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 뽑은 가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박연호 지음 / 현암사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과 동영상이 존재하지 않는 먼 과거로 가는 방법은 기록밖에 없다. 기록물의 종류에 따라서 과거를 보는 형태가 다르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졌음에도, 아쉬운 건 우리 선조들이 무엇을 하며,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을까,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면서 무엇을 마시고 무엇에 웃고 울었으며 무엇에 감동하였을까 하는 점이다. 

 


가사는 시조와 더불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고전 시가이며 4음보의 율격 속에 시적 정서를 담아내어, 전기에는 노래 가사로, 후기에는 읽을 거리로 전해져왔다(작품해설). 짧고 압축적인 아름다움이 특징인 시조와는 달리 가사는 운율이 있으되 장시의 개념으로 길게 내용을 전한다. 사대부들은 여행 후기도 가사로 썼고, 집들이 축하글도 가사로 썼고, 유배지에서도 가사를 썼다. 책은 크게 강호가사, 유배가사, 기행가사, 교훈가사와 민요의 사설과 후렴구와 같은 민요의 형식을 차용한 가사의 갈래교섭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일 보는 자연이 늘 새롭고 늘 노래말에 담을 만큼 아름다울까. 강호가사를 쓴 사람들은 깊은 숲 속에서 홀로 집을 짓고, 그곳에서 살면서 매일 보는 들과 산과 강과 꽃과 나무와 계절의 변화를 노래한다. 이런 것을 원림문학이라고 하는데, 원림문학의 정의는 '거처와 그 주변의 자연 사물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양태와 거처하는 공간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한다. 강호가사의 대표적인 작품은 정극인의 상춘곡, 정철의 성산별곡과 면앙정가 등이고, 그 밖에도 누황사, 탄궁과 우활가, 봉산곡 월선헌십육경가가 실려있다.  모두들, 현실과는 먼 이상향을 동경하며, 자연을 벗삼아 안빈낙도의 생활을 추구하는 성리학적 이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강호 가사는 일반적으로 정치 현실을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외부와 차단된 은둔을 지향하는 데, 책에 실린 면앙정가와 성산별곡은 사대부가 희구했던 이상적인 세계상을 담는다. 즉, 누정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적인 사물들에 유가적 이상세계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면앙정가와 성산별곡에서 찬양 대상 원림인 면앙정과 식영정은 광주에서 가까운 담양, 소쇄원 근처에 있고, 그 주변으로 가사문학관이 있다. 대부분이 자연의 주변 원림을 조금은 지나치게 찬양하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이 사대부의 이상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니,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가옥 자체와 산세는 남아있는 그곳들은 소쇄원과 더불어 누가 오면 볼 것 없는 광주 대신 관광지로 데리고 다니는 필수 코스 중 하나기에, 머리속으로 시를 짓던 풍경을 꽤나 선명하게 시각화해볼 수 있었다. 


유배가사도 그렇지만, 대개는 가사문학이 다소 자유로운 형식이라고는 하나, 대략 자연을 먼저 노래하고, 그 다음에 개인의 서정과 그리움과 같은 감정을 담는데, 거의 모든 가사에서 느낀 점은 작가들의 임금에 대한 충정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많은 가사문학들이 기승전왕에대한충성인데, 설명에 의하면 그것은 아부가 아니라 군주에 대한 충성심의 표출이 하나의 관념적 미학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은 그리움과 애절함이 절절히 넘쳐나기 때문에, 아 시적으로도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그 임이 왕을 말한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음에도, 당시 사대부들의 유교적 관념이라는 것의 실체를 희미하게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교과서에서는 상춘곡을 비롯해 관동별곡 속미인곡 사미인곡 등을 많이 언급했지만, 가사 문학은 조선전기의 유교적이고 관념적인 형태에서 조선후기로 갈 수록 현실적인 묘사나 내용으로 좀더 생생한 시대적 분위기를 전달해 주므로, 내게는 상대적으로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작가의 후기 문학이 훨씬 더 흥미로왔다. 우리가 그림을 보더라도 산수문경화보다는 생생한 씨름판과 목욕하는 모습, 훔쳐보는 모습들을 재현한 풍속화를 더욱 좋아하는 것처럼 가사를 통해 과거 시대를 만나는 데 있어서도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유학자들의 사상을 만나는 것보다는 가난하고 고단하지만 그들의 먹고 일하고 생활하는 생생한 일상을 만나는 방법이 더욱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기행가사인 관동별곡과 권섭의 영삼별곡의 예를 보자. 정철과 권섭은 모두 화룡소라는 같은 곳을 노래하고 있다. 


