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58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투르게네프의 소설들을 다시 강의하는 차에 첫 장편 <루진>에 대해서 적었다. 투르게네프의 소설들을 다시 강의하면서 그간에 견해를 일부 조정할 수 있었던 게 성과다. 리뷰에도 일부 반영하고 있다...
















주간경향(19. 12. 30) 자신의 운명 탄식하는 ‘잉여인간의 초상’


한국 근대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이반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본격적인 문을 연 작가로 평가된다. 애초에 낭만적 서사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지만 농노제 하의 러시아 현실을 다룬 단편집 <사냥꾼의 수기>(1852)로 명성을 얻는다. <사냥꾼의 수기>가 불러일으킨 반향은 1861년에 단행된 농노제 폐지에도 기여했다고 알려진다.


장편소설 작가로 투르게네프의 이력은 <루진>(1856)부터 시작되는데, 이후 마지막 장편소설 <처녀지>(1877)에 이르기까지 투르게네프는 여섯 편의 사회소설을 통해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의 실상을 기록했다. 다만 그가 그려낸 실상은 주로 러시아의 시골 영지로 제정시대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다룬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1866) 같은 작품과는 차이를 보인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발자크와 디킨스 같은 서구 작가들의 소설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면서 동시에 러시아적 변형을 보여준다면, 투르게네프의 소설은 러시아식 사회소설의 전형을 발명했다고 여겨진다.


러시아식 사회소설이라는 표현은 투르게네프가 ‘잉여인간’이라는 독특한 형상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가 <루진>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 역시 대표적인 잉여인간이라고 할 주인공 루진의 초상이다. 루진은 서른다섯 살가량의 인물인데 한 부유한 여지주의 시골 별장에 예기치 않은 손님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 좌중을 압도하는 지성과 논리적인 언변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특히 여지주 다리야 미하일로브나의 딸 나탈리야는 루진의 웅변에 감동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다. 나탈리야는 루진이 가진 높은 이상을 존경하며 급기야는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루진과 나탈리야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쓴 나탈리야는 루진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정작 루진은 뒤로 물러서며 운명에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풍부한 지적 교양과 고상한 이상을 품고 있음에도 루진은 그것을 현실로 옮겨놓을 수 있는 의지와 결단력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나탈리야를 떠나며 남긴 편지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탄식한다. 

“그렇습니다, 자연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내 힘에 걸맞은 일을 아무것도 못 하고, 어떠한 유익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죽을 겁니다. 모든 풍부한 재능은 헛되이 사라지고, 나는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보지 못할 겁니다.” 

이렇듯 무력해 보이는 잉여인간의 형상은 1860년에 작가가 추가한 에필로그에 의해서 그 의미가 복잡해진다. 에필로그에서 루진은 1848년 6월 프랑스 파리의 바리케이드 봉기에서 정부군의 총에 맞고 죽는다. 이국의 실패한 혁명에 참여해 익명으로 죽는 루진은 그의 예언대로 오직 씨앗만 뿌렸을 뿐 열매는 보지 못한다. 종종 무의미한 죽음으로 폄하되기도 했지만 <루진>의 예기치 않은 결말은 혁명, 혹은 사회변혁의 역량이 충분하지 않은 시기에 가능한 선택지를 시사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천고의 뒤에 올 초인을 위해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렸던 시인을 나는 루진과 겹쳐서 떠올린다. 


19. 12. 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시아 상징주의의 대표 작가이자 사상가 안드레이 벨르이의 이론서가 출간되었다. <세계관으로서의 상징주의>(나남). 학술명저번역총서의 일환이다.

