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열린책들 세계문학 15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권오숙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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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책쟁이들이 얘기하길, 독서하다 보면 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가 알아서 정해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책이 책을 부른다는 말인가 본데 어째서 나는 그런 경험을 못해봤을까나. 내가 소설만 읽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나름 오랫동안 독서를 해왔지만 나는 딱히 선정 도서의 기준이란 게 없는듯하다. 좋아하는 작가라 해도 연속으로 읽지는 못한다. 이렇듯 계획적인 독서가 못되다 보니 책을 사서 모셔만 두는 꼴인데, 나 같은 사람은 그냥 빌려 읽는 쪽이 더 나은듯하다. 쿠폰이나 적립금으로만 책을 사고 있어서, 내 돈 주고 책을 산지는 꽤 오래됐다.


요즘 바쁘기도 하고, 기존의 책들을 처분도 할 겸 해서 짧은 책들 위주로 읽고 있다. 마침 셰익스피어가 눈에 딱 들어와서 후딱 읽어주었다. 희곡에 별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4대 비극‘은 읽어볼 생각인데, <맥베스>는 그 타이틀이 민망하다 할 정도로 임팩트가 없었다. 분량도 적고 전개 속도가 빨라서 무난하게 읽혔다만 인상적인 장면이 아예 없던데. 흠.


마녀에게 장차 왕이 될 거란 말을 들은 맥베스 장군. 그와 부인은 스코틀랜드 왕을 죽인 뒤 왕위에 오른다. 이후 도망쳤던 왕자가 데려온 세력들과 싸우다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이다. 근데 <햄릿>을 재탕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나. 주인공 시점이 왕자에서 왕으로 옮겨갔을 뿐, 거기서 거기 같은 느낌이라 크게 볼 것도 없었다. 예상한 대로 맥베스는 왕이 되고부터 갖가지 고뇌에 빠진다. 원래가 야망 있는 성격이 못되었던 그는 잠깐의 욕심이 부른 결과에 심히 자책한다. 그러다가 화끈한 군주로 각성하는데, 이 과정들이 너무도 빠르다는 게 문제였다. 인물에 몰입할 시간을 주지 않다 보니 불안에 떨다 그냥 미치광이가 되었을 뿐, 여기에는 어떤 페이소스도 느껴지지 않는다. 글쎄, 내가 너무 냉혈한인가?


주인공이 맞나 싶을 만큼 존재감이 약한 맥베스. 불안 증세가 커져갈수록 인간적인 모습은 줄어들고, 끝내는 죽었어도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가 않았다. 오히려 지주였던 부인이 갑자기 하직했던 게 더 기억에 남을 정도. 뭔가 이 작품은 주인공을 죽어마땅한 인물로 설정해둔 느낌이다. 또한 배역들마다 애정이 없어 보였고, 그 때문인지 각자의 서사에 영 흥미가 안 갔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이고,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모순된 인간의 본질도 썩 와닿지 않았고. 더 할 말은 많으나 시간상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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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9-13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상 ㅋㅋㅋㅋㅋㅋㅋ 어디 가세요?! 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3-09-13 10:36   좋아요 0 | URL
이 글 새벽에 쓴거에요 ㅋㅋㅋㅋ 어서 출근 준비해야하니까요
그리고 읽고 해치울 책들도 밀려있다는ㅋㅋㅋㅋㅋㅋ 바쁘다 바빠

stella.K 2023-09-13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갑네요. 저도 셰익스피어 는 뭐가 좋은지 모르겠던데 이리 솔직하게 쓰시나디. 솔직히 6백년전 사람인가 그렇잖아요. 뭐 문체라도 맞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무조건 극찬을해대면 그냥 좀 뻘쭘하더라구요.

물감 2023-09-13 11:17   좋아요 2 | URL
셰익스피어를 거의 안 읽어봐서 어떻다 논하긴 뭐하지만요, 이 작품은 영 별로였어요. 반대로 <햄릿>은 정말 좋았습니다. 제 성격상 극찬하는 작품은 일단 매의 눈으로 보는 편이에요. 그러면 대부분 레이더망에 포착되곤 합니다 ㅋㅋㅋㅋ
 
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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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을 따르지 않다 보니 나의 독서는 언제나 뒷북이 되곤 한다. 이게 독서보다도 서평에서, 특히 유명작을 리뷰할 때가 제일 문제이다. 기존 평이 많을수록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중복일 거란 말씀. 근데 또 내 성격상 남들과 겹치는 글쓰기를 싫어하거든. 하여 어쩔 수 없이 비평모드일 때가 더 많은 것이다. 내가 이유 없이 까칠한 게 아님을 이제라도 밝혀둔다. 매우 늦은 감이 있지만.


