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금요 음주를 하지 않은 탓에 토요일 아침 6시 반경에 잠이 깼다.
휴일날이니 더 자볼까 싶어서 고양이 두마리와 뒹굴거리고 있는데
삼십분이 지나도 잠이 더 오질 않아 그냥 일어나 버렸다.
아침을 먹고, 잠시 티비를 보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시계를 보니 10시도 안되었다.
뭘할까...뭐하지...
책장에 읽던 한글세대가 본 논어를 꺼내들고 침대에 기대어 앉아서 조금 읽다보니
역시.....
졸.립.다.
그렇게 자려고 했는데도 안 오던 잠이
논어를 펼쳤는데 어디서 왔는지 확~덮쳐주신다.
책을 머리 맡에 놓고 다시 한잠....
배고파서 깼다. 남들은 자느라 밥도 안 먹는다는데
난 아무리 졸립고 피곤해도 밥은 꼭 먹어야 한다. 이래서 살이 찌는 거겠지만, 뭐 어쩔수 없다.
점심 먹고 다시 티비 좀 보고, 대청소는 내일 하자 싶어 , 우선 날리는 고양이 털과 모래들을
청소기로 간단히 치우고 더킹이 재방송하는지 보려고 티비를 틀어 놓았는데 결국은 어디선가 한것 같긴 한데
제대로 보지는 못하고 어영부영 저녁시간이 되버렸다.
밥을 거의 새모이 수준으로 드시는 울 엄마의 급작스런 외식요청에
부랴부랴 옷갈아 입고 현관문을 딱 나서는데
차도로 조그만 시츄한마리가 이리뛰고 저리뛰고 있는게 보였다.
엄마" 재 좀 잡아라!"
나"후다다다다다다다닥~ 아가 이루와 아줌마 나쁜 사람 아녀, 우쭈쭈~"
잡았다..........그런데 어떻하지?
딱 보니 집나온지 최소 일주일은 된것 같이 보인다. 빠싹 말랐고, 털은 엉망으로 엉켜있고 피부 전체에 각질이 있었다.
문득 얼마전 집을 찾아준 시츄와 닮았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그 집까지 녀석을 들고 뛰었다.
헐떡헐떡"아저씨 이녀석 아저씨네 개 맞아요?"
"아닌데요. 우리개 아니에요~"
"헉...우짜지...."
다시 집으로 냅따 뛰었다, 뭘 먹고 싶다는 이야긴 일년에 한두번 할까 말까한 엄마와의 외식을 미룰순 없어서
집 옆 슈퍼에 강쥐를 잠시 맡기면서 주인에게 혹시 키울수 없냐고 물었더니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엄마와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제발 그 집에서 키워 줬으면 좋겠다고 .
집 주변 길냥이 급식소에 못 보던 길냥이들이 등장했고,
길아가고양이는 이제 제법자란듯 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서빙보는 분이 저도 고냥이 키우는데요~ 라며 말을 붙인다.
갑자기 급 흥분한 나는 캣맘으로 살기 더럽게 눈치보이고 힘들지 않냐, 애들 사료를 뭘 주냐, 병원은 어디를 다니냐 하면서
정보 교환을 신나게 하다가 그 종업원 분이 전번까지 줬다. 쉬는날 고양이 보러오라구. ^^
여기까지가 나의 선명한 그날 아주 길~었던 토욜일의 기억이다.
소주 한병이 주량인 내가, 무려 한병반 이상을 마시고 완전 정신줄을 놓아버린것이다.
거기다 신용카드를 잘못 가져 오는 바람에 그 고깃집에 내 신분증을 맡기고, 엄마가 집에 가서 다른 카드를 가져다가 계산했다고 하는데 그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그렇게 술 취한 채로 강아지를 맡겨놓은 슈퍼로 가서 강아지 밥이 없는 관계로 고양이 사료를 한 그릇 떠다가 먹이고, 고양이 캔도 먹이고, 물도 먹이고....가게집 주인들에게 뭐라뭐라 떠들고.....그뒤론 깜깜.
일요일 아침 엄청난 숙취로 잠도 제대로 잘수가 없어서 새벽에 또 잠이 깼다.
