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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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이 기차의 요란한 굉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터널을 통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터널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그 자신도,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것이라는 대위의 말처럼 덤덤하게 그리고 묵묵히 주어진 오늘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는 거창한 계획이나 계산된 준비 없이 물 흘러가듯 몸을 맡겼다. 숱하게 자신의 상처와 열망을 헤집으며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그는, 절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탈출 아닌 탈출로 실행 된 한 차례의 절박한 자살시도 끝에 그가 얻은 것은 다음이라는 것은 약속이라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이었다. 헤어지며 다음을 약속해도, 그 다음 다시 만났을 때 그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좋아했던 미아를 만나지 못한 채로 전쟁터로 떠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이 시대의 청춘남녀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 일까.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 때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흘러간 것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지금 이 시간이 오늘이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무엇이 되자. 라고 단정 짓지 말고,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하니까 하고 싶은 건 그때로 미루자고 오늘을 희생하지도 말자.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먹은 한가지이다.

 

그가 절에 자신을 받아 달라 찾아갔을 때 스님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래 이 집에 있으면 얼마나 있을 라고 그러는고?

우리가 생에 머무는 것은 정해진 기간이 있을 수 없다. 소유한 집이 있다고, 직장이 있다고 우리네 삶이 붙박이처럼 한군데 박혀 있을 수는 없는 법. 요즘의 사회적 풍토가 부와 안정된 삶에 집중되어 있는 통에, 학생들은 자신의 젊음을 억누르고 학교와 학원에 24시간 갇혀 있다 시피하고, 직장인들은 회사에, 야근에 묶여 있어 꼭 먹기 위해 사는 것과 같은 형태가 되어 버렸다. 조금쯤 굶어도 아파도 괜찮을 텐데. 나는 너무도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로 무책임한 건 내가 원하는 것을 뒤로 숨기며 위선처럼 살아가는 것 일텐데. 우리는 너무나 강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주변사람들에게 일정기대치 이상은 보여줘야 한다. 내 욕심보다는 가족들을 더 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준이의 청춘을 함께 스쳐지나오면서 나도 준이처럼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따위의 생각은 치우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을지의 고민을 하는 대신 그 시간동안 하찮지만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이라도 하자. 걱정하는 만큼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니까.

 

작가의 말에서 황석영씨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유준을 바라본다면 그를 두고 학교를 때려치우고 방랑하며 부모님께 효도 하지 못하고 뚜렷한 직업 없이 빈둥거리는 날라리 같은 녀석. 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유준이 자신이 한 행동들에 대해 충분히 책임져 왔고, 적어도 원하지 않는 것에 억지로 끌려 다니며 빈껍데기처럼 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때 가서 몸으루 때우든지, 우리가 저지른 실수의 흔적들을 치우든지 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나는 각오를 하구 있어. 저 봐, 길거리에서 애들이 막 총에 맞아 죽구 그러는데, 어쨌든 우린 살아갈 거잖아. 하여튼 앞날은 잘 모르지만 제 뜻대루 할 수 있잖냐구.”

 

나는 이 소설이 단순히 사춘기의 방황을 미화시켜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관념에서 바라 볼 때 유준과 그의 친구들의 행동은 참으로 무모하고 치기어린 행동이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유준과 그의 친구들에게 실패와 낙오는 인생의 자양분이었고, 평생 별의별 수단을 다하며 더 출세하려고 몸부림치는 그런 줄에서 빠져나와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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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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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안도현씨가 ’감동’이라는 것을 선정 기준으로 한 시들을 골라 이메일로 한 통씩 배달해주는 것들을 모아 만든 시집입니다. 다양한 시인들의 시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안도현씨가 시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상이 실려 있어 한 번 더 시를 곱씹어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이런 시들도 있었구나. 하는 감탄과 가슴 한 구석에 와서 잔잔히 스며드는 아름다운 감동 때문에 시집을 다 읽고도 책장의 잘 보이는 곳에 이 책을 꽂아두었습니다.

