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여름 블루 컬렉션
에릭 오르세나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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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지루해서 혼났네. 공쿠르 상도 받은 유명한 작가던데, 일단은 원 아웃.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프랑스 문학은 정말 모 아니면 도다. 도무지 중간이 없달까. 물론 국가와 지역마다 날고 기는 놈이 있고, 인싸 아싸가 있고, 주류 비주류가 나뉜다지만 프랑스는 좀 특이한 나라다. 아니, 프랑스 작가들만 그런지도 모르지. 이들은 잘 썼든 못썼든 간에 자기들이 고품격 민족이라는 국뽕에 만취해있다. 참 대단한 철면피라고나 할까. 물론 그것이 문제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어느 국가보다도 정신승리가 월등하다는 얘기다.


초중반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한 번역가가 외딴섬에서 장기 체류를 하는 동안, 러시아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근데 하필 번역에 초 까칠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에이다>였다. 거기다 노벨 문학상 후보자라는 말과 함께. 그 부담감 때문인지 2년간 작업에 손도 못 대고 그냥 탱자 탱자 있다가, 약속된 제출일이 다가오자 그동안 친해진 섬 주민들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영어 좀 한다는 사람들을 모아 각자의 분량대로 나눠주고 번역을 시키는, 소위 재능기부를 구걸한 꼴이었는데 어찌나 모냥 빠지던지. 문제는 저마다의 영어 레벨이 천지차이라 이건 뭐 써먹지도 못할 수준이었다는 거.


이만하면 괜찮은 줄거린데 나도 여기에 속았다. 요약해놔서 그럴싸해 보일 뿐, 내내 무표정으로 읽다가 끝났다. 초반에 나보코프가 졸렬한 번역가들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는 기사가 떴을 때, 그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가 작품 전체를 끌고 가주었어야 했다. 허나 주인공은 제 본업을 제쳐두고 섬에서의 프리한 삶을 즐기고만 있으니, 당최 이 작품은 뭔 재미로 봐야 하나 싶더라. 도중에 번역가를 찾아온 출판사 직원으로 인해 흐름이 바뀌나 싶더니, 이내 또 제자리로 돌아가버린다. 그것까지도 좋다 이거야. 중후반에는 주인공 시점이 쏙 들어가고, 제 삼자인 사진사가 정말 느닷없이 끼어들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게 아닌가. 한참 뒤에 번역가와 합쳐지지만 그전까지는 뭔가 내용이 붕 떠서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 싶어졌다. 그 분위기를 이어받아서 결말도 홀라당 날려먹었다지.


솔직히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래도 별 셋을 준 것은, 주인공이 번역가인 만큼 ‘언어‘에 대한 이모저모를 말해주고 있어서다. 그리고 번역가란 직업의 고충과 출판사와의 관계, 작가들과의 미묘한 신경전 등 소소한 볼거리들도 제공한다. 그러나 밑반찬 먹고 싶어서 식당에 가는 사람이 어딨냐고요. 메인 요리가 맛이 있어야 제대로 된 식당 아니겄소? 내 이 작가를 또 보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원 아웃... 아니, 옐로카드요. 좀 더 분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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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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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자신과 친구 할 수 있다고 은근슬쩍 속내를 비춘 바 있다. 그에게 ‘개츠비‘가 있었듯이 나에게는 ‘돈키호테‘가 있다. 그래서 나는 하루키의 그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돈키호테>를 감명 깊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세 번은 됐고 한 번이라도 읽고서 진정으로 가슴 벅찼다면 나와 평생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겠다. <돈키호테>는 나의 몇 없는 인생 책 중 하나이며, 나 같은 이상주의자들의 최상급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금껏 내가 쓴 글 가운데 가장 정성 들여 쓴 리뷰 역시 <돈키호테>이다. 이러한 나님의 귓가에 들려온 김호연 작가의 신작인 <나의 돈키호테>는 그야말로 ‘놀랄 노‘자였다. 아니, 저랑 잘 맞는 분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요...


