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한시 -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붙잡다
이우성 지음, 원주용 옮김, 미우 그림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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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폐쇄적인 조선사회에서 여러 차례 파직된 허균은 '기생과의 잠자리를 마다 않은' 자유분방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공주 목사에서 파직된 후 만난 이매창만은 꺾어야 할 꽃으로 여기지 않고, 재능 있는 문인으로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하며 오랜 시간동안 문학적 우정을 쌓아갔다고 전해진다. 매창을 향한 그의 시를 읽으면 기생과 바람둥이의 아련한 플라토닉 러브가 잔잔하게 전해져 온다. 10년 이상 문학적인 교류로 우정을 나누던 허균은 매창을 만난지 10년 후에 쓴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전해진다고. 


내가 그대를 만났을 때 조금이라도 딴 마음을 먹었더라면 그대와 나와의 만남이 어찌 10년이나 이어질 수 있었으리오. 

 

바람둥이는 사랑의 덧없음을 일찌감치 눈치챘고, 때문에 둘의 우정을 위해 사랑은 한쪽으로 밀어 두었다.  이런 종류의 사랑, 아직도 설렌다. 매창이 남긴 중병을 보자. 


不是傷春病

지나가는 봄을 슬퍼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只因憶玉郞

오로지 그대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생긴 병이에요

塵世多苦累

티끌 같은 세상 괴로움만 쌓이니

孤鶴未歸情

떠나가 돌아오지 않는 그대 마음 때문이죠


매창의 중병이 허균을 향한 마음이었을까. 긴 우정을 위해 불꽃같은 사랑을 희생한 셈이었다. 숱한 남자들과 문학적 교류를 했던 매창이 누구를 기다리다 죽었을까. 허균은 서른 여덟살의 나이로 요절한 매창의 무덤앞에서 애계랑이라는 애도시를 짓는다. 책을 계속 읽다 보면, 그녀가 오로지 사랑한 사람은 매창과 같이 천인 출신인 유희경이었다고 나온다. 


자유연애가 허용되지 않았던 폐쇄적 시대 조선에 기생의 역할은 욕망의 분출구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가무 뿐 아니라 시와 풍류를 즐길 줄 아는 특별한 기생들이 그들의 고객들과 나눈 사랑은 사회가 인정하는 정당한 관계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그래서 더 애절하고 간절하다. 


아마도 내게 시대를 초월해서 가장 좋아하는 로맨틱한 시를 고르라고 한다면, 황진이의 다음 시다.


동지 섣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얼운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님 그리는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 낸다는 그 표현을 나는 두고두고 감탄한다. 그것을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는다니, 황진이가 만일 그런 종류의 표현의 자유를 가진 유일한 계급의 천한 여성인 기생이 아니었다면, 양반집 마님이 되어 조신하게 곳간 열쇠를 관리하고, 세상 밖 이야기에 귀닫고 입닫고 살아야 했다면 어쩔 셈이었나. 시대가 여성에게 윤리라는 이름으로 베푼 폭력은 두고두고 용서되지 않는다.  책의 주제가 한시니만큼 이 시의 신위의 한역본이 먼저 실리고 원본이 실렸다. 한역을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한자를 아는 사람들이 훈민정음을 모를 리 없었겠지만, 한역을 하고, 한역본을 읽었을 시대적 상황을 이런 저런 이유로 상상해본다. 


남녀간의 플라토닉 러브는 소유 대신 환상을 오래도록 유지시켜주는 대가를 돌려준다.  황진이가 작정하고 덤벼들어 유혹했으나 실패하고 섬기어 제자 사이가 되었다는 서경덕과의 사랑 역시 플라토닉으로 전해진다. 그가 짓고 황진이가 답한 시들을 보면 과연 야심한 밤에 두 남녀가 서로를 향한 본능적 욕망을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다. 그래서, 속된 현대인의 눈으로 그들의 전해지는 플라토닉 러브는 더욱 믿기가 힘들어진다. 약속한 밤, 기다리다 지친 서경덕은 지는 잎 바스락거리는 바람 소리에도 제자(?)가 오는 소리일까 촉을 세웠다. 그리고 그 마음 그대로 시가 되었다.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에 어느 임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그인가 하노라.


