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사생활 -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
데이비드 랜들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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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는 것은 잘 사는 것

잭 니클라우스가 1964년 유에스 오픈 대회에서 평소의 감각을 잃고 강력한 우승 후보에서 23위의 초라한 성적으로 돌아온 후 원인을 찾지 못하고 계속 슬럼프에 빠질뻔한 위기를 구해준 건 자기 자신의 꿈이었다. 믿어지지 않게도 꿈속에서 완벽하게 쳐낸 스윙 포지션이 최근 슬럼프에 빠진 이후에 했던 자세와 조금 다르다는 걸 잠에서 깬 순간 알아낸 것이다. 잭 니클라우스는 클럽 잡는 방식의 미세한 차이가 문제였던 것을 꿈속에서 성공한 스윙을 통해 알아내고는 한밤중에 일어나 곧바로 골프 코스로 갔고 꿈속의 스윙을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다음번 대화에서 준우승함으롯서 재기에 성공했다. 화학자 케쿨러는 꿈속에서 뱀이 스스로의 꼬리를 잡아 삼키는 모습을 보고 벤젠 분자의 육각형 구조 모형을 생각해냈다.  그 발견으로 케쿨러는 귀족 작위까지 받았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떠올릴만큼 상업적 성공을 거둔 트와일라잇 시리즈 역시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스테페니 마이어의 꿈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녀의 꿈속에서, 아름다운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뱀파이어는 소녀의 피를 빨아먹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 스토리를 바탕으로 트와일라이트 시리즈를 썼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한국의 스테파니 마이어가 될뻔했는데. 간단히 적으면 이렇다. 어느날 꿈속에서 미래의 어떤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가 전개되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밤에 일어나 스토리를 적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sf 소설을 쓰면 J.K 롤링과도 같은 세계적인 대성공을 이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밤중에 깨어 불을 켜고 연필과 종이를 찾아들지 않고서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스마트폰이 이룩한 사소한 경이이다. 아직도 내가 스테페니 마이어가 되지 못한건, 몇 페이지를 적다가  스토리를 채 적기도 전에 다시 잠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잠에 들면서 남겨진 스토리는 낮에 계속 써야지 생각했는데 그 다음 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초고가 아직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해리포터 시리즈에 버금가는 흥미진진한 전개지만, 그 다음 스토리는 나도 궁금할 뿐. 역시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실제로 도움이 된 적이 있다. 내 직업이 컴퓨터로 프로그램이라는 걸 하(했)는데, 수많은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 중,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사흘 낮과 밤을 모니터만 들여다봐도 안풀릴 때가 있다. 밤낮으로 생각한다는 건 실제로 꿈속에서도 그 생각을 한다는 거다. 물론 그럴 의도는 추호도 없다. 낮에 일하고 나면 밤엔 달콤하고 로맨틱한 꿈을 꾸고 싶지 누가 꿈에서까지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꿈을 꾸고 싶을까. 하지만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에는 실제로 꿈속에서도 모니터와 늘 씨름하고 있고, 깨어났을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나 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위에 적은 SF 소설의 경우처럼 농담처럼 말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게 정상적인 뇌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꿈이 현실의 문제(Problem)를 해결하는 이 문제(Issue)를 연구하기 위해 1960년대 심리학자들이 했던 창조성의 정의를 살펴보면, '연합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해 특정 요구 조건을 충족 시키거나 어떤 면에서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크릭과 미치슨의 이론에 따르면 뇌가 버릴 것과 저장할 것을 선별하는 작업 즉, 마음의 서류함을 정리하는 작업은 램수면 동안에 일어나는 데 이것은 꿈의 무작의성을 설명한다. 다시 내 식대로 말해보면, 인간의 창조성이라는 것은 뇌 속에 축적되어 있는 수많은 경험과 지식의 꼭지점들을 서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조합하는 과정인데, 잠이 중요한 이유는 잠자는 동안 뇌는 하루 종일 작업하느라 어질러진 책상과 책상 서랍을 정리하듯 오래된 정보들과 새로운 정보들을 꺼집어 내고 분류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저장할 것은 저장하고 하는 정리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꿈은 무의식속에 묻혀 있던 아주 오래된 기억들, 생각지도 못했던 욕망들을 표출하는 것이고, 또한 하루 종일 이루고자 간절히 원했던 어떤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게 하는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식대로 해석하면 학생들에게 잠을 4시간만 자고 죽어라고 공부하라는 것은, 여러가지 생각의 갈래를 합치고 조합하고 하면서 창의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여러가지 실험에서 보면, 어떤 신체적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나 일을 배울 때에도 잠이 가져오는 효과가 컸다. 단순 암기가 아닌 여러 분야의 지식과 통찰을 토대로 풀어야 하는 시험(수능이 그런 것을 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을 잘 보려면 잘 자야 한다. 잠을 24시간만 안재워도 전쟁을 하는 군인들은 아군을 적군으로 알고, 파일러트는 수백명의 승객과 함께 엉뚱한 곳에 이륙을 시도한다. 미국에서는 피로관리라는 분야가 이미 인력관리 차원에서 여러 산업에 필수적으로 도입되었고 생산성에 있어서도 큰 효과를 보았다고 전한다. 어떤 문제가 안풀리면 새로운 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이마옆앞겉껍질(전전두엽피질)이 그것을 관리하고 잠은 이 부분의 활성화를 돕는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잠을 잔 것과 같은 효과.

