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과 죽음이 일치하는 시간. 매에게 토끼의 죽음은 삶이다. 야생의 순수한 생명 그 자체다. 토끼를 죽이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인간이 '길들인' 매는 사냥한 토끼를 빼앗기고 몇점을 먹고 나서 사라진 본체를 알지 못한 채 다시 또 사냥을 한다. 토끼가 살아 도망간다는 것은 야생으로서의 매에게 목전의 먹이를 놓치는 것이고 그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선택지 사이에서 후자다. 야생의 삶은 그것이 법칙이다. 내가 살면 적은 죽고 적이 계속 살면 나는 죽는다. 매에게 사냥은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어야 한다. 살아남은 매 만이 유전자에 복제된 자기를 남길 수 있다. 맹금류가 사는 방법은 반드시 다른 동물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게 자연이고 그게 질서다. 자연을 사랑한가는 것은 생존을 위한 살육까지도 사랑한다는 것을 말한다. 


 나는 부족한 자들의 안식처인 기분좋은 우월감에서 위안을 찾았다.58 

 상처받은 자가 도망칠 곳은 우월감이었을까.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깊은 상실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이해는 보이지않는 어떤 가치가 일치하는 공통의 영역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아버지의 상실이라는 공통분모는 가치를 초월하지 못했다. 그녀는 동물애호가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야생성이라는 자연의 질서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우월감을 확인한 게 아니었을까. 애초 길들이기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그 동물에 감정이입을 하고 참매를 자신의 세계에 데려오기보다는 자신이 참매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해도, 참매는 자유롭지 못했다. 참매는 사냥한 토끼와 꿩을 맘껏 헤처 먹지 못하고, 주인에게 돌아와야 했다. 길들여진 것의 자유는 억압 속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끝까지 그녀의 참매 메이블이 딱했다. 

그녀가 참매를 길들이는 과정을 통해 상실감을 처리한다는 발상은 메이블을 길들인 자신과 반대로 그것에 실패한 화이트와 비교함으로써, 야생을 다루는 것에 대한 철학을 선명하게 두 개의 가치로 나눈다. 그녀는 참매길들이기에 실패한 과정을 책으로 옮긴 화이트의 참매라는 책을 통해 그가 실패하는 과정과 자신이 성공하는 과정을 싱크해서 대조했으며, 화이트가 실패한 이유는 매 훈련을 은유적인 전투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모비딕이나 노인과 바다처럼 참매는 동물과 인간의 문학적 조우였고 이것은 정신을 겨누는 정교도적인 전통과 잇닿아 있었다.61 

내게 매 훈련은 매의 비행을 한껏 즐기는 것일 뿐 그로 인해 생기는 죽음은 즐기는 게 아니었다... 나는 수백 년간 사회적인 특권과 정당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느긋함을 보았다. 256 

그녀도 그걸 인지했다. 매길들이기는 영국인들의 재수없는 특권의식, 귀족의식이 깊이 배어있다는 것을. 또한 매길들이기에는 어쩔 수 없는 살육이 동반하며, 거기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서도 변명을 해댄다. 좁은 우리 안에서 항생제로 범벅이된 먹이를 먹고 자란 육류를 먹는 대신 메이블이 잡은 신선한 토끼와 꿩을 대신 먹고 또한 메이블도 먹는다는 것이다. 빈약한 변명보다는 오히려 떳떳하게 이런 죽음을 즐기는 것이 나았을 뻔했다. 

 매 안에는 후회나 깊은 슬픔이 있을 수 없었다.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 매는 오직 현재에 살았고, 그게 나의 피난처였다. 나는 매의 줄무늬 날개의 움직임에 몰두하는 것으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매 안에 죽음이라는 퍼즐이 붙잡혀 있다는 것을 그 안에 나 또한 붙잡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257 

