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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의 르시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나이 14살이던 해, 그의 어머니 아들린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영향은 20년대 후반의 몇몇 그림에서 느껴지는데 - 중심의 역사(1927), 사랑하는 사람들(1928) - 이 그림들에 나타나는 천으로 덮혀진 인물들의 머리는 강으로 인양되었을 때 셔츠로 얼굴이 덮혀 있었던 어머니 시신의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다음해 샤를르루와로 이주하였으며 그 도시에서 조제트 베르제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1920년까지 만나지 못하다가 1922년 다시 만나 결혼한 후에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벨기에의 왕립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벽지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우연히 데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1914)>의 복사본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에 그는 거의 충격에 가까운 감명을 받았고, 화가로서의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게 됩니다.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한 파리의 초현실주의 운동에 대한 반응으로 1926년 벨기에에서 결성된 초현실주의 그룹에 마그리트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은 1928년 <바리에테>라는 잡지를 창간하였습니다.

마그리트는 1927년에 브뤼셀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이때 그는 데 키리코를 따른 자신만의 양식을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초현실주의 운동을 주도하던 주요 예술가들, 즉 호앙 미로, 폴 엘뤼아르, 앙드레 브르통, 쟝 아르프 등과 친분을 맺게 됩니다.

1929년 마그리트 부부는 폴과 갈라 엘뤼아르와 함께 스페인 까다께즈에 있는 달리의 저택에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좀 빗나가는 얘깁니다만, 달리는 연상일 뿐아니라 유부녀인 갈라에게 완전히 매료당해 버렸고, 얼마 후 이들은 부부가 됩니다.

다시 마그리트 얘기를 하자면, 그에게 있어서도 1929년은 중요합니다. 유명한 <형상의 배반>의 첫번째 판본을 제작한 해였으니까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귀를 써넣은 파이프 그림 말이에요.

이후 마그리트는 철학적 혹은 의미론적 주제를 상기시키는 다수의 그림들을 제작하였습니다. 40년대엔 양식의 변화를 몇번 시도해 보기도 합니다만, 결국은 원래의 양식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1953년엔 벨기에의 Knokke-le-Zoute에 있는 카지노의 의뢰를 받아 벽화를 제작하였습니다. 마그리트는 1960년에 브르통을 만나러 파리를 방문했는데, 마르셀 뒤샹, 만 레이, 막스 에른스트도 만나게 됩니다. 이 시기엔 이미 거장의 반열에 들었던 마그리트. 뉴욕, 파리 등 예술의 중심지에서 회고전을 열었지요. 그리고는 1967년 8월 15일 숨을 거두었답니다.

- http://my.dreamwiz.com/mijk/ 의 텍스트를 주로 하여 아주 조금 손 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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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5-1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림 출판사에서 나온 <마법의 저녁식사>...
이런 초현실적인 책을 좋아하기에...^^

그 책의 그림들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들을 인용하여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진/우맘 2004-05-18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번 느끼지만...<르네 마그리트>라는 이름은 왠지, 초현실주의 보다는...좀 더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그림에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부옇고 풍만한 엉덩이를 가진 나신의 여인들이라던지, 드레스를 차려 입은 부인의 초상화 같은.^^;

starrysky 2004-05-18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키웨이님 서재에는 배울 게 무궁무진해요. ^^ 제 서재는 없애버리고 아예 여기 틀어박혀서 살아야겠어요. 어디 쪽방이라도 한 칸 빌려주심 틀어박혀서 조용히... ^^
근데 위에 링크 거신 사이트는 밀키웨이님이 만드신 사이트인가요? 가봐야겠당~

밀키웨이 2004-05-18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스타리스카이님..
잘 보세요..제가 만든 싸이트가 아니랍니다 ^^

르네 마그리트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http://user.chollian.net/~yibeachuie/magritte.htm

그림을 더 보고 싶으신 분은 http://www.atara.net/magritte/index.html

에구구..저는 자러갑니다.

밀키웨이 2004-05-18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저도 그렇게 생각되요. 글고 꼭 여자이름같다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진짜로 자러 갑니다.

반딧불,, 2004-05-18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초현실주의의 그림은 힘들지만,
어느 날 보면 그 그림들이 꼭 살아서
제 속을 떠다니는 듯 할 적이 있어요(원본도 안봤는데도 불구하고^^;;)
덕분에 좋은 공부하옵니다^^

밀키웨이 2004-05-18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현실주의 그림들...전 아무생각없이 봅니다.
입 헤~~벌리고요 ^^
그러다가 침도 한번 쓱~ 닦고 ^^
 

   

 

 

이쁘당... 귀엽구...그런데 가격이 만만치가 않네..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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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2004-05-16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이뻐라.. 걍 보는것으로 만족할랍니다.
그래도 갖고 싶다..ㅎㅎ

바람꽃 2004-05-1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키님. 그림 가져다 붙이는 것좀 가르쳐 주세요.
다른 사이트는 html 체크하고 테그 쓰면 되던데 여기는 그렇게 해도 안되더데요?

