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의 연인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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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하건대 정미경의 소설을 무척 기다려왔다. 두툼한 책을 한 장 한 장 쓰다듬으며 아껴가며 책을 읽었다. 앞서 만난 기존의 소설보다 우리에게 더 가깝고 조금 더 편안하며 속물적이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이 소설집 현실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또한 작가 정미경이 가졌던 삶에 대한 촘촘하고 단단한 자신만의 생각뭉치를 넉넉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하게 쉽게 풀어놓지 않았다. 바로 그런 점이 정미경의 소설이 가지는 힘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연인을 이용해 경제적 안식을 취하려 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연인은 아무리 사랑한다고 소리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관계가 되버리고 마는 소설 < 너를 사랑해 >, 현실과 이상은 남편과 애인으로 대두되고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힘든 고난의 현실은 사라졌지만 결코 이상적인 삶을 만날 수 없음을 알게 된 < 들소 >, 아이만 있다면 둘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꺼라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남편과 자신의 문제는 아이가 아닌 본질적인 다름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 바람결에 >, 아들의 가난한 연인을 통해 자신의 젊은 날을 돌아보며 추억하지만 사랑이 아닌 현실을 선택한 자신의 부유하고 넉넉한 삶을 후회하지 않는 주인공 나, 아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지만 아들이 현실을 선택해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 내 아들의 연인 >.

 소통의 부재속에 살고 있는 내게 다가온 한 여자를 통해 새로운 소통의 대상을 확신하지만 결코 그녀가 이명(耳鳴)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삶의 굴레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자신과 닮은 사람이었음을 말하는 < 매미 >,  믿고 싶지 않은 것, 보고 싶지 않은 것,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의 사랑을 이해받고 싶어하는 모습을  색을 통해 풀어낸  < 시그널 레드 >, 과거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열정을 쫓았지만 현실은 열정의 허무와 껍질뿐임을, 그저 과거의 기억은 그렇게 기억속에 존재할 때 의미가 있다고 소리치는 < 밤이여, 나뉘어라 >.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소설,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적당한 짐 하나를 내려놓는 소설, 쉽지 않은 소설들, 읽는 동안 불편한 마음을 불러오기도 했다. 한편으로 한 문장 한 문장 끊임 없이 메모를 하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도 했다.  소설에는 지금의 우리가 있었다. 정미경이 소설을 쓸 당시의 2007년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두 편의 소설을 제외하고 소설속 화자나 등장인물은 모두 Y, K, P,M 로 나타난다. 그 영문자 대신 나의 이름, 혹은 당신의 이름을 넣는다면 그것은 바로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이런 소설을 쓰기에 정미경의 소설이 독자에게 기대감을 주는게 아닐까 싶다.

 현실과 이상,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 이상이라 믿었던 세상은 한낱 꿈처럼 허무하고 불편한 세계일까? 선택의 몫은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본인뿐이기에 우리는 꾸준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열심을 내는 대로 계획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이 삶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기억한다.

 이래도, 이래도 , 하며 삶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툭툭 던져놓는다. < 들소 -  69쪽 >
 ....... 이제 누구도 내게, 넌 무얼 원하냐고 묻지 않지만, 늙고 시든 채로, 손에 쥔 먼지만큼의 날들을 살아내야 할 무녀처럼 생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내게도 있다. 158쪽 < 내 아들의 연인 - 158쪽 >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내 객관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얼굴을 갖고 있는지, 영원히 변치 않는 건 다만 이 초라하고 지리멸렬한 삶 그 것뿐이란 것도.  < 매미 - 19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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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굽는 시간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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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증을 위한 치료을 위해 만난 마약에 예상외로 강하게 중독된 기분이다. 조경란, 그녀가 그러하다. 1996년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우리 문학의 빛나는 정수를 잇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7년 <달의 바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은 정한아를 인터뷰 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 사이 많은 글을 쓰고 책을 출판했으며  최근 작품 <혀>는 영어로도 번역되어 세계의 독자와 만나게 되었다. <식빵 굽는 시간>는 마치 그녀의 민낯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맑고 투명해서 핏줄까지 드러나 보일 것 같은 그런 글이었다. 
 
 엄마와 이모, 그리고 아버지의 관계, 이복 남매인 한익주와 한영원과 주인공 강여진의 관계. 두 여자와 한 남자의 관계는 일반적으로도 보기에도 불편하고 불안해 보인다. 빵을 만드는 여진은 자신을 둘러싼 그들을 식빵, 브리오슈, 크루아상, 화이트케이크, 소보로빵, 사과파이, 크레프 등 빵으로 비유한다. 어떤 방이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빵이었을까. 아니,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특별한 빵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는지 모른다.

