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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의 별 11 - 완결
김혜린 지음 / 팀매니아 / 1996년 3월
평점 :
절판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간다. 내가 이 작품을 만난지도. 한창 감수성 예민한 중학생 시절, 부모님 모르게 다니던 만화방에서 눈물 훌쩍여가며 읽은 책이 바로 <북해의 별>이었다. 음침한 지하 한 귀퉁에서 조잡하게 만들어진 소파에 앉아 낡은 책에 눈물 떨구며 읽던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대본소용 책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주인 아저씨 몰래 가지고 나가고픈 욕구마저 불러일으켰으니... 잠시나마 그런 욕망과 싸우는라 엄청 힘들었었다. 그래도 내 안을 채우고 있던 도덕적 양심이 손을 들었다. 다름아닌 유리핀의 잔잔한 음성이었다. 그의 일생과 그가 이루어 놓은 일을 보면서 아무리 탐이 난다한들, 남의 물건을 훔칠 수는 없지 않은가. 정말로 훔치고 싶었던 만화. 온갖 극찬을 다 퍼부어도 모자랄 만화.. 어린 시절 내가 읽었던 <북해의 별>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 위의 책처럼 단행본으로 북해의 별이 재출간 되었다. 그 때만 해도 난 고등학생이었는데, 용돈을 받지 않았다.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용도를 설명하고 부모님께 타 쓰던 때였다. 나는 다른 학생들이 그러듯이 책 값을 떼어먹었다. 유달리 선생님들과 친했던 나는 학교에서 지정해주는 문제지를 비매품으로 받고, 부모님께는 책 값을 받는 앙큼한 짓을 했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만화책을 샀다. 최초로 산 만화책이 바로 <북해의 별>이었다. 새로 출간되었음에도, 서점에는 1,2,8,9,11권 밖에 없었다. 있는 거라도 사자는 심정에 띄엄띄엄 샀고, 그 뒤 <북해의 별>은 자취를 감췄다. 구해보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건만, 아직까지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그 때 이 만화책을 사고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모른다. 에델과 같이 울었고, 유리핀과 같이 절규했다. 비요른과 같이 분노했고,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모두의 감정이 내 안에 이입되어 누구도 밉지 않았다. 다만..많이 아팠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춘기 시절 누군가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김혜린님의 데뷔작이 <북해의 별>이란 걸 생각하면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가 새삼 깨닫게 된다. 한 사회를 이렇게 적나라하면서도 고스란히 내 보일 수 있다는 데 감탄했다. 이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의 정서가 묻어나는 이 책에 홀로 감동했다. 유리핀이란 구세대 인물을 내세워 전제국가에서 공화국으로 변모하기까지의 보드니아를 보며 내 나라 이 땅을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는 대한민국을 변모시켜 줄 인간다운 인간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영웅이라 불리지만, 결코 영웅이 아니다. 단지 남들보다 더 고뇌하고, 남들보다 더 괴로워하며, 남들보다 더 인내하고, 남들보다 더 포기할 줄 아는 신념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매료된 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새 시대를 열어간 것이었다. 모두가 힘을 합하여 모두를 위한 세상을 만드는 일은 그저 꿈으로만 여겨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모두가 조금씩 아픔을 나눠가지면서, 조금씩 양보하면서 자신들의 꿈을 가꿔 나가는 세상... 그런 세상이 진정으로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아닐까...
헛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혹은 구체제 하에 누렸던 이익을 포기하지 못해서, 빛 바랜 영광에만 집착하여 다가올 새 시대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역사라는 거대하면서도 도도한 물줄기를 끊어보려는 부질없는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에몬 라루나 아서 보르티크, 화라 백작, 비요른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