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19주년이 되었다니 시간이 참 빠르네요. 좋은 책들이 많이 출판ㆍ 유통되고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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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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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그림이 만날 때

곽아람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6호선 봉화산역에서 한강진역까지, 7호선 상봉역에서 숭실대입구역까지 그리고 광화문의 많은 카페와 병원대기실에서까지 이 책을 읽었다. 형광펜을 들고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고 앞좌석을 바라보았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나 혼자였다. 친구가 늦게 도착해도 화나지 않았고, 성대 폴립이 생겨 대형병원에 가서 진료시간을 기다릴 때도 책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 떨지 않고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모든 기다림의 순간에 혼자가 아니라 다양한 그림과 연결시킨 독서 감상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외계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강도로 압력을 가해올 때, 그 버거운 삶의 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어떤 책들은, 그림이 되어 마음속 풍경으로 간직된다. 5.p

 

  글머리에 쓰여 있는 작가의 말이 나에게 와 닿았다. 때로는 사람보다 한 권의 책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준다.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혹은 내가 처한 힘든 상황이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세상에 나 뿐만은 아니라 또 있었다는 사실이 흥분하고 욱했던 감정을 가라앉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책에 대한 추억과 함께 그림에 대한 작가의 고백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선물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소개한 책과 그림 중 내가 읽은 책이나 좋아하는 그림이 나왔을 때 독자로서 기쁨은 배가 되었다. 그 책에 대한 작가의 감상이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할 때는 마치 그녀와 책에 대하여 수다를 떠는 것 같았고, 미처 내가 깨닫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했던 부분이 나오면 다시 한 번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찾아 다시 확인했다. 그러는 동안 그 책을 읽었을 때의 나의 모습, 상황, 정서 등도 함께 떠올랐다. 여름밤 큰마음 먹고 산 <토지>를 읽어 내려가며 우리 문학에서 최서희라는 가장 멋진 여성 캐릭터를 발견했던 기쁨도 떠올랐고, 시간을 쪼개어 대학원 과제를 제출했던 <변신>을 통해 고된 일과 속에서 쉬고 싶었던 은행원 카프카를 떠올렸던 일도 생각났다. 작가가 밝힌 대로 <제인 에어>의 마지막 부분이 그렇게 끝나는 줄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림과 자신이 읽은 문학작품을 연결시키고, 한 편의 글로 엮어낸 작가의 안목과 필력이 뛰어나서 놀랐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며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온 사람의 내공이 느껴졌다.

 

  그림을 감상할 때 나는 어떤 작품을 떠올릴까. 지난 토요일 친구들과 본다빈치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르누아르: 여인의 향기전에 다녀왔다. 르누아르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고 감각적인 영상으로 재현한 전시회에서 몽마르트 가든을 보았을 때 저절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 떠올랐다. 환상적인 숲속 어딘가에서 요정들이 나올 것 같고, 청춘남녀들이 잠들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문학과 그림은 우리의 상상의 세계를 풍성하게 해준다. 그것은 영혼이 피폐해질 때 가장 귀한 치료약이 되어 준다. 마치 프레드릭이 친구들에게 컴컴하고 지루한 겨울을 견디게 해주는 따뜻한 대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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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로런스 블록 외 지음,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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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삶에 판타지가 찾아올 때

         니컬러스 크리스토퍼 <바닷가의 방>

 

 

  이 소설은 호퍼의 그림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러나 호퍼의 그림을 보고 한 편의 단편을 써 낸 작가의 힘은 대단하다. 예술은 서로 각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받으면서 발전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예술 안에 아름다움과 상상력이 극대화된다. 호퍼는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입고 있는 화가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그림 중 호텔방에서 속옷만 입은 채 침대에 걸터앉아 책을 읽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있는 <혼자 있지 않은 시간>을 좋아한다.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는 여자가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가장 편한 복장으로 독서의 빠져있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때론 내 모습 같기도 하다. 나도 이 그림을 보며, 소설을 쓰고 싶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퍼가 <바닷가의 방>을 보고 소설을 썼던 것처럼.

