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입만 열면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높다는 걱정을 해댄다. 그러면서도 우리 땅에 내려오는 햇빛과 , 우리 땅과 바다에서 부는 바람을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자연조건이 풍력발전을 하기에 불리하다고 선전한다. 태양광발전도 마찬가지다....그러나 태양광발전량에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독일에 가보면 거의 매일 비가 온다. 공식 통계를 보아도 독일이 한국보다 국토면적당 태양광이 30~40퍼센트 정도 더 적은 것으로 되어 있다. – 87쪽


태양광발전으로 핵발전소를 대체하려면 전국토를 판넬로 덮어야 한다고해서 그런줄 알았고,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서 풍력발전이 안된다고해서 그런줄 믿었는데! 또 속았네!



이렇게 식품에서의 기준치가 바뀐 것이 일본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은 식품에서의 세슘 기준치를 500Bq/kg으로 높였는데 이렇게 기준치가 높은 동안에는 이 기준치 이하로 오염된 식품은 유통을 허용하였고, 그 이상 오염된 식품의 유통은 금지하였다. 그러다가 약 1년 후 기준치를 100Bq/kg으로 낮추었는데, 이렇게 기준치를 낮춘 이후로는 100Bq/kg 이상으로 세슘에 오염된 식품의 유통 및 출하가 금지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음식에서의 기준치는 식품의 유통 및 출하는 허가하는 기준으로 사용됨을 알수 있다. 이렇게 방사능 기준치는 안전기준치가 아니라 관리 기준치 인것이다.

기준치의 또다른 측면을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는 세슘과 요오드에 대한 기준치만 설정되어 있다. 약 200가지에 달하는 다른 방사능 물질에 대한 기준치는 없다. 또한 일본은 물에서의 세슘 기준치를 10Bq/kg으로 정해두었지만 우리나라는 물에 대한기준치는 음식 기준치와 동일하게 100Bq/kg이다. 이렇게 기준치는 나라마다 제각가이고 10배이상 차이가 난다(....)"기준치 이라하서 안전하다."는 한국정부의 말은 마치 기준치가 의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 안전 기준치인 듯한 인상을 풍기는데, 과연 이 기준치가 안전 기준치일까? 그렇지 않다(...)기준치가 높을수록 정부가 보상해야 할 금액은 적어지고 . 기준치가 낮을수록 정부가 보상해야 할 금액이 커지기 때문인것이다.  p127-128


국민의 생명과는 전혀 상관없이 만들어진 '기준치'를 ' 의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 안전 기준치'로  믿었네! 또 속았네!


전기 수요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들도 많이 필요하지만, 가장 먼저 전기요금부터 현실화시켜야한다. 사실 낮은 전기요금은 국민들에게 혜택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낮은 요금 때문에 한전의 적자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 적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채워야 하기 때문에 , 결국 국민이 쓴 전기에 대한 대가는 국민이 치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생산가 미만으로 전기를 판매하는 것은 전기를 많이 쓰는 대기업에게 큰 이익을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원가 이하의 전기를 많이 쓰고, 부족한 부분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보충한다면, 결국 대기업의 전기요금을 전 국민이 대신 내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전기를 많이 쓸수록 기업에게 이익이 되는 현재의 전기요금 체계는 전기의 수요관리뿐 아니라'경제정의'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p230-231쪽


사용하지 않는 전기 코드 다 뽑고 전등 다섯개 달린 조명에서 달랑 한개만 쓰고 아끼고 아껴가면서

사용한 전기였는데, 내가 대기업 전기요금 대신 내주고 있는건 몰랐네! 또 속았네!



이렇게 계속 우리가 속을수 밖에 없는건

지금 당장 내게 닥친 위험한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당장에 돈벌 직장이 없고, 또는 그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고

배라도 타고 어디 놀러갔다 그대로 죽을지도 모르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판에

수십년 수백년 후를 걱정할 여유따위는 없으니까....

내일도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담보로 정부가 펼치는 "자본주의 쇼"에 또 홀딱 속아 넘어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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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5-1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속은 기분, 참 큰일이예요.
이렇게 정부와 사회에 속았다는 기분이 커질수록 믿을 곳은 내 자신과 가족과 지인 밖에 없다는 생각이 커질 것이고
그러면 세상은 더욱 각박해질테니까요... 요즘 너무 걱정스러워요. ㅠㅠ

아무개 2014-05-16 09:0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나는, 내 가족만은 내가 지킨다!
이렇게 사회구성원들이 각자 분열되버리는 겁니다.
그게 가진자들이 원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지난 주말 취중에 종로 알라딘 중고샵에 들렸다가 구매한 책.















