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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불량 > 그들의 행사, 그녀들의 노동력

내 생각엔, 제사를 지낼 때 남자들이 하는 일을 딱 두 가지다.
술잔을 올리고 지방을 태우는 것...
그 외에는 모두 여자들이 해야하는 일들이다.
올라갈 줄만 알고 내려올 줄은 모르는 물가 걱정을 해 가며 장을 보는 것..
창고 깊이 넣어두었던 제기들을 꺼내 손을 보고..
덥고 습한 여름날씨, 뜨거운 불을 껴안고 음식을 만들고 젯상을 차리고..
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하는 것.
행사의 시작과 끝은 모두 여자들의 몫이다.
그렇다고 좋은 소리 듣냐..그것도 아니다.
'수고했다.' 는 입에 발린 말 한 마디가 전부다.
이렇게 동원되는 여자들의 노동력.
그러나 제사는 철저히 남자들을 위한 가부장적 행사라는 것 모르는 사람 없겠지..

어제는 할머니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엄마와 나는 아침일찍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냉장고에 재료들을 넣어 둔 채 가게로 갔다.
저녁까지 가게를 보다가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친구가 횟감을 낚았다는 말에 엄마에게 친구의 집에가도 좋겠냐고 한다.
(다들 알겠지만, 음식할 때 남자라는 존재는 불편하기까지 하다.)
엄마는 내 동생의 차를 가져가라고 한다.
(먼 곳에서 직장에 다니던 여동생이 제사 때문에 일부러 내려왔다.)
차를 가져가면 술은  하지 않겠지..하는 생각에.
그러나 엄마의 기대는 어긋났다.
한참 바쁘게 젯상을 차리고 있는데,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얼큰하게 약주를 한 목소리로, "데리러 오라" 고 한다.
나는 울컥, 화가 났다.
"지금 누가 데리러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왜 차 가지고 가시라고 했는데..
오늘 제사인거 아시잖아요!?? "
아버지는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아버지 친구 분의 집을 정확히 모른다.
엄마는 아직 음식 장만이 마무리가 덜 되었기 때문에 가실 수 없다.
아버지가 가져간 차를 집에 끌고 오려면 동생까지 가야한다.
아버지 한 사람 때문에 나머지 가족이 모두 하던 일 멈추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일단 하던 일을 끝내고 함께 가기로 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친구 분의 집은 시내버스도 안 다니는 외진 곳에 있었다.
시간은 11시를 훌쩍 넘겼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일에.. 나와 엄마, 여동생은 모두 지쳐있다.
화가 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이란 말인가.
나와 여동생은 핏줄이니 그렇다 쳐도.
엄마는 무슨 고생인가.. 따지고 보면 '할머니'와 '엄마'는 남남 아닌가 말이다.

며느리라는 것은 얼마나 만만한 존재인가.
주위에 보면 생판 남인 며느리에게 사람들이 얼마나 가혹한지 쉽게 알 수 있다.
밥을 해 내라. 다림질은 왜 똑바로 되어 있지 않나. 내 속옷을 빨아 두어라.
단추는? 양말은? 병든 시어머니 뒷수발은 당연한 거다.. 왜 그걸 안하냐..등등.
아기도 아니고 멀쩡한 어른들이 타인에게 이딴 것들을 강요하는 데
왜 모두들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지..
심지어 그들은 자신이 죽은 후에까지 며느리에게 제사라는 짐을 떠 넘긴다.

어쨋든 제사는 무사히 치르자는 생각에 우리는 조용히 아버지를 모셔왔다.
제사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부지런히 상을 물리느라 왔다갔다 하는데
그 동선의 한 가운데에서 아버지는 홀로 누워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
말 안하면 언제쯤 눈치채시려나 싶어서 그냥 피해서 움직여 봤지만
끝내 미동도 하지 않으신다.
급기야 성격 불량한 내가 나서서 소리쳤다.
그러나 미안한 기색조차 없으시다..
안방이 치워진 걸 보자 그냥 그리로 가 버린다.