 날카로운 매의 발톱에 여기저기 긁히고 상처난 몸으로 야생의 들판에서 참매가 잡은 꿩과 토끼를 직접 잡아 먹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 털을 뽑고 뼈마디마디를 부러뜨려 죽이는 헬렌(저자)의 상실의 슬픔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공감할 수는 없었다. 동물을 다루는 방법은 세 가지다. 먹기 위해 사육하는 동물, 살아있는 장난감 혹은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펫으로서 삶의 동반자로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 그리고 자연 그대로 그들이 속한 그 세계 속의 질서를 건드리지 않고 그들은 그들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살도록내버려두는 동물. 앗 하나 더 있다. 신기하니까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동물원에 전시하는 동물. 내 식대로 구분한 이러한 분류 속에서 참매길들이기는 일종의 애완동물이다. 다만 참매의 야생성을 즐기기 위해, 매가 사냥할 수 있도록 날게 하고, 다시 주인에게 되돌아오도록 훈련시키는 것일 뿐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이다. 어린 매 한마리를 데려다가 먹이를 채 먹게 하고, 자신의 주먹으로 날아오게 만드는 전 과정, 그 깨알같은 디테일과 의식 사이를 오가는 망망하고 장황한 감정들, 추억과 상실들. 잊기 위해 다루기 힘든 동물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굴복시키고, 잔인한 것들을 쓸쓸히 묵도하는 것. 문장이 아름답다는 해외 매체들의 극찬에는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 그 극찬들... 가만가만히 읽어보니 구체적이지 않고 피상적이다. '놀랍다. 기적이다.예리하다 전율하게 한다. 대단히 드문일이다. 설렌다. 매혹적이다...' 등등  
나에게는, 참매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는 학대하게 된 화이트의 실패한 참매길들이기나, 자연학자로서, 동물애호가로서, 참매를 잘 이해하고, 메이블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서 매와 하나가 되어 완벽하게 매를 길들인 이 책의 작가 헬렌이나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다. 야생인 자연마저도 인간의 위안에 이용하려는 이기적 인간의 희생양이 된 참매 메이블에게 몇 번의 기회가 생긴다.  헬렌은 온몸을 찢겨가며 메이블을 찾아 온 들판을 뛰고 기어 메이블을 찾아낸다. 나는 메이블이 더 멀리 더 힘차게 날아 더는 나른한 평온이 야생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세계로 치열한 경쟁의 세계속에서 잡은 토끼를 그자리에서 배가 부르도록 먹고 또 멀리 마음껏 날아갈 수 있거나 굶어 죽거나 하는 그 진짜 야생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6-01-30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을 다루는 방법 ㅡ
1. 박제
2. 동물백과사전
3. 뼈 표본 등등 샘플과 특정 기호로 종`을 전시

저는 이 책을 안 읽어서..뭐라 할 말은 아닌데..^^
읽어봐야겠죠..언제고...읽게 되겠죠..^^

우리 선조들 그러니까 고구려 민족이라 해야 하나요?
이들 역시 매를 잘 다루는 민족였다고 해요.
매는 매우 고가의 상품이기도 해서 (훈련이 잘된 매는 특히나) 나라간의 무역품으로도 쓰일 만큼 ..
우리말 시치미 ㅡ시침떼다 ㅡ의 어원이 바로 그 매의 주인이 매에게 달아놓은 표식을 (후에 이게 너무 시장분위기를 해친다하여 금지되니까) 떼는 데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읽었네요.
그러니까 ㅡ 재수없는 영국뿐 아니라...매길들이는데엔
우리나라 역사에도 ㅡ있었다.는 말을 드리고 싶었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하게 읽고 갑니다.
(제 얘기는 뭐..단지 그렇단것일뿐 ㅡ반박이나 그런건 절대 아니어요!~~^^




