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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알리미 등록을 해둔 저자는 딱 둘뿐이다.
양자오와 정희진.
양자오의 책은 이래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쉽다.
어려운 고전을 이렇게 까지 쉽게 풀어 쓸수 있다는 것은,
저자가 그만큼 그 고전에 대해 자기것으로 온전히 습득한 후
책을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발간된 <논어를 읽다> 역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까칠하고, 명쾌하고, 섹시한 책에
별점 테러를 하겠다.
별점 한개!
☆☆☆☆★
짧다. 너무 짧다. ㅜ..ㅜ
책장이 넘어 가는것이 아까워서
한숨이 날 정도로 짧다.
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음식이 줄어드는 것에 화가 나는것처럼 말이다.
물론 논어라는 텍스트의 해석을 주로 한다기 보다는
이 책의 부제와 같이
'공자와 그의 말을 공부하는 법'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라는걸 알면서도
아쉬움은 어쩔수가 없다.
결론:지금 공자를 읽는 의미
「선진」편을 중심으로 일부 다른 편의 내용을 곁들여 『논어』를 골라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읽기를 통해 어떤 가치를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논어』를 추상적인 이치로 받아들여 암송하기보다는『논어』 를 통해 춘추 시대의 특수한 상황, 공자라는 훌륭한 인물 그리고 그가 시대의 격변 앞에서 내놓은 갖가지 주장과 함께, 그 주장들에 통합된 근본 신념들을 살피는 편이 낫다는 사실입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논어』를 읽을 때마다 어김없이 흥분과 놀라움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공자 같은 인물과 그런 개성이 존재할 수 있었는지, 또 그는 어떻게 그런 안목으로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고 지혜가 가득한 언어를 토해 낼 수 있었는지 경탄을 금치 못할 겁니다. 공자는 우리보다 강력하고 지혜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강력함과 지혜에 감화되어야지, 단지 그의 생각과 말을 흉내 내어 우리 시대에 대응하고 우리의 현실 문제를 처리하려고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먼저 이 고전들은 오늘날의 우리를 우해 쓰인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태어난 시대에 우리와 매우 다른 삶을 살았던 옛사람들이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자만심을 버리고, 잠들어 있는 보편된 인성을 일깨우며 다른 삶의 조건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남긴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서야 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현실적 고려에 의해 역사를 단편적으로 취하는 태도를 버리고, 역사를 관통하는 인류 보편의 조건과 역사와 보편 사이의 접점을 발견하며, 인간의 본성과 감정에 대한 더 넓고 깊은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p17-18
공자는 주공을 우상으로 삼고 주공이 건립한 예악禮樂의 질서로 돌아가기를 꿈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말로 그 꿈이 실현되어 주나라 초기의 봉건 체계로 돌아갔다면 거기에 공자같은 인물이 설 자리는 없었을 겁니다. 역사적으로 공자는 대단히 모순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행한 일들은 실질적으로 주나라의 봉건 문화를 망가뜨리고 훼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동경한 것은 옛 봉건 체제, 다시 말해 그 자신과 같은 '스승'이 있을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공자가 생전에 크게 유명해진 첫 번째 원인은 많은 제자에게 획기적으로 귀족 교육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원인은 이보다 더 중요한데, 바로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 진정으로 '쓸모가 있어서'춘추 시대라는 시국의 수요에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자는 어쩌면 최초의 뛰어난 인력 자원 전문가였습니다. 당시 인력 자원의 수요를 꿰뚫어 보고 과감히 틀에서 벗어나 적절한 인력 자원을 제공할 방법을 찾았던 겁니다. p44-45
다음은 「선진」편의 넷째 장입니다.
"회는 나를 돕는 사람이 아니니, 내 말에 기뻐하지 않는 바가 없다."
(...)그는 진심으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하는 교학상장 敎學相長을 중요하게 생각한 인물이었습니다. 『논어』를 보면 수많은 제자의 '질문'이 실려 있고 그중에서 어떤 질문은 제자가 잘 이해가지 않는 부분을 반복해서 캐물어 더 완전하고 자세한 답을 요구합니다. 이런 질문에 답하다 보면 스승의 설명도 더 완전해지고 자제해지기 마련입니다. 아울러 또 다른 종류의 질문은 스승의 말과 행동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특히 자로는 걸핏하면 스승에게 대들 듯이 묻곤 했습니다. "말씀이 왜 그렇게 진부합니까?","처신이 원칙에 어긋나는것 아닙니까?"라고 말이지요, 이런 질문은 공자로 하여금 자신의 언행이 일치하는지 혹은 앞뒤가 맞는지 돌아보게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사람이야말로 공자가 생각한 '나를 돕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p64-65
공자가 생각하기에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마땅히 봉건 질서를 회복해야 했고, 또한 봉건 질서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인륜의 관계의 각 주체들이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애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식 된 자는 '효'에, 신하 된 자는 '충'에 힘쓰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공자는 결코 자식과 신하에게만 편파적으로 역할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동시에 아비된 자도, 군왕인 자도 각기 아비답고 군왕다워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어디까지나 관계는 상대적이므로 행위에 대한 요구도 필연적으로 상대적이어야 했습니다. p79
공자는 언제나 배운 다음의 일을 걱정했습니다. 도덕 원칙을 깨달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식을 갖춘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규범을 납득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을 점검하고 이해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상 많은 사람이 거기게 머무를 뿐 '그다음'이 없습니다. 특히나 스승은 더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단지 가르칠 목적으로 그때그때 지식을 흡수하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눈에는 당연히 학문이 깊어 보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사람이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그 배운 것들은 그의 삶에 점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p141
몇해전 읽다가 덮어둔 논어. 다시 열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한자를 모르니 아무래도 제대로 공부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또 다시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양자오 선생의 책.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