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바를 아는 바로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실제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굴 때 문제의 심각성은 훨씬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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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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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한 것에 삐치고, 한 번 삐치면 회복하는 데 아주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뒤끝도 한없이 긴, 배 나오고, 머리 듬성듬성한, 오십 넘은 쓸쓸한 인간.' 이것은 '아빠'의 새로운 정의다.  김정운은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의 글 <왜 그래? 아빠처럼>에서 그의 가족들이 아빠라는 말에 담은 뜻을 이렇게 설명한다. 뒤끝 없는 사람도 있고, 머리 숱 많은 사람도 있고 근육질에 탄탄한 체형을  갖춘 아빠들도 있다.  가정마다 제각기 다르겠지만 '아빠'에게 적용되는 정의에 들어가는 공통의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쓸쓸함일 것이다.  남자가 나이먹어가는 것에는 쓸쓸함이 따라다닌다. 중년 남자의 쓸쓸함은 가끔은 딱하고, 가끔은 애틋하고, 또 가끔은 안타깝다. 그들에게도 한 때는 사랑스럽고 달콤한 어린 시절과 북적이는 젊음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한 때는 부드러운 미소와 대화가 있었는데..


이 책은 알랭 레몽의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함께 지나온 시간들에 바치는 연가다. 자전적 소설인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과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두 개가 실려있다. 두 작품 모두 모두 작가 알랭 레몽의 인생을 어린 시절부터 훑어 오지만, 서로 내용적으로 보충해주고 각각의 구멍을 메꾼다. 두 작품은 별개의 주제와 흐름을 가진 독립적 소설이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은 가족과 더불어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더듬고,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는 보다 개인적인 이야기, 주어진 교육환경 속에서 어떻게 정신적으로 성장해나가고 사고의 틀이 변화해갔는지를 조명하고 소년시절을 거쳐 성인이 되고 작가가 된 이야기 모두를 담고 있다. 두 소설 모두 아버지의 이야기는 아주 조금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실린 두 개의 개별적 소설 모두 아버지를 위해 쓰여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의 끝부분에서 그는 아버지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했다. 트랭 이전에 살던 두 개의 집은 허물어졌고, 주무대였던 브루타뉴 지방 트랭의 집은 팔려버린 후다. 평생의 정서적 에너지로 남을 행복했고 아름다운, 그러나 상처로 얼룩진 어린 시절의 기억이 형성된 그곳에서 두려웠던 존재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서적 휴식처이자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정신병을 앓던 누이가 죽었다. 소설을 쓸 때 작가의 나이와 돌아가실 때 아버지의 나이는 쉰 세살로 같다. 꿈 속에서 그와 둘이 마주 앉아 그에게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아버지, 그는 아버지가 무엇을 기다리는 지 안다. 그는 아버지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용서?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열형제를 먹여 살렸다. 무엇을 누구에게 용서받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만큼 산 작가가 아버지와 풀지 못한 숙제는 무엇이었을까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은 자신이 살던 트랑이라는 마을의 집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덧없이 흐른 시간을 유일하게 품고 기억하는 장소가 집이다. 어릴 때 살던 집안의 구석구석에는 온갖 추억들이 가득하다. 그곳에서 살던 식구들이 하나 둘 떠나고 명절이 되면 다시 각지에 살던 형제들이 돌아오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그 집은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덧없는 곳이 되어 남에게 팔린다. 트랑의 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10명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정겹다. 더불어 내가 살은 인생, 내 부모가 해준 부모가 살았던 인생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리서 이 책을 읽으면 그리움과 애틋함을 함께 읽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몇은 결혼을 하여 집을 떠난다. 그게 바로 삶이다. 어느 가정에나 있는 일이다 마치 땅거미가 내릴 때처럼 그 불확실한 순간, 하나의 역사가 끝나고 다른 역사가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 이제 다른 방식으로 가족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추억과 향수의 몫을 인정하고 아직도 잘 짐작이 가지 않는 다른 것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혼자가 되셨다 109