 

 

- 통상적인 물리법칙에 어긋나는 일들은 항상 일어나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채 묻히는 것뿐이라고 칼레타는 말했다. …… 어머니 덕분에 카먼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설명할 수 없어서 더 진실하고 강력한 것임을 이해했다. 커갈수록 어머니의 순환 논리와 상상의 나래에 익숙해져갔다. 114.p

 

 

  텅 빈 방안에 햇빛이 가득 찼다. 한 쪽은 뻥 뚫린 채로 푸르른 바다를 향해 열려있다. 햇빛과 바다와 방안에서 우리의 상상은 나래를 펴고, 판타지는 시작된다. 우리가 판타지를 잃어버리고 물리법칙에 어긋난 삶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언제 부터인가 보이는 것만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그것은 허구이고,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환상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고 만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칼레타의 말처럼 설명할 수 없어서 더 진실하고 강력한 힘을 지닌 것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살아간다.

 

 

- “ …… 난 자신만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사람이 좋아. 진정한 자아를 배신하지 않는 사람. 파비우스가 이곳에 온 뒤 처음 몇 달 동안, 난 그가 먼저 마음을 열고 자기 이야기를 해주기를 기다렸단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가 결코 그러지 않으리란 걸 알았지. 문득 그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그것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점을 존중했어. 네가 그에 대해 캐물으려 하면, 카먼, 그 사람은 뒤로 물러날 거야. 사라져버릴 거야.” 121.p

 

 

 

 카먼은 파비우스가 해산물 가득한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이야기는 지상에서의 삶을 포기한 후 일 년 동안 해양생물로 살아가는 미스터리한 것이었다. 우리는 날마다 죽고 또다시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누구나 마음에 자기만의 비밀과 신비한 것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다만 자신이 무언가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끝이지만 끝이 아니고,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아서 계속 우리 곁에 혹은 어딘가에서 무엇이 된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현실의 모순과 탁월한 이론, 혹은 사이비 교주나 유혹 등에 쉽게 매혹당하지 않는다. 그것을 뛰어넘는 자기만의 또 다른 세계가 마음속에 있으니까. 파비우스와 그 전 사람들이 바다로 돌아가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옆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상상의 세계 속에서 힘차게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지금의 현실을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힘이 될 것이다. 호퍼와 니컬러스 크리스토퍼가의 <바닷가의 방>과 또 다른 그림과 소설들이 보여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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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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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눈이 내리던 밤

    나는 여기가 좋다 중 <밤눈>

 

 

  한창훈 작가의 글은 소설보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로 먼저 접했다. 작가의 작품이 아닌 에세이에는 살아온 날과 성향, 생각 등 작품 속에 담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에 소설가는 직접 만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내가 느낀 한창훈 작가의 글속에는 바다와 자연, 인간에 대한 투박하지만 순수한 그의 마음이 들어있었다.

  소설 <밤눈>을 읽는 동안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술집주인의 사연을 술 한 잔 앞에 두고 조곤조곤 듣는 것 같았다.

 

 

여인네는 약간 성가시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지 않으냐는 표시로 슬쩍 어깨를 흔들며 돌아왔다. 묶어올린 머리 뒤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39.p

 

 

 첫 문장을 시작으로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이다. 그러나 여인의 인생과 함께 밤새 내리는 눈은 말하는 이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준다. 마치 담요처럼. 눈 때문에 소설이 살아나고 힘든 일상을 살아내는 서민들의 삶도 살아난다. 그들의 하루하루에 위선은 없다. 실없는 희롱과 걸쭉한 농담이 오고가지만 고단한 인생을 살면서 만들어낸 마음의 이력은 그것을 받아치고 넘겨버린다. 그 위로 눈이 오고 발자국을 덮고 쌓이기를 반복한다.

 

 

 유독 춥고 눈도 많이 오는 해가 있었소이. 시래깃국 한 사발 퍼먹고 돌아서면 배창시가부르르 한번 떠요. 그러면 또 고파. 그때 이런 눈이 왔소.

  오메, 밥 온다.

  그때는 어찌 그리 다 짜잔했으까. 담벼락에 눕다시피 기댄 언니가 이렇게 콧물을 주욱 닦음서 그럽디다.

