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는 성적 위계화에 따른 성적 억압을 일차적으로 문제시하기 때문에 여성의 성적 억압의 문제도 여성을 성적 소수자의 범주에 포함시켜 해결하고자 한다. 즉 성적인 억압이 해결되면 여성으로서 겪는 여성의 성적 억압도 자연히 해결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성별의 관점에서와 같은 페미니즘의 성연구를 비판하고 성적 소수자들과 함꼐 연대하여 여성의 성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구성론적 시각에서 주장하는 섹슈얼리티의 관점은 페미니즘 성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이전의 고정화되고 이분화된 성별로 성을 연구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여성 억압과 성적 억압을 중층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는 지금까지 성별에 치중하여 여성들간의 공통성을 강조해왔던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성연구와 충돌한다. 또한 이전의 사회 이론들이 그러했듯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변수를 강조하지 않고 성 중립적으로 나아갈 경우 결국 남성들만의 이해를 관철시킨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게일 러빈은 성별(gender)가 섹슈얼리티(sexuality)를 구분하되 이 둘을 상호 연관지어 분석할 것을 주장한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성별과 섹슈얼리티가 경험적 차원에서는 결함되어 나타날 수 있지만 개념적 차원에서는 성별과 섹슈얼리티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을 어느 하나로 환원하거나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의 부자적인 범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는 여성의 성적 억압을 여성이라는 범주로만 분석해서도 안 되고 동시에 섹슈얼리티의 하위 변수로 여성을 포함시키거나 여성이라는 범주를 완전히 포기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아직도 남성 우월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에서는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통합된 관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p25-26  < 섹슈얼리티 강의>

 

발췌한 몇몇부분을 제외하고는 담론들이 너무 예전것들이라 대부분 스킵해서 읽었는데, 목차를 보니 한숨이 나기도 한다.

지금껏 크게 달라진것이 없고 어쩌면 점점 더 퇴보하고 있는건 아닌가 싶어졌기 때문이다.

 

요며칠 트위터 보기가 힘들다.

페미니즘이 모두를 위한 인권운동처럼 물타기가 되면서 여혐하는 게이집단에게 여혐 하지 말라고 하면 퀴어 포빅이 되고,

내 자궁은 내것, 임신 중단권을 요구하면 자궁없는 여성으로 정체화 한 트렌스 젠더 배제한다고 트렌스 포빅이 된다. 또는 자궁없는 남성페미니스트를 배제하는 구호라는 헛소리를 지껄이는데, 나는 단호하게 말할수 있다. 남성페미니스트는 존재할수 없다. 단지 연대자 또는 지지자 정도만 가능하다. 내자궁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에서는 한템포 쉬면되는것이다.

여기서 중요한건 이런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일명 쓰까페미니스트들이다. 위의 글에서도 언급하듯이(무려 18년전 책에서 걱정하던 일이 각종 최신 담론들이 경쟁하는 트의터에서 발생중이다) 어떠한 정체성을 가졌든, 성별 그러니까 생물학적으로 자신이 여자, 남자. 또는 간성 무성인 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을 수술하지 않은 MTF로 정체화 한 사람은 본인은 스스로를 여자로 정체화 할순 있지만, 다른 여성들이 그를 여성화장실에 그리고 여성목욕탕에서 마주쳤을때 그의 수술하지 않은 성기를 보았을때 당연히 받아들일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트젠혐오라고 여성을 몰아세운다. 그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한다.

 얼마전 윤김지영 선생도 북토크에서 말했듯이, 연대는 같은 목적아래서는 언제든지 가능하다.

자신이 헤테로 여성 페미니스트라면, 비건 페미니스트와 함께 여성을 권리를 위히 함께 싸울수 있다. 하지만 동물권 문제에서 두 집단간에 마찰은 생길수 밖에 없다. 만약 나는 동물실험에 그런데로 찬성하지만 비건 페미니스트가 반대한다면 다른 입장에서 다르게 투쟁하면 되는것이다. 페미니즘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노트북에 문제가 있는지 알라딘 상품 첨부, 이미지 첨부 다 안된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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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책읽는 방법을 공부하지 못했다. 늘 상황에 따라 닥치는데로 책을 읽어왔는데, 계획없이 읽다보니 책읽는 깊이가 영 신통치않다.
네꼬 님의 「어린이책 읽는 법」은 나처럼 무계획적으로 좌충우돌하며 책읽고 있는 어른에게도 좋은 도구를 벼르는 법을 알려준다.

어른이나 아이나 독서의 시작점과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읽는 ‘즐거움‘이다.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가장 많이 읽고
새로운 분야와 깊게 고민 해야 하는 책도
어렵지만 포기하지 말자.