진/우맘 2004-05-16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html로 쓰기 하고 태그 적용하면 이미지 올려지는데...왜 안되시지? 컴에 저장된 이미지면, <이미지 올리기>로 찾아 올려도 되구요.(주인도 아니면서 답변을~^^;)

책읽는나무 2004-05-16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될땐 되고....안될땐 안될때가 있더군요!!
그래서 아예 귀찮아서 이런거 안하기로 작정하고 안합니다...ㅎㅎㅎ
그리고....야노쉬 식기 저도 얼마전에 보았는데......정말 갖고 싶어요....
특히 저 사자머리하고 있는 하얀 머그컵이요....전 그걸로 민이랑 음료수 따라 마시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더군요!!....건배 하면서요...ㅎㅎㅎ

밀키웨이 2004-05-1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머그잔답지 않게 냘렵하게 빠진 손잡이가 참 이쁘지 않으세요?
가시덤불 이야기 찻잔세트를 갖고 싶었던 적이 있는데 일단 가격이 ...흑흑...장난이 아닌데다가 차력형제는 가시덤불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통과!
그래서 이게 또 갖고 싶네요.
지난 겨울에는 토토로잔이 그렇게 갖고 싶더니만 변덕도...히히히

밀키웨이 2004-05-17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html로 되던데요?
아..그런데 일부에서 막아놓은 그림은 아마 배꼽으로 보일 겁니다.
요즘은 못 퍼가게 막아놓은 곳이 꽤 있어요.
또 네이버에서 찾은 그림은 일명 네이버소년만 나타나지요.

꼭 올리고 싶은데 안될 경우에는 진/우맘님의 말씀대로 오른쪽 마우스 누르신 후 내 그림으로 저장하기를 누르셔서 저장하신 뒤 그걸로 올리시면 될 거예요.
근데 이렇게 저장된 그림은 하나만 아니고 여러개도 올라가나요? 전 하나만 올릴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전 개인적으로 귀찮아서 못 퍼가게 막아놓은 데 있으면 그냥 관둬 버립니다.
찾아보면 다른 이미지도 많고 그래서요 ...^^;;

반딧불,, 2004-05-17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한꺼번에 올리면 그냥
태그 용어가 한꺼번에 올라오는거요..
전번에 그 그림있는 비 이야기처럼요..
저도 바람꽃님하고 같아서 매번 지우기하고 있거든요..

반딧불,, 2004-05-17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흑..
넘 이쁘지요?/

차라리 보여주시지를 말지...아구..삼삼한 것이..

starrysky 2004-05-18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제목 보고 클릭을 할까 말까 망설였어요. 제가 워낙 예쁜 그릇에 환장을 하는지라 사진 보고 혹해서 저질러버릴까봐.. 흐흐, 근데 아가들용 캐릭터군요. 휴우, 다행이다.. 하면서 스크롤링하는 순간, 맨 밑의 투명한 그릇들이 갖고 싶어졌어요. 어째..
전 요새 브램블리 헷지 시리즈에 푹~ 빠져 있답니다. 근데 너무 비싸요. 잉잉.
 

 

우리 시대 대표적인 판화가의 판화산문집

해어스름, 저물어가는 마을을 배경으로 구수하게 피어오르는 밥냄새나 쇠죽 끓이는 내음새 같기도 하고, 심오한 영적 세계와 현실의 온갖 굴레를 가볍게 벗어난 선적 세계를 그린 선화 같기도 한 이철수의 판화, 이제 우리는 한국 현대미술사를 논할 때 그의 이름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조정권의 말대로, 1980년대 중반 예쁜 꽃그림이 판을 치던 판화시장에 이철수가 등장한 것은 민중미술의 영역에서 '판화'를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게 한 사건이었다. 이철수는 현실주의의 화맥을 판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생활 저변에서 얻어낸 소재와 현실감 있는 표현으로 질박하면서도 구수한 판화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이철수의 판화는 1990년대 들어 생활 저변의 언어를 작품으로 연결시키는 한편, 점차 동양의 자연관과 선불교의 인간관을 바탕으로 한 '정신의 언어'를 중요한 한 축으로 삼았다. 『배꽃 하얗게 지던 밤에』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는 판화산문집이다.
『배꽃 하얗게 지던 밤에』는 1996년 초판이 출간된 이후 중쇄를 거듭해오다가 이번에 판형을 달리하고 해설을 추가하고 영문 번역을 실어서 다시 펴내게 되었다. 이번 개정판을 토대로 일본 동방(東方)출판주식회사에서 일본어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자연을 향한 큰 귀와 생명력 가득한 여백

