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고약한 술버릇이 있다.

술을 먹으면 졸린다는 거다.

술과 졸음과 나, 에 관한 쓰라린 경험이 참 많다.

소개팅을 하는 자리에서 술을 먹다 존 적이 있다. (앞에 사람을 앉혀두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냐면...

우리 회사는 충정로, 우리 집은 상암동, 집에 가려면 충정로에서 2호선을 타고 합정에 가서 6호선으로 갈아타고 '수색'역에서 내려야 한다.

오늘도 술을 거나하게 먹고, 지하철을 탔다. 잠깐 눈을 붙였는데 눈을 떠보니 신도림이다. -.-

오늘은 약과다.

얼마 전에는 신촌에서 술을 먹고 상암동에 가는 버스를 탔다.

역시나 잠깐 눈을 붙였다 떠보니... 시청 플라자 호텔 앞이었다. 그새 무슨 일이 벌어졌냐 하면, 신촌에서 상암을 갔다가 종점에서 돌아서 다시 신촌을 지나 시청까지 간 것이다. 그래서 난 다시 신촌(술을 마셨던 장소)까지 가는데에 정확히 한 시간이 걸렸다.

이 역시 약과다. 또 지난 번엔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압구정에서 영화를 보고 술을 한 잔 하고 지하철을 탔다. 또! 눈을 잠깐 붙였다가 눈을 떠보니... 봉화산이다. 봉화산이 어디냐면 우리 집에서 반대 방향으로 지하철을 탔을 때 종점인 역이다. 집과 반대로 지하철을 타고 끝까지 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12시 반... 집까지 택시를 타고 오면서 피눈물이 났다.

심각하다... 다 큰 아녀자가! 술만 먹으면 존다. 여태 아리랑치기를 안 당한게 천운이라면 천운이다.

나의 술버릇은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지금도 술기운에 헤롱헤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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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5-18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는 술버릇이 나아요. 안 취했다고 큰소리치며 나중엔 목소리 커지고 막 웃고 필름 끊길 때까지 먹어보자 형보단..ㅠ.ㅠ ^^

진/우맘 2004-05-18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의 호어스트 방법을 써 보세요.
-----가방 속에 알람시계를 넣어서 다니는 겁니다.
하긴, 핸폰이 있으니 시계 안 넣어 다녀도 될 것도 같고.^^
(서니님 너무 귀여워요~~~)

sunnyside 2004-05-18 0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창피해라...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술먹고 들어오자마자 주절주절 늘어놓았을까요.. -.- 어젯밤에 그 일만 있었던게 아니로군요. 감자전 부쳐먹을라고 쇼핑몰에서 산 매직방앗간(믹서기 이름입니다)을 들고 오다 지하철에 놓고 내렸습니다. 아아~ 전 왜 이럴까요? T.T

sooninara 2004-05-18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자전>>>>>>>>>>>>>>매직방앗간이라구요?
저는 아직도 강판에 갈아서 감자전 해먹는데..팔빠지겠어요...
아리랑치기..조심하세요..^^

마태우스 2004-05-18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조심하셔야겠어요. 님처럼 미인은 더더욱!!!

sunnyside 2004-05-18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수니나라님... 믹서는 무슨 믹서입니까? 저도 그냥 강판에 갈아먹을래요. 팔뚝에 힘도 기를겸.. (지금도 넘쳐나지만. ^^;)
마태우스님,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로그인 2004-05-1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철 이야기가 나오니 하는데 전 지하철 태어나서 2번 타봤습니다. 국보급이죠 ^^

sunnyside 2004-05-1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방에 사시는 모양이네요. 저도 대학 들어가기 전에는 지하철 타본 기억이 손에 꼽습니다. 요즘엔 지하철만 타서 지상 지리에 오히려 어둡습니다만.. ^^;

찌리릿 2004-05-20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옆에서 보건데, 술을 드시고 * 버서/지하철을 잘못 타거나 더 가거나 * 지갑, 핸드폰 등을 잃어버리거나 * 믹서기와 같은 좀더 큰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하는 일이 없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아직 우리나라가 그렇게 범죄 발생율이 높은 나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술 같이 먹다가 11시 정도 되면... 조시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죠. ^^ (너무 적나라했나.. ㅋㅋㅋ)

저도 예전에(2001~2년도 한창 술 많이 먹을 때, 지하철에서 졸다가 2호선 한바퀴 돌기도 많이 했죠..) 이런 적이 많아.. 아래와 같은 방법을 써보려고 했는데.. 쉽지는 않을 겁니다.