 

제 1부 사랑말고는 다 고백했으니

 

백년 정거장

                                                          - 유홍준 -

 

백년 정거장에 앉아

기다린다 왜 기다리는지

모르고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잊어버렸으면서 기다린다 내가 일어나면

이 의자가 치워질까봐 이 의자가

치워지면 백년 정거장이

사라질까봐

 

- 내가 일어서면 사라질까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나, 그리고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버스들. 정거장은 애초에 정거장에 도착했다 떠나는 버스와의 만남과 헤어짐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떠날 버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버스가 머물다 떠날 목적으로 만들어질 정거장이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요. 언젠가 죽는 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열심히 살고, 영원대신 헤어짐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끝이 있는 것, 보이지 않는 것에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것은 그것이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가야 할 존재의 가치를 만들어주는 행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생에 무엇이 찾아올지도 모르면서 내일을 기다리고 그 다음 날을 또 기다리고 먼 미래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죠.

 

 

사람이 사람에게

                                                                            - 홍신선 -

 

외돌토리 나뉘인 갈대들이

언저리를 둘러쳐서

그걸

외면하고 막아주는 한가운데서

보았다,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인 걸.

 

이 시를 읽는 순간 박노해 시인의 사람만이 희망이다. 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이 시에서는 햇볕과 얼음이 일방적으로 녹이며 방어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마주 껴안고 녹아주는 즉 서로를 포용하고 감싸주는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갈대들이 둘러싸며 그 둘의 관계를 지켜주는 모습은 참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일 수 있는 것은 이들의 관계처럼 서로의 마음을 상처를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시였습니다.

 

 

제 2부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을 왜 짠가

                                                                                      -  함민복 -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 중략 >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자식에게 무엇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설렁탕이 짜다는 핑계로 등장한 소금을 생각해보면 눈물이 짠 이유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난한 형편에 어머니를 모시지도 못하고 다른 곳에 데려다 주어야 하는 주인공의 심정,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조금이라도 자식의 배를 부르게 해주고 싶은 어머니의 심정, 주인공의 눈물은 그러한 심정을 알기에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서러운 소리를 담아 짠 맛을 내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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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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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영화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가 한 글자, 한 글자 조합을 맞춰 의사소통을 하고 글을 써내려가는 모습은 놀람 그 자체였다. 15개월 동안 20만 번 이상의 깜박거림으로 완성한 책. 이 책이 바로 <잠수복과 나비>이다.

영화도 좋았지만 책으로 읽는 느낌은 또 달랐다. 좀 더 담담하고 그의 내면에 있던 의식이나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타인의 입장에서 그에게 닥친 사건은 그저 참 안됐군. 불쌍하군. 하는 식의 동정 혹은 위로였지만 그 자신이 스스로 느꼈던 고통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것이었으리라. 그는 자신의 자식을 앞에 두고도 안아주고 만질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 목이 메이기도 하고, 옛 연인과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슬프다고 울 수도, 화가 난다고 얼굴을 찌푸릴 수도 없다. 사람에게 육체의 자유 또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가 묘지 순례를 구경 갔을 때 조제핀에게 오히려 반대로 기적이 일어나 건강한 사람이 여기에 와서 갑자기 사지가 마비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거라고. 하고 말을 뱉었을 때 그 말이 본인에게 현실로 일어나게 될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것 같다. 나에게도 어느 순간 불시에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예전에 사고로 다쳤던 적이 있던 나로서는 앞으로 그때만큼의 나쁜 일만 생기지 않는다 해도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고라는 것은 얼마나 사람을 위축시키고 작게 만드는 것인지, 그것이 누구나 겪는 하찮은 사고라고 할지라도 사람에 따라 얼마나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는 것인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만약 그가 무기력하게 자신의 상처에 함몰되어 남은 생을 마감했더라면, 이 책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생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었기에 세상과 소통하는 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가 죽고 나서도 그의 영혼은 자신의 글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리라.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신할 수 있게 된다. 자신에게 도착하는 편지들을 읽으면서 자신과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진솔함에 놀라기도 하고 잠들기 전 울음을 터트린 아이의 이야기, 저녁 무렵 꺽은 장미꽃의 이야기 등 소소한 삶의 조각에 감동을 받고 소중히 간직하기도 한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이 평범한 일상, 거리를 걷고, 음식을 만들고, 세수를 하고, 친구와 다투고 하는 이 순간들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저 애초부터 주어졌던 것이었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가끔씩 이런 순간들을 즐기며 깨어 있어야겠다. 차를 마시고, 서점에 가고, 늦잠을 자고, 이런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느꼈으니 말이다.

그는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단지 아주 나쁜 번호를 뽑았을 뿐 나는 장애자가 아니다. 나는 단지 돌연변이일 뿐이다.”

