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월차를 냈을때도 태풍 볼라벤이 왔었는데
이번 휴가엔 산바다. 하긴 뭐 날씨가 좋다고해서 딱히 어딜 갈 것도 아니였겠지만.....
휴가 첫날인 목요일은 숙취로 하루종일 누워서 보냈고
금요일에는 월미도를 다녀왔다. 인천에 살땐 도대체 월미도에 뭐 볼게 있다고 먼곳에서들 오나 싶었는데
먼곳에 사니 그 똥물 바다라도 간절해지더라.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기억속의 그 더러운 바닷물 보다
훨씬 물이 깨끗했다. 나만의 착각인가 싶었는데 내 뒤쪽에서도 "물이 깨끗해진거 같아"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니
나만의 생각은 아닌듯 싶다.
커피한잔 사서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가 산보다 바다를 더 좋아 하는 이유는 힘들이지 않아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괜찮다는거다. 하염없이 ......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요사이는 특히나 '늙음' 에 대해 공포스러운 두려움을 자주 느끼기 때문에
그곳에서도 역시 그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것 같다. 낚시대를 드리우고 바람을 피해 쪼그려 앉아 있는 아주머니와
단란해 보이는 가족들과, 중국인 여행객과 나처럼 홀로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또 다시 생각의 끝은 '늙음'이였으니까.
토요일에는 안국동에서 열린 조그만 길고양이 사진전에 다녀왔다. 생각보다 사진이 너무 없어서 못내 아쉬웠지만
안내해주신 작가분의 친절함때문에-한개까지만 맛있었던 에그타르트를 주셨다- 기분좋게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전철을 타기 위해 인사동을 지나오다가 어느 대학교 풍물패의 길거리공연을 보게 되었다. 학교때 북과 장구는 배웠지만 꽹과리까지는 배우지 못했다. 2년을 더 다녔을면 아마도 대 배울수 있었겠지만 어찌됐건 나는 북이 제일 좋았다. 과방이 있던 건물 옥상에서 소주를 병나발 불면서 홀로 둥둥둥~북을 치고 있자면 가끔 맞은편 건물 어느방에서인가 징징징~하고 누군가가 전기기타로 대꾸를 해주곤 했었는데...답답할때 북이 찢어질듯 손바닥이 터져버릴듯 정신없이 북을 두드리고 나면 속이 후련했었다.
일요일에는 친구들과 피에타를 관람하고 왔다. 영화 중간에 뛰쳐나간 커플이 있었고 아마도 평상시처럼 혼자 영화를 봤다면
나도 바로 그장면에서 같이 뛰쳐나갔을 것 이다. 영화가 끝난뒤 우리 셋은 모두 심하게 하품을 했고 피곤함을 느꼈고 한 친구는 결국 영화보기 직전에 먹었던 수제 소세지버거가 체해서 소화제를 사먹어야 했다. 꼭 이런식이여야 예술영화인건가 싶었다.
예술을 이해하기에 내 비위는 너무 약하다. 오아시스를 보고나서 느낀것 같은 더럽게 찝찝하고 짜증나는 관람기.
월요일 오늘도 역시 아침 6시에 눈이 자연스럽게 떠졌다. 어제 술도 마셨는데 휴간데.....왜 난 늦잠을 잘수가 없는걸까!
푹~ 익힌라면으로 해장을 하고 책상에 앉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중권을 읽기 시작했다. 등장인물의 여러 애칭에 적응을 하고 나니 읽기가 훨씬 수월해 졌지만 그래도 가끔씩 요상한 번역때문에 툭툭 막히기도 한다. 그래도 늦었지만 그리고 또 엄청 길지만-나는 순발력은 있는 편이지만 끈기라고는 전혀 없는 인간이다. 체력장에서 운동장 네바퀴를 뛰는 오래달리기를 한번도 완주한적이 없다. 대부분 세바퀴만 뛰었다. 그래도 아무도 몰랐다. 네바퀴를 다뛴 녀석들과 같이 들어갔으니까- 즐겁다.
점심을 먹고 티비를 틀었는데 평일 오후시간의 티비는 정말이지 볼게 없었다. 그러다 스스륵 나도 모르게 잠들었고 깨어나보니 저녁시간이다. 이렇게 나의 휴가는 벌써 5일이나 지나가버렸다.
일하는 5일은 너무나 길고 쉬는 5일은 별일없어도 손살같이 지나간다.
그래도 뭐 아직 이틀이나 남았다. 이틀.......
금요일 전철로 월미도를 갈떄는 이승우 소설집, 토요일 안국동에 갈때는 최인훈의 광장을 읽었는데, 이승우 소설집은 왕복 5시간 만에 다 읽었지만 최인훈의 광장은 생각보다 읽기가 어려웠다. '미상불' '무라지''마스트''어질머리'등등 모르는 단어들이 자꾸만 나오고, 글의 흐름에도 집중이 안되서 결국 덮었다. 읽다 덮은 책이 올해는 유난히 많다. 흠....
이렇게 휴가중 5일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