방법은 술을 한잔이라도 했을 경우
1. 지하철, 버스에서 절대 앉지 않는다. 자리가 텅텅 비어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자리에 앉지 않는다.
2. 가방, 짐 등은 절대로 몸에서 떼지 말것. 무겁더라도 들고 갈 것.

이 외에도 * 버스나 지하철, 택시에서 내릴 때 핸드폰과 지갑 있는지 확인하고 내리기
* 출발할 때 아는 사람한테 전화하고, 내리기 전에도 한번 전화하기 (계속 통화를 하면서 가면 좋겠지만 핸드폰 요금땜에...)
등이 있겠지만.. 일단 술이 취한 상황에서 하기 힘든것이곘지요.

파란여우 2004-05-2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인이세요? 에구 그럼 술을 어캐 믿고 마셔요?(동병상련~~윽 하는 소리들이 많이 들리네...)^^

sunnyside 2004-05-21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파란여우님이 웬지 끌리더라구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

ceylontea 2004-05-22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술마시면 왜 그리 졸음이 쏟아지던지...
요즘은 술을 안마셔서 어떨지 모르겠어요...
술이 싫어졌다라기 보다는 술 마시고 집에 오는 것이 싫어요.. 그래서 주로 남편하고 집에서 간단히 맥주 한 캔 정도 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일 좋더군요..
결혼전에 일하던 곳과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주로 회식을 하면 집근처가 되어서 1,2차 끝나도 걸어서 10분이내에 집에 도착했지요... 그래서 술 먹고 차 타고 집에 가고 하는 것이 너무 피곤하더군요... 요즘은 집에서 남편하고 맥주 마시고 뻗어서 자버리게 되니, 밖에서 술 마시고 집으로 귀가하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밖에서는 술 마시지 않습니다...
 







..

다른 님의 서재에서 보고 퍼 왔다.....내가 좋아하는 우주다.....난 어릴때 부터 우주를 그리워했다. 내가 지구에 태어난걸 슬퍼한 일도 있었다. 지구는 아직 우주여행을 못하니 말이다.....암튼.....이걸 보고 있으니....정말 우주를 날아가는 기분이다.....마우스를 움직이면 마우스방향으로 움직인다.....ㅋㅋㅋ....가다가다보면.....다른 생명체가 사는 별도 나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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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side 2004-05-16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비님이 퍼온 것을 다시 퍼왔다.
나도 우주가 좋다. 영화 <콘택트>의 여주인공처럼 커다란 접시 위에서 우주의 소리를 듣는 직업을 가진다면 어떨까?

찌리릿 2004-05-17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우스를 가져다 대니.. 우와~
내가 슈퍼맨이 된 것 같아요.(슈퍼맨은 대기권 안에서만 나는 게 아니라 우주에서도 날 수 있죠?)
아.. 그런데 어지럽네.. (우웩~ 멀미)

sunnyside 2004-05-17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걸요. 슈퍼맨은 우주에서 왔잖아요.
우주를 유영하는 슈퍼맨이라... 근데 좀 외로울 것 같아요. ^^;

진/우맘 2004-05-1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지러워...픽!(쓰러짐)
 

어제는 이중생활하는 친구의 '약점을 잡아 위협'한 대가로 얻어낸 (-.-) 야외 오페라 <카르멘>을 보러 잠실주경기장에 갔다. 당초 비가 오락가락 하여 오후까지도 공연여부가 불투명했었는데, 어쨌든 공연은 강행되었고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공연은 정확히 저녁 8시에 시작하여 밤 12시가 다 되어 막이 내렸다. 매우 긴 시간 동안, 많은 출연자들이 등장한 대형 공연이었는데, 큰 문제 없이 무사히 진행되었다.

무대는 작년에 같은 장소에서 했던 오페라 <아이다>와 비교했을 때, 스펙타클한 맛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국이나 전쟁과 같은 거대한 소재가 아니라, 궁핍한 시절의 도시, 집시의 소굴 같은 곳이 배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잡한 도시를 표현하기 위해 신경쓴 흔적은 역력하였다. 무대에 오른 인원이 매우 많았는데, 시대의 의상과 소품을 완벽하게 갖춘 배우들이 많을 때는 수 백 명씩 무대에 한꺼번에 있었다.