쉽게 털어놓지 못하기에 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한 '불감증'은 알고 보니 대부분의 여성이 겪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랬다면 왜 많은 여성들이 성적 즐거움을 읽어버렸는가? <아주 작은 차이>는 '여성들의 성적 쾌감은 질을 통해서 온다'는 남자들의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적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섹스에 대해 '남자가 자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나 구멍'이라는 절망과 외로움에 시달리고, 심지어 거짓 연기를 하거나 불감증에 이를 뿐이란 것이다.-한겨레신문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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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5-08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니얼 버그너'의 <욕망하는 여자>를 보면 클리토리스 선언문에 대해 나옵니다. 여성들의 성적 쾌감은 질을 통해서 온다는 남자들의 고정관념'을 반박하는 글이랄까요. 아래와 같습니다.

1970년에 이르면서 페미니스트 작가인 수전 라이든Susan Lydon이 클리토리스 선언문을 발표했다. 라이든은 "남성은 언제나 여성의 성취향을 가능한 한 남성 편의적으로 정의한다. 여성의 쾌락이 질을 통해 획득된다면, 여성들은 전적으로 발기한 남성의 페니스에만 의존한다는 의미이고‥‥‥, 남성의 쾌락 추구에 동참해야만 여성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질로 성욕의 표준을 삼는 정의는 달리 말하면 성적,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으로 여성을 종속시키려는 것과 같다." 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클리토리스에 대한 타당한 극찬과 더불어 "여성은 머지않아 자신의 해방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고 자신만의 성취향을 뚜렷이 밝히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2014-05-08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이 모든 과학적 사실을 들이대지 않아도 우리 마음속 한쪽에는 뭔가 끔찍하게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지 모른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자양분이 지금 고통에서 나오고 있다. 누군가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촬영한 필름을 보여 주겠다고 한다면, 그것이 공포 영화이리라는 것을 다들 안다. 아마도 우리가 인청하고 싶은 것 이상으로 더 잘 알면서 기억 속 어두운 곳에 억눌러 놓고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장식 축산 고기를 먹을 때 문자 그대로 고문당한 살을 먹고 사는 것이다. 점차 그 고문당한 살이 우리 살이 되어 가고 있다.  p.186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고기를 먹지 말아야할 이유는 너무나 많은데,

꼭 고기를 먹어야할 이유는 별로 없다.

 

작게는 내 건강을 위해서 과도한 공장식 축산 고기(항생제 범벅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생산된 고기)의 섭취가 나쁘다는것.

크게는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식량의 불평등한 분배

그리고 가장 크게 그 동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게다가 나처럼 동물을 사랑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육식은 자제해야만 한다.

 

 

 

 

먹어야할 이유는

맛인가?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고기를 즐겨 먹게 되었나 하고 생각해보니

대학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던거 같다.

지금도 술을 마시면 꼭 고기 안주가 있어야 하고,

고기를 먹게 되면 반드시 술을 마신다.

나같은 경우는 그러니까 결국 술을 끊어야 고기도 끊을수 있다는 결론.

 

두번째 변명은

고기값보다 채소 값이 비싼 것들도 많고(궁색하군.....)

고기 없이 식단을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번거롭다.

한마디로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건

생각보다 많은 불편함이 따르지만.

채소를 먹지 않는 다는건 그리 불편할 일이 없다.

 

먹지 말아야할 이유는 이성적인 판단의 결과.

먹어야할 이유는 그저 습관의 결과.

 

 

 

 

 

 

 

 

 

 

 

 

 

 

이렇게 책을 읽어도.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아도,

왜 나는 변하지 않는걸까?

매일 매일 도축장 동영상이라도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구역질을 참아가며 보기라도 해야하는건가.

하아...의지박약자.

