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여행 산문집
김연수 지음 / 컬처그라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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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연수의 글은 무심하고 냉소적인 것 같은데 따뜻하고 유머가 있다. 그래서 무작정 좋다.
자꾸 주관적인 평가가 들어가고 신작이 나오면 무조건 사는 지라 객관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누구나 읽어도 어렵지않고,
재미있고 가끔 감동적이고, 따라해볼 만한 정보도 들어있다.
심지어 그림도 재미있고 따라그리기 쉽다.

이건 나의 전적인 생각이니 동의할 수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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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집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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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 본 마그리트 그림은 백화점 광고로 기억되는 <겨울비>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 그리고 김영하 작가의 소설 <빛의 제국> 표지를 통해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을 만나게 되었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그림이 묘하게 어울려 시선을 끌었던 생각이 난다. 예술은 분야가 다를지라도 각 분야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또 다른 영감을 일으켜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열어간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과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가 만나 소설 <빛의 집>이 된 것처럼 말이다.

 

 

  사랑은 힘이 세다. 사람을 강하게 만들기도 하고, 미처 알지 못하고 살아가던 심연의 세계로 빠지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우리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말이다. 당사자들을 새로운 환경과 사건 속으로 몰아넣는다. 연인 캉디스에게 외면당하고 혼자 베네치아로 여행을 온 제레미처럼. 그는 곤돌라를 타다가 충돌하는 가운데 필리프 네케르를 만나게 되고, 구겐하임 미술관에 걸린 <빛의 제국>을 보다가 불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목격하고 그림에 빠져든다.

 

 

 

나는 나가고 싶지 않다. 더구나 나는 꼼짝할 수가 없는 상태다. 창문에서 스며나오는 부드러운 광채가 고맙게도 나를 붙들고 놔주질 않는 것이다. 나는 이 그림 속에서 정말 좋았다. 캉디스와 함께한 첫 일요일을 거기서 되찾았고, 그녀 없는 내 인생의 무거움을 훌쩍 벗어던졌고, 그녀의 깃털 이불 속에서 미적대는 가운데 시간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24.p

 

 

 

  두 사람은 다음 날 그림의 불빛을 확인하러 다시 그곳을 찾아가고 바로 그 자리에서 제레미는 첫 번째 임사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빛의 제국>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리게 된 것이다. 제레미를 그림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 것은 그가 아직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랑의 끈 때문이다. 사랑에 거부당하기 훨씬 전으로, 두 사람이 처음 사랑에 빠졌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제레미가 간절하게 캉디스의 사랑을 원하고 집착했을 때 역설적으로 그는 연인에게 실연을 당하는 대신 나약해진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었다. 사랑을 하게 되고 점점 마음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자신의 약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상대방을 통해 반사된 내 모습이 부족해 보여 더 잘 해주려고 노력하다보면 그것이 집착처럼 보여 질 때도 있다.(그렇게 변할 수도 있고.)

그러나 사랑이 위대한 것은 그것 때문에 사람을 성장하게 하고, 성숙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게 캉디스를 돌려줘!”

당신이 이런 식으로 그녀를 찾으려고 하니까 자꾸 놓치는 거라고. 이 멍청이!”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나 좀 알려주든지!”

내 진짜 모습을 찾아봐!”

172.p

 

 

 

  헤매본 사람만이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정신없이 헤매던 길에서 던진 질문이 답이 되어 돌아올 때가 있다. 그림 속의 마르타가 사라지면서 제레미에게 말해준 것처럼.

 

 

  제레미가 처음 캉디스와 헤어졌을 때는 아픔과 상처가 매우 컸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더 성숙해지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랑까지도 말이다.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기도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삶에서 가장 원하고 갈망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사랑이고, 가장 큰 파격일 수도 있다. 그것이 때에 따라서 다른 것으로 이름을 바꾸어 가겠지만. 자신의 삶에서 열정적으로 살아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런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 혹은 그 무언가를 만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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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 비아 문고 14
키스 워드 지음, 한문덕 옮김 / 비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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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하늘을 보네.
너의 손뱌닥으로 무한을 쥐고,
찰나의 순간에 영원을 담는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 중에서.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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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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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을 것이다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2013121일 월요일, 친구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나는 복도 의자에 앉아 이 소설을 읽었다. 두툼한 잠바를 벗어 무릎에 안고 있었기에 그날의 차가웠던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다. 친구가 손가락에 핫도그처럼 하얀 붕대를 감고 나올 때까지 나는 김연수 작가의 신작에 눈을 떼지 않고 읽어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제주도와 사랑, 빗소리를 관통하는 문장들을 읽으며 차정신이였던 파멜라 차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사람과 장소, 빗소리와 추억을 통과하면서 잊지 못할 순간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잊지 못할 한 순간들을 품고 있기에 현재의 또 다른 시간들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95번 고속도로를 타고 미국 동해안을 따라 쭉 내려갔다. 스무 시간 남짓, 그렇게 운전하는 동안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을 것이다./72

 

  누구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양한 삶의 무늬를 만들어낸다. 막내 이모가 파멜라 차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도 비가 내릴 때 사월에는 미였다가 칠월에는 솔까지 올라가던 함석지붕 아래서 그와 함께 3개월 남짓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서귀포시 정방동 136-2번지에서 바다 보면서 3개월 남짓 살았어. 함석지붕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그 사람 부인이 애 데리고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시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 석 달 동안 밤이면 감독님 품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누워 있었지. / 81

 

  두 사람이 살았던 집은 분명 작고 초라한 집이었겠지. 누구의 남편이거나 가족에게 걱정을 안겨주는 동생이 아닌 서로의 연인으로 함석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사랑의 도피로 얻은 시간과 나머지 시간을 맞바꾸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의 시간들은 이 순간을 간직하게 위해 남아 있는 건지도.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정의할 수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시간이 없었다면 인생의 공평함도 슬픔에 처연하게 대처하는 법도 몰랐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가슴에 묻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고 이야기 나누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한 순간의 그리움에 서글퍼지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미안해하고 가슴 철렁하며 두려워하는 마음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모든 것도 없었을 것이다.

