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모스크바 통신에 러시아 단편들을 두어 편 번역해서 올려놓은 바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페트루셉스카야의 <복수>를 이미지 버전으로 옮겨놓는다. 국내에도 일부 단편과 드라마가 번역돼 있는 작가 류드밀라 스테파노브나 페트루솁스카야(뻬뜨루셰프스까야)는 물론 이름에서 알 수 있지만, 여성작가이다. 1938년생이고, 모스크바대학의 언론학부를 졸업했다. 1972년부터 잡지에 단편들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극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주된 관심은 인간관계에서의 소외 현상과 비정함, 그리고 잔혹성에 있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1960-90년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10명 안에 꼽힌다(아동문학작가이기도 하다).

출간된 그녀의 작품집들을 여러 권 구경할 수 있었는데, 아직 잘 정돈된 전집은 나오지 않은 듯하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만, 3쪽짜리 단편 하나 읽을 거 가지고 크게 떠들 일도 아니어서(나는 이 작가의 이름은 들어봤었지만, 직접 작품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가소개는 이 정도에 그치도록 한다. 참고로, 문단은 원작과 일치하지 않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번역에는 작품에 대한 나의 ‘읽기’가 얼마간 반영돼 있다(모든 번역은 원작을 얼마간 ‘구부리기’ 마련인데, ‘왜곡’과는 구별되는 이 ‘구부리기’는 번역의 불가피한 조건이기도 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엔 괄호 안에 *표시를 하고 역주를 달았다.

한 여자가 혼자서 애를 키우는 이웃여자를 증오했다. 아이가 자라서 점점 온 집안을 뛰어다닐 때쯤 되자, 이 여자는 전혀 고의가 아닌 듯이, 복도 바닥에 끓는 물이 담긴 양동이나 가성소다(*양잿물)가 든 물통을 놓기도 하고, 복도 바로 앞에 바늘곽을 떨어뜨려놓기도 했다. 불쌍한 아이 엄마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딸아이가 아직 잘 걷지 못하는 데다가, 겨울이었기 때문에 복도로는 나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방에서 널찍한 복도로 저 혼자 나갈 수 있는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엄마는 이웃여자에게 아이가 다닐 만한 길목에 물통이 놓여있다고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혹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라에치카, 당신은 또 바늘곽을 흘렸더군요.” 그러면 이웃여자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정신머리가 없어서 그랬노라고 푸념했다.

한때 그들은 절친한 친구였다. 그럴 만한 것이 그들은 방 두 개짜리 집에 같이 사는 독신여성들이었다(*방 두 개는 각자가 쓰고, 복도나 화장실 등을 같이 쓰는 러시아식 가옥 형태이다. ‘집’이라고 옮겼는데, 대개는 아파트나 공동주택이다). 그들에겐 많은 것들이 공동의 것이었으며, 심지어 손님들도 공동의 손님이었다(*한쪽에 손님이 오더라도 같이 먹고 놀았다는 얘기다). 생일날이면 그들은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지냈는데, 그러던 어느날 지나가 어느새 잔뜩 부른 배를 하고 다니게 되자, 라야는 그녀를 거의 미칠 지경으로 증오하기 시작했다(*‘지나’와 ‘라야’가 두 여자의 이름이다. ‘지나이다’ ‘지노치카’ 등이 ‘지나’의 별칭이며, ‘라이사’ ‘라샤’, ‘라에치카’ 등이 ‘라야’의 별칭이다).

그녀는 순전히 증오 때문에 병이 나기 시작했으며, 집에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에겐 벽 너머 지나의 방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내내 들려오는 듯했고, 지나가 진짜로 혼자 있는 시간에도 말소리와 노크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나는 반대로, 라야에게 전보다 더 애착을 느꼈다. 심지어 하루는 그녀에게 말하길, 자신에게 큰언니 같은 좋은 이웃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했다. 아무리 힘들 때에라도 결코 자신을 내버리지 않을 큰언니.