 

지난주 지인들과 만나,

대낮부터 탕수육에 소주, 저녁엔 그나마 두부김치를 시켰는데

김치볶음에도 고.기. 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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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4-05-05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채와 술은 궁합이 별로인가요? 두부김치만 생각하면 괜찮아 보이고요. 샐러드랑 소주는 영 아닌가요? 맥주는 괜찮을 것도 같은데...^^ㅎㅎㅎ

아무개 2014-05-07 09:30   좋아요 0 | URL
샐러드와 소주는 말만 들어도 속이 쓰린거 같은데요.^^:::
맥주를 마실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후애(厚愛) 2014-05-08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는 얼큰한 찌게랑 맞아요~ ㅋㅋ
전 가끔씩 소주를 마시면 무조건 찌게를 찾아요.^^

아무개 2014-05-09 08:03   좋아요 0 | URL
저도 참치김치찌게랑 한잔 하는거 아주 좋아해요 ㅎㅎ

종이달 2021-10-13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삶' 내지 '생명'이라는 단어는 한국사회 갈등 현장의 복판에 있었다.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여기 사람이 있다.','생명평화행진' 등등, 저항의 슬로건으로 '살아야 한다', 내지 '살려야 한다.'는 말이 이렇게 많이 나온때가 또 있을까 싶다.

이는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각종 추방 때문일 것이다. 직장이나 학교, 농토, 주거지역 등에서 쫒겨나거나 사실상 밀려나도록 방치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들의 생존 자체가 위기에 빠진 탓이다. 그러나 조금 멀리 보자면 이제는 생명의 영역, 삶의 영역이 그만큼 권력의 중요한 통제 대상이자 자본의 중요 상품 형식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삶의 아주 기본적인 요소, 생명 유지에 필요한 요소들이 권력의 정보 수집 대상이 되고, 자본의 판매 상품으로 바뀌고 있어서, 권력과 자본에 의해 억압되거나 방치되면 도무지 살 길이 없어진다. (중략)

희망이 덧없다는 것, 이는 절망한 이들의 말이 아니라 결코 절망할 수 없는 이들의 말이다. 자신이 사막에 있다는 사실에 압도된 사람들일수록 오아이스에 대한 희망을 빨리 만들어낸다. 그래서 얼마 가지 않고서도 수십 번의 오아시스를 보지만 모두가 신기루다. 희망이란 이상한 것이다. 그것은 미래에 대해 품는 것이지만, 미래로 갈수록 덧없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실질적인 것이 된다. 희망을 내일에 거느니 오늘에 걸고, 희망을 거기에 거느니 여기에 걸겠다. 희망은 지금 사막을 뚜벅뚜벅 걷는 내 다리에 있다. 이글을 쓰던 날, 나는 대한문 농성촌의 한 의지에 누군가 적어 놓은 희망을 보았다.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p10-11




몇장 읽지도 않았는데, 벌서 눈알이 아프도록 뻑뻑하다.

삶, 생존. 그리고 희망.

이런 단어들이 요 며칠사이 종일토록 티비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일까.


이런 엄청난 재앙-그것이 인재이든 자연재해이든- 앞에서

나는 또 믿지도 않는 신을 죽인다.
























선량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대체 악은 왜 창조한 겁니까? 수도사들은 자기 안에 있는 사악함을 무너뜨리고 유혹에 저항하며, 고통과 슬픔과 불행을 하나님이 정화를 위해 내리는 시련으로 받아들이면, 결국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했죠. 그건 마치 심부름을 보내면서 길을 험난하게 만들기 위해 복잡한 미로를 만들고 해자를 두르고 마지막으로는 벽을 만드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닙니까? 그 사람은 미로를 힘겹게 통과하고 헤엄을 펴서 해자를 건너고 벽을 허물어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아무리 현명하다 해도 상식이 없는 하느님은 믿을 수 없어요. 그보다는 이 세상을 창조하진 않았지만 악행을 발견하면 최선을 다해 바로잡는, 인간보다 훨씬 더 선량하고 현명하고 위대한 신을 믿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죠. 자신이 창조하지도 않은 악을 없애려고 안간힘을 쓰는 신, 그리하여 결국 악을 완전히 정복해 줄 수도 있는 신이라면 믿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반대로 그런 신이 아니라면 대체 왜 믿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죠. -서머셋 몸<면도날> 중에서-


나는 모르겠다, 수백명이 아이들이 공포속에서 수장되어야 하는 이유를...


"목사님의 신-그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


-김은국<순교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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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4-23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아직 글을 못쓰겠어요. ㅠㅠ

단발머리 2014-04-28 08:35   좋아요 0 | URL
T.T ... ...

단발머리 2014-04-28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숨만 나오는 아침이 계속되네요.
세상엔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아무개 2014-04-28 10:40   좋아요 0 | URL
답을 할 수 없는 질문들도 그렇지만,
제가 인식할수 없는 어떤 큰 힘이 있어서
이런 일들이 벌어 지는거라면,
그저 이렇게 당하기만 해야하는건지...
 














