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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 - 탐욕스러운 금융에 맞선 한 키코 피해 기업인의 분투기
조붕구 지음 / 시공사 / 2020년 4월
평점 :
몇일전 저녁식사때 두 딸아이의 질문이 기억난다. “아빠, 엄마 학교 다닐때는 학생들이 참여하는 대회가 어떤게 있었어요?” 여기서 대회란 글짓기 백일장이나 미술대회 등을 뜻한다. 학생부 종합전형 등 평소 학교생활에 있어서 각종 경연대회에 참여해 수상한 경력이 대학 진학에 중요한 근거가 되다보니 부모의 학창시절엔 어떤게 있었는지 궁금했나 보다. 와이프와 난 거의 공통된 대답을 했다. ‘반공포스터 그리기 대회’, ‘저축 장려 미술대회’ 등.... 저축? 워낙 예대마진이 적은데다 저축보다 소비성향이 강한 최근 추세를 반영해서인지 두 딸들은 저축을 장려하는 의미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나보다. 당시 배경을 설명을 해주니 이해하지만 다소 신기하다는 입장이다. 거기에 더해 은행이 상당히 중요한 기관이란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은행에 대한 시각은 좋은 처우로 취업 준비 대졸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곳이란 정도. 하지만 좀 더 우리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 물론 지금부터 언급하는 내 의견은 결코 은행에 대한 비난보다 과거에 있었던 사실 위주로 은행을 다시 바라보자는 것이다.
1997년 IMF외환위기 전, 은행은 심사조건이나 기준보나도 관행이나 대출 기업의 외형만을 근거로 무차별적인 대출을 해줬다가 파산하는 기업으로 인해 악성채권이 늘어나며 폐업하거나 부실화되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충격과 극복을 위한 고통은 온전히 국민들이 나눠 가졌다. 기억나는가? 우리는 지금도 국난극복을 위한 자부심의 상징으로 당시 ‘금모으기 운동’을 떠올린다. 맞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한 국격을 느낄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은행은 자신들의 잘못을 바로 잡지 않은채 살아남았다.
너무 오래된 과거를 들췄는가? 그럼 최근의 은행은 어떨까? 과거 은행들은 이자수익으로 운영해 왔다. 즉, 국민들이 근로소득 등으로 저축을 하면 이를 기업 등에 대출해주고 이자를 받아 차익으로 성장하는 ‘예대마진’에 기초한 사업구조였다. 하지만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자 은행과 증권업계는 ‘비이자이익’경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펀드 판매라는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냈다. 작년 은행권 비이자이익은 2018년에 비해 1조원 늘어난 6조6000억원에 달했는데 이 중 약 79%(5조2000억원)가 펀드 판매수수료 등 수수료 관련 이익이었다고 한다.
은행이 공공성보다 사익추구에 더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부작용은 필연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비이자이익’경쟁이 비극의 단초가 되기 시작했다. 대형 시중은행인 A은행은 지난해 2월께 라임 대체투자 펀드에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라임 측과 실랑이를 벌이며 4월 초까지 해당 펀드를 계속 팔았다. 우리은행은 독일 등 해외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DLF(파생결합펀드)에 전액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부 경고도 묵살했다. 비단 A은행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공모펀드와 달리 각종 규제에서 자유롭고, 판매사에 돌아가는 수수료율도 높다는 점에 착안해 라임 펀드를 팔면서 원금에서 평균 1%가량을 선취수수료로 떼가는데 혈안이 됐다. 그렇게 ‘단군이래 최대 금융사기’라는 라임사태는 발생했고 현재 진행형이다. 1조 6천억원 규모의 환매중단 사태라고 하지만 아직도 정확한 손실규모 산정이 어렵다고 한다.

<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책의 서평을 쓰면서 이 책 내용에 앞서 장문의 글을 기술하는 이유는 은행의 모럴헤저드는 과거에도 현재도, 앞으로도 더 나아질 수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객의 돈을 자본으로 이자에서 수수료 수입으로 수익모델을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공익보다 사익추구의 유혹에 약해질 가능성이 농후한 집단이 은행이고 증권업계도 포함한 금융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 <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과 어떤 접점이 있을까? 은행의 모럴헤저드는 주기적으로 대형 금융사고를 일으킬 수 있으며 우리의 뇌리에 사라져 가지만 이 책의 배경이 되는 ‘키코 금융사건’을 다룬 책이기 때문이다.

키코란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이다. 정해둔 약정환율과 환율변동의 상한선 이상 환율이 오르거나, 하한선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손실을 입는다. 키코 피해기업 모임인 키코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의 손실 규모는 3조원 가량이다. 키코는 수출주도형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수많은 수출기업들에게 달콤한 과실과 같다. 환율 변화에 따라 가만히 앉아 몇 배의 수익을 더 벌기도 하고 손실을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1달러에 1000원일 때 수출로 얻은 100달러와 2000원일 때 100달러는 두배 차이가 난다. 환율 변동 하나로 회사의 매출이 달라진 것이다. 키코는 환율하락에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는 수출기업들에게는 완벽한(?) 헤지 모델이었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저자인 조봉구 대표는 단돈 250만원으로 창업한 코막중공업을 10년 만에 글로벌 우량수출기업으로 키운 유망 기업인이였다. 창업 이후 한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었던 그도 키코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정은 파탄났고 자신의 회사는커녕 협력사 연쇄부도로 손 쓸 틈도 없었다. 저자처럼 환율관리상품인 키코의 순기능만 믿고 가입한 업체만 900여개, 피해액은 총 2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한마디로 경제의 링크역할을 해야할 중견기업 대부분을 구렁컹이로 몰아 넣은 것이 키코였다. 지금까지 키코로 인한 배상을 위해 투쟁하는 저자는 다시는 키코 같은 금융권의 탐욕에 희생양은 없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키코에 비교할 정도도 아니지만 라임사태가 재발한 것이다.

저자의 눈물겨운 노력은 그야말로 현실은 이상과 다르고 비정하다 못해 불공평함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은 은행을 사기죄로 처벌했고 독일에서는 전액 손해배상 판결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만은 키코에 대해 그렇지 않았다. 대형로펌의 논리에 매몰된 대법원도, 금융기관을 단속하고 계도해야할 금감원마저 외면했다고 저자는 토로한다.
저자는 사회정의와 더 이상 금융기관을 통한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라임 사태의 발생은 아직은 멀었음을 방증한다. 그래도 저자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결코 포기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금융기관의 모럴헤저드는 사전에 충분히 예방되어야 하며 부득이 발생했을 경우 그 무엇보다도 심각한 사안임을 인지하고 강력한 처벌과 배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감시와 경계의 눈을 감아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