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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심리학
이기동 지음 / 모티브 / 2026년 1월
평점 :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계기는 거창하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스팸 문자를 지우다가, 문득 요즘 사기 수법이 그렇게 교묘하다는데, 도대체 얼마나 심하길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이나 중고 거래 사기는 늘 뉴스에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무작정 겁주지 않는다. 대신 아주 익숙한 장면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고 물품 거래를 하다 계좌번호를 묻는 상황, 조건 좋은 알바 제안, SNS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 잠깐만 확인해 달라는 부탁. 문제는 이런 장면들이 하나같이 너무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읽다 보면 나도 해봤는데? 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든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책의 무서움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범죄의 심리학'이 말하는 범죄는 단번에 사람을 속이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천천히, 단계적으로 접근한다. 처음에는 의심할 이유가 없고, 다음에는 거절하기 애매해지며, 그다음에는 멈추기 어려운 지점에 도달한다. 이 과정을 실제 사례와 대화체 구성으로 보여주는데, 설명보다 재현에 가깝다. 그래서 범죄를 이해한다기보다, 그 흐름 속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생각 없이 행동한 사람이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판단하고, 의심하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리고 바로 그 합리화의 과정이 사기범들이 노리는 지점이라는 사실이 반복해서 드러난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그만두긴 애매하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설마 이게 사기겠어? 같은 생각들이 어떻게 위험한 선택으로 이어지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알바 사기나 전달책 사례에서는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이 책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나누는 대신, 그 사이에 존재하는 회색지대를 그대로 드러낸다.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범죄에 연루되어 협박을 받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이 과정은 도덕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두려움과 압박의 문제라는 점에서 더 섬뜩하다.
또 하나, 범죄를 개인의 부주의나 욕심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경제적 불안, 정보의 비대칭, 디지털 환경의 변화 같은 조건들이 어떻게 범죄를 더 쉽게 만들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사기범이 특별히 똑똑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 자체가 사기에 유리하게 바뀌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비관적인 메시지만 던지는 것은 아니다. 각 사례 뒤에 이어지는 예방 방법은 교과서적인 조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앞에서 본 사례 덕분에 가볍게 넘길 수가 없다.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 것, 망설임이 들면 이미 늦은 신호일 수 있다는 점, 돈보다 먼저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판단 같은 말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범죄의 심리학'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세상을 보는 태도다. 더 예민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덜 불안해졌다. 막연한 공포 대신, 어떤 순간에 멈춰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겁을 주는 대신, 판단력을 되돌려준다.
한 번 읽고 끝낼 책이라기보다는, 이런 방식이었지 하고 떠올릴 수 있는 기준점 같은 책이다. 설마 내가 당하겠냐는 생각이 들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