이철수 판화의 일차적인 소재는 소리·바람·물·소나무·새·길 등 자연물이다.
<낙엽>(8쪽)이라는 작품은 석 장의 낙엽이 떨어져 내리는 장면을 간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는 "길이/멀다"라는 짧은 글을 옆에 붙였다. 낙엽의 길은 정해진 바가 없다. 나무에서 바닥으로 떨어질 때까지의 과정이 곧 낙엽의 길이고, 바람에라도 날려간다면 또 새로운 길이 열린다. 낙엽이 어떻게 떨어질지, 어디로 날려갈지는 바람밖에 모른다. 아니 바람조차도 모른다. 그러기에 낙엽의 길은 알 수 없고, 끝이 없으며, '먼' 것이다.
"잘 있거라/나는 간다/이별의 말도 없이…"라고 말하면서 단풍잎이 떨어진다(<적멸>, 14쪽). 이 작품에는 "어제도 마을 골목길에 밝은 주황색으로 불켠 조등 하나 조용히 내걸렸습니다. 근조(謹弔)!"라는 산문을 붙였다. 단풍잎은 별을 상징하고, 떨어지는 별은 사람의 죽음을 상징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단풍잎이 떨어지는 것을 죽음이라는 '이별'로 그려내고 있음이다.
이렇게 이철수의 판화에 묘사되는 자연물은 삶의 진실에 대한 기막힌 비유가 된다. 이런 그림들은 또 동양화의 가장 큰 특징인 '여백'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화면을 꽉 채우지 않은 그림의 시원한 여백은 곧 보는 이의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가끔은 화면을 꽉 채운 그림이 있다.
새떼들이 대나무숲에서 일제히 날아오르는 그림 <대나무는 그 빈자리를 얻고>(52쪽)라는 작품은 하늘을 가득 메운 새떼들의 날갯짓과 울음소리가 실제로 들릴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여기서 새떼들은 통상 여백으로 남겨질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점으로 묘사된 새떼들은 마치 하늘로 솟구쳐오르다가 돌연 마음이 변해 작렬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대로 천공에 제각기 얼어붙어버린 불꽃과도 같아 보인다. 그런데 조정권의 견해에 따르면, 이 한 폭의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상승하는 점들이 갖는 생동적인 이미지 그 자체가 아니다. 이 그림의 생기발랄한 생명력은 군집되어 대우주를 운행하는 듯한 점들이 보여주는 공간의 진동에 있다. 무수한 점들이 일종의 생명력 가득한 여백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충허공적(沖虛空寂)'의 세계이다. 그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세계는 곧 불교의 '선(禪)의 세계'와 통한다.

하루하루의 일상적인 삶에 새로운 성찰을 갖게 하는 '선'의 세계

조정권은 <차 한 잔>(6쪽)을 선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의 백미로 꼽는다. 화면을 중심으로 차받침 위에 찻잔이 놓여 있고 그 위로 댓이파리가 그려져 있는 담백한 구도이다. 찻잔은 마치 맑고 안정된 마음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차받침 접시는 찻잔에 비해 넓고 후덕하다. 찻잔 속에 담긴 쓴차는 처음에는 끓는 물처럼 자신을 고누지 못하고 있다가 서서히 안정감을 찾아 평점심을 이룬 듯 고요하다. 차를 마시는 선승을 그리지 않고도 선사의 깨달음을 깊이 있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선의 세계가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은 이른바 <좌탈(坐脫)> 연작이다. 좌탈이란 앉아서 몸을 벗는다는 말이니, 곧 좌선한 채로 열반에 드는 것을 뜻한다. "오늘은/장오던 새가 안 온다./어서/가라는/소리라/내/간다"라는 글귀가 붙은 작품(76쪽)은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경지를 잘 보여준다.
또다른 <좌탈>(88쪽)에서는 "깨달음이/내 손님으로 오실 때야/피해가지 못하지만/나가서/불러들일 일이야 아니지./내 생애가 적적하기만 하여/손님 받을 겨를이/없었다./이제 되었으니/그만 나가서/문 닫아 걸어라"라고 말한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선승은 깨달음의 실체를 구경하지 못했다. 깨달음은 일종의 손님이어서 그 깨달음이 자신을 방문한다면 피할 수 없지만, 선승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이제는 더이상 손님(깨달음) 받을 힘이 없으니 문 닫아 걸라는 것이다. 오직 깨달음을 참구하며 평생을 좌선에 임해온 선승이 이토록 쉽게 깨달음을 포기할 수 있다니, 우리는 여기서 서늘한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쩌면 깨달음에 대해 초탈한 경지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일지도 모른다.
'선'은 불교에서 피어난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승이나 선종의 전유물은 아니다. 법정 스님은 선은 정신의 안정과 집중을 거친 침묵의 세계이며, 그 침묵을 배경으로 생동하는 무한한 정신공간이라고 말한다. 선의 세계를 그린 이철수의 판화는 선적 깨달음의 세계에 대한 추상적인 설법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일상적인 삶에 새로운 성찰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잔잔한 기쁨을 선사함으로써 선의 세계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림을 보고 난 후 더 깊이 울리는 긴 여운

이 판화산문집에는 이처럼 이철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자연을 향한 큰 귀, 불교와 선을 해석하는 깊이와 위트, 우리 마음속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고 순수를 어루만지는 넉넉한 마음 품새가 담뿍 녹아 있다. "텅 비어 있으면 남에게 아름답고 나에게 고요하다"라고 말하는 이철수는 작은 그림에 큰 이야기를, 짧은 글에 긴 여운을 담아 우리의 내면을 두드린다. 그러기에 이철수의 판화를 온전하게 감상하려면 그만큼 우리 마음도 비워둘 일이다. 비어 있는 마음자리만큼 그림을 보고 있는 시간보다 보고 난 후 사색하는 시간과 그 여운이 더 길 것이다.