 

그의 상황이 그를 힘들게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때로는 자책하고 원망하기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 속 한 편에는 이렇듯 긍정적이고 자신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장 도미니크 보비는 15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그 누구도 아닌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지킨 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복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없을까? 나의 자유를 되찾아 줄 만큼 막강한 화폐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그는 마침내 그곳으로 갔다. 자신의 나비를 찾으러. 답답한 잠수복 안에 갇혀 있던 그는 자신의 글을 완성하면서 번데기에서 완전히 탈피한 나비와 같이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얻었을 것이다. 이 책은 비단 실화와 진정성뿐만이 아니라 위트나 글의 기교에 있어서도 작품성에 있어서도 다른 작품과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혹여 실화에만 기댄 지루한 일기 정도로만 생각했던 분들이 있다면 그 편견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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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개미지옥 - 2007년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문학수첩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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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동안의 판타스틱 세일. 이 세일 기간 동안 백화점안에서는 어떤 판타스틱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소설은 청소부 아줌마가 한 여자를 화장실안에서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이어트를 하던 같은 판매사원이 쓰러진 것이 아닐까 해서 달려온 유경은 쇼핑백을 움켜잡고 쓰러져 있는 이 여자의 검은 매니큐어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자의 사인은 질식사. 첫 부분만 보면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같지만 실상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다보면 긴장감보다는 씁쓸함이 더 와 닿는다. 작가의 현미경같이 세밀하고 현실적인 묘사에 가슴이 뜨끔해지며 정말 이 사람들이 내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사건의 중심에 선 반짝이는 카디건

 

등장인물인 지영, 소연, 영선, 정민, 윤경, 미선, 현주 이 모든 여성들이 탐하면서 갖고 싶어 하던 물건이 바로 이 카디건이다. 매장에 내놓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버린 이 카디건. 이 카디건을 모두가 갖고 싶어 했던 것은 그 옷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탓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손에 넣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들 중에는 카디건을 손에 넣은 사람도 있고 넣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 반짝이는 스팽글이 달린 카디건 하나 때문에 검은 매니큐어를 칠한 여자의 소리 없는 비명이 일어날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환상에 대한 일그러진 집착

 

백화점은 속삭인다. 이건 특별한 거야. 이걸 가지면 너도 특별해질 수 있어.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있어. 그러나 이 속삭임은 오직 “돈”을 가진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건 오직 “돈”뿐이야. 백화점은 이러한 현실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깨우쳐 준다.

<백화점이 그리워졌다. 거기서는 언제나 정당한 서비스를 요구 할 수 있는데. 백화점에 가면 민주주의가 실감난다. 어디에 살든, 범죄자든 인간쓰레기든 물건 값을 지불 할 능력만 있으면 물건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 본문 속 현주의 말 ->

백화점은 그 사람이 나이가 적건 많건 생김새가 이상하건 예쁘건 간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물건 값을 지불 할 능력만 있으면 물건 앞에서 모두 평등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평등은 사막의 신기루와 같이 허망한 것이다. 물건을 사고 나면 곧 이 신기루는 사라져 버리고 남은 것은 카드 청구서와 가난한 지갑뿐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것을 알면서도 백화점이 뿌려대는 매력적인 환상의 가루에 도취되어 점점 그곳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돈이 없어 허덕이면서도 카드를 돌려막고 매춘을 하는 것은 채울 수 없는 정신적인 고독함, 텅 빈 마음에서 오는 외로움을 다른 누군가와 나눠 가질 수 없는 것에서 오는 집착인지도 모른다. 

<왜 발밑을 쳐다보지 않는지 모르겠다. 저러다 언제 쩍하고 바닥에 금이 갈지 모른다. 그때는 아무도 구해 줄 수가 없다. - p133>

이러한 인물들의 모습은 개미들이 곧 죽을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개미지옥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결핍에 시달리는 인물들

 

각 인물들은 모두 결핍에 시달린다.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대학이라는 더 나은 학력이었다면 이런 곳에 근무하지 않을 텐데. 하며 학력 콤플렉스에 빠진 미선, 오로지 돈과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 망가져 버린 영선, 예쁜 옷을 입겠다는 일념으로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지영, 명품화장품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정민. 자신의 직업에서 오는 열등감과 스트레스를 물건을 사며 느끼는 우월감으로 푸는 현주까지. 이 들은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꼭두각시처럼 허우적거리는 지금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그래도 세일은 계속된다.