<세상물정의 사회학>, <혼자산다는 것에 대하여> 를 너무나 쉽고 재미있게 읽었고

게다다 쥬니어 클래식이라 가볍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아놔....쥬니어 클래식이라는데

쉽지 않다. 과연 우리나라 학생들이 이정도 책을 읽을 수준이 될까...뭐 각설하고..


책의 주제는 제목에 이미 선명하게 나와있다.

노동의 이유를 묻다!


왜 일을 하는지 노동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답은 대부분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압도적일 것이다.

본인이 너무나 좋아하는 일인데 게다가 잘하기까지해서

돈까지 벌수 있는 직업을 가진 지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문화예술이 발달할수 있었던 것은

'시민'즉 '자유인'들은 노동을 하지 않았기때문이다.

노동은 노예들이 해야하는 천박한 일일 뿐이며,

자유인은 절대로 노동을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남아 도는 시간에 형이상학이니 이데아니 공화정이 민주주의니 어쩌구 저쩌구들을

떠들어 댈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중세에 종교개혁과 함께 프로테스탄트들이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자

그 천박한 노동은 돌연 신성한 신의 의무가 되었다.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 거나' '가난이 부랑배처럼 들이닥치고 빈곤이 거지처럼 달려든다'라며

노동에서의 근면과 성실을 신의 소명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불안한 현세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약속 '구원'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인간을 구원해줄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신-돈-이 약속하는 다른 모습의 달콤한 약속 '소비'이다.

과거에는 생산하기 위해 일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소비하기위해 일을 한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배우자 등등을 소비하기 위해서 말이다.


영화 쇼퍼홀릭에 나오는 레베카의 말이란다.


" 난 사은 포인트 모으기를 정말 좋아한다. 포인트 적립 제도는 정말 놀라운 발명이다. 아무렴! 많이 쓰면 진짜 좋은 사은품을 받는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정말 검소했다. 사은 포인트를 모아서 할머니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 드렸으니까. 그때 사실 나는 1653포인트를 이미 적립해 둔 상태였고 전기 헤어 세팅기를 받으려면 18000포인트가 더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엄청나게 큰 병에 담긴 삼사라 향수를 내가 쓰려는 목적으로 하나 사서 포인트를 추가로 적립해 세팅기를 샀다.(...)그런데 문제는 내가 삼사라 향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런데도 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걸 깨닫지 못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게 뭐 대수랴." p.217



보관함에 담겨있던 <침묵의 봄>은 오늘만 반값이라지,

<지슬>은 오늘 사면 적립금 2000원 준다지...

그래서 오만원에 금액을 맞추느라(오만원 이상 이면 적립금 2000원이라.......)

오전 내내 이것넣었다 저것 뺐다 하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위의 구절을 읽고나니 하하하하하

뭐야 쇼퍼홀릭 레베카랑 내가 뭐가 다른거야?

바로 얼마전 구매한 <마의 산>은 아직 책 뚜껑도 못 열어 봤고,

선물 받은 책들도 그대로 있고, 읽을 책들은 쌓여 있는데

지금 당장 꼭 읽고 싶은것도 아닌데 그놈의 적립금과 반값이란 말에 홀랑 넘어간 내가

과연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는건지...


명품백같은 비싼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 것만이 합리적으로 건전한 소비를 하는것은 아닌것 같다.

이렇게 책이라는, 어찌보면 더 허영 가득한 물건을 쌓아두고 바라만 보는게

오히려 더 '나쁜'소비를 하는게 아닐런지. 

그렇게 나쁜 소비를 하려고 나쁜 노동으로 인생을 나쁘게 버리고 있는건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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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4-15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책이라는 허영만 가득한 물건을 쌓아두고 바라만 보는게 나쁜 소비라는 저는 울트라슈퍼메가톤급 나쁜년이에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4-04-16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어제 밤에도 제발 산 책은 읽고 사라는 어떤 사람의 말에 제가 그랬거든요.
"그래도, 일단 책은 사야된다.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가, 힘을 내서 계속 소설을 쓴다.
내가 좋아하는 강준만 교수님이 계속 책을 쓸수 있다."

합리적 소비가 아닌것만은 확실하지만, 정말, 나도 나쁜 사람일까요? ㅋ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