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교수에 대한 어록이 항간에 유행하고 있더라구요. 무릎팍 도사에 나왔다고 해서 다시보기를 했는데 역시나 한 마디 한 마디가 멋지더라구요. 미국에 실리콘벨리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바로 안철수연구소가 있는 것 아닐까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반도체 기술은 유명하지만 이런 하드웨어나 PC 보급과 인프라가 아닌 소프트웨어는 아무래도 미국이나 인도에 비해서 많이 뒤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소프트웨어라고 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요즘 많이 부각되고 있는 창의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실상 우리나라의 회사 분위기는 직원들의 개성이나 창의성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고정관념과 딱딱한 사고를 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안철수 연구소는 회사라기 보다는 정말 하나의 연구소 같은 공동체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사실 IT나 인터넷이 크게 활성화될 때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생겨났지만 지금은 얼마 남아 있지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다른 곳에 없는 특별한 비결이나 경영방식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정말이지 우리가 수많은 소프트웨어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그나마 한글프로그램이나 우리의 컴퓨터를 지키는 보안 프로그램이 외국이 아닌 우리나라에 만들어지고 또한 그 경쟁력이나 제품의 품질이 우수하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고 우리의 자존심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나라의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기업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그 비결에는 아마도 안철수 교수뿐만 아니라 연구소에서 함께 땀흘리고 동거동락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안철수 연구소가 존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요? 정말 벤처기업에서 부터 이제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기업이고 존경받는 기업이라는 것, 그리고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철학과 지키고 싶었던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꿈을 키울 수 있는 꿈의 공장. 이익보다는 사람을 더 가치있게 생각하고 인재를 키우는 연구소.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안된다고 했을 때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곳. 그 곳의 비밀이 이제 하나씩 하나씩 탐구해볼까요? 정말이지 열정이 살아 숨쉬는 그 곳의 희망 이야기를 통해서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빵과 장미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만남.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빵과 장미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 아니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최소한의 생존권도 보장받을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또한 잊으면 안되겠죠. 극심한 취업난에 청년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정말이지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해야 하고, 그렇다고 직장에 들어가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또 언제 퇴직을 하게 될지 몰라서 마음을 졸이고 살아야하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더구나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와서 아직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빵과 장미라는 이 말이 가슴에 와닿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공장이 아닌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노동자의 절박한 심정은 비단 이 책의 배경이 1910년대의 메사추세츠 주 로렌스 지방이라고는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겠죠. 초기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던 영국에서는 정말이지 빈부의 격차가 심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 빈민가를 형성하고 아무런 사회적 보장 제도가 없었기에 그야말로 무법천지나 마찬가지였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이야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국가에서 세금을 거두어 많은 지원을 해주고는 있지만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악한 작업환경과 임금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겠죠. 그들에게 빵과 장미는 어떤 사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살고자 하는 생존의 문제이기에 비록 그들이 파업이라는 옳지 못한 행동을 했지만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전후의 사정을 보고 소외된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회의 모습이 어떤지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의 아이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그들에게는 빵과 장미가 주어질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까요?
인류의 뿌리나 역사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우리의 뿌리를 찾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예전에 다큐에서 잃어버린 고리가 있다고 하던데,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우리는 원숭이에서 진화되어 온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쩌면 다른 진화를 거쳤을 수도 있겠죠. 지금까지 수많은 화석을 통해서 우리 인류을 거슬러 올라가는 나무를 그려볼 수 있는데 지금 현생인류와 다른 인류들이 발생하고 사라져간 흔적이 있더라구요. 그 중에서 아마도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처럼 동시대에 살았으면서도 한 쪽은 현생 인류의 시조가 되고 또 한 쪽은 사라져버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그동안 네안데르탈인이 크로마뇽인보다 지능이 떨어져서 그런 것 아닐까라고도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 네안데르탈인도 초기 문명이지만 도구를 이용하고 머리를 이용해서 생활했었던 것 같은데 왜 그들의 운명이 서로 달라졌는지 그 옛날의 일이기에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것이겠죠. 그래서인지 수많은 추측과 가설이 나오는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는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될 듯 하네요. 더 많은 연구를 통해서 진실에 접근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사라져버린 네안데르탈인처럼 영원히 우리가 풀지 못하는 숙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도 해요.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그들이 공존했던 3만년 전의 지구의 이야기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이야기가 전개되어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네안데르탈인의 마지막 생존자 아오. 그가 느꼈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과연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은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정말 그들 사이에 같은 인간이라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생겼을까요? 왜 그들은 사라져버렸던 걸까요? 이런 수많은 의문 속에서 소년 아오의 이야기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세요.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네요.