이철수
1954년 서울 출생. 한때 독서에 심취한 문학소년이었으나, 군 제대 후 홀로 그림을 공부하여 화가가 되었다. 1981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전국 곳곳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1989년에는 독일과 스위스의 주요 도시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탁월한 민중판화가로 평가받았던 이철수는 최근 사람살이 속에 깃들인 선과 불교에 주된 관심을 쏟아 심오한 영적 세계와 예술혼이 하나로 어우러진 절묘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박달재 아랫마을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판화작업을 하고 있다.

 

- 문학동네 홈페이지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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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2004-05-1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있던 예쁜 그림이 없어졌네요?
여백과 깔끔한 그림이 좋던데요.

밀키웨이 2004-05-1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바람꽃님
예섬방에 "생각나는 책"이라는 제목에 있는 그림 말이시지요?
저도 순간 헷갈렸습니다 ^^
 

 

 

[유전자 내 인생을 얼마나 좌우하나]

타고난 성격, 바꾸려면 부러질수도 (공개기사)
  
유머감각, 입맛은 환경 영향 커




성격과 지능뿐 아니라 각종 질병의 발생과 진행에 유전자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이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생활해나가는데 유전적 정보가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지에는 어떤 얼룩도 없기 때문에, 그 위에는 가장 새롭고 가장 아름다운 말들이 써질 수 있고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모든 인간이 서로를 위하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이상을 품었던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둥의 말이다. 그는 문화혁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했지만 결국 6천5백만명이 희생된 채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공산주의자들만이 이런 믿음속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중반, 미 하버드대 스키너 교수가 이끄는 행동주의 심리학이 등장하면서 아동심리학자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인간의 행동특성이 환경에 의해 형성되고, 자녀들의 성격이 부모의 양육방식에 따라 원하는 대로 고쳐질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 ‘빈 서판’(blank slate), 즉 백지상태라는 이런 주장들은 선천적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보다 왠지 도덕적으로 느껴진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인종청소를 통해 우생학을 극단으로 밀고 나갔던 나치즘의 잔상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처럼 사람의 성격이나 지능은 정말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주면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을까?

자식들을 키워보거나 아이들을 가르쳐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렇지 않음을 인정할 것이다. 실제 과학적 연구 결과들은 개인의 성격이나 지능에 미치는 유전적 영향력이 상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유전 영향 밝힌 쌍둥이 연구


빈서판에서처럼 사람의 마음에 ‘평화’를 새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1994년 페레즈(왼쪽)와 아라파트가 노벨 평화상을 탄 이후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사실은 쌍둥이 연구 결과 드러났다. 1979년 어느날 미국의 심리학자 토마스 부샤드는 태어나자마자 각자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 쌍둥이가 40년만에 만났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흥미를 느낀 부샤드는 이들의 유사성과 차이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 결과 깜짝 놀랄 사실이 드러났다. 두사람은 외모가 거의 구별되지 않는 것은 물론 고혈압과 편두통을 비롯한 병력도 비슷했고 비만이 시작된 시기도 같았다. 게다가 둘 다 습관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었고 목공이 취미이고 농구를 싫어했다.

당시 심리학 정설과 너무나 다른 결과에 충격을 받은 부샤드는 이후 본격적으로 쌍둥이 연구를 진행해 특히 성격에 유전적 영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부샤드는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이런 특성이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고 믿지 않았다”며 “그러나 결국 증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성격은 크게 5가지 독립된 주요 특성으로 나눠진다. 즉 지적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 성실성(conscientiousness), 외향성-내향성(extroversion-introversion), 적대성-친화성(antagonism-agreeableness), 정서안정성(neuroticism) 등의 기준으로, 각 단어의 첫글자를 따 오션(OCEAN)이라고 부른다.

연구 결과 5가지 특성 모두 성격 편차의 40% 정도가 유전적 영향의 결과이고 가정환경의 영향은 10% 이내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50%는 질병이나 사고, 친구 등 개인적인 특수 환경이 차지했다. 이런 결과는 어린 시절 경험이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과도 배치된다.

습관적인 거짓말이나 도벽도 아이 때 입은 정신적 충격의 결과라기보다는 대부분 유전적 소질 때문으로 보고 있다. 미 하버드대 언어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교수는 그의 저서 ‘빈 서판’에서 “유전학과 신경학은 어두운 마음이 항상 부모나 사회탓이 아님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범죄성향과 유전자가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X염색체에 있는 MAOA 유전자가 그것. 이 유전자는 활성이 높은 타입과 낮은 타입이 있다. 활동이 낮은 유전자형을 갖는 사람들은 공격성이 높은데 품행이 불량한 청소년들과 반사회 성격장애 성인들에서 흔히 발견된다.

흥미롭게도 유전자의 타입에 따라 환경의 영향력에 차이가 나타난다. MAOA 활동이 높은 유전자형은 어릴 때 학대를 받고 자라더라도 나중에 성격장애나 폭력성을 거의 보이지 않는 반면, 활동이 낮은 유전자형은 커서 폭력범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성격 형성엔 다수의 유전자 관여


쌍둥이는 취미와 소질도 비슷하다. 국악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김진아(가야금), 선아(거문고), 민아(해금) 세쌍둥이자매.
흔히 ‘모험 유전자’로 불리는 D4DR 유전자도 성격과 관련이 깊다. 이 유전자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신호를 받는 수용체 단백질을 만드는데, 민감도가 높은 단형유전자와 민감도가 낮은 장형유전자가 있다.

