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 굽는 시간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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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증을 위한 치료을 위해 만난 마약에 예상외로 강하게 중독된 기분이다. 조경란, 그녀가 그러하다. 1996년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우리 문학의 빛나는 정수를 잇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7년 <달의 바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은 정한아를 인터뷰 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 사이 많은 글을 쓰고 책을 출판했으며  최근 작품 <혀>는 영어로도 번역되어 세계의 독자와 만나게 되었다. <식빵 굽는 시간>는 마치 그녀의 민낯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맑고 투명해서 핏줄까지 드러나 보일 것 같은 그런 글이었다. 
 
 엄마와 이모, 그리고 아버지의 관계, 이복 남매인 한익주와 한영원과 주인공 강여진의 관계. 두 여자와 한 남자의 관계는 일반적으로도 보기에도 불편하고 불안해 보인다. 빵을 만드는 여진은 자신을 둘러싼 그들을 식빵, 브리오슈, 크루아상, 화이트케이크, 소보로빵, 사과파이, 크레프 등 빵으로 비유한다. 어떤 방이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빵이었을까. 아니,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특별한 빵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는지 모른다.

 냉대에 가깝게 차가웠던 부모와의 관계는 글의 초반부터 그녀의 출생을 암시하고 있다.  암으로 죽은 엄마, 그 후 1년 뒤 자살한 아버지. 그 후 자신의 생모라는 것을 말해주고 사라져버린 이모. 그들의 부재는 이제 지속되어왔던 불편하고 모호한 관계의 부재를 명확하게 인정한다. 여진이 그네들을 생각하며 빵을 만들었던 것은 관계의 개선을 위한 욕망의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반죽이 숙성되는 시간을 거쳐 새로운 맛을 탄생시키는 것 처럼.
 
 모호하고 어지러운 소설이다.근친상간, 존재와 부재, 지나간 기억, 잡히지 않는 현재.  아무것도 분명한 게 없다. 여진의 심리상태는 적당한 불안을 감추며 태연하다. 이제 그녀와 관계를 맺은 사람은 모두 떠나버렸다. 그녀 혼자만이 홀로 남았고 이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한 순간 부풀어 '뻥' 외마디 소리와 함께 터져버리는 슬픔과 절망의 풍선을 안고 있는 것 같다. 여진, 그녀속에 살아있을 조경란에 대한 답답함과 안쓰러움이 쏟아진다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속에서 조경란의 다른 소설속 인물들을 만난게 된다. <나의 자줏빛 소파>에서 느꼈던 상실감, 불안감, 허무감이 그것이다. 조금 더 면밀하고 조금 더 확장된 감정의 가지들. 

이건 정말 이상한 관계예요. 엄마
모든 관계는 만질 수 없는 거란다. 너는 자꾸만 만지고 확인하고 싶겠지만 글쎄...... 부질없는 거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만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별 미련이 없구나.
저는 고독해요 엄마
얘야,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다...... 죽음과 만나지 않은 고독이란 고독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란다. 32~33쪽

 확인하고 싶은 관계는 그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여진은 사랑에 대해 목이 마른 상태이며 죽음을 앞두고 그것이 부질없는 욕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엄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욕망과 싸우고 절망해야 우리는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욕망이 너무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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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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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는 요즘, 수줍은 봄을 만났다. 알싸한 봄 내음을 터뜨릴 것 같은 시가 변덕스런 장마로 지친 마음을 잊게 한다.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라는 제목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의 속삭임 같다. 사실, 문장(http://www.munjang.or.kr/)에서 현재 문학집배원인 나희덕님이 보내주는 메일을 꼬박 꼬박 받고 있었지만 차분하게 듣고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시' 라는 문학 장르는 얼핏 우리와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무척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매일 매일 시를 선정해서 배달하는 문학집배원 안도현 이라는 이름 때문일까, 안도현의 엮어 놓은 시는 왠지 믿음이 간다. 

 사실, 여기 수록된 52편의 시와 시인들은 내게는 많이 낯선 이름들이었다. 그 생경한 느낌을 문학집배원 안도현친절함을 베풀어 친근감으로 거들고 있다. 시를 읽어가면서 문득 시를 쓴 시인이 궁금해진다. 그는 어떤 사람 이길래, 이런 시로 세상을 흔들어 깨우고 세상을 아름답게 할까?  바로 이 시를 지은 시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 홍신선

2월의 덕소(德沼)근처에서
보았다 기슭으로 숨은 얼음과
햇볕들이 고픈 배를 마주 껴안고
보는 이 없다고
녹여주며 같이 녹으며
얼다가
하나로 누런 잔등 하나로 잠기어
가라앉는 걸.
입 닥치고 강 가운데서 빠져
죽는 걸.

