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오병상 특파원]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 28일자 매거진은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한 게 아니라 로마 장군 옥타비아누스(황제 취임 뒤 아우구스투스 대왕)가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에 물려 자살했다는 얘기는 역사가 플루타르크에 의해 처음 기록된 이래 셰익스피어 등 수많은 작가의 극화로 거의 정설처럼 자리잡았다.
독사인 이집트 코브라에 물릴 경우 몸이 천천히 마비돼 죽는데 대략 2시간이 걸린다.
또 이집트에서 자살은 금기다.
더욱이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장 거부감을 느끼는 동물인 뱀에게 일부러 팔을 물리는 일 자체도 쉽지 않다.
또 당시 상황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죽기를 가장 바란 사람은 옥타비아누스다.
그 과정에서 클레오파트라를 신으로 믿고 있던 이집트인의 동요를 막기 위해 왕실의 상징인 뱀을 동원해 자살한 것처럼 상징조작을 했다는 게 선데이 타임스의 추론이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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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 그림 정말 맘에 안든다. 저런 표정으로 뱀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 마치 클레오파트라가 두 남자(카이사르, 안토니우스)를 홀렸던 꽃뱀인 것처럼 비하하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선데이 타임스의 추론을 판단하기에 앞서 이 특파원도 글을 잘못 썼다. 많은 사람들이 황제, 대왕, 왕, 황태자, 왕자, 폐하, 전하 등등의 호칭을 임의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용어다. 옥타비아누스는 내전에서 승리한 후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그 자신은 '제 1인자(프린켑스)'로서 로마를 통치하였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때부터 제정의 시작으로 보고 있지만 오랜 공화정의 전통을 지닌 로마에서 바로 '황제'라는 칭호는 사용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의 통치는 프린키파투스(원수정,元首政)으로 불린다. 실질적으로는 제정이지만 명목적으로 공화정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왕'이라는 칭호는 전혀 올바르지 않은 표현이다. 대략 옥타비아누스가 살았던 시기까지 계속된 헬레니즘 시대에서 '대왕'이라는 칭호는 단 두사람만이 얻었다. 바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셀레우코스조 시리아의 왕인 '안티오코스 3세'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글의 문제점을 비판하자면 별 근거도 없이 단순한 추측으로만 클레오파트라가 살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선 이집트 코브라에 물려 죽는 데 2시간이나 걸린다는 것.... 나야 뱀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니까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2시간이란 시차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모르겠다. 만약 뱀에 물린지 2시간 내에 옥타비아누스가 클레오파트라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면 아직 여왕이 살아있을 것이고 따라서 옥타비아누스가 살해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실제 옥타비아누스가 언제 도착했는지는 잘 모르므로 우선 이건 넘어가겠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자살은 금기이기 때문에 자살했을 리 없다는 주장... 아무리 자살이 금기라 해도 실제로 이집트인 중에 자살한 사람이 없었을까? 게다가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인이 아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3대 왕국 왕가사람들은 전부 그리스계였다.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도 그리스식 이름이며, 대대로 이집트를 통치했던 라지드 왕가 사람들이 흔히 사용했던 프톨레마이오스, 베레니케, 클레오파트라, 아르시노에라는 이름도 모두 그리스식이다. 게다가 비그리스 문화권의 헬레니즘 지배자들은 현지인들과 조금도 동화되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지역에서는 헬레니즘화가 진행되었다. 역대 프톨레마이오스 왕가 사람들 가운데 이집트어를 할 줄 알았던 사람이 클레오파트라뿐이었을 정도로 그들은 그리스식 전통을 유지하였다. 참고로 우리가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는 정식 칭호가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런 클레오파트라가 굳이 이집트인들의 금기를 신경쓸 이유가 없다.
또 세번째로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장 거부감을 느끼는 동물인 뱀에게 일부러 팔을 물리는 일 자체도 쉽지 않다'라는 추측은 가장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뱀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해서 자살하는 데 뱀을 이용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즉,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 언제나 적용되리라는 단정할 수 없다. 게다가 기사에는 뱀이 이집트 왕의 상징이라고 써 놓았는 데, 그러면 뱀에 대한 거부감이 더욱 줄어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오히려 이집트 왕의 죽음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뱀을 이용한 자살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클레오파트라가 가장 죽기를 바랬던 것이 옥타비아누스였기 때문에 그가 살해했다는 것... 맞는 말이긴 하지만 역시 직접적인 근거에 뒷받침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헬레니즘 시기 말기에 이르면 토착 이집트인과 그리스인 지배자 사이에 대립이 격화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미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 시대에 이집트인들은 그리스인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이들이 외국인 지배자를 위해 충성을 다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헬레니즘 시대 초기부터 3대 왕국의 그리스, 마케도니아인과 원주민 사이에는 차별이 이루어졌었다. 왕족, 대신, 고위급 군 지휘관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리스, 마케도니아인이었다.
한마디로 선데이 타임스의 주장은 구체적인 증거가 아니라 단순한 추측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클레오파트라를 미인계를 이용해 로마의 영웅들을 이용한 악녀로 보고 있고, 할리우드 영화들도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를 그런 식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이런 시각으로만 클레오파트라를 바라보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여왕이 그런식의 계책을 사용한 것은 나라를 존속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클레오파트라가 살았던 시대는 헬레니즘 시대가 활력을 잃고 점차 몰락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녀의 아버지였던 클레오파트라 12세는 한때 이집트를 떠나 로마로 망명해야 했을 정도로 이집트의 내분은 심각한 상태였고, 다른 헬레니즘 국가들도 쇠약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로마는 점차 헬레니즘 국가들을 정복해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활력을 잃어버리고, 국내외로 위기를 맞은 이집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나라를 이어나가고자 한 것이었다. 어차피 로마의 그늘 아래 머무를 수 밖에 없었지만 왕가를 끝까지 지켜내고자 노력했던 여왕의 노력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실제로 헬레니즘 국가들 중 이집트는 가장 오랫동안 존속했다.
오늘날 영상매체를 통해 역사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그에 따른 많은 이익도 있지만 잘못된 역사적 지식을 얻는 경우도 많다. '로마 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라는 책을 보면 영화를 통해 서양 중세사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여러 영화에서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역사적 사실을 판단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하는 점이 많다는 것을 이 기사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