스크린도 훨씬 시원스레 펼쳐져 있어서 (주경기장의 3층을 모두 뒤덮었다) 마치 영화를 보듯 오페라를 즐길 수 있었다. 가지고 간 오페라 글라스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인물의 동선과 각도를 섬세하게 포착해낸 화면을 볼 수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에도 또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 카르멘을 맡은 엘레나 자렘바는 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역동적인 연기로 열정에 사로잡힌 집시 카르멘을 표현하였으며, 돈 호세 역을 맡은 호세 쿠라 역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연기와 노래 실력을 보여주었다.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목소리는 과연 감탄을 자아낼만하였다.

팜플렛을 보니 남자 주인공 역의 호세 쿠라가 세계 4대 테너라 하였다. 의심 많은 나,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집에 와 '4대'와 '테너'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4대 테너라 불리는 사람은 호세 쿠라 말고도, 로베르토 알라냐, 안드레아 보첼리.. 두 명이 더 있다. 세계 3대 테너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4대 테너'를 만들어 넣고 싶은 사람은 끼워 넣는 것이다. 알고 보면 지구상에는 '4대 테너'라 불리는 사람이 한 스무명쯤 더 있는게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

오페라 카르멘에는 귀에 익은 노래가 많이 나온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투우사의 노래>일 것이다. "랄라라 랄라 라라라라라~" 이렇게 되풀이 되는 노래, 캡슐에 싸인 유산균들이 장까지 행진할 때 나오는 그 멜로디 말이다. 이 음악이 오페라의 마지막까지 몇번이 흘러나오는데, 통통 튀는 유산균들이 자꾸 떠올라 혼났다.

카르멘은 아름다운 집시 여인과 위험한 사랑에 빠진 병사의 삶이 끝내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병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게 된 집시 여인이 그 사랑을 배신하자, 결국 여인을 죽이고 만다.

"죽을만큼 위험해야 사랑이다" ? 이게 이번 오페라 공연에 쓰이는 메인 카피인데.. 글쎄... 난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이게 오페라니 망정이니 실제 일어난 일이었다면..? 사회면 구석을 차지하는 수많은 치정 살인사건의 딱 그 모습이다.

-- 스페인 OO시 경찰서는 어젯밤 시내의 한 투우장 근처에서 애인(카 모씨, OO세)을 칼로 끔찍하게 살해한 혐의로 전직 군인 돈 모씨를 체포하였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돈 씨는 변심한 애인과 말다툼 끝에 이러한 짓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돈 씨는 "애인 때문에 직업도 고향도 모든 것을 버렸는데, 다름 남자 때문에 자신과 헤어질 것을 요구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심각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남성이 여성을 살해한 사건의 70%는 남편이나 전 남편, 애인이나 전 애인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즉 여성이 남성을 살해한 경우에는 단 10% 만이 이러한 애정 관계로 얽힌 적이 있는 비율이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잘못 포장된 비이성적인 집착의 결과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인의 변심을 '죽음'으로 응징하는 어이 없는 사태는 벌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 사랑이란 이름의 비극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는 것이 옳겠다. 흠...

또 딴길로.. 그러나 저러나 위 정도의 감상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게 용하다. 사실은 너~무 추워서 오페라에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챙겨온 잠바를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밤 늦은 시간에 같은 자세로 앉아 있으려니 말도 못하게 추웠다. 칼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뼛속이 시리고, 피곤하여 눈은 졸린데... '여기서 졸면 죽는거야~'라는 비장한 각오로 끝까지 눈에 힘을 주고 있어야 했다. 다음 번에 또 가게 된다면 좀더 철저한 준비를 해야겠다, 다짐하며...

