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공장 베네치아 - 16세기 책의 혁명과 지식의 탄생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김정하 옮김 / 책세상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물 위에 떠있는 듯 신비한 도시의 바다물 골목을 가르는 리얄토 다리를 건너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하는 메르체리에 거리를 따라가 보자. 그 공간 속에서 50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바지와 소매없는 차림의 울긋불긋 관광객들의 모습 대신 어깨와 가슴과 바지 엉덩이를 풍선처럼 부풀린 과장된 의상들을 입은 귀족들과 여러 나라 민속 의상들을 입은 르네 상스 시대의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상점의 문이나 외부 진열대에는 기념품 대신 라틴어 고전과 성서, 그리스와 중세의 인문학자들이 남긴 저술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반도의 겨드랑이에서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해상 무역의 패권을 거머쥐었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광은 번영의 시대가 남긴 공간 속에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박제된 시대의 유물이 되어 세계 각지로부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구텐베르크가 마인츠에서 성서를 출간한 1457년 이후 처음으로 인쇄소가 등장한 때는 1465년 독일의 두 도시와 이탈리아에서였다. 이후 인쇄술은 마른 풀에 번진 불처럼 이탈리아에 급속히 확산된다. 15년 후에 유럽에 110개의 인쇄소가 있었는데 그 중 이탈리아에 50개, 독일에 30개, 프랑스에 9개였다. 베네치아는 중부 유럽에서 이주해온 인쇄공들에게 최적의 출판 환경을 갖춘 도시였다. 인근의 파도바 대학에서 지적 자원이, 부유한 상인들의 풍부한 자본이, 그리고 영민한 상인들의 뛰어난 영업활동이 출판의 활성화를 위한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게 하고 있었다. 가장 뛰어난 자원은 당대의 다른 지역이나 왕국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세계 각지에서 결집한 다양한 외국인 공동체와 종교집단들의 문화적 혼용은 도시를 다양한 문자로 인쇄된 다양한 책들의 중심 도시로 만들었다. 

16세기 초반 유럽에서 출간된 모든 책의 절반 가량이 베네치아에서 인쇄되었다.(17)

16세기에 출판된 책은 낱장 형태로 판매되었으며 구매자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그것을 제본하고 추가로 채식사에게 주문해 장식 문자를 그려넣었다. (20)


그 때의 책방 풍경을 들여다보자. 제본이 완료된 중고 서적들은 낱장 형태의 동일 판본에 비해 두 배의 가격이다. 책값은 필사본에 비해 1/5 가격에 불과하고 흥정에 의해 결정되었지만,  프랑크푸르트 서적 박람회에서 결정된 가격이 점차 기준이 되기 시작한다.  종이는 책 제작비의 50퍼센트를 차지했고, 인쇄 비용중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활자 제작비였는데 16세기에 클로드 가라몽이 유럽의 거의 모든 인쇄업자들에게 활자를 공급할때까지 금은 세공업자들이 제작한다.  인쇄기 작동에는 조판공, 잉크공, 인쇄공 3명의 작업자가 필요했고 전문직 대우를 받은 조판공은 3년간 1/10 월급의 수련 과정이 필요했지만 높은 월급이 보장된 직업이었다. 


수많은 군소국으로 분열되어있던 당시 유럽은  각국이 저마다 다른 통화를 보유했고, 환율 변동으로 인한 가치 증발에 대처하기 위해 물물교환이 성행했다. 책은 책으로 맞교환되거나 밀가루, 포도주 기름과 교환되기도 했다. 그러나 16세기 후반 종교재판의 광풍 속에 위기가 찾아든다. 히브리어로 출판된 수많은 책들은 불태워졌고, 도서관에 소장된 책들은 전치사 같은 것을만 빼고 검은 잉크로 칠해졌다. 