외돌토리 나뉘인 갈대들이
언저리를 둘러쳐서
그걸
외면하고 막아주는 한가운데서
보았다,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인 걸.

 아,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 인 걸. 자꾸만 이 구절에 머문. 시는 왜 이리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걸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이 시는 내게 그렇게 말을 걸고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야채사(野菜史) - 김경미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의 입에 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맛없었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꽃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꽃 수북했겠다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던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 팔다리가 워낙 맛있다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나왔든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시인지 모르겠다. 정말 내가 낙타였을까. 엉뚱한 상상이 이어진다. 우리의 인생이 사막을 건너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쩜 맞을지도 모르지 않나. 아침, 저녁 밥상에서 마주하는 야채가 감사하기까지 하다. 

 시가 가진 함축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자칫 시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기 마련인데 여기 담긴 시들은 그런 걱정을 덜게 한다. 또한 이 시집에는 육성낭송시집(CD)가 함께 있어 시를 읽고 듣는 두 배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시를 만나려고 부푼 마음을 먹고 있는 내게 여기 수록된 시는 새로운 시인과의 만남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요즘 사실, 시는 인기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예전에 흔하게 책이나 시집을 읽으며 자투리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의 손에는 이제는 모두 핸드폰과 게임기가 자리하고 있다. 구세대로 속하고 있는 나는 그대로 여전하게 시가 좋다.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 유안진

겨울에는 불광동이. 여름에는 냉천동이 생각나듯
무릉도원은 도화동에 있을 것 같고
문경에 가면 괜히 기쁜 소식이 기다릴 듯하지
추풍령은 항시 서릿발과 낙엽의 늦가을일 것만 같아

춘천(春川)도 그렇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
얼음 풀리는 냇가에 새파란 움미나리 발돋움할 거라
녹다 만 눈응달 발치에 두고
마른 억새 깨벗은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파고 있는 진달래꽃을 닮은 누가 있을 거라
왜 느닷없이 불쑥불쑥 춘천을 가고 싶어지지
가기만 하면 되는 거라
가서, 할 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거라

그저, 다만 새봄 한아름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몽롱한 안개 피듯 언제나 춘천 춘천이면서도
정말, 가본 적은 없지
염두가 안 나지, 두렵지, 겁나기도 하지
봄은 산 너머 남촌 아닌 춘천에서 오지

여름날 산마루의 소낙비는 이슬비로 몸 바꾸고
단풍든 산허리에 아지랑거리는 봄의 실루엣
쌓이는 낙엽밑에는 봄나물 꽃다지 노랑웃음도 쌓이지
단풍도 꽃이 되지 귀도 눈이 되지
춘천(春川)이니까.

 내게도 그저 춘천이니까로 이어지는 젊은 날의 추억이 되살아 난다. 무료한 가을 날, 아무런 이유없이 춘천이 그리워 강의를 잊은 채 친구와 떠난 춘천행. 그러나 막상 떠난 춘천행의 기차는 김현철이 부른 ' 춘천 가는 기차'가 아니었다.  계획하지 않았던 여행은 입석으로 서울까지, 그리고 다시 춘천까지의 왕복은 고생 그 자체였다. 그래도 부서지는 햇살을 껴안은 한 장의 사진은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나는 그 시간, 그 춘천이 마냥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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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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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피는 고래>라는 제목에서 파스텔빛 아름다움과 알 수 없는 슬픔이 전해진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 김형경이라는 이름이 함께라 그러하리라.  그녀의 소설에서는 항상 슬픔이 묻어났다. 선연한 빛깔의 슬픔보다는 보일듯 말듯 조금 혼란스러운 슬픔이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 내재된 트라우마를 간직한 이들이 세상과 소통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가득했고 끈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메는 이들이 존재했다. 오랜만에 선보인 소설, 책을 여니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그녀가 보인다.

 열 일곱, 니은은 이제 막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은 소녀다. 환하게 웃는 모습은 이제 사진속에서만 존재한다. 갑작스레 닥쳐온 슬픔, 준비할 시간도 준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부모를 잃은 마음을 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열 일곱, 소리 내어 말해도 핑크빛이 물드는 나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니은은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하루 하루 꿈속에서 엄마,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 속 바다를 본다. 