우쨌든 오페라와 함께 한 봄날의 밤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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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4-05-16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니사이드 버젼의 카르멘 관람기..잘 보았습니다..ㅎㅎ..
치정 살인극이라니..저도 괜히 무섭네요..오페라의 유령 볼때는 좋았는데..가정경제가 힘들어서 문화 생활을 안하게 되는군요..아이다와 카르멘을 다 보셨다니 부러버요...

ceylontea 2004-05-16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에서 카르멘 티켓을 신청 선착순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B석으로 2장 받았지요... 애당초 제가 가려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동생과 동생친구에게 보러 가라 했지요... 1막 끝나고 9시쯤.. 너무 추워 집으로 간다고 전화가 왔더군요... 기대했던 것 이하라고.. 추위에 감기 걸릴 각오하고 보기 힘들다 하더군요..
전.. 오페라던 뮤지컬이든.. 우리나라에서는 예술의전당 오페라 하우스가 제일 좋더군요... 너무 넓으면 잘 보이지도 않잖아요...
세종문화회관은 좌석이 너무 안좋아서.. 비싼 돈 주고 보기 아까와요...
엘지아트센터는 작아서 나름대로 잘 보이기는 하나 규모에 비해 비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튼... 서니사이드님... 추운데... 고생하셨습니다 그려... ^^

sunnyside 2004-05-17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자식도 남편도 앤도 업는 제가, 돈 쓸 구석이 어디 있겠습니까? ㅎㅎ; 사실은 저도 주로 얻어볼 수 있는 것만 봅니다. 제 돈 주고 보기엔 마니 아깝지요..
실론티님, 저도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 좋습니다. 맨 꼭대기층만 아닌면 볼만 하더군요. 잠실 같은 데서 하는 공연은 오페라를 보는게 아니라, 오페라 DVD 상영회를 보는 것 같기도 해요. 무대 위 인물들은 너무 작고, 스크린을 통해서만 보게 되니까요. ^^; 그래도 나름대로 잼있게 봤습니다.
 

친구가 아기를 낳았다. 어제 낮 12시경. 12시간 진통 뒤에 자연 분만하였다고 한다. 친한 친구가 아이를 낳은 것은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에 (고향 친구 중엔 몇 있지만) 난 조금은 떨렸다.

오늘 퇴근 후에 친구와 아기를 보러 병원에 갔다. 근처 상점에서 아기 선물을 사려 했는데, 뭘 사야할지 모르겠다. 웬만한 출산 준비물은 거의 다 있을 것 같아 딸랑이 세트를 샀다. 딸랑이를 가지고 놀려면 백일은 지나야 한다니, 벌써 딸랑이를 준비해두진 않았을 것이다.

산모와 아기가 있는 방에 들어가니 부은 얼굴의 친구와 신생아 침대에 누워 있는 아기가 보인다. 앉아서 웃는 얼굴로 맞는 친구를 보니 우선 마음이 놓인다.

아기는 아기의 모습이었다. 세상 구경한지 서른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아기라 쭈글쭈글하고 빨간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기는 아기의 형상을 온전히 갖추고 있었다. 손가락도 열 개, 발가락도 열 개였으며 까만 머리카락도 참 많았다. 살짝 쌍커플 자리도 보였고 엄마를 닮아 이마가 동그랬다.

친구는 자기가 열심히 먹은 밥과 음식으로 아기의 머리카락, 손톱, 발톱에까지 양분을 공급했다는 것을 신기해했고 뿌듯해했다. 난 그런 친구에게 "아기가 최상품이야!"라며 노고를 치하했다.

친구는 아기를 낳는 그 순간에도 고통을 표출하기 보다는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소리를 지르는 게 아기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단 한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않았고 이도 악물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 아기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힘을 주느라 친구의 목덜미와 등에 있는 실핏줄이 모두 터졌다. 아직도 얼룩덜룩한 고통의 흔적이 친구의 몸엔 남아 있었다.

딱 한번, 고통의 순간을 이기지 못하고 옆에 있던 신랑에게 너무 힘들다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눈물이 나려고 했다. (흑, 지금도 눈물이 난다. T.T) 그래봤자 그녀가 겪었던 고통의 크기를 난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강한 그녀가 얼마나 아팠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나라면 아마 본격적인 고통이 오기도 전에 겁에 질려 배를 째어달라고 애원을 했을 것 같다. 

아기는 엄마가 그렇게 힘들게 낳은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잠만 잤다. 울지도 않고 깨지도 않고 내리 잠을 자다가 가끔씩 눈을 떠 서비스로 여러 표정을 지어주곤 했다.

