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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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

 

 

소설은 여름을 닮았고, 여름은 소설을 닮았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 나에겐 아직 더 많은 사랑이 남아 있다. 그리고 아직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278,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의 첫 시작은 바로 영우이다. ‘는 그와 헤어지고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그렇지만 나에게 영우는 현재진행형이자 여전히 자신을 끌어당기는 자석 같은 인물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부터 는 영우에게 끌렸고, 끌려 다녔으며, 그만큼 는 영우에게 집착했고, 그는 잠수를 탔다. 그리고 6년이란 시간이 흘러 재회한다. 이 소설은 여름처럼 빨리 지나가고 짜릿했지만, 아직 시작 하지도 못한, 앞으로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영우는 내게 겨울 사람이었다.

……

또 너한테 말리는구나. 헷갈리게 홀리는 것 여전하네. 그렇지만 밤의 맥박으로 뚜벅뚜벅.

 

 

 여름 한 낮, ‘는 영우와 재회했지만, 그는 에게 겨울 사람이었다. 친구와 사랑이 함께 할 수 있을까. 첫 만남에서부터 생애 처음 충동적이고 능동적인 대시를 했던 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순간에서도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랑한다면서 주어진 상황을 이성적으로 제어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출세 혹은 기다려온 기회의 순간과 말도 안 되는 상황 앞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예를 들면 사랑이거나 자존심, 창작의 길 등과 같은 경우 말이다.) 인간의 마음은 신비한 것이라 무의미해 보이는 것에도 갑자기 끌리게 되고 불나방처럼 그것을 향해 날아간다. 다시 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만든 영우에게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결국 그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한 처럼 인생의 한 부분을 파멸로 몰고 갈 것을 알면서도 그를 향해 갈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의 행동을 통해 가장 나약한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퀴어 문학이라고 단정 짓지 않았다면 사람과 사랑에 대한 여운이 반감되지 않고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선택이후의 문제와 감당해야 할 짐이 무거워 힘든 것이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미워하는 것이 문제일 뿐. 그것은 모든 사랑이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문학은 판단하거나 질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나의 긍지는 오직 글쓰기에서만 연유한다. 모든 것을 읽게 되더라도 글을 읽고 쓸 수만 있다면, 나는 여전하게 행복할 것이다. 글쓰기에 사랑을 넣어도 좋다, 그 말하려는 지금, 사랑을 예감하는 것처럼, 나는 죽는 순간까지 글쓰기와 사랑을 유비하는 일을 멈추지 못하리라는 걸 깨닫는다.

277, 작가의 말 중에서-

 

 

 글쓰기는 사랑과 많이 닮았다. 억지로 시켜서 할 수도 없고,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다. 이것보다 더 좋은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는 좋은 조건도 얼마든지 거절하고 몰두 할 수 있는 것이 사랑과 글쓰기이다. 끝까지 가다보면 무언가를 만나게 되거나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것에 대한 후회와 책임까지도. 선택 이후의 고통이 힘들고 아프겠지만 그래서 나는 글쓰기와 사랑을 선택한 이가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그 길을 걸어가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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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계절
구효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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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란 단어는 힘이 세다. 고통을 뚫고 나온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여름을 견딘다는 것은 뜨거운 땀을 흘리며힘을 다해 삶을 통과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일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은  많은 생명이 빛을 발하다 죽고 또 다른 생명들이 태어나는 것과 맞물려 있다. 5월의 연둣빛 나뭇잎이 부드럽고 순한 느낌을 주지만 한여름 나무의 초록은 너무나 강렬해서 오히려 공포감을 준다. 때때로 그 진한 초록빛이 목을 죄어오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계속 될 것 같은 여름도 결국 끝을 향해 간다.

 

 

  구효서의 <여름이 지나간다>에는 스물 두 살의 젊은 아내를 두고 떠났다가 60여 년 만에 돌아온 와 끊임없이 무언가를 일구고 키우고 물을 들이며 치열하게 삶을 견뎌온 가 등장한다.