라야는 실제로 지나가 출산준비물을 바느질하는 걸 도와주었고, 때가 되자 그녀를 조산원에 데려다 주었지만, 단 한번도 산모와 아이를 보러 가지 않았다(*직역하면 “갈 수가 없었다”이다). 때문에, 지나는 하루 더 조산원에서 아무런 출산준비물 없이 앉아 있다가 결국, 반환 약속을 하고 누더기 같은 관용 모포에다가 아이를 감싸서 데리고 왔다(*라야가 출산준비물을 갖다 주지 않은 것이다. ‘관용 모포’란 표현에서 지나가 사설 조산원이 아닌 국영/관영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은 걸 알 수 있다.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서 주인공 카테리나가 딸을 낳은 조산원 같은 걸 떠올리면 되겠다).

라야는 아파서 못 가봤다고 변명을 했고, 내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단 한번도 지나를 위해서 상점에 가지 않았고, 그녀가 물건을 사는 걸 도와주지 않았다. 그저, 어깨에 찜질 같은 걸 하면서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지나가 아이를 손으로 안고 목욕탕에 갔다가, 부엌에 갔다가,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와서 한번 보란 듯이 내내 방문을 열어놓고 있었어도 아이를 단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지나는 미리,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일거리를 바꾸었고, 재봉틀에 익숙해졌다. 그녀에겐 친척이 없었기 때문이고, 이웃 사촌이란 말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했다. 사실상 그녀는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으며, 혼자서 모든 걸 해나가고, 혼자서 짐을 날라야 했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 지나는 아이를 재운 다음에 일거리를 날라왔고, 혼자서 노임을 받으러 갔다. 하지만, 딸아이가 잠자는 시간이 줄어들고 좀더 크게 되자 일이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지나가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게 된 것이다. 한편, 라야는 자신의 어깨 관절에만 고집스레 매달렸고, 심지어는 그 때문에 병원에 입원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잠깐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하는 게 지나로선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라야는 아이를 죽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점점 자주, 버둥대는 아이를 양손에 안고서 복도를 다니면서(*복도에 위험한 것들이 있어서), 지나는 부엌 바닥에 물컵인 듯한 게 놓여 있는 걸 보거나(*가성소다가 담겨있을 듯), 탁자에 뜨거운 찻주전자가 손잡이를 늘어뜨린 채 놓여 있는 걸 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나에겐 아무런 의심도 들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는 “엄마라고 말해봐!”라고 말하면서 딸아이에게 항상 즐겁게 종알댔다. 하지만, 상점이나 직장에 나갈 때는 아이가 못나오게 가둬두고 다녔고, 이건 좋게 넘어가지지 않았다. 라야는 극도로 화가 났다.

지나가 무슨 일인가로 밖에 나갔을 때, 방안에 있던 아이가 잠이 깨서는, 아마도 침대에서 떨어진 듯했다. 문쪽까지 기어와서는 울어댔다. 라야는 아이가 잘 걷지 못하고, 침대에서 떨어졌으며, 빽빽 울어대는 걸로 봐서 아마도 크게 다쳤고, 바로 문 앞에 누워있는 걸로 짐작했다. 라야는 더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목욕탕에서 거기 보관하고 있던 가성소다 병을 가져와서 양동이에다 따르고는 복도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용액을 문 밑쪽으로 끼얹었다. 아이가 누워있는 쪽으로. 울음소리는 자지러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라야는 복도바닥을 닦아냈다. 양동이와 수세미와 장갑까지 모두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고는 옷을 입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왔다간 후에 그녀는 영화관에 갔다가 상점을 들러서 저녁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지나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고, 조용했다. 라야는 텔레비전을 한동안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나는 밤새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라야는 도끼를 들고와서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먼지투성이인 방안에서 침대 옆 바닥에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과 문쪽에 있는 더 큰 핏자국을 보았다. 가성소다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라야는 이웃여자의 방바닥을 닦아내고, 정돈한 다음에 흥분 어린 기대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침내 일주일쯤이 지나자 지나가 돌아왔다. 그녀는 딸의 장례를 치렀고, 주야로 일하는 직장을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의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움푹 들어간 눈과 누렇게 뜨고 늘어진 피부가 그녀를 대신해서 모든 걸 말해주었다. 라야는 지나를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집안에서의 삶은 이제 숨이 멎은 듯 고요했다. 라야는 혼자서 텔레비전을 보았고, 지나는 주야로 하루를 일하면 온종일 잠을 잤다. 그녀는 마치 정신이 나간 듯이, 사방에다가 딸의 사진을 걸어놓았다.