 
[댓글 부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터넷 원년과 해를 같이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로 수많은 사이트들이 와해되는 것을 보아왔다. 공든탑을 만들려면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지만, 그 기나긴 시간동안 만들어진 특정 사이트의 생태계가 붕괴되는 것은 순간에 가깝다. 국정원 댓글 조작 관련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자주 접했던 커뮤니티 사이트들의 붕괴를 다루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공개/비공개 커뮤니티들의 생태계에 대한 르뽀 차원의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것은 너무 많은 지면을 차지한 단란주점, 텐프로와 같은 유흥업소 내의 야담과 에피소드인 것 같다. 국정원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지만, 배경은 한국 사회의 또다른 어두운 단면인 윤락가의 실태를 함께 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두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제목처럼 댓글부대로서의 각 인물들이 어떻게 진보 사이트들을 붕괴시키고 있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주류보다 더 많은 비주류 인생들이 흘러 흘러 욕망의 가장자리에서 윤락적 행위를 어떻게 팔고 소비하는가에 대한 매우 사실적인 그림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름도 기이한 댓글부대의 세 주인공들은 목에 신분표를 달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향하는 사람들이 죽을만큼 부럽다. 그들은 주류 사회에 밝은 형광등 빛으로 높은 건물의 유리창을 밝히는 대열에 끼지 못하고, 노트북을 들고 대학가와 공공 WiFi 망을 찾아 전전긍긍하던 댓글 알바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분탕질이 진보와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는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을 와해시키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작은 댓글 하나가 만드는 효과는 마치 나비효과와 같아서 생태계 전체를 오염시킨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은 순전히 허구이며,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지만 광우병 촛불 시위와 대선 기간동안 여러 사이트들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을 목격한 나는 이 책에서 작가가 상상이라고 밝힌 모든 사건들은 허구이지만 허구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정말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쌓아온 '네임드'들이 생태계를 지배하고 군림하는 느낌을 받는데, 이들은 숭배의 대상이자 동시에 일부의 질시를 사기도 한다. 만일 어떤 커뮤니티를 실질적으로 매우 잘 리드하고 있는 몇몇 네임드들의 헛점을 찾아 은근슬쩍 한쪽으로 약간의 공격을 하고 그 배후에서 서넛이 맞장구를 치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그 네임드들을 질시하고 맥을 못추던 비주류의 세력들은 힘을 얻어 그동안에 못마땅했던 점들을 끄집어내며 세력을 키운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집단과 그를 저지하는 집단 사이에서는 몇일간의 대대적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리고, 그런 식의 분탕질에 슬금슬금 계속되면, 해당 커뮤니티에서 즐거움을 찾던 사람들은 네임드에게 실망하고, 사이트를 멀리하게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쉽게 와해되는 점은 그들이 서로에게 애초에 아무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십 수백개의 유령 아이디로 진보 성향의 행동력을 보여주는 여초, 비공개 사이트들까지 슬금슬금 파고들어 그들을 공격하고 와해시키는 일에 성공하자, 찻탓캇을 비롯한 세 명의 댓글부대들은 마치 세계를 재패한 것같은 착각을 한다. 그렇게 교묘하게 여론을 호도하고 분탕질로 온라인을 붕괴시켜나가는 그들이지만 그들 역시 거대한 힘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는 일은 눈치채지 못한다. 거대한 힘이 제공하는 돈, 그 돈으로 산 윤락녀들, 그리고 상상도 못해본 서비스를 경험한 그들은 돈으로 사고, 또한 부당한 일의 댓가로 받은 서비스 여성들에게서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걸까.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밝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불우한 시대의 도태된 청년들은 돈으로 산 윤락녀들에게 인격적 모독과 욕설을 배설함으로써, 수컷의 우위를 확인받으려는 것이었을까. 온라인 작업 외의 내용 대부분은 술집과 매음에 관한 내용인데, 행위와 욕설등의 묘사가 직접적이어서 책은 빠르게 읽히나, 이게 순수문학인지 19금 재미를 위한 야설인지 구분이 안될 때도 있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면, 세계상의 전무후무한 조작극이고 그런 일들을 겪은 우리 세대들은 거기에서 시대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들을 조금 영리하게 가공해 재미를 부여한 르뽀에 가까운 허구였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6-01-0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작가는 트랜드를 읽는 기자 출신이어서 그런가 제목을 정말 잘 뽑는단 생각을 합니다. 이제까지 나온 소설 제목 다 좋았죠.
댓글 부대 청년들 얘길 들으니 피싱 사기꾼들이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멀쩡한 청년들인 것도 생각나네요. 속이는 쾌감과 한순간에 얻는 돈맛에 윤리 따위는 저멀리...

CREBBP 2016-01-08 21:41   좋아요 0 | URL
제목도 잘 뽑고, 술술 잘 읽히는 책을 후닥닥 잘 쓰는 것 같아요. 후닥닥 쓴만큼 빠르게 읽히는 게 잡지책 보듯 책장을 넘기게 되니 말이죠.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서 공들여 썼으면 더 좋은 작품도 나올 수 있었을텐데, <텐프로에서는 무슨일이>라는 르뽀를 보는 듯했죠. 역겹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어쨌든 책은 잘 팔리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베스트목록에 보면 계속 국내 작가들 죽쑤고 있는데 말이죠..