<관동별곡> 중

원통골 가는 길로 사자봉을 찾아가니

그 앞의 너럭바위 화룡소가 되었어라

천년 노룡(용)이 굽이굽이 서려 있어

밤낮으로 흘러내려 바다로 이었으니

풍운을 언제 얻어 삼일우를 내릴까

음지에 시든 풀을 다 살려 내었으면 


<영삼별곡>중

뫼 밑에 서린 용이 변화도 무궁하여

음심한 오랜 소에 소굴을 삼고 있어

층층 절벽 백 척에 비단 한 필 걸어 두고

한 낮의 천둥소리 골짜기에 가득하니 

구부리고 보던 것이 내 일이 싱겁구나


정철이 현실에 용의 이념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풍운을 얻고 삼일우를 기원하는 데 비해, 영삼별곡은 용과같은 변화무쌍한 자연, 깊은 소(웅덩이)와 높은 폭포, 천둥같은 폭포물 쏟아지는 소리, 구부리고 보는 화자 자신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는 것이다. 권섭(1671~1759)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여행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다른 기행 가사들이 부임지로 가면서 지은 데 비해, 권섭의 가사는 개인의 순수한 여행 체험을 작품으로 옮겼다. 영삼별곡은 여행을 하게 되는 계기부터가 병이 나 초가를 닫았는데 오지랍넓은 병이 자연에 든 병이라 떠나게 되었다는 다소 코믹하게 시작되어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풍경, 귀리밥에 풋나물 삶아 데쳐 싫도록 권하는 인심좋은 산골집 고즈넉한 저녁 풍경, 앞 내에 빠진 옷을 쥐어 짜서 손에 쥐고 벌불에 쬐는 것 같은 자잘한 기행 풍경을 세세하게 담아내었다. 


기행가사에서 특히 탐라별고 일동별유가 연행가는 각각 제주도, 일본, 북경 여행기를 담고 있는데, 전혀 새로운 풍경을 완전히 다른 가치관으로 바라보는 시대의 시각이 재미있었다. 연행가는 꽤나 조선 후기에 쓰여졌는데도 여전히 명을 숭상하고, 청을 멸시하는 가치관이 엿보였고, 일본에서 호화로운 거리와 가옥들을 보면서도 여전히 미개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재미있었다. 



홍진에 묻힌 분네 이내 생에 어떠한가

옛사람 풍류를 미칠까 못미칠까

천지간 남자 몸이 나만 한 이 많건마는

신림에 묻혀 있어 지략을 맡겠는가

...

이봐 이웃들아 산수 구경 가자스라

답청을랑 오늘하고 욕기 일랑 내일 하세

아침에 나물 뜯고 저녁에 낚시 하세

...

<상춘곡>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광석과 철학하기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12가지 행복 철학
김광식 지음 / 김영사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광석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음악 뿐만 아니다. 한 시대의 청춘이 품었던 이상, 그 속에 핀 청춘의 그림자들을 향수와 기억속에 고스란히 남겼다. 이제 그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김광석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항상 80년대의 좌절된 꿈이 또아리처럼 남겨져 있다. 그가 자신만의 깊은 울림을 음악에 남기고 스스로 떠날 수 밖에 없었음에 대해 시간이 지난 오늘, 김광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젊은날의 꿈을, 젊은날의 사랑을 젊은날의 슬픔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내가 평생 살면서 철학이라는 분야가 가장 난공불략의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해왔는데, 최근 몇 권의 철학 입문서를 읽었다. 꽤 오래전에 읽었지만 철학에 관련된 책이라고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늘상 머물러 있다가, 여러 종류의 입문에 해당하는 철학책을 읽은 것이 1~2년 사이의 일인데, 읽은 책들 중, 국내 저자가 쓴 책도 처음이고, 적어도 무슨 뜻인지 문장과 문단적인 차원에서는 이해를 한 책도 처음이다. 책 제목이 철학하기지만 김광석과 철학하기라고 해서, 김광석의 노래말과 인생을 옄은 에세이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대순으로 김광석의 노래 가사에 철학가들의 사상을 하나씩 대입하여 풀어나가는 철학책이다. 물론 김광석의 노랫말과 엮이다 보니 본문이 철학책 특유의 논문체보다는 조금 노골노골한 문체여서 읽기가 훨씬 편했고, 번역서가 아니어서 가독성도 좋았다.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김광석의 노랫말이 그닥 심오하고 철학적이라기 보다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언어라 하나의 철학 사상으로 풀이하기에는 무리수가 있는 것도 있었으나, 오히려 조금 웃기기도 하고 그랬다. 