황진이의 답가는 한역본을 함께 실었는데, 한글 원문과 한역본을 재역한 것을 비교하면 이렇다. 


내 언제 무신하여 임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내가 언제 신의 없이 그대를 속인 적이 있었나요

달도 기운 깊은 밤이 되도록 그대 오려는 기척 전혀 없네요.

가을 바람에 지는 낙엽 소리야.

난들 어찌 하겠어요.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에서 아내의 부음을 듣고 쓴 배소만처상은 처절한 안타까움이 먼저 간 아내에 대한 역설적 원망으로 표현되어 있다. 급작스런 죽음은 남겨진 사람에게 처절한 슬픔과 상실감을 준다. 단지 죽었기 때문에, 죽어 죽은 사람은 그것을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상실의 슬픔을 죽은 사람에게 전한다. 더욱이 그는 유배중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엇갈림 속에서 아내의 사랑하는 죽음을 지켜볼 수도 없었음을 떠나보낸 이에게 향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이렇게 역설적으로 표현하다니. 나 죽고 난 후 다시 만나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사랑하리라가 아니라 생이 바뀌어 내가 죽고 그대가 천리 밖에 살아 그대에게 이 마음의 슬픔을 알게 하겠다는 것이다. 서릿발이 내릴 것 같은 복수의 서정, 누군가가 이승을 떠났기에 남겨진 이의 참담함이 뼈속까지 전해져 오는 시였다.


이 책은 구성적으로 전체 거의 모든 페이지가 미우 작가의 일러스트 그림으로 채워져 있고, 로맨틱 한시와 풀이, 그리고 시인 이우성의 정체모를 글이 번갈아가며 교차 편집되어 있다. 한시 부분과 한시 설명 부분은 매우 신중하게 선택되었고, 한시와 원작자에 대한 설명은 간략하지만 꼭 필요한 정보는 짚어준다.  책 전체의 편집 디자인 역시 마음에 쏙 들었다. 이우성 작가의 글은 자신의 연애담을 적은 매우 평이한 문장을 문장마다 줄바꾸기로 멋을 냈지만 막상 읽어보면 시적인 정제된 표현은 안보인다.  읽다보면 맥이 끊겨 산만해진다. 줄바꾸기를 하는 목적은 줄 바꿀 때마다 쉬어서 읽으라는 소리다.  줄바꾸꾸기로 생긴 여백만큼의 긴 여운을 제공해야 한다. 문장 사이와 문장 내에서 줄바꾸기를 하려면 독자들에게 한참 쉬어 음미하고 느끼고 성찰하고 할만한 컨텐츠를 제공하는 지를 우선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 내용은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후회하고 방황하고 그런 것들을 끄적끄적 낙서하듯 자유분방하게 적어놓은 젊은 시절의 일기장 같다.

 

이 세가지 종류의 다른 글들이 번갈아가며 나오기 때문에 한시와 그 설명을 읽는 것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고 산만한 것이 유일한 단점이다.  고요하고 잔잔한 일러스트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마음을 만져준다. 그것을 바탕으로 고색 창연한 한시를 읽고 감상에 빠찌는 시간은 진정 행복했다. 다만 갑자기 끼어들듯 교차 편집된 에세이 부분이 산만한 것이 아쉽다.  그 부분을 빼고 한시와 그 설명 그리고 일러스트로 재구성을 했다면 만점짜리 책이었을 듯 싶다.  일러스트 그림에는 부서질 듯 고독해 보이는 홀러 선 여자가 계속 나오는데, 그것만 따로 모아 보아도 어떤 스토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읽고 감상하는 데 집중하느라 유의해서 보지 못했다. 이부분은 다시 봐야겠다. 