 냉대에 가깝게 차가웠던 부모와의 관계는 글의 초반부터 그녀의 출생을 암시하고 있다.  암으로 죽은 엄마, 그 후 1년 뒤 자살한 아버지. 그 후 자신의 생모라는 것을 말해주고 사라져버린 이모. 그들의 부재는 이제 지속되어왔던 불편하고 모호한 관계의 부재를 명확하게 인정한다. 여진이 그네들을 생각하며 빵을 만들었던 것은 관계의 개선을 위한 욕망의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반죽이 숙성되는 시간을 거쳐 새로운 맛을 탄생시키는 것 처럼.
 
 모호하고 어지러운 소설이다.근친상간, 존재와 부재, 지나간 기억, 잡히지 않는 현재.  아무것도 분명한 게 없다. 여진의 심리상태는 적당한 불안을 감추며 태연하다. 이제 그녀와 관계를 맺은 사람은 모두 떠나버렸다. 그녀 혼자만이 홀로 남았고 이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한 순간 부풀어 '뻥' 외마디 소리와 함께 터져버리는 슬픔과 절망의 풍선을 안고 있는 것 같다. 여진, 그녀속에 살아있을 조경란에 대한 답답함과 안쓰러움이 쏟아진다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속에서 조경란의 다른 소설속 인물들을 만난게 된다. <나의 자줏빛 소파>에서 느꼈던 상실감, 불안감, 허무감이 그것이다. 조금 더 면밀하고 조금 더 확장된 감정의 가지들. 

이건 정말 이상한 관계예요. 엄마
모든 관계는 만질 수 없는 거란다. 너는 자꾸만 만지고 확인하고 싶겠지만 글쎄...... 부질없는 거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만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별 미련이 없구나.
저는 고독해요 엄마
얘야,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다...... 죽음과 만나지 않은 고독이란 고독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란다. 32~33쪽

 확인하고 싶은 관계는 그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여진은 사랑에 대해 목이 마른 상태이며 죽음을 앞두고 그것이 부질없는 욕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엄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욕망과 싸우고 절망해야 우리는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욕망이 너무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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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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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는 요즘, 수줍은 봄을 만났다. 알싸한 봄 내음을 터뜨릴 것 같은 시가 변덕스런 장마로 지친 마음을 잊게 한다.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라는 제목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의 속삭임 같다. 사실, 문장(http://www.munjang.or.kr/)에서 현재 문학집배원인 나희덕님이 보내주는 메일을 꼬박 꼬박 받고 있었지만 차분하게 듣고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시' 라는 문학 장르는 얼핏 우리와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무척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매일 매일 시를 선정해서 배달하는 문학집배원 안도현 이라는 이름 때문일까, 안도현의 엮어 놓은 시는 왠지 믿음이 간다. 

 사실, 여기 수록된 52편의 시와 시인들은 내게는 많이 낯선 이름들이었다. 그 생경한 느낌을 문학집배원 안도현친절함을 베풀어 친근감으로 거들고 있다. 시를 읽어가면서 문득 시를 쓴 시인이 궁금해진다. 그는 어떤 사람 이길래, 이런 시로 세상을 흔들어 깨우고 세상을 아름답게 할까?  바로 이 시를 지은 시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 홍신선

2월의 덕소(德沼)근처에서
보았다 기슭으로 숨은 얼음과
햇볕들이 고픈 배를 마주 껴안고
보는 이 없다고
녹여주며 같이 녹으며
얼다가
하나로 누런 잔등 하나로 잠기어
가라앉는 걸.
입 닥치고 강 가운데서 빠져
죽는 걸.

외돌토리 나뉘인 갈대들이
언저리를 둘러쳐서
그걸
외면하고 막아주는 한가운데서
보았다,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인 걸.

 아,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 인 걸. 자꾸만 이 구절에 머문. 시는 왜 이리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걸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이 시는 내게 그렇게 말을 걸고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야채사(野菜史) - 김경미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의 입에 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맛없었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꽃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꽃 수북했겠다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던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 팔다리가 워낙 맛있다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나왔든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시인지 모르겠다. 정말 내가 낙타였을까. 엉뚱한 상상이 이어진다. 우리의 인생이 사막을 건너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쩜 맞을지도 모르지 않나. 아침, 저녁 밥상에서 마주하는 야채가 감사하기까지 하다. 