 

  5년 만에 다시 이 소설을 읽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갔을 때마다 내가 앉아 있던 병원의자와 복도를 오가던 사람들, 소독약 냄새가 떠올랐다. 그전 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미안해하던 친구 얼굴도 떠오르고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이처럼 멋지게 표현한 작가의 문장력에 함께 감탄했던 것도 떠올랐다. 소설이 소설로 끝나지 않고 내 몸 곳곳의 감각으로 남아 그때의 기억을 불러왔다. 그 시간 때문에 다시 친구의 아팠던 손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과 희망은 모두 기다림 안에 있다.

기다리라 생각 없이. 너는 아직 생각할 준비가 안 돼 있을지니:

그러므로 어둠은 빛이, 그리고 고요는 춤이 되리라.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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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야, 잘 가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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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별이 되었습니다

허수경<아틀란티스야, 잘 가>

 

 

  며칠 전, 도서관에서 <아틀란티스야, 잘 가>를 빌린 뒤 카페로 갔다. 친구가 오기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서 더위를 피하며 독서를 할 생각이었다. 자리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꽤 두꺼운 장편소설이 술술 읽히면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미미였다가 경실이었다가 다시 뚱뚱한 못난이가 된 가 내 마음에 쏙 들어와 버렸다. 다음 날, 대전 가는 KTX안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대전역을 빠져 나올 때 유명한 ***에서 고소한 빵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빵을 샀다. 경실이가 찐빵 속에서 별을 발견했다면 따뜻한 소보로빵은 나의 허기를 달래주었다. 아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배고픔을 채워주었던 찐빵들은 별이 되었을까.

 

 

내가 찐빵을 좋아하는 이유는 찐빵 속에는 아주 다디단 독과 같은 소가 들어 있어서야. 팥을 익혀서 껍질을 벗기고 설탕을 섞어 만든 소. 찐빵을 둘로 나누면 그 안에는 마치 뭉쳐 있는 별 같은 소가 들어 있지. 이것 봐, 뭉쳐진 달콤한 별들. 그 별들을 먹으면 정말 맛있어. 그 달콤함 뒤에는 서글픔이 번져오고 핑, 눈물이 돌지. , 내 배 안에는 달콤한 별들이 떠다니는구나. …… 언제나 나는 혼자서 밥을 먹지. 엄마 역시 집에 없어. 둥근 상에 혼자 앉아 찬밥을 물에 말고 김치나 오징어채를 밥에 얹어 먹는 동안 이상하게도 나는 살이 찌기 시작했어.…… 혼자서 머리를 박고 그런 것들을 넘길 때면 외로웠어. 밥 먹는 일은 외로움이었고 외로움은 내 신경을 나른하게 만들었어. / 20~21

 

 

  어른들의 세계가 정치적 억압과 경제개발로 인해 굳어져 갈 때, 아이들은 혼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뎌야만 했다. 꿈을 갖고 상상력을 펼치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독재와 자본의 힘,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동 등은 경실이와 친구들에게 꿈 꿀 권리를 빼앗고 무서운 기억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마음이 따뜻했고, 즐거웠고, 슬펐고, 웃을 수 있었다. 아마도 찐빵 속에 숨어있던 달콤한 별들이 조금씩 떠올라 어두운 하늘에서 한 개 두 개 차례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뒤에 선생님을 만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급식 세대인 요즘 학생들이 도시락 세대인 우리에 비해 항상 허기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기회가 되고 할 수 있는 대로 학생들에게 쵸콜릿이나 사탕, 빵 같은 것을 먹인다고 했다. 아침은 편의점 삼각 김밥을 먹으며 등교하고, 점심은 단체급식과 컵라면, 저녁에는 학원 시간에 쫓겨 김밥과 햄버거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학생들을 보며, 무방비 상태로 육체적, 정신적 허기에 놓여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서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안고 살아가는 동안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살은 빠지지 않을 것이다.

 

 

살을 빼면 될 거 아니냐고? 아니, 살은 안 빠져. 서러운 마음을 꾹꾹 누르며 허겁지겁 찐빵을 집어먹는 이상 이 살은 날 따라다닐 거야. / 93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이 그 서러움을 이기고 아플지라도 자기만의 아틀란티스를 찾아가기를 기도한다. 어른들의 세계에 눌려 자신들의 세계를 쉽게 포기하지 않기를. 한 명 한 명이 반짝반짝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이니까. 나 또한 그들 옆에 서서 내가 원했던 세계가, 꿈꾸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며 그들과 같이 빛나고 싶다. 우리는 원래 모두 별이었던 존재이니까.

 

 

아저씨, 찐빵 다섯 개, 검은 봉지에 더운 김이 오르는 찐빵 다섯 개가 들어갈 때, 나는 마치 별 다섯이 검은 봉지 안으로 들어가는 양,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았지. 별 다섯이 든 검은 봉지를 흔들며 강으로 가서 둑에 앉아 먼 강물을 바라보며 찐빵을 먹을 때.

 

배 안에 별이 떠다닌다!

별이 있어서 나, 혼자 아니다!

나는 흘러가는 강물을 향해 소리를 질렀어. 웃다가 혼자 깔깔 거리다가 다시 앉았을 때,

 

강물은 흘러갔고

내 배 안에는 별이 그렇게 총총, 떠오르는 거야 …… /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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