내가 지인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우리들은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 그리고 스마트 시대까지 다 경험한 복받은 세대라고. 세기말 감성 따윈 모르고 자란 요즘 애들과 달리 우린 전부 겪어봐서 참 다행이라고. 그렇게 하나하나씩 추억 팔이 하다 보면, 그때 그 시절의 향수를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현실이 미워지기도 한다.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가 오는 것이 삶의 순환이라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최대한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을 간직한 김호연 작가에게 정말 감사하고 있다. 현재 많은 소설가들이 근미래 배경의 작품을 쓰는 반면, 김호연 작가는 근 과거에서부터 현시점의 배경을 다룬 작품을 써낸다. 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당장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위로 한 컵씩 따라주는 그런 기분이랄까. 장담컨대 이 분은 자신의 사명과 향방을 확실하게 파악하셨다.


방송 PD를 때려치운 진솔은 귀향 후 옛 아지트였던 비디오 가게를 찾아간다. 그곳의 주인장인 ‘돈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고, 건물 지하방에 텅 빈 비디오 가게만이 남아있었다. 듣자 하니 아저씨가 종적을 감춘지도 꽤 됐단다. 그렇다면 아저씨도 찾고 용돈벌이도 할 겸 유튜브 채널을 파기로 작정한 그녀. 그렇게 해서 가게명을 따라 ‘돈키호테 비디오‘ 채널이 탄생했다. 진솔은 아저씨와의 일화 및 추천 영화를 소개해가며, 아저씨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공개 수집하였다. 그러다 알게 된 아저씨의 인맥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따곤 했는데, 알고 봤더니 돈 아저씨가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네, 글쎄?


돈 아저씨의 이력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대학시절엔 학생운동으로 감옥을 다녀오고, 출소 후 학원계에서 영어 강사로 정점을 찍었다가, 출판계로 전향해서 번역을 하다가, 영화사로 들어가서 작품 시나리오를 썼단다. 그랬던 아저씨가 왜 노잼도시 대전까지 와서 곰팡내 나는 비디오방이나 차렸느냐면, 사사건건 부조리를 참지 못하고 윗선과 싸웠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든 권력자들의 행패가 뒤따랐고, 양반이 못되었던 아저씨는 남의 일까지도 대신 나서서 부딪히곤 했다. 자 그럼, 돈 아저씨의 과거 일들이 시사하는 바가 대체 무엇일까. 내게는 물불 안 가리는 도전정신보다도 신념과 반하는 현실 앞에 막 굴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모두 알다시피 돈키호테는 제 신념 앞에서 둘도 없던 막가파 오야붕 아니었던가.


정착 못하고 내내 옮겨 다녔던 아저씨의 인생이, 현대인들에게는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돈키호테를 영 이해 못 할 자들에게는 말이지. 돈 아저씨가 썩 귀감이 될만한 인물은 아니라지만 요즘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수많은 청년들이 경제활동은커녕 독립할 생각조차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주소이다. 오래전 멈춰버린 경제 성장, 탕후루만도 못한 노오력, 열정페이의 배신까지 겪은 세대들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당장 나부터도 어디에다 희망을 걸어봐야 할지 모르겠거든. 하여 지금은 무모하기 짝이 없던 돈키호테 식의 정신승리라도 가져야 하지 않나 싶네만.


기나긴 추적 끝에 돈 아저씨와 상봉한 주인공. 여전히 꿈을 좇는 돈키호테의 면모였건만 이제 아저씨는 자신을 ‘산초‘로 불러달란다. 돈키호테와는 정반대 캐릭터인 극 현실주의자 산초라니, 이게 다 무슨 말인가. 결국 아저씨도 매몰찬 현실에 한 수 접으셨단 말인가. 정신이 멀쩡해져서 일상으로 돌아간 돈키호테처럼? 아저씨는 자신의 옛 칭호를 진솔에게 물려주고, 저 대신 돈키호테의 후예로 살아가주길 바란다. 산초처럼 먹고사니즘이 다였던 진솔은 지인 한 명 찾겠다고 ‘유튜버‘라는 레드오션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쑤셔댄 덕분에 목적은 달성했으나 그길로 유튜브 채널 또한 수명이 다해버렸다. 또다시 먹고사니즘을 걱정해야 할 노릇인데,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끌리는 대로 무작정 돌진해댔으니. 진정 그녀는 영락없는 돈키호테의 후예였다.