금각이라는 사람의 시

楊柳詞(양류사)



送君心逐狂風(송군심축광풍거)

그대 보낸 후 내 마음 광풍처럼 그대를 뒤쫓다

去掛江頭綠柳枝(거괘강두녹류지)

강나루의 푸른 버들가지에 걸리었네

綠柳能知心裏事(녹류능지심리사)

푸른 버들이여, 내 마음 잘 안다면

煙絲强欲繫郞衣(연사강욕계랑의)

실버들로 떠나는 내 임의 옷소매 잡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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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7-1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 이우성의 정체모를 글ㅋㅋ 한시를 읽으면 옛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인들은 동서고금 비슷한가봐요 황진이 시의 표현은 정말 최고.. 이효석의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다와 더불어 제가 좋아하는 구절이에요

CREBBP 2015-07-1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순화해서 쓰긴 했지만 정말 짜증났어요. 읽어보면 별 내용도 아니고 그냥 지 연해할 때 얘기들인데 유치해요. 아마도 줄바꿔쓰기땜에 계속 거슬린 건지 모르겠지만 따로 읽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는데.. 격 떨어지게 한시랑 섞어 놓다니..젊은 시인인 모양인데 시인의 에세이는 웬만하면 신뢰가 가는데 쩝..

에이바 2015-07-17 23:27   좋아요 1 | URL
저도 시집에 시만 있는게 좋아요 솔직히 코멘트 있으면 시 감상에 방해만 되고.. 뒤로 미뤄버리거나 하는게 좋아요 대부분은 짧은 단상에 불과한거라..

CREBBP 2015-07-17 23:30   좋아요 0 | URL
시에 대한 코멘트하면 이해를 하겠는데 완전히 관계없는 한마디로 자기 얘기.. 아 나만 그렇게 느껐는지 다른 사람 의견도 궁금해요. 정말 왜 그런 글을 넣었는지 의아했거든요. 문학적으로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시랑 개인 낙서같은 글둘을 왜 섞냐구요.

에이바 2015-07-17 23:36   좋아요 1 | URL
한시가 어렵다는 편견불식을 위해서였을까요? 시인이 선정한 한시였나? 차라리 작품 배경설명을 넣던가 하지.. 저도 좀 의아하네요
 



장갑 속에 숨겨진 흰 손을 이토록 매혹적으로 묘사한 미스터리가 있을까요? 중간에 덮을 수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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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7-1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벨벳 애무하기 였던가요? 후속작인지 전작인지는 안 읽어봤는데 세라 워터스는 대단한 작가 같아요 전 bbc 드라마 먼저 봤는데 참 좋았어요

CREBBP 2015-07-17 23:15   좋아요 0 | URL
전 미국 있을때 드라마 먼저 봤는지 책 먼저 봤는지.. 책을 끝까지 봤는지 자세하 생각 안나요. 막 섞여서. 미국 도서관에서 오디오북도 대여를 해주기 때문에 글자만 읽으면 눈에 잘 안들어와서 오디오북 들으면서 같이 책장 넘겼던 것 같아요. 책이든 드라마든 둘 중 하나가 넘 재밌어서 나머지 하나도 봤는데 뭘 먼저봤는지는... 아 정말... 근데 이거 에이바님이 좋아할만한 거 같아요

에이바 2015-07-17 23:31   좋아요 0 | URL
이 드라마로 샐리 호킨스를 알게 되서 더 좋았어요 시대물이라길래 봤는데 반전에~ 아 모드의 장갑.. 관능적이에요 오디오북도 있나봐요 들어봐야겠어요 박찬욱 감독이 이 작품으로 영화 찍는다는데 별로 기대가 안돼요 한국배우들은 너무 똑같아요 시대설정도 맘에 안 들고요ㅠ

CREBBP 2015-07-17 23:35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영화 반댈세`에요. 드라마 이미지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강렬한데.. 그안본 사람들에게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연출력으로 어필하겠지만 이미 본 사람들한테는... 아 그렇다고 해서 영화 개봉하믄 안볼 수도 없고.. 근데 반전이 뭐였더라..