AgalmA 2016-01-0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계에 장강명, 인문학계에 채사장 뭐, 이런 구도일까요. 한국은 몰림 현상이 어느 분야든 너무 심한 듯.

장강명 책은 작위적인 게 너무 많아 저는 좀...이런이런 게 먹힌다는 걸 알고 이게 어떻게 읽히길 계산하는 게 너무 보여요. 알면서도 보게 만드는 건, 사람 심리를 건드리는 자극적 소재와 동시대적 고민을 건드려서 겠지만.
더 공들일 수도 없을 걸요. 이런 계산 속이라면.

CREBBP 2016-01-08 23: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극적 소재를 너무 과하게 끌어들이는 것 같아요. 특히 단란주점에서 일어나는 온갖 섹스놀이는 책의 반을 차지하죠 사랑도 아니고 뭐도 아니고 오로지 쾌락과 호기심. 옛날아 선데이서울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그런 류의 주간지 기사 같은 느낌이 나요.
 
[불안한 낙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웨덴의 어느 시골 뼛속까지 스미는 강추위 속에서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한나 렌스트룀은 낯선 남자 포르스만의 썰매에 몸을 싣고 도시로 나간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동생들과 하루하루를 버텨오던 엄마가 한 입이라도 줄여볼까 큰 딸을 대기근이 닥쳐오기 전에 타지 친척집으로 보낸 것이다. 친척을 찾지 못한 한나는 포르스만의 보호아래 그 집의 하녀가 되지만, 그것도 잠시 포르스만의 도움으로 요리사가 되어 배에 오른다. 


겨우 열여덟살때부터 스무살 남짓까지 그 혹독한 스웨덴의 시골마을에서부터 시작해서 포르스만의 하녀, 거친 뱃사람이 되기까지 결코 순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지만, 이것은 그 이후에 찾아올 불행에 비교해 본다면 서막에 불과하다. 그녀에게 하녀 시절 동료 하녀와 한 방을 쓰며 쌓은 우정, 그리고 항해사와의 짧은 사랑은 그녀의 전 인생을 통털어도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남게 될만큼 순탄치 않은 운명적 삶을 살아가게 된다. 


두 달의 짧은 선상 결혼생활은 허무하게 끝나고 한나가 죽은 남편의 유령으로부터 도망친 곳은 당시 포루투칼령이었던 모잠비크의 어느 도시. 그리고 호텔인 줄 알고 투숙한 곳은 그 도시에서 가장 큰 매음굴이었고, 그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생겼던 아기가 지워지는 사고를 경험한다. 하녀 시절 독학으로 글자를 깨우쳤고 포르스만이 버린 포르투칼어 사전을 통해 겨우 서툴게 포르투칼어를 사용할 줄 알게 된 그 말도 잘 안통하는 곳에서 그녀는, 그곳에서 철저히 혼자다. 한나가 친절한 선장과 선원들 에게서 도망친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참으로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컴컴한 암흑처럼 답답하다. 겨우 글을 깨우쳤다고는 하나, 정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세상에 대한 아무 지식도 없는 한나는 이 장님같은 상태로 홀로 남겨지는 상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녀가 떠나온 비참하고 버림받은 과거다. 그리고 그녀가 향한 곳 역시 크게 나을 것 없어 보이는 미지의 세상이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느 때보다도 더 불확실한 상태로 돌아갔다 243



우리 모두는 리스본을 출발하는 배 위의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저마다의 과거를 단단히 묶고 돌멩이를 매달아 배 밖으로 던져 버린다고요 231


그녀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검은 피부의 복종자들과 위악과 위선으로 가득한 백인들이다. 한나는 그 어느쪽에도 속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녀가 그녀의 양심에 대항했더라면 쉽게 흑인들의 땅에 와서 흑인들을 채찍질하고 그들을 야만인 취급하는 백인들의 사회에 동화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한나는 사실 이제까지의 삶이 흑인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배우지 못했고, 남의 밑에서 일했으며, 절대적 빈곤 앞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견디고 버티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안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으로 매음굴의 여자들과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흑인들에게 그녀는 눈도 마주칠 수 없고, 옆에 의자가 있어도 앉을 수 없는, 그들과는 다른 존재다. 눈을 내리깔고 언제나 복종의 몸짓으로 그녀와의 사이에 선을 긋는다. 한나 역시 그들의 문화를 언어를 관습을 이해할 수 없다. 그나마 그곳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펠리시아와의 대화에서조차 둘 사이에 결코 이해될 수 없는 불통의 벽을 경험한다. 




