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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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일이다. 전봉준을 알았으나, 교과서에서 배운 한 줄 그게 전부였다. 때로 역사 소설과 대하 드라마에서도 등장했겠지만 사적 감정들과 액션 활극이 난무하는 드라마의 틈새에서 반짝 나타났다 사라졌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체게바라가 유행해서, 체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봤다. 공산주의 혁명의 정신이 낭만이 된 이유는 공산주의가 거의 완전히 몰락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전봉준은,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은 여전히 아프다. 100여년간 다른 이름으로 계속되어 왔기 었기 때문이다. 


혼불문학상의 정신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 상의 이름을 따왔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한 5년전쯤? 10년전쯤 친구가 혼불을 읽으라고 보내줘서, 읽으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었는데, 실패했다. 읽기에 실패한 건 독자로서 나의 문제였고, 최명희 문학관에 가서 최명희의 삶을 조명해보고, 혼불에 나오는 여러가지 장소에 대한 에피소드들과 문학관이 있는 위치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혼불의 위대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무지했고(지금도 그렇고)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한국말인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해석이 안될만큼 모르는 소리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소설은 혼불 못지 않게 어려운 단어가 많다. 이 책이 다산책방의 나나흰 필독서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못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읽었다. 끝까지 읽지 않고는 리뷰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읽은 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무슨 책이든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감동은 맨 마지막줄이 끝나야 가시화된다. 


이순신공을 엄청나게 존경하지만, 이름없는 민초들 없는 승리를 상상할 수 없듯, 동학농민혁명의 전과정이 전봉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올해 혼불 문학상의 대상 이광재 작가는 평생 많은 시간을 들여 전봉준을 연구한 것으로 보이는 데, 얼마전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2012)를 펴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을 들었을 때 전봉준의 활약에 서사가 집중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전봉준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원톱주인공도 아니고, 조금 비중있게 다루어졌을 뿐, 소설은 풍전등화와 같이 스러져가는 조선 말기 정치적 상황과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후에 명명한 사건의 거대한 흐름을 재현한 서사를 축으로 엄청나게 많은 인물들의 개별적인 시각을 조명하며 채워간다. 


물론 교과서를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은 실패했고, 전봉준은 잡혀가서 사형당해 죽었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전봉준을 따르던 자들 왜 무엇때문에 어떻게 어디까지 일이 진전되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전혀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전봉준을 후원하던 이들, 그 많은 군사들과 무기를 어우를 수 있는 조직력과 리더쉽의 정체가 무엇이었으며, 혁명은 어느 수준이었을까. 레미제라블을 통해 파리의 시민들이 깃발을 휘날리며 바리케이트를 치고 총칼에 맞아 죽어가던 숭고한 자유라는 그 사상적 기반을 흠모하는 동안, 우리는 글자조차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농민들이 어떻게 신분철폐와 집강소 설치와 같은 혁명적 성과를 이룬 것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집강소 들어가서 잡세는 어떻게 허며 결세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도 하고 큰소리도 내고 그러는디 아 그 것이 시상 없이 재밌는 일들이란 말이여. 우리 일을 우리가 결정하고 득되는 일을 하는데 힘이 안나 그런게 이 놈들이 지금까지 지들만 해 먹었등개벼284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집강소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소식을 접한 순변사 김학진은 민족적 위기를 명분으로 삼아 농민군 지도부에 회담을 제의하였고, 김학진과 전봉준은 7월 6일 전주에서 회담을 가졌다. 전주회담에서 전봉준과 김학진은 정부와 농민군이 협력하여 전라도내의 안정과 치안질서를 바로잡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행방법으로서 각 군현에 집강소(執綱所)를 전면적으로 설치 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 회담을 마친 전봉준은 김학진과의 합의에 따라 전주성안에 전라좌우도 대도소를 설치하고, 각 군현 단위로 집강을 두도록 하였다. 전라도 일대에 집강소가 전면적으로 설치 운영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로써 농민군의 최고지도자 전봉준은 기존질서와의 타협을 실행에 옮긴 것인데, 이것은 관과의 타협으로 농민군의 세력을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군의 침략이라는 민족적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데 뜻을 둔 것이었다."(인터넷 백과사전) 로 나온다. 비록 일본의 개입으로 세를 확장하지 못하고 도중하차하고 말았으나, 전라도 일대에 전면적으로 집강소가 설치되어 민주적인 방법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면, 그 기간만큼은 혁명은 성공했던 것이 아닌가. 전봉준은 그 혁명의 가장 꼭대기의 대장이었으며, 많은 동학군의 수장들이 전투를 이끌어 승리를 하고, 정책을 함께 결정하였고, 그것은 하루 이틀에 걸쳐 있었던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청국은 이가 빠져 조선을 가지고 놀더라도 뜯어 먹지 못하니 남 또한 먹지 못하게 으르렁대고 있지요. 그에 비해 일본은 발톱이 강성해진 호랑이입니다. 늙은 호랑이를 쫓으려고 젊은 호랑이를 들이는 건 하책이라 생각됩니다 99




