 따른 경제적 육체적 부담에 때로 자잘한 우려와 근심과 피곤이 따라다녔지만, 그들의 행복은 아이가 여덟명이 아니라 열여덟명이 태어나더라도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다섯째 아이가 잉태되기 전까지 말이다.


베토벤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만일 어느 순간, 어떤 파트의 어떤 악기 하나가 음 하나를 틀리게 낸다면 대개의 경우 평범한 우리들은 아마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지 꽤 되었는데,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 받은 느낌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감정 처리를 하지 못하고 리뷰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일 후성유전학에 관련된 저 베토벤의 비유를 읽자 다섯째 아이 벤이 가진 유전학적 차이는 어쩌면 사실은, 유전 정보가 만들어내는 인간의 특성이 베토벤의 심포니보다 수천 수백만배 이상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음 하나의 차이만큼도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작은 차이에도 벤이 그렇게 끔찍한 괴물이 된 것은, 후성유전학적인 것과도 관계가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다. 바라고 원해서 잉태된 다른 네 명의 아이와는 달리 다섯째 아이 벤은 처음부터 원했던 게 아니었다. 줄줄이 연이은 아기들의 양육을 힘들어 하던 해리엇이 다음 아기는 조금 텀을 두고자 생각했을 때, 원치 않은 순간에 생겨났다. 새 생명이 잉태되는 그 순간의 거부, 그것이 유전자의 스위치에 어떤 영향을 줄 지도 모르지 않는가. 수정의 순간, 착상의 순간, 세포 분열의 각 순간 순간마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간절함, 그 새생명에 대한  거부로 인해 생기는 알 수 없는 호르몬과 유전자들 상호작용들로 인해 유전자 정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화학적 표식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최대의 자구책으로서, 인간에게 숨어있던 태초의 선사시대 유전자를 활성화시켰을 지도 모른다. 


원하지 않던 태아의 커다란 몸집과 지나치게 격한 발길질로 고통을 느낀 산모에게 아이는 이미 비정상으로 간주되었던 건 아닐까. 해리엇이 의사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기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병명을 얻어냈다면 해리엇은 보다 편했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는 아프잖아. 아프기 때문에 그런 거잖아. 그렇게, 아기의 이유있는 발길질은 그녀에게 어떤 위안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훗날 아기가 태어나고, 괴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 있을 때, 다운증후군인 조카를 부러워하는 해리엇의 모습은 자신의 아들 벤이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인가를 알게 해준다. 다운증후군은 다운증후군이라는 명칭 아래 안전하게 보호되고 설명된다. 해리엇은 그런 것을 원했을 것이다. 무언가 설명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것. 그러나 전문가에게 정상으로 보이는 아기는 어떤 병명도, 어떤 장애의 표식도 얻어낼 수 없었으며, 태아에게 돌아간 건 치료가 아닌 아기를 잠들게 만드는 진정제일 뿐이다. 축복같은 선물인 태아의 발길질, 그러나 가장 피곤하고 힘든 시기에 아기를 원치 않는 산모의 바람을 거스르고 잉태된 이 건강하고 드센 아이는 삶을 향한 움직임을 저지당한 채 자주 진정제로 잠재워지면서, 모든 감각은 생존을 위해 원시적 투쟁 본능을 강화시켰을 것이다. 


아이 벤이 태어난 후에도 해리엇은 아이의 행동에 이유를 붙이고 싶어했다.  벤의 존재로 인해 '가여운' 사촌은 사랑스런 존재가 된다. 웃지 않는 아이, 사람을 해할 것 같은 무서운 눈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득히 멀기만 한 아이. 다른 아이들을 해칠까봐 철창에 가두어두어야 하는 아이. 집안에서 아이의 존재는 마치 공포 영화 속의 섬뜩한 악마를 연상케 한다. 태어나자 마자 아기는 지나치게 크고, 엄청나게 먹어대고, 산모의 젖꼭지를 지나치게 강하게 빨고  씹어 멍들게 만들고, 역시 아기인 형제를 다치게 만들고, 개와 고양이의 살해 혐의를 받으며, 악의에 찬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본다.  부모와 다른 아이, 형제와 다른 아이, 주변인과 다른 아이 벤은 주변은 물론 친모가 볼 때조차도 괴물이다. 