 부모와 10명의 아이들이 복작복작 모여 가족을 이루고 살던 정겨운 날들의 풍경은 한국전쟁과 급격한 경제 발전을 경험한 우리 부모세대와 많이 닮아 있었다. 부모와 아이들은 2차대전의 빗발치던 공습과 피난을 치렀고 빗발치는 전쟁의 포화속을 뚫고 모두 살아 남았다. 알랭의 가족과 비슷한 대부대의 가족 속에서 일찍 아버지를 잃고 국토의 최전방에서 가까운 곳에서 한국전을 치러냈던 내 엄마의 이야기와 겹쳤다. 늘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었다던 부모의 세대가 이제 겨울이면 뜨끈뜨끈한 바닥에서 자고 여름이면 쾌적한 공기가 습한 더운 공기를 차단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알랭의 형제들은 수도도 전기도 없는 단칸방에서 오골오골 지내고 부엌에 목욕통에서 커튼을 치고 장작불로 데운 물로 차례로 목욕을 한다. 저녁마다 열명의 아이를 차례차례 한 명씩 매일 목욕시켰을 알랭의 어머니, 아침마다 여덟명의 아이를 깨워 수돗가로 업어가 턱받이를 씌우고 세수를 시켜 학교를 보내던 내 어머니의 아버지. 그렇게 자상하던 내 엄마의 아버지도 병으로 알랭이 아버지를 잃던 비슷한 나이의 내 엄마와 8형제를 두고 돌아가셨다. 처음 TV가 들어오던 날의 기억처럼, 처음 전화기가 들어오던 날의 기억과 처음 냉장고가 들어오던 날의 기억처럼 알랭의 시대에 처음 수돗물이 나오던 날과 처음 전기가 들어오던 날의 소란들을 아련하게 기억한다. 그렇게 조금씩 문명의 이기들이 불편함을 대체하고 채워지는 과정은 언제나 정겹다. 


행복이 공기의 입자를 타고 햇빛 비치는 창 가득 떨리는 먼지처럼 지면을 채운다. 그 정겨운 풍경속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  언뜻언뜻 비치는 희미한 그림자가 아버지의 실체를 암시하기는 하지만, 즐겁게 깔깔대는 대식구의 소란 속에 아버지의 이미지는 좀처럼 가시적이지 않다. 아버지는 이러한 즐거은 일상의 풍경의 반대쪽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아버지는 행복 속에 내재된 불행에 대한 기억이다. 심연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걸어들어가 검은 그림자를 조심스럽게 들춰내면 전투 장면이 재생된다. 티없이 맑고 행복한 어린 아이들의 눈에 비친 부모의 싸움은 평생동안 각인될 두려움이다. 전쟁마저도 영웅담이 되던 그 시절의 향수 속에 숨어 있는 검은 그림자는 바로 아버지의 존재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들어온다. 집에 와서는 어머니와 싸운다. 밤이 되면 아이들은 방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를 듣는다. 환한 대낮의 유쾌함과 저녁 이후의 부모님의 다툼. 이렇게 아버지는 작가의 어린 시절을 두 종류의 질적으로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나눈다. 트랭에서 유년의 행복은 그 속에 내재된 더 큰 불행을 감추기 위해 더욱 강화되었을지 모른다.   어둠이 내리고 아버지의 존재가 고함과 욕설과 주먹질을 몰고 부부간의 전쟁을 향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아이들은 '계속 살아가기 위하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온갖 의식의 놀이들과 마법의 세계에 들어앉아 행복의 문을 닫고 그 속에 꽁꽁 몸을 숨긴 것이다. 