가족들을 욕한다는 건 그야말로 누워서 침뱉기라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끓어오르는 화를 누를 길이 없으니..이렇게라도 풀어야지 어떻하나.
이제 한 고비 넘겼으니 다음 제사 때까지. 그리고 다음 명절때까지..우리 집은 조용하겠지.
되풀이되는 이 일에 정말 지친다.
내 집 제사도 이리 화가 치미는데....

이 땅의 모든 남편들은 지금보다 백만 배 더 아내에게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들은 오백만 배는 더 며느리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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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네 <잠자는 비너스> 1510년 경

 

타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년

 

마네 <올랭피아> 1863년

 

그림은 판다님의 서재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http://www.aladin.co.kr/foryou/mypaper/mypaperitem.asp?UID=1805431425&CNO=784425183&PaperId=461883&CType=1

 

내 벗은 몸을 보라, 나 역시 너를 보리니


마네의 누드모델 빅토린, 부끄럼 없이 관객 바라보는
당돌한 눈빛으로 관심…개성적인 파리지엔

: 이주헌 아트스페이스 서울 관장


"누르스름한 배를 드러낸 이 오달리스크는 도대체 뭔가? 올랭피아를 표현한답시고 어디선가 주워온 모델 같은데, 올랭피아라니? 어떤 올랭피아? 그것은 고급 창녀일 뿐이다. 천박한 처녀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고 마네를 비난할 사람은 없다. 그는 걸레를 그렸으니까."

 

마네가 가로 누운 여성 누드를 주제로 그린 ‘올랭피아’(1863)는 1865년 살롱 전에 내걸렸다가 화단 안팎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 대단했던 비난의 강도만큼이나 오늘날 19세기를 대표하는 걸작의 하나로 찬사를 받는 이 그림은, 그만큼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정표 같은 작품이다.

이 위대한 걸작의 모델은 빅토린 뫼랑(1844∼1927)이다. 마네가 어떤 여인에게 모델을 서 달라고 부탁했다가 그 여인이 주저하자 “싫으면 관두라지, 나에게는 빅토린이 있으니까”라고 했다는 바로 그 빅토린이다.

‘올랭피아’에서 빅토린은 좀 당돌해 보인다. 무엇보다 관자를 쏘아보는 그녀의 눈길이 매우 당당하다. 옷을 벗은 여자가 전혀 부끄럼 없이 다른 사람을 쏘아보는 것, 그것은 여염집 여인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물론 관자를 바라보는 서양 누드 그림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비너스로서, 혹은 다른 전설이나 로맨틱한 이야기 속의 히로인으로서 관자를 바라보는 존재였다. 그것도 은근하게…. 이 그림에서처럼 모델이 다른 외피를 쓰지 않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놓는 그림을 보기란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당시 왜 그토록 많은 비난이 이 그림에 쏟아지게 했는가를 잘 나타내주는 부분이다.

서양미술에 있어 누드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의미했다. 미적 이상의 절정이었다. 그만큼 누드는 동경과 꿈·기대·소망·이상을 담은 저 하늘의 아름다움이어야 했다. 물론 누드에는 진한 에로티시즘이 담겨 있다.

하지만 땅의 에로티시즘을 하늘의 이상으로 승화시킬 때 비로소 ‘진정한 누드’는 탄생할 수 있다. 이런 관념이 그때까지의 누드 미술에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런데 마네는 그 하늘의 아름다움을 땅의 추함으로 곤두박질시킨 것이다.

비너스도 아니고 님프도 아닌 그 벌거벗은 여인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저 사창가의 창부와 다를 바 없었다.

벌건 대낮에 이 창부에게 지고의 예술적 경배를 드리기 위해 정장과 드레스를 갖춰 입고 우아하게 전시장에 입장한 관객들로서는 분통이 터지고 욕설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창부의 고객이란 말인가?

더 이상 신화나 전설에 기대지 않고 살아 있는 시대의 이미지로 누드를 그리려 한 마네, 그리고 이에 거부감을 갖고 맹렬히 마네를 비난했던 당대의 ‘우둔한’ 비평가들과 관람객들.