라야의 병은 더 심해져서, 그녀는 팔을 들어올릴 수도, 걸어다닐 수도 없었고, 심지어 관절주사도 도움이 되질 않았다. 의사들은 관절염이라고 진단했다. 사태는 더 나빠져서, 라야는 자신의 끼니를 챙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심지어 차를 끓일 수도 없었다(*러시아에서 차를 끓이기 위해서는 가스렌지를 켜고 성냥 등으로 불을 붙여야 한다. 우리의 갈비집에서처럼. 라야에게 그런 불을 붙일 힘도 없어졌다는 얘기다). 지나가 집에 있을 때는 그녀가 손수 라야에게 음식을 먹여주었다. 하지만, 지나가 집에 들르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고, 일이 힘들다는 핑계를 댔다. 어깨의 통증 때문에 라야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나가 무슨 병원 같은 곳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한다는 걸 알고서, 라야는 그녀에게 모르핀 같은 강한 진통제를 얻어달라고 부탁했다. 지나는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맡고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럼 이걸 더 많이 먹어야겠어. 나한테 30알만 세줘.>
<아니, 안돼.> 지나가 말했다. <내 손으로 죽게 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손을 움직일 수가 없잖아.> 라야가 따지듯이 말했다.
<넌 그렇게 값싸게 벗어날 수 없을 거야.> 지나가 말했다.
그때 환자가 초인간적인 힘으로 병을 입에 갔다 대더니, 이빨로 마개를 빼내고, 약을 몽땅 입에다 털어넣었다. 라야는 아주 오랫동안 죽어갔다. 아침이 밝아오자, 지나가 말했다.

<이제 잘 들어둬. 난 너를 속였어. 우리 레노치카(*딸의 이름)는 죽지 않았어. 아주 잘 뛰놀고 있지. 그 아인 탁아소에 있어. 나는 거기서 간호보조사로 일하고. 그리고 네가 문밑으로 끼얹었던 건 가성소다가 아니라 일반 식용소다야. 내가 바꿔놓았었지. 바닥에 있던 피, 그건 레노치카가 침대에서 떨어졌을 때 난 코피야. 그러니까, 넌 아무런 잘못도 없어. 누구도 그것 때문에 너를 문책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나도 잘못이 없어. 우린 서로에게 빚이 없는 거야.>

그리고 그때 그녀는 죽은 이의 얼굴에서 천천히 행복한 미소가 번져 나오는 걸 보았다.

 

 

 

 

04. 06. 03/ 06.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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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0 0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20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부지런도 하셔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러시아 작가, 혹은 러시아어로 소설을 쓰는 우크라이나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1961- )의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펭귄의 우울>(솔출판사, 2006)이 그것. 저명하다고는 하나 러시아 문학의 근황에 어두운 나로선 쿠르코프란 작가에 대해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고 몇몇 자료들을 뒤적거려보았다. 출판사와 알라딘의 책 소개 등을 자료로 하여, 이 또 다른 문학의 세계를 잠시 엿보기로 한다.  

-구소련 해체 이후, 가장 뚜렷하게 서구인들에게 현대 러시아문학을 각인시킨 작가로 꼽히는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대표작. 간명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는 소설로, 소비에트 붕괴 후의 혼란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안드레이 쿠르코프는, 정치와 사회를 과감하게 풍자하고 추리소설과 판타지, 순문학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온 작가. <펭귄의 우울>에서는, 한 나라와 한 시대가 아닌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일반적인 소시민들의 삶을 그린다. 무표정한 얼굴, 뒤뚱뒤뚱 우스꽝스럽게 걷는 애완동물 펭귄은 이들의 우울한 일상을 대변한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자본주의 물결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작은 도시 키예프. 주인공 빅토르는 여자 친구가 떠나가버린 후, 우울증 걸린 펭귄 '미샤'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그에게 특별한 청탁이 들어온다. 키예프의 유명 신문에 언젠가 죽을, 미지의 인물들을 위해 조문을 쓰는 것. 그러나 이 요청을 수락함으로써 빅토르와 미샤는 더이상 도망갈 수 없는 함정으로 빠져든다...