<거리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사상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플라톤의 이상의 철학이, <나무>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철학이,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데카르트의 이성의 철학이, <사랑했지만>은 흄의 의심의 철학이, <이등병의 편지>는 칸트의 자기이성비판에서 밝힌 자기 비판이,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헤겔의 정신의 변증법이, <타는 목마른으로>는 마르크스의 역사와 물질의 변증법이, <슬픈 노래>는 니체의 어린애와 같은 초인의 철학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이,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은 벤담의 공리주의와 밀의 의무주의를 잇는 롤스의 정의론이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저자 김광식의 몸의 철학이 각각 대응되어 소개된다. 저자 김광식은 가수 김광석과 모음 하나만 차이난다. 그리고 <말하지 못한 내사랑>에서 짝사랑에 대한 예로 광식이 동생 광수에 나오는 광식이까지 소개되어 광식과 광석이 못다한 짝사랑의 대열에서 하나가 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가사를 토대로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을 설명하는 내용이 좋았고, <그녀가 처음 울던 날>에 롤스의 정의론을 끌어들이는 건 좀 억지스러웠다. 그동안 하이데거의 철학은 현존재니 거기니 어쩌니 좀 이상한 말들로 범벅이 된 외래 서적들을 통해 접한 사상은 알쏭달쏭 뭐라는 소리일까 싶었는데, 정말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이제 조금은 설명에 있는 만큼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실존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이데거가 말한 죽음과 대결하라는 뜻은 생이 영원할 것처럼, 세상이 내게 부여한 존재의 의미나 가치들에 따라 살아가지 말고, 당장 내일, 혹은 한달 내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매순간 다시 못올 시간을 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쉬운 거였나. 죽음의 불안이 엄습하면 모든 일상적인 존재와 존재자들이 비본래적인 것이 되며, 죽음이라는 유한한 시간의 의미 앞에 세상이 부여한 모든 가치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존은 하루를 살아도 그 비본래적인 것을 버리고 본래적인 것, 죽음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추구하며 살라는 것이다. 아들 샌들러가 쓴 두꺼운 책에서 접한 하이데거보다 몇 장 안되는 이 책에서 읽은 많하이데거가 더 좋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의 가사는 매일 활짝 웃고 기다려주던 그녀가, 아무리 괴로워도 웃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내 곁을 떠나갔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심플한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최소의 혜택을 받는 약한 자인 여자에게 최대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게 정의로운 사랑이다... 여자를 성실히 사랑하고, 사랑을 받은 만큼 여자에게 사랑을 주는 규칙을 원할 것이다. 왜냐면 내가 여자일 수도 있으니까. 이런 사랑의 규칙이야말로 정의로운 규칙이며, 정의롭고 행복한 사랑을 가능하게 해준다(p322). 나는 이 대목이 좀 서걱거렸다. 물론 이 대목과 다음 대목을 통해 롤스의 철학을 설명하는 것은 이해가 되었으나, 가사를 잘못 해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에서 중요한 것은 남과 여의 권력 구조가 아니라 사랑의 권력구조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덜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너그럽게 용서하고, 더 보고 싶어 하고, 더 많이 베푼다. 그러므로 이 때 정의를 말하고 싶다면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더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내가 그녀(혹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녀(혹은 그)가 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얻기 위해 약자가 되는 것이다. 이 때 덜 사랑하는 사람이 롤스의 정의를 따른다면 낭만은 강아지가 물어가고, 정의적 사랑이 판을 치게 될까.


간혹 학생들의 사연이 소개되어 있는데, 적절한 철학자의 비유를 들어 보내준 답변이, 교수로서의 저자가 학교 내에서 학생과 교감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엿보게 했다. 여러 철학자들의 핵심 사상을 비교적 쉽게 이해하고 보니, 대체 왜 철학자들은 다음 세대의 철학자들이 뒤짚어 엎고 파기될 철학을 죽기 살기로 연구하고 전파하였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였다. 감성이 중요했다가, 이성이 중요했다가, 정신이 물질을 지배하는 변증법의 핵심이었다가 다시 물질이 정신을 지배했다가 시대를 따라 변하는 철학이란 게, 생각하는 방식을 굳이 어떠한 틀에 넣으려는 시도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리법칙의 특성 - 파인만의, 일반인을 위한 최초이자 마지막 물리학 강의
리처드 파인만 지음, 안동완 옮김 / 해나무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학이나 과학에 대해 일반인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세계를 이해하겠다고 덤비는 건 무리수일까. 복잡한 수학 공식이 없이도, 난해한 과학적 수식 없이도 세상이 돌아가는 근본 원리를 훤히 눈앞에 그릴 수 있을만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과학 책을 읽는다. 그러나 그런 일이 가능할까. 수학과 과학 없이 세상의 근본 원리인 과학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까. 정확하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문장에 쓰인 단어의 표현이 정치적으로 옳다고 보지 않지만, 본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지적인 논증을 통해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음악이 무엇인지를 귀머거리에게 알려줄 길은 없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꽃의 색깔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학이건 수학이건 아무리 쉽게 써 놓았다 한들, 아무리 기가막힌 비유를 통해 추상적 자연을 가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근접하게 설명을 해놓았다고 한들 수학과 물리학적 이해가 없이는 그것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이 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리처드 파인만은 일반인을 위한 강의를 하고, 이공계생 학부생들을 위한 교양으로서의 기초 물리 강의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책을 썼고, 일반인을 위한 물리 이론을 전파하고 확산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여겨진다. 그의 지식이 일반인들을 가르치는 수준이어서가 아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불리는 물리학계의 전설', 원폭 제조를 위한 맨하튼 계획에도 참여, 양자전기역학 이론을 정립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 대략 이 정도로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는 저자의 저서가 일반인을 위한 물리학 강의라는 데 의의가 있다.

