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53: Richard Rorty: There Is No Mind-Body Problem | The Partially  Examined Life Philosophy Podcast | A Philosophy Podcast and Blog




90년대 초인가 남미 어디서 열린 학회에 초청 받았던 리처드 로티가 

남미 철학자들이 추구하던 해방, 해방의 이론을 줄 철학에 대한 기대, 이런 것에 아무 망설임 없이 찬물을 끼얹은 적이 있다고 한다. 딱 잘라 말했다는 것이다. 당신들이 처한 처지에서 철학에 그런 기대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미 출신으로 나는 그 기대가 틀린 기대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 기대가 옳으려면 진리와 주체를 정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초할 수 없다. 과거에 철학으로 그런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대강 저런 말. 남미 철학자들은 그 순간 로티를 증오했다고. 



아도르노 책들을 보면 어느 페이지에나 진리와 주체의 정초가 있다. 

ㅎㅎㅎㅎㅎㅎㅎ 그렇. 아도르노 1903년생. 로티는 31년생. 거의 한 세대 차이. 아도르노 시대에는 그럴 수 있었고 로티 시대에는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그럴 수 없게 된 걸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로티의 79년에 나온 <철학과 자연의 거울>과 그보다 거의 30년 전 <계몽의 변증법> 중 지금 어느 쪽이 더 나이든 (허약해진) 것으로 보이는가, 생각하면 여기서 세대 차이는 급 무의미해지는. 로티 철학의 무엇이 진리이고 비진리인가. 이걸 아주 잘 보여주는 철학자가 아도르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공히 생각한 주제들이 있는데, 아도르노가 아주 더 급진적이고 멀리 깊이 보았다.   


<랭스로 되돌아가다> 아직 조금밖에 못 읽었지만 

이 시대를 위한 좌파 사유... 이 요청이 담겨 있는 책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 요청에 아도르노가 줄 수 있는 엄청난 답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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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어느 영화과 학생이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 영화라고 한다.  

페이스북에 Adorno changed my life라는 그룹이 있었고 이 학생이 영화를 만들 당시 가입자수 오백명이 넘었다는데 지금은 다수 탈퇴했고 활동이 거의 정지한 그룹.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이렇게 된 건 아니고 "아도르노" 주제로 "집단"이 오래 가기는 어려울 거라는 것이 사정의 이유, 라고 어제 어쩌다 들은 팟캐스트에서 설명). 영화과 학생은 누가 왜 "아도르노가 내 삶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나 궁금했고 이 그룹의 회원들에게 그에 대해 답해줄 것을 청했다. 그리고 그 답들이 이 영화가 되었다. 영화에 나오는 회원들은 전부 남자고 전부 너드다. 이들은 <미니마 모랄리아>를 사랑했다. 이 책에서도 특히 "틀린 삶을 옳게 살 수는 없다" "이 세계에 결백한 무엇도 남지 않았다" "지식인에게 오직 고립만이 연대의 방법이다" 같은 문장들을 그들은 사랑했다. 



이 작품에 대한 얘기 들으면서, 아도르노에 대해 나쁜 편견 갖게 할 작품이겠다 생각함. 올해 아도르노 책 모아 놓고 읽으면서, 예전 생각들이 바뀌기도 하고 안하던 생각들을 하게 되기도 하고 몰랐던 면모를 보게 되기도 한다. 아도르노는 "집단적 주체"를 집요히 구상하고 이론화하기도 했다. 집단에 바로 적대적이거나 회의적이지 않았다. "고립만이 연대의 방법이다" 같은 말을, 그가 주는 집단, 집단 실천의 이론 맥락에서 볼 수도 있는 것인. 



감탄이 늘어가고 쌓여 간다. <마의 산>에 세템브리니가 한스에게 하던 말이던가. 누가 누구에게 하던 말인가는 찾아봐야겠지만 하튼 "지금 당신이, 당신의 지적인 높이가, 내 눈 앞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투의 말이 있다. 이 말이 전해주는 그 심정이 된다.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어느 페이지를 넘기든, 당신의 지적인 높이가 어김없이 영원히 더욱 커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 얘기로 시작해서 "회고록을 씁시다"로 끝낸다는 계획이었던 포스팅이고, 이 얘기와 "회고록을 씁시다"를 연결하는 고리가 되는 무엇이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었나 있긴 있었나 갑자기 가물가물. 아무튼 본론은 이겁니다, 회고록. 회고록을 씁시다. 우리는 모두 회고록 저자가 되어야 합니다. 


써야겠다 생각한 후 달라진 게 적지 않다. 사건들과 사람들을 새롭게 다시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책들을 그렇게 보게 되는 것 물론이고 (읽은 책이든, 읽을 책이든). 공쟝쟝님 리뷰 읽고 나서 전에 사뒀던 영어판 <랭스로 되돌아가다> 조금씩 보고 있는데, 아아아 한국에서도 이런 책이 매일 하늘에서 책상 위로 쏟아졌으면 좋겠다. 이 소원은 자연스럽다. 이 기적은 쉽다. (....) 