장형유전자를 갖는 사람은 좀더 큰 자극을 얻기 위해 모험을 즐기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또 바람을 피우는 성향이 강하며 알코올이나 약물에 중독되기 쉽다. 담배를 끊기 어려운 사람은 유전자를 의심해볼만 하다.

지나치게 근심걱정이 많은 성격도 유전자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996년 독일 뷔르부르크대 정신과 레슈 교수팀은 17번 염색체에 있는 세로토닌 운반체(5-HTT) 유전자를 억제하는 DNA의 길이가 짧은 사람이 이런 성향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사람들은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어 사교모임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물론 하나의 유전자가 성격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새로움을 갈망하는 성격의 원인 가운에 D4DR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4% 이하다. 결국 성격의 유전적 측면은 수많은 유전자가 관여해 상호작용한 결과다. 그렇다면 성격 형성에 유전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많은 부모들은 자식의 성공과 행복이 자신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고 있다. 잘못 해서 혼을 내도 혹시나 아이의 성격이 비뚤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맞벌이 부모의 경우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부족한 것에 대해 늘 죄의식을 갖는다. 그러나 아동학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이상 부모의 태도는 자녀의 성격 형성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타고난 성격을 억지로 바꾸려는 노력도 별 효과가 없다. 소심한 성격의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없앤다고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게 하는 것 같은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영국의 과학저술가 매트 리들리 박사는 그의 저서 ‘게놈’에서 “사람의 기본 성향을 병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며 “소극적인 면을 타고났다고 말해 주는 것이 소극적인 것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쓰고 있다. 수줍음은 신경계의 흥분조절능력의 결핍에 기인한다. 따라서 부담이 적은 관계를 맺을 기회를 통해 조금씩 적극성을 배우는게 더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성격차도 이런 면에서 접근하면 좀더 너그러울 수 있다. 배우자의 나쁜 버릇이 어느 정도 타고난 것이며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인 뒤 해결책을 모색하면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사례가 많다.


열악할 때 환경 영향 더 커


성격이나 행동 모두가 유전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은 아니다. 매력있는 현대인의 필수요건인 유머감각은 가정환경의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입양된 형제들의 유머감각이 비슷한 반면 떨어져 산 쌍둥이는 차이가 있다. 음식 선호도도 유전성은 거의 없고 초기 경험이 중요하다.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어린 고객을 중요시하는 이유다.

한편 상황에 따라서는 환경이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헤어져 혼자 자란 생쥐는 신경이 예민하고 커서 새끼를 낳아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사람의 경우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극단적 조건에서는 유전자보다는 환경이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환경이 좋아질수록 역설적으로 그 영향력은 작아진다. 유전자가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범한 가정의 사소한 차이가 성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매트 리들리 박사는 지난해 펴낸 책 ‘양육을 통한 본성’(Nature VIA Nuture)에서 “가정이란 환경은 결핍되면 질병에 걸리지만 어느 수준이 넘어가면 건강증진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비타민C와 같다”는 멋진 비유로 환경의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의지로 의지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고유한 성격을 억지로 바꾸려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런 경구는 딱딱해지기 쉬운 책임감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려서, 우리가 자기 자신이나 남들에게 너무 엄격하게 굴지 않도록 해준다. 그래서 유머를 즐길 수 있는 인생관을 갖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쇼펜하우어를 좋아했던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될 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삶을 살지 않을까.


아침형 인간도 유전자가 맞아야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정 유형의 D4DR 유전자를 가질 확률이 높다. 이런 사람들은 약물에 중독되기 쉽고 담배를 끊기고 어렵다.
성격 뿐 아니라생활패턴도 유전적 영향을 받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최근 ‘아침형 인간’ 신드롬으로 새벽부터 부산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낮에는 졸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눈이 말똥말똥해지는 소위 ‘올빼미족’이었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성격이 소심한 아가씨가 하루아침에 ‘명랑소녀’로 바뀌기 어렵듯이 늦잠꾸러기가 ‘종달새족’이 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수면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최근 밝혀졌다. 뇌에서 생체시계를 관장하는 부분을 작동시키는데 관여하는 Per3 유전자가 그 주인공. 영국 서레이대 시아몬 아처 박사팀은 올빼미족은 종달새족에 비해 이 유전자가 짧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루주기 생체시계가 24시간보다 긴 수면지연증후군(DSPS) 환자를 조사한 결과 75%가 짧은 Per3 쌍을 갖고 있었다.

결국 짧은 Per3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억지로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했다가는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로 보낼 확률이 높다. 물론 수면 패턴에는 주변환경이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의 신체리듬을 거슬러가며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는 것이다.

- 과학동아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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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5-1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하하하
그러니 이제부터 절대 기죽지 말아야겠다.
사실..그동안 사회에 팽배해온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는 그노무 이론 땜시 한밤중형인 나는 정말 기죽고 찌그러질 수 밖에 없었다.
왜 나는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일까...음냐음냐...그러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뒷받침이 생겼으니 이 아니 기쁠쏘냐1
음하하하, 신나는 오후이다!