<동급생>도 꽤나 명성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비평 위주로 가려 했는데 이거 잘 될지 모르겠다. 나치즘으로 인해 멀어져 버린 두 친구의 이야기. 유대인과 독일인의 민족을 뛰어넘는 우정은, 커져가는 히틀러의 세력 앞에 조각나고 말았다. 유대인 친구는 왜 자꾸 거리를 두냐며 서운해하고, 독일인 친구는 감정만 앞세우지 말고 자기를 이해해달라 한다. 그렇게 숨겨두었던 본심은 유일한 친구관계를 원망으로 바꿔놓았다.


유대인 친구는 사랑을 공급할 대상이 필요했고, 독일인 친구는 가문까지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렇게 출발점부터 다른 관계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착 달라붙어 지내는 동안에도 선을 긋던 독일인 친구는, 기꺼이 상처받을 준비가 됐다는 절친에게 네가 자초한 일이라고 경고한다. 아니, 귀족이라면서 그게 할 말인가? 안 그래도 계급 차이를 절감하는 친구한테? 유대인들을 경멸하는 모친을 방패 삼아 제 감정을 속였던 독일인 친구는 우정의 어디까지가 진심이었을까.


부모의 권유를 따라 유대인 친구는 미국으로 넘어간다. 이때 독일인 친구가 쓴 편지가 아주 가관이다. 히틀러가 조국을 구할 테니 훗날에 다시 돌아와도 좋단다. 이런 놈하고 우정을 맹세했었다니. 얼마나 실망스러웠으면 미국에서 30년이나 짱박혀 살았겠나. 아무튼 괜히 읽었다 할 정도로 평범했는데 마지막 챕터가 작품성을 확 끌어올려놨다. 솔직히 뻔한 반전이라 놀랍지는 않았고, 잘 살고 있는 주인공에게 추모비 기부 요청서를 날려서 겨우 묵혀둔 감정들을 끄집어내게 한 연출이 압권이었다. 대부분 친구와의 끊어지지 않은 우정을 주목하는 반면, 나는 부모의 자살 소식과 본인의 인종차별, 친구에 대한 실망을 떠올렸을 주인공의 아픔에 주목했다.


그리고 나는 좀 그렇다. 마지막 문장 한 줄로 수십 년간의 묵은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진다? 개연성이라곤 1도 없는 말 같은데, 여기에 많은 독자들이 펑펑 울었다니까 좀 어이없다. 주인공처럼 여리고 섬세한 성격들은 평생을 가도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단 말이다. 그런데 무슨 뷰티풀 엔딩 어쩌구 저쩌구. 이런 게 바로 유행 타는 독서의 단점이다. 아무튼 이만하면 중복은 아니겠지? 힘들다,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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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9-11 0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지막에 울진 않았지만 그래도 울컥! 했답니다. 이 책은 중고등학생이 읽으면 좋을 거 같아요.

물감 2023-09-11 08:47   좋아요 1 | URL
물론 그렇게 유도한 작품이지만요,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땠을까... 기쁘거나 감동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나를 괴롭히던 일진이 훗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해서 내 기분이 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아 모르겠다. 너무 과몰입한 것일까요 ㅎㅎㅎ

책읽는나무 2023-09-11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까칠했던 이유가 이제 밝혀지는군요?
근데 정말 그런 걸까?
문득 그렇게 또 생각을...
근데 전 이 책 아직 안 읽었답니다.
메모했어요.^^

물감 2023-09-11 10:3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이제와 말하긴 뭐하지만 꼭 좀 믿어주세요...
좋은 작품은 맞는데요, 솔직히 낡고 낡은 이야기였습니다.
워낙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런건지도요.
위에 쿨캣님 말씀대로 청소년한테는 좋을듯 하네요 ^^

자목련 2023-09-11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써야지 하면서 미룬 책인데,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ㅎ

물감 2023-09-11 17:04   좋아요 0 | URL
음.. 리뷰를 위해 재독하실 것까지야. 막상 읽으시면 별 감흥 없으실 걸요 ㅎㅎㅎ 읽어야 할 책은 많으니까요! ^^

잠자냥 2023-09-13 1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 울었던 거 같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3-09-13 10:3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가만보면 꼭 제가 T같고 자냥님이 F같다니까요?
자냥님 분발하세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9-13 12:29   좋아요 1 | URL
분발해서 검사 다시 해볼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3-09-13 12:59   좋아요 1 | URL
49 대 51 나오실지도 ㅋㅋㅋㅋㅋㅋ
 
