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 책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가능성 희박하고 혹시 나중 발견되더라도 책은 바로 필요하니까 4월 1일, 퀴즈 적립금, 앱접속 적립금 2천원 받고 독보적, 마일리지 영끌해서 사는 수밖에 없다고 판정하긴 했지만, 이 책이 이 집 안에 없다, 없어졌다.... 고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공부하는 방에 중요한 (자주 꺼내는) 책들이 있고 

거실과 기타 구석들에 중요하지 않은 책들이 있다. 이 책은 이 방 안을 나간 적도 없는 것인 책. 

이 책이 주로 꽂혀 있던 자리가 있다. 거기서 꺼내 와서 책상 위에 두었다는 게 이 책의 마지막 기억. 

............. 그 자리 근처 어디서 나올 거 같다, 아직도. 4월 1일 새로 사고, 새로 산 것에 사연을 적어둬야지. 

옛책이 찾아지면 거기에도 사연을 적어둬야지. 



사실 무서운 건 

지금도 책이 없어지고 있는 건 아니냐는. 

아니 이렇게 눈 앞에 선하고 바로 잡힐 거 같은 책을 영영 볼 수 없게 된다면 

그게 그 책만 그러겠느냐. 이미 사라진 책들이 있고 사라지고 있는 책들이 있을 것이다. 


진짜 중요한 책들엔 '트래커'라는 그걸 달아둬야 하지 않나 잠시 진지하게 생각함. 



이제 정말 거의 20년전, 아주 오래전 수업에서 아도르노 <미학이론>이 리딩 리스트에 있었다. 

........... 아무도 읽지 못했던 책. 다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으로 시작 아무말하다 끝.  

그리스어 라틴어 불어, 수시로 등장하고 문학, 음악, 미술, (예술에 포함될 장르라면 무엇이든) 총망라. 

내가 경험한 책 중 가장 어려웠던 책. 그런데 지금 보는 이 책은 꽤 다르다. (.....) 존버, 존버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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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22-03-28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개는 그 마지막 기억이 맞더라고요. ˝책상 위에 두었다˝ 책상은 그 방에만 있는 거죠? 설혹 그 책이 잠깐 시간여행 중이라고 해도 아마 돌아올 때 좌표는 ˝책상 위˝일 것 같습니다. 그 책의 행방이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꼭 알려주세요! 정말 궁금해요.

(혹시 모르니까 다른 장소의 ˝책상 위˝도 함 봐 보세요.)

몰리 2022-03-29 07:47   좋아요 1 | URL
아주 얇은 책이었으면, 분명히 있지만 찾지 못한다, 다른 책 안에 끼워졌거나 책장 뒤로 넘어갔고 이사갈 때 나온다, 체념이자 안심(?) 했을 거 같은데 이 정도 두께 무게인 책이 사라지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귀신이 곡하다... 이 표현을 계속 생각해 보게 되기도 했어요. 이 세상엔 없는 나도 이 세상에 없어선 안될 것 앞에서 통곡한다.... 그런 뜻인가?

곧 구입할 새 책과 별 개로 옛 책도 계속 생각하고 있으려고 해요. 책상 위로 돌아와라, 다시. ㅎㅎㅎ

라파엘 2022-03-29 0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찾고 있는 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은 답답하지만, 덕분에 책에 사연을 적어두는 일은 뭔가 멋지네요. 나의 사연이 적혀있는 책이라면, 그 책은 나의 기억과 감정이 묻어있는 단 하나의 책이 되겠군요 ㅎㅎ

몰리 2022-03-29 07:50   좋아요 3 | URL
정말, 별별 생각을 다 했는데, 이 책이 자기를 다시 생각하라는 요청을 이렇게 표한 것인가... ;;;; 나의 가치를 몰랐던 너님, 다시 생각해! 이런 거였나.