반딧불,, 2004-05-14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
첨에 밀키님이 쓰신 줄 알고..언제 심리학이랑 유전공학을 전공하셨나했습니다..
ㅎㅎㅎ
그나저나 정말 신납니다^^*

반딧불,, 2004-05-14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룰루..퍼가야지!!

밀키웨이 2004-05-15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반디각시 진짜로 너무 하신거 아닙니까?
저를 어디까지 비행기 태우셔서 둥둥~~ 하실겁니까요?
이러다가 떨어지면 마냥 떨어지게 될까 겁나옵니다...^^;;
ㅋㅋㅋ

근데 진짜로 신나지 않습니까?
우리는 영원한 올빼미족 ^^

loveryb 2004-05-2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글들을 어케 퍼가나요.. 정말..퍼가려니 뭐 무슨 마이페이퍼 카테고리를
하라고 하는데 어케 하는지 영^^:::

밀키웨이 2004-05-2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러브비님
일단 러브비님 서재에다가 카테고리를 몇개 만드세요.
그러시고나서 퍼가기를 누르시면 그 카테고리 이름이 뜰거예요.
그러면 옮기고 싶은 카테고리를 지정하셔서 확인 누르시면 됩니다요 ^^

근데 맨날 이렇게 뒤로 밀린 글에 코멘트를 다시니 다시 찾아보기가 참말로 힘들구만요 ^^
정말이지 뉘시옵니까요 ^^
 

사람들은 대개 막연히 ‘나’라는 생각을 갖는다. 이 ‘나라는 생각’을 불교에서는 아상(我相)이라 부른다. 심리학에서는 이고(Ego)라는 말도 쓰고 자아(自我)라는 말도 쓴다. 이 ‘나’라는 생각은 실로 일반적인 삶에서 겪는 거의 모든 심리적 고통의 근원이다. 그러나 막상 ‘이 “나”란 도대체 뭔가’ 라고 묻기 시작하면 참으로 곤란해 진다. 그 답을 찾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물 새 나가 듯 뚜렷이 잡히는 것이 없다. 이 ‘나’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매우 막연히 갖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약 두 살쯤에 이르면 서서히 자아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때 까지는 어린아이는 천지와 하나이다. 도와, 존재와, 전체와 하나이다. 개체로서 존재하되 스스로를 전체로부터 구분할 줄 모르고, ‘나’와 남을 달리 알지 못하며, 자신을 주장하거나 세상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개별적 존재로 의식하지도 아니한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동물들이나 이 단계의 어린아이는 무아지경(無我之境) 물아일체(物我一體) 그 자체이되 스스로 그러한 줄은 모른다. 그 의식이 아직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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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자리 잡는 데는 대개 몇 가지 과정을 거친다. 의식이 조금씩 발달됨에 따라 어린아이는 주변과 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신체가 다른 사물과 분리되어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다치거나 뜨거운 것에 닿으면 고통스러움을 알게 되며, 단것을 먹거나 좋은 음악을 들으면 즐겁고 흥겨움을 느끼게 된다. 하여 ‘나’와 ‘나 바깥에 있는 것’을 분별하게 된다.
거울에 비치는 모양은 매일 같아 보여서 몸과 ‘나’를 하나로 동일시(同一視) 하기 시작한다. 부모나 형제 등 다른 사람들도 매일 같은 이름으로 ‘나’를 부르기 시작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나’를 대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름과 ‘나’를 하나로 동일시 하기 시작한다. 의식이 좀 더 발달함에 따라서 생각도 점차 복잡해 진다. 타고난 개성에 따라 스스로의 생각과 생각의 방식이 틀을 잡기 시작하고, 의견이나 주장도 생겨난다. 생각 의견 주장 따위를 복합적으로 마음이라 부른다. 이에 따라 마음과 ‘나’를 하나로 동일시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나는 무엇 무엇이다’라고 스스로 한정 짓게 나면, 나의 존재는 단순한 개체를 벗어나 개체성(個體性)을 띠게 된다. 이렇게 하여 몸과 마음, 즉 모양과 이름을 ‘나’로 아는 생각이 일단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면 대개 다시는 그 진위(眞僞)를 의심하는 법이 없이 그런 줄만 알고 평생을 지내고 만다. 그러나 상식적으로라도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의 존재가 어찌 한낱 임의로 붙여진 이름이나, 한 줌 흙으로 변하고 말 몸뚱이의 모양새나, 허망히 떠도는 잡된 마음의 생각따위로 한정 지어질 수 있겠는가? 이름, 몸, 마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유용하게 쓰이는 것들이지만 이를 ‘나’로 알고 있으면 진정한 나의 존재에 대한 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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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나’라는 생각은 대단한 즐거움의 원천이 되어서, 두세 살 때에는 ‘나’ 밖에 모른다. “나 좀 봐”,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내가 만든 것 좀 봐”, “이건 내 거야” … 그야 말로 나, 나, 나, 내 것, 내 것, 내 것 뿐이다. 이를 유치(幼稚)하다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심리 발달상 매우 중요하고 또 반드시 필요하다. 이 시기에는 어른들도 이런 유치함을 이해하고 다 받아주고 또 칭찬도 해 준다. 이 받아줌이 어린아이의 자신감 형성에 도움을 주며 심리적으로 성숙한 개인으로 성장하는 데 매우 필요한 영양분이 된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 이르면 이 ‘나’에 대한 집착과 자아 중심적 태도가 점차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대여섯 살이 되도록 이렇게 ‘나, 나, 나, 내 것, 내 것, 내 것’ 하고 있으면 어른들도 더 이상 잘 받아주지 아니할 뿐더러 칭찬은커녕 꾸중을 듣기 일수다. 대부분의 사람에 있어서,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이 ‘나’에 대한 집착과 자아 중심적 태도는 평생을 지속하고 죽음을 맞이 하도록 그 이상의 실존적 가능성을 모른 채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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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나’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단지 모양과 이름에 그 바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모양은 몸이고 이름은 마음이다. 몸과 마음에 한정된 ‘나’만을 나로 알고 있으면 삶은 끊임없는 추구(追求)와 득실(得失)로 고단해질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나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내’가, ‘나’의 개체성이, 재미있고 즐거웠으나, 어린 시절이 지나고, 청년기도 지나고, 점차 죽음을 의식하게 되면 이 개체성은 마침내 큰 짐이 되고 만다. 여태까지 모든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이었던 바로 그 개체성이 영원히 사라질 것임을 알게 된다. 또한 살아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이 개체성의 존재가치를 정당화 해야 하고, 유치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또는 충족되지 않아서 온갖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몸과 마음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게 마련이어서 늘 어딘가 모자람을 느끼게 되고, 무언가를 구하고 얻고자 하는 마음이 쉬지를 못한다. 또, 늘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려 노력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눈길 마저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견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얼마나 이루고 못 이루었느냐 또는 얼마나 이름을 얻었느냐 하는 등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고 인정 받는 정도에 따라서 스스로의 존재가치가 결정된다. 따라서 누가 칭찬하고 알아주면 우쭐해지고 누가 비난하고 냉대하면 풀이 죽는 데, 평생을 이렇게 이리 저리 쓸려 다니고 나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어딘가 모자라는 것 같고 참된 평화와 깊은 만족을 알 수가 없다. 자아 혹은 아상이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생각으로 지어낸 허구(虛構)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이 아닌 욕구의 충족은 일시적인 즐거움은 가져올지 모르나 깊은 정신적 만족을 줄 수는 없다.