네 세상이 버거운 게로구나...그 말에 눈시울이 후끈해졌다... 위로니 아량이니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크기가 아니라 관점을 공유하는 데서 나오는 듯하였다. 241


돌아가라. 방법을 찾지 못하거든 국적이 되지 않을 길을 구하라. 어차피 나라가 없어지면 다같이 죽을 목숨이다 .241


도대체 어떤 절박함이 자들을 부추겼던 말인가 비록 적도를 설탕 하더라도 예전 회사 그러는 돌아가지 못하리란 예감이 예감에 백날 구하는 전율 했다 관성의 따라 신선놀음 아들 그날이 그날이 냥 느릿하게 살아가는 동안 세상은 훈련장 점에 이르러 있었다 294

받아 먹지 못하는 환곡을 갚고 노상 부역에다 군포는 군포대로 내는 세상으로 다시 가겠느냐? 양반의 족보를 만드는데 베를 바치고 수령들 처첩까지 수발을 들면서 철마다 끌려가 곤장을 맞을 테냐 ? 
이제는 그렇게 못 살지요.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을 살았는데 어찌 돌아 간단 말이냐 목숨은 소중하지만 한번 죽는 법이다. 조금 당길 때가 오거든 그리 하는 것이 사내의 일이다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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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5-10-2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겟네요..

하늘바람 2015-11-06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김승기 2015-11-2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불은 연재월간지에서 접하였으나 완독하지 못하였고, 전봉준과 관련 서적도 읽고 싶어진다. 근대사 교과서에 어떻게 수록될지 궁금해진다.

나이트건담 2015-11-28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사서 읽어 봐야게군요 내용이 궁금해지는 작품이네요 ㅋㅋ
 
산산이 부서진 남자 스토리콜렉터 36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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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화 한 통화로 살인을 가능하게 하다니 기대되네요. 스티븐 킹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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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특히 책 얘기가 많이 나와요. 고3 아이의 성장소설인데, 배경은 70년대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고3이 공부는 않고 작가가 되겠다고 매일 책만 읽어요. 그런데도 당시 특기생 수시모집 같은 제도가 있었는지 대학 공모전 같은 곳에 글을 써서 당선이 되어 대학에 들어갑니다. 화두처럼 던져진 책은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헤르만헷세의 데미안입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싶지 않아 자라기를 포기한 난장이가 양철북을 그렇게 두드리는 것, 알에서 깨고 나오는 것의 의미를 되짚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성장소설이면서, 로드무비같은 느낌을 주는데, 묵언정진을 했던 스님이랑 같이 다녀요. 이 스님은 고무신 대신 백구두를 신고 다닙니다. 주인공 양철북이 방학 때마다 글쓰고 책읽고 하면서 머물던 암자에 도보고행성이 들어왔다가 인연을 맺고 함께 다니게 된 거죠. 둘은 죽이 잘 맞는 한 쌍입니다. 책을 많이 읽은 철북이가 책에서 주워섬긴 말들을 늘어놓으면, 무슨 책이든 더 잘 알고 있는 스님은 매번 철북의 뒤통수를 칩니다. 걸쭉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 둘은 말도 거칠고 술과 고기를 먹는 등 행동도 거칠어요. 


두 사람이 맨 처음 만나는 장면에는 최인호의 소설《광장》이 있어요. 철북의 이름을 모르는 스님이 《광장》을 읽고 있는 철북을 보자, 어이 까까머리 광장 하고 소리칩니다. 험한 말도 잘 받아치는 철북이에게 스님은 니가 서북청년단이냐고 묻는데, 이 때 철북은 서북청년단을 어디서 봤더라 라며 곰곰히 생각하다가 아 맞다 관촌수필과 순이삼촌에서 봤다는 걸 기억해냅니다. 


























광장을 다 읽은 철북이는 가장 인상 깊은 구절 하나를 메모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인민의 적이며 자본가의 개이며, 제국주의의 스파이다."