우리는 이 둘의 싸움에서 끝내 마네가 승리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 비록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역사를 선도한 마네는 끝내 영광의 옥좌에 앉았다.

하지만 오늘날 모델이 됐던 빅토린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네의 의도에 따라 ‘날것’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놓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던지는 ‘외설’ ‘음란’ ‘창부’ ‘걸레’ 따위의 말이나 들어야 했던 빅토린.

그럼에도 모델 일을 주저하는 다른 여인에게 마네가 “그래도 나에게는 빅토린이 있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 그녀는 현실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듯하다. 이와 관련해 그녀의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비평가 귀스타브 제프루아의 다음과 같은 증언이 인상적이다.

“(빅토린은) 역마살이 낀 자유분방한 여인네로, 마네가 하룻밤 풋사랑을 나눈 맥주홀의 바람기 있는 여자이다.…그의 눈빛은 신비롭고 얼굴은 매정한 어린아이 같다.”

빅토린은 그 나름으로 세상에 대한 냉소가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모델을 설 뿐 아니라 그림도 배워 예술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그는 토마 쿠튀르의 화실에서 모델로 일하는 한편 그의 여성들을 위한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또 아카데미 줄리앙의 이브닝 클래스에 다니기도 했다), 더불어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대를 비웃을 줄도 알았다.

물론 현실이 얼마나 냉혹한 것인가를 잘 인식하고 있었기에 화가로 활동할 때는 살롱에 여러 차례 출품하는 등 제도권에서의 인정을 갈망하기도 했다.

빅토린의 화가로서의 재능이나 활동이 모델의 그것에 비해 덜 조명돼왔고, 그것이 여성에 대한 시대의 편견 때문이라고 보는 구미의 페미니즘 미술사가들은 그런 점에서 최근 빅토린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빅토린은 1844년 2월18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1860년대에 쿠튀르 화실에서 모델을 서다가 역시 쿠튀르에게서 그림을 배우던 마네를 만났다. 1862년부터 1874년까지 빅토린은 마네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이었다.

한동안 빅토린은 알코올에 절어 일찍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새롭게 밝혀진 기록에 따르면 1927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수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최후 수십년 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빅토린은 별명이 ‘새우’였다. 자그마한 몸집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러나 그림을 통해서는 신체의 사이즈 같은 것이 쉽게 측정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예의 뚫어질 듯 쏘아보는 눈동자가 특징적이다.

실제로 빅토린은 강렬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에스파다 옷을 입은 빅토린’ 등 마네의 그림에 등장한 빅토린은 늘 그림 밖을 응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반항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관심하다는 그런 표정으로 말이다.

머리카락의 색도 적갈색이어서 이런 반항의 뉘앙스를 더욱 부채질한다. 그림 속 빅토린의 타오르는 시선은 그러므로 마네의 연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네조차 사로잡아 늘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게 한 그의 타고난 자력 같은 것이었다.

‘에스파다 옷을 입은 빅토린’에서 그의 시선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다. 투우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지만, 빅토린의 시선은 소에게 가 있지 않다. 그의 진정한 관심은 소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관객이다.

그는 단 한 사람의 관객도 자신의 자장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지금 이 투우판에 뛰어든 것도 우리의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정면으로 마주한 시선 속에는 더 이상 거짓이나 가식이 존재할 수 없다. 당시 한 비평가는 이렇게 썼다.

“젊은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고, 어울리지 않는 놀이다. 좀 덜 과격한 놀이를 하면 좋을 걸. …솔직히 나더러 과일 잼을 만드는 여자와 황소를 찔러 죽이는 여자 중에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당연히 전자를 택할 것이다.”

오늘날 스페인에서 여성 투우사도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비평가가 안다면 뭐라고 할까? 빅토린은 바로 그런 시대가 다가오고 있으며, 자신의 시선은 그 시대적 변화를 사람들이 정면으로 바라봐 주기 원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까?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생생한 시대의 현실로 그려진 모델이 파리지엔이였다는 사실이다.