세상 명랑했다가 사회에 찌들어 점차 조용한 성격으로 바뀐 케이스가 수두룩 빽빽하다. 열정이 고갈된 순간, 우리는 돈키호테에서 산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산초는 산초만의 인생을 살면 된다. 그러나 세상을 뒤집는 일들은 예로부터 또라이 담당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들 모두가 곧 돈키호테의 후예 아닐런가.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안의 세계를 뒤집으려면, 눈앞의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돈키호테 같은 광기를 품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끝으로, 책에는 없는 작가의 말을 대신 적어본다.


나댄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from. 정신승리 수석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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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5-11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지막 글이 참!
글치않아도 돈키호테를 좋아하시는 물감님께서 이 책을 읽을까 했더니 정말 읽으셨네요. 주로 세계문학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말이죠. ㅎ
그 아저씨라는 분은 작가 자신을 변주한 것 같네요.
울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모험을 안하고 모난돌 안되려는 경향이 있긴하죠. 실패할 수 있는 기회도 있어야 하는데 그럼 인생 끝인줄 알잖아요. 나대는 거 자체보단 그걸 제거대상으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고. 암튼 잘 읽었습니다. 얼마전 박균호 작가님도 돈키호테 극찬하셨는데 언제고 꼭 읽어보겠습니다. 그때까지 물감님과 제가 친구가 되는 건 보류하는 걸로. ㅋㅋㅋ

물감 2024-05-11 11:18   좋아요 1 | URL
제 취향이 세계문학이라고 한 번도 생각을 못해봤는데, 돌아보니 제가 고전만 읽고 있었네요? 지금 알았습니다 ㅋㅋㅋㅋㅋ 여름이 오니까 슬슬 장르소설 몰아 읽어야겠어요.
작가님이 항상 신간을 보내주셔서 안 읽을수가 없습니다. 물론 안보내주셔도 찾아 읽었을테지만요. 스텔라 님에게 천명관 작가가 있듯이, 제게는 김호연 작가가 있습니다 ㅋ

저는 아저씨처럼 화려한 이력은 없지만, 그와 비슷한 행보를 걸어왔어요. 물질을 쫓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어쩌면 남들 눈에는 제가 모난돌이었겠다 싶습니다. 그래도 신념대로 살았기에 후회는 없어요 하하핳.

제 예상에 스텔라 님도 돈키호테 좋아하실 거 같아요. 막 열광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젊은 세대들은 별 감흥이 없을테지만, 인생 선배님들은 대부분 공감하실 거로 생각되고요. 이건 제 사견인데요. 생활에 딱히 불편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먹고 살만한 사람들은 이런 휴머니즘에 시큰둥 하더라고요. 제가 친구가 적은 이유를 알겠네요 .... ㅋㅋㅋㅋ 그러니 어서 제 친구가 되어주십쇼!

구단씨 2024-05-12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마낫, 이 리뷰를 이제야 봤어요.
정말로 마지막 단락에서의 문장이 꽉 박히네요.
광기를 품어야 한다. ^-----^

사실 이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서 계속 읽게 되는 게 아니라,
알 것 같으면서도 종종 모르게 되는 인생의 순간순간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찾아가는 듯했어요.
멈추지 않을 용기, 님 말씀처럼 광기를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 작가 신작 알림해놓고 있다가 읽게 되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재미와 감동이네요.

물감 2024-05-12 23:49   좋아요 0 | URL
막 김호연 작가님의 페이퍼를 작성했는데, 그 사이에 댓글을 써주셨네요 ㅎㅎㅎ
광기를 품어야 한다! 요즘 시대에 딱 들어맞는 슬로건 같지 않나요 ^^
구단씨 님도 김호연 작가님의 책을 좋아하시는 거 잘 알고 있었지요~~ 이번에도 즐겁게 읽으셨다니 제가 다 기분 좋습니다 ㅎㅎㅎ 부디 구단씨 님도 멈추지 않을 용기를 간직하시길요!!!!
 
