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전국을 몰아치고 있다.
이렇게 추운 날, 모두들 방안에 콕 처박혀 아랫목에 살 것 같지만,
누구는 언 수도관을 고치러 찬 바람을 맞아야 하고, 누구는 보일러를 고쳐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요즘 아빠가 세상 사는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더구나.
사람에 따라 큰 기운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고, 작은 기운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자기 기운을 잘 보전하는 것이래.
기운이 큰데 길이 작으면 잘 참아야 하고,
기운이 작은데 너무 무리하면 안 되는 것처럼...
늘 자신을 긍정하고, 좋은 시절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자세.
그랬다가 자신에게 좋은 시절이라 싶을 바로 그 때, 도약하고,
운이 안 좋으면 다시 지키고... 좋은 시절 오면 다시 도약하고.
이게 정말 인생을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방법이래.
자기에게 운의 기운이 올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지키는 법.
그냥 멍청하게 기다리면, 그 놈의 '운'이란 놈은,
머리카락이 앞에만 있고 뒤통수엔 없어서,
미리 기다리고 있다 확 낚아채지 않으면,
조금만 지나가고 있어도 잡을 수 없는 것이란다.
오늘은 이성부 시인의 '누룩'이란 시를 한번 읽어 보자.
누룩 한 덩이가
뜨는 까닭을 알겠느냐.
저 혼자 무력함에 부대끼고 부대끼다가
어디 한 군데로 나자빠져 있다가
알맞은 바람 만나
살며시 더운 가슴,
그 사랑을 알겠느냐.
오가는 발길들이 여기 멈추어
밤새도록 우는 울음을 들었느냐.
저 혼자서 찾는 길이
여럿이서도 찾는 길임을
엄동 설한 칼별은 알고 있나니.
무르팍 으깨져도 꽃피는 가슴.
그 가슴 울림 들었느냐.
속 깊이 쌓이는 기다림
삭고 삭아 부서지는 일 보았느냐.
지가 죽어 썩어 문드러져
우리 고향 좋은 물 만나면
덩달아서 함께 끓는 마음을 알겠느냐.
춤도 되고 기쁨도 되고
해 솟는 얼굴도 되는 죽음을 알겠느냐.
아 지금 감춰 둔 누룩 뜨나니.
냄새 퍼지나니. (누룩)
누룩은 메주와 함께 대표적인 발효 식품이야.
고슬고슬한 고두밥에 누룩을 넣고 물을 부어 발효시키면, 그게 바로 막걸리가 된다고 한다.
누룩은 그 자체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존재라기 보다는,
다른 물질의 변화를 도와주는 촉매 역할을 한다고 봐야겠지.
우리 인생에 '운'이라는 기운이 바로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란다.
'운'이 있는 시기에는 힘들지 않게 일이 진행되지만, 또 반대의 경우에는 될 일도 자꾸 엎어지곤 하지.
그 운을 마냥 기다리기 보다는 '누룩'처럼 효소 역할을 하는 것들을 삶에 끼워넣을 필요도 있단 생각이 든다.
어제 엄마랑 찜질방엘 가서 이런저런 이야길 했는데,
어릴 적 꿈이 뭔지를 이야기했어.
아빠도 어릴 적엔, 평범하게 먹고 살 만큼 가정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고,
엄마도 한 사람으로서 독립적으로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는 것이었다고 하더구나.
그렇게 본다면, 엄마 아빠는 지금 꿈을 이룬 상태라고 볼 수 있단다.
더 큰 집도 필요없고, 지금처럼 가족이 평안하게 살 수 있으면 되는 거야.
민우는 꿈이 무엇인지... 앞으로 잘 생각해 보려무나.
그 꿈을 이루려면 어떤 숙성의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인지 말이야.
누룩같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상상 밖의 결과를 낳게 될 그런 숙성의 요소를 네 삶에 넣어 보기 바래.
아빠 생각엔, 아직 네 꿈을 확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
직업을 확정하지 않고 더 공부하러 대학을 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예를 들면 대학의 철학과 같은 곳에 가서 인생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야.
이제 고3이 되니 우선 공부도 해야겠지만 진로도 조금 생각해 보자꾸나.
이 시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어.
누룩이 뜨는 까닭을 알겠느냐?
앞으로는 그 까닭을 시로 형상화하겠다. 이런 시도지.
무력함, 나자빠져 있음...
이런 것은 '때를 만나지 못함'이라고 말했지?
그렇지만, 누구나 <알맞은 바람 만나, 살며시 더운 가슴, 그 사랑>을 만나는 법이야.
일생에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했단다.
이마빡에만 머리카락을 단 그 기회가 말이야.
2연에서는 <고통스레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등장한다.
'울음'과 '엄동 설한'에 <무르팍 으깨지도록> <찾는> 그 <<길>>.
누구나 길을 찾고 있다.
그 길은 쫙 뻗은 8차선 고속도로이기를 바라지만,
한국인에게 그 길은 꼬불꼬불 산길이기도 하고,
어쩌면 누구도 간 적 없는 빙벽 가파른 등반길일 수도 있단다.