한편으로는 미칠듯한 행복을 이기지 못하며 매일 매 순간을 그윽하게 음미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저녁마다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모두가 다 함께 뜨거운 가족애 속에서 진하게 살고 있는 바로 그때 가정의 심장부는 모든 것이 타버린 재에 불과하다.75


가족들과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저녁 늦게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싸움만 벌이는 아버지의  전혀 다른 모습을 아버지가 입원한 병실에서 우연히 목격한 12살 소년 알랭은  충격에 빠진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아버지는 대화를 하며 다른 사람을 웃기는 밝고 유머러스한 인기 만점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훗날 아버지의 장례식날 또다시 놀란다. 교회가 미어터지듯 도처에서 몰려든 사람들로부터 아버지가 얼마나 사랑받는 인물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원히 수수께키에 쌓인 채 돌아가셨지만, 그는 아버지가 가족에게 주지 않은 것, 파괴해 버린 것들 때문에 아버지를 원망한다. 그의 죽음 이후, 더이상은 집안에 싸움도 폭력도 더는 없을 것임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하지만, 죽기 직전 한 명씩 아이들을 불러 표현했던 마지막 사랑의 말들로 그의 내부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음을 어렴풋이나마 의식하게 된다. 아이들을 사랑하면서도, 한 번도 표현하지 못하고 죽을 때에야 고백하듯, 간직하라는 듯, 남기고 간 표현. 아마도 그 때문에 그는 아버지 죽음 이후에도 숙제처럼 아버지에 대한 풀지 못한 감정들을 안고 살아간 듯하다. 


두 분 사이의 그 전쟁에 대해서 나는 한번도 말해 보지 못했다. 그것은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입을 다물어 버릴 수밖에. 그리고 침묵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간다. 그리고 너무 늦어 버린다 132


일상중 아버지의 부재는 어머니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한다. 어머니는 억세고 드센,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했을 한국의 어머니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많은 자식들을 낳아 기르면서 집안을 쓸고 닦고 전쟁의 파편들을 기념품삼아 반짝반짝 윤기나게 닦고, 그 무거운 빨래들을 담은 수레를 끌고 빨래터까지 가서 깨끗하게 빨래를 하고, 꽃과 태양을 사랑하고 읽는 것과 쓰는 것을 좋아하고 기숙사에 있는 아이들과 서신 교환을 자주 하고, 어린 형제들이 마당에서 역할놀이를 할 때면 함께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내주곤 한다. 아이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즐겁고 재미있는 어머니가 있다.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이웃 사람들, 상인들, 지나가다 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축복받는 시간들을 공유한다. 바꾸어 말하면 어머니와의 유대 속에서 아버지는 설 자리를 잃었던 것이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렇다. 어머니와의 강한 유대감 속에서 어머니의 적수가 된 아버지들은 낄 곳이 없다. 책임과 의무가 무겁게 눌렀을 때, 권위를 가장한 소외가 덩그마니 남겨진 것이다. 


 


집요하게 되살아나는 것이 그 이미지다. 저녁에 길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는 즐거움과 어머니가 부새 부인과 나누는 그 노래 같은 대화. 그것은 마치 단도로 곽 찌르는 듯 내 몸이 사방을 뚫고 지나간다.136



너무 좋았던 시간들이 이젠 다시 올 수 없으며, 영원히 하루하루 헤어짐이었음을 알기에 우리는 과거를 생각하면 비수로 찌른 듯 아플 때가 있다. 김광석의 노래처럼, 머물러 있는 줄 알았던 어린 시절과 청춘을 하루 하루 이별하고 살고 있었지만, 이별을 깨닫는 건 훗날의 일이다. 장소에 대한 회상은 달콤하지만 아프다. 그 장소 속에 그 이별,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자취가 상실의 상처를 건드리며 가슴을 찌르는 아픔으로 되살아난다.  작가 역시 이제 트랑의 집이 팔렸고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과거의 이미지는 자주 과장되거나 미화되지만, 미화 속에 있던 아픔까지도 아름다움으로 남겨지는 이유는 그 과거로의 지점은 이미 떠나온 곳이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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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6-01-15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적리뷰쓰면서 저도 옛날 생각나더군요. 아버지도 생각나고....