출판의 역사는 마누치오 전과 후로 나누어진다.  르네상스 시대, 회화에 라파엘로, 조각에 미켈란젤로, 건축에 브루넬레스키가 있고, 출판계에 알도 마누치오가 있다. 150년 전에 죽은 페트라르카의 작품을 인쇄해 10만부를 판매한 최초의 베스트셀러, 최초의 문고본, 최초의 필기체 인쇄, 세미콜론의 아버지, 어퍼스트로피와 액센트 부호의 도입, 기도를 위한 책에서 여가와 즐거움을 위한 책으로의 전환, 이 모든 출판계의 획기적 업적이 마누치오의 것이었다. 오늘날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는 <폴리필로의 꿈>은 포르노를 방불케하는 묘사, 고전적이고, 이교적이고 르네상스적인 호화로움과 사치스러운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의 도판에는 닻과 돌고래로 디자인한 로고를 처음 넣고 자신이 출판한 책의 상징물로 사용했다. 출판업자의 이 최초의 로고는 이후 이탈리아 북부 전역으로 확산된다. 


많은 이야기가 다루어진다. 16세기 전반에 보았다는 최초의 아랍어 코란 인쇄본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과 엄청난 규모의 투자로 인쇄된 코란이 왜 정작 아랍에서는 필사본에 의해 외면받아 파산하는 과정은 한편의 영화처럼 흥미롭다. 부정확한 활자 자체와 수많은 오류, 그리고 무엇보다 성스러운 신의 언어 코란은 정성껏 필사해야 한다는 당대 아랍의 인식 등으로 인해 상업적인 판매에 실패하고 파산한 후 단 하나 남은 인쇄본이 숱한 억압을 통과하고 수세기동안 이곳 저곳을 거쳐 오늘날까지 조용한 어느 수도원에 묻혀있다가 구사일생 빛을 보게 된 스토리이다. 


거대한 다국적 출판시장이었던 베네치아가 체코어로 된 성서의 초기 두 판본을 제작한 것이나, 그리스어와 아르메니아어로 인쇄된 책들, 최초의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코란, 최초의 자국어로 인쇄된 성서 및 발칸 반도의 서로 다른 많은 고유 언어로 된 책을 출판한 이야기까지, 베네치아의 출판은 얘기거리가 넘쳐난다. 


침체되었던 베네치아 출판은 글자로 이루어진 책 뿐만 아니라, 악보와 지도 그리고 잡지와 신문 같은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다가 종교 재판으로 인한 쇠퇴 이후 정기간행물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통해 재흥되는 과정이 재미있다. 당시 뉴스라는 체제가 없던 전 유럽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가 어려웠는데, '짐을 가득 싣고 새로운 소식을 잔뜩 가져온 배가 산마르코 만에 정박하면, 리포터들은 선장이나 장교 가운데 한 사람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은 후에 사무실로 달려가 직접 들은 것을 손으로 써서 문밖에 붙여놓'던 것에서 시작되어 17세기 말 터키와의 전쟁 소식을 보도하면서 가제터가 확산된다.


18세기에 베네치아는 인쇄활동의 중심국이라는 지위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외국어로 쓰인 책 생산에는 중심적인 역할을 유지했고,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 베네치아 출판은 처음으로 예술서에 사진을 넣고 10년동안 16권으로 완성한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이라는  역작을 탄생시키고 이미지 출판의 가장 선진적인 중심지로 만든다. 


책의 탄생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다. 르네상스, 근대, 과학의 발달 그리고 혁명까지 이 모든 인류의 가파른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책의 탄생은 책의 대중화, 책의 다변화와 함께 변화의 가속에 기여했다. 책이 어떤 컨텐츠를 담느냐는 것은 인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반영한다. 베네치아가 아름다운 곳인 이유는 동서양의 문물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책을 통한 출판시장의 꽃을 피울 수 있을 지리적, 종교적, 역사적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소장하고 싶어서 구입했는데, 내용 역시 오래 오래 소장하고 싶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로벌 체인점 중 유독 우리나라에서 영업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다. 높은 칼로리 음식에 대한 경각심이 불러온 세계적인 현상이냐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맥도널드를 비롯한 고칼로리 음식들 본토에서는 쓰레기 음식이라고 부르눈 패스트푸드 점들의 해외 체인점들은 국내에서 승승장구 잘나간다. 내가 가는 영화관 옆 버거킹은 어느 시간 대에라도 긴 대기줄이 사라진 적을 한 번도 못봤다. 유독 켄터키 후라이드만이 국내에서 찬밥이 된 이유는 뜨끈뜨끈한 햇반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기 깨문이다. 그많은 치킨집들이 골목마다 한두개씩 빠짐없이 자리하고 심지어 다닥다닥 치킨집들이 한집 건너 하나씩 나타나게 된 이유와 유래와 역사와 변화과정이 책에 자세히 나와있다. 