아이는 한 때, 보호 시설에 맡겨지고, 잠시나마 가족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행복을 되찾지만, 친모인 해리엇만은 아이를 확인하고 싶어하고 결국 그 '보호시설'이라는 죽음의 공간에서 아이를 구해온다.  비록 임신 중, 아이의 거센 움직임 때문에, 아이를 가장 처음부터 저주한 사람도 엄마이지만, 아이와 가족 사이에 남은 것은 오로지 모성 뿐이다. 설령 진짜 괴물이라 하더라도 엄마는 내 속으로 낳은 자식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피가 섞인 다른 가족이 모두 외면하고 버려두더라도 엄마만은 그럴 수 없다. 가족을 깨고 행복을 깨고 희망의 모든 끈들을 끊어버린 존재. 그래서 무섭고 밉지만, 모성애란 그런 것이다. 아이를 죽음으로부터 구해 낸 해리엇에게 향한 모든 사람들의 비난의 시선은 아이의 존재만큼이나 매정하게 묘사된다. 그들이 맡긴 그 보호시설이라는 곳은 사실상 친부모가 버린 아이를 조용히 죽도록 방치하는 곳으로, 아이를 맡긴 친부모나 보호자들은 그곳을 방문조차 하지 못하도록 계약된 곳이다. 차마 말로 옮길 수 없을만큼 끔찍한 곳이다. 우여곡절 끝에 똥오줌에 범벅이 된 채 강력한 주사제로 거의 주검처럼 방치된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온 해리엇에게, 이제 막 벤의 존재로부터 자유로와져서 행복을 되찾아가고 있는 모든 가족들과 친척들로부터 비난과 질타를 받는 해리엇의 고독과 외로움과 스스로 택해야 했던 그 불행과 선택에 마음이 시려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누군가가 해야했을 일이라고 주장하는 해리엇, 벤의 재등장으로 인한 가족의 분열. 거기서 죽도록 내버려두었어야 했는데, 살려서 데려왔다는 이유로 모든 가족은 해리엇에게조차 등을 돌린다. 이제 모든 것은 해리엇의 책임이다. 벤은 모두를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벤 때문에 가족들은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벤이 싫어 부자인 할아버지가 등록금을 대는 사립 학교로 전학을 가고, 벤이 싫어 엘리트인 할머니와 양할아버지 집으로 가고, 벤이 싫어 다운증후군 사촌을 돌보기 위해 이모 집으로 가고, 벤이 싫어 아버지의 역할을 버리고 직장과 일에 파묻혀 지내고, 벤이 싫어 딸을 돌보던 친정 엄마가 외면을 한다. 명절마다 수십명이 테이블 가득가득 모여 떠들석하던 빅토리아식 대저택은 어둡고 음침한 장소가 되고 해리엇과 데이비드 가족은 벤의 존재로  모든 관계의 중심에서 멀어져간다. 


엄마는 아들을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아이 역시 그 적대적인 표정 속에서 무언가를 이해하려 하는 듯하다.  20세기 윤리의식을 이해하려 하는 선사시대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 해리엇은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과는 그 무언가도 교감할 수 없는 인간 아닌 인간. 그가 가진 그 선사시대의 유전자는 거친 자연과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는 원시적 생존 경쟁에서 생겨난 유전자로, 우리가 이제 더는 우리가 우리를 인간이라 부르고 교감하고 공감하고 하는 것들의 가치에는 필요 없어진, 그래서 아마도 유전자 표식의 저 어둡고 깊은 곳에서 몸을 숨긴 채, 꺼져 있던 생명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일 지도 모른다. 