 


《광장》을 읽은 후 철북이 읽은 책은 샤르트르의 《구토》와 카뮈의《이방인》입니다. 동시대를 살아간 사상가이자 문필가였죠. 그러나 알제리 독립을 두고 두 사람의 행보는 달랐습니다. 샤르트르는 알제리 독립을 지원했고, 카뮈는 반대했습니다. 철북은 두 소설의 주인공을 바꿔봅니다. 구토의 주인공인 로캉텡을 뫼르쏘로 억지로 바꾸어본다는 거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우연히 《씨알의 잡지》라는 잡지책을 뒤지다가 뫼르쏘의 총알이 '피압박 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의 무의식적 횡포'라는 요지의 백기완 선생 해설을 보고 놀랍니다. 






















스님을 따라다니며 시다바리라고 불리다가 문득 철북은 중학교 3학년 시절을 회상합니다. 가세가 기울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가구 공장에서 일했던 고단하고 어두운 시절입니다. 추운 겨울 마른풀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안톤 체홉스의 단편소설들을 떠올립니다. 그의 소설은 "그리고 죽었다"로 끝나는 것이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춥고 어두운 시절과 고별하기 위해 사모은 세코날을 공장에서 친동생처럼 아껴주든 도색작업반 아저씨가 훔쳐 먹고 자살한 사건을 겪습니다. 






 















일행은 섬진강과 화개장터를 지납니다. 철북은 김동리의 《역마》와 박경리의《토지》를 떠올립니다. 월선이 평생 운명적인 불륜의 사랑을 나누던 이용의 품에 안겨 죽어가던 가슴 저미는 장면을 회상하죠. '불륜도 섬진강의 여울처럼 격렬하고 애절할수록 눈부시고 찬란해 지는지 몰랐다'는 생각을 하지요. 열아홉살 소년의 운명적 사랑에 대한 환상은 이런 비련한 것들로 포장되어 있기 쉽지요.


















백운동 계곡에서 스님과 철북은 또 티격태격합니다. 공비와 빨치산에 대한 용어. 같은 대상에 대해 정부에선 공비로  일반 국민들은 빨치산으로 불렸고, 그걸 어찌 알았냐는 질문에 이병주의 《지리산》을 들이대지요. 열아홉 소년이 지리산을 읽은 느낌은 '이놈 피하니 저놈 나타나고, 저놈 피하니 또다른 나타나는게 인간사라지만, 막상 당하는 처지에서는 얼마나 징글징글하겠는가'였어요. 지리산에서 보광당을 만들어 일본과 죽도록 싸우며 독립운동을 하고 나니 8.15 해방이 되었는데도 해방이 안됐다고 이번엔 미국과 이승만을 대상으로 또 죽도록 싸워야 했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지리산 암자에서 만난 두 스님의 이야기 속에  시인 김지하가 나오자, 그는 다시 헌책방을 드나들던 과거를 회상합니다. 그는 헌책방에서 만난 점원이, 자신이 추천하는 '사회과학'서적들을 읽으면 원하는 책 2권을 공짜로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이렇게 해서 헌책방 점원과의 인연으로 많은 '불온'서적들을 보게 되고, 학교 사서 선생님을 10년형을 살 수도 있는 불온서적 소지죄로 걸릴 아슬아슬한 위기로 몰기도 하지요. 이렇게 해서 폭풍 책소개가 나오는 대목이 있는데, 찾아보니 절판 된 것이 많습니다. 학교 다닐 때 돌 좀 던지던 분들은 눈에 많이 익은 책들일 거에요. 




첫날은 철북이가 보고 싶은 김수영의 시집 《거대한 뿌리》와 조세희의 소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리고 황세용 점원의 추천서인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빌려왔다. 며칠 뒤에는 정현종의 시집《고통의 축제》와 카프카의 소설《변신》, 그리고 유동우의《어느 돌멩이의 외침》, 그 다음에는 고은의 시집 《문의마을에 가서》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율리시즈》, 그리고 장준하의《죽으면 산다》, 또 그 다음에는 보를레르의《악의 꽃》과 에밀 아자르의 콩쿠르상 수상 소설 《자기앞의 생》 그리고 송건호의《해방전후사의 인식》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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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0-16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기만 하고 못읽었는데, 당장 책을 펼쳐야겠어요^^

CREBBP 2015-10-16 23:13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 식이라.. 큰 사건 없이 그냥 덤덤한 편이이요..
 