에이바 2015-07-17 23:38   좋아요 1 | URL
젠틀맨이랑 짜고 수를 병원에 넣은거랑 출생의 비밀이요!
 
정리하는 뇌 - 디지털 시대, 정보와 선택 과부하로 뒤엉킨 머릿속과 일상을 정리하는 기술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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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인정하고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산만하다.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멍때린다. 대화하다가 뒷북도 잘치고, 남들 웃을 때 나중에 웃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 이유를 이제 조금 더 명확하게 알았다. 뇌의 중앙집중모드와 백일몽 모드의 대립 관계에서 백일몽 모드가 더 우수해서라고 한다. 백일몽 모드의 긍정적인 부분은 많은 생각의 고리들을 연결시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과 공감 능력과도 관련이 있다는 말을 보니 창의력과 공감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다른 부분들을 보상했으리라는 생각에 나름 위안이 된다. 산만하고 책상 어지럽히고 집안 잘 못치우고 하는 것들로 인해 실제로 스스로의 삶에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반대로 잘 치우고 정리도 잘 하는 모범적인 사람들에게도 그에 따르는 반대적 보상이 따른다고 생각하니 인간의 유전자와 타고난 성향이 완전히 찌그른 건 아니지 않은가.

 

이처럼, 집중력과 창의력 사이의 시소 관계에 대한 부분이 첫 장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책의 전반에 걸쳐 자주 환기된다. 물론 둘 다 강할 수도 있겠지만, 뇌의 백일몽 모드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영감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며 의식의 흐름에 모든 정신적 활동을 맡겨버리고 무아지경이 되는 시간이 그리 게으르고 낭비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에너지를 너무 많은 과제에 집중해서 쏟아버리는 일이 만사는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멀티태스킹에 존재하는 균형 역시 결국 집중력이냐 창의적이냐의 문제로 귀결될 때가 많다. 어떤 일을 하고 있다가 다른 일로 전환하는 작업은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 따라서 잦은 카톡 확인,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일은 그만큼 주의력을 새게 하고, 실수와 시간낭비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운전을 하면서 2~3분 신호대기 시간을 못참아, 카톡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데, 이러한 행위가 운전을 하는 데 있어 주의력을 분산시켜 사고 위험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카톡에 답하는 것 역시 인간관계를 위한 시간의 투자라고 보면 이런 쪼가리 시간에 멀티를 함으로써 전환에 빼앗기는 에너지와 거기서 취하는 관계적 시간적 이득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저항해봤다. 그러나 멀티태스킹은 그 정의상 문제해결이나 창의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속적 생각'을 붕괴시킨다는 점에서 오늘날과 같이 지속적 단위의 집중된 시간을 갖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문제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고안했다는 고속도로의 번호 체계에 대한 내용이 완전 신기하고 재밌어서, 친구들의 단톡방에 올렸다가, 위의 백일몽 모드를 얘기했더니 더욱 궁금해서 몇 페이지 사진 복사해서 알려줬더니 너도 나도 책들을 주문했다고 한다(와이즈베리에서 상 줘야됨). 어찌되었건, 자신의 성향을 이해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이럴 때 백일몽 모드와 중앙집중모드와의 뇌신경학적 구조적 대립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이해하는 데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책은 정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 정리를 잘 하기 위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내가 왜 정리를 왜 잘 못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다. 어떻게? 뇌신경학적 분석에서부터 시작해서, 인문 과학적 지식들이 총동원된다. 어떤 종류의 정리를? 물론 책상정리를 비롯해서 친구 정리, 컴퓨터의 파일 폴더 정리, 비지니스 세계의 정리, 집안의 잡동사니 정리, 사회 세계의 정리, 시간의 정리, 어려운 일의 정리,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정리 등등. 이쯤되면 총체적인 인문학적 지식들이 망라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 읽은 <잠의 사생활>을 비롯해서 여러 책들에서 소개된 내용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책을 잘 안읽는 친구들이 이 책을 주문한 거 별 걱정 안한다. 여기에서 다루는 정리라는 것의 세계가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유용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밝혀 졌는데도 이미 얻은 정보를 무시하기 어려워 하는 경향(p228)' 은 사회적 판단과 관련된 인지적 착각이다. 한마디로 똥고집의 정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것인줄 몰랐던 최초의 지식은 잘못된 것을 알고 난 후에도 오래도록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믿음 보존 편향은 노골적인 거짓말이나 잘못된 사회적 정보가 만연한 사회에 기여한다. 편향에 의한 피해 당사자가 되고 나면 경력이나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기도 무척 어려워진다