이어서 출판사쪽 소개: 우리에게 러시아문학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로 대변되는 19세기문학 이후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20세기 문학이 물론 두 작가만큼 소개된 건 아니지만,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소비에트 해체 이후와 아무래도 혼동한 듯하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구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문학이 활발하게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뚜렷하게 서구인들에게 현대 러시아문학을 각인시킨 작가가 우크라이나 출신의 안드레이 쿠르코프다(*최상급은 언제나 과장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뚜렷하게 각인시킨 작가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정치와 사회를 과감하게 풍자하고 추리소설과 판타지, 순문학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는 그의 소설들은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에스파냐어, 네덜란드어, 터키어 등으로 번역되었다(*군대에선가 일어 통역원으로도 근무한 적이 있다고. 감옥의 간수 경력도 갖고 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해 수십 여 편의 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 그는 베를린 영화제 심사를 맡기도 했으며, 우크라이나의 한 주간지에 ‘2005년 우크라이나를 움직이는 사람 100명’에 선정될 만큼 이미 자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 중 이 책 <펭귄의 우울>은 일본에서도 번역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대표작이다(*아래가 일역본의 표지).

(*) 한편 영역본의 제목은 <죽음과 펭귄>이며, 원저의 제목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빙판으로의 소풍>이 아닌가 싶다(이걸 확인해볼 시간이 지금은 없다).


-간명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우울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유머 있게 풍자하는 <펭귄의 우울>은 소비에트 붕괴 후의 혼란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 빅토르를 통해 한 나라와 한 시대가 아닌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일반적인 소시민들의 삶을 보여준다. 무표정한 얼굴, 뒤뚱뒤뚱 우스꽝스럽게 걷는 애완동물 펭귄 또한 쿠르코프가 그리고자 하는 우울한 일상을 대변한다.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양민종 교수는 '추천의 글'을 통해 “포스트 소비에트 소설은 ‘철학’이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켰다. 눈을 뜬 다음 잠자리에 들 때까지 헤겔, 마르크스-레닌을 거쳐 과학적인 사회주의에 이르는 철학의 과잉공간에서 살다가 비로소 해방을 맞았으니 이해할 법하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면서도 보편성을 띤 소설로 진화한 작품”이면서 “독자에게 글 읽는 즐거움을 주는” “단숨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 내리게 하는 마법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다.

-옮긴이이자 소설가 이나미는 “서사 면에서 스토리 전개가 매우 속도감 있고, 문장도 간결하면서 흡인력이 있고,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마지막까지 역할을 충실히 한다. … 소설 곳곳에서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지며, 초현실적이고, 블랙 코미디적 요소와 아이러니가 적절하게 가미되어 읽는 재미와 함께 책장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고 평하고 있다(*그 여운에 당신도 한번 동참해 보시길).

06. 09. 01

P.S. 그러니까 지난 90년대 이후 쿠르코프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로 보인다. 그처럼 우크라이나인이면서 러시아어로만 작품을 쓴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이다. "우울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유머 있게 풍자"한다고 하면 고골의 적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작가의 상륙을 환영한다. 쿠르코프-펭귄에게 주는 주의! 한국이란 나라도 상당히 미끄럽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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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1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필요 때문에 '나폴레옹'에 관한 이미지들을 검색하는데, 느닷없는 포르노 이미지들까지 끼어 있었다. 알고보니 <나폴레옹>이란 제목의 포르노 필름이 있었던 것. <나폴레옹>(이탈리아, 1998).

Наполеон. Анальный секс.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

이게 포르노비디오필름을 취급하는 러시아 사이트에 링크돼 있었는데 <나폴레옹>은 빙산의 일각이었고 아주 요지경의 세상이었다(세상은 넓다!). 포르노(혹은 AV) 산업이라면 이웃나라 일본이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그건 그만큼 일본의 조직사회가 공식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복종/굴종을 강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방면으론 이탈리아 또한 만만찮아 보인다. 틴토 브라스만 해도 그냥 '소프트'해 보이니까. 차이라면 일본 포르노가 대략 시나리오 불문이라면 이탈리아는 좀 '클래식'하다는 정도. 적어도 '포르노세계사' 내지는 '포르노 세계문학사'를 찍어대는 걸 보면(덧붙이자면, 포르노의 경우에도 '클래식'은 판매랭킹이 많이 떨어진다. 대중들은 '클래식'이라면 포르노도 잘 보지 않는 것!).