 시가 가진 함축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자칫 시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기 마련인데 여기 담긴 시들은 그런 걱정을 덜게 한다. 또한 이 시집에는 육성낭송시집(CD)가 함께 있어 시를 읽고 듣는 두 배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시를 만나려고 부푼 마음을 먹고 있는 내게 여기 수록된 시는 새로운 시인과의 만남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요즘 사실, 시는 인기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예전에 흔하게 책이나 시집을 읽으며 자투리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의 손에는 이제는 모두 핸드폰과 게임기가 자리하고 있다. 구세대로 속하고 있는 나는 그대로 여전하게 시가 좋다.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 유안진

겨울에는 불광동이. 여름에는 냉천동이 생각나듯
무릉도원은 도화동에 있을 것 같고
문경에 가면 괜히 기쁜 소식이 기다릴 듯하지
추풍령은 항시 서릿발과 낙엽의 늦가을일 것만 같아

춘천(春川)도 그렇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
얼음 풀리는 냇가에 새파란 움미나리 발돋움할 거라
녹다 만 눈응달 발치에 두고
마른 억새 깨벗은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파고 있는 진달래꽃을 닮은 누가 있을 거라
왜 느닷없이 불쑥불쑥 춘천을 가고 싶어지지
가기만 하면 되는 거라
가서, 할 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거라

그저, 다만 새봄 한아름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몽롱한 안개 피듯 언제나 춘천 춘천이면서도
정말, 가본 적은 없지
염두가 안 나지, 두렵지, 겁나기도 하지
봄은 산 너머 남촌 아닌 춘천에서 오지

여름날 산마루의 소낙비는 이슬비로 몸 바꾸고
단풍든 산허리에 아지랑거리는 봄의 실루엣
쌓이는 낙엽밑에는 봄나물 꽃다지 노랑웃음도 쌓이지
단풍도 꽃이 되지 귀도 눈이 되지
춘천(春川)이니까.

 내게도 그저 춘천이니까로 이어지는 젊은 날의 추억이 되살아 난다. 무료한 가을 날, 아무런 이유없이 춘천이 그리워 강의를 잊은 채 친구와 떠난 춘천행. 그러나 막상 떠난 춘천행의 기차는 김현철이 부른 ' 춘천 가는 기차'가 아니었다.  계획하지 않았던 여행은 입석으로 서울까지, 그리고 다시 춘천까지의 왕복은 고생 그 자체였다. 그래도 부서지는 햇살을 껴안은 한 장의 사진은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나는 그 시간, 그 춘천이 마냥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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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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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피는 고래>라는 제목에서 파스텔빛 아름다움과 알 수 없는 슬픔이 전해진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 김형경이라는 이름이 함께라 그러하리라.  그녀의 소설에서는 항상 슬픔이 묻어났다. 선연한 빛깔의 슬픔보다는 보일듯 말듯 조금 혼란스러운 슬픔이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 내재된 트라우마를 간직한 이들이 세상과 소통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가득했고 끈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메는 이들이 존재했다. 오랜만에 선보인 소설, 책을 여니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그녀가 보인다.

 열 일곱, 니은은 이제 막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은 소녀다. 환하게 웃는 모습은 이제 사진속에서만 존재한다. 갑작스레 닥쳐온 슬픔, 준비할 시간도 준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부모를 잃은 마음을 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열 일곱, 소리 내어 말해도 핑크빛이 물드는 나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니은은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하루 하루 꿈속에서 엄마,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 속 바다를 본다. 

 아빠의 고향 처용포에서 니은은 오랜시간 고래를 잡으며 살았던 장포수 할아버지와 식당을 운영하며 한글을 배우는 왕고래 할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게 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거운 시간을 보낸다. 학교도 친구도 친척도 니은을 달래줄 수 없고 니은을 이해할 수 없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마음, 세상을 향한 분노를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 할머니는 너그러이 받아주고 니은의 마음을 위로하며 쓰다듬어 준다.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 할머니에게도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고래를 향한 할아버지의 애정, 죽은 남편에 애절한 할머니의 사랑을 니은에게 꺼내놓는다. 

 17살 소녀가 겪기에는 너무도 큰 슬픔을 작가 김형경은 고래잡이가 유명했던 시골 어촌 처용포의 자연을 담아 치유하고자 한다. 곳곳에 자연이 남겨준 처용과 황혹에 관한 이야기, 존재가 확실히 않은 바다생물, 그 안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통해 니은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도록 하고 있다. 니은의 너울 같던 마음이 잔잔하게 바뀔 때 니은은 어른이라는 문을 만날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17살이 있었을까,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하는 니은의 마음은 내가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내 나이에 무얼했나고 묻는 것과 같다. "여든살이 돼도 맘속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다. 열살 때 생각을 하면 열살이 되고 마흔 살 때 생각을 하면 마흔살이 되지. 열살처럼 세상을 보다가, 마흔살처럼 세상을 보다가 한다." 257 장포수 할아버지의 말처럼  책 속의 니은은 17살 소녀이지만 니은을 통해 내 모습을 보기도 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내일,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지금 이 나이에 남들은 무슨 생각으로 살았을까 궁금한 우리네 모습과 닮았다.