---

이 만큼만이라도 알게 된 사람은 이제 이고(Ego)를 없애고자 노력한다. 삶의 온갖 마음 고생이 이 아상에서 비롯함을 보니 어찌 이를 없애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고나 아상이란 떨쳐버리거나 없애야 하는 것도 아니고, 떨쳐 버리거나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를 잘못 이해하여 ‘나를 없애야 한다’ 혹은 ‘나를 죽여야 한다’ 하는 따위의 말들도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믿고 따라 하려 하면 참으로 고달파질 뿐 아니라, 그 결과도 좋을 수가 없다.

아상이 아상을 없애려 하니, 없애려 하면 할수록 아상에 대한 믿음만 강해질 뿐이다. 아상이 실재(實在)한다고 믿는 한 무슨 노력을 어떻게 기울여도 아상을 벗어날 수가 없다. 단지 억지로 애써 겸손한 태도만을 좀 얻어가질 수 있을 뿐이나, 겸손이란 그 자체가 아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런 겸손은 사실은 짓고 꾸미는 일이어서 거만(倨慢)함과 다르지 않다. 참된 겸손은 겸손하고자 노력할 줄도 모르고, 겸손해도 스스로 그런 줄을 모른다.

아상이란 단순한 생각 뿐이어서 그 실체(實體)가 없다. 실체가 없으니 떨쳐버릴 수도 없앨 수도 잊어버릴 수도 없다. 이를 직시하여 바로 알면 그것이 곧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 이 ‘나라는 생각’으로부터의 자유가 곧 해탈(解脫)의 시작이다.

참된 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짓고 꾸미기에 마음을 바삐 한 것은 공맹(孔孟)의 허물이고, 이 간단한 도의 진리를 들고 구름 위로 넘어가 버린 것은 노장(老莊)의 허물이다.

---

깨닫고자 하는 마음은 아상을 넘어선 어떤 것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깨닫고자 하는 마음도 처음에는 아상으로 시작한다. ‘내’가 깨닫고자 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은 나’, 혹은 ‘천지와 하나가 된 나’ 따위의 생각은 사실 아상의 극치(極致)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패기에 찬 젊은이가 산사(山寺)를 찾아와서 스승을 만나고는 제자 되기를 청하였다. 젊은이의 진지함을 보고는 노승(老僧)은 흔쾌히 허락했다. 젊은이는 참으로 열심히 수련하였다. 많은 경전을 읽고 좌선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염불이나 의식(儀式)에도 열심이었다. 이렇게 몇 해가 지나자 스승은 제자에게 숙제를 주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마음 공부가 어찌 되어가는지 보고서를 한 장씩 써올리게 한 것이다. 제자는 드디어 스승이 자기를 알아주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여 매우 기뻤다. 첫 보고서를 쓰는 날이다. 열심히 먹을 갈고 붓을 적셔 다음과 같이 써 올렸다.