러시아는 거기에 비하면 아직 아마추어이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포르노'산업'이라는 게 가능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유통되지도 않았었기에. 이전에 '범성욕주의자의 근대철학사'란 페이퍼를 만든 바 있는데, 이 페이퍼는 거기에 짝이 될 수도 있겠다('로망스 대 포르노'란 글도 참조할 수 있겠다). 자체 검열상 스틸사진들을 올려놓을 수는 없고, 포스터 정도만 옮겨놓는다(모두 러시아어로 출시된 것들이다). 아주 일부만. 이 목록에 마르키스 드 사드나 자허 마조흐가 올라와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햄릿> 정도 되면 웃음이 나오고, <이상한 포르노 나라의 앨리스>나 고골 원작의 <비이> 정도 되면 입이 벌어진다...

 Маркиз Де Сад. Фильмы с сюжетом.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마르키스 드 사드>(이탈리아, 1996)

Барон Фон Мазох. Садомазо и фетиш.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폰 마조흐 남작>(이탈리아, 1998)

Гамлет. В костюмах.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햄릿>(이탈리아, 1996)

Робин Гуд. В костюмах.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로빈훗>(이탈리아, 1995)

Декамерон. В костюмах.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데카메론>(이탈리아, 1997)

Белоснежка и семь гномов. Фильмы с сюжетом.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이탈리아, 1996)

Алиса в стране Порно Чудес. Фильмы с сюжетом.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이상한 포르노 나라의 앨리스>(미국, 1996)

Вий. Русское порно.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비이>(러시아, 2002)

그리고, 러시아에서 최근에 제작되고 있는 포르노시리즈 <백야: 상트 페테르부르크>. 페테르부르크의 주요 관광지를 다 둘러볼 수 있는 잉여효과도 챙길 수 있다(관광상품 수준이다). 4편까지 나온 모양이다.

Белые ночи Санкт-Петербурга. Ночь 1. Русское порно.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백야1>(러시아, 2001)

Белые ночи Санкт-Петербурга. Ночь 2. Русское порно.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백야2>(러시아, 2001)

Белые ночи Санкт-Петербурга. Ночь 3. Русское порно.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백야3>(러시아, 2001)

Белые ночи Санкт-Петербурга. Ночь 4. Русское порно. Порно Видео Филмс<백야4>(러시아, 2001)

참고로, 러시아 포르노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로는 이문영,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의 러시아 포르노그래피 연구"(슬라브학보, 제21권 2호, 2006)가 있다. 동영상보다 아카데믹한 쪽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길...

 

 

 

 

06. 08. 29.

P.S. 러시아 포르노그래피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앞에서 거명한 논문의 결론으로부터 간략하게 인용하면, "제정 러시아는 종교에 의해, 스탈린 집권 이후 소련은 이념에 의해 섹슈얼리티에 대한 담론과 그 문화적 표현을 엄격히 금지하였고, 그 결과 포르노그래피가 전자의 경우에는 봉건적 가치에 대한 비판으로, 후자의 경우에는 국가에 의한 통제에 대한 저항으로 기능하였다..."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 이후 현대 러시아의 포르노그래피는 한편으로는 과거 시기 포르노그래피의 정치성을 계승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이 시기 포르노그래피는 소련시기에는 공공의 문화영역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등장함으로써 과거 권력에 의해 강요되어온 획일적 성담론에 대한 극복을 보여주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근대 초기 포르노그래피의 비판성을 상실하고 자본주의의 성 상품화 논리를 온전히 반영하는 보수적 매체가 되어버린 서구 포르노그래피가 새로운 시대를 보여주는 문화상품으로 수입되어 현대 포르노그래피의 모델이 되었다... 선정성과 상업성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대 러시아 포르노그래피가 섹슈얼리티의 담론의 다양화와 표현의 자유의 신장, 이것이 상징하는 문화적 다원주의의 발전과 확산에 기여했다는 점은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2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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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06-08-29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화법을 빌자면, <저 동네>도 잘 되는 게 쉬운 건 아니죠. 열심히 '온고지신'하고 새로운 문법을 창조해내야 살아남지... -_- // [백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의 패러디, 아니면, 오도예프스키의 [러시아의 밤들] 패러디인가요??
// 그나저나, 다른 캐릭터야 성인이니까 그렇다치고, 우리의 저 앨리스 양은 <이상한 포르노 나라>에서 대체 뭘 한다요? ;;;--

로쟈 2006-08-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야'는 보통명사입니다. 그리고 얼굴을 보면 앨리스는 충분히 과년한 앨리스인데요...

