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먹고
미용실 가는길.
매운돈까스우동.

지난번에 금요일에 주문한책이
다음주 월요일에 왔었다.
이번에도 왠지 그럴 낌새가....

**택배 기사님 미워요 (-_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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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07-25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쌀국수, 맛있는 볶음면이 아니라 물만 부어먹는 일회용, 한 그릇하고 지금 커피 한 잔, 키햐~~ 하고 있어요.
아무개님 사진 보니 내가 점심을 거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도 돈까스 좋아했던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ㅋㅎㅎ

아무개 2015-07-25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부르고 속쓰리고 ^^;;;;;

반바지 사러 갔었는데
살...쪄.....쓰....요
(ToT)

단발머리 2015-07-25 16:26   좋아요 0 | URL
미용실에, 반바지에, 지금 우리 만나려고 멋내시는 거예요? ㅋㅎㅎㅎㅎ

후애(厚愛) 2015-07-2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운돈까스우동은 한번도 못 먹어 봤는데 사진을 보니 군침이 마구 돌고 너무너무 맛 있어 보입니다!!!!^^
입맛없을때 먹으면 입맛이 살아날 것 같은 음식~
편안한 주말 되세요.*^^*

2015-07-25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요일 새벽5시.
눈뜨자마자 꺼내들고
다시 읽는 「정희진 처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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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7-25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빗소리에 밤새 잠못들다가 새벽 5시무렵 잠이 들었습니다.
암튼 님을 응원합니다~^^

아무개 2015-07-25 15:55   좋아요 0 | URL
응원 감사해요^^

단발머리 2015-07-25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다섯시에 이런 글이라면 다시 잠들기 어렵겠는데요.
공부하는 아무개님, 내가 많~~~~~~~이 응원해요.

저도 응원해 주세요. 저도.... 힘들어요.... 아흐..

아무개 2015-07-25 15:56   좋아요 1 | URL
그러게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공부`를 한다고
이 고생인지요...

그래도 우리 뚜벅뚜벅
한걸음 한걸음씩
웃으면서 같이 걸어요^^
 

님이 물으시니 ...
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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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7-24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리스트 나랑 안겹친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개 2015-07-24 15:24   좋아요 0 | URL
뭐 제가 그렇죠.... (づ_ど)

단발머리 2015-07-24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우리 뇌다] 완전 땡기는데요. 자매편 [나는 내 뇌다]??? ㅋㅎㅎ
 

오늘날의 사회에서 남성성은 어쩔 수 없이 권력과 정통성과 특권의 관념을 불러일으킨다. 남성성은 흔히 국가의 권력과 불균등한 부의 분배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남성성은 바깥으로는 가부장제로, 안으로는 가족으로 확대되는 것처럼 보인다. 남성성은 상속의 권리, 여성 매매의 결과, 사회적 특권의 약속 등을 표상한다, 그렇지만 분명히 다른 많은 동일시의 경계선이 남성성의 영역을 가로지르면서 그 권력을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 젠더, 등의 복잡한 차이로 분할한다. 안약 우리가 말하는 '지배적인 남성성'이 남자라는 사실과 권력의 자연화된 관계처럼 보인다면, 이런 남성성의 사회적 구성의 윤곽을 그리려고 남자들을 검토하는 일은 별로 의미가 없다. 이 책에서 내가 주장하는 것처럼, 남성성은 백인 남성 중간 계습늬 육체를 남기는 경우에만 명료한 남성성이 된다. 지나친 남성성에 관한 주장은 흑인의 육체(남성과 여성), 라틴계의 육체(남성과 여성),노동 계급의 육체에 처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으면, 불충분한 남성성은 대게 아시아계의 육체나 상층 계급의 육체로 형상화 된다. 가변적인 남성성을 이렇게 정형화된 방식으로 구성하는 것이야 말로 남성성이 백인 중간 계급 남성의 영역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특징짓는다. p26

 

 

 

 

 

 

 

 

 

 

 

 

 

 

 

 

 

 

『페니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를 읽을 때와 거의 비슷하다(결국 읽기를 포기했던.....)