 "기억하는 일은 왜 중요해요?"
 "그것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지. 잘 떠나보낸 뒤 마음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 236쪽

모든 것을 마음에 담고 살수는 없다. 그것은 이별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상처일 수도 있다. 니은이 부모님을 기억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것 처럼 우리의 삶은 떠남의 연속일지 모른다. 떠나보냄과 동시에 새롭게 살게 하는 것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니은도 알게 될 것이다. 

 니은에게
매일 희망을 보낸 영호 언니의 문자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라고 말하듯 내게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게 한다. 누구도 치유할 수 없을 것 같은 크나큰 상실과 슬픔도 때로는 작은 메모, 지속적인 작은 관심이 치유의 약이 되어 슬픔을 무너뜨릴 것이다.  내가 보낸 문자도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격려가 되어 희망의 존재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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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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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의 만남은 계획하지 않았던 일상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때로는 불쾌감이나 당혹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묘한 설렘과 기대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전자를 기대하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자 떠나는 여행은 새로운 곳에서 삶을 정착하게 만들기도 하고 자신이 돌아와야 할 곳이 있음을 감사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행,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많은 뜻을 담고 있는 의미심장한 단어로 들린다. 소설가 김연수가 쓴 산문집 <여행할 권리>를 읽는 내내 이상은이 노래하는 <삶은 여행>이라는 말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소설가가 쓴 산문은 여타의 산문집보다 우선적으로 주목을 받는다.  작가의 기존 작품을 만나고 특히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책을 만남으로 작가와의 즐거운 대화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연수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아직 그렇다 라는 답을 할 수 없는 독자는 이 책에 대해 한 권의 여행기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여행기가 맞다. 그러나 보편적인 여행기와는 차별적인 여행기라 할 수 있다. 주제가 있는 여행기이며 지극히 김연수적인 주관적인 글이라는 점이다. 물론 모든 글이 그러하겠지만 여행할 권리는 특히나 그러하다

 김연수가 생각하는 문학에 대해  어슴푸레 알 것 같다고 하면 이 책이 쉽게 만나질까? 그가 지향하는 국경, 안과 밖을 구분하는 그곳에는 문학이 있었다. 그가 쓰고 싶은 문학, 그가 갈망하는 문학,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그것은 문학이었다. 그가 떠나는 여행은 문학 여행은 그의 잠재된 의식을 깨움과 동시에 확신을 심어주는게 아닐까 싶다. 일본의 도쿄에서 죽은 이상을 찾아 떠난 그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36~37년을 헤메고 있는 조선 청년과 같았고, 25살 청춘인 독일 청년 푸르미를 만난 그곳에서 그는 25살 청춘을 떠올린다.

 스웨덴으로 입양되어 작가가 된 아스트리드를 만난 서울에서 같은 피가 흐르지만 한민족이라고 강하게 말 할 수 없는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문학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 김사량의 중국 망명의 여정을 따라 여행하면서 그가 꿈꾸는 것은 김사량이 그러했듯이 김연수가 경계를 넘어선 문학을 소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낯선 작가들을 검색하며 지명을 검색하며 어렵게 김연수의 문학 여행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적지 않은 볼멘 소리가 목에 걸려있다. 단순한 여행기는 아니지만  지역적 특색, 적어도 방문했던 도시의 위치에 대한 정보에 대해 인색하지 않았다면 이 책은 더 많은 점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김연수가 그러했듯이 이 책을 읽고 누군가는 이 책을 통해 만난 독일 밤베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중국 화뻬이셩 후쟈좡 마을을 향해 떠날 결심을 하고 있을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같은 곳을 또 다른 시대에 같거나 전혀 다른 시선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이 여행의 의미는 아닐까?

 혹시 한국에서 자꾸만 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는 까닭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문학이란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쓸 수 있을 때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써야만 하는 하지 않을까? 본문 201쪽
 
 김연수가 쓴 글의 느낌을 그대로 만나게 된다면 그 황홀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김연수는 문학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어디를 가든 문학을 통해 자신을 찾고 자신을 만들어 낸다. 그러기에 이 글에서 김연수라는 글을 탄생시킨다. 그러한 이유로 이 책은 양분된 독자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를 열망하거나 조금 실망하거나. 갑작스레 여권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이 인다. 아니, 그곳이 아니더라도 어디론가 새로운 나를 발견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내게도 여행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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