벤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그런데 벤이 어떤 형태로든 어울리는 세상이 있다. 하릴 없어 정원을 돌봐주던 한량, 동네 깡패들, 학교를 밥먹듯 빠지고, 몰려다니며 문제를 일삼는 청소년들. 아이돌보미와 친정 엄마도 손을 들고 떠난 그곳에서 해리엇은 아이를 동네 건달들 손에 맡기고, 집을 떠나 있도록 한다. 동네 건달들의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어린 벤의 하루는 무엇일까. 어째서 가족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벤은 동네 건달들에게는 받아들여지는 존재였을까. 벤은 단지 해리엇과 데이빗이 규정하고 추구했던 그 '행복'이라는 틀 안에서 벗어난 조금 다른 인간이었을까. 


그렇다면 백인 사회의 흑인, 이성애자 사회의 동성애자, 키큰 사람들 속의 난쟁이들, 부자들의 동네에 이사온 가난한 소녀 등과 같이 그저 다수와는 다른 소수였던 건 아닐까. 우리가 옳다고 규정한 것들, 현대인이 당연시되는 모든 교감과 언어의 틀 안에는 어떤 종류의 편견이 괴물과 인간 사이를 가르고 있는 걸까. 우리가 알고 당연시 여기는 것들의 틀 속에 전혀 맞지 않은 아이, 그래서 의사도 그 어떤 전문가도 병명을 말해줄 수 없던 아이, 해리엇이 힘들어 한 건 아이가 그 어떤 전문가에게서도 어떤 뚜렷한 '병명'을 받아낼 수 없었고 학교에서조차 너무 평범한 아이여서 큰 말썽조차 없는 정상인의 범주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괴물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이질적인 것들을 배척하고 동질의 순수한 것들끼리 어울려야 한다는 인간의 강박적 윤리의식이, 밤하늘의 별만큼보다 헤아릴 수 없는 유전자의 조합 속에 단지 한 가닥 다른 꼬임이 만들어 낸 차이를 괴물로 인식하도록 오랜 세월에 걸쳐 합의해왔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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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06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나서 그 충격이 오래 갔던 작품이었어요. 당시 막 사춘기를 맞아서 엄마 말 안듣던 아들과 오버랩이 되면서... `너만 잘하면 우리 가족은 행복할텐데...`라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너무 뜨끔해졌던 소설이었죠. 오랜만에 리뷰를 다시 읽으니 그때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네요.

CREBBP 2016-01-06 17:36   좋아요 1 | URL
뱃속에 있을 때부터 느끼는 그 섬뜩함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계속되는 게, 작품의 대단한 그로테스크함을 이렇게 가정적인 소설안에 넣을 수 있다는 신선함을 느꼈어요.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같이 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알고보니 작가가 SF도 많이 쓰셨다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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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백준.정도현.김호광 지음 / 한빛미디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기대되는 책입니다 직업상 프로그래머를 주제로 한 가벼운 톡이라고 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기술적 이야기도 나눈다니 유용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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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2-3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guiness님, 쓰신 페이퍼를 읽고 뭐라 쓰면 좋을지 몰라서, 잘 읽었습니다, 라는 말을 제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올해가 아주 조금 있으면 지나갈 것 같아요. 내년에는 더 좋은 일들 있으시기를 바라는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도 자주 와서 잘 읽었습니다, 많이 남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REBBP 2016-01-04 16:48   좋아요 1 | URL
늘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한 해 되시길 바랄께요~

2016-01-05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6-01-05 10:27   좋아요 1 | URL
아갈마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너무 오래 집을 비웠군요. 연말마다 길게 제주에서 귀다 오거든요. 모바일 환경이라 그냥 읽기 모드로만 지냈어요. 다섯째 아이는 서재애 올리려던 중 무슨 오천원 준다눈 이벤트가 있어서 응모할겸 같이 도서 리뷰로 읽으면서 서재로 보내기를 눌렀는데 서재로 안보내지고 거기만 덩그마니 남아있내요. 조용히 지내고 싶은 거 그런 거 엄써용~~~. 쉬면서 읽은 책 많아서 올릴 거 대따 많아요. 시끄러워질거 같아요 ㅎㅎ

2016-01-05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6-01-05 22:57   좋아요 1 | URL
조용히 지내봤자 뭐 재미난 일 생기나요. 스끄럽게 지내야죠. ^.^. 앗 참, 저 문학동네서 연말결산 리뷰대회서 대상받았어요. 자랑자랑~

2016-01-05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