이전까지 파리 화단의 인기 모델들은 대부분 유대계 아니면 이탈리아계였다. 이국적 미모는 누드를 이상화하는 데 훌륭한 밑천이 됐고, 기독교나 그리스·로마 신화 주제를 그리는 데 있어 그와 관련된 인종의 모델이 선호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마네는 더 이상 그런 ‘뜬구름 같은 주제’를 그리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타인종 모델을 쓰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현실에서 취한 이미지를 생동감 넘치는 시대의 감수성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빅토린은 그의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신화를 그리는 그림에서 시대를 그리는 그림으로 넘어가는 이 역사적인 분기점에서 그는 가장 현대적이고 개성적인 파리지엔을 만났던 것이다.


.
이코노미스트 2002년 11월 12일 662호  http://magazin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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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f 2014-05-1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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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우리와는 무관한 일"
(독점취재) 외교부 방치, 소말리아에 오봉기씨 등 강제 억류
조회수 1904

외교부의 무관심속에 조업활동 중 피랍, 1년여 가까이  귀국조차 못하고 있는 한국인 선원 3명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피랍 선원들이 가족들에게 지난 20일 보내온 팩스를 통해 알려졌다.

피랍자 한국인 3명 포함 총 11명 1년째 억류중

현재 피랍중인 이들은 선장 오봉기(51년생), 기관장 한종도(56년생), 기관사 정상배(69년생) 씨등 한국인 선원 3명과 인도네시아인 선원 8명 등 총 11명이다.

이들이 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선박은 최근 부도가 난 (주)모즈코 사(대표 이열)소속 새우 트롤선 베라(BEIRA) 3호. 이들은 지난 2003년 7월 11일 황천(비바람이 심한 날씨)으로 인해 캐냐 몸바사 주재 기지 사무실에서 허가를 얻어 소말리아 키스마이요(KISMAYO)항에 피항중 현지 선박 대리점으로 부터 대리점 수수료 미지급 등으로 인해 억류되어 현재까지 인질로 잡혀 있다.

현지 대리점( JUBBA FISHING AGENT )는   현재 이들에게 대리점 수수료 및 주부식 미지급분 10만불 (우리돈 1억 2천만원)을 지급하면 선박 및 선원들을 방면하겠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피랍 선원들은 팩스로 보낸 편지에서 "부도난 선박업체  (주)모즈코사 대표와의 연락이 안되고 현지 소말리아 소재 대사관이 없는 관계로 이들은 지난해 11월  6일, 12월 8일 두차례에 (12월 10일은 이메일로 연락)걸쳐  인근 케냐 주재 한국대사관에 연락을 취해 귀국 도움요청을 했으나  현재까지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교부 자국민 보호 최우선 '거짓말'

이들 선원들은 현재 쌀, 식용유, 양파,  밀가루, 설탕 등 극소량의  부식만을 현지 대리점으로 부터 공급받아 연명만 하고 있으며 24시간 무장경비들로 부터 감시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부도가 난 선박회사가 운영하던 납포선박의 실질적인 소유는 부산시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부산시는 현재 10여척의 배를 임대 형식으로 민간에 위탁하여 일정 수익을 얻고 있다.

부산시 해양수산청은 지난 3월 23일 베이라 3호 선원들의 송환을 요청한 가족들의 민원에 대해 선박의 실제 소유주인 부산시 수산행정과로 이첩하였다는 공문만을 가족들에게 통보한 바 있다.

한편 피랍 선원중 기관장  한종도씨의 가족들은 지금까지 청와대 및 외교통상부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구명을 요구했으나 "외교부측은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중 발생한 일이라며 책임떠넘기기에 급급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기사입력시간 : 2004년 06월26일 [12:56] ⓒ 진보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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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4-06-2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참...
살기 싫은 소식만 넘치누만요ㅠ.ㅠ

sayonara 2004-06-27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이것뿐이겠습니다. 중국에서 사형당한 마약상도 변변한 조국의 도움을 못받았습니다.(물론 범죄자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조국을 위해 애쓰다가 미국에서 옥고를 겪은 로버트 김도 그렇고 말입니다.
 