IMF는 많은 것울 바꾸어 놓았다. 한 직장에 평생을 몸담을 줄 알았던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 우리의 가장들이 쓸쑬하게 공원을 헤매다 퇴직금을 밀어 넣은 곳이 치킨집 체인점이었고 월드컵 특수가 생길 때마다 맥주와 환상의 조합으로 치맥이 경기 시청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치킨의 종류도 자세히 나온다 통닭시대를 거쳐 후라이드 세대와 크리스피 프라이 양념치킨 파닭 깻잎닭 오븐 구이 등등 자세하지는 않지만 그런 다양한 종류위 치킨들을 구분하눈 방법과 조리 원리들도 흥미롭다 그냥 대충 반죽 묻혀 튀겨내는 게 아니라 염지의 배합 처리 과정 등에 따라 맛과 질감이 달라지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치킨집을 운영하기 위한 코스에까지 등록을 해서 그 비밀울 알아내려 하였으나 장벽이 높았다. 즉 치킨집 체인점을 운영하려면 수억 이상을 투자해야 하고 일반 자기 브랜드를 위해 비법을 전수받는 것도 그 방법을 전수받는 것이 아닌 결국 이미 배합된 재료를 비싸게 사는 식으로 산업이 형성되는 것이다. 즉 자영업자는 시장의 가장 약자이며 체인점을 굴리는 본사의 봉이다.


양계 산업에 대한 부분른 충격적이었다. 하림이 좋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국내 양계 농가들에게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는 갑중의 갑이자. FTA와 우르과운드 같은 농업 개방에 따른 양농 선진화 정책의 모든 혜택을 독차지한 기럽이다. 삼성이니 SK니 하는 대기업과 다르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재난
르네 바르자벨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SF 소설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읽은 거라고는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들을 제외하면 몇 개 한 손으로 꼽을만큼도 안되지만, 그 매력은 거시적인 시각으로 현재의 인류를 통찰하는 데 있다는 점을 느낀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들의 의존성을 새삼 깨닫게 하고, 사회적 관습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지난 세기에 쓰여진 현재에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소설이라면 독자는 소설속에서 상상한 미래의 기술과 이미 구현되었거나 쓸모없는 기술, 그리고 앞으로 갖게 될 기술들 사이에서 그 소설의 예언적 혹은 예측적 능력을 후세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평가하는 즐거움도 얻게 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전기의 부재는 상상할 수도 없다. 어제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휘발유 차 대신 한 번 충전으로 시속 180Km 이상을  300km 이상 달리는 전지와 전기 자동차 기술이 GM에서 이미 20년이나 앞선 199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그 기술로 인해 정유회사의 계략으로 모든 기술이 폐기되었다는 내용인이다.  이런 음모설에 대한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최초의 자동차 역시 전기 자동차가 가솔린 자동차보다 먼저 나왔고 19세기 말 100km/h를 달리는 것도 가능해서 반짝 유행한 적도 있지만, 값싼 화석연료와 대형 정유회사들의 등장으로 쇠퇴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최근 테슬러의 활약을 보면 머지 않아 전기 자동차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은 자명해 보인다.  바르자벨은 궁극적으로 오늘날 정유회사들의 막강한 파워를 원자력 회사들에게 부여했다. 해수를 발효하고 증류해서 얻은 정제원료 0.5리터로 1천킬로미터 이상을 주파 가능한데, 원자력 회사들이 은밀하게 반대를 했음에도 그 수가 계속 증가했는데, 이 정제원료의 단점은 값싼 대신 대량의 산소를 많이 필요로 했고 그래서 도시는 산소부족으로 시달려야 했다는 것이다. 


대재난은 전기가 어떤 이유로 동작하지 않으면서 시작된다. 르네 바르자벨은 60여년 전 미래 2058년에 기술과학이  도달할 동력의 원천으로 해처럼 달처럼, 늘 그자리에 있게 될 어떤 힘으로 전기를 상상했고, 그것의 갑작스런 소멸이 몰고올 미래를 그렸다. 늘어난 인구는 도시 전체를 거대한 100층 이상의 마천루로 이루어진 공중 도시로 변모시키고, 300km 속도의 열차는 지나간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낡은 교통수단이며, 사람들은 도시와 도시를 거미줄처럼 연결한 거대한 모노레일로 시속 2~3천km의 속도로 '한가로이' 여행하는 것을 즐겼으나 도시의 대기위로는 최첨단 항공기들이 새처럼 거미처럼 내려앉고 올라가곤 한다.