2016-01-15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5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재밌어서 밤새읽는 소립자 이야기 재밌어서 밤새 읽는 시리즈
다케우치 카오루 지음, 조민정 옮김, 정성헌 감수 / 더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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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밤새읽는> 시리즈의 12번째 책이 나왔군요. 초등학생들부터 성인들까지 어우를 수 있는 책입니다. 친절한 그림과 톡톡튀는 설명이 과학과 친숙하게 하죠.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읽고 나누기 딱 좋은 시리즈입니다. 소립자라는 어려운 주제를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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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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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조심


그 사건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재앙은 항상 겹친다. 시내에 무슨 일로 차가 막혀 파티 음식이 제때 배달되지 못했을 때, 그들에게 샴페인과 포도주들이 있었고, 파티를 기다리기 위해 온 사람들은 빈 속에 한잔씩 두잔씩 들이킨 술에 이미 취해있었다. 학부모 모임이나 동네 엄마들 모임이 자주 그렇듯, 통해 통해 전달된 비밀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눈치 없는 누군가는 본의 아니게 폭로하게 되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진실을 만난 누군가는 억제할 수 없는 분노를 폭발하기도 한다. 이 때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가진 여신 셀레스트의 그 어둡고 처연한 아름다움의 진짜 비밀이 뜻하지 않게 갑작스러운 방법으로 밝혀지는 것을 목격한다. 조금씩 쌓이고 쌓여온 은폐된 진실이 연쇄적으로 폭발할 때 그 엄청난 폭로의 위력 앞에서 대재앙이 일어나지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 누군가가 가장 먼저 재빠르게 선언한다.


.... 음.... 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못 봤어요...

가장 처음으로 선언한 사람은 레나타다. 자기의 아이가 갓 이사온 싱글맘의 아들에게 폭력을 당했다고 증거도 없이 주장하며 퇴학시킬 것을 종용하고 다니던 여자. 못된 죄값을 하느라 그랬는지 남편은 바람을 폈고, 그 사실은 애초 남편이 자기 친구에게, 그 친구가 또다른 친구에게 그렇게 비밀이 퍼지고 퍼지고 퍼지다가 결국 가장 늦게 알게 된 사람이다. 책을 읽는 내내, 세 사람의 주인공과는 대척점에 있었고, 선과 악의 구도에 구겨 넣는다면 유일한 악이었을 레나타가 가장 처음으로 누군가를 감싸기 위해 자신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선언한다. 왜 그랬을까. 자기 6살의 여린 아이는 누구에겐가 지속적으로 괴롭힘과 폭력을 당해왔다. 그리고 자신이 방어해준 사람의 딸은 자기 딸 대신 이제 새로운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단순히 동질감을 느껴서였을 것 같지는 않다. 