창백한 말 페이지터너스
보리스 사빈코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빛소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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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가 이런 말을 한다. ˝인생은 축복이니 낭비하면 안 되죠.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죠. 매일매일을 소중하게, 순간을 소중히.˝​


갈수록 시간이 빠르게 흘러감을 느끼는 요즘, 매시간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 중이다. 그 많던 근심과 고민들은 연기처럼 흩어지고, 열망과 체념의 줄다리기도 멈추었고, 감정과 이성의 혼란들도 다 숨을 거두었다. 진리에 도달한 지금은 더 이상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는다. 오히려 삶에 큰 변화나 자극이 없어서 더욱 고맙고 축복된 인생이지 싶다. 혹자는 인생에 목표나 목적이 꼭 필요하다는데, 반대로 그런 게 없어서 감사할 수가 있는 인생살이도 존재한다. 바로 나처럼.


떠들썩한 국내 사정에 비해 내 마음은 이다지도 평온한 걸까. 가진 게 없어도 풍요롭고, 배움이 없어도 지혜롭고, 탐구와 번뇌의 해방감을 누린다는 기쁨으로 충만한 나날들.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말의 참 의미를 이제야 깨닫는다. 늘 그래왔지만 더욱더 내 사람들에게 잠잠한 사랑으로 다가서려 한다. 내 모든 질문의 해답은 여기에 들어있다. 그리고 어쩌면 <창백한 말>의 저자인 사빈코프 역시, 어느 정도는 나와 일치한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이것은 모스크바 총독을 암살하려는 테러리스트의 수기로써, 실제 혁명가로 활동한 저자의 생을 바탕으로 쓰였다. 실패한 암살 시도와 죽어가는 동료들. 각자의 이상을 위해 바친 목숨, 그것은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그러나 이렇다 할 뜻이 없는 조지는, 막연한 제 삶이 마치 실체 없는 인형극처럼 느껴졌다. 어째서 인간은 앙망하고 갈구해야 할 대상이 필요할까. 차라리 죽음으로 존재의 의미를 증명하는 편이 낫지는 않을까. 죽음보다 삶을 바치는 게 더 어렵다더니 과연, 말도 생각도 욕망도 삶도 다 지겨워졌다. 이제 나는 아무래도 좋다.


동료 B는 조지의 죽은 심장을 위해 그리스도를 전한다. 비록 자신은 살인자가 되었으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버린 그리스도를 따라갈 뿐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살인을 막기 위해 대신 살인하는 게 세상을 밝히는 일이라고 한다. 그 말은 어쩐지 사랑을 전파한 그리스도에 대해 신성모독으로 들렸다. 그러나 사랑과 무관한 조지의 영혼은 법이 적용되지 않는 죽음 쪽으로 기울었다. 사랑을 가르쳤으나 배신 당했고, 진리를 전했으나 고통 받았던 그리스도의 생애는 온통 의문투성이였으니까.


그럼에도 조지는 신앙이나 사랑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슬퍼할 줄도 알았다. 그녀와 함께라면 죽음도 무의미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랬기에 동료의 말마따나 사랑이 제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창 마음이 오락가락하던 중, B가 총독 암살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기쁨은커녕 기분만 멜랑꼴리해진 주인공. 목적을 이룬 건지 잃은 건지 알 수가 없는 가운데, 슬며시 차오른 격분으로 애인의 남편을 총살해버린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주인공에게 사랑이 전부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또한 자신은 사랑을 모른다는 그의 반복된 고백 속에서 그가 얼마나 사랑을 추구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겨우 인생의 해답을 발견했으나 B의 말처럼 사랑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어, 남은 건 사랑의 이름으로 죽는 것뿐이었다.


알고 보니 B가 저자의 상징 인물이란다. 그렇다는 건 서로 상반되는 두 자아를 통해 더욱더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한 셈이 된다. 다만 여기에는 성경 말씀을 베이스로 하고 있어서 무신론자나 합리주의자는 이해하기 어렵겠고, 특히나 T들에게는 퍽 지루할 작품이겠다. 여하간 인생들은 정한 시기가 되면 후회로 점철된 생애를 되돌아본다.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자각하게 된다면 이 얼마나 축복인가.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가 남는다면 결국 거기서 거기란 뜻일 테니,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도록 하자. 그리고 매일매일을 소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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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26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순간을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 중이신 물감님의 글이 너무 잘 전달되어 옵니다.