오늘날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은 서울과 같은 도시의 전력이 하루 이틀이라도 완전히 끊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건 엊그제 집에서 경험한 일인데, 당연히 전기가 정지되면 모든 것이 정지된다. 엘리베이터와 냉장고는 물론 전기 없이는 가스 점화도 불가능하다. 한두시간이 아닌 하루 이틀이 되면 냉장고의 모든 음식들은 썩을 것이며, 고층 아파트에 사는 우리들은 드나들기도 어려워지고, 먹는 일도 불가능해진다. 점화가 안된다는 건 겨울에 난방이 끊어진다는 말이니 얼어죽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세계적인 전력 중단이 일어나기 때문에, 상수도 설비도 모두 중단되고 물마저도 수돗물마저 얻을 수 없다. 이 소설에서 2058년 세계는 조지오웰의 <1984>처럼 대륙 단위로 지배하는 군주가 있는데, 전체주의의 군주 대신 기술문명과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다. 


그가 예언한 것들 중 현재 이미 실현되었거나 어느 정도 실현된 것들은, 초고속 열차, 화상 전화, 유전자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생물종의 탄생, 공장화된 식용작물 재배 시스템, GM 기술이 실현한 빠르게 성장하는 농작물, 핵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것 등등이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의외로 신용카드, 오늘날과 같은 SNS와 휴대폰 등이고, 가장 바보스러운 아이디어는 수도꼭지에서 우유가 나오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저자의 상상은 꽤나 치밀하고 구체적이어서, 그럴듯하다. 특히 고위층의 인간이 점차로 제 손으로 뭔가를 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설정은 정말 그럴듯하다. 


제롬은 단 한번도 무언가를 제 손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대기하며 요구에 부응하는 부하 직원들과 완벽한 장비들이 한 트럭씩 있었다. 부하들이나 장비들이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자신의 몸 장기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주변에서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1천개에 달하는 그의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그 자신이 모든 일을 손수하도록 그를 홀로 남겨두었다. (P146)


프랑스가 배경이지만, 대재난은 전세계를 포괄한다. 처음으로 전세계를 강타한 약 10분 동안의 종류를 막론한 모든 전력의 전압의 급격한 하락은 태양의 흑점, 급격한 지구 기온 상승, 폭염 등을 원인으로 크게 대수롭지 않게 지목되었으나, 이것은 마침내 데뷰를 앞둔 블랑슈의 데뷰 공연이 벌어지던 날, 100층의 방송국에서 시작된다. 때마침, 아프리카로 강제이주당한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 황제는 전세계를 향해 천발의 항공 어뢰와 10만대의 전투기 공격으로 인류 절멸을 꾀하고 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공중에서 비행기들이 폭파되어 도시의 곳곳으로 내려앉았으며, 전력을 잃은 시민들은 공항상태에 빠져 높은 계단을 빠져나오다가 계단에서 압사당하고, 상점들은 약탈당한다. 


그나마 남아있던 얼마 되지 않은 남쪽 시골에서 전통적 방식의 육체 노동으로 삶을 살아오던 프랑수아는 블랑슈를 구해내고 팀을 조직해, 아비규환의 재앙의 도시를 탈출하는 과정이 엄청난 스케일과 세심한 묘사로 이루어져있다. 만일 그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프랑수아는 고향에서 사랑하던 블랑슈가 스타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블랑슈를 돈으로 매수한 방송사 예술국장 제롬의 계략으로 학교 입학도 거절당한 채 권력의 힘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완전한 루저로서의 인생을 살아갈 팔자였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재난을 헤처 나가는 프랑수아는 때로 잔인하다. 의인처럼 등장한 그의 잔인함이 처음으로 묘사된 곳은, 정신을 잃은 블랑슈를 지키기 위해 말을 얻는 과정에서 말주인인 정원사를 죽이는 일이다. 도시의 마천루들 사이로 거대한 정원을 지키는 수석정원사가 아이들을 태워 산책시키는 마차를 기억해내고는 자신의 짐을 싸서 피난을 하려하는 정원사에게 자신들을 조금만 태워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가차없이 그를 죽이고는 마차를 탈취한 것이다. 