이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6
알베르 카뮈 지음, 이기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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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기분이 안 좋았다. 몇 날 며칠을 치통에 시달렸고, 빌린 책들은 연속으로 꽝이었으며, 새 직장을 들어가서 계속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무기력하던 여름에도 독서를 놓지 않았거늘, 정작 독서의 계절이 되고 나니 잘 간직했던 여유가 흩어져 버렸다. 인생의 3라운드를 맞이한 요즘, 늘 그랬듯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지만 어떻게든 통제하는 중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좀 더 단순하고 현실적이게 살자는 것인데, 이 새로운 마음가짐을 위해서 지긋지긋한 이방인의 자아를 떼어낼 필요가 있었다. 하여 이참에 고이 모셔두었던 카뮈의 <이방인>을 경건히 읽음으로써 평생의 애물단지와 그만 헤어지기를 다짐했다. 과연?


이 오래된 작품을 문학동네에서만 <이인>으로 출간했는데, 읽어보니까 ‘이방인‘보다는 확실히 ‘이인‘이란 표현이 더 와닿는다. <노인과 바다>만큼이나 단순 건조한 이야기. 주인공 뫼르소가 모친의 장례를 치른 뒤,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러 재판을 받는다. 그런데 전 과정에서 주인공의 태도가 심드렁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런 친구들의 영혼 없는 리액션은 꼭 오해를 낳고 소문을 키우곤 한다. 사실 이들이 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거늘 대중들은 그 언행에 타당한 이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조차도 설명을 못하니 그저 나사 빠진 사회 부적응자 정도로 치부할 따름. 최근 들어서 이런 사람들이 뉴스에 자주 나오는데, 그걸 다 정신질환으로 퉁쳐버리면 끝날 일일까. 뫼르소를 보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모친의 장례를 치르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그렸던 게 아니었나 하는. 삶이 부질없다고 느낀 뫼르소는, 자신이 생각하는 해방과 새 출발을 모친의 죽음에서 발견했다. 하여 자신 또한 그렇게 되고 싶어서 더 이상 사회적 가면을 써야 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게 아닐까. 작중에서는 뫼르소의 성격이 원래부터 그런 것처럼 나오지만, 직장도 다녔고 모친도 부양했던 걸로 보아 모태쿨병은 아니다. 그저 은연중에 어떻게 살든(혹은 죽더라도) 무방하다고 판단했지 싶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뫼르소한테는 이성과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 게다가 종교와 신까지 거부하여 영적으로도 접근이 불가했다. 그런즉 뫼르소는 스스로가 유일신이며 절대자가 되었다고들 해석한다. 그러한 관점으로 말하자면 모친의 죽음도, 자신의 살인도, 심문과 재판들도 전부 의미를 잃어버린다. 마치 머리 위를 알짱거리는 저 날벌레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듯이 말이다. 그러니까 죽으면 되지 않느냐는 뫼르소의 발언은, 아무리 나를 설명해 봤자 이해도 납득도 하지 못할 테니 죽고 난 뒤에 알아서들 지지고 볶으라는 말처럼 들렸다. 글쎄, 장례식에서의 태도야 그렇다 쳐도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범죄는 그리 쿨하게 넘어갈 일은 아닐 터. 정녕 카뮈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정의하는 이방인은, 울타리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겉도는 사람이다. 애매한 공감대로 형성된 소속에서 잘해보겠다며 장단도 맞춰보지만, 그럴수록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의 관계라는 사실만 분명해진다. 끝내 자발적 아싸를 선택한 이들은 그 순간부터 타인에게 이해받기를 포기해버린다. 어차피 나도 너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서로 취향 존중해 주자는 것이 오늘날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 정도로 차고 넘치는 이방인들의 사회가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와 뫼르소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법정에 선 친구들은 패륜아에다 살인자가 된 뫼르소를 가리켜 의리와 사랑이 충만한 진짜 사나이라 증언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었다. 선악이 공존하는 인간에게서 한쪽만을 택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못하는 뫼르소의 입바른 소리가 정직해서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한 의도라도 누군가에겐 악이자 불편한 진실이 되고 만다. 그러니 이해하지도 않을거면서 취향을 존중하겠다는 건 모순된 말이다.