또다른 종류의 편향 중 기억해 할 것으로 내집단 외집단 편향이 있다. 각각의 집단은 다른 집단은 모두 획일적인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자기네 집단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복합적 집단으로 보본다. 예를 들어 인종관계에 대해 가르치는 학급에서 '흑인들은 ... 이렇게 느끼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좋은 질문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 반대로 '백인들은 ...이렇게 느끼지 않나요'라고 하면 강한 반발감과 함께 밑도끝도 없이 백인중에는 보수, 진보, 유대인, 소수 계층 등 천차만별인데 백인이라고 한 범주로 사용하면 너무 폭이 넓고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연된 지역 감정은 좋은 예다. 특정 지역에 대한 반감이 악의적으로 구조적으로 퍼져있는 상태에서 한 두 사람이 경험한 그 지역 사람들에 대한 안좋은 존재는 그 지역에 대한 대표성으로 간주되기 쉽다.

 

시간의 정리 부분에서 흥미로운 부분 역시 편향에 대한 부분이었다. 뇌의 각성 시스템은 새로움 편향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주인은 뇌의 주의는 거기에 쉽게 장악된다. 이것은 깊숙이 내재된 일부 생존욕구 보다 강력해서, 한 과제에 집중하기 위해 필요한 뇌의 영역이 반짝이는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쉽게 정신을 뺏기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얘기했던 멀티태스킹과도 관련이 되고, 또한 새로운 중독과도 연결된다.

 

뇌에는 긴 사건을 덩어리로 분할하는 일을 전담하는 영역이 전전두엽 피질 속에 들어 있다고 한다. 덩어리로 나누는 것은 1) 명확하게 구별되는 과제를 줌으로써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행 가능하게 만들어 주고, 2)분명하게 정의된 시작과 끝으로 프로젝트를 분할해 주기 때문에 인생의 경험을 기억하기 쉽게 해준다. 이것은 다시 기억이 관리 가능한 단위로 저장되고 검색될 수 있게 만든다.

 

통찰이 일어나기 직전의 순간에는 감마파가 함께 폭발하듯 터져나와 이질적인 신경 네트워크들을 하나로 묶어 주며 서로 관련 없어 보이던 생각들을 일관성있는 새로운 주제로 엮어낸다 301

 

몰입 상태에서는 행위와 의식이 하나로 합쳐진다.  생각이 곧 행동이 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유를 경험한다. 몰입 상태의 한 가지 특징은 산만함이 사라진다.