졸피뎀이라는 수면제가 있다. 부작용이 없어서 의사들도 곧잘 처방해주는 이 약은 약을 복용한 이후 잠이 들었다가 깨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나는 불면증이 몇일간 계속될 경우 이 약을 한 알 먹으라고 처방받았지만, 너무 조금밖에 안주기에 반알만 먹어도 효과가 있기에 1/4알을 먹으면서도 몇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불면증 기간동안 매우 큰 효과를 본다. 그런데 내가 이 약의 효과에 대해 맹신한 한 가지 이유는 내가 밤에 잠을 잘 잤건 잘 못잤건 머리 속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채 완전 백지 상태이기 때문에 그 텅빈 머리가 가진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고 믿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약의 위약 대비 효과는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20분 단축시켜줄 뿐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잠을 더 잔 시간이라고는 고작 11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긴 시간동안 자신이 얼마나 잠을 자기 위해 애썼고 깨어서 뭘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잠잤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약효를 맹신하게 되었다니 참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어처구니없음의 절정인데, 의사의 말이 더 가관이다. 대부분의 수면과학 전문 의사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잠을 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가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게 맞다. 내가 새벽이 가까와오는 시간까지 잠들지 못한다면 기억이건 잠이건 그 잠못드는 힘겨운 시간을 여전히 인생에서 지우고 싶을 것이고 그약을 계속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을 한 것 같은 인생의 나쁜 기억들도 그렇게 지울 수 있으면 좋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어차피 싸울 땐 흠뻑 취한 경우이고 기억도 대체로 지워져있기 때문에 뭘했는지는 잘 모르므로..


잠과, 꿈, 몽유병, 불면증과 그 치료 방법 등 온갖 종류의 잠에 대한 지식이 총망라된 책이다. 기자가 썼기에 잠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과 이야기들이 가득하고, 쉽게 잘 읽힌다. 잠이라는 주제가 한정된 것 같지만 사실상 파고 들어가면 인지과학, 신경과학, 뇌과학, 수면과학, 행동과학, 불면증, 기면증, 수면치료,수면 보조 장비 등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는 만큼 그 깊이가 깊지는 않다. 뇌과학이나 의학적인 전문 지식이 전혀 필요치 않은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쓰인 책이라는 뜻이다. 의료 장비 회사의 별로 궁금하지 않은 시시콜콜한 인물 묘사나 매출 같은 얘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흥미면에서, 재미면에서 기대에 부흥하는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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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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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는 괴로움, 슬픔, 피로감이 있을 때 우리는 종종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면 신경계의 교란이 맨 먼저 시작되는 곳은 이성을 관장하는 곳이어서, 괴로운 생각들을 잊을 수 있다. 계속 많이 마시면 피질에서 시작된 가벼운 뇌의 마비는 깊은 곳까지 퍼진다. 그 중 기억 형성을 담당하는 해마가 기능을 잃었을 때, 우리는 블랙아웃을 경험한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시간. 힘겹게 살아낸 시간 숨쉬고 냄새맡고 먹고 마시고 얘기하고 울고 웃던 시간들이 통째로 도둑맞은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기억 상실은 삶과 시간과 경험을 빼앗아간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를 소외시킨다. 자신에 대한 무지가 그렇게 만든다. 속을 알 수 없는 그 누구보다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이 되어 버린다.  자신이 이성을 잃었을 때 했던 행동이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방식의 폭력과 파렴치한 행동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을 때 현재 나와 기억 바깥 쪽의 나는 분리된다. 망각으로 인해 과거를 믿을 수 없는 된 나는 그 캄캄한 불신 속에 미래가 가라앉는 것을 경험한다. 