한나는 오직 백인들만이 웃는, 그것도 때로 과장되게 크게 웃는 슬픈 대륙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보통 금세 두려움으로 번질 수 있는 염려를 위장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한나는 또한 알고 있었다. 암흑에 대한, 암흑 속에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260



백인들이 흑인들을 짐승과 같이 취급해도 될 야만인들이라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흑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백인들을 동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매춘녀들은 남편과 아이들이 집에 있고, 여자들은 물론 남편들조차도 백인들에게 몸을 파는 행위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이유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질성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인들의 반란이나 폭행 같은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한나는 펠리시아를 통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둘의 대화는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쪽으로 흐른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불통의 세상 속에서 그녀는 마치 시각장애자처럼 그 무엇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매음굴을 통해 모은 전재산과 가옥, 매음굴 등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하고 떠난 두번째 나이 많은 남편에게는 배에서 만나서 설레임으로 서로를 끌어당겼던 첫번째 남편과 같은 애틋함을 갖지는 않았지만, 그가 매음굴의 여자들을 나름대로 존중하는 방식이 한나를 그곳에 계속 머물게 한 것 같다. 그녀는 모든 것을 팔아 치우고 스웨덴으로 돌아가더라도 자신을 고용했던 포르스만보다도 더 부유하게 살 수 있는 상태였지만, 그 매음굴의 여주인으로서, 매음굴의 여자들에게 책임감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나는 이런 종류의 희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그녀는 그 이해받지 못하는 세계에서 자신만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흑백의 세계를 가르는 폭력에 대항한다.


에스메랄다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그녀의 속은 또한 자신에게는 미지인 채로 남는 것이 옳았다. 우리가 이렇게 만든 거야. 한나는 약간 죄책감을 느꼈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그들 자신보다는 우리에게 맞도록 바꿔 놓은 거야 282


카를로스를 왜 죽였어요? 

아 나는 펠리시아의 질문에 놀라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산 시간 동안 배운 것이 있다면 흑인들은 백인들이라면 가장 불가해하고 잔인한 일들을 포함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었다 428


배에서 내려 숨을 때부터, 그녀의 눈앞에 기다리고 있을 거친 운명이 안타까왔으나, 발기부전으로 결혼후 몇달이 지나도록 첫날밤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늙은 부자 남편이 죽자,  돈이 많아져서 다행이라고 여겨지면서도, 이 위선의 세계에서 누구에게 그 돈과 사업체를 모두 털릴 것  같아 조마조마했지만, 한나는 마지막까지 강했다. 외로움의 시간들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백인 남편을 죽인 흑인 이사벨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일은 <앵무새죽이기>를 상기시켰다. 그러나 <앵무새죽이기>에서 법정의 이슬로 사라져간 흑인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썼지만, 이사벨은 남편을 죽였다. 한나는 이사벨을 구명하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사업체까지 위기를 맞게 되지만, 이미 중요한 것은 돈과 백인 내의 사회적 위치 같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사벨은 왜 남편을 죽였을까. 백과 흑의 위계질서가 마치 사람-동물과 같이 선그어진 사회에서 흑인을 아내로 삼고 아이까지 자신의 아이로 동등하게 대접한 경우는 당시에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백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지만, 흑인인 이사벨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 역시 같은 인간이 아닌 백인 남자의 정식 아내가 되어 백인의 문화속 일부가 된다는 것은 빗방울처럼 철저하게 흑인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의미하고 자신의 전부를 한 남자에게 바친다는 의미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본부인이 아이들과 나타나자, 버림받는 치욕보다 죽이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사랑했기에 죽일 수 밖에 없는 '고결한' 영혼이었을 지 모른다. 