약탈이 일상이 된 도시에서, 프랑수아는 혼자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팀을 꾸린다. 자연적 재앙이 일어나면, 자연 그 자체뿐만 아니라 살고자 하는 인간들이 더 큰 적이다. 남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절박한 현실, 팀원들조차 실수를 하면 죽여버리는 카리스마를 통해 프랑수아는 원시부족의 리더로서의 능력을 키워간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은 화재를 몰고 왔고, 도시는 구석구석 화재로 뒤뎦혔으며, 콜레라가 창궐한 도시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괴물이 되어갔고, 그 괴물들은 어디에서건 나타난다. 물과 먹을 것을 얻기 위한 치열한 싸움, 걷고 걷고 또 걸어 찾아낸 곳에서, 새로 시작한 원시적 생활 그리고, 거기에 도사리는 또다른 반전과 그 반전.


재난이 인류의 기술을 모두 끝냈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게 된다면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인간이 스스로의 몸을 움직여서 만들어내던 모든 에너지를 기술적 동력으로 대체하게 되었을 때 무기력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그 인위적인 것들과 대척점에 서게 된 프랑수아의 선택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미 기계와 도구의 사용이 DNA처럼 몸에 감각에 본능처럼 간직된 인간은 모든 책을 태워버리고 모든 과학 기술적 진보를 금지시켜도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게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물정의 물리학 - 복잡한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계물리학의 아름다움
김범준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통계물리학은 통계학의 방법을 이용하여 물리학의 문제를 푸는 물리학의 기초 이론 중 하나다. 가장 널리쓰이는 통계물리학은 통계역학이다.(위키백과 2015-09-24 : 통계물리학) 통계역학은 입자가 무척 많거나, 대상의 운동이 무척 복잡하여 확률적 해석이 중요해지는 현상을 주로 다루며, 핵반응 현상이나 생물학, 화학 등 여러 분야에 적용된다. 통계역학은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물리계를 확률적, 통계적으로 해석한다. 다루는 대상에 따라서 고전 통계역학 또는 양자 통계역학으로 구분한다.(위키백과 2015-09-24 : 통계역학)

 

 

통계물리학이라는 주제를 위키에서 검색한 이유는 이 책의 제목에 물리학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에 관한 내용이 주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리학 하면 공식이 떠오르고, 대중을 위한 물리학 책이라면 그 공식 대신 공식을 인간의 언어로 쉽게 풀이해 쓴 책들이 대부분이다. 세상물정의 물리학이라고 하면 그 이해 가능한 물리 법칙을 일상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거의 인문사회 계통의 책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는게 아닐까 의아했다.

 

저자는 분명 물리학을 전공했고, 현재 통계물리학 분야의,  이름도 물리학다운 상전이, 임계현상, 비선형동역학, 때맞음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하고 있다. 하지만 겁먹지 마시라. 실제 이 책의 내용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빅데이터에 넣고 '처리'해서 그 현상의 본질을 그림이나 차트 등으로 표시해서 살펴보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어 흥미롭다. 물리학이라는 키워드 보다는 통계 혹은 빅데이터라는 말에 집중하여 사회 현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다룬다고 할 수는 없고, 대개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거나는 다른 분야에서 다룬 현상들을 '통계물리학적' 방법으로 새롭게 통찰하는 부분이 많다. 

 

책은 약 4~5장 가량 단위로 이루어진 작은 주제들로 분류되어 있고, 이들이 다루는 주제는 메르스 감염의 전파, 지역감정을 그래프로 통찰, 자녀 교육비 그래프로 살펴본 승자독식 사회의 결말, 집단지성, 리트윗의 진원지와 SNS의 영향력에 있어서 연결중심성 개념, 공공성과 경제 효율의 딜레마 등과 같은 사회 물리학의 세계가 1부이고, 프로야구팀의 이동거리 차이를 최소화하는 몬테카를로 방법, 교통정체의 비밀, 한국인의 성씨 분포 80:8의 법칙, 확률로 본 윷놀이 필승 전략, 점과 선으로 그린 나와 세상의 관계, 네트워크로 본 이름의 유행 변천사, 혈액형과 성격와 상관관계, 프랙탈 모형으로 본 펀드매니저의 승부전략, 물리학자가 추천하는 주식투자인 장기보유전략 등 복잡한 세상을 꿰뚫어보는 통계물리학이 2부, 그리고 껴울림과 때맞음의 법칙, 관계맺음, 사랑과 미움의 비대칭성, 파충류에서 진화한 인간 뇌, 술자리의 술먹기 게임인 영일만 게임, 체질량 지수 등 물리학자의 관계맺음에 대한 통찰을 다룬 3부로 구성된다.