전설의 땅 이야기 - 환상의 장소들로 우리를 인도할 지식의 나침반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4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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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caffreys/220507697754
에코 엔솔리지 시리즈 궁극의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데, 이 책도 정말 너무 갖고 싶어요.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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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16: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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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1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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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1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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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6 12: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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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5 14: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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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5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곁에 두고 읽는 서양철학사
오가와 히토시 지음, 황소연 옮김, 김인곤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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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글자를 보면 휴 하고 한숨부터 나온다. 외면하자니 미술책을 읽어도 건축책을 읽어도 역사책을 읽어도 항상 철학자들과 철학자들이 만들어낸 무슨무슨주의니 무슨 사상이니 하는 것들이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닌다. 과연 철학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어야 되는, 몸속에서는 절대로 합성해내지는 못하지만 성장과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처럼 내면의 성장과 지적 발전을 위해 단단하게 기둥처럼 지탱해줄 필수 지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입문서들을 하나씩 읽어보지만, 많은 시간을 바쳐 조금이라도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결실들은 아주 잠시 그러니까 읽는 동안에만 머물다가 작별 인사도 없이 그렇게 떠나보낸다. 이처럼 읽고 남겨지는 대비 가성비가 가장 안좋은 분야가 철학이다. 


이번에는 곁에 두고 읽는 서양철학사를 펼쳤다. 일본인인 오가와 히토시라는 철학박사가 지은 책인데, 일어 원제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 곁에 두고 읽는 서양철학사인지 국내 제목에만 '곁에 두고 읽는'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어 제목은 History of Philosophy 이다. 철학의 어원은 그리스어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와 사랑한다를 뜻하는 필로가 합쳐진 말로,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하여, 직접적으로는 지혜를 사랑하는 말이고, 이것을 '끊임없이 앎을 추구하는 과정이 마침내 철학으로' 이어졌다고 서장에서 밝히고 있는데, 한자어로 찾아보니 철학의 밝을 철(哲)은 밝다, 슬기롭다, 알다, 결단하다로 배울학자와 함께 학문이 되어 '인간이나 인생 세계의 지혜 궁극의 근본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되어 있다(네이버 한자사전). 한자어와 영어 모두 비약이 있긴 하지만, 철학이란 세상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겠다. 


그런데 왜 어려울까. 책을 읽으면서 어려운 이유 하나를 생각해냈다.  그것은 철학자들이 자기 말고는 못알아들을 개똥같은 헛소리들을 늘어놓아서가 아니라, 앎을 추구하는 과정중에서 정의한 언어들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습득될 수 있는 단어들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일상에서 쓰고 있더라도, 그 철학적 학문적 원뜻은 그들의 저서를 통해 철학자마다 모두 다르게 제시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즉,  언어의 쓰임새가 달라졌거나, 일반인과는 유리된 불통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현상일 수 있는 거다. 