그러고 앉아있었. 넋이 빠져서.
구입한 책이 오게 되면 아주 모든 문장을 남김없이 빨아들일 기세로 보고 있게 될 거 같기도 해요.
 



아도르노는 발자크를 사랑했다. 


"소년, 소년을 ..." 로 이어져야 할 거 같은. ;;;;; 

<문학 노트>에 발자크 주제 에세이들이 있는데, 그 중 <잃어버린 환상> 본격 탐구에 바쳐진 글을 그는 아내 그레텔에게 헌정했다. 내용이, 발자크가 천재적으로 증언한 바 자본주의의 야수성 이런 게 핵심인데 아내에게 헌정함. 


이들은 과연 범상하지 않은 세계에 살았던 것이긴 한 것이, 아도르노가 그레텔과 결혼할 때 호르크하이머는 결혼 선물로 사드 후작의 책 ㅎㅎㅎㅎㅎ <줄리엣>을 이 커플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발자크 주제 에세이도 그렇고 

아도르노가 맑스에 대해 쓴 글들도, 은밀하게 유혹적인 면들이 있습니다. 

....... 네가 나와 같다면.... ㅎㅎㅎㅎㅎ 이걸 깔고 말하는 글들. 

네가 나와 같다면, 너도 이들을 사랑할 것이다. 어떻게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니. 




발자크도 그렇지만 

맑스. 오오오오. 하지 않을 수 없. 

아도르노가 전해주는 맑스는 한 번도 소문으로도 만난 적이 없는 인물.  

진짜야? ;;;;; 더 알고 싶어지지만 영어 번역, 한국어 번역 다 미흡하니 아직은 더 만날 수 없는, 아도르노가 전해주는 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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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3-2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읽었는데 제가 워낙 평전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책은 정말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발자크 책도 읽어야 하는데 생각만하고 있;;;
몰리님 덕분에 찾아서 읽어야겠다요.^^;

몰리 2022-03-28 17:33   좋아요 1 | URL
파친코 이민진 작가였나요, 자기가 아는 아주 똑똑한 중년 남성이 있는데 그의 은퇴후 계획이 발자크 소설 하나씩 전부 읽기라고, 90권쯤 되니까 은퇴후 계획으로 아주 좋은 계획이라고, 그런 얘기 했었어요.

아니 근데 그 계획 진짜 좋은 계획이다. 이 세계의 현실을 알수록 더 진짜로 인생을 살았던 거 같아지니까. (.....)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더, 진짜로 이 세계 현실을 알게 하는 것들에 끌리는 거 같아요.
 



이 분, <미학 이론> 영어 번역하신 Robert Hullot-Kentor. 


이 분이 쓰신 아도르노 연구서도 있다. 제목이, 무슨 이런 제목이? 아리송한 느낌 주는 Things beyond Resemblance. 이 책에 프레드릭 제임슨이 쓴 아도르노 연구서 Late Marxism, 비판하는 에세이가 있는데 


완전 최고입니다. 

이 주제에 당신이 관심이 있었다면 꼭 당장 지금 바로 망설임 없이 찾아 보아야 할 에세이라고 봅니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비판이 이런 비판이야. 

설령 그가 틀리더라도 (그럴 리가, 그럴 수가, 없지만) 심지어는 그 틀림으로도 그는 옳음을 증명하니까. 

단 한 사람이라도 그가 본 그것을 말할 때, 덕분에 너도 나도 내가 본 그것을 말할 수 있게 되니까. (....) : 대충 이런 내용의 감격이 밀려 듭니다. 그가 그것을, 그 골수까지 파고 들며 말할 때. 


네가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너는 너에게 유리한 것을 보고 그에 따라 너의 삶을 조직할 수 있다. : 무려 인문학자들이 이런 걸 지혜라고 전할 때, 야 좀. 그만 해. 그러려고 공부했? (......) 이러는 분이 한 사람만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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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3-27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찜해놓을게요 몰리님 감사해요

몰리 2022-03-28 03:16   좋아요 1 | URL
제임슨을 가혹하게 비판하는데, 그걸 조롱으로 보면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조롱이 아니고 꼭 필요했던 (그런데 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비판.