무엇이 먼저였을까. 한 때는 검고 큰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 알콜 중독자가 되고, 이혼당하고, 뚱뚱해지고, 실직당하고 남의 집에 얹혀살며 매일 출근하는 척 하기 위해 런던의 악명높은 통근 기차에 몸을 싣고 아침 저녁으로 자신이 살던 집과 동네를 훔쳐보기 시작하게 된 계기 말이다. 술이 먼저였을까. 배신이 먼저였을까. 배우자의 부정과 그로 인한 결별은 그 누구에게도 참기 힘든 큰 사건이기에 술이건, 마약이건, 병에 걸리건 어떤 식으로라도 홍역처럼 치르는 고통과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독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렇게 레이철처럼 철저하게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것은 (피상적으로는) 레이첼의 알콜중독 때문이었다. 외모, 직장, 집, 배우자 그 모든 것을 다 가졌을 때에 가장 원했던 아기가 인공수정으로도 생기지 않게 되면서 레이첼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불임은 한 사람을 그렇게 수렁으로 빠뜨릴만큼 대재앙이었을까.


등장 인물들은 아기에 대한 서로 다른 욕망을 갖는다. 간절히 아기를 원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알콜 중독자가 되기도 하고, 와이프를 들볶기도 하지만 또다른 누구는 원치 않는 아기를 죽게 내버려두었고, 그 상처의 기억으로 인해 아기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어떤 커플이 서로에 대한 안정과 독점을 원할 때, 더욱 아기를 원한다. 두 사람의 유전자가 만나 하나의 독립체로 커가게 될 아기는 두 사람을 붙이는 본드 같은 역할을 하기에 완벽한 가정을 원할수록 더욱 아기에 대한 욕망이 커진다. 만일 자유와 일탈을 꿈꾸고 있다면 아기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기차가 신호대기에서 정차할 때마다 코앞에 보이는 남의 집은 한 때는 자신이 남편과 살았던 집의 바로 몇 집 건너 이웃이다. 그 곳에 사는 행복한 부부는 자신의 과거와 많이 닮았다. 고개를 조금 돌리면 자신이 살았던 집에 그대로 다른 여자와 함께 살고 있는 전남편이 살고 있는 집도 보인다. 남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마음은 그들의 현재가 자신의 과거와 닮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깨져버린 자신의 아늑한 삶과 일상을 그들의 삶에 투영하고 이제 자신의 과거처럼 깨져버리지 않는 그들이 자신과는 다른 미래를 향해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상상력으로 대리 만족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피상적으로 보이는 삶은 실제적인 삶과 다르다. 레이첼은 그것을 몰랐다.


자신이 매일 훔쳐보던 가정의 여자가 살해되자, 레이첼은 여러 가지 심리학적 병명에 오지랖증까지 겹쳐 자신이 목격한 것들, 자신이 술에 취했을 때 보았을 테지만 기억나지 않는 어떤 사건들을 파헤치고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술에 취해 폭력과 협박을 일삼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 쓰레기로 전락한 레이첼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다. 그녀가 하는 생각들, 그녀가 하는 행동들... 독자라고 해도 신뢰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다.