네꼬 님의 서재글도 그러했지만,
매책장마다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담뿍느껴져서
읽는 내내 눈길과 손길 그리고 마음길까지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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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7-04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려 주신 부분 정말 좋네요.
맞아요.
어린이와 어른이 책 읽는 방법이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죠. 재미있게 읽고, 다르게 생각해보고, 감동 받고 그런거요.
미루지 말고, 얼른 구매해야겠어요.
네꼬님은 아이디도 이뻐요. 네꼬님^^

아무개 2017-07-07 10:36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어린이도 하나의 독자니까요. 물론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 역시 대부분의 어른도 마찬가지 일테구요.
꼭 읽어보셔유 너무 좋아요^^

네꼬 2017-07-07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댓글에 좋아요 제가 눌렀습니다💙하하하) 아무개님 감사합니다. 사실 쑥스러워서 좋아요만 누르고 도망가려고 했는데 고양이 사진!! 저 책에 고양이님이!!!! 큰 절 올립니다-🙇

아무개 2017-07-07 10:38   좋아요 0 | URL
공부가 부족해서 이 좋은 책에 좋은 리뷰를 못남겼어요. 대신 고양이 사진으로 ㅎㅎㅎ
 

정체성.
내가 누구인가는 나만의 결정은 아니다.

나와 남을 구분짓는 경계선도
오롯이 나만의 선택도 아니다.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수 있다는
것은 내가 선택할수 없이 주어진 것들이
이미 권력이라는 것이다.

나와 너의 경계를 확고히 할수 있는 사람도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여성,동양인,이민자.
주인공이 선택할수 있는 정체성은 없다.
세상과 경계를 두고 살았지만
그 경계 안으로 들어가기를 소망했다.

세계와 나 사이에 확실한 경계선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강력한 정체성을 갖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세계에 그리고 타인에게 내가 갈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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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 - 만남부터 이별까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
이원영 지음, 봉현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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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양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심장이 오그라 들것 같은 순간에도 이아이들을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해줄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에 눌려버리곤 한다. 함께 늙어가고 있는 우리들.
내가 할수 있는 선을 정해야한다.
그래야 모두 덜 불행해질것이다.

특히 반려동물과 이미 함께인 사람이들에게
함께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볼수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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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6-2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이들 너무 이뻐요~~ 꽃도 예쁘구요~
함께 늙어가고 있는 우리들...에 맘이 딱...
얼음되네요.
날이 많이 덥네요...
아무개님, 오늘도 좋은 하루되시길요..^^

아무개 2017-06-23 09:33   좋아요 0 | URL
오랫만이에요. 단발님^^ 요새 회사가 많이 바빠서 책도 거의 못읽고 그러네요.
오전에 잠깐 회사가 정전된 틈을 타서 몆자 남겼네요.
무더위 잘 견뎌내시고
조금 시원해지면 맛난거 먹으러 가요!

단발머리 2017-06-23 09:36   좋아요 0 | URL
아무렴. 그럼요^^
언제든 콜입니다!!! ㅎㅎㅎ

로자 2017-06-23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른쪽 아이가 몽실인가요?(제발 제 기억이 맞기를;;;)
작약이랑 잘 어울리는 품위있는 아이들이네요. 아침에 북풀에 아무개님이 올려주신 것 보고 처음 안 책인데요.
저도 보고 싶네요.
사람이랑 다른 이 아이들의 빠른 시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날들이네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아무개 2017-06-23 12:24   좋아요 0 | URL
네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철학 전공하다 키우는 강아지때문에 전공까지 바꾸고 수의사를 하는 분이라 글이 철학적이기도 하고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해요.

나이듦 자체가 나쁜것은 아니지만 좋은 나이듦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듯 해요.
 

 이 책의 목적은 여성주의를 설득하고 설명하고 주장하는 것, 즉 '여성주의 의식화'가 아니다. 여성주의를 이해한다는 것이 곧 여성주의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이 책은 인간의 사회화 그리고 인식 과정에서, 젠더와 여성주의의 '중대한 역할'을 강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젠더와 여성주의 의 개념과 가치는 사회적 문맥에 따라 달라진다. 페미니즘은 성별(남성성/여성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성별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성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 어떠한 사회 문제도 젠더나 계급, 나이 등 한 가지 모순으로 작동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젠더를 해결하려면 젠더를 가시화하는 동시에 젠더를 넘어서야 한다. 젠더를 조금이라도 해체하고 무력화해야 한다. 환경 문제가 지구의 '책임'이 아니듯, 여성 문제(젠더, 인간을 성별로 구분하는 제도)도 역시 여성의 '책임'이 아니다. 이성애에 기반을 둔 가부장제 사회가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했고, 그 구별의 권력이 성차별을 가능케 했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근원적으로  그 구별(젠더)에 반대하지만, 그 구별이 만들어낸 효과(차별)로서 젠더가 작동하는 현실을 문제 삼는다. 한편으로는 젠더가 본질적인 구별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젠더로 인한 구분이 얼마나 문제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주장은 언제나 '차이가 차별이 된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만들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차이와 차별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p14-15

 

 

수십개의 포스트 잇을 붙였지만, 정리는 두단락만,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너무 큰 중격을 받았었는지 그때만큼 심장이 쿵쾅거리는 글은 없다. 물론 30개 이상 포스트 잇을 덕지덕지 붙일정도로 너무나 좋은 글과 사유들이 많다. 다만 첫경험이 너무 쎈던것 같다.

