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을 미리 적는다. 요즘은 자연스레 새로 나온 책들을 '이주의 책' '이주의 저자' '이주의 발견' 거리로 자동분류하는데, 소어 핸슨의 <깃털>(에이도스, 2013)은 눈에 띌 때부터 '이주의 발견'으로 분류해놓은 책이다.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걸작'이 부제. 말 그대로 '깃털'을 다룬 책이다. 소개는 이렇다.

 

2013년 존 버로스 메달 수상작. 생물 진화상 가장 경이로운 걸작으로 꼽히는 깃털의 자연사와 문화사를 흥미롭게 녹여냈다. 깃털은 인간의 첨단 테크놀로지로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공기 역학, 보온과 보호 등의 측면에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의 외피 중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경이로운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깃털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생물 진화라는 과학적 내용은 물론 역사, 패션, 신화, 산업, 예술, 낚시, 문학 등 깃털과 관련된 문화와 역사를 광범위하게 풀어냈다.

저자 소개에는 그가 보존생물학자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구와 생물보존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중앙아메리카의 나무와 명금류, 탄자니아의 둥지 약탈, 아프리카대머리수리의 먹이섭취 습성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깃털에 대한 관심은 바로 대머리수리 때문에 갖게 됐다고. 그가 대머리수리와 대머리수리 깃털에 대해 내내 생각하다가 조깅에 나선 길에 한 무리의 대머리수리와 마주치고 그 중 한 마리가 머리 위로 깃털 하나를 떨어뜨리고 가자 이 책의 운명이 결정됐다고 고백한다.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 글이 당신을 선택하는 것이다"라는 대학 학부시절 글쓰기 세미나에서의 격언을 의미심장하게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이면서. 아마도 영어판 표지의 깃털이 그 깃털인가 보다.  

 

 

아무튼 '깃털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흥미로운 책이 출간돼 반갑다. 지난주보다 이번주가 조금 더 나은 인상을 갖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이런 책들의 '발견' 덕분이다. 게다가 표지도 아주 깔금하다(원서 표지보다도 더 맘에 든다)...

 

13. 0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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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오전에 일정이 없어서(원고를 제외하면) 잠시 쉬는 김에 어제 배송받은 바디우의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논밭출판사, 2013)를 들춰본다. 소련을 비롯한 국가공산주의의 붕괴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 책으로 지젝이 몇 차례 언급하고 있어서 궁금하던 차였다.

 

 

책을 낸 출판사가 생소한데, 주소지가 충남 천안으로 돼 있는 곳이다. 2010년에 첫 책을 내고 바디우의 책이 세번째 책이다. 나는 네그리의 <욥의 노동>(논밭출판사, 2011)도 구입했었다(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읽어보려고 하면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 없다). 표지만 봐도 알 수 있지만 '통상적인' 출판사는 아니다. 펴낸이와 옮긴이가 같은 걸로 보아 대표가 번역한 책을 펴내는 1인 출판사다. 주로 이론/철학서를 펴내는 것으로 보아 역자의 전공이 이 분야이거나 이쪽에 매니아적 관심을 갖고 있는 듯싶다(역자 소개에는 '젖소와 한우를 키우며 농사를 짓고 있다'고 돼 있다. 곧 출판사 대표이자 목장 경영주다. 그밖에 다른 경력은 나와 있지 않다).

 

 

흠,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바디우의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는 1998년에 나온 에세이로 분량상 팸플릿에 해당하는 책이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보다는 '두꺼운' 책이지만 프랑스어본도 100쪽은 넘기지 않을 걸로 짐작된다. 한국어판에서의 분량이 정확히 60쪽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140쪽 분량이 '역자의 공부노트'다. '역자 해제'가 길게 붙어 있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데리다가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을 번역하고 장문의 해제를 붙인 경우가 내가 아는 사례다. '후설'보다 '데리다'에 관심이 있어서 읽기도 하는 텍스트다. 하지만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는 사정이 다르다. 굳이 '역자의 공부노트'에까지 관심을 갖고 이 책을 구입한 독자가 얼마나 될까.

 

알라딘에 뜬 목차에는 'Ⅱ-Translator’s Note : 당-없는-정치 69'이라고 돼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통상적인 '역자 노트'라고 생각해서 무심코 지나쳤다. 69쪽 이하 전체가 '역자 노트'인 줄은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런 걸 일종의 '끼워넣기'라고 해야 할까(구매자 입장에서 보면 '끼워팔기'다). 사정이 그렇다면 책 표지에 바디우의 이름과 함께 역자이자 노트의 저자 이름이 들어갔어야 한다고 본다. 전체의 1/3만 수록하고 있는 글의 저자만 표지에 박아두는 것은 뭔가 공정하지 못하다. 그리고 독자를 오도할 소지가 있다. 아직 번역과 역자의 노트를 읽어보지 않아서 더이상의 판단은 유보하지만, 제목대로 '모호한 재앙'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든다.

