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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요시미 슌야 지음, 서의동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7월
평점 :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 훗날 ‘플라자 합의’라고 불리우는 역사적 조치가 맺어진다. 당시 프랑스ㆍ독일ㆍ일본ㆍ미국ㆍ영국의 이른바 G5 재무장관 회의에서 제임스 베이커 미국 재무장관이 달러화의 가치상승이 세계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의 하나라고 지적하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하여 달러 강세 현상을 시정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초고도 성장을 구가하며 그야말로 전세계 100대 기업의 순위 대부분을 일본기업이 차지하던 1980년대의 영화는 종언을 고하게 된다.
혹시 장년층 아재들이라면 기억하시는가? CF스타로 시작해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했던 이종원, 심혜진, 채시라의 싱그러운 젊은 날의 모습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낸 ‘난 느껴요’라는 카피의 코카콜라 광고를.... 당시 일본 문화를 동경하던 X세대들은 이 CF가 일본의 ‘I feel coke’를 그대로, 정말 콘티나 출연자의 표정까지 그대로 ‘베낀’ CF임을 알 것이다. 몇해 전 일본인들은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이 CF를 보면서 모든게 풍요로왔고 누구나 꿈을 꾸면 실현이 어렵지 않았던, 경제성장의 최상위에서 안정적이면서 아름다운 현실과 희망찬 미래가 지속될 것이라고 여겼던 당시의 쇼와시대(1926년~189년)를 상징한다며 아쉬워하고 또 암울한 현재를 한탄했던 것이 인상 깊었다.
왜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서평에 앞서 장황하게 일본의 1980년대를 언급했냐면 바로 헤이세이 시대의 일본의 몰락이 직전 쇼와시대와 비교해 드라마틱한 추락이었으며 또 그 추락의 기간이 현재까지도 회복되지 않은채 무려 30여년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의 성장을 롤모델로 삼아 ‘추격자 전략’을 통해 성공한 모델로 각광받는 대한민국 역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넛 크래커’신세에 빠져 있음을 우리 모두 냉철하게 돌아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1989년부터 지난해 2019년까지 무려 30년의 헤이세이(일본의 연호)기간 동안 일본이 어떻게 경제가 몰락하고 국력이 쇠퇴해 가는 지를 담담하게 돌아보지만 냉철하게 분석하는 책이다.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빨간색 표지 바탕에 우하향 급락하는 일본 성장률의 지표를 막대그래프로 표현한 표지가 인상적이면서도 일본의 몰락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 낸 것이 기억에 남는 이 책은 앞서 1980년대 전세계 경제 원톱의 시기, 이미 문제점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이를 직시하지 못했던 것에 원인을 찾고 있다. 실패를 통해 성공의 밑거름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경영학계나 출판가에서 처음 ‘실패학’을 언급하고 연구한 것이 일본인데 정작 그들은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없는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적어도 출판가 만큼은 현재 일본의 ‘실패’를 제대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비판정신을 간직하고 싶었다고 한다. 특히 저자는 열거하기 쉬운 실패의 사례를 하나의 전체로 볼 수 있는 연결지점을 찾아내 독자들에게 설명한다. 왜 30년씩이나 ‘실패’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필연이고 어디까지가 우연인지...
물론 가장 열거하기 쉬운 원인으로 선단(船團)식 기업국가를 지향했던 일본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의 실패지만 소니, 파나소닉 등 전기산업의 쇠퇴 역시 만만치 않은 원인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가장 큰 타격은 바로 정치의 연속된 실패와 좌절, 그리고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사회의 실패로 귀결되었기 때문임을 설명한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2000년 일본의 1인당 명목GDP는 세계 2위였지만 2014년에는 27위로 전락했고 회복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아베정권은 도쿄 올림픽을 부흥올림픽이라 부르며 일본의 화려한 부활을 지향했지만 코로나19로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 책을 주목하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일본의 문제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세계사적 측면에서 앞으로의 미래를 조망하는 수단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유럽, 미국의 자본주의는 이미 1970년대 포화상태에 달했고 일본은 헤이세이 시대에 한계를 드러냈다면, 현재 성장을 주도하는 중국은 2040년대에 동일한 한계를 노출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근대 자본주의의 임계점은 바로 그 시기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우리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일본의 성장과정을 답습하고 있다면 지금 이시기가 우리에게는 임계점이 아닐까? 국내외 안팎이 어수선하고 경제는 추락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종언이라는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더라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측하고 그 변화에서 최대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려는 부단한 노력과 근면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올해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책 10권 중에 한권으로 반드시 선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