살 생각이 애초에 없없던 이사벨을  구명하기 위해 그녀의 침묵과 싸우고, 백인을 죽인 흑인을 구명하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가하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과 맞서고, 그로 인해 난처하게 된 흑인 여성들의 알 수 없는 반응과도 싸우는 한나에게 마지막까지 의지하던 존재는 남편이 화대로 받아 키우던 침팬지다. 


그녀는 이토록 모순투성이이며 이해하기 힘든 이  대륙에서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침팬지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다 424



그녀가 쓰던 일기는 아프리카 호텔에 남겨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이 쓰인 것처럼 진행되는데, 저자 후기는 작은 세금 기록에 의지하여 쓴 허구라고 밝힌다.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어느 매음굴의 주인이 백인 여자였다는 사실로부터 하나의 작품이 탄생된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1-11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2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이바 2016-01-11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을 살해한 이유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왜 이사벨 오빠 모세스도 눈빛이 다르잖아요. 직시하는 눈빛이라고 해야하나요? 죄를 인정하고 감형에 가능성을 거느니 사형당하겠다는 의지 역시 꺾이지 않는 자존심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너와 가정을 꾸리지만 내 영혼마저 지배할 순 없을 거라는 그런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이사벨이 피멘타의 이런 모습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싶더라고요. 결국 거짓말 위에 지어진 피멘타의 왕국 역시 불안정했다는 생각이 들고요. 소설에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놀랐어요. 줄거리는 간단한데 무던하지만 꽉 찬 느낌? 소재나 전개방식이 참신하진 않지만 댓글부대보다 훨씬 낫더군요.

CREBBP 2016-01-12 01:30   좋아요 0 | URL
피멘타의 왕국이 모래성처럼 덧없이 허물어질 것이었음은 너무나도 자명했죠. 돌이켜본다면 말에요. 그럼에도 아이를 낳고 가정을 가지고 싶었던 피멘타는 그 허영과 위선의 끝을 피로 보았잖아요 그런데 또다시 한나가 모세스를 사랑하는 걸 보고서 그 때 배에서 아슬아슬하게 쫓겨나고 어쩌면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지도 모르는 위기로 몰고가는 것을 보고 답답했어요. 요즘 하는 말로 그 뎔혼 반댈세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한나 때문이 아니라 똑같은 피해자가 모세스가 될 게 불을 보듯 뻔한 것 같아서요. 인습을 사랑으로 이길 수는 없잖아요. 피멘타도 나름 자기 벙식대로 이사벨을 사랑한 거였는데 결론은 그렇게 났고 이사벨은 우리의 가치로 봤을 땐 결국 치정극의 일부인데 흑인이라는 이유로 한나가 되지도 않을 일.. 그녀를 구하려고 애쓰는 건 굉장히 많은 질문을 주는 것 같아요. 한나의 파란만장한 인생도 이야기의 일부지만 그녀의 행동이 주는 질문들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해요. 당시 스웨덴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돼서 좋았어요. 이 소설에 비하면 댓글부대는 별 한두개 차이로 구분한다는 일이 의미없죠. 넘사벽이죠.
 
통제 불능 - 인간과 기계의 미래 생태계
케빈 켈리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이인식 감수 / 김영사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캐빈 켈리는 과학기술문화 잡지 <와이어드> 창업자 및 초대 편집자이고, 이 책을 1994년에 썼다. 20여년동안 국내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었는지, 2015년 11월에 초판 1쇄라고 나와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최신 기술과 미래를 전망하는 종류의 책이 20여년이나 넘게 이제서야 번역된 이유는 무엇일까. 내용이 양적으로 너무 방대한 까닭에 어느 출판사에서건 어느 역자건 그동안 이 책을 번역할 만한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로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이제서라도 나온 이유는 책자 맨 뒤의 작은 글씨 '이 책은 해동과학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공학한림원>과 김영사가 발행합니다.'라는 문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잠재적인 독자층의 수요를 생각해봤을 때 재단의 지원이 없이는 만들어 내기 힘든 책이다. 또 한가지는, 20여년전에 쓰여진 혁신 기술적 관점이 20여년전에는 미래였던 오늘날 읽어도 유용하려면, 과학 기술을 전체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가능하다. 