강아지 생각이 나서 가게로 가보니 밤사이에 누가 달라그래서 줘 버.렸.다.고 가게주인남자어른의 말.
내 강아지는 아니지만 그 슈퍼집 강아지도 아니지만 그래도 가져간 사람이 누군지 정도는 알아 놔줬음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 슈퍼집을 탓할수도 없는 일이여서....쓰린 속이나 달래보려고 동원죽을 사다가 데워먹고
다....토해버렸다. 아침 8시쯤부터 시작된 구토는 결국 저녁 8시가 되서야 멈추었고, 9시가 되서야 간단히 그날의 첫 끼니를
먹을수 있었다. 나는 술꺠는데 딱 하루 24시간이 걸린다. 늘 그랬다.
정말 완전 맛없는 노란 위액을 뿜어대면서
그 강아지 생각을 했다.
괜히 봤다
괜히 잡았다.
못 봤으면 이렇게 속상하지 않을텐데.......
그날 저녁 길냥이 급식소 근처에서
날카로운 고양이 싸움소리가 난다. 영역다툼인듯 한데 소리가 굉장히 크다.
동네에서 또 뭐라 한소리 하겠네 라고 생각하며 기절하듯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역시나 급식소를 가리려고 덮어 두었던 우산과 비닐은 길거리에 내동댕이 쳐져있고
물그릇과 밥그릇은 아예 사라지고 없다.
이곳에 밥주지 말라는 경고. 단박에 알아 듣고 다른 곳을 물색하였으나
그곳만큼 좋은 장소가 없다. 건넌편 풀숲에 임시로 사료와 물을 두었는데
냥이들이 그곳을 찾지 못하고 그전에 밥이 있던 곳에서 자꾸 운다...
아..울지마라...제발 건너편좀 찾아다오!
아...우울해....
세상에서는 자학이 나쁘다고 하지만 아직도 나는 자학의 미덕에 대신하는 종교를 찾지 못하고 있소. 속되어 가는 나 자신에 대한 이나마의 변명이라도 없이는 어디 살겠소?
김수영 산문집-글씨의 나열이오 중 발췌
월요일 종일 급식소를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대청소를하고 빨래를 하고 밥을 먹고 티비를 보고 자기전에
김수영 산문집을 읽었다.
그런데, 왜? 저 구절을 읽으면서 대성통곡을 했을까?
나의 일과에 어떤 것이 자학이였을까...............?
여기저기 케이블을 틀어보다가 드디어 지난회 더킹을 보았다.
드라마 더킹을 보면서 전시작적통제권이나 통일문제에 대해
새삼스레 걱정스러워졌다.
데프곤3가 발령되면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고,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남북이 전쟁을 해야하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정말 세계에 하나뿐인 휴전국가구나 하고 새삼스레 긴장했다.
얼마전에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을 읽으면서
도대체 이 나라를 위한 외교, 정치가 존재하긴 할까 라는 생각도 들고,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서 부터 어떻게 뜯어 고쳐야 하는걸까.....왜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망가져서 힘이 없을까하고
엄청 속상했었는데, 더킹에 가끔씩 힘 없는 조국의 현실에 대한 대사가 나온다.
또 거기에 감정 이입되서 울컥!
김수영 산문집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미국이 닭모이값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무려 50여년전에 쓰인글이다.
그때와 지금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다는것, 50년의 세월동안 더 나빠졌다는것.
내가 바라는 내 나라는
최소한 우리 먹을꺼리는 우리가 알아서 할수 있는거,
우리 청년들이 명분없는 남의 나라 전쟁에 팔려가지 않아도 되는것
통일까지는 아니여도 평화협정이라도 우리 힘으로 만들어 낼수 있게 되는것
적어도 쫌 미국한테 그만 쫌 굽실거릴수 있게되는것.
엄청난 강대국을 바라는것은 아니다. 딱 진짜 조만큼이다.
드라마는 가끔씩 보이는 연출의 엉성함 때문인지 좋은 각본에 좋은 배우를 쓰고도
시청률은 그닥 좋았던것 같지는 않았지만 끝나니 아쉽다.
써놓고 보니 뭔가 길었던 연휴 같은데
지금 보니 그저 헛짓거리만 한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