레나타의 선언이 있은 후, 정의의 화신인 매들린이 말한다. 나도 아무것도 못봤어. 그녀의 남편은 화를 낸다. 그럴 수는 없는 거라고. 어떻게 거짓을 말할 수 있는 거냐고. 화가 나서 방방 뛴다. 이제껏 내내 자신이 그렇게도 미워하고 힘들어했던 사람을 이제와서 방어하다니, 미워하는 건 미워하는 거고, 보호해줘야 할 사람은 또 보호해줘야 하는 거고. 그런 식으로 이해를 할 수 있을까. 그녀가 보호해야 하는 것은 광의의 가족이었다. 한 사람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죽어라 미워하고 헤어지고 또다시 결혼을 해서 새로운 아이들을 낳더라도, 전처와 전남편 사이에 자식이 있다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얽히게 된다. 새엄마 새아빠들이 모두들 자기 아이들처럼 잘 케어해준다고 해도, 그들 핏줄이 연결해 놓은 어쩔 수 없는 끈은 아이가 있는 한 언제까지나 끊어지지 않고 그들 사이를 옭아매게 될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그녀는 재차 말한다. 턱을 꼿꼿하게 세우고. 강당을 보고 있었거든. 그래서 아무것도 못 봤어. 이 때 남편 애드는 그들 가족이란 이름의 애증을 확인하고 소외감에 운다.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제인은 생각한다. 그 순간 제인은 자신이 사건의 당사자에게 하고자 했던 말을 영원히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무엇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통째로 구겨지고 망가졌으며, 자신의 선량한 아이 또한 그 사건의 당사자 때문에 간접적으로 희생이 되어야 했는지를 사건과 연관된 사람의 입으로 직접 말해지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사건의 당사자가 방금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한다.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일도 아니라는 말,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이 호텔 영수증엔 찍히지 않는 성인영화 포르노물이었던 거라고. 그의 페티쉬가 뚱뚱한 여자를 모욕하는 것이었고, 그리고 신용카드를 들고 포르노 채널을 누르는 것처럼 폭언을 한차례 퍼붓고 섹스를 하고는 영원히 그 기억에서 잊어버린 거라고. 제인은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차갑고 강력한 부인으로 바꾼다. 나도 그래요. 나도 아무것도 못 봤어요.


이제 셀레스트 차례다. 우아하게 일어서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건 관계자를 본다. 그리고 후려맞은 자신의 얼굴을 만진다. 마치 평범한 대화를 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나도 아무것도 못봤어요.


이타심일까 복수일까. 그들 모두에게 복수의 이유가 있었고, 그들 모두 사건 관계자를 보호해주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곧 밝혀질 터이고, 그들 모두 용의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소설은 순간적으로 거짓말이 나오게 된 이유를 길고 긴 600페이지가 넘는 엄마들의 수다들, 뒷담화들을 통해 촘촘히 배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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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13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미 이 책 읽었지요. 그래서 스포도 읽을 수 있습니다.^^
guiness님, 좋은하루되세요.^^

CREBBP 2016-01-13 17:38   좋아요 1 | URL
제목이 약간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작은 거짓말이 커진게 아니라 큰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거죠. ^^

살리미 2016-01-1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만간 읽을 예정이라... 사실 읽어보진 않았어요 ㅎㅎ 스포조심하라셔서~
근데 너무 궁금해요 ㅎㅎㅎ

CREBBP 2016-01-13 19:05   좋아요 0 | URL
정말 신기하네요. 이 글이 스포아 일부러 안스포 버전을 먼저 올리고 이 글을 올렸거든요 두 개로 쪼갠거죠. 리뷰를. 그런제 안스포 버전은 별로 존재감이 없고 에 글에만 추천이 달리네요 ㅎ

살리미 2016-01-13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아 이 글 보고나서 안스포버전도 보았어요.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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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학대, 괴롭힘이 끊이지 않고 사라지는 이유는 뭘까.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의 초반부 혁명전 러시아의 한 공장 단지의 풍경을 보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폭력의 본질을 추측할 수 있다. 장시간의 노동으로 수십년간 대를 이어 일하는 그곳에 희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 쉬임없는 노동으로 지친 영혼들에게 술은 유일한 보상이며, 폭력은 유일한 일탈이다. 힘겨운 노동을 끝내고 술과 싸움질과 욕설로 뒹굴다가 집에 들어오면 가정은 아늑함이 아니라 무거운 짐일 뿐이다. 그런 환경에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고 아버지를 때리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아들은 공포로 병들지만,  다시 자신의 아내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 아들에게 똑같은 지옥을 보여준다. 


