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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포 2
라파엘 아발로스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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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반지의 제왕' 등 장황한 구성이나 보통 판타지에서 자주 묘사되는 격렬한 전투를 기대한다면 틀림없이 실망할 것이라고 못을 박겠다. 화려한 액션과 반전을 생각하고 책을 들춰봤던 본인도 뒤통수 맞은 격이 되어버렸다. 쓸모없는 기대는 실망을 불러오게 된다는 세상의 법칙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달까. 말 그대로 이 책의 반전은 반전이 있을 법한데 반전이 없다는 점이다. 살리에티의 정체와 템플기사단 전투의 떡밥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본인으로서는 그 떡밥이 반전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흥미진진한 전개였다. 템플기사단과 현자들, 수많은 에너그램과 기호들에 절묘하게 숨겨져 있는 의미들은 중세 연금술 시대에 미쳐있는 독자들을 열광하게 할 것이다. 특히 그림들을 직접 책에 붙여놓은 점은 나름 흥미가 있었다. 소년 그림포와 같이 에너그램을 추리하는 과정이 의외로 재미있었다. 몇 개는 맞추기도 했지만 결국 다음 장을 들춰볼 때까지 맞추지 못한 에너그램들도 있었다.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므로 이 쯤에서 이야기는 이쯤 생략하기로 하고. 

 1권에서 그림포가 묵게 되는 수도원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 생생해서 인상에 깊이 남았다. 기사단에 대한 환멸로 인해 40년을 수도원 서기로 종사하는 늙은 수사에 대한 이야기, 작지만 여러가지 비밀들이 숨겨져 있는 수도원 건물,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명상만 하는 수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본인이 상당히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꽤나 세심한 묘사설명 덕분에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그려가면서 읽는 게 가능했다. 좀 더 어둡고 묵직한 이야기였다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이다. 살리에티와 마상시합에 대한 이야기보다 더 좋은 걸 보면 내가 그닥 전투적인 소설엔 땡기지 않는지도? 

 2권에서는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잔뜩 긴장했지만, 일단 책이 얇은 만큼 핵심인물이 많지 않아서 안심이었다. 덕분에 인물들을 탐구할 시간은 대폭 줄어들었고, 작가가 설정한 여러가지 그림과 기호들이 돋보인다. 이쯤에서부터 에너그램과 수수께끼가 엄청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너무나 재미있어서 그림포 일행의 모험담이 뭉텅뭉텅 생략되어 나가는 게 안타까울 정도이다. 하긴 여기서 에너그램을 더 만들어 달라고 조르면 불쌍한 작가의 뇌가 터져나오겠지... 아이도르 빌비쿰의 책에서 발견한 글을 그림포가 회상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감동의 한 장면이었다. 아마 이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다 끝냈다는 안도감이랄까(?) 개인이 머리를 짜내면서 개발해냈다고 가정하면 나름 기발한 에너그램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배도 안 나온 기사도 이야기이지만, 전투도 간략하게 등장하는 짧은 판타지책이지만, 해피엔딩을 짐작할 수 있는 전형적인 선남선녀 이야기가 살짝 거슬리지만, 본인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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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펜 이야기 - 운명을 디자인하는 여자 이희자
이희자 지음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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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루펜은 음식물을 건조시켜 비료 혹은 연료로 만드는 우리나라의 음식물 처리기이다. 처음 루펜을 본 계기는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이 제공해주었다. 기계의 디자인과 성능에 놀랐고, 그리고 그런 기계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사장님에게 막연한 감동을 느꼈다. 이희자 씨가 책 속에서 솔직하게 반전(?)을 제시해주셨지만, 멋있는 방송 안에서 멋있게 자신의 발명품을 홍보한 그녀의 기백에 감탄했다. 홈쇼핑에서 무심코 보고 지나간 루펜에서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이희자씨의 발명품 루펜에 대한 솔직담백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사진만 많이 붙여놓는다면 루펜 광고집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루펜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땐 이 점이 마음에 안 들어 눈살을 찌푸렸었으나, 중간쯤 읽어가면서 그녀가 얼마나 이 발명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인생에 대한 상징물이 저런 멋진 발명품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도 쓸모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막의 모래로 벽돌을 만들었다는 프롤로그를 보면 살짝 질투심이 들기까지 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당당한 그녀의 독백은 무한한 자신감과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고객에게 허리를 숙이지만 자존심과 의지만큼은 꺾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 그런데 그 모습은 놀랍게도 재벌 집안 음식상을 1인용 식탁에서 다인용 식탁으로 바꾸어 설거지감을 대폭 줄여놓은 모습과 대등한 비중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그녀는 주부로 살면서 경영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그 뿐인가. 처음 부분부터 남편과 만난 이야기, 사주팔자이야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떡하니 등장한다. 물론 미국에서는 이런 구성의 책들이 이미 수차례 출판되었지만, 우리나라의 몇몇 고지식한 남성들 중에서는 이 책을 비웃는 사람들도 간혹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대목에서 그녀의 철저한 고집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글에서 쓴 대로 자신의 여성성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성이란 줄곧 단점과 수치의 개념이었다. 