  아이 봐봐. 밥 내린당께.

  …… 그렇게 들어서 그런지 참말로 쌀밥 덩어리 같습디다. 57.p

 

 

 쌀밥 덩어리 같은 눈을 통해 가난한 가족의 허기짐이 느껴졌다. 그 눈이 하늘에서 말을 하기 위해 내리는 것과 사랑을 할 때 눈이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결국 그 눈이 누군가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내리는 것이라는 주인공의 말은 시보다도 더 아름답다.

  문학이 주는 위로가 참 좋다. 위대한 인물의 업적과 성공담이 아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것 같은 존재감 없는 고단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일지라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꽃 같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인생이란 퍼즐 안에 잊지 못할 환희 몇 조각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퍼즐이 있다는 것을 소설이 아니면 무엇을 통해 말할 수 있을까.

 

 

 눈은 함북 내리고 또 내려 아예 세상을 온통 과거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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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컬렉션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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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키리니의 세계 속으로

<아주 특별한 컬렉션>-우리의 시대(1) ‘사후에

 

 

  베르나르 키리니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국내의 소개된 첫 문장 못 쓰는 남자』 『육식 이야기, 목마른 여자들에 이어 네 번째 소설집이 아주 특별한 컬렉션이니 역으로 그의 작품을 읽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의 세 기둥은 <아주 특별한 컬렉션>, <열 개의 도시>, <우리의 시대>이다. 개성 있는 구성이며, 분량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 전철을 타고 오가는 동안 읽을 수 있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징검다리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이것 또한 문학적 장치라는 느낌이 들었다.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져가며 재미있게 소설을 읽는 동안 길게 여운이 남았고, 책을 덮고 나서도 자꾸만 생각나게 만드는 것이 여러 특징 중 하나이다. 그중 <우리의 시대>(1)사후에는 죽음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 볼 수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이번 생에서는 ~ 하는 걸로와 같은 화법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면 인류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이제 두 번의 생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존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았고, 더는 생에 이전과 같은 가치를 두지 않게 되었다. 죽음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왜 죽음을 두려워하겠는가? (36.p)

 

 

  ‘부활 전염병이 창궐한 가운데 한 번 죽고 또다시 살아나 두 번째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의 반응과 생각, 행동은 다양하다. 부활을 재앙이라 생각하는 이들과 다시 한 번 삶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는 사람들 사이에 수많은 문제와 쟁점들이 발생한다.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기존이 가치와 존재에 대한 사유는 더 이상 무용지물이 되었다.

 

 

  <우리의 시대> 첫 문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이 더는 순조롭지 않다. 매일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매주 우리 사회는 더한층 미쳐 돌아간다.’ 미쳐 돌아간다는 문장 뒤에 집단적 부활을 시작으로 우리 시대의 다섯 가지 모습이 등장한다. 여섯 작품 모두 문학적 장치를 통한 대단한 통찰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현대 문명이 아무리 급속하게 발전했고, 그 속도가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고 해도 죽음만큼은 인간 밖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무의미해지고 더 이상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나 두려움 없이 한없이 주어지는 많은 것 중 하나가 된다면 그야말로 미쳐 뱅글뱅글 돌아가다가 결국은 죽음을 갈구하는 사회가 될 지도 모른다. 부활하지 않고 한 번만 살다간 사람을 제일 복 받은 사람이라 부러워하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신의 저주가 아닐까. 삶이 있어 희망을 품고 앞을 향해 걸어가다가 좌절과 고통에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생명 곁에 한 몸처럼 붙어 있는 죽음이 있어 추억과 그리움이라는 소중한 보석을 마음 어딘가에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 없이는 삶이 더욱 부조리하다는 것을 알았고, 죽음이 절대적이고 쉽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던 호시절을 못내 아쉬워하게 되었다. 요컨대 죽는 것이 안심이 되었던 그때 그 시절을. (39.p)

 

 

  이 작품을 읽으면서 트리갭의 샘물(나탈리 배비트(저자)/대교출판)에 나오는 한 장면이 생각났다. 영원히 사는 샘물을 마신 아저씨가 총에 맞아 죽은 시체를 부러운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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