노동환경과 폭력에 대한 인식이 바뀐 현대에, 호화로운 생활이 보장된 여유있는 중산층 이상 혹은 최 상류층 가정에도 폭력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이코패스처럼 다른  약한 사람을 해치는 것을 즐기는 유전자가 따로 있을 수도 있겠지만, 타고난 사이코패스의 뇌구조를 가진 제임스 팰런이 자신의 유전자와 행동을 분석한 <괴물의 심연>에 의하면, 설사 그런 유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유전자를 최종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은 환경이다. 바른 아이로 잘 기르기 위해 가정에서 애지 중지 사랑을 들여 부어 키웠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어린 시기부터 유치원이라는 사회에 노출되어 있고, 아무런 힘도 없는 아이들은 어떤 종류의 학대에 은밀히 노출되어 있는지 부모가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우연히 어떤 폭력적 유전 인자를 소지한 아이가 어린 시절의 어떤 기간 동안 어떤 형태의 학대나 뇌롭힘 혹은 폭력 같은 것에 노출되어, 매우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셀레스트

빛나는 미모의 착한 아내, 손에 대는 것마다 엄청난 수익을 내는 남편, 써도 써도 옹달샘처럼 차고 넘치는 부, 자상하고 배려심있는 남편, 개구진 두 쌍둥이 아들.  모든 것을 가져 아무것도 바랄 게 없을 것 같은 셀레스트 부부에게 은밀한 폭력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셀레스트와 페리 부부는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마을의 어느 부부도 하지 않을 폭력 속에서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매들린

결혼한 남편이 생후 한달 된 아기를 남겨두고 떠나버렸는데, 그래서 싱글맘으로 그 힘겨운 시간들을 겪어내고 아이를 14살까지 키우고, 재혼을 하고, 다시 또 아이들을 (주렁주렁) 낳아 잘 살게 되었는데, 자신을 버린 전남편이 어떤 착하고 현명한 여자와 결혼을 해서 개과천선해 아주 가정적인 모습으로 탈바꿈을 하고는, 그걸 보여주려는 듯 자신이 버렸던 첫째 아이와 거리상 가깝다는 이유로 전부인이 살고 있는 해안가 마을로 이사를 오고, 또 그들이 같은 예비학교 학부모로 매일 마주쳐야 하는 사이가 되었다면 기분이 어떨까.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기껏 힘겹게 키워놓은 아이가 자기 친엄마보다 아버지의 현재부인인 양엄마(맞나) 보니를 더 좋아하고, 그녀를 자신의 롤모델로 따를 뿐만 아니라, 그 양엄마의 엄마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다가 어느날 아버지 집에서 살겠다고, 이사를 나가버린다면 아무리 친딸이라고 해도, 아니 친딸이기 때문에 그 배반감을 어떻게 감당할까. 


14년간 혼자 키워온 딸이 전남편 집으로 나가버린 것만으로도 화가나 죽을 판국에, 그곳으로 가자마자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쪽집게 수학 과외 교사를 해고하고 쥐뿔도 모르는 전남편이 직접 가르친다고 하질 않나, 오밤중까지 잠자리에 들 생각은 않고 페북을 하고 있지를 않나, 그런 것들만 해도 붉으락 푸르락 지경인데, 나중에는 열네살 딸이 엠네스티의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순결을 팔겠다고 웹페이지를 만들어 홍보를 한다. 이때 전남편이라는 존재는 정말 죽이고 싶은 존재다. 이럴 때 차라리 폭력이라도 동원해서 한대 줘패주고 싶을꺼다. 그러나 매들린은 너무 수다스럽다. 매들린이 거의 주인공인 듯싶게 매들린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한데, 이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조금 골치아플 것 같다. 악의는 없지만 끊임없이 자기 얘기를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그래봤자 신발과 악세사리와 아이크림과 그런 것들이지만)을 메주알 고주알 독자들에게 얘기하고, 딸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하소연한다. 그녀가 아이들의 학부모가 학원 폭력 문제로 두 패로 갈라졌을 때, 약자인 제인 쪽에 서게 된 것도 그녀의 본성이 약자에 대한 배려인지 혹은 학부모의 힘겨루기인지 알 수가 없다. 