남성다운 패션이 여성정치계나 여성기업계에서 유행하기 시작했고, 아직도 여성성을 숨기려는 여성들이 있다. 그러나 요새는 남자도 모성기업을 만들어나가는 시대이다. 여기서 여성들이 제대로 된 여성성을 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여성으로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은 대한민국의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남성들이 갖지 못한 감각으로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좀 과장스럽게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훗날 우리나라의 여성 성공담의 중심을 차지하고, 시대가 직장의 예술성과 양성성을 더욱 강조하면 할 수록 이 책은 기업가들의 베스트셀러이자 필독서로 자리잡을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여담을 약간 적어보겠다. 본인은 일하기를 좋아한다. 집보다는 밖으로 나다니길 좋아하고 돈쓰기보다는 돈벌기가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이 책의 흠집을 잡는다면 본인은 빛더미에 나앉은 어려운 시기에 호텔에서 오렌지주스를 사는 그녀의 모습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라면박스들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돈으로 스트레스받는 아이들을 위한 건강식을 더 세심하게 챙겨줄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그 대목에서 주부로서 배운 침착함과 여유가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문득 IMF때 술에 만취한 채 집에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이부자리 펴고 조용히 맞아주시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자주 욱하는 성격을 지니신 어머니가 보여주시는 의외의 모습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여쭈어보니 당신께서 쓰러지거나 미쳐버린다면 집안이 무너진다 생각하고 버티셨단다. 결국 우리 가족은 그 시기를 버텨내고 지금까지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집안을 지켜낸 어머니의 그 단호한 눈빛을 글쓴이 또한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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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양장)
이경자 지음 / 사계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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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양양이 고향이라는 작가의 말에 문득 동질감과 경외심이 솟구쳐오르는 걸 느꼈다. 보통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비교적 얼마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작가와 시인들을 배출한 고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도 그럴 것이 깊은 첩첩산골로 대표되는 그 고장은 역사를 유독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딱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본인도 고등학교 시절 단체로 소풍나갔을 때 '북쪽 여자아이들이 더 이쁘네 어쩌네' 속닥거리는 어른들을 많이 본 적이 있다. 그것도 인터넷 시대가 활짝 열린 2000년도에. 휴전이라는 평화에 길들여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강원도는 피서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동네가 되버렸다. 그 고장 출신마저도 강원도 출신이라고 공공연히 드러내길 꺼리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휴전 특유의 긴장감때문에 오히려 더욱 강원도에 대해 알기를 꺼려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본인은 여자라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최전방에 나가본 군인이라면 내 말을 잘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고속도로를 따라 군사지역을 구분하는 철조망들이 쭈욱 늘어서 있고, 길거리는 휴가나온 군인들로 바글거린다. 제법 한적한 바다로 가다 운이 좋으면 포병대대의 사격훈련을 구경할 수도 있는 곳이다. 북한과의 전쟁은 우리나라의 상처이자, 일상이자, 우리나라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굳이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잠수함 사건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강원도는 전쟁의 긴장감과 아픔을 그대로 품고 있는 고장이다. 아니, 그 자체가 일상이기에 아픔도 없다. '순이'에 나온 어른들의 행동에서 나타나듯이 밥먹고 살기 급급한 사람들에게 전쟁은 그저 생계의 전환일 뿐이다. 순이의 할머니에게 전쟁은 그저 각자 남한군과 북한군으로 나눠진 아들들의 죽음뿐이다. 이 소설은 6. 25 전쟁의 옳고 그름을 멋대로 재보지 않는다. 그저 양양사투리처럼 덤덤하고 묵묵히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국사교과서엔 설명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신화이다. 눈 앞에 생생히 어른거리는 50년대의 삶 속에서 우리나라가 전쟁국가임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이 책의 무엇보다 훌륭한 점은 할머니-어머니-순이 순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했다는 점이다. 제사를 지낼 때 철이와 순이가 겪는 차별대우 장면은 우리나라 사대정신이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정신적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여실히 담아낸다.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까지 휘두르지만 사실 자신들의 무기력함을 숨기려 할 뿐인 남성들. 그 욕설과 주먹과 발길질을 감당해내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내고 그 속에서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끼는 여성들. 누가 나쁘고 누가 착한지 따지지 않는다. 누가 착하고 누가 불행한지 알 수 없다. 남성들은 이 책을 읽고서도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을 것이다. 사대주의와 세대차이와 극단적으로 다른 의견 속에서 순이할머니와 순이어머니가 두 눈에 독기를 품고 싸우면서도 문득 서로를 보며 웃는 이유를 아마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으리라. 전세계의 사람들이 모르고, 남성들이 모르고, 심지어 우리나라 여성들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교감을 '순이'는 멋드러지게 표현했다. 