들리지 않는 자에게 음악을 설명할 수 없기에 음악을 이해하려면 들을 수 있어야 하듯, 자연에 대하여 깊이 알기를 원한다면, '자연이 이야기하는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언어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규칙을 하나의 완결되고 간단한 기호로 표시할 수학적 언어라 풀이된다. 

파인만은 물리의 개념을 수학과 정교하게 구분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수학은 추론을 일반화하여 단일한 규칙을 발견할 뿐 그것을 실제 사건에 정확하게 대입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데 비해  물리는  실제 세계의 어떤 사건과 현상을 다루며, 실험실에서 대응되는 유리토막과 나무막대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거대한 법칙 내에 포함된 사소한 법칙들이 존재하며, 그것은 수학이라는 하나의 단일한 틀을 통해 다양한 물리적 현상으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수학적 추론에서는 무한한 일반화가 가능한 개념을 다루기에 단어들의 뜻을 알 필요가 없고,  얘기하는 대상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다. 즉 이러이러하면 저러저러하다라는 것들에 기호를 쓰기로 약속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도 관심가질 필요도 없지만, 물리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 가능한 해석의 틀이 다양하다. 

오래전 일이지만 학창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보면, 물리가 어려웠던 까닭은 그 자체로서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이런 저런 규칙들이 많은데 어디에 어떤 규칙이 적용되는지를 매치하기가 어려웠던 일이다. 중력,  전기학, 자기학, 핵 상호작용 등 복잡하고 상세한 법칙들의 다양성에는 일반적인 원리가 꿰뚫고 있는데 예를 들어 보존원리들, 특정 대칭성들, 양자역학 원리들의 일반 형식들이 그것이다.  우리가 배운 모든 보존원리들, 전하량 보존 법칙, 에너지 보존 법칙, 운동량 보존 법칙, 대칭성 보존 법칙 등의 작은 보존 법칙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근사적으로 옳을 뿐이지만 때로 유용하다며 몇 가지 예를 통해 그러한 보존 법칙들이 결국은 보존이라는 하나의 큰 공통 특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인다.

물리 법칙의 대칭성은 물체의 대칭성과 비슷한 특성을 갖는 법칙을 말한다. 중력법칙의 물체들 사이의 힘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데, 만일 태양과 한 행성 사이의 힘은 두 쌍이 똑같이 이동했을 때 동일하다는 이동 대칭성을 갖는다. 시간 대칭성은 그 행성이 똑같은 운동상태에서 2년뒤에 출발시켜도 똑같은 방식으로 운동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때 우주의 기원을 따지고 든다면 이러한 대칭성은 성립하지 않겠지만, 그것을 무시한다. 회전 대칭성은 내가 돌려놓은 재 장치에서 물체의 움직임을 보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다른 사람도 그 물체의 움직임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밖에도 매우 다른 종류의 대칭성들을 소개하는데, 파인만이 흥미롭다고 얘기하는 것은 공간에서의 되비침 문제로, 거울 이미지의 대칭을 말한다. 자연에서 나온 사탕무의 설탕은 오른쪽 분자만 존재하는데, 설탕과 똑같이 원자들을 배열한 대칭 설탕(왼쪽 설텅) 분자를 만든다면 박테리아는 오른쪽 회전 설탕만 먹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생명체가 지닌 단백질 분자가 이런 대칭성에 맞도록 같은 방향의 분자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리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언어가 수학이다. 그러나 수학을 개념적 언어로 풀어쓸 수는 있다. 파인만은 수학적 규칙에 물리학적 특성들을 적용하여 그것을 말로 풀어쓰는 방식으로 일반 물리법칙들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물리학은 어렵다. 마지막으로 읽은 동일 출판사(해나무)의 <백미러속의 우주>와 <빛의 물리학>를 읽을 때에 비해 집중하기 힘들었다. 감기 탓도 있고, 여행 후유증 때문도 있지만, 강의 형식이라 이전의 두 책에 비해 체계적이지 못하거나 혹은 연식이 좀 되다보니 요즘 책들이 너무 잘 나와서 그런지.. 파인만이라는 명성이 그닥 인상깊지 않았다는 총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부의 요리 - 요리사 이연복의 내공 있는 인생 이야기
이연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쓴 전기 스타일의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는 편이 아니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그들은 자주 쉽게, 그들 앞에 이미 날 때부터 주어진 특권과 세상이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원칙인 우연성을 자신의 특별한 노력과 안목과 혹은 홍보하고 싶은 요소로 묻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부의 요리가 요리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그의 성공이 그리 큰 성공이 아니었고, 한 때는 짱깨집 주방장이라고 불렸던, 그가 책에서도 여러번 언급하지만, 공장 노동자들이 공돌이 공순이라고 불리던 시절 짱깨집 요리사라고 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더 낫지도 않았던 연애 시절 아내에게조차 속이고 싶었던 중식 요리사라는 직업으로 어떻게 연일 티브이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 유명한 쉐프가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라고 생각되는 소학고 6학년을 채 마치기도 전에 뛰쳐나와 짱개집 철가방 이전에 사용되던 나무 가방을 조심조심 들고 배달일을 하던 13세 어린 소년이 지금 이 자리에 있기 까지의 시간들이 궁금해서였다. 