이리스 2006-08-29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척 고루한 코멘트입니다만.. 여긴 초등학생도 보려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곳 아닌가요? 이런것을 올려도 문제가 아니될런지..

로쟈 2006-08-2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염려하시는 바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이 '포르노' 구경을 하려고 번거롭게 알라딘까지 드나들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porno'란 단어만 검색해도 널린 게 포르노인 걸요. 더불어, 저는 포르노가 하나의 (하위적)'장르'라고 생각합니다...

SMOKE 2006-08-30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요즘 초등학생들을 모르시는군요.......

마늘빵 2006-08-30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근데 별로 야할거 같진 않아요. -_- 모름지기 포르노는 보고 반응이 있어야 되는데 그냥 저거 봐서는 별 반응이 안생길듯.

로쟈 2006-08-30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러시아 작품들 빼고는 저도 별로 보고픈 생각이 없습니다...

이리스 2006-08-30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핫.. 그.. 그렇군요.. -_-;;;
 

러시아 영화 <리턴>(2003)이 9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어 제목을 따서 '리턴'이라고 붙인 모양인데, 제목 자체는 <러브 오브 시베리아>만큼이나 짜증스럽다. 집을 나간 뒤 아무 소식이 없다가 12년만에 귀환한 아버지와 두 아들 사이의 대면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므로 그냥 우리말 '귀환'이나 그 언저리에 있는 제목을 붙이는 게 타당했다('리턴'이라고 붙이면 관객이 더 드나?). 

 

영화는 여하튼 지난번에 소개된 러시아 영화 <러시안 묵시록>과는 레벨이 좀 다르다. 감독 즈뱌긴체프(1964- )의 데뷔작이면서 2003년도 최대의 문제작이었고, 그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기도 하다(영어 표기를 음역해서 '즈비야긴체프'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즈뱌긴체프'가 맞다). 재작년 모스크바 체류시 TV에서 영화와 함께 메이킹 필름을 부분적으로 보았던 기억이 있다. 비디오CD를 갖고 있는데, (지난여름을 아쉬워 하는 의미에서)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을 본 다음에 언제 시간을 내야겠다.

이 영화의 개봉소식은 아침에 이번주 <필름2.0>을 사서 읽다가 접하게 된 것인데 마침 티켓링크에서 소개기사를 제공하고 있기에 옮겨놓는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개봉 이후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보도록 하겠다. 가능하다면... 

티켓링크(06. 08. 29) <리턴> - 성장의 아픔에 관한 끔찍한 우화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사는 형제 안드레이(블라디미르 가린)와 이반(이반 도브론라보프)은 12년 만에 갑자기 집에 돌아온 아버지(콘스탄틴 라브로넨코)와 마주하게 된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어색한 두 형제는 아버지와 친해지기 위해 낚시여행을 떠나지만,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아버지와 친해지는 것이 쉽지가 않다. 12년 만에 만난 아들에게 하는 것 치고는 너무나 친절하지 않아서 진짜 아버지가 맞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러는 사이 형 안드레이는 아버지에게 묘한 유대감을 느끼지만, 동생 이반은 자신을 꾸짖기만 하는 아버지가 밉기만 하다. 본래 목적은 사라지고 미움과 갈등만이 남은 세 부자의 여행은 계속되고, 아버지는 무엇을 하려는 심산인지 인적이 없는 섬으로 두 아들을 데려간다.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즈비야긴체프 감독의 데뷔작 <리턴 The Return>은 무시무시한 성장드라마다. 어머니 밑에서 자라던 두 형제 앞에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의 존재는 평온했던 삶을 뒤흔들어 혼란을 가져오는 테러리스트에 가깝다. 가족을 떠나있던 12년에 대해서 어떤 설명조차 해주지 않고(*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나로선 소비에트 해체 이후 '12년'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 부재의 시대), 그저 자신의 목적과 방법대로만 여행을 강요하는 아버지는 이미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듯 보인다. 그래서 강압적인 아버지에게 반기를 드는 말썽쟁이 동생 이반에 비해 아버지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형 안드레이의 모습이 더 유약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는 두 형제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웅덩이에 빠진 자동차를 빼내는 방법이나 배의 노를 젓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형제는 폭력과 질타를 일삼는 아버지에게 대들거나 순응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의지를 시험받는다. 마침내 아버지와의 갈등이 최고치에 달했을 때, 형제는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끔찍한 비극을 마주하게 되고 아버지와 함께 왔던 길을 홀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리턴>이 보여주는, 아직 여리기만 한 마음 한구석을 섬뜩한 칼날로 도려내는 성장의 고통은 아버지를 죽여야했던 오이디푸스의 그것과도 닮아있다. 2003년 베니스영화제는 이 외면하기 힘든 한 편의 '끔찍한 우화'에 황금사자상을 선물했다.