Returning to Reims: Amazon.co.uk: Eribon, Didier: 9780241344620: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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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4-07 18: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여기저기에서 다 디디에 이야기네요. 몰리님 회고록 말씀에 저는 절대 찬성!

몰리 2022-04-07 19:20   좋아요 2 | URL
공쟝쟝님 엘휘봉 ㅋㅋㅋㅋㅋ 이라고 표기하니 미미님이, 동포 같은 친근감이 느껴진다고 ㅋㅋㅋㅋㅋ. 최주봉, 금난새, 등이 생각났던 엘휘봉. 비타님, 우리가 서재에서 하는 무엇이든 또 회고록으로!

수이 2022-04-07 20:22   좋아요 1 | URL
마지막 말씀 또 무조건 찬성!! 디디에 여기저기에서 막 담아갑니다, 오늘 좀 행복하네요.

공쟝쟝 2022-04-07 18: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몰리님..! 회고록을 씁시다 💕

몰리 2022-04-07 19:21   좋아요 3 | URL
엘휘봉을 모델로, 씁시다!

공쟝쟝 2022-04-07 19:3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맞아요 ㅋㅋㅋㅋ 맞아요!!! 휘봉씨 참 잘썼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제3세계 무산계급 여성인민도 알아보게 잘썼더라고 ㅋㅋㅋㅋㅋㅋㅋ

Joule 2022-04-08 1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디디에 에리봉이면 ‘이미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들‘에서 곰브리치를 인터뷰했던 그 인터뷰어로군요.
보기 드물게 질문을 참 잘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의외로 질문을 제대로 잘하는 인터뷰어 거의 없거든요.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었다니. 그러고 보면 이름이라는 게 참 중요해요. 디디에 에리봉, 그 당시에는 이름이 참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십 몇 년이 지나서도 어떻게 기억이 나네요. 겨우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몰리 2022-04-08 11:45   좋아요 2 | URL
저도 디디에 에리봉 이름 처음 들었을 때 어떻게 ˝봉˝은 프랑스 이름이어도 촌스럽게 들리는가,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잊지 못함...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하는 이름, 에리봉. 푸코 전기도 아직 안 읽었는데 푸코 전기도 찾아보고 곰브리치 인터뷰도 찾아봐야겠어요. 이 책에서는 노동자 계급에 태어난다는 게 무슨 뜻인가, 계급이 ˝재생산˝된다는 건 어떤 것인가, 조금도 에두르지 않고 쉭쉭 (칼질 느낌으로) 말해요. 줄님, 우리 회고록 ㅎㅎㅎㅎㅎ (암튼... 씁시다!)

Joule 2022-04-08 16:14   좋아요 1 | URL
몰리 님이 하도 캠페인 하시니까, 저도 회고록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저에게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더티 런드리가 제법 있어서 회고록은 어렵지 않을까 하고 마음 접었어요.

몰리 2022-04-08 17:17   좋아요 0 | URL
하지만 더티 런드리를 제외하고, 아니 그걸 제외함에 대한 회고록은 어때요? 더티 런드리와 아예 무관한 건 아니지만 멀리 있고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면서 더티 런드리는 공백으로 두는. 이런 뻔한 방식 말고도 여러 실험들이 가능할 거 같은데 (아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꼭 썼으면 좋겠어요. 심지어는 그 원고를 서랍에 넣어두거나 무덤까지 가져가더라도요.
 




논문 제출하고 받아본 심사평 중 기억에 남는 둘이 있는데 

하나는 "지금 상태로 장점이 없지 않지만 게재하기엔 문제가 심각하다" 내용이었다. 

제출된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고, 그리고 생각했고, 그리고 세심하게 썼다. 

그랬음을 분명히 알 수 있던 평이었다. 이런 논문 리뷰는, 이렇게 리뷰하는 심사자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논문을 다 읽는다, 생각한다까지는 하더라도 세심하게 쓴다, 이걸 하지 않는 이들이 아마 다수. 장점을 살리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이 심사자가 꼼꼼히 내게 주고 있었는데, 거의 눈물을 흘리며 읽음. 감사의 눈물. 실제로 이 심사평 이후 뭔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동료가 동료에게, 심지어는 극적인 변화로 이어질 자극을 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내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게 느껴지던 평. 

......... 앗 그러셨군요. 저도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핫. 데헷. 



저런 기억들도 하면서 내일부터 쓰느라 살아야 할 고통(가끔 즐거움)의 시간들을 버틸 수 있겠지 하는 중이다. 

..... 서재에선 이제 조용히 '좋아요' 하는 사람으로. 



그런데 회고록. 시작도 안했고, 시작을 하게 되기는 하려나도 사실 알 수 없지만 

이게 이 시대의 형식이고, 그러니 이 형식의 가능성을 온전히 탐구해 보아야 하고, 그러려면 실제로 그것을 써야 하고... 같은 생각 하게 된다. ㅎㅎㅎㅎㅎ 그래서 다시 한 번 적습니다, 우리 회고록을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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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4-01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 2022-04-01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용히🙏좋아요만 쿡🙈
 




3월 1일 시작할 계획이던 쓰기는 한 달 미루고 내일 시작. 