이런 비판이 있어야
인종차별도 더 본격적으로 비판할 수 있고.... 등등 독자인 나의 내면에서 뭔가 해방되는 느낌이 듭니다.
 

Free Read: 'The Melancholy Science' by Gillian Rose






이 책도 안 보여서 찾던 책인데 이건 찾아냈다.  

48세에 타계한 질리언 로즈의 책.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이 책 좋음. 독특하다. 


"아도르노와 비판이론에 관심있는 교수가 있는 학교에서 공부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예전에 자주 했었다. 그랬다면 무엇이 달랐을 것인가. 


학생(대학원생) 입장에서, 관심 영역을 공유할 동료, 잘 가르칠 교수가 있다 혹은 없다는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이긴 하겠는데 .....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보게 된다. 

없어도 어쩔 수 없고 있다면 행운이지 없다고 불운인 건 아니지. 책들이 이렇게도 많은데. 

너를 가르칠 무수한 책들이 이미 네 곁에 있다. 


이 책도 그 무수한 책들에 속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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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잃어버린 줄 몇 년 지나서 알았던 책들은 꽤 있다. 그 몇 년 동안엔 이사가 꼭 있었다. 

며칠 전에도 본 거 같은 책인데 다시 찾아 보려고 하니 안 보임.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함. 

이런 일은, 아예 없었던 거 같지는 않지만, 겪어 보니 새로움. NEW! 


며칠 전까지는 아니어도 최근에 이 책 본 건 맞는 거 같은데, 아닌가. 

작년에 이사한 다음, 이 집에서 이 책 읽은 적이 있는가. 없다면 이 책도 이사하면서 잃어버린 것 아닌가.  


이사하고 나서 이 집에서 이 책을 보았다는 "증거"는 (일기에 기록을 했다든가 같은) 없지만 

.... 기억은 있다. "사회의 그물이 점점 긴밀하게 짜이면서 개인들을 완전히 포섭할 때" 대강 이런 구절이 책 시작할 때 있는데, 이 구절 여러 번 기억했던 기억. ;;; 여기 실린 Bach 주제 에세이는, "바흐의 적들에 맞서 바흐를 옹호하겠다"고 하는데, 도입부 읽으면서 감탄했던 기억도 있다. 이 집에 와서 있은 일이었던 게 분명하다. 



이거 사실 지금 무서워야 되는 거 아닌가. 

없어졌다니. 어떻게 없어지냐. 누가 가져간 거 아닌가. 

최근 이 집에 왔던 외부인은 세탁기 수리 기사, 가스 검침원, 두 사람이었다. 

세탁기 수리 기사가 공대 출신인데 하필 또 습관적 도벽이 있는 데다 "Prisms" (공대에서 이게 중요한 과목이 있지 않을까) 제목을 보고 갑자기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 : 이런 가설도 세워보았다. 세우고 바로 허물었. 


도어락 번호를 누군가 알아내어 내가 집에 없는 동안 들어왔던 걸 수도. 

(........) 이것에서 시작하는 가설도 몇 가지 세웠. 다가 바로 허물었. 



잃어버려도 되는 책이 최소 2천권인데 그것들 다 두고 절대 잃어서는 안될 책을 잃었. 

어떤 책도 서로 똑같거나 비슷하지 않고, 그 책은 오직 그 책이어야만 그 책이라는 것. (.....) 


아도르노가 비슷한 회고를 하기도 한다. 

프루스트 잃시찾 2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를 사려고 서점에 가서 책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직원에게 문의했을 때, 직원은 아도르노에게 이렇게 답했다.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재고가 없고 <5월의 소녀들>은 재고가 있습니다."


........... 으흨. (조금은 웃기지 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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