 아빠의 고향 처용포에서 니은은 오랜시간 고래를 잡으며 살았던 장포수 할아버지와 식당을 운영하며 한글을 배우는 왕고래 할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게 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거운 시간을 보낸다. 학교도 친구도 친척도 니은을 달래줄 수 없고 니은을 이해할 수 없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마음, 세상을 향한 분노를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 할머니는 너그러이 받아주고 니은의 마음을 위로하며 쓰다듬어 준다.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 할머니에게도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고래를 향한 할아버지의 애정, 죽은 남편에 애절한 할머니의 사랑을 니은에게 꺼내놓는다. 

 17살 소녀가 겪기에는 너무도 큰 슬픔을 작가 김형경은 고래잡이가 유명했던 시골 어촌 처용포의 자연을 담아 치유하고자 한다. 곳곳에 자연이 남겨준 처용과 황혹에 관한 이야기, 존재가 확실히 않은 바다생물, 그 안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통해 니은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도록 하고 있다. 니은의 너울 같던 마음이 잔잔하게 바뀔 때 니은은 어른이라는 문을 만날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17살이 있었을까,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하는 니은의 마음은 내가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내 나이에 무얼했나고 묻는 것과 같다. "여든살이 돼도 맘속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다. 열살 때 생각을 하면 열살이 되고 마흔 살 때 생각을 하면 마흔살이 되지. 열살처럼 세상을 보다가, 마흔살처럼 세상을 보다가 한다." 257 장포수 할아버지의 말처럼  책 속의 니은은 17살 소녀이지만 니은을 통해 내 모습을 보기도 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내일,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지금 이 나이에 남들은 무슨 생각으로 살았을까 궁금한 우리네 모습과 닮았다.

 "기억하는 일은 왜 중요해요?"
 "그것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지. 잘 떠나보낸 뒤 마음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 236쪽

모든 것을 마음에 담고 살수는 없다. 그것은 이별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상처일 수도 있다. 니은이 부모님을 기억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것 처럼 우리의 삶은 떠남의 연속일지 모른다. 떠나보냄과 동시에 새롭게 살게 하는 것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니은도 알게 될 것이다. 

 니은에게
매일 희망을 보낸 영호 언니의 문자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라고 말하듯 내게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게 한다. 누구도 치유할 수 없을 것 같은 크나큰 상실과 슬픔도 때로는 작은 메모, 지속적인 작은 관심이 치유의 약이 되어 슬픔을 무너뜨릴 것이다.  내가 보낸 문자도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격려가 되어 희망의 존재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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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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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의 만남은 계획하지 않았던 일상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때로는 불쾌감이나 당혹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묘한 설렘과 기대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전자를 기대하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자 떠나는 여행은 새로운 곳에서 삶을 정착하게 만들기도 하고 자신이 돌아와야 할 곳이 있음을 감사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행,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많은 뜻을 담고 있는 의미심장한 단어로 들린다. 소설가 김연수가 쓴 산문집 <여행할 권리>를 읽는 내내 이상은이 노래하는 <삶은 여행>이라는 말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소설가가 쓴 산문은 여타의 산문집보다 우선적으로 주목을 받는다.  작가의 기존 작품을 만나고 특히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책을 만남으로 작가와의 즐거운 대화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연수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아직 그렇다 라는 답을 할 수 없는 독자는 이 책에 대해 한 권의 여행기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여행기가 맞다. 그러나 보편적인 여행기와는 차별적인 여행기라 할 수 있다. 주제가 있는 여행기이며 지극히 김연수적인 주관적인 글이라는 점이다. 물론 모든 글이 그러하겠지만 여행할 권리는 특히나 그러하다

 김연수가 생각하는 문학에 대해  어슴푸레 알 것 같다고 하면 이 책이 쉽게 만나질까? 그가 지향하는 국경, 안과 밖을 구분하는 그곳에는 문학이 있었다. 그가 쓰고 싶은 문학, 그가 갈망하는 문학,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그것은 문학이었다. 그가 떠나는 여행은 문학 여행은 그의 잠재된 의식을 깨움과 동시에 확신을 심어주는게 아닐까 싶다. 일본의 도쿄에서 죽은 이상을 찾아 떠난 그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36~37년을 헤메고 있는 조선 청년과 같았고, 25살 청춘인 독일 청년 푸르미를 만난 그곳에서 그는 25살 청춘을 떠올린다.