올해 4월 1일은 잊지 못할 날이 될 거 같다. 잃어버렸지만 잃어버렸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책을 

영끌해서 산 날쯤 되면 잊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 10년 쯤 뒤, 그래도 그런 날도 잊히더라.... 하지 않을 거 같다. 

22년 4월 1일. 독보적, 마일리지, 적립금 탈탈 털어 또 샀다, 집에 없을 수가 없는 그 책을. 그랬던 날 4월 1일.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38세에 썼다. 

38세. 오래 산 나이로 보이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 박완서의 40세 등단. 40세가 까마득하고 

내게는 오지 않을 나이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40세? 새댁;. 라로님 서재에서, 박완서가 <나목> 회고하면서 쓴 글들을 읽었는데, <나목> 이후 몇 년 지나지도 않은 시점이었고 <나목> 때 이미 40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이 데뷔작이 첫사랑의 순정 같은 작품이다보니 그 시절은 맑고 풋풋했던 나로 기억하게 되고 몇 년 지나지도 않은 그 때의 글쓰기는 이미 기성 작가의... : 이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40세... 너무 어려요. 진짜 풋풋해요. 이제 40세는 어린 나이인 걸로 정착시킵시다.)  


38세에 <도리언 그레이> 쓰고 나서 와일드가 했던 말 중 "나는 이 소설을 오직 나의 즐거움을 위해 썼다." 


오직 나의 즐거움을 위해 썼다. 이것 나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말이다. 

작년, 재작년, 최근 몇 년 어느 시점부터 이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관점이 심지어는 논문에도 ㅎㅎㅎㅎㅎ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관점이 최고의 관점은 아닐지라도, 장르 불문 글쓰기를 성사시킬 (동력을 제공할) 힘을 갖는 관점이 아닌가 하게 된다. 와일드가 38세에 온전히 그의 삶의 방식으로 알고 실천하던 것을 나는... 그보다 10년은 늦게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네. 하긴 이런 걸로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아도르노는 21세에 (21세에!) 박사 학위 논문을 썼는데 후설 현상학이 주제였다. 후설 현상학. 나는 "현상학"이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 10년쯤 걸렸지. 


즐거움이 구해지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나를 위해" 쓴다는 것. 내가 알아야겠고 아는 것이 내 삶을 더 풍요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쓴다는 것. (.....) 


등등. 등등. 이런 이유로 

회고록이 유행하게 되기를 다시 바라게 됩니다. 

동지들, ;;;; 우리 회고록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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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4-01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2022-04-08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정말이지 몰리 님이 좋습니다. ㅠㅠ

몰리 2022-04-08 15:32   좋아요 0 | URL
어휴.. 다부장님, 저는 그저 다부장님 날개 밑으로... ㅎㅎㅎㅎㅎ 품어 줍줍. ;;;;
 



미학 이론. 이것은 불어판 표지. 

뭔가 마음에 든다. 영어판보다는 1만-2만배는 더 마음에 든다. 

영어판은 이러하여. 





20년 전과 비교해 읽을 수 있는 책이 되긴 했지만 

한 번에 많이는 못 읽는다. 이건 독한 술. 조금씩만. 간격을 두고. 



"현대 예술의 진지함은, (그것이 대면하는 사회, 그 사회의 문제의) 객관성, 그 객관성의 파토스." 

따옴표 쳤어도 그대로 인용은 아니고 (번역이, 안되는...) 그래도 어느 정도 내용에 충실하게, 저런 대목이 책 앞부분에 있다. 이 책으로 처음 철학, 혹은 미학을 접하더라도 저런 말을 이해할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하다. 저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을 자기 삶에서 살고 있는 학부생이, 상상되기도 한다. 예술이 다루는 현실이란 무엇이냐. 작가는 어떻게 현실, 현실의 모순과 대적하는가. 등등. 로버트 훌롯-켄터는 이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읽을 수 없는 책"이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이 책을 체험하는 심지어 학부생들도 있겠다 인정. 


나는 아니었고 

이 책 처음 읽을 때 머리 뜯던 그 느낌, 지금 그대로 언제나 다시 불러올 수 있다. 


3월 1일부터 열라, 준내 (쥰내) 페이퍼를 쓸 작정이었다. 

아도르노 주제인데 새로 작정하고 그의 책들 읽지 않아도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페이퍼 쓰는 사람들 예외없이 영겁회귀로 체험하는) 쓰기 미루고 읽기 하다 보니 이제 곧 4월. 그런데 그의 책들 읽으면서 느끼는 것 하나는, 삶의 문제들... 그런 게 있다고 할 때 그것들에 대한 이 한시도 느긋해짐없이 집요한 (집요하고 부정적인) 파고들기가 


이상하게도 참 위안이 된다는 것. 

"인생 별거없지" 아도르노가 이 말 들었다면 진저리를 쳤거나, 아니 아예 이해를 못했을 것이다. 무슨 뜻인지. 이 집요하고 부정적인 파고들기가 그 자체로 인생을 "ennoble"하는 면모도 있다. 이 중요하고 좋은 걸 나도 살아봤구나, ㅎㅎㅎㅎ 이런 느낌 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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