물감 2024-04-26 19:1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그레이스님. 이 짧은 글에서 온기가 느껴지네요.
그보다 참 오랜만에 인사 드리네요. 좋은 하루 되셨기를🙂

페크pek0501 2024-05-04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망과 체념의 줄다리기가 멈추셨군요. 그게 좋을 수도 있긴 해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줄다리기가 진행 중입니다. 다 버리려 했더니 살맛이 안 나서요. 나이들수록 뭔가 붙잡고 살지 않으면 그냥 시간이 가고 그냥 늙을 것만 같아서요. 시간을 아끼며 소중하게 쓰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인생의 허망함, 부질없음이 느껴질 때가 있죠. 물감 님이나 나나 안달복달은 하지 말자고요. 안 하는 걸로...^^

물감 2024-05-05 00:39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저도 J 성향인지라 막 포기했다거나 될대로 되라식은 절대 아니고요, 조율을 하고 합의점을 보고 판단을 하는 쪽입니다 ㅎㅎ 단지 저의 것은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아니고, 막 실현가능한 일들도 아니고, 암튼 설명하기 어렵네요 ^^; 여튼 말씀하신대로 안달복달은 안 할거에요. 지금의 제가 좋거등요 ㅎㅎㅎ
 
은원, 은, 원
한차현.김철웅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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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 내 리뷰를 읽고 맘에 들어 하셔서 신간을 보내드리겠다... 뭐 이런 내용으로 출판사분께서 메일을 주셨는데, <늙은이들의 가든 파티>를 신랄하게 혹평했어가지고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들었더랬다. 뭐 그래도 내가 당당할 수 있는 건, 나님은 애정을 꽉꽉 담아서 까대므로 어떤 작가님이든 내 진심이 전해질 거란 확신 같은 게 있다. 따라서 이번 작품도 당근보다 채찍질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당근이야 뭐 다른 독자들이 번호표 뽑고 대기 중 일 테니깐.


이제는 작가 소개에 MBTI까지 실리는 세상이 되었군. 놀랍게도 나랑 똑같은 INFJ-A 셨더라. 허허, 어쩐지. 개인적으로 한차현 작가의 똥꼬발랄한 병맛코드를 좋아라 하는데, 어째 나오는 작품마다 분위기가 어둡고 심각하고 막 그렇다. 이번 작품은 영화사 분과의 합작이라 그런지 시나리오 기법으로 장면 전환이 매끄럽고 전개 속도도 빠른 편이다. 각 챕터의 분량도 길지 않아서 마치 <살인자의 기억법> 같은 템포와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덧셈보다는 뺄셈으로 승부하는 식이랄까. 이래저래 좋았지만 혹 영화로 만든다면 좀 더 각색이 필요하겠다. 이유는 뒤에 가서 말하기로 하고.


이번에도 ‘차연‘이 주인공이다. 이제는 무슨 차연의 멀티버스 세계관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 차연도 별 볼일 없는 아웃사이더로 등장한다.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로 연락 두절에 종적을 감춘 여자친구 은원. 몇 주 후, 가족을 통해 병원에서 재회한 그녀는 베르 어쩌구 증후군... 뭔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단다. 멘붕인 차연에게 진실을 알려준다며 은원의 고모네가 두 사람을 어느 연구소로 데려간다. 그곳에 실험 캡슐 안에는 은원의 복제인간들이 잠들어있었고, 네가 알던 은원1은 얼마 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허?


결국 이 구린내 나는 연구소가 복제인간을 찍어내서 세상에 혼돈을 가져올 것이고, 이것을 막으려는 차연 일행이 겪을 시련에 대한 내용이다. 다소 순탄하게 진행된 감은 있다만, 그럭저럭 괜찮은 상차림이었다. 이만하면 재료도 신선하고, 메인 요리도 있고, 반찬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뺄셈‘이 문제였다. 모양새는 딱 음모론인데 정작 이렇다 할 액션 거리가 없었다. 주인공 차연은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게 일절 없고, 남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끌려만 다니는 무력함을 보여준다. 또한 거듭되는 진실과 일어나는 상황에 정신줄을 자꾸 놓게 된다.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은원2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인물의 감정선에 중점 둔 것도 아니고, 스토리에 치중한 것도 아닌 참 어중간한 작품이 돼버렸는데 이같은 평이 사실 처음도 아니다. 이래서 이 분의 작품은 명랑 발랄한 것만 좋아한다는 말입죠. 예.