흔한 반전의 법칙 1. 착한 사람이 범인이다. 2. 의외의 사람이 범인이다. 3. 정 없으면 엉뚱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범인이 되기도 한다.  4. 범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 범인이다. 반전을 기대한 독자들에겐 4번이 반전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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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독해져라 - 현실에 흔들리는 남녀관계를 위한 김진애 박사의 사랑 훈련법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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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도시 건축 디자이너이자 한 때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김진애님을 아주 오래 전에, 강연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회사에서 실시한 연수 프로그램이었는데, 아무 준비도 없이 와서 횡설수설 하나마나한 잡담을 하고 돌아간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있어, 그의 최근작 <왜 공부하는가>, <한 번은 독해져라> 그리고 이 책 <사랑에 독해져라>에 대한 기대감도 낮았다. 하지만 책은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잘 썼다는 느낌이었다. 사랑에 대한 인생 충고집이라고 한다면, 누가 썼건 하나마나한 얘기가 되겠지만, 적어도 많이 준비하고 체계적으로 생각을 잘 정리해서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도록 잘 쓰여진 책 이라는 사실 만큼은 인정해야겠다. 전공인 도시 건축적인 면에서의 대단한 성취와 장군같은 포스 때문인지 흔히 싱글이나 혹은 돌싱으로 착각한다고들 한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랑에 독해져라>라는 제목의 책을 내서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잘나가는 전문 분야 말고 어찌 보면 개나소나 쓰려고 덤벼드는 자기계발 분야의 책을 많이 낸 이유를 몰랐는데, 생각이 올곧고 그 생각을 글로 쉽고 공감되게 잘 정리하는 능력이 탁월하게 느껴졌다. 


<2장 정말 이 사람인가? 내 짝을 변별하는 법> 편에서 제시한 파트너에 대한 8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옮겨본다. 첫째, 섹스 : 소울메이트인가, 섹스메이트인가 둘째:당신의 스킨쉽은 몇도인가, 셋째 : 재산파트너인가, 경제파트너인가(여기서 저자는 각자의 경제적 독립을 중요하게 강조한다) 넷째 : 우리의 공동 프로젝트가 있는가 다섯째: 정치적 올바름 못 참는게 무엇인가? 여기서 저자는 도저히 못 참는 바닥선을 점검해보길 권한다. 이것은 성격의 차이라기 보다는 인간성의 차이임을 강조한다.이사람은 은연중 사람을 차별하는가, 은연중 사람을 평가하며 분류하는가? 나에게 어떠한 가치관을 강요하는가? 나는 이 사람에게 내가 못 참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은 내게 자기가 못 참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은 어떠할 때 사람을 무시하는가? 이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 분노하는가와 같은 정치적 올바름의 바닥선을 점검해 보라는 것이다. 여섯째:우리는 천적인가 거울인가(저자는 지나가는 길에 영혼은 스펙에서 나오지 않으며, 너무 잘나가는 사람은 내적인 고민이 덜하다고 느껴 영혼의 끌림을 느끼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견해를 보여주는데, 이상하게 이 부분에 강하게 공감되었다. 너무 반듯하고 너무 여유롭고 모든 걸 갖춘 사람은 현실에서는 어쩐지 덜 매력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그 이유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곱째 우리의 놀이감각은 몇 점일까 여덟째 적과의 동침은 가능한가여기서 저자는 남녀의 적절한 공간적 거리에 대한 공감을 강조한다. 버니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인용하며 남녀가 함께 하는 집에서 혼자 있고 싶을 때와 절대로 혼자있고 싶지 않을 때의 시간에 대한 두 사람의 일치된 의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3장 전체가 헤어지는 법 이라는 주제를 별도로 다루었는데, 그의 헤어짐에 대한 개념은 다소 모호하다. 헤어짐을 전제하지 않는 만남은 없고, 헤어짐을 전제로 해야 좋은 관계가 이어지며, 헤어지는 방식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비로소 잘 헤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 그의 헤어짐에 대한 개념인데 헤어짐을 상상하고 헤어짐을 전제하면 위험이 줄어들고 헤어짐을 예방하려면 헤어지는 방식에 공감하라는 말에 이해는 가지만 실제로 적용가능한지는 의문이다. 


남녀 차이에 대해 재미있는 견해를 내놓았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어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다. 


(남자들은) 위계와 명령과 상명하복 체계가 우세한 조직에 익숙한 것이다. 어떤 점에서 남자들은 강아지와 비슷하다. ... 강아지는 한 번에 오직 한 가지에만 몰입할 수 있고 그래서 강아지가 사람보다 훈련이 훨씬 더 잘된단다. 즉 사람을 훈련시켜야 비로소 개가 재활된다는 이론이다. 남자들이 대부분 딱 그렇다. 