 

 

  두 마리 누룩뱀이 계곡 쪽으로 빠르게 기어갔다. 개구리들이 놀라 물로 뛰어들며 민들레 씨앗을 건드렸다. 홀씨가 물 위에 눈처럼 흩어졌다. 파는 닭장에 들러 달걀을 살폈다. 뱀은 종종 달걀을 통째로 삼켰다. 파는 뱀을 쫓으며 닭을 키우고 개를 키우고 돼지를 키웠다. 숱한 밭작물을 키웠다. 아들을 키웠다. 그것들을 키우지 않으면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실타래를 삶고 표백하고 염색하고 빨고 밟고 짜고 말리고 털지 않고는 나이를 먹을 것 같지 않았다. 세월이 멈출 것만 같았는데, 파는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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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시간이 흐르지 않을까 두려워 닭과 개와 돼지를 키우며, 실타래를 표백하고 염색했다. 세월이 멈출까봐 끊임없이 일하고 또 일했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긴 세월이었지만 그 시간도 결국은 흘러가버렸다. 붉은 흙이 떨어지고 저 큰 팽나무가 심겨져 있는 자신이 직접 지은 집으로 돌아온 하는 늙어버린 아내에게 하고 싶었던 많은 말들을 결국 하지 못한다.

 

 

  머리카락이 표백한 실타래 같은 아내와 마주 쳤을 때, 그의 몸속엔 아무 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육십 년을 공글리며 별렀던 변명이 헛기침 같은 탄식으로 빠져나가고, 그의 입안엔 쓴 침이 고였다. 그것은 죄의식도 실의도 놀라움도 아닌, 텅 빔 그 자체였다. 본디 비었던 것이 비로소 그 빔으로 희귀한 것 같은 사정과 신념과 견딤과 변명 들이 워낙은 있지도 않았다는 듯이. 하는 그날 자신과 다름없이 망연하게 서 있던 파를 보았을 뿐이고. 그들 사이로 긴 여름의 오후가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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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는 밖과 안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창가 의자에 앉아 파의 행동을 지켜보거나 마을에 있는 동굴 속을 헤맨다. 파는 여전히 돼지를 키우고, 닭을 키우고 실타래에 염색을 한다. 시간과 언어의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한 두 사람 사이로 여름이 지나간다. 처음에는 란 이름이 낯설었다. 그러나 부부이면서 타인과 같은 두 사람에게 다른 이름이나 호칭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하와 파로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다 보면 두 사람 사이에 굳이 변명과 해명이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소설 전체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적막하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인간의 언어를 소거시킨 것 같지만 하와 파가 견뎌온 시간의 고통만큼 작품 속에는 다양한 생명들의 비명소리로 가득하다. 방망이를 들고 숲으로 들어간 소년이 퍽 퍽 무언가를 치는 소리, 새의 울음소리, 새들을 잡아 모가지를 꺾어 발효 고기를 만드는 사내의 소리와 그의 어린 아내가 밤마다 지르는 비명 소리, 암탉의 소리와 돼지의 소리, 전기 모기 퇴치에 걸려 모기들이 타죽는 소리, 두 사람을 취재하러 온 방송국 사람들이 멋대로 만들어낸 이야기와 대학생들의 순진하고 이론적인 질문 등 수많은 소리가 하와 파 사이에 가득하다. 그 소리들은 여름을 살아가고 있는, 여름을 지나가는 소리이다.

 

 

  소리와 더불어 선명하게 기억이 남는 장면이 있다. 바로 파가 헛간 풀방구리에 둥지를 튼 검은 쥐들의 새끼들을 닭들의 먹이로 던져주는 장면이다.

 

 

  파는 작고 흰 것들을 바닥에 던져주었다. 닭들이 몰려나왔다. 하는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파가 던져준 것은 아직 눈도 안 뜬 쥐새끼였다. 새하얀 것에서 살짝 분홍빛이 비쳤다. 갈피를 못 잡고 어릿거리는 것들을 닭들이 달려가 쪼았다. 한입에 삼키지 못해 찢고 찧고 헤저었다. 하는 돼지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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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들이 쥐새끼를 쪼는 소리도 쥐들의 고통소리도 그것을 어딘가에서 느끼고 있을 어미 쥐의 의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잔인하고 치열하게 생명을 키워내는 여름.

