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예술
이선아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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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만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 책


이 책은 예술을 설명하기보다, 예술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미술관이나 전시장을 벗어나, 우리가 일상에서 지나치는 공간 속에 놓인 작품들을 하나씩 불러내면서.


책에 등장하는 작업들은 특별한 장소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백화점 로비, 호텔 입구, 쇼핑몰, 광장, 건물의 천장처럼

일상적인 동선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그래서 더 자주 보지만, 동시에 더 쉽게 지나쳐온 작품들이다.


이 책은 그 익숙한 장면들 앞에서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왜 여기 있을까?

그리고 이어서 묻는다.

우리는 왜 그동안 이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이 책의 인상적인 점은 설명 방식이다.

작품을 쉽게 풀어주려 애쓰지 않으면서도 독자를 밀어내지 않는다.

의미를 단정하지 않고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이 놓인 맥락과 작가의 선택, 공간의 성격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생각이 따라붙는다.

이건 정말 예술일까?

예술이 아니라면, 우리는 왜 이 앞에서 멈추게 될까?


이 질문들은 책을 덮은 뒤에도 남는다.

정답을 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생각하게 된다.



예술을 보는 일보다 지나치는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이 남기는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작품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기존의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공간을 무심히 소비하기보다

한 번 더 바라보게 되고,

장식이라고 넘겼던 것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된다.


예술이 갑자기 특별해졌다기보다는,

예술과 일상 사이의 경계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느낌이다.



흔히 예술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을 쉽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말을 감상적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가까이에 있었는데, 우리는 왜 보지 않았을까?


이 질문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질문 덕분에,

익숙한 공간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은 예술을 좋아하든, 잘 모르든 상관없이

일상을 지나치는 자신의 시선을 한 번쯤 점검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잘 어울린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생각의 방향을 살짝 틀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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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지 않는 법 - 싸게 팔지 마! 힘들어도
최병철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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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흔히 말하는 자기계발서와는 많이 다르다.

무언가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지도 않고

당장 삶이 바뀔 것 같은 해결책을 주지도 않는다.


대신 짧은 문장들이 페이지마다 놓여 있다.

설명은 거의 없고, 주장도 길지 않다.

한 문장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멈추게 되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게 된다.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사실 낯설지 않다.

기대와 실망, 비교, 창조성, 침묵, 이기와 이타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걸 정리해주거나 해설하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았던 말을

그냥 툭 던져놓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읽다 보면 뭔가를 배우는 느낌보다는

나도 이렇게 생각한 적 있었지라는

확인에 가까운 감정이 든다.


문장은 대부분 짧다.

행간이 넓고 여백이 많다.

감정적으로 몰아붙이지도 않고

괜히 위로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런 문체 덕분에 책은 금방 읽히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넘길 수는 없다.

짧아서 가볍다기보다,

짧아서 생각이 멈추지 않는 문장들이다.


이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전혀 문제없다.

중간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된다.

이야기가 이어진다기보다

비슷한 생각들이 다른 각도로 반복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책이라기보다

필요할 때 꺼내보는 책에 가깝다.


이 책이 주는 위로는 조금 차갑다.

너는 특별해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대단하지 않아도 되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억지로 끌어올리는 위로가 아니라

힘을 빼게 만드는 위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갑자기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고 있었다는 사실은

조용히 깨닫게 된다.


바쁠 때는 잘 안 읽히고,

조금 지쳤을 때 더 잘 읽히는 책.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되는 게

오히려 장점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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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사랑 - 우리가 무뎌진 것에 대하여
고영호.신혜령 지음 / 북스고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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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사랑: 우리가 무뎌진 것에 대하여'는 사진가 고영호와 신혜령이 함께 쓴 에세이다. 제목만 보면 사랑에 대한 감성적인 이야기일 것 같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이 책은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차분하게 정리해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랑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그 주변에 머무는 시간과 감각을 오래 바라본다.


책의 중심에는 사진 촬영을 통해 만난 여러 커플의 이야기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만남을 특별하지 않았다, 평범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그 말에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며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 자체가 이미 충분히 특별하다는 시선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다만 그 특별함을 크게 강조하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장면들, 예를 들면 촬영 날의 날씨, 공기의 냄새, 어색한 표정이나 말 사이의 침묵 같은 것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보통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강렬한 순간이나 감정의 변화가 중심이 되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사랑'은 그런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비켜 간다. 대신 시간이 쌓이면서 생기는 안정감, 무뎌짐,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배려와 신뢰를 보여준다. 사랑이란 결국 큰 사건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문체 또한 이 책의 분위기를 잘 만들어 준다. 전반적으로 절제되어 있고,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사랑했다, 감동했다 같은 표현보다는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이 많다. 그래서 읽는 동안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오기보다는, 천천히 따라가며 생각하게 된다. 독자에게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대신, 각자의 경험을 떠올릴 여지를 남겨두는 느낌이다.