 

 

조만간 방한할지도 모른다는 바디우의 책은 최근에 몇 권 더 나왔다. 공저 형태지만 <라캉, 끝나지 않은 혁명>(문학동네, 2013)과 <아듀 데리다>(인간사랑, 2013) 같은 책들이다. 바디우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는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출학>(동녘, 2013)에 수록된 서용순 교수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알라딘에서 제공한 '미리보는 2013 인문교양 하반기' 목록을 보니 단독저작도 하반기에는 두어 권 예정돼 있다. 베케트에 대한 책,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책 등이다.

 

 

최근에는 <시네마>와 <철학과 사건> 등의 책도 영어본이 나와서 바로 주문해놓은 상태다. 그런 독서의 워밍업으로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를 집어들었는데, 흠, 독후감은 나중에 다시 적도록 하겠다...

 

13.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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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은 앤서니 보개트의 <무성애를 말하다>(레디셋고, 2013)이다. '모성애'가 아니라 '무성애'(asexuality)다.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그리고 무성애.

 

 

일단 주제부터가 눈길을 끄는데, 역자 임옥희 교수에 따르면 무성애가 특정한 성 범주로 등장한 것은 2000년부터라고 한다. 데이비드 제이란 인물이 선구적인 역할을 했는데, '무성애'를 검색하면 아메바밖에 안 나오던 시절에 무성애 웹 사이트를 만들고 무성애 교육 네트워크인 '에이븐'을 창시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무성애를 말하다>의 저자 앤서니 보개트는 무성애를 포괄적으로 연구한 캐나다의 성 과학자로 무성애 연구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다. 소개는 이렇다.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무성애 연구의 ‘아버지’ 앤서니 보개트가 현대 사회에 등장한 또 다른 성애인 무성애를 고찰한 책이다. 세계 최초로 현대 무성애를 다룬 이 책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서야 수면 위로 떠오른 무성애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 또, 실제 무성애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이를 통해 무성애를 쉽게 설명해 준다.(...)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무성애의 정의부터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무성애를 말하다>는 무성애에 관한 탁월한 입문서이자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관점에서 성애를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뭔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 양서라면 거기에 딱 맞는 책. '무성애자'가 궁금한 분은 지금 바로 검색해 보면 된다. 위키피디아에는 이런 정보도 들어 있다.

영국에서 1만 8000명을 조사한 결과, 약 1%인 180명 정도가 무성애자로 판명되었고,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전 세계 인구의 1%인 7,000만명이 무성애자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또한, 백인과 대비 되는 유색 인종들이 무성애자일 가능성이 높고,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들이 무성애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무성애를 물론 진화적 본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성의 오작동이거나 문화적 적응으로 보는 게 진화심리학적 입장일 것이다. 이런 쪽으로도 앞으로 관련서가 더 나오면 좋겠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무성애를 말하다>에 참고문헌과 색인이 다 빠져 있다는 점이다. 원서에도 빠져 있을 리는 없을 테니 번역본에서만 누락된 게 아닌가 싶다. 새로운 분야를 처음 소개하는 책일수록 그런 정보가 요긴한데, 아쉽다...

 

13.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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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한 주가 끝나고(오늘도 아직 일거리가 남아 있지만) 내일은 다시 강의차 지방에 내려간다. 매주 반복되는 일정이다. 주말에도 밀린 일이 잔뜩인데, 이번주엔 정리해야 할 책도 많다. 평소의 1.5-2배 정도 되는 듯싶다. 이런저런 강의준비로 읽어야 할 책이 잔뜩인데, 조만간 책이사를 해야 하기에 서재와 거실은 이사 모드로 진입하고 있다. 대체 휴가는 언제 가야 한단 말인가, 푸념이 나올 만도 하다(실상 내가 원하는 휴가는 아무 일정 없이 며칠간 휴양지에서 책을 읽는 것 정도지만).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다. 푸념이 나올 때마다 입막음용으로 쓸 만한 책들도 있는 걸 보면. 휴가에 대한 푸념이 나올 때 읽을 책은 물론 여행서다. 프랑스인 저자 둘이 쓴 <여행정신>(책세상, 2013)은 어떤가. '현명한 여행자를 위한 삐딱한 안내서'가 부제다. 제목은 <여행정신>이지만, 사전식 구성을 하고 있기에 <여행사전>이나 <여행의 언어>란 제목이 붙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책이다. 간명한 소개는 이렇다.