 

한때 우측 통행을 권장하다가, 그게 오히려 교통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연구를 진행한 분이 다름아닌 이 책의 저자 김범준 박사였다. 연구에 사용한 것은 실제 사람들을 동원한 것은 아니고 바둑판 위의 바둑알 같이 보행자를 단순화시켜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한 결과인데, 사람처럼 사고하지는 못하고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앞칸에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으면 진행 방향의 우측을 선호하도록 해서 오른쪽 옆으로 이동, 그곳에 다른 보행자가 있으면 왼쪽 옆으로 이동 그곳에도 누군가가 있으면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있는 방법으로 짜여졌는데, 모형의 보행자(바둑알)가 많으면 이들이 꼼짝없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렇게 우측 보행을 시뮬레이션 한 결과 길은 자동적으로 생긴다. 또한 우측 규칙을 따르지 않는 무법보행자들을 추가해서 각 p값에 따른 보행흐름을 에측한 결과 약 60%의 사람들만이라도 우측 보행 규칙을 따른다면 길이 거의 안막힌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p가 60% 이상이 되면 오히려 길이 막힌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그 현상은 바둑알에서 나온 결론이며, 또한 40%의 무법보행자가 길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준다는 결론이다.

 

차가 많은 날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던 교통 흐름이 갑자기 느려지는 이유가 무얼까. 한 가지 이유는 운전자의 반응시간이 1초정도 되는데, 차가 많을 때에는 그 1초들이 모여서 긴 정체시간을 만들어낸다. 특히 고속도로를 운전하다보면 문제 없이 잘 달리던 차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교통 정체를 겪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만일 차들이 정확히 같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같은 속도로 달리면 막힐 이유가 없지만 도로 위에 차가 많아지고 차간 간격도 줄어들기 때문에 차 1대가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조금만 줄여도 그 뒤를 바짝 뒤쫓아오던 뒤차는 깜짝 놀라 속도를 감속하고 그 뒤차는 더욱 감속하고 그러다가 완전 정체 상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얼마전 롯데월드 신축 건물에서 일어난 건물의 이상진동 현상을 설명하는 껴울림과 때맞음 법칙이 가장 흥미로웠다. 건물은 특정한 고유 진동수를 갖고 미세한 정도로 움직이는데 그러다가 사람들의 집단 운동 때문에 만들어진 외부 진동수가 건물 고유 진동수와 같아지면 껴울림 현상으로 인해 건물 진폭이 커진다는 것이다. 껴울림 현상이란우리가 물리 시간에 공명이라고 배운 현상인데, 이걸 또 물리학계에서는 우리말 순화운동 같은 게 있는 모양이고, 그것은 외부 진동수가 고유 진동수와 같게 되면 진폭이 상당히 커지는 현상이다. 영화 양철북에서 목소리만으로 유리창을 꺠는 현상도 창문이 갖는 고유 진동수가 목소리와 같아져서 생기는 것이고 라디오에서 듣고자 하는 방송 전파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도 라디오 전자회로의 고유 진동수를 방송 전파의 외부 진동수에 맞추면 회로에 큰 전류가 흐르는 껴울림 현상으로 설명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직 출간되지 않은 책을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10월 예정이라고 되어 있는데, 상품이 등록되지 않아서 가볍게 포스트로 책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려 합니다. 작가가 팀 보울러에요. 청소년용 소설을 쓰는 작가에요. 인터넷 서점의 작가 소개 페이지에는 '해리포터'를 제치고 만장일치로 카네기 메달을 수상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작가 주목받은 청소년소설가라고 되어 있어요. 1953년 태생인데 청소년 소설가는 아니죠. 청소년 문학을 쓰는 작가로 알고 있습니다. 카네기 메달이라는 상의 수상 도서는 리버보이였고, 저는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를 읽어보았습니다.그래서 제가 비교가능한 책이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밖에 없는데, 청소년 문학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그 책과는 성격이 많이 달랐어요. 