규모에 비해 허술하기만 했던 연구소와 세력들은 말할 것도 없고, 두 남녀의 감정선이나 좀 말해보자. 그러니까 이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호소하여 독자가 페이소스를 느껴야 할 텐데, 증말 미안하게도 호소력이 제로였다는 말씀이야. 솔직히 템포가 너무 빨라 슬픔을 애도할 새가 없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은원1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자마자 연구소 타파 계획에 휘말리질 않나, 동행하는 사람이 죽은 연인과 똑같이 생기질 않나. 얼마든지 인물에 빠져들게 할만한 건덕지가 많았는데, 우째 작가는 애도할 틈조차 주지 않으니 원.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알 게 된 것이, 은원의 아픔과 심정에 무게를 두고자 하셨다는데 허허허... 뭐가 문제냐면요, 독자를 울려야 하는 건 은원2인데, 정작 은원1의 과거 회상만 잔뜩 나오더란 말입니다. 거기다가 은원1은 말없이 퇴장해버렸고요. 이쯤 되면 포인트를 한참 잘못 잡은 게 아닐지요?


아마 제목의 의미는 ‘은원 is One‘일 것이다. 몸은 여럿이지만 하나의 기억을 계승해야 했으니. 여튼 여러모로 아쉬움 많은 작품이었다. 전작 리뷰에서 차라리 빅 스케일의 음모론이면 좋았겠다고 했었는데, 정작 빅 스케일을 써 보니 용두사미가 돼버렸다. 어째선지 내 잘못인 것만 같다. 작가님이 내 리뷰를 읽는다는 가정하에 적어봅니다. 집필하다가 한 번씩 저 좀 부르세요. 제가 또 훈수를 겁나게 잘 둔답니다? 그럼 이만.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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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4-16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 님 같이 모니터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있다면 소설 쓰는 분에게 도움이 되겠는 걸요.
에세이와 다르게 소설은 독자들의 취향을 알 필요가 있죠. 자기 만족으로만 소설을 쓴다면 모르지만.
이제 물감 님이 승승장구하셔서 출판사에서 지원 받아 작성하는 차원이 되셨군요. 오호!!

물감 2024-04-16 22:23   좋아요 1 | URL
출판사 분들의 메일은 종종 받곤 하는데요, 대부분 비문학이거나 안내키는 소설이어서 잘 안하는 편이에요. 어쩌면 하도 비평만 하다보니 연락이 줄어든건가 싶네요 ㅎㅎ
솔직히 제가 뭐라고 감놔라 배놔라 하겠냐마는, 그냥 못 본체 지나치기 힘든 작가/작품들이 이렇게 있어요. 몇몇 작가분들이 연락주셨듯이, 이 작가님도 연락주길 기대해봅니다 ^^
 
나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0
에밀 졸라 지음, 김치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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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도서 리뷰라지만 시작부터 바로 작품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무슨 수학 문제집 풀듯이 정답만 써놓은 글에는 흥미가 없달까. 다른 건 몰라도 문학 리뷰만큼은 최소한의 스토리텔링이 들어가줘야 글이 매끄러워진다. 이 스토리텔링이란 게 사실 별거 없고, 그냥 내 생각과 사유의 꼬리를 물어만 주면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대한 Tmi와 뻔한 코멘트와 상황 설명만을 나열하기 때문에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 온통 매력 없는 글이 되고 만다. 나님은 공장에서 단체로 찍어낸 듯한, 개성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결과물에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이런 말 백날 해봐야 듣는 이도 없고 내 얘기 하는구나 싶은 이는 더더욱 없는 현실이지만, 건강한 글쓰기와 서평 문화를 소망하며 또 한 번 끄적여봤다.