저는 미피예요. 50년쯤 전에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아기토끼죠. 아주 어린 아기용 그림책에 나오는 동물 중 하나 정도로 여기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래 봬도 제가 나오는 책은 세계 40여개 국에서 1억 권 가까이 팔렸고, 어떤 조사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에 미키 마우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구요!

어린 아기들 친구답게 저는 아주 단순해요. 대단한 모험을 하는 것도 아니고 뭘 많이 가르쳐 주지도 않는답니다. 아기토끼라는 건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요. 하다못해 생쥐도 코끼리를 놀래 준다든가 밧줄을 쏠아 사자를 구해 준다든가 할 수 있는데 말예요. 풀잎이나 오물오물 먹고 있다가 뭔가에 놀라 도망가는 게 고작이잖아요.

하지만 딕 브루너 아저씨는 바로 그 때문에 저를 아기들의 친구로 삼은 게 아닐까요? 능력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의미있고 기쁨을 주는 아기와 가장 비슷한 게 토끼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저를 통해서 뭔가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을 나타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제가 왜 그렇게 단순한 색과 단순한 선으로만 그려졌는지도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제 책에 주로 쓰이는 빨강, 노랑, 파랑은 그냥 단순한 색이 아니라 ‘삼원색’이에요. 그러니까 가장 기본적인 색이면서도 서로 섞여 온갖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도 담고 있는 거죠. 저나 제 친구들이 보여 주는 단순한 형태와 동작도 실은 브루너 아저씨가 수백 번 그려본 끝에 “이거다!” 하고 내놓는 거래요. 독자들이 그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형태와 색깔 너머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예요.

 

그래요. 가장 제한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널리 펼쳐져 있는 세계를 갖고 있는 게 바로 저랍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말 없는 말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가만히 보세요. 제 입은 언제나 x자로 꼭 다물어져 있잖아요. 하지만 또 거의 언제나 귀를 높이 세우고 눈을 반짝 뜬 채 정면으로 가만히 여러분을 쳐다보고 있어요. 여러분도 저를 가만히 쳐다봐 주세요. 그러면 다 들리고 보이는 것 같지 않으세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 뒤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말예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교수)

 

출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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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6-27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화전 다녀온 기념으로 ^^

반딧불,, 2004-06-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울딸이 프린트해달랍니다..
토끼라면 자다가도 벌~~떡!!

바람꽃 2004-06-2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둘째가 토끼를 좋아하는군요~
우리딸은 강아지를 좋아하죠.

starrysky 2004-06-2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소개글도 너무 예쁘네요. 음, 역시 동화작가가 쓰신 글이라 다르군요.
저 좀 퍼가도 될까요?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사와요. ^^

밀키웨이 2004-06-2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스타리님 새삼스럽게..^^
 

창작 그림책이 서점과 도서관에 진열 되어있는데 별도의 전시장에서 그림책그림(원화)을 전시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일본의 그림책작가 가와바타 마코토(川端誠)씨가 원화전문점에 보낸 메시지 인용을 통해 그 의미를 새겨 볼 수 있습니다.

’그림책의 원화와 그림책의 관계는, 콩과 두부의 관계를 닮았습니다. 원화를 원료로 해서 그림책이 만들어지니까, 그림책이 완성된 후의 원화는 콩비지인 셈입니다. 두부도 맛이 있는 음식이지만, 콩비지도 잘 요리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비지에 맛 낼 마음으로 원화를 액자에 넣어서 전시하는 것입니다.-중략- 여러분이 사시는 동네에 올 때는 꼭 비지 맛을 보십시오. 반드시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책Journal PeeBoo 25號('96.12발행)(부크론출판,도쿄)에 게재된 문장-

이글은 그림책과 원화의 관계를 재미있게 알기 쉽게 비유한 글입니다. 그러니 두부(그림책)와 비지(원화)의 맛을 비교하시면 재미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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