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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 제국 쇠망사 - 권력 쟁탈로 몰락한 번영의 시대
자오이 지음, 이지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현 중국 공산당 지도자 시진핑은 자신의 독재체제를 구축하면서 ‘도광양회’(韬光养晦,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덩샤오핑 시기 중국의 외교방침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벗어나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과 무역전쟁에 나서는 등 국력 신장을 목표로 과거 ‘중화주의’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비단 지도자 시진핑만이 아니다. 정치, 군사, 문화 모든 분야에서 중국 제일주의는 주변국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음은 물론, 미국과도 날 선 긴장관계를 끊임없이 양산하면서 오히려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도 받을 정도지만 마윈 등 기업인들도 중화주의가 뼛속까지 새겨진 DNA의 소유자들 답게 경제패권에 앞장서고 있다.
중국의 기세는 무섭다. 미국의 견제로 난항을 겪는다지만 ‘대국굴기’(大國倔起)나 ‘일대일로’[一帶一路 , One belt, One road : 중국 주도의 ‘신(新) 실크로드 전략 구상’으로,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경제벨트를 지칭한다. 지난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제안으로 2014년부터 오는 2049년까지 35년 간 고대 동서양의 교통로였던 실크로드를 다시 구축해, 중국과 주변국가간 경제․무역 합작을 확대한다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현재 약 100여 개 국가 및 국제기구가 참여하여 내륙 3개, 해상 2개 등 총 5개의 노선으로 추진되고 있다.] 등을 외치며 분주하게 국가의 정체성을 고대 중국의 영광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일련의 모습은 과거 고대시기 세계화에 가장 근접했던 통일왕조 ‘당’제국을 연상케 한다. ‘대당성세(大唐盛世)’라고 표현할 정도로 중국 역사에서 당나라가 가진 화려함과 융성한 국력은 현대의 중국이 원하는 롤모델이다.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남녀차별 없이 하나의 커다란 용광로 같은 국제사회를 구성하고 모든 가치관을 유교의 큰 틀 아래서 포용했단 당(唐) 제국... 시진핑과 중국이 꿈꾸는 지향점에는 과거 모델로서 아마 당제국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자기계발서 위주의 출판성향을 보여온 위즈덤 하우스에서 두 권의 흥미로운 역사책이 출간되었다. <대당제국쇠망사>와 <대송제국쇠망사>가 바로 그것이다.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시기에 당과 송 두 통일왕조의 역사는 아무래도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개인적으로 당 2대 황제 이세민(태종, 당제국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상 황제중 최고의 반열에 오른 평판을 얻고 있지만 정작 고구려 침공시 안시성 패배로 인해 자신의 업적에 흠이 가기도 했다.)을 최고로 꼽는지라 둘째 딸의 이름도 ‘세민’이라 지을 정도로 당태종의 팬(물론 고구려를 침략한 과오(過誤)에 대해서는 제외다)인 내게 당의 역사, 특히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 이후 쇠퇴기로 접어든 현종 이후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아 관심이 많았다.
<대당제국쇠망사>는 ‘안사의 난’을 진압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제국의 기력을 소진하여 더 이상 황제의 권한이 강력하지 못했던 덕종부터 후량을 창업한 주전충에 의해 살해당한 마지막 황제 소종까지 어떻게 당 제국이 멸망의 길로 갔는지 다루는 역사서적이다. ‘새로운 천자는 분명히 겁 많고 어리석은 혼군(昏君)은 아니었다.’ 덕종을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그는 개혁에 의지가 있었지만 이 과제를 감당할 능력이 부족했고 또 열등감에 빠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로 인해 제국의 수명을 연장시켜줄 소금 전매제도 등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한 유능한 경제관료인 유안을 죽였으며 정치적 라이벌 양염 역시 같은 운명이었다. 덕종의 연이은 정치, 군사 방면 실책과 인재풀의 감소는 결국 제국 외부의 영토분쟁과 내부의 권력쟁탈로 당 제국의 몰락을 촉진시켰다고 저자인 자오이는 지적한다. 충정심 하나로 가득한 육지, 이성 등의 노력으로 지방 번진의 세력가인 절도사들의 난을 비록 진압하기는 했지만 중앙정부의 통제가 더 이상 지방에 미치지 못하고 화북지역의 잦은 외침과 변란에 따른 생산력 감소로 인한 경제의 강남 의존도 가중은 황제의 통치를 더욱 약화시켰다. 강남의 경제력은 황제의 통치력을 약화시켰지만 전성기를 지난 제국을 운영하는데 버팀목 역할도 컸었다. 