에밀 졸라의 작품 중 가장 재미없어 보였던 <나나>. 역시나 예상 적중해서 고생 좀 했다. 나나는 <목로주점>의 주인공인 제르베즈의 딸인데, 본 작품에서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극단 배우로 등장한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발연기의 달인이지만 그녀의 웅장한 피지컬과 과다한 페로몬이 그 어떤 논란도 잠재워버린다. 아무튼 수입도 짭짤하고 남자들도 잘 들러붙어 먹고 살 걱정 없는 그녀는, 단기간에 성공한 이들이 그렇듯 오만하고 경거망동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돈다발을 바치며 사랑을 갈구하는 남정네들. 그 정도로 나나의 아름다움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이 간단한 줄거리에 비해 쓰잘데없는 장면 묘사로 지면을 꽉꽉 채운 참 괘씸한 작품이었다. 원래부터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작가이고 늘 해 오던 대로 썼겠지만, <나나>가 유독 지루하다 느꼈던 것은 흐름과는 무관한, 정말 안 해도 그만인 묘사들로 도배를 해놨기 때문이었다. <제르미날>이나 <목로주점>에서는 자잘한 묘사들도 테마의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여 감탄했었던 반면, <나나>는 빈약한 내용을 최대한 있어 보이게 하려고 아주 그냥 발악한 걸로 보인다. 어떻게든 분량을 늘리고 싶어서 개똥, 새똥에 진드기 똥까지 긁어모으셨더만? 가장 불만이었던 극단 배경의 묘사부터 짚어보자. 나나의 직업도 그렇고, 초반에 대거 등장하는 인물들도 대부분 그쪽 업계니까 과한 디테일에도 뭐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배경 묘사에 실컷 공들여놨더니 얼마 못 가서 나나가 극단을 때려치운 데에 있다. 사실 그전에도 나나의 활동이나 관련된 장면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차후의 내용이 앞의 장황했던 설명들과 크게 이어지지도 않는다. 후반부에 다시 배우로 복귀하지만 또다시 그만둬버리므로, 결국 극단과 배우의 설정이 썩 중요치도 않은 별개의 장치였던 셈이다. 에라이.


두 번째로 억지 분량을 짜낸 것이 사교계의 묘사다. 프랑스 문학에서는 상류층의 사교모임 장면이 흔하게 나오는데, 그것이 귀족들의 문화라 따분하고 올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같은 상황이라도 영국 문학은 한층 더 심플하고 위트 있게 풀어나가는 편이다. 그러니 비교를 안 할 수가 있나. 솔직히 큰 스캔들이 없는 이상 사교계가 거기서 거기인데, 여기서 재미와 분량을 뽑아낸들 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심지어 나나는 귀족 집안 출신도 아니고, 명성은 있었지만 명예를 가진 것은 아니었기에 아무리 남자들의 등골을 빼먹고 다녔어도 평판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여인네들의 시샘과 질투를 받긴 했어도 남자들과의 썸씽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작가조차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듯하다. 근데 어째 리뷰가 점점 산으로 가는 기분일쎄?


연극으로 거액을 거머쥔 나나는 집을 사고 하인들을 거느리는 주인마님이 되어 신분 상승의 맛을 누린다. 일도 안 하고, 돈은 펑펑 쓰고, 알아서들 기어 대니 황후의 삶이 부럽지가 않은 그녀. 일상에 싫증 날 때면 남자들을 낚아다 돈을 타낸 뒤 영혼을 쥐락펴락하다가 걷어차버린다. 마치 악마에게 먹힌 것처럼 갈수록 심해지는 팜므파탈 플레이가 서서히 파멸을 노래하고 있었다. 보다시피 나나는 남자들을 타락시키는 걸 본능적으로 좋아했고, 남자의 수치심을 건드리면서 자극받기를 즐겨 했다. 도무지 해석 불가한 그녀의 자기 파괴적인 행동들이, 알 수 없는 증오의 화살들이 나중 가서야 겨우 납득이 되었는데, 불행을 몰고 다니는 루공-마카르 집안의 핏줄이, 사회를 향한 무의식적인 원한과 보복심으로 표출된 거였다. 잘 보면 나나에게 꼬이는 남자들은 백작, 사업가, 은행가 등등 죄다 상류층이었고, 이들의 부와 명예를 날려먹음으로써 저도 모르게 복수한다는 식이었다. 보통은 이 악물고 성공한 뒤 위에서 군림하는 정도로 그칠 텐데, 나나는 파산에다 풍비박산으로 사회에 매장하여 회생 불가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면서도 탕진과 섹스의 재미만은 꼭 챙겼으니, 이건 뭐 본인만의 무기를 흉기처럼 다뤘다고 해야겠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그러니까 이 작품의 메인 테마는 ‘성(性)‘이다. 에로티시즘을 강조하기보다 그 욕망에 깃든 기질을 다루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나는 자신의 육체가 지닌 매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적극 활용하여 원하는 바를 모두 이뤄낸다. 혹여 그 과정 또는 결과에서 현타라도 왔다면, 그녀의 ‘인간다움‘은 지켜냈을지언정 작품성은 떨어졌을 거다. 처음부터 나나는 ‘성‘으로 꽃피우고 진다는 결말이었을 테니까. 것보다 나나라는 인물의 개인사가 너무 없어서 투박한 캐릭터가 된 점이 아쉽다. <목로주점>에서 죽은 엄마를 떠나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나이를 먹어왔고, 어떻게 배우로 발탁되었는지 등등 궁금한 게 많은데 전혀 언급이 없더라. 여하간 이번 작품은 졸라에게 실망한 점이 수두룩 빽빽하다. 그나마 재미없단 걸 알고 봐서 다행이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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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4-10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나 진짜 재미없었어요 ㅜㅜ