요리 프로그램이 대유행이고, 뜨거운 불 앞에서 하루 10시간씩 힘겨운 노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요리사가 이제 조금 좋은 시대를 만나 쉐프라는 멋진 이름으로 불리고 잘생긴 용모와 멋진 쉐프 모자와 쉐프용 위생복을 입고 값비싼 칼과 후추가루통으로 공중 쇼를 보여주는 세상이라고 해서 중식 요리사의 팔자가 완전히 핀 건 아니다. 여전히 중국집 하면 우리는 인공감미료의 닝닝한 감칠맛과 노란색 단무지 몇 쪽 그리고 탕수육과 함께 서비스로 제공되는 글로벌 만두를 기대한다. 한국에서 진짜 중식 쉐프가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매일 짜장면과 짬뽕과 탕수육, 그리고 조금 운이 좋은 날이면 팔보채니, 고추잡채니 하는 어딜가나 똑같이 생기고 맛도 똑같이 뻔한 그런 요리들을 늘 요리하는 중식 요리사들에게 언제 그 넓은 중국 대륙과 주변국들의 다채로운 요리들을 해볼 기회나 있을까.



그의 이야기는 그의 외모만큼이나 소박했다. 열세살 어린 나이로 철가방도 나오기 전 냄새나는 나무가방에 담긴 짬뽕 국물을 쏟을까 노심초사 하며 배달을 다니던, 소년 시절을 기억하는 이연복 쉐프가 삶의 질곡에 대해 고생담을 이야기하자면 또 얼마나 산더미같은 이야기들이 있을까만, 그는 그런 것들, 당시 화교로서 처한 환경과 미래가 정직한 노동으로 먹고 사는 것을 유지하는 중식당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 가세가 기울어 비싼 화교학교 등록금을 밀려 학교를 뛰쳐나와 형을 뒷바라지 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일 같은 것들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중식 식단 자체가 짬뽕 짜장면을 위주로한 저렴하고 단조로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채로운 요리들을 선보이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은 매체의 힘이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것 같은데, 그가 하는 식당에 당시 기자였던 박찬일이 취재차 들렀다가 그 맛에 반헤 홀랑 반해 호형호재 사이가 된 이유가 있었고, 또한 그렇게 차별화된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된 것은 첫째, 대만대사관에서 요리사로 8년 근무하면서 연구하고 익힌 본토 요리 솜씨와 그 이후 일본에서 10여년간 아주 작은 중식당을 운영하면서 갈고 닦은 글로벌한 중국요리 덕분이었다. 물론 대사관에 들어가게 된 건 엄격한 시험으로 선발된 전적으로 그의 실력이었으며, 이후 한국에서는 보더 듣던 요리들을 대사관 부인들로부터 말로 전해듣고 계속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과는 과정에서 그 맛을 찾아나갔다. 