쉽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앞길.
그러나... 칼날같이 날카로운 저 <별>은 알고 있다. 네 앞에 길이 있음을.
그 별을 보고 앞으로 '조금씩' 발을 옮기는 일이 곧 사는 일이다.
좋은 시절이 오기까지 <기다림>
아까 '자기를 지키는 일'이라고 했지?
자기를 망가뜨리면 안 된다고 말이야.
민우가 어떤 어른이 될 지 모르지만, 되는대로 살다가 어른이 되는 일은 참 무모한 일이 아닐까?
네 안에서 <발효>의 과정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어린애 같은 민우'가 죽고 썩고 문드러지고,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대학의 물을 만나면
그 <깊은 기다림>의 시간이 쌓이고 나면,
비로소 발효가 이뤄져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그 과정을 기다리는 일이 바로 <누룩>의 할 일이다.
덩달아서 기쁨도 되고,
해 솟는 얼굴도 되는 <죽음>
전에 이야기한 <역설>이 다시 나오지?
'죽음'은 불길하고 부정적인 것이지만, 여기서는 어때?
밥이 그대로 있어선 막걸리가 되지 못하잖아.
밥은 자기를 죽이고 발효가 되어서 누룩과 하나가 되어야 해.
그러고 나면 '술'이라는 귀한 음식으로 다시 태어는 것이지.
원래 술이란 것이 제사나 잔치에 쓰이던 귀한 것이었단다.
지금이야 공장에서 만드는 쉬운 제품이지만 말이야.
마지막 연은 <감춰둔 누륵이 뜨는 냄새>가 퍼짐을 '후각적 이미지'로 가득 잡아내고 있단다.
아~~
화자는 지금 감춰둔 누룩이 발효되는 순간임을 감지하고 있어.
그 냄새가 퍼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는지 몰라.
이 시에서 <누룩>을 <희생>의 의인화로 보기도 해.
민중은 그렇게 희생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만든다고 보기도 한 거지.
아래서 설명할 <벼>와 연관지어 본다면,
독재 시대 힘들게 살아가는 민중관으로 봐도 그럴 듯 하단다.
그렇지만, 오늘은 민우의 '숙성'을 염두에 두고 시를 읽어 봤단다.
부디 민우에게 좋은 시절이 올 때 도약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지혜를 터득하길 바라면서 말이야.
이성부의 <벼>는 민중의 이야기다.
조선의 민중들은 농민이었어.
그저 농사만 짓던 이들이 아니라, 국가의 근본이라 믿던 사람들이었단다.
농자 천하지대본... 농사란 것은, 세상의 근본이다.
그래서 임금이 잘못하거나 정치가 잘못되면 농민들이 일어섰다.
왜놈이 쳐들어오면 '의병'이 되었고,
탐관오리들에게는 '동학군'이 되었지.
조선 말기, 세도정치가 행해지던 어지럽던 시절에는 말이야.
아무런 죄도 없던 이들을 감옥에 처넣던 일이 많았다더구나.
탐관오리들이 자기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온갖 죄목을 다 만들어 냈다고 그래.
죄도 없이 죄지었던 민중들을 '벼'에 비유한 시.
그 힘없는 벼같은 민중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힘을 갖게 된다는 시, '벼'를 읽어 보자.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벼)
1연에서는 벼는 서로 기대고 산다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지.
2연에서도 '튼튼해진' 벼들의 연대감.
그러나 죄도 없이 죄지어서... 힘겹게 살던 민중의 모습도 보이고,
벼가 익으면 벼는 베어져서 인간을 먹여 살린다.
3연에서는 벼의 <고상한 정신>을 드러내고 있어.
서러운 일 많아도 마음을 맑게 다스리는 지혜와, 노여움을 덮는 지혜.
민중은 화가 난다고 매번 일어서지 않아. 때를 기다리지.
마지막 연에서 벼는 베어지면서 '쌀'이 되는 '사랑'의 화신으로 그려지고 있단다.
벼가 베어지길 거부한다면 우린 뭘 먹고 살겠니?
벼의 희생으로 인간은 존재하는 거지.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김수영의 풀>과 같은 끈질긴 민중의 힘은
거기서 '넉넉한 힘'이 나오는 거란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벼의 어울림
어우러진 벼의 힘
벼의 인고
벼의 생명
민중이 어울리고, 거기서 힘이 생기고, 인고의 시간을 보내, 생명력을 얻는다.
어때?
앞에서 노래한 <누룩>의 효과와도 뭔가 상통하지 않니?
<벼>라는 식물의 외면적 특징과
<누룩>이라는 소재의 존재적 특징을 시인은 잡아낸 것이란다.
거기서 나아가
'벼'에서는 '민중의 생명력과 의지의 가능성'을,
'누룩'에서는 '때가 되어 무르익는 숙성의 가능성'을 읽어낸 것이 아닐까 싶어.
시를 읽는 일은 이렇게 시인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단다.
시들을 허투루 넘기지 말고,
다시 곱씹으며 읽어보기 바란다.
네 안에서 누룩이 발효되어 화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