 

 

  소설집 전체의 제목이 아닌 계절이다. 각 계절마다 하와 파 같은 또 다른 인생들이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품고 있을 것이다. 전 국민이 폭염 속에서 힘든 여름을 견디고 있는 요즘, 또 어떤 생명들이 다른 계절을 겪고 견디어 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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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설계사무소 직원들이 여름별장에서 도서관 건립을 놓고 땀을 흘리는 동안 여름은 깊어간다. 건축소 소장과 직원들의 건축에 대한 철학과 애정ㆍ노력에 문장과 표현의 아름다움까지 더해진다. 여름은 휴가지에 오래 남아있기를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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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멘 호수.백마의 기사.프시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4
테오도어 슈토름 지음, 배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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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청춘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테오도어 슈토름의 <임멘 호수>

 

 

  ‘테오도어 슈토름이란 작가와 그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접했다. 다양한 작품을 추천받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세상은 넓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책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다. 세상의 모든 작품을 만날 수 없기에 다양한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한편이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그것이 마음속에 살포시 다가와 울림을 주고 가는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임멘 호수>처럼.

 

 노인이 된 라인하르트가 날이 저물어가는 저녁, 안락의자에 앉아 액자 속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을 부른다. “엘리자베트!” 그녀의 이름은 그가 청춘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이자 통로이다. 그 이름의 부름은 시작부터 정신이 번뜩 나고 뒤에 펼쳐질 이야기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해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흔한 문학작품의 주제인 사랑과 이별, 그로인한 상처와 그리움이 소설 전체를 이루고 있지만, 가슴에 남는 애련함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이제는 노인이 된 한 남자의 고백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분명 소설을 읽고 있는데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과의 헤어짐은 잡을 수 없는 시간과 청춘에 대한 시가 된다.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을 쫓아가다보면 함께 숲속을 헤매기도 하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사라져가는 청춘이 마냥 아쉬워 지기도 한다.

 

 

 나무딸기 덤불과 가시나무가 사방 천지에 엉켜 있었다. 공기 중에는 짧은 풀과 번갈아가며 들판의 빈자리를 뒤덮고 있는 에리카 꽃의 강렬한 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여긴 너무 외로워.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엘리자베트가 말했다.                                19

 

 

 딸기를 찾아 숲속으로 들어간 어린 연인은 함께 시냇물을 건너고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지만 원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두 사람은 그곳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라인하르트는 연인의 머리위에 내려앉은 정오의 햇살을 기억하고 그녀를 위한 시를 지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르고 숲속이 고요해지자 엘리자베트는 외로워했다사랑하는 청춘 남녀에게 주어지는 시험이란 서로가 떨어져있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닐까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헤어진 연인이라면 시간의 무게만큼 많이 아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에 오래된 노트가 있어. 거기에 온갖 노래와 시를 써넣곤 했지. 하지만 그만둔 지 오래야. 책갈피에 에리카 꽃 하나가 꽂혀 있어. 하지만 시든 거지. 그걸 누가 나한테 줬는지 알아.” …… 엘리자베트, 저 푸른 산 뒤에 우리의 청춘이 있었어. 그 청춘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그가 말했다.                                                                                                                 52

 

 

 그는 이제 다시 노래와 시를 쓰지 않는다. 시와 노래를 썼던 노트와 시든 에리카 꽃은 두 사람의 지나가버린 청춘처럼 빛이 바랬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간절해질 수도 있다. 한 여자를 위해 노래와 시를 썼던 젊은 청년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도시로 떠난 애인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게 된 한 여자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갔을까.

 

 

 사랑이나 연인 대신 다른 말들을 대신 생각해본다. 가족, 친구, , 하늘, 바람, 구름, 추억, , 등등 말이다. 나부터 바쁘게 살아가면서 이렇게 좋은 것들을 놓치거나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랑이 없다고 혹은 사랑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중이라고 말하는 요즘 세상의 우리들에게 누군가 조용히 말하는 것 같다.

 

 

 푸른 산 뒤에 우리의 청춘이 있었어. 그 청춘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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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 히스토리를 한눈에 보게 되었습니다.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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