 

 몇 년 전 지하철 노약자석에 '인권은 배려입니다' 글귀가 적힌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익 광고가 붙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나름 문제의식을 느끼고 위원회와 인권 단체에 이 문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배려가 뭐가 나쁘냐."

 모든 인간은 법 앞에, 신 앞에 평등하지만, 우리가 매일 경험하듯 현실에서도 그런 것은 아니다. 평등은 지향이고,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인권은 배려가 아니라 갈등하고 경합하는 가치다. 그런데'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주장은 이 희미한 평등 개념조차 우아하게 배반한다. 누가 누구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일까? 돈 없는 사람이 돈 있는 사람을 배려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구조적 가해자(강자)가 피해자(약자)를 배려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노약자석의 경우 장애인, 임산부, 노인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그들의 권리다. 당연한 권리를 상대방이 선심을 베푼다고 주장하며 고마워할 것을 요구한다면 불쾌감을 넘어 억울한 일이다. 배려나 관용은 '잘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베푸는 선의가 아니다 배려는 동등한 적대자(適對者 혹은 敵對者)와 자기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윤리다. p284-285

 

 며칠전 SNS에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임산부에게 자리 양보하라고 일으켜 세운 남자노인의 이야기가 여성들의 공분을 샀다. 누군가는 조작이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이런 경우를 실제로 격어 봤기 때문에 충분히 일어날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다. 지금과는 달리 아마도 4~5년 전 쯤에는 노인들이 지하철을 타면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리양보를 했었다. 언제라고 확실히 말할순 없지만(가스통할배와 엄마부대등장 후가 아닐까 짐작만 한다) 젊은이들이 더이상 스스로 자리양보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 역시도 심각하게 불편해 보이는 분들이 아니고서야 대체로 자리양보를 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수년전 그날은 내가 무척이나 피곤해서 헤드벵잉까지 하면서 기절상태로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내 가슴과 쇄골뼈 사이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서 나를 깨웠다.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보니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손가락직을 했다. 1호선에는 이런 노인들이 꽤 많다. 정강이를 채인적도 있고, 내 무릎위의 가방을 끌어 내린적도 있다. 아마도 장거리 이동자가 많아서 일테지만 일반석에 앉은 젊은 여성들에게만 이러한 강제적 자리양보가 요구된다. 정말로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한다면 어째서 젊고 건장한 남성에게는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 것일까? 

 노인, 장애인, 어린아이와 임산부는 노약자석에 앉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지하철 노약자석의 임산부 표식에 누군가가 크게 X표시를 하고 다닌다는 뉴스를 보았다. 당연한 권리마저 이렇게 박탈당한다.

 

애 많이 낳게 하려고 여성학력을 고의로 낯추야 한다는 연구원의 보고서, 전국 가임기 여성지도 이딴짓 하지말고

애 낳고 살고 싶은 국가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를 좀 써라 머리를.

대통령도 페미니즘 하겠다고 하지 않나!  하긴 여기저기 싸놓은 똥 치우려면 이건 또 '나중에'가 되려나.

그러나 그대들이 그렇게 지키고 싶은 국가를 유지하려면 국가의 구성요소인 국민이 필요하다.

국민 재생산에 대한 책임과 의무만을 여성에게 지우고 '권리'는 박탈해 버리는 나라에서

여성에게 애를 낳고 기르는건 큰 결심이거나 큰 사고일 것이다.

 

 

 그나저나 정희진 님 지난주 북토크때 연단에서 발을 헛디셔 떨어지시는 바람에 엄청 걱정했는데, 큰 이상이 없으신지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까지 함께 해주시기는 했는데 진짜 괜찮으신건지 모르겠다. 이분에게는 가혹한 일일지 모르겠으나, 100세 정도까지는 꾸준히 글을 써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할머니 페미니스트 학자의 글을 할머니가 되어서 읽고 싶다. 지금처럼 대중서도 좋지만, 지금보다 조금더 전문적인 책들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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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7-06-01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급하게 쓰다보니 페미니즘의 도전이 두개 들어가버렸네 ㅡ‥ㅡ

2017-06-01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7-06-01 17:27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네요.
낯선시선 페이퍼랍니다 여러분!
단발머리님 저 돈까스 먹으러 가는 길이에요. ㅎㅎ

단발머리 2017-06-01 17:28   좋아요 1 | URL
저는 베트남 쌀국수요~~ ㅎㅎ
우리 맛나게 먹어요~~~

단발머리 2017-06-01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요즘 나오는 대중서들이 읽기에는 좋은데 지금보다 더 전문적인 책들도 읽고는 싶어요. 그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ㅎㅎ

아무개 2017-06-01 17:34   좋아요 0 | URL
저도요. 욕심은 나는데
실력이. . ㅡ‥ㅡ
쌀국수는 해장용 ㅎㅎ
맛나게 드셔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