물감 2024-04-10 16:30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제가 알던 에밀 졸라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어요...

꼬마요정 2024-04-10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나 읽다가 말았어요ㅠㅠ 책은 두꺼운데 진도가 안 나가니 그냥 던져놨어요ㅠㅠ 근데 물감 님 리뷰는 재밌네요^^

물감 2024-04-10 18:25   좋아요 1 | URL
리뷰가 다행히도 먹혔군요 ㅎㅎ 의리로 완독하긴 했지만 저도 확 던지고 싶었어요!!

stella.K 2024-04-10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품>이란 소설과 <목로주점>인가를 오래 전 읽다 너무 기분이 졸라 안 좋아서
그후론 졸라는 좀...
그런데 말씀하신 사항은 졸라만 그런 건 아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옛날 작가들은 페이지 수에 따라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나 뭐라나 그래서
도스토예스키도 그렇고 여타의 작가들이 그렇게 악마적으로 길게 글을 썼다더군요.
졸라도 그렇지 않을까요?

물감 2024-04-10 22:56   좋아요 1 | URL
이 책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전 졸라를 좋아합니다. 그러고보면 스텔라 님과 저의 작가 취향은 겹치질 않네요, 천명관 작가 빼면요ㅋㅋㅋ
말씀하신 원고료를 저도 감안하는 편인데요, 리뷰에 적었듯이 이 책은 정말 내용과 상관없는 문장이 많았어요. 다른 작품에서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stella.K 2024-04-11 11:36   좋아요 1 | URL
ㅎㅎ 기다려 보십시오. 분명 겹치는 작가가 천명관 말고 더 있을 거예요. ㅋㅋ

아참,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제르미날을 영화로 본 적이 있네요. 원작은 아니지만 졸라가 이런 작품도 썼구나 좀 경탄했지요. 근데 물감님은 작품이란 소설은 읽어보셨을까요? 그러니까 제 말은 졸라가 글은 잘 쓰는 것 같기는한데 너무 무겁고 칙칙하다 뭐 그렇다는 거죠. ㅋ

물감 2024-04-11 12:18   좋아요 1 | URL
목로주점, 제르미날, 인간짐승, 나나 총 4권 읽었어요. 작품은 나중에...ㅋㅋ 제르미날 영화가 있었군요. 참고하겠습니다.
확실히 졸라의 글은 묵직하고 자비 없긴 해요ㅋㅋㅋ그래서 텀을 길게 두고 읽어야만 합니다😅😅😅

은오 2024-04-11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목로주점도 읽다 덮은 기억이.... 전에도 물감님께 배경묘사 상상 안된다고 말씀렸다시피 전 배경묘사 세세하게 하는 자연주의 작가들 소설 너무 힘들더라고요. ㅠㅠ 실컷 설명해놓고 금방 극단 때려치운거 너무 열받는다!!!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4-04-13 18:42   좋아요 1 | URL
저도 세세한 묘사는 질려요ㅋㅋㅋ옛날 사람이라 그런가보다 하는거지, 현대 작가였으면 바로 손절했습니다😩 각자 본인한테 맞는 거 읽어야죠ㅋㅋㅋ