여행지나 여정에 따라 감상을 써내려간 여행 에세이가 아닌, 알파벳 순서에 따라 여행과 관련한 항목들을 사전 형식으로 서술하면서 여행 자체를 사유하고 있는 색다른 여행서. 여행 에세이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사진 한 장 없다. 여행을 직시하지 않고 카메라 렌즈를 통해 여행의 충격을 가라앉히는 행위나 어딘가 다녀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수료증 같은 사진 더미를 거부하는 이 책은 A부터 Z까지 250개의 단어를 유려한 글로 풀어내며 여행의 메마르지 않는 가능성과 매력을 상상하게 한다.

나 같은 방콕 여행자들에겐 잘 맞는 책. 작년에 나온 피에르 바야르의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 2012)에 견줄 수 있을까. 찾아보니 원서의 표지는 이렇게 생겼군.

 

 

여름 여행이라면 갈증을 해소해줄 시원한 음료에 대한 생각도 빠질 수 없는데, <여행정신>에서는 그리스산 포도주 '레치나'를 언급한다. "가장 오래된 양조법으로 만드는 그리스 음료"로 "오늘날의 유명한 최상급 와인들이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어느 날 이 술을 맛보면, 프루스트의 마들렌 과자처럼 맛볼 때마다 매번 기억 속에서 밀려오는 감각의 산사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저자들은 적는다. 또 이런 건 찾아본다. 

 

 

 

흠, 여름밤에 시원하게 한 잔 마셔도 좋겠다. 그러고 보니 여행지의 술을 다룬 책도 나와 있다. 오지 여행PD 탁재형의 <스피릿 로드>(시공사, 2013). 부제가 '여행의 순간을 황홀하게 만드는 한 잔의 술'이다. 이 책에선 레치나가 아니라 치구디아를 조르바의 나라 그리스의 술로 꼽는다. 저자의 결론은 이런 것이군. "세상은 넓고 술은 많다."

 

여하튼 무더위에 아직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선 여행의 '에스프리'나 '스피릿'이 좀 필요하다. 책으로라도 단련하다 보면 언젠가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떼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딘가를 한창 걷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 마주친다면 암호는 '레치나'로 해도 좋겠다...

 

13.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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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두 권의 책에서 가져왔다. 로버트 J. C. 영의 <식민 욕망>(북코리아, 2013)과 프란시스코 바렐라 등의 <몸의 인지과학>(김영사, 2013). 두 권 다 '이주의 책'으로 꼽을 만하지만,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해 주문하거나 장바구니에 넣어둔 상태다.

 

 

탈식민주의 이론가 로버트 영의 책은 바로 얼마전에 <아래로부터의 포스트식민주의>(현암사, 2013)가 출간된 바 있다. 출간일로는 <식민욕망>도 그맘때 나왔어야 하는 책이지만, 실 출간일은 두달쯤 늦어졌다. 원저는 1994년에 나왔다.

 

 

'이론, 문화, 이론의 혼종성'이 부제다. 요긴한 (탈)식민주의 관련서가 하나 더 늘어난 셈.  

 

 

한편 마투라나와의 공동작업으로 잘 알려진 바렐라의 이번 책은 에반 톰슨, 엘리노어 로쉬와의 공저다. 부제는 '인지과학과 인간 경험'. 일종의 인지과학 입문서를 겸하는 책으로 보인다.

 

 

원저가 1992년에 나왔으니까 아무리 이 분야의 고전이라 할지라도 좀 노후한 느낌을 주는 건 사실. <앎의 나무>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고, <윤리적 노하우>보다는 몇 년 먼저 나온 책이다.

 

 

인지과학 분야도 드문드문 책이 나와 있는데, 전공서 느낌을 주는 책으론 이정모 교수의 <인지과학>(성대출판부, 2010), 김광수 외, <융합 인지과학의 프론티어>(성대출판부, 2010), 그리고 교과서형 책으로 <인지과학>(박학사, 2012)가 있다.

 

 

 

전공서보다는 좀 가벼운 느낌의 교양서로는  이남석의 <마음의 비밀을 밝히는 마음의 과학>(지호, 2012)를 비롯해, 이정모의 <인지과학>(학지사, 2010), 그리고 사에키 유타카의 <인지과학혁명>(에이콘출판, 2010) 등이 있다.

 

 

'인지과학과 철학'이란 주제와 관련해서는 숀 개러거와 단 자하비의 <현상학적 마음>(도서출판b, 2013), 래리 메이의 <마음과 도덕>(울력, 2013)이 올해 나온 책이고, 절판된 책으론 <인지과학의 철학적 이해>(옥토, 1997)이 오래 전에 나온 바 있다. 역자가 이번에 <몸의 인지과학>을 옮긴 석봉래 교수다. 아, 미처 살피지 못했는데, <몸의 인지과학>은 <인지과학의 철학적 이해>가 다시 출간된 것이다!..

 

13.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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