 땅을 깊이 파면 천국이 나온다는 영이의 말에서 유독 가슴이 아팠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가르쳐준 사회의 존재에 대해서 명확히 시사하는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결국 교회에 갔을 때 본능적으로 할머니를 보고 싶어한 순이의 예감은 적중하리라. 그러나 자신이 익힌 문자를 통해 어린시절 그토록 믿고 경외했던 천국과 미국이 자신을 배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소설 속 그녀는 아직 6살 철모르는 소녀이기에. 이 책을 보는 여성들은 소설 속에 자신의 소녀시절을 두고 오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설빔을 입은 순이의 모습을 담아낸 겉표지 의외에 어떤 일러스트도 실려있지 않다. 오직 문자에 의존한 채, 머릿속으로 강원도의 순박한 이미지를 끌어내야 하는, 그러나 가시처럼 군데군데 달려와 박히는 현실을 이해해야 하는, 어른들의 동화인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들춰보면서 아무리 갑갑하더라도 소설 속 순이는 행복하고 순수한 채로 두자. 우리는 순이와 달리 순수하지만은 않은 현실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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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저 사회학30선
다케우치 요우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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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책이 도착했을 땐 기대보다 두께가 적고 글씨도 커서 약간 실망했다. 게다가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는 내용의 책은 개인적으로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내 흥미와 다른 글들도 많고, 책 소개를 읽는 것보다는 직접 원본읽기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본 결과, 이 책을 선택한 보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일단 사회학이 철학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뿐더러, 유독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주저하는 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학은 대학에서의 내 전공하고 거리가 멀다. (영어영문학과는 여전히 사회의 은어와는 몇 광년 떨어진 고어를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순수 사회학관련 책은 전혀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요즘 게오르그 짐멜과 미셸 푸코와 마샬 맥루한 등의 이론에 흥미가 생기다보니 사회학을 접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다케우치 씨는 내 독서 취향과 어느정도 비슷한 편인가보다. 몇몇 마음에 드는 사회학 책들은 눈으로 찜했다가 직접 도서관에서 찾아냈다. 지금은 내가 읽을 책 목록에 고이 정리해 둔 상태. 기회가 되면 반드시 읽으리라. 결국 내 책 욕심이 이 책을 부담없이 읽게 하는 데 도움이 된 셈이다. 

 솔직히 말해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다. 그러나 장점은 많았다. 우선 여러 사회학 책들의 원본을 직접 인용하면서 설명했기에 대강 그 책의 내용과 출판계기가 된 사회배경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오타쿠'라는 일본 특유의 사회현상과 '어쩐지, 크리스털'이라는 소설 등 여러가지 유행했던 것들을 사회학과 연관시켜 설명한 점이 가장 인상깊었다. 대학교수답게 이론 정리를 깔끔하게 해줘서 이해하기도 제법 쉬운 편이다. 

 다른 저자가 쓴 책들을 쓴다고 해서 이 책의 저자에게서 교훈을 아주 찾아볼 수 없는 건 아니다. 첫째로, 진보와 보수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사회를 냉정히 바라보고 앞일을 미리 예측하지 않는다는 사회학자로서의 원칙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아무리 사회를 평가할 때 자신의 관점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만 요즈음 진중권 씨 등 사회에 대해 글을 쓰는 교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탐구하는 사람으로서의 냉정한 정신이 많이 모자라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일까. 짐멜의 소개에서 글쓴이의 이 의견은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짐멜은 '자본주의의 매혹'이라는 책에서도 한 번 접하고 이 책에서 다시 접하게 된 학자이다. 똑같이 '사회론'이라는 책을 거론하고 있으면서 의견이 다른 게 흥미로웠다. 전자는 짐멜이 자본주의로 기울었다는 증거라고 평하고 있는데, 후자는 냉혹한 '형식사회학'이라고 평하는 것이다. 왠지 '사회론'은 상당히 어려운 책일 것 같아 원본을 보고 싶은 맘이 들지 않았는데 이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다시 복학해서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게 되면 이 책을 제일 먼저 찾아보리라. 결국 '세계명저 사회학 30전'은 책을 읽도록 부추겨주는 본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둘째로, 일상 속에서 신비를 찾는다는 저자의 말에 매혹되었다. 이 점은 인생 속에서 신비를 찾는 철학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철학은 심리학 다음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끌리는 점이 몇 가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지마다 둘러진 선홍색 컬러테두리가 아깝다는 생각을 자꾸 했다면 지나친 참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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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 - 김열규 교수의 도깨비 읽기, 한국인 읽기