일단 처세라고 하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누구는 처세를 잘하고 누구는 처세를 잘 못하는 것을 보면 역시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아무래도 세상사라는게 나만 잘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보니 때로는 다른 사람 때문에 불이익을 받거나 위험에 처하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 때문에 이익이나 성공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인지 자기계발에 관한 책이나 처세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있는데 같은 방법이라도 상황에 따라 득이 되기도 하고 실이 되기도 해서 종잡을 수가 없는 것 또한 처세가 쉽지 않은 것 중에 하나의 이유인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역사를 통해서 유명한 위인들의 전기나 이야기를 통해서 어렴풋이 이해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사실 중국에서 열풍이라고 하는데 증국번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집어 보면서 참 파란만장한 삶을 잘 견뎌오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아마도 그런게 처세인 거겠죠. 청나라 시대에 가난한 집안에서 천하를 품은 그의 이야기는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그런 꿈을 이룬 것 아닐까요? 대부분의 유명한 위인들 중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다른 환경과 비범한 재능들이 있는 경우도 있고, 우리들이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해서 아마도 중국인들이 그만큼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증국번이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 어쩌면 그보다 더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노력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섰기 때문이겠죠.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가 성공한 배경에는 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즉 처세에 대해서 그만큼 능했기에 가능했던 성공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어떤 한 사람에게 존경 받는 것은 쉽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또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서도 서로 존경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처세가 아닐 수 없는 것 같아요. 이처럼 그의 처세에 관한 이야기를 18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역시나 처세는 쉽운 게 아니라는 것 새삼 느끼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표본으로 삼아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라든지 세상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지 지식이 아닌 살아있는 지혜를 조금이나 느낄 수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증국번의 경우 어떻게 보면 국가에 대해서는 충성하는 신하로서 올바른 처세이기는 하지만 가족에 관해서는 과연 올바른 처신을 한 가장이었는지는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천하를 담을 수 있는 기백과 너그러운 마음, 최고의 지략,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등. 주제 하나 하나가 마음 속에 와 닿는 것 같아요.
함께 어울려서 서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요? 과거에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수많은 갈등이 있고 또한 사회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내면의 상처도 많이 입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면 상처 하나씩은 있을 것 같아요. 어려서 부모님을 잃은 슬픔이나, 이별의 상처, 가난이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차별 등 말이죠. 이 책에서도 이런 저런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네요. 시대적인 배경은 1960년대라고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가지고 있는 아픔들은 어떻게 보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비가 온 뒤에 땅은 더 굳어진다고 하던가요? 어쩌면 온실에 핀 꽃들보다 야생에서 피어난 꽃이 더 향기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아요. 상처는 하나도 없지만 왠지 아무런 개성없이 똑같은 모습과 삶에 대한 어떤 고민도 없어 보이는 생기 없는 꽃들보다는 여기저기 찢긴 상처도 있지만 저마다 개성넘치고 삶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 매 순간 활기차게 자신의 삶을 극복해나가는 꽃들이 더 멋져보이잖아요. 그렇기에 아픔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 더 아름답게 보이고 더 멋져보이는 거겠죠. 백인과 흑인들간의 인종차별과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 그리고 사랑의 아픔 등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갈등과 내면의 아픔이 있지만 그것을 치유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들의 상처 또한 조금씩 치유되는 느낌 드는 것 같기도 해요. 삶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 우리들의 삶은 매 순간 느끼기에 비극처럼 슬프고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희극처럼 잘 견뎌내고 조금씩 조금씩 희망을 찾아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혼자서는 견딜 수 없지만 함께 한다면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되지 않을까요? 마치 벌들처럼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함께 모여서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이들도 어쩌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