 

노년층은 사회적 네트워크의 규모가 작고 그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지만 젊은이들만큼이나 행복하다는 것은 이미 연구결과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또 그것을 실천에 옮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구결과 이런일이 노화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 입증됐다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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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라의구슬 2015-07-16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때리기`와 `똥고집`의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다니...^^ 저도 지금 사러 갑니다. (와이즈베리에서 정말 상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CREBBP 2015-07-16 18:06   좋아요 0 | URL
두께의 압박이 있습니다 ^^

에이바 2015-07-16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책 궁금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ㅎㅎ 멍 때리기와 의식의 흐름, 무아지경에 대한 면죄부를 얻은 것 같아요! 잦은 카톡 확인 같은 스마트폰 얘기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루이 CK의 클립이 생각나요. 혼자가 되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거라 그랬던 것 같은데 당시에 상당히 공감했어요.

CREBBP 2015-07-16 21:37   좋아요 2 | URL
면죄부 정말 맞아요. ㅎㅎ. 게으름에 대한 핑계 거리도 되구요. 카톡뿐 아니라 이메일이며 여러가지 알람 및 광고 전화 밑 기타등등 단 한 시간도 지속적으로 집중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란 건 모두가 인정할 것 같아요. 점수를 좀 후하게 줬는데 사실 새로운 사실은 크게 많지 않고 이미 알려진 행동심리학과 여러 분야의 이야기들을 수집 편집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정보를 매우 성실히 잘 정리해서 비교적 일관되게 보여준다는 면에서 괜찮은 책입니다.

라스콜린 2015-07-16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사려고 도서관 신청해봤눈데 안오네요 참 ㅎ

CREBBP 2015-07-16 23:50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갖추고 있을만한 가치는 있는 책일텐데요.

라스콜린 2015-07-16 23:51   좋아요 1 | URL
오기는 왔는데 아직 정리중이라네요^^;

AgalmA 2015-07-17 0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단 편향 말이 나와서...
해외에서 [한국인 관광객 사절]하는 상점 얘길 들으며, 얼마나 심했으면 하는 동조의식이...
일전에도 분명히 촬영 금지했던 드론으로 이탈리아 두오모 성당에서 사고낸 일화도 그렇고, 한국인들 해외 가서 정말 조심 좀 해 주길. 요즘 나라 자체도 세계적으로 비웃음 대상인데...

CREBBP 2015-07-17 10:07   좋아요 1 | URL
IMF 터지기 직전 거품 경제때 제일 심했죠. 그게 다 거품인 줄 모르고 방방 떠서 다른 문화를 존중하지 않은채 돈 떼로 몰려다니며 시끄럽게 돈 뿌리고 다니던 사람들.. 이제는 좀 철 좀 들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여전한가보군요.
 
정신분석 입문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우리글발전소 옮김 / 오늘의책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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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존의 질서에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서, 자리잡는 데 까지는 논리적 설득과 전파에 시간이 필요하다. 100여년전은 특히 지금보다 더 학문이건 예술이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개념이 나타나서 곧바로 수용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이라는 분야에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흡수하여 병리적인 현상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치료하고자 했던 시도가 처음부터 먹힌 것은 아니었다. 책을 쓰기 훨씬 이전 이미 그의 이론이 꽤 유명해져서 국제정신분석학회가 창설되고, 라이틀러, 슈테겔, 융과 아들러와 같이 아직 쟁쟁한 사람들과 교류했다가 분파가 갈라지는 등의 일련의 일들을 겪은 후였기에, 아마도 스스로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에도 지면을 많이 할애했던 것 같다. 