몇 달 전 샌들 교수의 아들 샌들이 지은 책 <<편견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수도 없이 읽었던 '세계-내-존재'와 '현존재', 그리고 우리가 이런 저런 글을 쓸 때 밥먹듯 그 뜻도 잘 모르고 써먹는 '실존'이라는 말과 샤르트르가 정의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주체적 삶을 강조한 철학으로서의 실존주의,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서의 실존과 이 실존의 세 가지 단계인 1. 미적 실존(행동이나 선택의 근거가 감각적 쾌락에 머무르는 단계), 2. 윤리적 실존( 고매한 인격을 갖추기 위해 윤리적 인간상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것)과 3. 종계적 실존(자기 부정을 통해 자신의 죄를 뉘우침),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신이라는 존재에 삶을 맡기는 인간을 비판하고 그리스도교를 노예 도덕이라 부른 니체의 노예 도덕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만나는 니힐리즘(허무주의)과 노예 도덕에 기대지 않고 영원 회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인 우버멘쉬 등의 언어를 만나면 우리가 그냥 생각 없이 어렴풋하게 쓰는 실존이라는 뜻이 더이상 철학적 실존과 만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생긴다. 결국 어렴풋이 철학이 이야기하는 삶의 근원이라는 것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를 어떤 철학자들이 어떻게 탐구했는지를 잘 알고 있다가, 역사 속에서 건축이, 음악이, 미술이, 정치와 사회 제도와 현상들이 어떻게 함께 동반된 변화를 겪어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고, 그 대답은 현재도 모르며, 현재 역시 역사의 일부이고 변화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 책의 내용과는 크게 관계없이, 책을 읽으면서 글자는 글자대로 읽고, 생각은 생각대로 했던 내용을 또다시 생각내는 대로 주절주절 적어본 것인데, 책은 유사한 서양 철학자들을 고대부터 6개 챕터에 걸쳐 약 50여명의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사상들을 잘 정리된 표와 그림과 여러가지 인포그래픽스를 곁들여 편집했고, 그 내용도 가급적 쉽게 설명하려고 애쓴 노력이 잘 보인다. 그런데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쓰려고 하는 책들의 특징은 잘 보면 쉬운 내용은 단원의 들어가는 말에 환기용으로 쓰여 뭔가 좋은 내용이 있을 것 같은 기대를 주지만 사실은 별로 하나마나한 소리들이 많아 조금 쓸모가 없고, 핵심 내용은 역시나 압축되어 있기에 이해하는 게 호락호락 쉽지만은 않다. 책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애초에 어려운 걸 쉽게 쓰려면 비약이 생기기 때문에 어려운 내용은 어렵게 이해해야 하며, 어려운 내용은 쉬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50여명의 철학자라고 하면, 철학사에 이름을 남긴 쟁쟁한 사람들의 사상을 백과사전식으로 찾아볼 수 있고, 그래서 곁에 두었다가  예를 들어 소쉬르라는 언어학자가 정의한 '랑그'니 '파롤'이니 하는 개념과 거기에서 파생된 랑가주라는 언어활동에 대한 개념적 주석 없이 멋대로 마구 쓰여진 책들을 읽을 때, 위키백과 보다는 신뢰성있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참고도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서 자체에서 그렇게 제공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성에 포함된 장별 연대기 속의 철학자들과 해당 철학자들의 소개, 그리고 시대와 사상을 고려해서 장을 나눈것들, 철학자 뿐만 아니라 시대를 대표했던 언어학자 심리학자 등을 적절히 배치한 점, 그리고 가장 유용한 정보로 철학자들의 핵심 사상과 용어를 그림으로 표현한 점 등을 높이 평가한다. 



95(베이컨, 베이컨은 영국 경험론의 창시자로, 실험과 관찰을 위주로 하는 새로운 학문인 귀납법을 탄생시켰다. )

올바른 인식을 방해하는 고정관념을 이돌라(idola)즉 우상이라고 표현하며 인간의 이성이 빠지기 쉬운 우상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번째 우상은 종족의 우상이다.... 본성에 기인하는 우상으로 인간의 감정이나 감각이 그릇된 판단을 초래할 수 있다... 두번째는 동굴의 우상이다.좁은 동굴에 생각이 갇혀 버리듯이 개인의 편협한 성향이 초래하는 편견을 이른다. 자신이 받아온 교육 영향을 받은 인물, 읽은 책 등이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아다. 세번째는 시장의 우상이다. 이는 언어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인간은 언어에 더없이 약한 존재다. 그래서 시장에서 전해들은 소문을 진실로 믿어버릴 때가 많다... 네번째는 극장의 우상이다. 이는 권이나 전통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데서 생겨나는 선입견이다. 




143(피헤테)

인간은 사물과 달리 자신이 누구인지 끄집어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객관적으로 발아볼 수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는 또 다른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아와는 다른 별개의 존재다. 이를 '비아'라고 부른다... '자아는 나눌 수 있는 자아에게 나눌 수 있는 비아를 반정립한다.


165 (쇼펜하우어)

예술은 인간으로부터 주관 혹은 객관이라는 요소를 제거해 주고, 의지와 욕망에서 비롯된 모든 고통에서 인간이 해방되도록 이끌어준다. ... 문제는 에술을 통한 해탈이 아주 짧은 일시적인 해방이라는 사실이다... 도덕을통한 해탈...은 타인의 고통을 자발적으로 함께함으로써 자신의 의지, 생을 향한 의지를 버리는 것이다.... 요컨대 맹목적인 삶의 의지를 단념하고, 도덕을 통해 금욕적으로 의지를 부정하는 일이야말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궁극적인 처방전이다. 


179(니체)

모든 일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마음에 따라 생기는 허구에 불과하다. 그러니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남 탓을 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순간 그리스도의 노예 도덕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인 이상, 그 허구를 받아들여야 한다.(p179)


185(베르그송)

'엘랑 비탈(elan vital)'은 생명의 비약이라는 의미다. 즉, 생명은 결코 일원화된 진화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폭발적으로 분산됨으로써 비약적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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