발바닥을 간지르고, 다리를 주물러도 만사 귀찮다는 듯 자는 아기를 겨우 깨워 수유를 하였다. 난 얼마 전 <섹스 & 시티>에서 미란다가 아기에게 수유하는 모습을 보고 캐리가 기겁을 했던 장면이 떠올라 잠시 긴장했다. 그녀의 몸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과연 친구의 가슴은 수유를 위한 엄마의 것이 되어 있었다. 오물오물 젖을 빠는 아기와 친구의 모습을 낯설었지만, 아름다웠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을 존속하게 한 본능의 만남이었을테니까.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전화를 하진 않았지만 엄마에게 꼭 묻고 싶었다. 날 낳을 때, 많이 아팠는지.. 얼마 전 엄마에게 친구 이야기를 하며, 그 친구 지금 얼마나 무서울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엄마의 대답은 이랬다. 첫째를 낳을 때는 둘째를 낳을 때만큼 무섭지는 않다고. 그건 아기 낳는 고통의 실체를 경험해 보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상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난 둘째로 태어났으니 출산의 고통 뿐만 아니라, 무지막지한 공포심까지 엄마에게 안겨준 셈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위대하고 세상의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흔해 빠진 그 말, 오늘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오늘부터 자신의 의지로 10kg 이상 다이어트에 성공한 인간들에 더하여(^^;) 생명을 만들고 세상에 내놓은 모든 이들을 존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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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5-15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니님, 힘들지만, 모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여성은 위대하고, 모든 생명 또한 위대한 것이겠죠. 친구의 예쁜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라겠습니다.
서니님도 작업이 얼른 성공해야 할텐데~^^

찌리릿 2004-05-1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낳는 고통, 보살피는 정성... 우리 자식들은 너무 쉽게 잊네요. 엄마~ 엄마~~

삼성카드 CF던가... 갓 출산한듯한 새댁이 "내 새끼가 새끼 낳았다고..."하는 멘트가 생각나네요.

sunnyside 2004-05-15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존경합니다~ 두 건이나 해내셨을 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이쁘게 키우시기까지. 전 은제쯤 진/우맘님 진도에 맞출 수 있을지.. ㅎㅎ;
찌리릿님, 맞습니다. 효도합시다. (엄마~ 엄마~~)

Smila 2004-05-15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그 친구가 출산했나보군요. 하지만, 출산은 고통보다 기쁨이 훨씬 더 큰 작업이니 너무 힘들꺼라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아팠던건 다 잊어버립니다~~

이럴서가 2004-05-1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누이가 조카 둘 낳은 모습 보면서 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시절 늘 학생운동하며 뛰어다닌 누나의 성정이 종종 강퍅하다 느낄 때가 있었는데, 아이 낳고 본능적인 여성성을 봤을 때의 자애로운 누이 얼굴은 얼마나 평안한 모습이었던지, 새삼 기억이 소롯합니다. 모든 어머니와 생명들에게 근원적으로 빚진 바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좀 더 성실해야겠다, 다짐해봅니다.

휴머니스트연 하다보니 어깨가 좀 뻐근하군요... 휴.

sunnyside 2004-05-15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mila님, 정말 그럴까요? 부디 그래야 할텐데요... Smila 님도 둘째 아기 건강히 순산하시길 바래요. 아직 좀 남았지만요. ^^;
맞아요. 조선남자님. 허투루 태어난 사람 하나 없는데.. 우리 모두는 좀더 귀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비로그인 2004-05-15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지글이네요..읽는 저도 울컥~ 그렇게 아플까요?? ^^

sooninara 2004-05-15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차이가 있죠..저도 아프긴 했는데..하늘이 노랗지는 않더군요...^^
물론 둘째때는 '이정도론 안나올텐데..더 아파야 할텐데..'하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더군요^^
옆에서 아무 고통없이 우아하게(?) 수술 준비하는 산모들이 부럽기도하고..그래도 금방 아이 낳고 나니..잘 걸어다니고..잘 먹고...자연분만이 최고죠..
수술하면 낳고나서 고생해요...참 둘재낳으면 훝배앓이도 더 심하게 아파요..ㅠ.ㅠ
부풀은 배가 수축하는데..두번째엔 더 부풀어서 강하게 수축하느라 더 아프다죠..
헤헤..아직 아이도 안생긴 처녀에게 겁을 너무 많이 주었나요?
그래도 아픈것은 잠깐이라우...참을만 혀요...죽진않으니깐..^^