김열규 지음 / 사계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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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이 본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물건은 '개구리소년 왕눈이'나 '두치와 뿌꾸', '은비까비' 따위가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변신물과 동네 뒷산의 판타지와 10명 이상의 다양한 등장인물을 갖추고 있는 '꼬비꼬비'였다. 둘리까지는 아니지만 스페셜 버전까지 방송되는 등 나름대로의 인기를 누렸으며 책까지 출판되고 있는 판이다. 주인공 소년(가운데)과 일명 도깨비왕자라 할 수 있는 검은 도깨비가 합체한 게 인간도깨비 '꼬비'이다. 그러니까 장르는 퓨전판타지인 셈이다. 그들 혹은 그가 합체해서 벌이는 영웅담이란 바로 개천에 폐수 쏟아붓는 공장 사장님 괴롭히기. 한마디로 인간의 파괴행위로부터 마을의 평화를 지킨다는 내용이다. 예전부터 이 만화를 줄곧 찾고 있었는데 설마 이 책을 읽다가 무심코 그 제목을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다음으로 도깨비라는 테마에 생각나는 건 노래이다. 전체가사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금 나와라와라 뚜욱딱, 금 나와라와라 뚜욱딱~"으로 끝나는 노래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왠지 돈냄새가 풀풀 풍기는 노래이다. 도깨비의 3대 욕망을 읽으면서, 혹은 '뚝딱'이라는 의성어를 읽으면서, 이 노래의 리듬을 떠올리곤 했다. 비록 8강 꿈은 좌절되었으나 우리나라 태극전사들이 원정가는 동안엔 꽤나 참여도 높았던 축구응원단도 머릿 속을 빙빙 맴돌았다. '붉은 악마' 마스코트의 모습은 변명할 구석이 없는 도깨비이다. 하필이면 좋은 일도 하는 도깨비를 두고 왜 서양분위기가 풍기는 '악마'라는 단어를 집어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일 응원단의 이름이 '붉은 도깨비'였다면 이 정도로 인기를 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참으로 구수한 이름이 아닌가. 촛불시위 또한 우리나라 도깨비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시위처럼 총이 나가는 살벌한 전쟁판이 아닌, 노래와 춤으로 한바탕 흥을 돋우며 시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문화인이었다. '몽둥이' 든 전경들이 가득 모이는 밤이면 물바다와 피바다가 섞이는 난장판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말이다. 시민들이 든 촛불은 도깨비불마냥 이리저리 흔들리며 어둠 속을 날아다닌다. 그리고 촛불 속에서 날밤새는 그들이 원하는 건 먹을 것에 대한 안전과 집시법에 저항할 자유이다. 그야말로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는 조선의 도깨비들이 아닌가. 

 이처럼 내가 알고 있던 도깨비의 모습도 여러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우리나라 속의 도깨비가 엄청난 존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돈과 권력과 여자를 마음대로 지닐 수 있는 도깨비를 은근히 부러워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소개하자면, 이 책은 엄연히 한국학에 대한 저서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위트와 무의식과 리비도와 일링크스 등 언뜻 보면 어려운 단어들이 나와있지만, 저자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쉽게 그 단어들을 도깨비의 특성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성에 관한 은유만 안다면 어린애도 이해할만큼 간단하다. 또한 오윤의 정겹고도 굵직굵직 힘차보이는 도깨비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낮도깨비 신명마당'이라는 명제 그대로 열정적이고 신명나는 그림들이었다. 도깨비의 설화를 이리저리 뒤섞어 재미있게 표현했기 때문에 심심풀이로 주르륵 펼쳐보기에도 아주 적합하다. 도깨비와는 연관없어 보이나 우리나라 최고의 꾀보 김삿갓의 시도 간혹 등장하곤 한다. 아마 도깨비가 한국 사람의 표본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에게는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생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한국학에 관한 저서라기보다는 구수한 옛날이야기 해설집같은 묘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한국학에 대한 저서를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이 책만큼이나 쉬운 책을 찾는다는 가정하에서.
 우리나라 사람들하면 보통 '한'의 정서를 떠올리는 외국인들이 많다. 그러나 고된 일과 속에서도 노동요를 부르며 낙으로 바꾸어버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볼 때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화가 부글댈 때 한 발 슬쩍 물러나, 울화 속에서도 말장난을 하는 한국인의 재치를 이해한다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구절이다. 한국에 관심있는 외국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속에서 살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해 무감해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널리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 저 재치를 배우기를 바란다. 특히 '말로서 천냥 빛을 갚는' 저 말재치를.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남에게 장난도 잘 못치는 나로서는 도깨비의 기지가 그저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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