그 밖에도 생각할 문제가 많은 작품이다. 확실히 카뮈 작품의 매력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데에 있다. 시간이 된다면 더 많은 내용들을 다뤄보고 싶다. <이인>에서 느낀 점은 한 가지다. ‘정의‘와 ‘부정‘은 같은 의미라는 것. 누군가를 정의하는 즉시 그 사람의 일부는 부정당한다는 말이다. 냉정히 말하자면 모두가 ‘이인‘인데, 우리는 꼭 누군가를 지목하여 요주인물을 만들고 싶어 한다. 타인한테 관심 없다는 사람들도 이 부조리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어쩐지 카뮈가 콧대 높은 인간들의 저격수처럼 느껴지는데, 이 또한 함부로 정의해서는 안 될 일이지. 아무튼 나는 이번 독서로 이방인의 자아를 확 잘라내고 싶었다. 근데 반대로 우리 모두 이인이니까 그렇게 알라는 듯한 분위기여서 되게 민망하다. 아직은 때가 아닌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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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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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아무래도 어렵다. 아니, 어렵다는 단순한 표현보다 난해함과 복잡 미묘 쪽이라고 해야 하나. 전혀 못 알아들을 내용은 또 아니니까. 이번 작품도 얇아서 도전해 봤다가 낭패를 봤다. 그나마 해설 덕분에 뭐에 대한 부끄러움인지를 알겠더라. 에르노의 말은 명확하게 나가는 법이 없고 늘 빙빙 돌려대기만 한다. 실제로 이런 타입과 대화하다 보면 나까지 붕 떠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사람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싶어 화병도 생기고. 여하간 이 분은 나랑 안 맞음.


어머니를 죽이려던 아버지를 목격한 게 시작이었다. 그때의 강렬한 장면은 12살의 세상을 하나에서 둘로 갈라놓았다. 집안은 화목하기만 한 곳이 아니었고, 학교는 흙수저들을 차별 중이었으며, 2차 성징이 온 친구들은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상의 모든 법칙들은 하나도 지켜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실을 ‘그 사건‘으로 마주하게 되었고, 그 신세계가 당연하다는 듯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말 못 할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제2의 세계에서는 당연해야 할 일관성이 없이도 잘만 돌아가고 있었다. 제멋대로인 행동, 쓰지 말아야 할 언어, 외설적인 활동, 어긋난 예절법 등등 관례와 규칙에서 벗어나는 모든 짓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집단이든지 우위와 서열이 있었으며, ‘나‘는 이 오류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이 점을 알게 해준 ‘그 사건‘은 저자의 불행을 벌어놓았던 것이다.


저자의 부끄러움, 즉 수치심의 원인은 자신이 속했던 안쪽 세계와 바깥 세계를 구분 짓는 계급 때문이었다. 폭력과 소외를 마주한 뒤로는 다시 안쪽 세계에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남들 따라 범법자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윤리와 종교의 가르침들은 정녕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그날의 일로 12살의 어린아이는 순수를 잃었고, 그 후로 저자는 논란을 몰고 다니는 파격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작품을 쓰고 난 후로는 저자가 부끄러움에서 해방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해설에 따르면, 마음속 밑바닥에 깔려있는 은밀한 치부를 후련하게 떨쳐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했을 거라는데, 나도 이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에르노는 이것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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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8-28 1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에르노의 작품 중 그래도 난감하지 않은 작품 중 하나였던 듯요. 오래 기억에 남구요.
에르노, 읽기 편한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물감 2023-08-28 10:38   좋아요 2 | URL
이게 무난한 축에 끼는군요...ㅎㅎㅎ 에르노가 어려운 문장은 없는데, 이 얘길 왜 하지?싶은 생각이 계속 들게 해요. 세 권쯤 읽었으니 이제 보내줘도 되겠죠 뭐^^

고양이라디오 2023-09-01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왠지 서친분들 리뷰 보니깐 저랑 안맞을 거 같더라고요ㅎ

저도 애매하고 두루뭉실한 표현은 어려워하고 싫어해서ㅜ

물감 2023-09-01 19:11   좋아요 2 | URL
프랑스 문학이 유독 그렇더라고요. 좋을땐 한없이 좋은데 아닐땐 고구마 삼키는 기분ㅋㅋㅋ 저도 단순명쾌함을 더 추구하는지라 😃

잠자냥 2023-09-02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병 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3-09-02 11:09   좋아요 1 | URL
죽겠어요...ㅋㅋㅋㅋ
 
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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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아온 소설가들은 크게 세 가지의 유형이 있다. 먼저는 사회에 불만이 많은 자. 그래서 이슈의 공론화를 위해 책을 쓰고 갈등을 만든다. 다음으로 변태 같은 감성의 소유자.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증명해야만 속이 풀리는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비상한 관점의 현자. 이들은 독자의 허점을 찌르고 편견을 깨는 것이 목적이다. 서머싯 몸은 세 번째 유형에 해당된다. 그는 작품 속에서 공감도 원치 않고 설득도 하려 않는다. 그저 내 생각은 이렇다 할 뿐인데 그게 꼭 남들과 달라서 신경 쓰이는 것이다.