다만 이런 담백한 문체와 반복되는 구조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이야기가 크게 요동치지 않고 비슷한 톤으로 이어지다 보니, 자극적인 전개를 기대한다면 다소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다. 중반 이후에는 내용이 조금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이 책이 선택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빠르게 읽고 넘기는 책이 아니라 중간중간 멈추어 생각하며 읽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사랑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래 함께하는 관계에서 느끼는 익숙함과 무뎌짐, 때로는 지루함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함께 있기로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질문을 독자에게 조용히 던진다.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각자가 스스로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여백이 많은 에세이다.


사랑을 설명하려 하기보다는, 사랑이 유지되는 상태를 보여준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들, 관계에 대해 한 번쯤 차분하게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책이다.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꾸준히 곁에 남는 사랑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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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이수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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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의 '자연스럽다는 말'은 제목부터 곱씹게 만든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연스럽다는 말을 너무 자주, 너무 편하게 쓴다. 자연스러운 선택, 자연스러운 차이, 자연스러운 결과. 이 책은 바로 그 익숙한 표현이 얼마나 많은 판단과 가치관을 숨기고 있는지를 차분하게 드러낸다.


처음에는 과학 이야기가 중심일 거라 생각했다. 진화론, 생태계, 환경 문제 같은 주제가 나오지만 책이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한 과학 설명이 아니다. 자연을 설명하는 과학 개념들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오해되고, 왜곡되고, 때로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자연은 원래 질서를 세우지도, 우열을 나누지도 않는데, 인간이 자연의 이름을 빌려 그렇게 말해왔다는 점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읽으면서 가장 많이 멈춰 서게 된 부분은 비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숫자와 평균을 보면 객관적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이 책은 작은 평균값의 차이가 언어와 제도를 거치면서 얼마나 쉽게 본질적인 차이로 굳어지는지를 설명한다. 성별 차이, 능력의 차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낯설지 않으면서도 불편했다. 나 역시 그런 기준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는 걸 인정하게 됐기 때문이다.


책의 장점은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지만 일상적인 예시와 사회적 사례를 통해 설명해 주어서 과학 지식이 많지 않아도 따라갈 수 있다. 녹색혁명이나 인구 문제 같은 주제도 단순히 찬반을 나누지 않고, 왜 우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길들여졌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정보를 주입하기보다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쪽에 가깝다.


'자연스럽다는 말'을 읽고 나서 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기보다는 자연을 말하는 내 태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그동안 나는 자연이 원래 그렇다는 말로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고 너무 많은 판단을 쉽게 내려왔던 것 같다. 이 책은 자연이 우리 편도, 심판도 아니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말한다. 자연은 그냥 존재할 뿐이고 그 위에 의미를 씌우는 것은 인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감정적으로도 인상 깊은 책이었다. 자연이 우리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묘한 위로를 준다. 동시에 이제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느낌도 남긴다. 자연이 답을 주지 않는다면, 사회의 기준과 차별, 배제는 결국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고 나서도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조용하지만 힘이 있는 책이다. 크게 주장하지 않지만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믿어온 생각들에 균열을 낸다. 과학 교양서이면서 동시에 생각을 정리해 주는 책, 그리고 자연이라는 말을 다시는 예전처럼 쉽게 쓰지 못하게 만드는 책이다. 천천히 읽어도 좋고, 중간중간 멈춰 생각하며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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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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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들었던 생각은 이거 진짜 이야기 아니야? 였다. 귀신이 막 나타나고 사람이 죽는 장면이 나오는 전형적인 공포소설이 아니라 너무 현실적인 상황들 속에서 조금씩 이상한 방향으로 어긋나기 때문에 더 무섭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기분이 가라앉아 있고 괜히 주변 소리에 예민해진다.


이야기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경험담이나 인터뷰처럼 시작된다. 말투도 담담하고 설명도 많다. 심리 상태, 당시 상황, 주변 환경 같은 것들이 차근차근 정리되는데 그게 오히려 문제다. 설명이 많아질수록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 순간부터 이야기 속 인물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된다. 이 책은 놀래키기보다 같이 믿게 만든 다음에 불안하게 만든다.


거의 모든 사건이 결국 착각이나 우연으로 정리된다. 그런데 그 정리가 너무 깔끔해서 오히려 찜찜하다. 과로 때문에, 스트레스 때문에, 확증 편향 때문에, 혹은 통계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서. 이런 설명들은 우리가 평소에도 자주 쓰는 말들이라 더 무섭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귀신을 믿는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니라, 안 믿는 쪽이 더 위험한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슬쩍 든다.


공포의 방식도 독특하다. 소리 지르게 만드는 장면은 거의 없고 대신 전화기 너머의 숨소리, 아무도 없는 쪽을 가리키는 손짓, 반복해서 등장하는 특정 장소 같은 것들이 천천히 쌓인다. 읽을 땐 크게 무섭지 않은데 나중에 문득 떠오르면 소름이 돋는다. 이게 이 책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차갑고 건조한데 그게 또 잘 어울린다. 감정을 과하게 몰아가지 않아서 오히려 더 현실처럼 느껴진다. 표지와 사진도 불안한 느낌을 잘 살리고 있어서,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이미 분위기에 들어가게 된다.


무섭기만 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심리, 믿음, 해석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공포소설을 잘 안 읽는 사람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읽고 나서 마음이 편해지는 책은 아니다.

조용히, 오래 남는 불안을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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