 스웨덴으로 입양되어 작가가 된 아스트리드를 만난 서울에서 같은 피가 흐르지만 한민족이라고 강하게 말 할 수 없는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문학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 김사량의 중국 망명의 여정을 따라 여행하면서 그가 꿈꾸는 것은 김사량이 그러했듯이 김연수가 경계를 넘어선 문학을 소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낯선 작가들을 검색하며 지명을 검색하며 어렵게 김연수의 문학 여행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적지 않은 볼멘 소리가 목에 걸려있다. 단순한 여행기는 아니지만  지역적 특색, 적어도 방문했던 도시의 위치에 대한 정보에 대해 인색하지 않았다면 이 책은 더 많은 점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김연수가 그러했듯이 이 책을 읽고 누군가는 이 책을 통해 만난 독일 밤베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중국 화뻬이셩 후쟈좡 마을을 향해 떠날 결심을 하고 있을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같은 곳을 또 다른 시대에 같거나 전혀 다른 시선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이 여행의 의미는 아닐까?

 혹시 한국에서 자꾸만 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는 까닭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문학이란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쓸 수 있을 때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써야만 하는 하지 않을까? 본문 201쪽
 
 김연수가 쓴 글의 느낌을 그대로 만나게 된다면 그 황홀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김연수는 문학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어디를 가든 문학을 통해 자신을 찾고 자신을 만들어 낸다. 그러기에 이 글에서 김연수라는 글을 탄생시킨다. 그러한 이유로 이 책은 양분된 독자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를 열망하거나 조금 실망하거나. 갑작스레 여권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이 인다. 아니, 그곳이 아니더라도 어디론가 새로운 나를 발견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내게도 여행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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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식물 - 세상을 보는 식물의 시선
마이클 폴란 지음, 이경식 옮김 / 황소자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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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 저자 마이클 폴란의 <잡식 동물의 딜레마>를 읽고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그 책에서 받은 강한 인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작에서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또한 욕망하는 식물이라는 제목과 더불어 세상의 보는 식물의 시선이라는 부제가 더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들면서 작은 텃밭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직접 기른 상추나 고추, 오이를 씹는 상상만으로도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연두색 고운 빛을 띈 상추, 까슬까슬한 오이는 과연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단 말일까? 

 저자는 사과와 튤립, 대마초, 감자 네 가지의 식물을 통해 인간과 식물이 함께 살아온 역사를 추적하고 앞으로 식물이 인간의 삶에 미칠 영향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네 가지의 식물의 이름을 들었을 때 딱히 욕망을 가진 식물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식물로 대두되는 대마초 하나뿐이었다. 민간 요법으로 약이 되는 몇 가지 식물들이 욕망을 꿈꾸는 식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무지와 선입견이 아닐까 싶다.

 사과를 떠올리면 에덴 동산이 자동으로 그려진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라는 열매를 먹게 됨으로써 고통을 부과 받았다. 물론 선악과가 사과라고 성경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는 대체로 그렇게 알고 있다. 그 정도로 사과는 최초의 과일처럼 그렇게 풍성한 과일이었음을 추측하게 된다. '조니 애플시드'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존 채프먼에 의해 사과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사과도 감처럼 접붙이기를 통해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사실 알지 못했다. 그냥 사과씨에서 맛난 열매를 맺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맛있는 사과였겠는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벌과 바람을 통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겠지만 사과의 욕망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을 사랑하게 된 인간으로 인해 사과는 더 많은 번식을 꿈꾸었고 발전을 꾀하게 된다. 다양한 색깔과 못생긴 열매도 있었으리라. 지금의 사과의 맛은 많은 돌연변이에 의해 생겨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은 달콤한 맛의 사과를 선택한다. 그 중심에 자연 그래도 씨를 심어 재배를 하고 사과를 세상에 널리 퍼뜨린 존 채프먼이 있다. 