<케이크와 맥주>는 작가들에게 관점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물론 독자들도 배워두면 유익할 테니 잘 봐두면 좋겠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다. 잘나가는 소설가 A는 타계한 거장의 전기문 집필을 위해 화자를 찾아온다. 세계적인 작가, 드리필드와의 추억을 말해달라는데 영 내키지가 않는다. 작품의 명성과는 별개로, 드리필드는 인간적으로 추앙할 만한 인물이 못되었기 때문에. 화자만의 기억은 남들하고 어떻게 달랐을까.


이야기는 ‘나‘의 과거 15살로 돌아간다. 소년은 평판이 나빴던 드리필드 부부와 친해진다. 소문과 다르게 좋은 사람들이었고, 특히 부인의 매력과 인간미가 퍽 훌륭했다. 이토록 순수하고 쿵짝도 잘 맞는 부인의 어디가 음탕하다는 걸까. 의심은 이내 현실이 되었지만 부인은 오늘도 내일도 천진난만할 뿐이었다. 결국 소문이 맞았고 배신감마저 느껴졌으나 그것이 부인을 싫어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과 야반도주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소년이 어려서 뭘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축하한다. 당신도 꼰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모두에게 욕먹는 드리필드 부인에 대한 ‘나‘의 애정이 유별나다고만은 볼 수 없다. 소년은 시샘하는 이들과 잘만 지내는 부인의 매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자기만의 평판을 쌓아갔다. 과연, 체면을 벗어두었더니 그녀의 장점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가. 다 생각하기 나름이란 뜻이겠지. 어렸을 때만 해도 사람을 겉으로 판단해선 안된다고 배웠다. 지금은 처신을 잘해야 하는 시대인 만큼 겉으로도 판단이 가능하다는 추세다. 이 문제를 자신에게 적용시켜보자. 타인이 나에 대해 어디까지 정의할 수 있을까. 그 정의가 들어맞을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나는 No인데 다수가 Yes라고 한다면 그게 정답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왜 있는가. 사람이란 이렇게나 복잡하게 만들어진 존재이다.


부인의 비중이 더 큰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성공에 눈이 먼 작가들을 풍자한다는 내용이다. 화자를 찾아온 A는 재능과 실력까지 겸비한 처세술의 달인이었다. 그렇게 야무지고 눈치 빠른 양반이 거장의 일면만을 보고서 극찬한 것도 그렇고, 거장의 비판을 모르쇠 하는 것도 그렇고 참. 화자에게는 A나 거장이나 한 통속이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드리필드는 기나긴 무명시절에도 개성과 여유를 간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된 후원자를 통해 사교계를 접수하고부터 명성을 쌓게 된다. 그렇게 해서 훗날 거장이 되었다지만 화자는 그것이 누군가의 꼭두각시놀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성공과 맞바꾼 작가의 영혼.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기엔 변질돼버린 그의 오리지널이 자꾸 생각나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드리필드 부부에 대한 대중과 ‘나‘의 인식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비난의 아이콘이던 부인한테는 남들이 보지 못한 매력이 넘쳤고, 공경의 아이콘이 된 거장에게는 남들이 맡지 못한 구린내가 풍겨났다. 어째서 ‘나‘는 부인의 불미한 행실에도 취향을 존중하고, 줄타기에 성공한 거장을 위선자로 보았는가. 두 사람 다 고통을 앗아가는 쾌락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각자의 말 못 할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선택이었고, 그 결과 부인은 비난받고 남편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사랑으로 가득한 부인의 삶이었고, 비난받아도 할 말 없는 남편의 삶이었음을 알게 된 화자였다.


물론 너도나도 ‘역행자‘가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잘못했다간 사회 부적응자란 소리나 듣게 될 것이다. 온갖 상황과 변수로 가득한 인간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비결은, 유연한 사고와 발상을 길러주는 ‘관점‘에 달려있다. 유독 한국인들은 판단하고 분류하고 정의하기를 좋아하는데, 수학 문제가 아니고서야 꼭 정답일 필요가 있을까. 답이 없는 문제일수록 차라리 중용을 택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이롭다. 근데 한편으로는 내 앞가림도 잘 못하면서 정신건강이 웬 말이냐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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