칼 포퍼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인 반증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일 수 없다고 보았고(위키피디아), 때로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옹호론자들과 비판론자들과의 논쟁은 매우 격렬해서 프로이트 전쟁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분명 프로이트 심리학은 설득에 무게를 많이 두는 학문인 것 같다. 이 분야를 과학으로서의 학문으로 본다면 해석의 인위성, 작위성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근거가 탄탄하지 않다면 설득이 필요없다. 대신 그 근거를 이해시킬 설명이 필요하다. 프로이트는 당시 대학자이면서도 자신의 이론이 외부에 납득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방어적 입장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이론을 설득한다.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 비난할 지 모를 주장에 대해 '나중에는 그 의미를 알게될 것'이라는 설명도 보인다. 이 책이 정신분석 입문 학생들을 위해 저술된 책이라는 점을 상기해볼 때, 그 구체적이고 난해한 개념으로 깊이있게 들어가는 것보다는 정신분석학이라는 당시 매우 생소한 개념의 언어들을 일단은 설득적인 방법으로 전달할 수단을 찾았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해제에서는 '다수 사례의 수집으로 인과관계를 발견하여 보편타당한 법칙을 세우는 설명과는 달리 감정이입으로, 즉 자기의 기분으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짐작하여 인과관계를 발견하는 방법'인 정신분석학을 요해심리학이라고 한다. 칼 포퍼의 말을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생각으로 비관적이었던 나는, 프로이트의 리비도니 하는 개념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지만 그저 주워들은 상식으로 탐탁지 않았던 중에,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에릭 캔들의 <기억을 찾아서>를 읽다가 느꼈다. 그는 기억의 기원이라는 노벨상을 수상하게 한 자신의 뇌신경학적 연구 방향에 있어 프로이트에게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적고 있었다. 이렇게 생소한 분야의 책을 원저자의 책으로 만나는 일이 퍽이나 겁나는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혔고, 정교하게 제시되는 프로이트의 일관성있는 이론에서 그 이론에 대한 납득보다도 프로이트의 천재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서 프로이트는 수많은 저작물을 남겼지만, 그 중에서 <정신분석 입문>은 빈 대학의 신경학부 생들을 위한 <정신분석 입문> 강의를 위해 쓰여진 입문서로서, 그의 여러 권으로 나뉘어져 상세하게 기록 설명된 그의 이론들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쓴 책이다. 처음 <정신분석입문>을 강의했을 1900년 경에는 청강자가 세 사람이었고, 유명해진 후 1915년에는 70에서 100명까지 돌파했다고 한다. 


616쪽의 두꺼운 이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고, 1부 <실수행위>는 1916년에, 2부 <꿈>은 1917년, 그리고 3부 <노이로제 총론>은 1917년에 간행되었는데, 1부와 2부는 그의 또다른 저서 <꿈의 해석>과 <일상생활의 정신병리>의 내용을 쉽게 정리한 것이고 나머지 책의 절반인 <노이로제 총론>에서 그의 대다수 이론들이 다루어진다. 어쨌거나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핵심적 키워드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면, 성적 욕구와 억압,퇴행, 무의식 등을 들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 가지는 모든 욕구를 성적 욕구로 보고 이것을 억압하는 자아와 무의식이라는 개념 속에 포함된 커다란 관점에서 인간의 모든 심리적이고 병리적인 현상이 해석된다. 이러한 이론을 믿느냐 안믿느냐, 설득당했느냐 안당했느냐의 문제는 나에게 더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의 이론은 자신이 세운 리비도라는 뼈대에서 조금도 동떨어지지 않은 채 일관되며, 진화론적이고 생물학적인 백그라운드로 설명되며, 과연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비록 과학이라 부를 수 있는 단단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심리학과 뇌과학의 여러 분야, 문학, 예술등 다방면에서 무수한 영감이 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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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대충대충 만드는 것 같은데도 집밥 백선생의 인기는 하늘을 뚫을 것 같다. 친구들의 밥상이 거의 똑같아 지고 있다.

재방송이지만, 어제 된장찌개 편을 처음으로 첨부터 끝까지 다 보고나서 친구들 의견을 들어보니, 일단 편하고 맛있단다.

읽을 책은 산더미 같은데, 여러 책을 한 50쪽씩 읽다 집어치고 2주전 주말을 이용해서 정주행

모든 재료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박한 재료를 쓴다는 점과 모든 요리를 엄청 간단하게 한다는 점에서 실속있다.



잊기 쉬운 핵심만 노트정리했는데,  (아깝지만) 공유한다.