 맛있는 과즙으로의 유혹인 사과는 그 욕망이 있다고 치면 수줍은 듯 단아한 튤립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한낱 꽃에 불과한 식물이 한 나라의 역사를 뒤흔들었다면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단색의 꽃을 피우던 무리들중에 엉뚱하게도 바이러스에 의해 생긴 복잡한 깃털무늬와 불꽃무늬는 17세기의 당시에는 아마도 신비의 기적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 변종 튤립의 알뿌리의 가격상승으로 인해 암흑적 뒷거래와 경매가 판을 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튤립이라는 식물에 조종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없이 올랐던 튤립은 언젠가는 내려가기 마련인데, 인간의 소유욕과 욕망이 참으로 어리석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런 인간의 욕심에 의해 지금 이 세상에는 튤립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 꽃은 본성적으로 은유적인 의미의 거래를 한다. 그래서 야생화가 무성하게 피어 있는 초원은 인간이 부여하지 않은 의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정원에서는 이런 의미들이 더욱더 많이 넘쳐난다. 정원에 피는 꽃들은 벌이나 박쥐 혹은 나비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좋음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온갖 인식들을 겨냥해서 자기 의도를 관철하기 떼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꽃과 인간이 거래를 텄고 이 결합의 결과, 즉 서로의 욕망이 경이롭게 공생함으로써 나타난 것이 바로 정원에 피는 꽃이다. 135쪽]

 튤립에 이은 대마초가 이 책에서 가장 궁금한 식물이었다. 독을 갖게 된 식물은 아마도 동물과 또 다른 식물에게 있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작은 방어책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쓴 맛이 있는 식물,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것들을 마구 먹지는 않으니 말이다.  대마초가 무엇 이길래 금기의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사는 많은 이들은 그들의 유혹의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대마초를 구성하는 어떤 물질이 인간에게 기억의 감소와 흥분을 주는지 알고 싶었다. 마이클 폴란이 한 때 대마초를 피웠었다는 이야기는 새삼 놀라웠고 그가 법적으로 금지된 대마초를 심었다가 경찰에 발각될까 전전근긍하는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냈다. 법적 금지인 식물을 키우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많은 마약류의 식물들 중에 유독 대마초가 심한 탄압 아닌 탄압을 받게 된데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그것은 튤립의 알뿌리로 인한 혼란과 같은 것이리라. 식물이 가진 힘은 참으로 강하고도 두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대 철학자들이 철학적 개념을 정립할 당시 취했던, 중세 마녀와 마술사들의 사용했던, 그리고 현재의 예술가들이 흡입하는 그 식물들의 가진 힘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론을 하는 사람들의 글과 자의 글에 그 가능성에 고개를 끄덕인다. 현재는 이 마약성 식물이 가진 성분을 통해 질병의 고통을 줄이는 약으로 쓰이고 있다. 

 앞 선 3가지 식물에 비해 감자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먹거리다. 식탁에도 자주 오르고 패스트 푸드점에서는 단연 인기가 많다. 가장 인간적인 식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식물을 지배할 수 있다는 인간의 욕망을 쉽게 만나게 되는 부분이었다. 땅속에서 자라는 열매, 흉년으로 기근이 심할때도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고마운 식물이 아니던가. 저자는 스스로 살충 성분을 생성하도록 조작된 감자씨(뉴 리프)를 직접 심으면서 '뉴 리프' 를 대량으로 재배하는 농장과 유기농으로 감자 농사를 짓는 농부를 만나게 된다.

 유전자 조작으로 이뤄진 '뉴 리프'는 단연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자연이라는 곳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은 또 다른 살충 성분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벌레, 또 다른 바이러스, 전염병을 몰고 올 것이다. 그것은 과학 기술이 발전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생물학적 다양성을 유지하며 여러 감자씨를  심어 자연이 부릴 수 있는 모든 변덕에 대비하는 것이 자연을 통해 배우는 사실이다. 결국 자신이 키우고 수확한 '뉴 리프' 를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게 대접할 요리에 쓰지 못한다는 것은 저자 뿐 아니라 누구도 당연한 것이다. 

 이 책은 <잡식 동물의 딜레마>에 비하면 조금은 지루했다. 내가 식물에 대한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을 취하고 있는 인간에게 식물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저가가 선택한 4가지의 식물을 통해서도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식물의 세계에는 얼마나 경이로운 것이 숨어있을까?

 식물들은 스스로 더 많은 후손을 퍼뜨리지 못하기에 때로는 독을 품게 되기도 하고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도 하고 가장 똑똑한 동반자인 인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인간 또한 식물들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맛과 향을 취하게 되고 그들을 지배할 수 있다는 욕망으로  인간에게 유리한 유전자로 조작된 많은 식물들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조작된 식물들이 인간 모르게 자연의 힘으로 서로 합쳐 새로운 돌연변이를 만들 수도 있고 그것이 인간에게 위험을 몰고 온다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안다. 그러기에 '존 채프먼'이 사과가 자기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것처럼 자기 역시 사과를 위해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처럼 인간은 수많은 식물들과 서로 공진화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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