ceylontea 2004-05-1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저는 정말 자연분만 하고 싶었답니다.. 12시간 진통끝에..의사선생님이 수술하시자고 하더군요.. 아기도 너무 힘들고 태변을 누었는데.. 더 이상 진행은 안되고..태변을 먹으면 아기에게 안좋다고.. 그 소리에 저도 수술하자고 했습니다. 아마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자연분만하겠다 했겠지요... 지금은 그때 참 많이 아팠었지 하는 기억밖에 없네요...
지금 방에선 딸아이가 새근새근 자고 있어요... 에이... 자는 얼굴이라도 보고와야지... ^^
서니님도 어여 어여... 결혼하시고.. 애도 낳으시고.. ^^

sunnyside 2004-05-16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수니나라님, 실론티님, 존경합니다~ ^^
수니나라님, '참을만 혀요.. 죽진 않으닌깐..' 흑, 이걸 지금 안심하라고 하신 말씀인가요? 더 무서버요~ -.- 허지만.. 여러 선배님들 말씀 따라 '나도 할 수 있다!' 는 마음가짐으루다가... (그나저나 어느 세월에? ㅎㅎ; )
실론티님, 어휴, 고생하셨네요.. 엊그제 아기 낳은 친구의 여동생도 얼마 전에 아기를 낳았는데, 비슷한 문제가 있어서 (태변을 먹는...) 아기가 병원에 있었다고 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병원에 두고 나와야 하는 엄마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아기들은 저마다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폭스바겐님, 우리도 언젠가 경험할 날이 오겠죠.. 올까요? ^^;

ceylontea 2004-05-1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현이는 다행히 적정한 시간에 수술을 해서.. 태변도 먹지 않고.. 아주 건강하게 잘 태어났습니다.. ^^
서니사이드님.. 그 순간 지나고 나면... 아팠던 기억은 잘 안나요.. 무서워 마세요.. ^^
 

울 부모님에게 물려 받은 유전자 중 맘에 안드는 게 몇 가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술 먹으면 빨개지는 얼굴이다. 맥주 몇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지고 열이 나서리... 같이 많이 마셔본 사람들은 신경을 안쓰지만, 첨 술을 마신 사람들은 꼭 묻는다. "괜찮으세요?" 이게 바로 울 엄마 아부지 탓이다. 두 분 다 술 한 잔에 얼굴이 벌개지시는 스탈이시니.

오늘 퇴근 무렵, 목도 가슴도 답답하여..  맥주 한 잔이 절실했는데, 이미 시간도 늦었고 남은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집에 오는 길 "뚜 뚜르 뚜르르르... 그냥~" 마신다는 맥주 PET 병을 하나 사다 반쯤 마셨는데... 또 얼굴이 벌겋다. 

술먹고 얼굴이 빨개지는 건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다.

좋은 점은 머물고 싶지 않은 술자리에서 빨리 탈출할 수 있다는 거다. 벌개진 얼굴로 머리에 손을 짚으며, 휴~, 저는 들어가봐야겠네요.. 하면 붙잡을 사람 별로 없다. 물론 좋은 술자리에서 누군가 "괜찮으세요? 얼굴이 빨갛네요." 얘기하면 눈을 부릅뜨고 자세를 가다듬으며 말한다. "괜찮아요. 제가 원래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잘 빨개지는데.. 끄떡 없어요!"

하지만 '비즈니스'가 개입된 자리에서 얼굴이 발개지는 건 난처하다. 혹여 상대가 나를 하수로 보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분칠을 하며 수습을 해봐도 어쩔 수 없다. 목까지 벌개진 때깔을 어떻게 감출 수 있으리오.

난 여전히 부럽다. 술을 부어라 마셔라 들이키고도 안색 하나 안변하는 사람들... 그러고 꼭 자기 지금 취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게 내 소원이다. 나 지금 취했다고 박박 우겨 보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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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13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우십니다.^^ 저랑 똑같네요. 난 괜찮은데 자꾸 물으면 화나지 않나요?? 또 화내면 "야..야 애 취했다 얼렁 보내!보내!"

sunnyside 2004-05-13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맞아요. 안 취했다는 소리도 술주정으로 들리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