HOT  우리에게 낯선 러시아 영화지만 <리턴>이 주는 재미는 적지 않다. 특히 악동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갖춘 이반 도브론라보프의 매력적인 연기가 쏠쏠한 웃음과 진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COLD 등장인물이 적고(영화 중반부터는 세 명밖에 나오지 않는다) 사건의 진폭이 작아서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듯.

06. 08. 28.

P.S. 참고로, 러시아 관객의 지적에 따르면, 영화속 아버지의 형상은 그리스도의 변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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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들이 1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던 수학의 난제를 풀고 홀연히 사라졌던 러시아의 한 천재 수학자의 행방을 전하고 있다. 현재 실직상태로 월 5만원 가량의 연금을 받으며 노모와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노모를 위해서도 상금을 받아서 호강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계산법에 맞는 것이지만, 이 러시아 수학자는 그런 셈에는 둔감한 모양이다(더구나 그는 유태계이다!). 이래저래 러시아는 이해하기 난감하다...

 

중앙일보(06. 08. 21) 러시아 수학 천재는 실직 상태

-100만 달러(약 10억원)의 상금이 걸린 수학 난제 '푸앵카레의 추측'을 풀고도 홀연히 자취를 감췄던 러시아의 천재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40.사진)이 실직 상태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의 선데이 텔레그래프는 20일 그가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어머니의 아파트에 얹혀 살고 있다고 전했다. 모자의 한 달 수입은 어머니가 받는 약 5만4000원의 연금이 전부. 인류가 한 세기 동안 씨름해 온 수학 문제를 풀었지만 정작 자신의 빈곤 문제는 풀지 못한 것이다.

-페렐만의 은둔 생활은 2003년 러시아 수학연구소인 스테클로프에서 해고된 뒤 시작됐다. 한 지인은 "해고된 이후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자신감을 잃었고, 수학은 물론 세상과도 단절한 채 지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아무런 수입원이 없는 상태다. 그는 이번 주 발표될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의 유력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수상식장에 가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국제수학연합 총회가 열리는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갈 여비가 없기 때문이다(*필즈상은 40세 이하의 수학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안다. 그에게는 마지막 기회이다).

-그의 친구들은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누구에게 도와달라는 말도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가난하지만 그는 미국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푸앵카레의 추측'을 푸는 사람에게 내건 100만 달러의 상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는 선데이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나서지 않은 것은 단지 내가 주목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세상의 관심도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자기 홍보는 요즘 흔한 일이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며 "언론에서 나에 대해 뭐라고 쓰든 관심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이런 성격은 2002년 '푸앵카레의 추측' 풀이를 공개한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10여 년간의 노력 끝에 얻은 결정적 단서를 유명 학회지에 발표하는 대신 인터넷에 올렸던 것이다. 그는 "내 풀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조민근 기자)

한겨레(06. 08. 21) 종적 감춘 러시아 천재수학자, "노모와 월 5만원..." 