어렵다 아 진짜 어렵다. 50페이지 정도 읽는데 일주일 걸렸는데,

다시 들춰보니 아하하하하하하하 그 50페이지가 전부다 새롭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ㅠ..ㅠ

그나마 알아 먹은 문장 발췌하고 ....다시...도전!

 

 

일전에 D님과 "우리가 학교때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하버드를 갔을껍니다."라고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먹지도 못하는 책을 끼고 앉아 이렇게 끙끙거리게 될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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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7-24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덕끄덕) 그러니까 공부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되는 것 같아요. 그쵸?
화이팅!!

(저는 불량학생답게 요즘 공부에 손놓고 있는중 -_-)

아무개 2015-07-24 15:27   좋아요 0 | URL
무한 끄덕끄덕~

불량학생이 아니라
낭만학생이겠쥬~~~♥♥♥
 

결국, 잡혀온 적들을 신사적으로 대하라는 케케묵은 규범 외에 내가 편드는 게 뭐란 말인가? 결국, 혼란스럽고 치욕스러운 눈길을 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새로운 형태의 타락상을 제외하면, 내가 반대하는 게 뭐란 말인가?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이 우스꽝스러운 야만인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라며 내가 군중들과 감히 맞설 수 있을까? 정의라는 말을 한 번 입 밖에 내면, 그 끝이 어디일 것인가? 아니야, 라고 소리치는 게 더 쉽다. 맞아 죽어 순교자가 되는게 더 쉽다. 야만인들을 위해 정의를 달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단두대에 머리를 대는 것이 더 쉽다. 그런 주장은 결국, 우리가 무기를 내려놓고 우리에게 땅을 강탈당한 사람들에게 성곽 문을 개방하라는 말밖에 더 되는가? 치안판사직을 역임했던 사람에게도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회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을 수호하던 덕목 높은 옛 치안판사에게도, 국가의 적이 되어 폭행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옛 치안판사인 나에게도 나름대로 회의의 실타래가 없는 건아니다. p184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치안판사도 자기고백적인 내러티브를 통해 그 내러티브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야만인들'을 억압하고 식민화하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연루외어 있다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내비친다. 야만인들의 편을 들어줌으로써 제국주의자인 죨 대령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되는 치안판사는 명명백백하게 정의를 표방하는 자로서, 야만인들에게 행해지는 제국주의적 폭력과는 담을 쌓고 있는 정의로운 진보주의자이다. 즉, 그는 제국주의자들의 '기다림'을 허구적인 것으로 인식할 줄 아는 지식인이자 진보주의자인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말을 잘 들어보면, 그 자신도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암암리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죨대령이 촉력적인 수단으로 제국을 유지하려는 보수적·우파적 제국주의자라면, 온정적인 수단으로 제국을 영속화하려는 진보적 제국주의자이다. 이는 제국의 유지를 위해 봉사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그들이 서로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쿳시가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이부분이다. 아니, 그의 소설은 거의 모두가 이러한 쪽에 각별한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섣불리 피식민주의자를 대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끼어들 수 있는 허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자기고백적인 치안판사의 문제는 따라서 남아프리카 백인작가인 쿳시의 것이다. 치안판사의 내러티브에 드러나는 공모성은 식민주의자의 후손이자 반체제 작가인 쿳시의 것이다. p272-3

 

쿳시의 소설에서도 기다리던 만인들은 제국주의자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어부들과 유목민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들은 죨 대령과 같은 제국주의자들이 생각하고 기다리는, 밤에 출현하여 부녀자들은 강간하고 아이들을 죽이며 집에 불을 지르는 야만인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상'은 '미친'것일지 몰라도 '전염성이 강하다'따라서 카바피의 시에서처럼, 그러한 야만인들은 쿳시의 소설에서도 존재하지는 않지만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존재해야만 하는 일종의 해결책이다. p271

                                                                                                                       <옮긴이의 말중 발췌>

 

 

 

존재하지도 않는 '야만인'을 기다리며 공포정치를 펴는 군대.

존재하지도 않는 '여성상'을 만들어 억압하는 남성권력자들.

타자화란 이런것이구나...

 

언제부터인가 소설등의 리뷰를 쓰는것이 점점더 여려워진다.

핵심 내용과 그에 맞는 옮긴이의 해설을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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