 

소설에서 현주는 검은 매니큐어를 칠한 채 화장실 첫 번째 칸에서 지영은 다이어트로 인한 탈진상태로 쓰러져 화장실의 마지막 칸에서 발견된다. 백화점은 아직도 세일 중이었고 계절마다 이 세일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사실 백화점이라는 데가 좀 그렇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 주인공이다. 직원들은 물건을 파는 도구에 불과하다>

사실 물건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 물건이 사람들을 멸시하고 하찮게 보게 되었다. 뒤죽박죽 세상에 가치라는 것은 자본주의 논리만을 따라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물질만능주의시대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이게 바로 자본의 힘이라는 거야. 없는 놈들은 그저 큰 놈 밑에 붙어서 한 푼이라도 모을 생각을 해야 돼. 지깟 것들이 무슨 수로 백화점을 이긴다고 그래. p80>

소설 속 등장하는 노인의 말이다. 이 노인은 백화점에 세를 들어 장사를 한다. 매춘을 알선하고 상품권을 떼다 주면서 수납을 받아 챙기는 이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왜 일까. 농성하는 다른 상인들에게 물건을 팔아 이득을 보면서도 백화점편을 드는 이 노인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하여 살고 있는 완벽한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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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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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이거 도대체 웃어야 돼, 울어야 해? 정말 심각한 상황인데도,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비실비실 웃음이 나온다. 초반부에서 중반부까지는 조금 이야기가 무겁다 싶었는데 중반부 이후부터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결국 뻥 하고 웃음을 안겨주었다. 인간의 내면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내며 그 안의 허점을 푹 찌르는 블랙유머는 때로는 씁쓸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트리게도 했다.





“아 정말 최악이야.”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말을 뱉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게 된다면 진정한 ‘최악’의 상황이 무엇인지, 인간이 어떤 나락의 끝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최악으로 떨어지게 된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다.


‘가즈야’라는 청년은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 어머니는 다른 살림을 차리고 나서 혼자 정처없이 방황한다. 그러다 여자친구도 사귀게 되고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지만 20살 남짓한 나이에 그는 단순한 절도범에서 살인범이라는 나락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미도리’라는 은행 여직원은 직장상사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고 여동생이 자신이 일하는 은행에 은행 강도로 들이닥쳐 자발적으로 인질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또한 자신이 코너에 몰리자 사람을 죽일 뻔 한 일도 겪게 된다.


‘신지로’라는 중년의 성실한 가장은 하청업체라는 위치에서 경제적으로 항상 압박감을 받아왔지만 새 기계를 들여놓으면 인생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은행대출에 거절당하고 이웃과 싸움이 나고 가장으로써 시달리면서 끝내는 정신을 놓게 되는 순간에 까지 이르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연민의 감정을 느꼈던 인물이었다.





이들의 인생은 애초에 완벽히 계획된 것은 없었다. 예상된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특이한 악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한 두 명씩 있을 법한 아주 평범한 인물들이었다. 아 나에게도 저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든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 세 명의 인물이 한꺼번에 만나게 되었을 때 소설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가즈야와 그의 여자친구 메구미는 은행을 털고 인질을 데리고 차로 도주하지만, 그 인질은 메구미의 언니였고 은행에 대한 불만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가엾은 아저씨는 이들에게서 도무지 떨어져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얽히고 얽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세 사람의 만남은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소설은 아주 긍정적이지도 아주 부정적이지도 않은 상태로 끝이 나는데, 가즈야는 감옥으로 미도리는 새로운 직장으로 신지로는 이웃공장 밑으로 들어가며 모두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인생으로부터 끝없이 방황하고 도망 다니는 일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어찌되었든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살아남은 것이다. 상처는 오래 남겠지만, 결국 언젠가 최악의 상황은 결말이 나는 법이다. 인생에는 주기가 있다고 한다. 항상 운이 좋은 주기가 계속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위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힘든일을 겪어도 자신의 상황이 제일 ‘최악’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서로 비슷한 상황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고 가망이 없다며 세 사람이 각자 우기는 장면에서 사람의 인생은 거기서 거기인데 자기연민과 자괴감에 빠져 자신 스스로 최악이라는 구덩이를 더 깊게 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원하든 원치 않았든 자신의 숨겨진 본성과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았다. 적어도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으니 쫓기지 않아도 되고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마음에 더 큰 짐을 얹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람의 인생에 끝이 있는 것처럼 최악이라는 것도 언젠가 끝이 있기 마련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끝이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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