반도체 집적 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두 배로 늘어나고 가격은 두 배 이상 내려간다는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20여년전의 컴퓨터 성능과 오늘날의 컴퓨터 성능은 비교 불가다. 기술의 발전 역시 비교 불가다. 인류의 미래는 기술의 미래가 결정한다. 그러므로 미래의 모습은 지속적으로 발전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다양한 측면들을 들여다봄으로써 거시적인 예측이 가능하다. 그 거시적 방향의 커다란 줄기가 생명과 기술의 결합이다. 인간이 기계를 만들고 조작하기 시작하게 된 아주 초기부터 기계가 추구해온 것은 인간의 능력을 흉내내고 인간의 동력을 대치하는 것이었다. 도구에서 기계로 진화하고 그것들이 단순한 종류의 로봇이 되기까지 그것들의 원초적 목적은 인간의 수고를 대신하는 것이었고 궁극적 목적은 인간과 같아지는 것이다. 학습하는 기계의 가능성과 철학에 대한 노버트 위너의 책 <사이버네틱스>가 나온 해는 <킨제이보고서>가 나온 해와 같은 1948년이었고, 킨제이보고서 만큼이나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후 1~2년 안에 전자 제어 회로가 산업계에 혁명을 가져왔다. 기계들은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되먹임 구조를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한다. 


기계들은 점점 인간뿐 아니라 인간과 생물의 전 집단이 속한 생명계를 닮아간다. 책의 초반에 개미와 꿀벌 집단의 집단 마음에 대해 나온다. 꿀벌이나 개미들의 집단 행동은 마치 그들 집단 전체가 하나의 뇌를 가진 것처럼 매우 효율적으로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데, 반면 개별 개미들이나 꿀벌 개체들 각각은 무뇌인 듯 별 생각없고 무식하다. 그것들이 상호 네트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움직이면 가장 효율적인 생전 전략을 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리를 측정 불가할만큼 시력이 나쁜 개미는 울퉁불퉁한 지형에서도 최단 경로를 탐색한다. 서로에게 방출함으로써 서로에게 경로를 남기는데 쓰이는 페로몬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증발되기에 도시들 사이의 경로가 짧을수록 남겨진 페로몬이 많고, 이러한 자기 강화 효과에 의해 짧은 거리 탐색 알고리즘이 동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병렬 컴퓨터에 적용된다. 병렬컴퓨터는 분산 네트워크로 설명되는데, 오늘날 일반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알고리즘 언어는 순차적이고도 논리적인 과정으로 처리되는 것에 비해 완전히 반대의 개념이다. 


당연히 인간은 순차적으로 생각한다. 컴퓨터 언어는 인간과 소통하기 위한 언어이므로 마찬가지로 순차적으로 실행된다. 어떤 복잡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중간 계산 결과를 끊임없이 중간 단계의 장소에 저장하고 그 값을 다시 다른 것과 연산하고 비교하면서 컴퓨터의 처리가 이루어진다. 셀수 없는 갯수의 인간의 뇌세포들이 병렬적으로 동시에 개별적이면서도 총체적으로 연결되어 행동하지만, 막상 인간이라는 하나의 총체적 전체적 사고와 행동은 논리와 언어라는 사고 순서에 의존해서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수의 세포들이 상호 작용하여 한 단위 한 조각 조각의 생각과 행동들의 연속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벌들과 개미들의 집합적 사고와도 닮았다. 책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인간은 아니 '다세포 생물은 본질적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거대한 병렬 코드를 운영(601)'한다. 이 때 분산된 개별 프로세서들은 개미 혹은 개별 세포들처럼 매우 단순하여 존재/비존재, On/Off의 조합만으로도 처리의 일부가 된다. 


만일 컴퓨터를 인간의 지적 작용이 아닌, 인간의 원초적 메카니즘과 닮게 하려면 진화적 코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진화란 우연의 산물이다. 하나의 성공이라는 우연 속에는 수천 수만의 실패라는 또다른 우연이 있다. 그 실패들을 제거해 나가면서 새로운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진화적 알고리즘은 컴퓨터 분산 시스템의 결실이 될 수 있다. 병렬 알고리즘을 이용해, 실제로 진화적 메카니즘을 만들어낸 여러 예들이 제시되어 있는 설명이 너무 장황해서 읽기에 애로사항이 많긴 했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적응은 어떤 구조를 새 구멍에 맞게끔 구부러뜨리는 행위이다. 반면에 진화는 구조 자체의 아키텍처-구부러지는 방식-를 다시 개조하는 더 깊은 변화로, 종종 다른 구조들을 위한 새 구멍을 만들어낸다. 659