˝러시아 상징주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러시아의 은세기(silver age) 문예부흥을 이끈 문예사조이다. 안드레이 벨르이(1880~1934)는 작가로서 수많은 작품을 통해 러시아 현대문학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대표적 러시아 상징주의자다. 또한 벨르이는 사상가로서 니체, 리케르트, 슈타이너 등 당대 사상가의 철학을 아우르며 평생 상징주의에 몰두했으며, 문학을 넘어 종교와 철학까지 포괄한 하나의 세계관을 제시했다. 그의 야심찬 작품 <세계관으로서의 상징주의>는 상징주의 사상가로서의 벨르이를 국내 최초로 소개하는 저서로 벨르이 상징주의의 정수를 담았다.˝

대학원 강의실에서나 읽을 텍스트이지만 상징주의 문학과 세계관에 관심을 둔 독자들에게는 성탄 선물에 해당한다. 러시아문학 강의를 20년 넘게 해온 터라 강의에서 다루지 못한 주요 작가와 작품이 거의 없는 편인데, 그래도 아직 과제로 남아있는 몇 작품 가운데 대표작이 벨르이의 장편소설 <페테르부르크>(1916)다. 조이스의 <율리시스>(1922)를 읽은 뒤에 다루리라 계획했었기 때문인데, 올해 강의에서 <율리시스>를 읽었기에 이제 아무런 장애도 없다. 러시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을 묶어서 강의일정을 짜보려고 한다. 20세기 러시아문학강의 별권쯤 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렉산드르 푸시킨(푸슈킨)의 작품집이 새로 나왔다. <눈보라>(녹색광선)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초역은 아니고 새 번역본이다. 다섯 편의 단편을 엮은 단편집 <벨킨 이야기>가 <눈보라>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 이미 네댓 종의 번역이 있고, 그 가운데 강의에서는 민음사판이나 문학과지성사판을 주로 읽었다. 두 번역본 모두 <벨킨 이야기>에 <스페이드 여왕>이 합본된 형태인데 <눈보라>는 <벨킨 이야기>만 담고 있다.

˝<눈보라>에 실린 다섯편의 소설에는 복수의 화신,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연인들, 장의사, 역참지기 등 다양한 계급과 다채로운 사연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푸시킨의 문학은 인간과 그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에 기반하고 있기에 인간의 약점과 온갖 허물로 인해 빚어진 수많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과감한 낙관주의가 함께한다. 그의 문학은 그래서 소중하며 또 여전히, 어쩌면 지금 더 필요하다.˝

1830년 가을에 완성된 <벨킨 이야기>는 러시아문학사 최초로 예술적 가치를 갖는 산문소설집으로 평가된다(나보코프). 러시아 예술산문의 기점이 1830년이라는 뜻도 된다. 푸시킨과 생년이 같은 프랑스 작가 발자크가 1829년 데뷔작을 발표하면서 근대 사실주의 소설의 문을 열었던 것과 같은 시기다. 러시아문학사에서 최초이지만 유럽문학으로 시야를 확대하면 산문소설에 있어서는 러시아문학의 지체 현상을 주목하게 된다. 아직 장편소설로 나아가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다.

이러한 약점을 상쇄하는 것이 작품의 주제적 통일성이다. <벨킨 이야기>의 다섯 작품을 이어주는 모티브와 주제는 그런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다(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형태가 레르몬토프의 <우리시대의 영웅>(1840)이다). 러시아 산문소설의 발전사를 살펴보려는 독자라면 필히 <벨킨 이야기>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 번역상의 차이가 있는지는 새 번역본을 봐야 알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츠베타예바의 산문

12년 전에 쓴 글이다. 러시아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산문도 번역되면 좋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wo0sun 2019-12-22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츠베타예바는 파스테르나크와 릴케때문에 알게 되서
샘의 이 글과 수전 손택의 <문학은 자유다> 읽었던 기억이~
이들이 주고 받은 편지를 실은 책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로쟈 2019-12-22 11:42   좋아요 0 | URL
네, 손택의 후광을 빌려서라도.~

비로그인 2019-12-24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들아 미출간 시집부터 출간 해주라
 
 전출처 : 로쟈 > 고골의 '외투'가 말해주는 것

10년 전에 올렸던 글이다. 고골의 ‘외투‘ 강의를 요약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