하지만 후기들어 부패한 조정 대신들의 착취와 약탈이 반복되면서 강남의 이탈이 가속화되자 결국 ‘황소의 난’이 발생하는 등 내란에 휩싸이면서 멸망하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비단 중국만이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한 모든 국가는 정치권 등 부패가 권력쟁탈 등 갈등으로 이어지고 여기에 외부의 위협 등이 어우려져 생명력을 소진해 간다. 당나라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다. 특히 당제국은 한나라 이래 중국 봉건왕조들이 겪었던 동일한 사례를 반복한다. 황제의 시종으로 구성된 집단인 환관의 발호가 바로 그것이다. 시대에 따라, 황제의 성향이 어떻느냐에 따라 환관은 충실한 시종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엘리트 집권세력인 조정 대신과 치열한 권력투쟁에 돌입하고 여기서 승리(신책군과 추밀사 등 권력을 장악한다)하면 황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수십년 간 바보처럼 보이며 자신의 열악한 정치적 지위를 견뎌낸 선종은 어려웠던 시절 남모르게 충실히 공부하고 또 숱한 책을 읽으며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실천해 갈 때 환관은 시종의 역할 뿐이었다. 어설픈 환관 때려잡기에 나선 문종은 ‘감로의 변’을 계기로 오히려 환관에게 힘을 빼앗긴 채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채 슬픔 속에서 세월을 보내다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사치와 향락에 빠진 황제는 환관의 가장 쉬운 먹잇감이었다. 그렇기에 환관들은 새로운 천자의 등극 전에 가장 중요한 추대 요건으로 아둔하고 유혹에 약하며(목종, 의종) 어리고 힘없는 태자나 황태제를 우선적으로 골랐다. 아이러니하게 바보처럼 굴던 선종을 몰라봤던 시기나 감로의 변 이전의 문종을 추대할 때 실수가 있었지만.....
저자가 최후의 영광으로 꼽던 선종의 재위 10여년은 제국으로서 당이 가지던 저력을 마지막으로 발휘하던 시기다. 선종에 대한 부분 중 가장 눈여겨 볼 점은 많은 공부를 했고 늘 기계처럼 정무를 펼쳐 나갔다는 선종의 황제로서 자질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역사서를 가까이 두고 국정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만한 가르침을 찾는데 주력했다는 점이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배우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이 책이 의미 깊고 올해 읽을 다양한 책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최고의 책 중 하나에서 결코 밀려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무종 시기에 조정 대신으로 대활약을 한 이덕유에 밀려 정치무대에서 은퇴하게 된 노회한 환관 구사량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천자(황제)를 한가하게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날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해서 그것에 빠져 지내도록 해야 한다. 다른 일에 신경쓰지 못할 만큼 즐거움에 푹 빠져 살아야 비로소 우리를 총애할 것이다. 특히 천자께서 글을 읽거나 유생을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책이나 유생을 통해 전대의 흥망사를 알게 되면 두려운 마음에 우리를 분명 멀리하실테니....”(본문중 489페이지)
비단 당나라의 정치상황에만 적용될 말일까? 굳이 곱씹어 보지 않아도 된다.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정치상황도 여기에 딱 들어맞었다. 전 대통령의 경우를 보자. 최순실 세력이 당시의 환관의 행태와 다를 바 있을까? 비단 대통령만이 아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지만 국민에게 책이나 전대의 흥망사를 알지 못하게(역사교과서 왜곡 등) 하는 수구(절대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는데 국내 정치세력 중 보수라고 자처하는 야당은 친일세력이라고 비난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집단의 준동은 당나라나 지금의 대한민국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모든 교훈을 역사를 통해 배우고 역사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 그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늘 가져야 할 자세고 앞으로 태어날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의의를 높게 사고 싶다. 현재 읽고 있는 <대송제국쇠망사>와 함께 꼭 읽어봐야 할 역사서라고 감히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옥의 티’라고 할까? 번역서로서 아쉬운 점은 오기(誤記)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황제의 표기를 잘못한 부분 등 오타가 무려 십여군데나 된다. 몰입하다가 한참 전의 황제를 표기하면 갑자기 김이 확 새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다. 출판사인 위즈덤 하우스에서 2쇄를 발행할지 모르지만 만일 그런다면 이부분은 꼭 시정해 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