그러면서 가사분담에 대한 개 훈련법으로 남자들에게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일감을 만들어 과제를 부여하라는 작전을 소개한다. 한 술 더 떠서 프로젝트 팀장 대우를 확실히 해주면 100점 이상의 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개가 아닌 이상 이런 방법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설겆이를 두고 니가 하니 내가 하니 투닥거리기 싫어 에효 내가 하고 말지 하고 여성이 후딱 해치우는 것보다 개 훈련시키듯 설겆이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팀장을 맡기는 일이 유용할 지는 누가 직접 해보시고 얘기해주길.


또 한가지, 남녀 사이가 흔들릴 때 어떤 결단이 필요할 때에는 가까운 사람들의 조언을 피하라고 한다. 일단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해서 일방적으로 내 편을 들어주거나 나의 흔들림에 동요하고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녀관계에 대해서는 평소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 함정에 휘둘리지 않고 균형적 시각을 갖춘 사람에게서 객관적 조언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녀관계가 삐걱거릴 때는 당장 불륜, 유혹 거짓말 불성식 등의 주요 문제를 상대방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속에 깊이 엉켜있는 원인 중에는 복잡한 사연이 숨어있을 수도 있으므로 나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지 않고, 나의 삶에 영향을 갖지 않는 사람의 충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김진애님이 그토록 많은 드라마를 섭렵하고 있는 것은 어쩐지 좀 의외다. 약간의 소설책 몇 권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들을 통해 사랑의 예들을 많이 애기하고, 그것보다 더욱 자신의 커플에 대한 예를 많이 든다. 책에다가 대놓고 자기 얘기 많이 쓰는 거 읽는 것 매우 싫어하지만, 자랑이 아니라 진솔한 이야기인데다가 본문의 내용에 대한 예시이고 보충 설명하는 내용이고 자랑질이 아니어서 읽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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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7-29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겆이도 프로젝트를 해야하다니... 갈 길 참 멉니다.
충고는 감정을 능가하지 못해 하나마나한 충고가 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습니다...연애에서는 절대적으로~_~;

CREBBP 2015-07-29 08:24   좋아요 0 | URL
그 하나마나한 말들을 말로 하는 것도 모자라 차고 넘치는 글로 써서..
 



몇 번이나 목덜미를 잡혀 내버려질 뻔한 고양이가 억척스럽게 다시 들어와 그 집에 눌러살면서 목격하는 주인집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해학과 풍자로 엮어낸 고전. 고양이 눈에 비친 등장인물들의 만담에 가까운 해학적 대화는 심오한 철학과 예술, 역사에서부터 주변 인물의 험담까지 그들의 주제는 무궁무진하고, 그 광활한 주제들은 정말로 두서없이 이리저리 옆길로 뒷길로 앞길로 샛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정교하게 짜여진 개그 콘서트를 보는 듯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경청하다보면 거기에는 의미심장한 진짜 철학들이 숨어서 뒤통수를 친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지식인들의 유쾌한 대화, 그리고 민속학적 가치가 살아있는 1906년대 일본의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가 그 삶의 엉뚱하고도 진지한 모습들을 관찰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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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음식 과학 - 혀가 호강하고 뇌가 섹시해지는 음식 과학의 세계
이은희 지음 / 살림Friends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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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과학이다. 재료와 재료가 섞이고 발효되고 열이 가해지고 분해되고 잘리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화학적 변화들을 인간은 인류의 전역사를 통해 오래전부터 조금씩 발견해 왔다. 이를 인간의 미각적 감각을 충족시켜주는 데 이용했다. 


생물학, 천체물리학 등을 비롯한 과학의 전분야에 걸쳐 원자와 그 분자 구조에까지 각 분야의 과학이 환원적 방식으로 세부적 메카니즘을 파헤쳐지고 통합되는 것이 하나의 트랜드처럼 보이는데, 그것도 모자라 요즘 TV 요리프로에서는 분자요리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음식을 먹는 것은 음식의 맛과 음식의 영양분 등을 통해 즐거움과 건강을 동시에 만족시키고자 하는 원초적 인간의 활동이다. 그리고 맛과 영양분을 결정짓는 것은 그 음식의 원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핵심 성분들의 분자 구조와 음식과 음식들이 섞이고 가열되고 혹은 발효되어 만들어지는 분자구조의 변형과, 즉 화학작용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의 구성이 흥미롭다. 1년 12달 우리의 고유 명절과 그 유래, 풍습 등을 소개하고 이 날 조상들이 먹었던 음식들을 탐구해 가면서 그 속에 담긴 음식의 과학에 대해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따라서 소개되는 음식들은 서구의 식단보다는 고유 식단과 고유 음식에 관련된 내용이 많다. 