요리가 좋아서 요리를 하게 되었다기 보다는, 먹고 살아야 했고, 화교로서 먹고 살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중식당밖에 없었다는 그의 고백에서 진솔함이 느껴졌다. 스무살 시절 아내를 만났을 때 직업을 묻지 않는 아내에게 당당하게 먼저 말해주지 않을 만큼, 그리 자랑스러운 직업도 아니었다. 화교 뿐만 아니라 저학력이라는 사회적 편견에도 많이 부딪혔을텐데, 그러한 언급은 전혀 없다. 어쩌면 그 사회가 그런 편견보다는 성실한 맛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사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요리 과정 중에 쓴 노트도 살짝 지면에 공개되었는데 이런 저런 요리를 시도하면서 메모한 것들로, 정식으로 중화요리를 배우지 않고 혼자서 터득해간 노력의 흔적을 엿볼수 있었다. 



요리 얘기는 아쉽게도 매우 조금 나온다. 비록 좋아서 선택한 직업은 아니었지만 그는 유학을 가지 않고도 스스로 중화요리의 맛을 터득하고 요리법을 재현해낸 성실하고 깐깐한 쉐프다. 요리과정의 변칙은 바로 맛으로 직결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면 삶을 때 가로로 무한대기호 모양으로 저어야지,위아래로 저으면 맛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단박에 먹어보고 알아내는 것이다. 면을 뽑을 때도 한 번에 뽑아야 하는데, 너무 길어 잡기 힘들면 한 번 잘라서 나눠 뽑는 요리사들이 있는데 어김없이 사부(중식 세계에서는 쉐프대신 사부라고 부른다)인 저자에게 걸린다. 짬뽕 소스를 만들 때에도 고춧가루를 먼저 볶다가 국물야 하는데 뻑뻑하다고 국물부터 넣으면 색감이 허여멀개진다고 한다. 알아두면 좋을듯.



읽다가 허걱 하고 놀란 일이 있는데, 축농증 수술이 잘못돼서 냄새를 못맡는다는 것이다. 후각의 상실은 요리사에게 엄청난 재앙일 수밖에 없다. 몸으로 익힌 감각으로 맛을 재현해내면서, 후각 없이 맛으로만으로도 미묘한 식감을 되찾은 그는 이제껏 비밀이었던 이 사실을 책에서 이제서야 털어놓는다. 과연 한국 최고의 중식 요리사라고할 수 있는 위치에서 인생의 드라마까지 갖추었다. 읽다가 궁금해서 탄탄면을 찾아봤는데 마침 우리가 즐겨보는 <오늘 뭐먹지> 코너에 소개된 적이 있다. 고맙게도 무료라서 인터넷을 뒤지지 않고도 티브이에 지난 방송을 찾아서 보았다. 



그가 하는 식당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식당 이름이 목란이다. 요즘 티브이에 많이 나오다보니 손님이 엄청 많은 모양인데, 유명세에 비해 돈은 많이 못번 모양이다. 가게세 얘기도 나오고 딸이 홍대 미대 진학할 때, 부모 도움없이 스스로 벌어서 미술 학원도 다니고 재료도 샀다고 하니..읽어보면 덤덤하게 이야기하듯 쓴 책이지만, 나름의 인생철학이 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애쓰고 나서서 드러내지 않는 방식의 자신만의 원칙과 가치관을 읽을 수 있었다.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목란에 한 번 들러 배추찜도 먹어보고 싶고, 동파육과 개운한 짬뽕과 배추와돼지고기로만 하는 짜장면과 또 그의 매와 같은 감독아래 뽑았을 면들과 기름으로 반죽한 튀김옷으로 만든 탕수육도 먹어보고 싶다. 다 먹어보려면 몇일 걸리겠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6-01-18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를 읽으면서, 이연복 사부의 요리를 한 번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
guiness님, 좋은밤되세요.^^

CREBBP 2016-01-26 13:35   좋아요 1 | URL
여행다녀오느라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크레타의 땡볕 아래,  젊고 허약한 지식인과 인생을 달관한 듯한 상남자 조르바가 보여준 우정. 그것은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없던 것을 발견하는 인생의 성장 지점이기도 하고, 또한 이야기적으로는 수많은 비극과 실패가 통곡과 웃음으로 빚어내는 인생의 한판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것들이 내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기억으로 새겨졌기에 마치 다가왔다 물러선 잔잔한 파도같은 따스한 그리움이 다가왔다 물러서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속에서 조르바라는 인물은 어딘가 살아있을 것 같은 생생하게 펄떡이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작중 화자가 조르바에 대해 쓴 1인칭 관찰자 시점이어서, 주인공의 속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신비하고 매력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전적으로 작중 화자의 시각에 의지해서 그의 괴짜 같은 행동을 설득당하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 주인공이 직접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렇게 친근하게 머무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은데 조르바는 그런 사람이다. 삼촌같은 사람. 기대하지 않고 있던 어느날 문득 환한 미소와 초콜렛 같은 걸 잔뜩 사다 들고 처들어 와서는 그동안 떠돌아 다니며 생긴 일들에 허풍을 90프로는 섞어 맘껏 떠벌이고 특유의 걸죽한 입담으로 모든 사람들을 혹 하게 만들어버리는 삼촌 혹은 옆집 친구의 삼촌 같은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는 책으로 세상을 배우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젊은날의 니코스 카잔차키스 자신을 모델로 하는 화자가 젊은 피를 정의에 바치기로 작정하고 뛰어든 친구와 작별하고 크레타 섬의 갈탄광산으로 향하면서 친구를 회상하는 장면에서시작된다. 책과 친구와의 작별 등으로 복잡한 머리 속 생각들로 가득찬 그에게 이내 선물처럼 짠 하고 나타난 조르바가 나도 데려가 달라며, 아마도 쓸모가 있을 거라며 스프를 잘 만들 줄 안다고 끼어드는 첫 만남은 사랑하는  남녀의 첫만남처럼 인상깊다.