<소년이 눈물위를 달린다>가 실직과 빈곤으로 해체 위기에 있는 런던의 도시 내 깨어진 가정의 틈바구니를 타고 한 소년이 밤마다 거리를 달려야 하는 미스터리를 그린 데 비해, 이 책은 엄마 아빠라는 가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한 소녀를 그렸습니다. 대신 할머니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지요.그런데 배경이 좀 특이해요.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공간적 배경도 그렇고, 어느 곳 어느 시대인지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본토에서 아주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 거의 고립된 채로 인근 섬과의 무역(?)으로 필요한 물자들만을 공급받고 수출하고, 대부분은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합니다. 섬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이, 작은 마을의 공동체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데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면, 많은 가구에서 가족의 일부를 바다에 잃었다는 거에요. 파도와 폭풍이 몰아치는 날, 다른 사람을 구조하러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케이스가 다반사였습니다.  


헤티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대요. 어릴 때 바다에서 잃은 부모를 헤티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바다는 늘 변덕을 부리며 모습을 바꾸지요. 작은 섬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이 잔잔한 무인도 같은 바닷가의 평온한 분위기만가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너무 잘 알고, 거친 자연에 의해 너무 많이 상처받았지요. 그러던 어느날 폭풍이 몰아치고, 섬을 다른 섬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배가 부서지고 맙니다. 배를 구하려던 사람들은 그 폭풍을 뚫고 떠밀려온 작은 배와 그 배에 타고 있던 한 노파를 발견합니다. 마을의 가장 나이많은 어른이 그 노파를 향해 악이 몰려온다고 저주를 퍼붓고, 해티와 주변 사람들만 노파를 구해 정성껏 간호를 합니다. 그러나 섬에서는 계속해서 나쁜 일들이 일어나고,그것이 외지에서 온 노파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나쁜 일들이 일어나면 속죄양이 필요하듯, 그들은 마녀사냥을 하죠. 해티가 보호하는 노파 때문이니 그 노파를 더는 간호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론이 들끓고 전에 없이 섬 사람들은 두 패로 나뉘어집니다. 노파를 보호하고 간호하던 해티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합니다. 


지난 번에 읽은 책에 비해 바다유리라는 사물과 그속에서 일어나는 다소 환상적인 현상들을 가미해서, 다채로운 색깔로 시시각각 바뀌는 섬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묘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마지막까지 읽기 전에는 다소 사람들의 행동과 말들이 비현실적이게 느껴지고, 어수선하기만 할 뿐 어떠한 주제의식도 내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서 읽기에는 조금 답답한 감이 있었습니다. 정식 출간본이 아니어서 다듬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 문장들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반 이상이 지나도록 마을 사람들과 소녀의 행동이 이 저는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바다유리의 정체와 속삭임과 형체의 의미도 잘 모르겠고. 아마도 제가 청소년이 아니어서 감동의 차원이 서로 잘 안맞은 듯 싶었습니다. 끝까지 읽으니 주제를 대략 알겠더라구요. 바다가 속삭였고, 그래서 그 속삭임에 귀기울였다. 정도.. 그러나 여러가지로 정교하지 못한 묘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번역의 문제는 아니고, 예를 들어 아이(해티)가 소녀인데, 할머니를 업고 벼랑위를 뛰어다니는데, 아 그래서 한 열일곱 열여덟살 정도에 섬에서 억세게 컸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동네 아저씨와 상봉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아저씨가 해티를 번쩍 안아서 계단으로 옮겨놔요. 그런 식의 자잘한 묘사가 사실성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되었어요. 하루 이틀 안에 돌아가실만큼 위중한 노파가 벼랑을 거센 폭풍 속에서 벼랑을 기어 올라가고 내려가고, 또 그러다가 정신을 잃기도 하는 것 같은 것도 그렇고요. 아이들의 소설에선 그런 디테일들이 과장되기도 하지만, 엄연히 동화책도 아니고 두께도 상당한 소설이거든요. 바다치는 섬 마을 풍경은 아름다왔습니다. 어렵거나 지나친 표현이 없이 쉽고 심플한 문장으로도 자연을 참 잘 표현한다라고 느꼈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