설날에 먹는 떡국은 쌀과 포도당의 끈적한 관계를 설명하는 동기가 된다.  같은 포도당이지만 분자 구조의 결합 구조식이 달라, 인체 내 소화 여부가 달라지는 녹말과 셀룰로우스의 차이에서부터 찹쌀과 쌀에 함유된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의 구성 성분으로 인해 물의 침투와 호화 시간이 달라져 쉽게 굳어지거나 혹은 흐물흐물해지는 차이점을 갖는 찹쌀과 멥쌀의 차이점을 그림과 함께 매우 상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정월 대보름과 부럼 풍습을 소개하고, 견과류에 들어있는 핵심 영양소인 지방을 살핀다. 지방산을 구성하는 모든 탄소들이 각각 2개의 수소와 결합한 구조를 갖는 포화지방산과 분자 구조 내의 일부 탄소들이 이중결합을 함으로써 수소 1개밖에 붙지 못하는 불포화지방산의 차이를 분자 구조를 통해 설명하고 이들이 왜 하나는 고체 상태를 띄고 하나는 액체 상태를 띄며 또한 왜 하나는 물고기와 식물에 들어있고, 왜 하나는 동물에 더 많이 들어있는지를 해석한다. 더 나아가 혈액 내 존재하는 콜레스테롤을 간으로 옮겨주는 LDL과 반대로 간에서 생성한 콜레스테롤을 혈액으로 옮겨주는 HDL의 관계와 필요성에 대해서도 생물학적 원리를 통해 설명한다. 


음력 초하루 머슴날에 먹는 가난한 자의 고기로 불린 콩을 통해 콩과 식물의 뿌리혹 박테리아가 척박한 토지를 비옥하게 하는 원리를 설명한다. 더 나아가서 질소비료를 생산하게 된 역사와 그 의의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잘 짚어준다. 식물이 뿌리를 통해 토양 속의 질소를 모두 빨아들여 소비해버리면 단백질 합성 시스템에 꼭 필요한 질소를 구할 수 없어 제대로 생장할 수 없게 되는데, 이 때 콩과 식물에 기생하는 뿌리혹 박테리아가 쓰고 남은 질소를 공급해준다는 사실과, 값싼 이제는 질소 비료의 생산이 비약적 식량 증산에 거의 기여하게 된 점, 그리고 끝내 그것이 질산염 과잉 상태로 인해 (아기들에게)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내용이 흥미롭게 잘 기술되어 있다. 


4월의 한식에는 차가운 음식 속에 숨은 보존의 법칙에 대하여 적었고, 5월의 단오에는 수리취떡과 식물의 화학 무기 알칼로이드를 소개하고, 6월 유두절에는 글루텐 성분으로 밀가루 반죽과 밀당하기라는 주제로 밀에 대한 민속 음식 탐구 및 현재 유통되고 있는 밀가루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7월 삼복더위와 보양식에서는 개고기의 유래와 단백질 식품에 대한 내용이 8월 백중과 감자전 편에서는 감자가 구황식물의 대명사가 된 이유와 감자의 역사적 의의를 이야기하고 9월 한가위와 햇가일 편에서는 과일의 색깔, 익음, 상함 등에 대한 비밀을 에틸렌이라는 성분과 함게 소개한다. 10월 중양절에서는 술의 비밀을 11월 입동편에서는 김치의 과학을, 12월 동지편에서는 우유와 타락죽에 대한 주제로 과학 이야기가 계속된다. 처음 세개의 챕터가 가장 흥미로왔지만, 나머지도 괜찮았다. 


책은 그림도 많고, 글자 크기도 크고 행간도 멀어서 아동용 도서같은 인상을 주며 쉽게 읽히지만, 그 내용은 청소년과 성인 모두에게 유용하다. 12개의 장 마다 음식 레서피가 두 개씩 제공되는데, 크게 관심이 가거나 레서피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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