그리고 조르바에 매료된 작중 화자는 탄광 사업의 관리를  조르바에 거의 다 맡기고 운명적 크레타에서의 인연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책은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가 실제로 갈탄광 사업을 할 때 만났던 실존인물인 조르바를 대상으로 오랜 세월(아마도 20~30년)이 지난 후, 그를 회상하고 쓴 자전적 소설이다. 역자 이윤기님은 크레타 여행 중 카잔자키스 박물관을 방문했다가,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 실존인물이었던 조르바의 딸이 얼마전 찾아왔었더라는 것이다. 읽는 중에도 살짝 컨닝을 쳐서 조르바가 실존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말을 알고는 있었지만, 수십년이 흐른 후 그 기억과 각색에서 탄생한 소설의 내용들이 실제 인물과 같은 점은 지극히 조금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이윤기님의 크레타 여행기 속에 등장한 조르바의 딸이라는 실존적 인물을 직접 대면했다는 소식은 조르바에 대한 소설적 환상이 사실적 경험담처럼 느껴지게 했다.  


물론 인정한다. 소설가들은 어떤 인물에서 기가막히게 매력적인 특징을 포착하여 소설적인 각색을 거쳐 전혀 다른 인물을 세상에 내놓지 않는가. 그런데, 그의 실제 행보와 죽음이 소설 속에서의 묘사와   일치하고, 또한 그 딸이 자기 아버지의 이야기로 세계적 작가가 되었고, 한 때는 그렇게 추종했던 멘토였던 조르바를 소설속에서 성큼성큼 걸어나와 산투르를 뜯으며 춤을 출 것 같이 생생한 캐릭터로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을 불어넣은 작가 카잔자키스를 아마도 구소련이 붕괴된 다음에야 찾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 신비한 소설적 이미지에 현실의 프레임을 한겹 더 씌움으로써 살아 꿈틀거리는 색상을 입힌다. 특히나, 소설 속 조르바는 설사 실존인물이라 하더라도 문학적으로 많이 정제한 느낌이 드는, 소설적에서나 만날 수 있는 매력 만점의 캐릭터였기에 작가의 박물관에 작중인물의 실존 딸이 방문했었다는 소식은 놀라왔다. 조르바의 성격은 만들어 낸 것처럼 기이하고 호탕하고 방탕하기도 하지만 한없이 따스하고 또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드문 개성의 매력 만점의 인물이다. 


반면,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임이 분명한 화자는 나약한 지식인이다. 나약하다는 것은, 친구가 아마도 볼쉐비키 혁명과 관계된 것으로 보이는 어떤 정의로운 행동에 과감하게 자신을 던지는 동안 자신은 자본가로서 돈을 벌 목적으로 갈탄광으로 가는 것에 대한 자기 비하적인 것으로 느껴졌는데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그의 갈탄광 사업이 그야말로 악덕 자본가로서 노동력을 끌어모아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돈을 버는 것이 첫번째 목적이었고, 그 성공을 발판으로 자신과 동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야망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은 힌트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카잔차키스가 태어닌 1883년 크레타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고, 그의 어린시절 두차례에 걸쳐 터키의 지배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났고 두번째 반란에서 자치권을 얻는다. 그가 36세의 나이로 공공복지부 장관에 임명되었을 때, 볼세비키에 의해 처형될 위기에 처한 15만명의 그리스인들을 송환하는 임무를 맡고 평화협상에 참여하지만, 훗날 추종했던 민족주의자 드라구미스가 암살되고 자신을 임명했던 베니젤로스가 이끄는 자유당이 선거에서 패배하자 장관을 사임하고 붓다와 프로이트를 연구하다가 1922년 전쟁에서 그리스가 터키에 참패하자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 혁명가들에 동조한다. 이 때가 39세. 평생 많은 시간을 여행과 집필과 공산주의 활동을 했지만, 러시아 구석구석 및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여행기를 썼고희곡을 썼고, 번역을 했고, 교과서를 집필했고, 다시 정치에 뛰어들어 소수 좌파의 지도자가 되어 사회 민주주의 정당의 통합을 실현한 후에는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63세에 쓴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로, 이 책으로 일약 세계적 스타 작가가 된다. 