1. 만능간장

    - 비율 = 돼지고기 3:간장 6: 설탕 1 (다 같이 넣고 끓임)

    - 꽈리고추 - 만능간장1:물1 다 같이 넣고 끓임

    - 마늘쫑 - 기름에 볶다고 만능간장 넣고 물 없어질 때까지 조림

    - 두부조림 - 물1, 고춧가루, 마늘, 파, 고추 추가



2. 된장찌개

   - 베이스 : 무(나박썰기), 쌀뜨물, 된장만 넣고 오래 끓임, 고춧가루, 설탕 추가

   - 모든 된장찌개 : 베이스에 부재료 넣고 끓이면 5분 완성. 두부는 나중에

   - 삼겹살 된장찌개  : 팬에 삼겹살 구워 자른후, 베이스+부재료 넣고 끓임

   - 마무리 : 파, 매운고추, 빨간고추

   - 집된장은 시중된장과 섞어서 쓴다. 집된장만 쓸때는 텁텁하면 설탕 추가

   - 차돌강된장 - 소고기채썰어 무 채썰어 섞어 볶다가 쌀뜨물 자작하게 넣고, 간마늘 설탕추가

   - 바지락된장찌개는 바지락 나중에, 달래도

3. 김치찌개

   - 비율 : 김치3 : 돼지고기 1이 적당, 고춧가루 추가

   - 꿀팁 : 돼지고기를 썰어 끓이다가  김치를 넣는다. 김치가 너무 실 때는 설탕추가

   - 김치전 : 김치1, 부침가루 1, 고춧가루 추가, 바삭하게 스냅을 이용해서

4. 돼지고기

   - 밑간은  MSG(맛소금)

   - 쌈장 = 된장 1, 고추장 1/4, 고추가루, 간마늘,사이다, 참기름

   - 양배추찜 - 전자렌지에 10분

   - 볶음밥 : 구운 고기 잘게 썰고, 파절임 김치 넣고 볶다가 고춧가루, 기름장 투하, 나중에 공기밥 넣어 숟가락 두 개를 이용해서 섞어 부침개쳐럼 펼쳐 익힘



5. 카레

   감자볶음 :  채 쳐 소금 물에 데쳤참, 양파 당근 볶은 후 데친 감자 투하

   카레 양파를 캐러멜라이즈될때까지 볶다가 기본재료 채친 부재료 같이 볶다가 물붓고 카레털넣기.

[추가…7.11]
6. 국수

빡빡 빨래하듯 빨아 헹구는 것이 쫄깃한 면빨의 포인트

육수 : 고명으로 쓰일 야채들을 썰어 맹물+간장+소금물에 끓인다. 계란을 푼다.

비빔국수 : 김치 송송 썰어넣고 면 넣고 고추장 식초 설탕 식초로 비벼 김가루 고명

8. 생선통조림
구이 : 꽁치 건져 튀김가루 입혀 기름에 튀기듯 굽는다.

조림 : 생강 편으로 썰어 깔고 간장1/3C 맛술 1/3C 물 1/3C 붓고. 설탕 2스푼 추가. 꽁치와 고추를 넣고 조리다가 꽈리고추를 넣어 더 넣어 국물이 없어질때까지 조린다. 식용유 한스푼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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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린 2015-07-11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퍼가용^^ 독신자에게 도움되는 백선생 꿀팁이 많더라구요. 저는, 저 프로는 아니고 김구라랑 여러명 나오는 다른 프로에서, 집에서 일반후라이팬에 삽겹살구워먹는 방법 보여줄때 정말 감동이었어요. ^^ 저는 적어놓지 않았는데 다시한번 찾아봐야겠네요.

CREBBP 2015-07-11 16:40   좋아요 1 | URL
된장찌개만으로도 몇일 응용해 먹었어요. 만능 간장 하려고 푸줏간 갔더니 벌써 한물 갔다고 알아서 계량해주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