이렇게 어렵게 설명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진화의 그 개념이다. 다만, 인간의 도구로서, 기계 혹은 컴퓨터 알고리즘에 은유적으로 쓰다보니 책에서는 모든 개념들이 은유와 실제 단어 사이에서 매우 혼동되기 쉽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기계가 진화한다는 뜻은, 그 기계가 어떤 목적을 위해 변화하는데, 물론 그 변화는 우연성에 기인하며, 엄청난 실패들이 버려지고 남은 하나를 말한며, 그 변화가 또다른 새로운 변화를 계속 불러오면서 새로운 메카니즘이 탄생하는 걸 말한다. 그 예로 리처드 도킨스의 바이오모프를 들었는데, 책에서 읽을 때는 뭔소리를 하는지 모르게적어놨지만, 유튜브 영상을 보니 30초만에 쉽게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생명체의 모양이 어떻게 진화 가능한지를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보여주는데, 초기 생물체는 가장 단순한 점 혹은 선 모양으로 되어 있고, 동물들이 갖는 기본 특성인 대칭성을 비롯해서 아주 간단한 몇몇 규칙이 다음 세대 모양으로 변형되는 주어진다. 그 모양 변화를 위한 알고리즘에 몇가지 변수들을 주면, 이 세상에서 하나의 점 혹은 선으로 비롯하여 서너 개의 규칙에 의해서 생성될 수 있는 모든 모양이 몇만 세대에 걸쳐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2차원적인 모양이고 스크린 크기에 제한되어 있다. 그 모양은 때로 나비같아지기도 하고 지상에 있는 상상 가능 혹은 상상 불가능한 모든 모양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을 보면 사람의 모양이, 혹은 동물의 모양이 복잡한 진화 과정을 통해 어떠한 아주 작은 순간의 변이에 의해 생성되었을거라는 비장한 생각마저 든다. 



책을 쓴 저자의 열정을 생각하고, 1천페이지 분량의 책을 내놓은 출판사 및 역자들을 생각하면 책을 읽는 일조차 미안해질 정도다. 방대한 양의 참조와 지식을 끌어들여 기계의 생물학적 진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끌고가는 저자의 열정과 인간과 기술의 미래를 통찰하는 도발적인 은유들은 감동적이지만, 때로 장황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고, 인문학적 기술의 한계로 인해 피상적으로밖에는 기술하지 못할 너무 많은 양의 기술적 실례를 철학적 은유와 비유로서 한도끝도 없이 늘어놓다보니 읽는 일이 때로 고역이었다. 철학적 비유의 남발을 적절한 수준에서 끊고 명료한 의사 전달을 했다면 페이지수도 절약하고 좀 더 즐겁게 책을 읽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두껍고 (분명 남지도 않을) 책들을 출판하고 번역한 분들께 존경을 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어영부영하다보니 날짜가 하루 지났다. 정말, 연말 연초라는 개념은 쓸데 없이 사람을 바쁘게 만들면서 어떤 질서를 빼앗아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연말 연초를 없앨 수도 없고. 


급하다는 핑계로, 꼭 읽고 싶은 12월에 출간된 책만 골라본다. 


너무나도 많은 물건들과 뒤엉켜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

그 소각이 쓰레기 소각을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각한다는 것에 작가는 어떤 의미를 찾아냈을까 궁금하다. 















자동차 전시회 때 디트로이트를 가본적이 있는데, 소설에서만 본 디스토피아적 환상이 실제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은  도시였다. 그 궁핍의 도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을까. 가족 연대기가 전하는 역사의 일부가 소설이 되었을 때 받는 감동이 있을 듯하다. 












 세계 대전 속의 여성, 전쟁 속의 성장... 콩쿠르상을 받은 여성 작가. 















20세기 유럽의 가장 훌륭한 역사소설로 꼽히는 <라데츠키 행진곡>의 작가 요제프 로트가 생애 마지막 넉 달을 바쳐 쓴 작품. '살아감'의 힘겨움을 술로 달래며 구원을 찾아 길 위를 헤매는 한 남자의 애환과 소망을 사실적인 문체로 그려낸 단편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