따라서 그의 성향은 이상향을 꿈꾼 사회주의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가 추종하는 조르바는 그러한 정제된 이상적인 사상에 앞서 인생을 경험한 경험자로서 오히려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주입한다. 그토록 갈구했던 어떤 진실, 책에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진실을 조르바에게서 발견하는 기쁨을 이 책에서는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결국 무슨주의니 하는 것들, 민족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은 개나 줘버려라라는 조르바의 사상을 그의 언행을 통해 나누는 것이다.


인생을 그토록 사랑하던 내가 어쩌자고 책 나부랭이와 잉크로 더럽혀진 종이에다 그토록 오랫동안 내박쳐 둘 수 있었단 말인가



그 중 불편하게 읽힐 수도 있는 부분이 조르바의 여성에 대한 비하적인 발언인데, 예를 들어,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여성은 항상 남성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며, 남자된 자로서, 구원을 받으려면 모든 여성을 가엾이 여겨 그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존중이라는 게 다름아닌 섹스다. 그러기에 그는 가는 곳마다 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는데, 한 마디로 바람기가 다분한 나쁜 남자라고 할 수 있으나, 그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나쁜 남자처럼 여자를 등처먹거나 혹은 마음을 빼앗아서 원하는 것을 취한 후 재빠르게 다른 여성으로 관심사를 옮기는 전형적인 나쁜놈이 아니라, 혼자된 과부라든가, 소외된 여성들에게 입바른 찬사를 주어섬기고, 마음을 빼앗게 하는데, 그것이 묘하게 그들이 처한 지난한 외로움을 해소시켜주는 방향으로 악의 없이 진전되기에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여성 독자로서도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여자란 늘 자기 운명을 슬퍼하는 동물이라느니, 말로 표현 못할 갖가지 언행들이 우스꽝스럽게 곳곳에 배치된다. 그러나 용서가 되는 것은 그러한 조르바의 편견에 가까운 어떤 집단에 대한 그의 생각은 여성 뿐만 아니라, 수도승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르바의 한 마디 한마디가 그에게는 마른 대지에 내리는 봄비처럼 촉촉하게 활자로된 지식으로만으로 채워졌던 황량한 그의 지적 세계를 현실적 지혜로 채운다.  하느님, 회사의 이익, 그리고 과부가 조르바의 머릿속에서는 아무 모순도 없는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고 느끼는 '나'는 조르바의 망나니같은 행동을 끝도 없이 참아주고, 그의 말도 안되는 때로 우스꽝스러운 주장들 속에서 진실을 발견한다. 조르바 역시 그의 인생이 스스로 저지른 지울 수 없는, 영원한 상처로 남게 되었을 참혹하고 잔인했던 순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그가 세상을 몸으로 이해하게 되고 자조 섟인 듯한 깨달음이 어느 지점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돈을 끌어모으는 갈탄광의 사업이라는 배에 태워졌음에도, 아름다운 크레테 섬 바닷가 오두막에서 그는 갈탄광과는 머나먼 서정적인 세계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것을 찾는다. 마치 연애를 하듯 두 사람의 대화는 끝이 없이 인생의 마디 마디를 성찰하고 인간이란 것의 어쩔 수 없는 슬픔을 공유한다. 결국 그들은 인생의 어떤 지점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참혹한 죽음을 경험하고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 알쏭달쏭하지만 어쨌든 슬픈 기억으로 남을 사랑을 했고, 그 둘 모두 그 사랑을 무자비하고 처참한 방법으로 맞는 죽음에 변변히 맞서지도 못하고 공동체와 타협하고, 또한 그들이 함께 하는 무늬상의 이유였던 사업조차 말아먹은, 그야말로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치닫지만, 마치 해피엔딩과도 같은 초월적 결말을 맺는다. 


밖은 추웠고 바다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금성이 동쪽 하늘에서 까불락거리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갔다. 나는 세월과 맞서 소리를 지르며 바보같이 흥청거렸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의 슬픔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허공중에서 바람을 받은 한 조각 구름처럼 내 인생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갔다. 흩어졌다가는 다시 모이고 모였다가는 다시 모습을 바꾸어...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