제인

어린 나이에 사랑을 잃고 원나잇을 했는데, 덜컥 임신을 했고, 아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만, 그 원나잇은 평범한 원나잇이 아니었다. 펍에서 노래도 불러주고 잘생기고 다정한 남자랑 한 잔 하다가 호텔로 직행했는데, 그는 못생기고 뚱뚱한 돼지년이라며 욕설을 하더니, 목을 조른다. 무슨 용어가 있는 모양인데, 죽기 직전까지 목을 조르면서 쾌감을 느끼는 변태적 성욕을 가진 남자였다. 그런데 사랑스러운 내 아이가 막 이사온 마을의 예비학교에서 작고 사랑스러운 여자 아이 아마벨로를 지속적으로 폭행한 아이로 지목되고, 학부모들은 증거도 없이 아이를 퇴학시키기 위한 탄원서들을 돌리며 패가 갈린다. 제인의 아이 지기는 비록 엄마 혼자 키우기는 했지만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이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랑스러운 아이였기에, 제인은 물론 담임도 지기가 폭력의 가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제인은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을 향해 내지른 폭행(목조르기)와 폭언을 기억하며, 아이가 그런 씨를 물려받았을까봐 전전긍긍한다. 



책이 엄청 두꺼운데, 대화가 많아 사실 읽어야 하는 글자의 양은 그다지 많지 않음에도 처음 약 1/3 그러니까 약 200페이지 정도는 진도가 엄청 안나갔다. 너무 많은 등장인물도 등장인물이지만, 새롭지 않은 이야기, 너무 사소하고 자잘한 의미없어 보이는 일상적인 대화들이 끝도 없을 것 처럼 늘어서 있는데다 진도도 전혀 나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장치로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나타내기 위해 현재 진행되는 이야기가 과거의 이야기이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음을 암시하는, 그래서 그 사건의 조사를 위해 각 장의 등장인물들과 주변인물들의 당시 상황을 인터뷰한 내용들이 함께 실렸지만, 마찬가지로 더욱 산만하기만 했다. 대개의 소설이 그렇듯 중반쯤 넘어가면 각 등장인물들의 성격도 파악이 되고, 이런 저런 쓸모 없는 수다를 떨어대도 그냥 들어줄만 한 동네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빨라지다가 마지막 2/3 지점에서는 책을 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미국 최고의 여배우 니콜 키드만이 나온다기에 셀레스트 역을 맡았을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수다스런 리즈 위더스푼은 수다스런 매들린 역을 맡았을 것이다. HBO에서 11월에 시작이다. 워낙 대사가 많고, 구성 역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실제 주인공들과 목격자의 증언들이 교차 편집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책보다 오히려 드라마 포맷에 더 잘맞는 구성을 가졌다는 느낌인데, 드라마 제작을 염두에 두고 제작사와 상의해서 책이 쓰여졌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생생한 일상을 그대로 포착하고 깨알같은 생활 밀착형 대사를 한도 끝도 없이 많이 넣었는데 예를 들면 부잡스런 아이들이 대화에 자꾸 끼어드는 상황 같은 걸 그대로 재현한다. 전반 진행 속도도 느린데다가 대사 사이에 맥락을 흐트러트리는 산만한 상황들이 불쑥 불쑥 끼어드는 것은 책으로 읽는 것보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로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지만, 리안 모리아티의 결말을 처리하는 방식은 드라마에서 재현하지 못할 성찰들을 담고 있다. 


p602

  매들린은 한 번도 네이선을 용서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남은 생애 동안 네이선은 계속해서 매들린을 미치게 할 거다. 시간이 되면 네이선은 에비게일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걸어갈 테고, 그 모습을 보면서 매들린은 계속해서 이를 갈 거다. 하지만 네이선은 여전히 가족이었다. 매들린의 아이들이 마분지에 가계도를 그릴 때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이름이었다.

...   매들린은 에드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동생을 위해 자동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니를 위해 거짓말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상하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같아도, 보니도 매들린에겐 가족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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