“그 동안 읽은 여러 경전에 의해서 좌선을 계속한 덕에 지난 달에는 마음을 완전히 비우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음을 비우자 밝은 빛이 머리 속을 채우는 듯 하였고 지혜가 샘솟는 듯 하였습니다.”

이를 보고 스승은 별 말도 없이 그저 마지 못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칭찬을 기대했던 젊은이는 좀 실망을 했지만 아무 말 못하고 물러났다. 또 한 달이 지났다. 젊은이는 다시 붓을 들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계속 염불과 좌선으로 정진(精進)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삼 주가 지나자, ‘나’라는 생각을 잊었고, ‘나’라는 생각을 잊자 천지가 제몸 같이 느껴지고 우주가 제 마음 같이 느껴졌습니다.”

젊은이는 이 정도면 스승께서 감탄을 하겠지 하고는 얼굴에 웃음을 띄면서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스승은 한번 슬쩍 보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돌아 앉았다. 제자는 실망이 대단히 컸다. 또 한 달을 열심히 수련을 한다. 그 동안 계속한 참선 수련으로 그 경지를 높인 젊은이는 이번에는 자신 있게 다음 달 보고서를 이렇게 올렸다.

“식음도 잊고 취침도 잊은 채 명상에 전념 했습니다. 그러자 아상(我相)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 우주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의식은 태초(太初)의 무극(無極)과 하나가 되었고, 제 몸은 음양의 조화와 하나가 되었으며, 제 마음은 텅 비어 오갈 곳을 몰랐습니다. 이만 하면 깨달음을 얻었다 하겠습니까?”

스승은 이를 보자 슬픈 얼굴을 감추고자 그만 눈을 지긋이 감더니 못내 눈물 한 방울을 흘리고는 다시 돌아 앉았다.

“그만 물러가라.”

젊은이는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뭘 잘못하는 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몇 달이 지나도록 스승은 그 제자로부터 보고서를 받지 못했다. 거의 일년이나 지나서 궁금해진 스승은 사람을 시켜 젊은 제자가 어찌 수련을 하고 있는지 알아 보도록 하였다. 제자는 그 사람을 통해 보고서를 또 하나 적어 보냈다.

“깨달음이고 뭐고 누가 알게 뭡니까?”

편히 누워 있던 스승은 이를 보자 스승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 앉더니, 비로서 입가에 그윽한 환희의 미소가 떠올랐다.

---

아상의 허구를 본 마음은 온 천하가 칭찬을 하여도 거만하지 아니하며, 세상이 비난을 하여도 아랑곳 하지 않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려 억지로 일을 꾸미지 않고 비난을 피하려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하지도 않는다. 얻음과 잃음을 하나로 알아, 재물과 명성이 찾아 오면 기꺼이 수용하여 옳게 쓰고, 떠나가도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을 편하게 두어 제 본성대로 살게 하여 정신을 어지럽히지 아니할 뿐이다.

원글 출처 - http://www.dodam.org/ko/tao/understanding/i_story.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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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5-1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서재에 들렀다가 "참나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라는 말에 느낀 바 있어 예전에 갈무리해둔 거 올려본다.

반딧불,, 2004-05-1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야기네요...참 좋지요??
나를 죽이는 것...그 죽인다는 것에도 이미 나는 있는 것을...

밀키웨이 2004-05-1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디각시, 제가요. 불교신자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 읽으면 참 좋더라구요 ^^
종교성을 떠나서보면 다 좋은 이야기이고 다 옳은 이야기이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반딧불,, 2004-05-14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저도 성경도 좋아하고
성경이 없이는 어떤 서양사도 이해할 수 없음을 동의합니다.
당연하지요..
어떠한 경전이든 보편성을 획득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남아있지도 않겠지요.

밀키웨이 2004-05-15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난 김에 그전에 성경이 어저구 저쩌구 한 글 어디 쳐박아놨는지 찾아다 올려놔야쥐~~ 룰루루~~~
ㅋㅋㅋ
알라딘 생기니 좋네요.
그전에 쓰고 쳐박은 글 다시 다 꺼내서 손보는 재미도 각별 ^^

반딧불,, 2004-05-1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그 글들 어디에 저장하는 겁니까??
멜에 저장하시는 건지...아니면...
아..제가 영 갈무리를 못하는지라 여쭤봅니다.
전 백프로 없어지거든요^^;;(사실 남길 만치 좋은 글도 아니지만서도)

밀키웨이 2004-05-15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거의 대부분의 긴 글들은 한글프로그램에서 작성하거든요.
그러니 어딘가 컴을 뒤져보면 흔적이 있더라구요.
이번에도 포맷을 새로 하면서 다 날라간 줄 알았는데 포맷하시는 분이 따로 저장해놓으셨더군요. E 드라이브에다가요.
가끔씩은 옛날에 내가 무슨 생각으로 글을 썼던고..그런 생각이 나서 뒤져보면 재미있지 않던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