-3년 전 수학계에서 100여년 동안 풀리지 않던 푸앵카레 가설을 증명하는 짧은 논문을 인터넷에 올린 뒤 종적을 감춘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40) 박사의 행방이 확인됐다. 푸앵카레 가설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선정한 ‘21세기 수학의 7대 난제’ 중 하나로,연구소는 이를 해결하는 연구자에게 100만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페렐만 박사는 지난해 12월 실직한 뒤 매월 30파운드(약 5만원)의 연금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초라한 아파트에서 노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0일 보도했다. 그는 러시아의 수학 연구기관인 슈테크로프 연구소와 사이가 나빠져 연구원으로 재임용되지 못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렐만은 2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국제수학연맹 총회에서 수학판 노벨상인 ‘필즈 메달’의 유력한 수상후보자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대회 참석이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렐만 박사는 지난주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주목을 받을 만한 대상이 아니며 (100만달러를 주겠다는) 횡재에도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고 <텔레그래프>는 보도했다. 그는 자신의 실종에 대해 “숨기 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며 “그저 대중이 나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페렐만 박사의 친구들은 “그가 10년 넘게 노력한 끝에 푸앵카레 가설을 증명했지만 저명한 학술지에 그 결론을 싣지 않고 인터넷에 올렸다”며 “이는 그가 타고난 겸손한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페렐만 박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6살 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만점을 받았다. 박사 학위 취득 뒤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때엔 미국 유수 대학으로부터 교수직을 제의받고도 모두 뿌리치고 1996년 러시아로 돌아갔다.(박현정 기자)

 

 

 

 

06. 0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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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21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에 기사 읽고 참 놀랐어요...

이네파벨 2006-08-2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수학이라는 과목이랑 수학자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어마무지한 애정과 경외를 느끼는데요...

수학자들은 뭐랄까...어떤 의미에서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인거 같아요.
궁극의 어떤 것, 절실한 어떤 것 하나만 바라보고 나머지 시야를 어지럽히는 삶의 자질구레한 장신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구도자와 같은 면이...있는거 같아요.

저 위에 올려주신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겁니다." 저 책...
제가 꼽는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책 가운데 하나랍니다.

우연히 손에 들어와 읽게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마음을 깨끗하고 맑게해주고...미소짓게 해주었던 책으로 기억해요...
그 주인공 (폴 에어디쉬?) 역시 평생 독신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았죠...

제한된 용량의 인생...시간...관심..사랑..열정..등을....세상사람들이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뜬구름을 다 잡아보려고 아둥바둥하면서 사는게 아니라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해서 쏟아부은 삶의 감동....부럽고 멋지네요...

로쟈 2006-08-2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미친 겁니다>는 저도 헌책방에서 반값에 샀던 책인데, 100여쪽쯤 읽다가 어디 두었는지 모르겠네요(^^;)...

도레미쏭 2006-08-2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자버젼이네요.

로쟈 2006-08-2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이라면 페렐만은 스스로 때려치운 게 아니라 '해고'당했고, 막대한 재산가가 아니라 가난한 연금생활자란 것이죠...

도레미쏭 2006-08-2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린스턴 대학이랑 스탠포드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젊은 수학자 상이니, 10억에 가까운 상금도 거부하고 있고요.

로쟈 2006-08-2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공통점이겠지요.^^

헤르베르트 2006-08-21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생활이 어렵다고 투덜댈수도 없겠네요 일자리도 마다하고^^ 푸앙카레의 추측이랑 페렐만의 풀이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도 보도 되면 좋겠다... 퍼감니다;;

푸른괭이 2006-08-2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어제 밤새도록 <얀덱스> 뒤져봤는데, 역시나 쥬체프 말대로 "러시아는 머리(=이성)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인 듯. 러시아신문 어디 보니까 페렐만이 "페테르부르크에서 이렇게 많은 돈을 들고 있는 건 위험하다"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데, 이거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식 희극 아닌가요? ^^ ... <수학>이란 학문도 독특하고, 러시아도 독특하고, 저 인간도 참 독특(=위대)합니다...

푸른괭이 2006-08-2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들여, 페렐만의 외모는 아무래도, 키예프 역이나 리가 역에서 노숙생활하는 '봄쥐'를 닮았어요.. -_- 젊었을 때 사진은 처음 보는데, 정말 모범생처럼 생겼네 그려. 겸사겸사,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대가 로바쳬프스키가 러시아 사람이었다는 것도 상기할 만합니다. 그도 당대, 국내에선 별로 인정을 못받은 모양인데, 가우스가 그나마 그의 이론(?)을 높이 샀다네요. 리만이 나온 건 로바쳬프스키 이후죠, 아마? 겸사겸사, 수학 공부를 다시 하고 싶어지네요... -_-

로쟈 2006-08-2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들 먼저 쓰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