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탓인지, 번역체 문장에 익숙치가 않은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만큼 좋은책이다!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서술방식이 뭔가 좀 정신없달까....
(다들 대단한 책이라고 칭찬들만 가득한데 나같은 사람이 뭐라뭐라하는것도 쫌...킁)
이부분이 이책의 가장 중요한 논점이라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보스니아 밖에 있던 사람들이 저 끔찍한 이미지들을 보고서도 신경을 끄게 된 이유는 보스니아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도 않으며, 자국의 지도자들이 이 전쟁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전쟁, 혹은 그 어떤 전쟁일지라도 도저히 멈풀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사람들은 그 전쟁이 가져온 참사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지는 법이다. 따라서 정작 문제는
이렇다, 이제 막 샘솟은 이런 감정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알게 된 지식으로 무엇을 살 수 있는가? 만약
'우리'(그런데 '우리'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그들'(그들은 또
누구인가?) 이 할 수 있는 일도 전혀 없다고 느낀다면, 사람들은 금방 지루해하고 냉소적이 되면,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게
다가 뭔가 행동을 하는 것이 꼭 더 나은 것도 아니다. 감상적인 감정이 무자비함이나 그보다 더 나쁜 것을 즐기는 취향과 완벽히
양립할 수도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그드르이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뿐이니. p153-4
'논점이 분산되어 있으니 정리해가면서 읽으라'는 빨간책방 이혜원 기자의 멘트가 아니였으면,
내가 또 낚였나 생각하고 책읽기를 멈추었을지도 모르겠다.
보관함에서 여러해동안 보관만 되어있던 책을 읽게 된 데에는 이동진과 이다혜의
수잔 손택의 책은 쉬워요, 어렵지 않아요 라는 멘트 때문이었는데 초반에 읽어가기가 쉽지 않아서
난 역시 안되나 하고 포기할뻔 했다.
책에 대한 해석들은 역시 이다혜보다는 이동진쪽이, 나는 훨씬 마음에 든다.
숲도 보고 나무도 볼줄아는 그의 독서력에 매번 감탄 또 감탄.
수잔 손택은 서문을 따로 발간하지 않는다는데 한국어판에는 특별히 서문이 있다.
이 서문에 수잔 손택이 이 책에서 하려고 했던 질문과 답이 모두 담겨 있는것 같다.
<
타인의 고통>은 사진 이미지를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전쟁을 다룬 책입니다. 제게 있어서 이 책은 스펙터클이 아닌 실제의 세계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논증입니다. 저는 이 책의 도움을 받아서 사람들이 이미지의 용도와 의미뿐만 아니라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그리고 양심의 명령까지 훨씬 더 진실하게 생각해볼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한국의 독자에게 중>-
나에게는 이미지로만 보이는 타인의 실재하는 고통.
나는 여기서 안전하고, 너는 거기서 고통스럽지만,
나는 여기서 할수 있는 일이 없고, 너의 고통을 나는 안타까워 하지만
너의 고통의 원인에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것.
첨부된 여러 장의 사진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바로 이사진이다.

가능한 사람을 살려둔 채로 며칠에 걸쳐 살갗이나 살점을 도려내는 형벌. 능지.
저 사람의 표정을 클로즈업 한 사진이 바로 밑에 있는데, 얼굴만 본다면 고문당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
마치 황홀경에라도 빠진듯이 두 눈을 치켜뜨고 입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조차 할수 없다.
저런 일을 하는 사람들, 저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특별히 악한 사람들이 아닐것이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인간은 이렇게까지 할수 있는 것일까?
질문에 답이 되어줄만한 책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보관함으로...
내 다리 사이를 잡고 있는 커다란 손과 희미하게 번득이는 두 눈이 무서웠다. 글렌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괜찮을 거라고, 나를 사랑한다고, 우리는 모두 행복해질 거라고, 행복이라고. 글렌의 단단한 손과 툭 튀어나온 손목뼈가 안으로 파고들며 나를 아프게했다. 나는 자동차 앞 유리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너무 무서워서 울 수도, 떨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너무 겁이 나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 캐롤라이나의 사생아 중>
글렌은 의붓아빠 나는 꼬꼬마..........
이런 부분은 그냥 스치듯 읽어 가려고 해도 손이 발발 떨린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읽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 책은 책 전체가 심장이 발발 떨리게 하는 바람에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계속 읽다가는 심장마비라도 올것 같아서..
빨책의 다음 책이 내가 읽다가 도저히 읽을수가 없어서 포기한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이란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방송을 듣는것 조차 망설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